빠른 개봉을 촉구합니다!

매주 스무 편 가까운 영화가 개봉하지만, 여전히 관객을 찾지 못한 화제의 작품들이 있다. 특히 칸과 베를린과 같은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던 작품 중 개봉하지 못한 영화들이 꽤 된다. 이제나저제나 개봉 소식이 궁금한 7편의 기대작을 소개한다.

<희망의 이면>(The Other Side of Hope) | 개봉 미정
김민희가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번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 최고의 화제작은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희망의 이면>이었다. 감독상에 해당하는 은곰상을 받은 이 작품은 시리아인이 핀란드에 난민 신청을 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뤘다. 유럽의 엄혹한 난민 이슈를 차가운 유머로 전달하는 감독의 연출력이 여전한 작품이다.

<붉은 거북>(The Red Turtle) | 2017년 개봉 예정
<붉은 거북>은 올해 베를린 영화제 마켓에서 한국 바이어들의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작품으로 알려진다. 무인도에 난파된 남자가 여자로 변한 붉은 거북을 만나면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는 이야기다. 영화를 연출한 마이클 두독 드 비트의 요청으로 일본의 스튜디오 지브리가 처음으로 프랑스, 벨기에와 합작한 작품이다.

<엘르>(Elle) | 개봉 미정 -> 케이블 직행
폴 버호벤(<로보캅><토탈리콜>)은 잊힌 이름이었다. 화려하게 부활한 건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다. 아버지의 폭력적인 성향을 이어받은 ‘엘르’의 삶을 따라가는 이 영화는 거침없는 폭력과 섹스 묘사가 일품인 영화다. 이런 종류의 캐릭터에서 빛을 발하는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가 더해져 폴 버호벤은 다시금 주목받는 감독이 되었다.

<아메리칸 허니>(American Honey) | 2017년 개봉 예정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은 주변부로 밀려난 여성의 삶에 관심이 많다. <아메리칸 허니>는 방문 판매업을 하는 소녀의 서툰 사랑이 중심에 선다. 십 대가 주인공인 작품답게 귀를 자극하는 팝이 영화 내내 흐른다. 진창의 삶에서 희망을 이어가는 소녀의 삶이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과는 별도로 감동을 준다. 2016년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

<패터슨>(Paterson) | 2017년 개봉 예정
미국 언론들은 이번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가 발표되자 <패터슨>이 빠진 것을 두고 아쉬움을 표했다. 2016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후보작이기도 한 <패터슨>은 ‘영상 시인’ 짐 자무시의 작품이다. 그러한 평가에 걸맞게 주인공 또한, 시를 쓰는 버스 운전사다. 이 역할을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아담 드라이버가 연기했다.

<바칼로레아>(Graduation) | 개봉 미정
크리스티안 문주는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의 감독으로 유명하다. 조국 루마니아의 참혹한 현실을 고발하는 감독답게 <바칼로레아>는 의사 아버지와 대학입시를 앞둔 딸의 사연을 통해 교육 현실과 부패한 관료 체계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지난 칸영화제에서 <퍼스널 쇼퍼>의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함께 공동으로 감독상을 받았다.

<언노운걸>(The Unknown Girl) | 2017년 5월 3일 개봉
다르덴 형제는 믿을만한 감독 브랜드다. 유럽 사회의 소외된 이들의 사연을 다큐멘터리적으로 묘사해 현실 개선을 촉구하는 다르덴 형제의 미학은 <언노운 걸>에서도 변함없다. 자신을 찾아온 환자를 외면했다가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혼란을 겪는 의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의사의 윤리는 물론 인간의 소중한 생명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보그
(2017.3.16)

논란(?)의 정치영화를 보고싶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아니, 선거 시즌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봉인이 해제(?)되면서 한국영화계는 정치와 역사적으로 민감한 소재의 작품들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초유의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하는 시장의 정치욕을 다룬 <특별시민>은 4월 26일 개봉을 확정했다. 1급 군사기밀에 얽힌 군 내부 비리 사건을 파헤치는 <일급기밀>과 독일 기자를 싣고 영문도 모른 채 1980년 5월의 광주 민주화 현장으로 달려가는 <택시운전사>는 후반 작업 중에 있다. 또한, 민주화 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소재로 한 <1987>은 주요 캐스팅을 마무리한 상태다.

