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 오브 락>(School of Rock)


젊은아덜의 파릇파릇 푸레쉬한 러부질을 수려한 화면빨과 재치 만빵의 대사로 잔잔시럽게 풀어내 뭇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냈던 <비포 선라이즈>의 감독 리처드 링클래이터. 이번엔 가족영화를 빙자(?)한 포복절도형 코미디 영화 한 편을 소리 소문도 없이 들고 나왔음이다. 제목하야 <스쿨 오브 락>.

어디 내놓으면 별 약빨 못 받을 거 같은 촌시런 외모와 똥배 가득 덩치로 인해 자기가 맹근 롹 밴드에서 쫓겨난 듀이(잭 블랙 분). 어찌저찌 이러쿵저러쿵 어절씨구 해설랑 선생을 사칭해 핵교에 들어간 듀이는 범생적 사고관에 젖어있는 초딩들을 롹 스피릿 충만한 ‘스쿨 오브 락’ 밴드의 연주자로 싸그리 날라리화 시킨다.

그래서 당 영화는 우리의 쥔공 듀이가 통기타, 피아노, 첼로에 익숙한 자신의 반 학생들을 전기기타, 전자음반, 베이스로 집중, 조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끼고 자빠라짐이 압권인데 그 태풍의 눈엔 방금 막 <이나중 탁구부> 출연을 마치고 나온 듯한 인상의 잭 블랙이 있음이다.

이미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내게 너무 가벼운 그녀>를 통해 뭔가 크게 한 방 터뜨려 줄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잭 블랙은 당 영화에서 예의 그 전신을 흐느적거리는 오징어적 움직임을 절도있게 승화한 오도방정으로… 뭔 소린지 감이 안 오겠지만 우쨌든 이럴 정도로 정신없이 관객을 우낌의 도가니탕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소리다.

물론 이런 예술적인 연기 역시 이야기가 받쳐줘야 최대치를 발휘하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롹을 영화 전체 베이스로 깔고 있는 당 영화는, 열린 음악회式 고리타분한 정규교육을 롹으로써 유쾌상쾌통쾌하게 똥침 쑤신다는 재미난 얘기 속에 루저 스피릿과 저항 스피릿 등 그 바닥 정서를 자연스럽게 녹아내고 있다.

재미있는 건 이처럼 당 영화가 보수적인 가치에 마구 고춧가루를 뿌리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영화의 탈을 쓰고 있다보니 ‘막판 감동 한 판 과하게 선사하기’라는 가족영화의 룰을 그대로 따르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해서 결말이 약간 민망하긴 했지만서도 ‘일등이 최고의 마빡은 아니다’라던가 ‘생긴 거보다 더 중요한 마빡은 재능’이라는, 나름대로 당 영화가 내세우는 교훈은 이야기의 설정을 비추어 보건데 꽤나 구여운 맛이 있었더랬다.

이보다 문제는 당 영화에 거창하지는 않지만 롹의 역사라 할 만큼 이름만 대면 대부분 알아 먹을만한 롹 이야기와 밴드, 노래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데이빗 게펜’을 ‘데이빗 게핀’으로, 불후의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Great Gig in the Sky’를 ‘하늘의 궁전’으로 삑싸리 내는 등 번역이 이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게다가 당 영화의 진가를 느낄 수 있는 또 하나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롹과 관련한 소소한 꺼리들인데 롹에 문외한이거나 관심이 없을 경우, 영화를 이해하는데 지장은 없지만 이와 같은 잔재미를 캐치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스쿨 오브 락>은 큰 영화가 극장가를 독점하고 있는 와중에서 마치 흙 속의 진주처럼 그 재미를 반딱반딱 빛내고 있는 작품인 바, 본 특위는 당 영화를 베스트 주니어에 봉한다.

덧붙여,
많은 영화들이 안면몰수하고 조기 퇴장하는 관객을 붙들어 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작금의 풍토에서 당 영화는 마구 돋보이는 아이디어 하나로 크레딧이 끝까정 올라가는 순간까지 보는이들을 붙들어 매고 있음이다. 아무렴 붙잡아 두려면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암.

<말타의 매>(The Maltese Falcon)


역사학자 E.H.카란 사람이 역사를 가르켜 이렇게 썰 풀었슴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다.”

