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여왕>(The Queen of Cr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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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가는 블록버스터 천지다. <부산행>이 천만 관객을 찍었고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와 <터널>이 순서를 바꿔가며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나눠갖고 있다. 성수기 시장이란 게 그렇다. 큰 영화 등쌀에 작은 영화가 기를 펴기 힘들다. 이런 작은 영화 보릿고개 시기에 겁 없이 개봉하는 작은 영화가 있다. 이요섭 감독의 <범죄의 여왕>이다.

누구의 엄마도 아닌 모두의 엄마

미경(박지영)은 시골에서 미용실을 운영한다. 아줌마들 머리를 볶아주는 와중에 ‘야매’ 성형시술도 병행한다. 서울 신림동에서 고시를 준비 중인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서다. 아들이 검사만 된다면야 못할 게 없는 한국의 엄마라지만, 들어주기 힘든 요구에 직면한다. “엄마 수도 요금 수납하게 120만원 보내줘”

12만원도 비싼데 120만원? 엄마 왈, “아들 이 문제는 내가 해결할게, 너는 며칠 남지 않은 사법고시 공부에만 집중해.” 그냥 돈이나 보내달라는 아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신림동 고시원으로 상경한 미경. 아들에게 오랜만에 밥 한 끼를 차려준 즉시 아들의 옆 방부터 시작해 고시원 구석구석을 들쑤시고 다닌다. 그리고 내린 결론, “범인은 이 안에 있어”

억울한 누명을 쓴 아들을 위해 엄마가 나서는 이야기는 봉준호 감독이 <마더>(2009)에서 선보인 바 있다. 익숙한 콘셉트임에도 <범죄의 여왕>이 새롭게 느껴지는 건 극 중 ‘마더’ 미경이 보여주는 모성애가 단순히 자기 자식을 향한 맹목적인 희생이 아닌 고시원 모두에게로 향하는 관심인 까닭이다.

사실 고시원은 지금의 청년 세대를 이야기할 때 외면해서 안 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누군가는 성공해야만 인간 취급을 받는 한국사회에서 고시 합격을 위해, 어떤 이는 최저 임금으로는 마땅히 살 집을 찾지 못해 최소한의 돈으로 지친 몸을 누이기 위해 2~3평 남짓한 박스 같은 공간에서 적게는 몇 달, 길게는 10년 넘게 청년 시절을 저당 잡히고 있다.

지금의 청춘이 처한 현실을 대변하는 중요한 공간임에도 메이저 영화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 이유는 공간 특성도 그렇거니와 그 안에 있는 이들의 사연이 어둡다는 편견 때문이다.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혹할 만한 배경과 캐릭터와 이야기가 선행해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제작사의 입장이다. 고시원과 같은 장소를 가지고서는 밝은 이야기를 뽑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 지금 한국영화계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청춘영화의 부재는 그와 같은 기성의 무관심이 작용한다.

<범죄의 여왕>이 고시원을 다루면서도 엄마 역할을 중요하게 다루는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미경은 엄마 중에서도 주변에 대한 관심, 그러니까 ‘오지랖’이 넓은 캐릭터다. 사법고시가 며칠 남지 않아 모두가 예민한 가운데서도 아들의 수도 요금 120만원의 실체를 밝히겠다며 엄마는 고시원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안녕하세요. 404호 엄마입니다. 다들 공부하느라 힘드시죠? 모두들 수도 요금을 어떻게 내시나요? 함께 모여 얘기합시다. 다들 제 자식 같아서 밥 한 끼 먹이고 싶네요.’ 이 글에서 방점은 ‘밥 한 끼 먹이고 싶네요’다. 우선은 자기 자식의 수도 요금을 해결하기 위해서이지만, 밥을 대접하겠다는 마음가짐은 아들 이외의 타인을 향한 또 다른 관심의 표명이다. 이들에게서 어떻게든 호감을 얻어 사건 해결의 단서를 얻겠다는 것. 이는 곧 고시원과 엄마와 같은 한국영화가 그동안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요소를 가지고 어떻게든 관객을 유혹하겠다는 이요섭 감독의 태도와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거죠