탄핵 정국을 지나 대선을 앞둔 지금 이들 영화를 향한 관심은 꽤 높은 편이다. 박근혜 정권 들어 정치와 역사와 관련해 표현의 자유를 맘껏 누리지 못한 한국영화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수위의 작품을 선보이지 않을까, 기대감이 높다.

안 그래도 올해 개봉작 중 사회정의를 소재로 했던 <더 킹>과 <재심>은 흥행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정치 일인자에 빌붙으려는 검찰의 추악한 권력욕이 핵심인 <더 킹>은 531만 명을, 약촌 오거리 사건의 억울한 살인 누명자의 사연을 따라가는 <재심>은 242만 명을 동원, 정의 실현을 향한 우리 사회의 요구가 얼마나 큰지를 방증했다. 그렇다고 사회적인 현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는데 이들 영화가 감정적으로 접근한 탓이 크다.

<더 킹>은 악질 검찰을 조롱하는 한편 주인공의 드라마틱한 개과천선으로 사회정의라는 해피엔딩을 이끌어 관객에게 통쾌함을 선사하는 데 그쳤다. <재심>은 자기만 생각하는 변호사가 사건을 해결하며 정의를 깨닫는 익숙한 드라마투르기로 실화임에도 불구, 인위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감정적인 접근은 종종 이성을 마비시키고는 한다. 요는, 사회 변화가 절실한 이들이 행동하게끔 이끄는 중요한 ‘질문’이 빠져있었다.

이번 주제의 칼럼을 생각하며 오랜만에 <JFK>(1991)를 다시 보았다. 지금의 올리버 스톤은 <스노든>(2016) <파괴자들>(2012)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2010) 등 평범한 수준의 작품으로 연명(?)하고 있지만, <JFK> 시절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감독이었다.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플래툰>(1986)은 미군끼리 서로 총질하는 내용으로 미국 사회를 경악시켰다. <7월 4일생>(1989)에서는 국가를 위해 참전했다 총상을 입어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된 군인이 어떻게 국가에 버림받고 결국 반전주의자가 되는지를 살펴 공감을 일으켰다.

압권은 미합중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암살범을 추적하는 <JFK>다. 이 영화에서 올리버 스톤은 암살범으로 알려진 리 하비 오스왈드 대신 JFK의 뒤를 이어 대통령 대행에 오른 존슨을 비롯한 미국의 우파와 이에 동조한 언론, 그리고 지속적인 전쟁이 필요한 군수 산업체가 모의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올리버 스톤은 암살 현장에서 찍힌 시민의 홈비디오 화면, 정부가 오랫동안 비밀에 부쳐 두던 관련 자료 등 여러 가지 증거를 제시해 자신의 주장에 논리를 부여한다.

당연히 미국에서는 <JFK>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그렇다고 기존의 사실을 뒤집는 진실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올리버 스톤의 입장은 확고하다. 의혹이 있는 사건, 특히 국민의 삶과 직결하는 정치와 역사 문제에서는 어떻게든 의문을 제기하고 더 나아가 최대한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불의를 향한 분노로 가슴은 뜨겁게 불을 지피되 진실에 접근하는 태도는 냉정해야 한다는 게 올리버 스톤의 철학이다.

물론 <더 킹>이나 <재심>처럼 감정에 어필하는 영화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이런 종류의 정치 영화들이 모두 관객의 감정에 호소하기 위해 뜨거워질 필요는 없다. <JFK>처럼 차갑고 건조한 영화도 필요하다. 아직 한국의 역사에는 정치적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적 사건들이 산적해 있다. 즉, 영화가 다룰 만한 정치적인 이슈의 소재가 많다는 얘기다.