제가 고전영화로 독자 제위덜과의 합방을 시도하려는 이유는 역사학자 카의 이 썰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의 영화를 현재로 끌어와 그 둘 사이의 대화를 가능케 하는 일이야말로 고전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간절한 욕망일테니까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고전영화에 대해 어떤 견해들을 갖고 계심까? <단쪽비연수>처럼 과도한 졸음을 유발하는 수면제 무비, 아니면 어설픈 스턴트나 조악한 특수효과가 더 빛을 발하는 <비싼무>류의 어이없음, 광적인 영화팬들이나 소유하고 있는 ‘그덜만의 리그’, 이도 저도 아니라면 고전영화를 본다는 것은 엘레강스한 영화귀족들이나 가지고 노는 사치스러운 취미.

절대 NO. Absolutely 아님. 단언컨대 고전영화는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 아님다. 과거의 영화를 접한다는 것은 중·장년의 엄니 아부지 팬들에게는 학창시절과 연애시절의 풋풋한 순간을 떠올리듯, 평생을 따라다니는 ‘시간의 그림자’이며, 젊은 친구들에게는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시간을 살아보는 ‘교육적 체험’임다. 그뿐입니까, 가장 중요한 사실은 고전은 무척 재미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고전영화에 대해 물어보면 대부분 ‘그 지루한 거 재미없는 거’ 이러시는데 그러지 마십쇼. 그럼 댁들은 국사가 지루합디까? 그럼 <태조 왕근>이나 <여편네 천하>는 뭔 재미로 본답디까. 확실히 말하건데 고전영화 그 안에는 덩치만 큰 요즘의 영화보다 익숙하고 찡한 ‘울림’이 있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째서 영화관계자들은 과거의 영화를 리메이크하지 못해 안달이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 제가 조금 흥분했슴다. 고전영화 무관심의 행태에 관해서는 차후에 자세히 알려드리기로 하고 지금부터 본론에 들어가도록 하겠슴다.

1.


영화에 대해 쫌 아시는 분들은 <말타의 매>하면 일단 ‘음, 필름 느와르의 원형’하고 으쓱해 하실거라 사료가 되옵니다. 맞지? <말타의 매>를 소개하는 글들이라면 어디나 할 것 없이 필름 느와르를 완성한 영화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죠. 저 역시 제가 운영하고 있는 사이트에 <말타의 매>를 소개하면서 ‘느와르의 원형’이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타의 매>가 ‘필름 느와르의 원형’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도 필름 느와르의 시초에 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니까요. 다시 말해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말타의 매>는 ‘필름 느와르의 원형’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겁니다.

1946년 프랑스 비평가들은 당시 미국 영화의 한 경향을 빗대어 ‘어두운 영화’ 즉 ‘필름 느와르’라는 뽀다구나는 용어를 선사했습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어둠이 강조된 영화를 지칭하는 용어로써, 당시 미국의 불안한 사회상을 배경으로 삼아 흑백필름을 표현수단으로 채택하였습니다. 게다가 암(暗)을 살리기 위해 조명이 다각도로 이용되고 흑(黑)을 강조하기 위해 그림자가 애용이 되죠.그래서 방과 같은 밀폐된 장소는 느와르의 가장 적합한 공간적 배경이 됩니다.

세트촬영을 주로 사용하는 것도 그 때문입죠. 한 무리의 비평가 선생님들께서는 바로 이것이 ‘필름 느와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필름 느와르’의 원형을 1941년 5월 1일에 개봉한 오손 웰즈의 <시민케인>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흔히 알려져 있는 ‘필름 느와르’의 정의는 여기서 한발짜국 더 걸어나갑니다. 하드보일드라고 알려진 탐정소설을 주제로 삼아 어두컴컴한 화면에 담아야만 그것이 바로 진정한 ‘필름 느와르’라고 우리는 인식하고 있죠. 그러니 이 경향을 따르는 사람들은 <말타의 매>가 이 장르의 원형이라고 목청 높여 외쳐댄답니다.

그럼 <시민케인>을 필름 느와르의 시작이라고 주장하는 전자의 경향을 따르게 될 경우 존 휴스턴의 <말타의 매>가 가지고 있는 영화사적 가치는 사라지는 것일까요? 그런데 그게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말타의 매>를 필름 느와르로 하지말고 하드보일드 영화의 효시라고 말을 좀 바꿔보죠. 어때요 이게 더 낮죠? 이렇게 하면 <시민케인>이 ‘필름 느와르’의 형님먹고, <말타의 매>가 ‘하드보일드 영화’의 원조 먹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또랑 치고 가재잡고, 너두 먹구 나두 먹구 두 영화 모두 체면이 서지 않겠습니까. 용어의 정의라는 거에 괜히 역사적 가치 이런게 끼여들면 내가 먼저니 니가 나중이니 순서 따지는 옹삼이나 해창이처럼 때로는 유치하고 치사한 쌈박질이 된답니다.

