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기프트>(The Gift)

the gift

공포영화는 여름철에 봐야 제맛이라지만, 이 공식은 깨진 지 오래다. 공포영화는 사시사철을 가리지 않고 극장에서 개봉한다. 그만큼 이 사회에 공포가 만연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굳이 공포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는? 우리 내면에 검은 잉크처럼 퍼진 공포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해준다. 지금 소개할 <더 기프트>가 그렇다.

<더 기프트>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2014)에서 모세를 유배 보내고 이집트 왕국의 왕위에 오른 람세스를 연기했던 조엘 에저튼이 연출했다. 그에 더해 각본까지 직접 썼는데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다. 사이먼(제이슨 베이트먼)과 로빈(레베카 홀) 부부는 안정적인 삶을 위해 교외로 이사를 온다. 이들 부부는 새집에 들일 가구를 사러 나갔다가 우연히 사이먼의 고등학교 동창인 고든(조엘 에저튼이 직접 연기했다!)을 만난다.

분위기를 밝게 가져갈 법도 한데 영화는 어떠한 수식 없이 이들의 오랜만의 만남을 건조하고 차갑게 응시한다. 손을 갖다 대기라도 하면 깨질 것 같은 유리처럼 사이먼과 고든의 관계를 가져가는 것이다. 이 부분이 <더 기프트>의 공포를 자아내는 핵심이다. 만나서 반가웠다며 고든이 매일 같이 몰래 사이먼의 집에 선물을 가져다줄 때면 정체불명의 긴장감이 주위를 압도한다.

아름다운 포장지에 싸여 있지만, 그걸 푸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사이먼과 로빈 부부에게 고든의 선물은 무방비 상태에 노출된 것만 같은 불안감을 일으킨다. 그와 같은 부부의 심리 상태를 외형화한 것이 바로 사이먼과 로빈의 새집이다. 근사한 디자인이 우선 눈을 사로잡지만, 속이 훤히 비치는 유리로 사면이 둘러싸인 집은 금방이라도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그런 의도다. 사이먼과 로빈에게는 어느 것 하나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인다. 사이먼은 곧 승진을 앞두고 있고 로빈은 정경이 확 트인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며 여유로운 생활을 즐긴다. 누구나 꿈꾸는 중산층의 삶을 이룬 것처럼 보여도 어딘가 금이 가 물이 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미국 중산층이 가진 몰락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해가 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미국이 금융위기를 통해 국가적 위기를 겪은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미국의 금융위기를 자초한 건 결정적으로 도덕적 해이 때문이었다. 그 일로 인해 직격탄을 입은 건 미국 금융업계 종사자들이 아니라 대출로 집을 사고 대학 등록금을 마련했던 중산층이었다. 영화가 이를 명시하는 건 아니지만, 사이먼과 로빈 부부가 현재 살만한 데도 좀 더 노력을 기울이는 건 다 그와 같은 몰락의 기억과 경험이 마음속 공포로 자리 잡았기 때문일 터다.

조엘 에저튼은 <더 기프트>의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과거를 공유한 두 사람이 현재에서 충돌해, 둘 다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얻는 이야기다. 영화는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고든은 사이먼과 로빈 부부를 압박해 비밀이라는 ‘선물상자’를 강제로 풀게 하는 가위 역할을 했지만, 그가 이들 커플을 괴롭히는 이유가 있다.

(스포일러 주의!) 고든은 사이먼과 로빈을 괴롭히는 가해자이면서 과거 사이먼에게 고통을 당한 피해자의 정체성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렇게 과거의 기억과 경험은 현재를 괴롭히는 방아쇠로 작동한다. 이를 극복할 때 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인데 공포영화는 바로 그 점에서 내가 처한 불안의 좌표를 파악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공포영화를 그저 여름철에 땀이나 식혀주는 작품으로 무시했다가는 큰코다치는 수가 있다.

 

시사저널
(2015.11.1)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