2005년 봄, 한국 사회는 임상수 감독이 연출한 <그때 그사람들>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암살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에 대해 유족인 박지만은 아버지 박정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를 들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에 법원은 일부 장면을 삭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표현의 자유 문제에 대한 토론을 비롯하여 박정희 전(前)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등이 이뤄지며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의미 있는 논의가 이뤄졌다.

역사는 흘러간 것이라고 해서 과거형이 아니다. 미래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에 지금 현재 어떻게 바라보는 지가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영화라고 불리는 작품들이 계속해서 기획되고 만들어져 대중에 공개될 필요가 있다. 논란으로 시끄러울 수 있겠지만,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별시민> <일급기밀> <택시 운전사> <1987> 등 앞으로 개봉하는 정치 역사 소재의 영화가 흥행 성적에만 안주하지 않고 유의미한 파문을 일으키길 기대해 본다.

 

비즈엔터
‘허남웅의 아무말이나’
(2017.4.12)

[예스24] <파운더> 햄버거로 다시쓴 미국의 역사

‘맥도날드’는 햄버거의 대명사다. 개인적으로 이곳의 햄버거를 맛있게 먹는 편은 아니지만, 1년 365일 변함 없는 맛과 주문과 동시에 바로 받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일과로 바쁠 때면 종종 찾고는 한다. 맥도날드 특유의 인스턴트 시스템을 완성한 건 맥 맥도날드와 딕 맥도날드 형제다. 그렇다면 맥도날드 프랜차이즈의 기원을 쫓는 <파운더>는 맥도날드 형제에 대한 이야기인가? 이 사연이 흥미롭다.

<파운더>의 주인공은 맥도날드 형제가 아니라 레이 크록(마이클 키튼)이다. 레이는 밀크셰이크 믹서기를 팔며 전국을 돌아다니는 52세의 평범한 세일즈맨이다. 그 전까지 이쑤시개, 종이컵 등등 안 해본 영업이 없는 레이는 크게 부족함이 없는 삶인데도 만족스럽지가 않다. 그러던 중 밀크셰이크 믹서기 8대를 한꺼번에 주문한 곳이 있어 의아한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간다.

바로 맥도날드. ‘황금아치’ 간판이 인상적인 맥도날드 매장 앞에서 레이는 마음 속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감정에 사로잡힌다. 종업원이 없어도 주문이 가능하고 주문한 지 30초 만에 햄버거가 나오고 그렇게 빨리 조리했는데도 햄버거 맛이 기가막히다니. 맥도날드에 매료된 레이는 맥도날드 형제를 찾아가 프랜차이즈를 제안한다. 어렵게 동의를 얻어낸 그는 맥도날드 형제의 반대에도 사업을 거미줄처럼 확장한다.

그렇다, 맥도날드 메뉴와 주문 방식과 조리와 매장과 주방 설계 등 일련의 방식을 설립한 건 맥도날드 형제이지만, 맥도날드를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완성한 건 레이 크록이다. 이는 비유컨대 각각 지역구와 전국구 수준의 꿈을 꾼 맥도날드 형제와 레이 크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맥도날드 형제는 프랜차이즈를 확장하기 이전 무엇보다 최상의 품질과 가족 개념의 직원 복지가 중요했다. 꿈의 기업을 목표하던 맥도날드 형제에게 미국 전역으로의 진출은 그들의 이상을 포기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에 반해 레이는 신속함이야 말로 맥도날드 프랜차이즈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레이가 맥도날드에 주목했던 1954년의 미국은 세계 2차 대전 이후로 전에 없던 경제 호황을 누리며 무엇이든 빨리 변하는 시기였다. 단 30초 안에 주문과 조리가 동시에 이뤄지는 맥도날드의 시스템을 감안하면 온 미국인의 생활 수준이 상향평준화되는 것에 걸맞게 빠른 속도로 미국 전역에 맥도날드 매장을 ‘프랜차이즈’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까, 레이가 맥도날드 매장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맥도날드 형제를 잘 설득하든가, 아니면 힘으로 제압할 필요가 있었다.

