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킹>(The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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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차고 넘친다. <더 킹>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기 위해 영혼을 파는 이들을 다룬다. 이 세계는 정점에 오른 권력의 라인을 타려고 혈안이 된 이들의 욕망이 고도 비만인 상태다. 그래서 타이틀 롤에 오른 배우도 많고 상영시간도 길고 무엇보다 온갖 영화적 기교로 지방(?)이 잔뜩 껴있다.

양아치 고등학생에서 서울대 출신의 검사로 출세하는 태수(조인성)의 성공담이 빠르게 몽타주 컷으로 제시되고 태수가 검찰 실세 한강식(정우성)을 만나 미래가 급변하는 첫 만남에서의 카메라는 위아래로 360도 회전한다. 정의 대신 권력에 몸과 마음을 내주는 태수의 변절은 사생활이 복잡한 연예인과의 상상의 섹스로 의미가 부여된다. 이에 더해, 뉴스화면을 타고 인서트 컷 되는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격동적인 한국의 현대사와 리듬 타는 편집 속에 빠르게 지나가는 수십 벌의 슈트와 수백 곳의 제작 공간까지, 미처 소화되기도 전에 배를 불리듯 영화의 몸무게를 과도하게 찌워간다.

<더 킹>의 연출 ‘엔지니어링’에는 작동원리가 있다. 한강식의 눈 밖에 나 야인으로 전락한 태수가 이에 대한 복수로 정치 입문을 서두르자 이미지 컨설턴트는 충고를 건넨다. “정치는 이미지입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허상입니다.” 정치는 욕망의 숙주 노릇을 하는 권력의 토양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음성적인 권력은 떴다방 같아서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생겨나기를 반복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모든 걸 잃게 되는 것이 정치 엔지니어링이다. 관객이 인지하든 말든 상관 없다는 투로 폭주 하듯 달려가는 <더 킹>의 차고 넘치는 이미지는 감독이 노리는 바와 직결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재림 감독의 연출적 야심과 상업적 판단이 충돌한다. 불친절(?)한 연출로 권력의 속성을 표현한 <더 킹>의 이미지는 그걸 다 눈에 담지 않더라도 영화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자세한 설명이 없더라도 <더 킹>의 이야기를 따라잡는 데 큰 무리가 없다는 얘기다. 사실 이 영화가 폭로하는 권력의 추접스러운 민낯은 정치에 관심 없더라도 누구나 익히 알고 또 상상하는 바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형식으로 삼고 있는 극 중 태수의 내레이션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친절하게 구성되어 있다.

예컨대, 한강식을 향한 복수는 당연히 은밀하게 진행됨에도 ‘나의 정치 입문은 아주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사족을 달거나 살아있는 권력의 약점을 손에 쥐고 야당 쪽으로 넘어오자 좋아하는 주변 반응에 대해 “난 그들이 볼 때 꽤 좋은 조건을 갖고 있었다” 굳이 설명하는 내레이션에서 이미지를 부각한 이 영화를 관객이 어렵게 느끼지 않을까, 하는 흥행 강박감이 감지된다. 비만한 권력욕은 결코 남의 사정을 고려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태수의 내레이션이 <더 킹>의 연출에 어울리는 방식인지는 의문이다. <더 킹>은 너무 ‘친절한’ 야심작이 되었다.

 

매거진 M
(2017.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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