방에 콕콕 처박혀 나오지 않는 고시원 사람들을 삼겹살로 유혹하려는 미경처럼 이요섭 감독은 익숙하지 않은 캐릭터와 배경을 관객들이 혹할 만한 장르로 접근한다. 수도 요금 120만 원의 실체는 무엇인가, 를 마치 탐정으로 빙의한 듯 조사하는 미경의 행동은 추리물을 연상시킨다. 검사로, 판사로, 변호사로 성공하겠다는 의지는 강하지만, 몇 년 째 사법고시에 합격하지 못해 까맣게 타버린 마음을 어두컴컴한 고시원으로 형상화한 연출은 누아르를 닮았다. 그리고 ‘개’같이 ‘태’어났다고 개태(조복래)로 불리는 고시원 관리소 직원과 미경이 짝을 이뤄 사건을 해결하는 전개는 버디 무비의 변형처럼 느껴진다.

<범죄의 여왕>은 얼마 전 이 지면에서 소개한 적 있는 ‘광화문 시네마’(1392호 ‘이제 ‘광화문 시네마’를 기억해둘 때’)의 세 번째 영화다. <1999, 면회>(2013) <족구왕>(2014)을 제작한 광화문 시네마는 독립영화 집단이다. 이들은 특히 저예산의 한계를 기발한 아이디어와 코믹한 이야기로 돌파해 좋은 평가를 얻는 것으로 유명하다. <범죄의 여왕>은 순제작비가 4억 원(1천만원으로 만든 <1999, 면화>와 비교해 제작비가 무려(?) 40배가 늘었다!)에 불과하지만, 장르 친화적인 접근 탓에 저예산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완성도를 자랑한다.

이는 큰 영화만이 대중의 관심을 받고 박스오피스에서 흥행에 성공하는 한국영화계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다. 제작비가 1백 억원을 호가하는 블록버스터는 결코 실패해서는 안 되는 규모이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에 목매기보다는 기존에 성공한 요소를 따라 하려는 속성을 갖는다. 그래서는 발전이 없다. <범죄의 여왕>이 반가운 이유다. 다만 저예산의 독립영화는 블록버스터처럼 스크린 수를 많이 잡을 수 없으므로 관객의 적극적인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든 관계라는 것이 그와 같다. 관심이 없어서는 이 세상이 밝아지기 힘들다. 고시원 사람들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것 같아도 실은 이 사회가 이들을 한 데로 몰은 것과 다름없다. 성공이 아니면 관심도 두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고시를 준비하는 이들은 실패를 거듭할수록 관계 맺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이럴 때 필요한 게 관심이다. 처음엔 미경의 호의를 무시한 이들도 시간이 갈수록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미경의 활약에 수도요금 120만 원의 실체를 확인하지만, 이는 미경의 단독이 아닌 고시원 ‘식구’들이 모두 힘을 합해낸 결과다.

그처럼 영화 역시 블록버스터, 작은 영화, 청춘물 등 규모에 상관없이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멆티플렉스에서 서로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이 가장 이상적이다. 물론 <범죄의 여왕> 한 편을 가지고 블록버스터가 지배하는 작금의 영화 시장에 균형을 맞췄다고 과장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작은 영화에 대한 관객의 관심을 끌기에 이만한 작품도 드물다. 블록버스터가 제공하지 못하는 색다른 재미와 메시지와 무엇보다 개성이 <범죄의 여왕>에는 있다.

 

시사저널
(2016.8.20)

2 thoughts on “<범죄의 여왕>(The Queen of Crime)”

  1. 근래 본 한국영화 중에 가장 만족했던 영화입니다. 감독의 역량이 대단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배우들도 마찬가지였구요.

    1.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 예, 정말 독특한 영화였죠. 광화문 시네마의 다음 작품도, 이요섭 감독님의 차기작도 무엇이 될지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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