흔히 우리가 미국적인 가치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개척’이다. 할리우드는 일찍이 미국의 개척정신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서부극’을 만들었다. 황량한 서부의 땅에 문명을 건설한 미국의 역사는 개척과 떼려야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 그래서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로 서부극과 함께 미식축구, 맥도날드 등이 거론되고는 하는데 이들을 하나로 묶는 개척의 핵심은 시쳇말로 ‘땅따먹기’다.

공교롭게도 극 중 레이의 서재에는 ‘역마차’를 담은 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과거 서부 개척시대에 미국인들은 가족 혹은 이웃과 함께 역마차를 타고 이동하며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1954년의 레이는 동부의 한 레스토랑에서 밀크셰이크 믹서기를 영업하다가 자동차를 몰아 캘리포니아 ‘서부’에 위치한 맥도날드 샌 버나디노 지점으로 향한다. 그리고 맥도날드를 전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키우겠다고 마음 먹은 레이는 맥도날드 형제를 집요하게 설득하고 끝내 이들에게서 맥도날드 브랜드를 뺏어오는 데 성공한다.

계약 상, 레이가 매장을 새로 내거나 시스템에 변화를 꾀할 때에는 반드시 맥도날드 형제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무엇보다 신규 매장의 수익 일부를 로열티로 나눠갖는데 맥도날드 형제에 비해 지분이 적은 레이는 늘 불만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매장 수에 비해 로열티 액수가 적으니 금고에 돈이 쌓이지 않아 레이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레이의 묘수는 로열티 대신 매장이 들어설 땅에 대한 권리를 챙기는 것이다. 그러면 돈도 더 많이 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계약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새로운 주식회사를 설립할 수 있어 맥도날드를 인수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폭력의 형태는 아니지만, 맥도날드 형제가 획기적으로 실현한 브랜드를 자본의 힘으로 약탈했다는 점에서 레이의 행위는 폭력적이다. 이는 할리우드의 서부극이 미국인의 개척정신을 찬양하면서 원래 미국 서부의 주인이었던 인디언을 학살한 폭력의 역사를 은폐한 것과 맥을 함께 한다. 이게 핵심이다. <파운더>는 햄버거로 다시 쓴 서부극, 즉 ‘햄버거 웨스턴’이다.

미국의 개척은 말이 좋아 확장이지 무형의 폭력적인 형태로 지배력을 강화해왔다. 미국 서부에서 미국 전역으로, 그리고 전 세계로.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샌 버나디노에서 출발한 맥도날드는 현재 전 세계 3만 5천여개에 이르는 매장을 통해 맥도날드 왕국을 건설했다. 맥도날드는 오늘도 미국 문화의 최전선에서 미국적 가치를 알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맥도날드 형제의 햄버거로 전세계를 집어삼킨 레이 크록의 맥도날드 개척사는 곧 미국 폭력의 역사인 셈이다.

 

예스24
‘허남웅의 영화경’
(2017.4.13)

[GV] <나의 사랑, 그리스>

(GV를 위해 마구잡이로 적은 글이라 문장이 둔탁하고 맞춤법이 틀린 부분도 있을 거예요.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달콤한 제목을 인식하고 영화를 봤다가 깜짝 놀랐어요. 물론 사랑과 같은 감정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작품이지만, 그리스가 주는 아름다운 풍경과는 다른 그리스를 국가 부채 위기로 몰아넣은 상황이 전면에 나서는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원제는 ‘Worlds Apart’인데요. 한국 말로 풀자면, ‘크게 동떨어진’입니다. 무엇이 ‘크게 동떨어졌다’는 걸까요? <나의 사랑, 그리스>는 3개의 에피소드 형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각 장(part)마다 소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부메랑’입니다. 여대생 다프네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 괴한의 공격을 받습니다. 길을 지나던 중 파리스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 다프네를 구해줍니다. 사실 파리스는 내전 중인 시리아를 탈출해 왔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다프네와 사랑에 빠지는데요. 아뿔싸, 다프네의 아버지 안토니는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다 이방인에게 화풀이를 하는 자경대원입니다.