우리는 애들처럼 싸우지 말고 신사적으로 <말타의 매>를 ‘하드보일드 영화의 출발’이라고 정의하고 이야기를 전개해보도록 하죠. 불만들 없으면 오라이~

2.

대쉴 해미트(Dashiell Hammett)에 의해 개척된 하드보일드(hard-boiled) 소설 장르는 「Benet Reader’s Encyclopedia of AmericaLiterature」이라는 미국의 문학백과사전에 따르면 ‘사회의 어두운 면을 현실성 있게 다룬무자비하며 피가 난자하는 탐정 혹은 범죄소설’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슴다.

제가 자료 좀 뒤져 봤슴다. 1920년대 말에 탄생한 하드보일드 소설은 금주법 시대였던 당시의 미국을 백그라운드로 깔고 있으며, 개인의 추악한 욕망에 의해 계획된 더러운 음모를 소재로 얽히고 설킨 사건들을 거미줄처럼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땀시롱 하드보일드가 선보이는 어두운 현실세계를 소화하기엔 필름 느와르의 외피가 아주 딱인 셈이죠.

사실 대쉴 해미트의 소설 「말타의 매」를 가지고 영화화한 사례는 1931년 로이 델 루스(Roy Del Ruth)의 <말타의 매>와 1936년 윌리엄 디털(William Dieterle)의 <악마는 뇬을 만났다 Satan Met a Lady>가 있었지만 성공적이지도 못 했을뿐더러 스타일보다는 이야기쪽에 중점을 둔 영화들이었습니다.

따라서 대쉴 해미트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존 휴스턴의 <말타의 매>는 필름 느와르와 하드보일드 소설 그 둘간의 합방시도가 최초로 성공한 사례일 뿐 아니라 그 후 하드보일드 장르(영화)의 유행을 가지고 온 신호탄이기도 합니다.

이는 영화 <말타의 매>에서 보여지는 두드러진 특징들이 하드보일드 소설의 본질과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함다. 그만큼 존 휴스턴은 해미트의 소설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그것에 가장 적합한 스타일을 끌어왔고 원작에도 충실했습니다. 전자가 필름 느와르로 불리는 암과 흑에 의존한 흑백스타일이라면 후자는 주인공의 성격을 잘 살린 연출력과 적역의 캐스팅이었슴다.

초기 하드보일드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사립탐정이었슴다. 그래서 이 장르의 주요작가들은 자신의 작품 속에 고유한 탐정캐릭터를 가지고 있었슴다. 대쉴 해미트 하면 샘 스페이드 였고, 해미트에 이어 이 장르의 대표적인 작가가 된 레이먼드 챈들러에게는 필립 말로우가 파트너였습니다. 영구에겐 늠름한 개새끼 땡칠이가 따라다니듯이요.

그런데 이 탐정들은 단순히 범인을 잡는 말 그대로의 탐정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추리 소설의 주인공이 대개 그렇듯 뛰어난 추리력은 물론이고 기지에 능하며 겁대가리라는 것이 없슴다. 뭇 남성들이라면 한번쯤 인생의 목표로 삼아봤을 인물이며, 뭇 여성들이라면 이 놈과 한번 빠굴이라도… 어헝~  

하지만 샘 스페이드로부터 규정된 하드보일드의 남성주인공은 한편으로는 각박한 세상 속에서 갈피를 몬 잡는 우매한 우리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슴다. 같은 소속의 파트너 아내와 밤새 침대에서 놀아나고, 누군가와 대화라도 할라치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히는 말만 나불대며 더러운 세상을 향해 남은 감정이라고는 차가운 냉소 뿐임다. 이런 이중적인 성격의 주인공은 일상 남자들이 꿈꾸는 이상과 현재 자신이 처한 입장이 그대로 반영된 인물임다. 그러니 하드보일드가 인기를 끌 수밖에 없죠.

<말타의 매>에서 샘 스페이드 역은 후까의 대형이자 우리의 카리스마 지존이신 험뿌리 보가트 옹께서 담당하셨슴다. 딱딱 끊어지게 내 뱉는 간결한 어투는 험뿌리의 매마른 이미지와 잘 어울려 더욱 매섭게 느껴지며 웃음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무표정 또한 샘 스페이드의 냉정함에 제격입니다. 험뿌리 보가트가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할리웃 빅 스타의 자리에 오른 일은 지극히 당연한 것임다.