두 번째는 ‘로세프트 50mg’입니다. 그리스 남자 지오르고는 우울증 약 로세프트가 없으면 평상심을 유지하기 힘듭니다. 부인과의 불화, 직장에서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인데요. 우연히 스웨덴에서 온 엘리제를 만나 원나잇 스탠드를 하고 그녀에게서 위안을 얻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그녀는 지오르고가 소속된 회사에 파견되어 직원들의 상당수를 해고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세 번째는 ‘세컨드 찬스’입니다. 독일에서 그리스로 이주해 온 세바스찬은 마트에 갔다가 마리아의 도움으로 인연을 맺습니다. 60세를 훌쩍 넘긴 이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서로에게 호감을 느껴 데이트를 하기 시작합니다. 평생을 주부로 살아왔던 마리아는 세바스찬 덕에 낭만을 알게 되고 세바스찬은 평생을 홀로 지내다 마리아 덕에 사랑을 알아갑니다.

3개의 에피소드는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어 보입니다. 대신 공통점은 보여요. 각 에피소드에서 맺어지는 커플은 서로 국적이 다릅니다. ‘부메랑’의 다프네와 파리스는 각각 그리스와 시리아죠. ‘로세프트 50mg’의 지오르고와 엘리제는 각각 그리스와 스웨덴입니다. 그리고 ‘세컨드 찬스’의 60대 커플은 독일과 그리스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

<나의 사랑, 그리스>의 ‘로세프트 50mg’에서 지오르고를 연기한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는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합니다. <나의 사랑, 그리스>가 두 번째 연출작인 그는 “그리스의 끔찍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매일 일상에 부딪히며 살아가는 그리스 인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안 그래도 그리스는 2000년대 들어서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게 되는데요. 과다한 사회복지비의 지출, 국가회계의 분식회계처리, 그리고 관광업에 의존하는 산업구조가 주요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파생된 사회 문제 역시 만만치 않아서요. 실직하고 희망을 잃은 그리스인 중 일부는 파시스트가 되어 자신들의 절망감을 그리스로 유입된 이주민들을 향해 폭력적으로 휘두르고 있죠.

또한, 국가 부채 위기이다보니 그리스의 기업들은 도산에 이르게 되는데요. 타국에서 이들 기업을 매각하기 위해 직원을 파견하고 그래서 그리스인 직원들은 대량 해고 사태를 맞게 되죠. 그러면 사회의 가장 기본이랄 수 있는 가정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직장 잃은 남편은 방황해 그런 남편과 살아야 하는 아내는 맘이 편치 않아 그 영향이 자식에게까지 미칠 수밖에 없는데요.

지금 말씀드린 그리스의 위기 상황은 <나의 사랑, 그리스>의 각각의 에피소드의 배경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혼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리스인의 현실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서로 ‘크게 동떨어진’ 이들끼리 어떻게 하면 화해하고 협력하여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의도가 더 강해보입니다.

이에 대해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는 이런 얘기를 했죠. “사랑을 통해 현재 이 시대의 가장 뜨거운 문제, 특히 유럽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난민과 경제적 위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은 계속 변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남는 것은 사랑과 가족이 될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 영화는 그것을 이야기한다.”

그처럼 이 영화는 가혹하고 혼란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죠. 사랑을 이어주는 방식이 흥미로운 건 그리스의 문제라고 해서 그리스 내부의 것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국가와 인종이 연계되는 방식으로 풀어간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의 사랑으로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건데요. 사실 3개의 에피소드는 각각 ‘크게 동떨어진’ 것 같아도 실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프네와 지오르고는 남매 사이이고, 이들의 엄마가 마리아입니다. 이들 가족은 각자가 처한 상황 때문에 하나로 융화되지 못하지만, 사랑의 힘을 믿는 이 영화의 마지막에는 결국 한 자리에 모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가족의 개념을 이렇게 작은 규모가 아닌 전 세계 규모로 가져가 하나로 엮는 시도를 보여주는데요. 바로 거기에 이 영화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들 가족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음에도 각 에피소드마다 <나의 사랑, 그리스>는 서로 연결하는 미장센을 극 속 이미지로 반영합니다. 각 에피소드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이미지 중 하나는 아마 그리스 정교회의 행진으로 보이는데요. 에피소드마다 등장하기 때문에 서로 동떨어진 에피소드를 모두 실로 꿰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종교라는 게 화합을 앞세우기 마련이잖아요. 사랑을 통해 서로 반목하고 거리를 두는 이들을 모두 아우르는 것 같죠.

각 에피소드의 배치 역시 정교하게 하나로 맞춰져 있는데요. ‘부메랑’이 청춘을, ‘로세프트 50mg’이 중년을, ‘세컨드 찬스’가 장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어 ‘하나의 생’이라는 틀을 마련하고 있죠. 게다가 <나의 사랑, 그리스>가 제시하는 이야기는 특수하기보다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스가 처한 국가 부도 위기는 그리스의 특수한 상황이면서 또한, 어느 나라도 그처럼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런 맥락에서 사람들은 과거에도 반목을 한 적이 있고 그런 위기의 상황들은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이런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사랑이죠. 극 중 세바스찬이 영화를 시작할 때 이런 말을 합니다. “모든 것은 사랑으로부터 시작했다” 이 영화에서 묘사돼듯이 사람들이 서로 반목하고 싸우고 하는 것도 모두 사랑에서 비롯됐다는 얘기입니다. 해결책도 사랑이라는 의미가 되겠죠. <나의 사랑, 그리스>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는 그리스 신화죠,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연으로 의미를 부여합니다.

프시케의 미모를 질투한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로 하여금 프시케를 쫓아냅니다. 그러나 프시케를 본 에로스는 프시케의 외모에 흠뻑 빠져 그녀를 궁으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밤이면 찾아와 프시케와 사랑을 나누죠. 단, 조건이 있습니다. 프시케에게 에로스 자신의 얼굴을 절대 보지 말라고 해요. 하지만 프시케는 에로스가 잠든 사이 초를 가지고와 그의 얼굴을 보고는 역시나 멋진 외모에 반하고 마는데요. 그때 촛농이 에로스에게 떨어지고 실망한 에로스는 프시케를 떠납니다. 절망에 빠진 프시케는 에로스를 찾아 지옥까지 간 끝에 다시 만나게 되는데요.

여기에는 사랑으로 비롯된 질투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역시나 사랑을 찾는, 극 중 세바스찬의 말처럼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는 바벨의 신화와도 맥을 같이 해서 사람들이 신에 가닿기 위해 하늘 높은 탑을 세우니까 신은 인간들에게 서로 다른 언어를 부여했는데요. 그럼에도 인간이 이를 극복할 수 있다면 바로 ‘사랑’ 때문일 거예요.

이를 위해 <나의 사랑, 그리스>는 의도적으로 다국적 캐스팅을 하고 있는데요. 다프네를 연기한 니키 바칼리, 지오르고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 마리아를 연기한 마리아 카보기아니 등 그리스 배우들과 함께 파리스를 연기한 이스라엘 출신의 타우픽 바롬, 엘리제를 연기한 헝가리 출신의 안드레아 오스바르트, 세바스찬을 연기한 J.K. 시몬즈 등이 바로 그러하죠.

배우들끼리 서로 태어난 나라와 언어가 달라도 크게 문제가 없는 건 더듬거리는 말일지라도 서로 얘기하다 보면 이해가 되고 무엇보다 감정은 보편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소통하는 데 큰 문제가 없게 되는 거죠. 그래서 그리스를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갈등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사랑이라는 걸 <나의 사랑, 그리스>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회의적인 분들도 계실 거예요. 다만, <나의 사랑, 그리스>에서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 감독이 전제하는 건 이 영화가 인용하는 에로스와 프시케의 신화가 나왔던 시절부터 그런 갈등과 반목은 있어왔고 그럼에도 세계가 여전히 존재하는 건 사랑을 통해 극복했기 때문이라는 메시지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 번 실패가 끝이 아닌, 이를 딛고 일어서는 ‘세컨드 찬스’, 즉 두 번째 기회가 중요하다는 의미인데요.