3.

느와르 영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인물은 바로 쭉빵 언니들의 대 선배님이신, 요부로 지칭되는 여성캐릭터입니다. 사건은 항상 매력적인 외모를 지닌 뇨자의 의뢰에서부터 시작이 됨다. 하지만 그뇨의 아름다운 외모 뒤에는 상대남성을 몰락시킬 독침을 머금은 음모가 도사리고 있슴다.

<말타의 매>에서 메리 에스터가 분한 브리짓 샤네시는 얼굴값하는 외모를 이용 남자들을 위험에 빠뜨림다. 이처럼 넘들을 유혹해 실속을 챙기는 뇨자들을 가리켜 프랑스 인들은 ‘악한 뇬’이라는 뜻에서 팜므 파탈(Femme Fatal)이라고 이름붙여 주었습니다.

근데 이게 요즘에 와서는 돈 있는 어리숙한 넘들이나 중년의 아자씨를 유혹해 돈푼이나 뜯어먹는 나이트 죽순이들이나 고삐리 뇬들을 일컫는다고 하는군요.

그러나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되길, 브리짓 샤네시로 인해 팜므 파탈의 캐릭터가 완성은 되었지만 풍만한 가슴과 꿀꺽~…. 금발의 머리로 대표되는 강렬한 외모의 악녀들은 <말타의 매>가 등장한 이후 그러니까 194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임다.

1940년대 당시 헐리웃 여배우 발탁 지령은 무조건 빵빵한 가슴과 노랑머리였슴다. 그래서 마릴린 먼로나 브리짓 바르도는 이 점을 적극 활용 검은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큰 가슴을 마음껏 흔들어대 연기보다는 육체로 스타에 오른 경우임다. 영화 속에서 터질듯한 가슴은 하층계급과 동일시되었고 그런 가슴을 가진 뇬들은 천혜의 육체적 조건을 최대한 이용해 남성을 등에 업고 신분상승과 부를탐하는 이미지로 그려졌슴다.

이는 하드보일드의 본질과 들어맞는 것이였슴다. 여성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남성 팬을 다수 거느린 하드보일드가 이러한 호재를 놓칠 리가 없었슴다. <길다>의 리타 헤이워즈나 <푸쉬오버>의 킴 노박(히치콕의 <현기증>에서 가슴에 자신있던 그뇨는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은 이러한 시류 속에 스타가 된 소위 육체파들이었습니다.

그런 뇨배우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말타의 매>의 메리 에스터는 팜므 파탈 계보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육체가 돋보이는 배우는 아니었슴다. 그래서 극중 남자들에게는 매력을 발휘하지만 글쎄요, 관객에게는 그다지 큰 어필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는 험프리 보가트가 뿜어내는 남성적인 매력에 가린 탓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샤네시라는 역할이 사건의 열쇠가 되는 이야기적인 측면에서 더 활용이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말타의 매>가 쭉빵걸의 출연 없이 많은 남성관객들을 끌어안을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요? 이야기의 우수성을 잘 살린 감독의 연출력도 한 몫 했지만 무엇보다 샘 스페이드가 보여준 휘둘리지 않는 지좃있는 남성상 덕분이 아닐까 함다. 왜냐, 샘은 결코 샤네시의 속임수에 넘어가 그녀의 목적달성을 위한 희생양이 되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샘 스페이드는 역으로 그뇨을 이용해 재미도 좀 보고, 약도 올려서 범인도 잡고 낭중엔 그뇨마저 죄 값을 치르게 함다. 뇨자관객들 입장에서는 되려 샘 스페이드가 악녀 아니 악남으로 보이시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하드보일드는 남성전용장르인 셈입니다. 뇬들에게 크게 한 번 등쳐먹힌 넘들이라면 샘이 샤네트에게 단죄를 내리는 마지막 장면은 무척이나 통쾌했을 것임다. 저도 얼마전에 사랑인줄 알았다 쪼매 뜯겼더랬습니다. 은실이 너 다음에 나한테 걸리면 죽는다!

———–

다행스럽게도 <말타의 매>는 작년에 20세기 걸작 꼴렉션이라는 명찰표를 달고 국내에 처음으로 출시가 되었슴다. 그럼 <말타의 매> 즐람하시고 다음 시간에는수정주의 하드보일드(수정주의 느와르아님다)라고 명명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차이나타운>과 함께 여러분과의 두 번째 잠자리를 가져보도록 하겠슴다. 그럼 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