그에 맞춰 이 영화는 에피소드 구성이기는 하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에피소드는 희한하게 결말을 유예한 채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바로 세 번째 에피소드 ‘세컨드 찬스’에서 핵심을 이야기하겠다는 건데요. 각 에피소드의 화면 구성은 마치 사람들이 벽에 가려져 있는 듯 구획화되어 있습니다. ‘부메랑’에서는 지나가는 버스 사이에서 다프네와 파리스가, ’로세프트 50mg’에서는 회사 내 파티션으로 직원들이, ‘세컨드 찬스’에서는 슈퍼마켓의 진열대로 인물들이 구분되어 있는데 구획화된 곳을 나오는 것이 <나의 사랑, 그리스>에서는 중요합니다.

그래서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사랑을 나눌 때는 구획화된 답답한 곳을 나와 뻥 뚫린 공간에서 사랑을 나누는 경우가 많은데요. 물론 공개된 장소라고 해서 모두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천둥과 번개가 치고 비가 거세게 내릴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는 몸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구획화된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가 살아있는 그런 곳 말이죠. 바로 집과 같은 곳이 그런 장소가 되어야 하는데요. 그러니까, 그리스 사회가 처한 문제로 인해 가정이 무너지는데 다시 가정이 바로 서는 것에서부터 그리스 사회를, 더 나아가 전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자는 의도이겠죠.

내부의 온기를 만드는 것은 사람 사이의 감정입니다. 감정은 인간이라는 존재 증명인데요. 사랑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도 있지만, 우울함과 슬픔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있습니다. 이 모든 건 결국 사랑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사실 각 에피소드에서 누군가를 증오하거나 기계적인 업무 처리를 하거나 등등 그 장본인들도 실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맘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랑의 감정이 분노와 증오로 바뀐 걸 거에요. 그렇게 긍정적인 감정이 부정으로 바뀌듯 부정적인 감정도 긍정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보세요. 다프네의 아버지 안토니는 비록 비극적인 결말이지만, 딸의 죽음으로 인해 사랑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죠. 감정이 없어 보이는 엘리제는 원나잇 스탠드로 만난 지오르고와 만남을 거듭하면서 남다른 감정을 갖게 되고 결국 사적인 감정 때문에 그에 대한 해고 명령을 내릴 수없어 상사의 압박 속에 우울증에 시달린 끝에 지오르고에 대한 그리움으로 살아갑니다. 결국 사랑으로부터 시작해 사랑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요.

바로 그런 메시지가 통해서 이 영화는 그리스에서 2015~2016년 시즌에 가장 흥행한 작품이 되었는데요. 이는 당시 그리스에서 함께 개봉했던 <스타워즈: 꺠어난 포스>와 <007 스펙터>를 뛰어넘는 기록이라고 합니다.

 

GV <나의 사랑, 그리스>
압구정 CGV
(2017.4.12)

[재미] <더 배트맨> 만약 맷 리브스가 하차한다면?

말 많고 탈 많은 ‘배트맨 솔로 무비’ <더 배트맨 The Batman>의 감독이 정해졌다. <클로버필드>(2008), <렛 미 인>(2010),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2014)의 맷 리브스다. 장르영화에 강점을 보이는 감독으로, 탁월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단, 맷 리브스가 끝까지 감독직을 유지해 영화를 완성한다면 말이다.

DC 시네마틱 유니버스(DC Cinematic Universe)를 총괄하고 있는 워너 브러더스는 이 시리즈에서만큼은 간섭이 심하기로 악명 높다. 코믹스의 라이벌인 마블이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거의 독점에 가까운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덕인지 조바심을 드러내는 결정을 종종 드러내고는 한다. <더 배트맨>의 연출자로 원래 내정되었던 벤 애플렉은 먼저 하차 의사를 밝혔고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은 충분치 않은 제작 일정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그런 상황에서 맷 리브스는 <더 배트맨>에 자신의 비전을 고수할 수 있을까. 워너 브러더스와 맷 리브스와의 협상도 이미 한번 결렬된 바 있다. DC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보여준 그 동안의 행보를 보면 언제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 ’만약’ 맷 리브스가 <더 배트맨> 연출직에서 하차한다면 구원투수로 나설 감독으로 누가 좋을까. 혹시 몰라 미리 리스트를 만들어뒀다.

1순위. 데미언 채즐
데미언 채즐은 <라라랜드>(2016)와 <위플래쉬>(2014)로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감독이다. <클로버필드 10번지>(2016)의 각본가 중 한 명으로 참여한 경력도 있다. 슈퍼히어로물과 같은 장르물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얘기다. <위플래쉬>는 음악을 우회해 펼친 스승과 제자의 대결이었다. 싹이 보이는 제자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내기 위해 폭군처럼 군림하는 스승과 폭압적인 가르침에 맞서 어떻게든 지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던 제자의 관계는 슈퍼히어로와 슈퍼 빌런의 싸움을 연상시킨다. 지금 DCCU에 필요한 건 이와 같은 데미언 채즐 감독의 과감함이다. 감독의 견해를 무시하는 DCCU 제작진의 입김이 완성도를 산으로 가게 하는 상황에서 자기 비전을 밀어붙일 줄 아는 감독이 절실하다.

2순위. 제프 니콜스
제프 니콜스는 장르를 취하되 익숙한 장르적 화법을 구사하지 않는 독특한 연출력의 소유자다. <미드나잇 스페셜>(2016)과 <머그>(2013)와 <테이크 쉘터>(2011)는 각각 재난물과 모험극과 SF의 형태를 취했으면서 볼거리에 치중하는 대신 인물에 내재한 불안감을 따라가는 이야기로 구성했다. DCCU의 슈퍼히어로들, 특히 배트맨은 불안감에서라면 갑 중의 갑인 캐릭터다. 부모 잃은 어린 시절의 고통과 자신의 존재가 악을 불러오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죄책감 등 배트맨의 검은 심리를 해부하는 데 제프 니콜스만큼 적임자는 없어 보인다.

3순위. 캐슬린 비글로우
남자 슈퍼히어로물은 꼭 남자 감독이 만들라는 법 있나. 캐슬린 비글로우는 <제로 다크 서티>(2013)와 <허트 로커>(2010)에서 남자 못지않은 선 굵은 전쟁 이미지로 여자 감독에 대한 선입견을 보기 좋게 날려버렸다. 그뿐인가, 전쟁터의 앞줄에서 활약하는 주인공의 곪아가는 심리를 역으로 파헤친 사연은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이는 전쟁 배경과 같은 볼거리와 계속된 싸움에 지친 슈퍼히어로의 심리를 파헤치는 ‘배트맨 솔로 무비’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다. 게다가 캐슬린 비글로우는 <허트 로커>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전력까지 갖추고 있다. 작품성까지 갖춘 슈퍼히어로 영화라면 상대 전적에서 절대 열세인 마블과의 대결을 뒤집을 수 있지 않을까.

4순위. 크리스토퍼 놀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구원투수로 나선다고 하면 이것만 한 희소식도 없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의 마지막을 상기해보자. 고담을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자폭한 줄만 알았던 배트맨은 살아있었다. 대신 로빈(조셉 고든 레빗)이 고담의 슈퍼히어로로 활약할 것임을 암시했다. 그런데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에는 조커에게 로빈이 살해당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설정이 등장한다. (조커의 낙서가 적혀 있는 로빈의 슈트!) 이를 근거로 배트맨이 다시 고담에 복귀한다면? 신기하게도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저스티스의 시작>을 연결하니 그럴싸한 ‘배트맨 솔로 무비’의 큰 그림이 그려진다. 그렇게 놀란은 DCCU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 정도면 놀란에게 감독직을 제안해봐도 좋지 않을까. 밑져야 본전 아니겠나.

 

GQ KOREA
(2017.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