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좌우(左右)를 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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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0월 과천의 국립과천과학관에서 ‘2010 국제SF영화제’(이하 ‘SF영화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수석프로그래머 겸 집행위원장 내정자인 박상준을 만나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어떤 영화제로 만들 계획인지, 어떤 영화를 상영할 예정인지, SF영화제 전반에 대해 물으러 간 자리였지만 결과적으로 ‘SF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얻고 온 시간이기도 했다.

사실 국내에서 SF만큼 장르에 대한 개념이 극단적으로 왜곡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대해 박상준은 사람들이 SF에 대해서 갖고 있는 부정적인 선입관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 번째가 아이들이나 보는 유치한 것, 두 번째는 과학기술을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어려운 장르, 세 번째는 SF팬들 사이에서도 아직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건데, 과학적인 묘사라든가, 그런 쪽의 아이디어가 뛰어나면 다른 부분은 떨어져도 용서가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

이는 수용하는 측의 입장에서 오로지 두드러진 몇 개의 특징만 가지고 SF를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로봇이나 우주선이 등장하는 까닭에 유아적인 장르로 치부한다든가, Science-Fiction, 즉 과학을 기반으로 한 소설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든 장르로 미리부터 손사래를 치는 것이 바로 그런 예라 할만하다. 거꾸로 보자면, SF에 대한 스펙트럼이 유아적 상상력부터 첨단의 과학기술에 이르기까지 그만큼 다양하고 넓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았던 테드 창(<당신 인생의 이야기>)은 “SF는 반드시 변화하는 것을 다뤄야한다.”고 말했다. 아, 물론 변화가 진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테드 창이 말한 변화의 주체는 인간과 인간이 속한 사회이고 그렇기 때문에 SF는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안 그래도 미국이 국제적으로 점하는 독점적 지위가 각종 전쟁으로 흔들리고 있는 요 근래 우리가 스크린에서, 책에서 만났던 대표적인 SF 작품들은 주요하게 미국의 팽창주의를 배경 삼은 경향이 두드러졌다. 영화에서는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과 <스타트렉: 더 비기닝>이 남자들의 유년시절 판타지를 현실로 끌어내 전쟁을 미화했다. 또한 지난 한해 ‘웃기는 SF소설’로 화제를 모았던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은 주인공 노인이 젊은 육체를 받는 조건으로 군 입대 후 외계생물과의 전쟁을 통해 전쟁을 혐오하게 되고 인간의 가치를 더욱 그리워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렇듯 SF가 다루는 스펙트럼은 좌(左)에서부터 우(右)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실제로 베트남전 당시만 해도 아이작 아시모프(<아이, 로봇><파운데이션>)를 비롯한 일군의 작가들이 월남전 참전 반대 광고를 실으면 그 반대편에서 대표적인 우익 리버럴리스트인 로버트 하인라인(<스타쉽 트루퍼스:우주의 전사><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을 포함한 몇몇 작가들이 찬성 광고를 싣기도 했을 정도다. 모든 장르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SF는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고 이에 반응하는 의견 역시 좌우를 가리지 않는 만큼 그 개념에 대해서는 가변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하겠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 역시 SF팬덤에서 오랫동안 논쟁을 거듭하고 있는 사안인데) SF와 판타지의 비교 역시 무 자르듯 구별하는 것이 그리 옳지만은 않아 보인다. 테드 창의 표현을 빌리자면, “판타지는 모든 이야기에 적합한 장르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바통을 이어받아 박상준의 표현을 이어보자면, 그렇기 때문에 “상상문학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SF와 판타지의 경계는 사실 굉장히 모호한 편이다.” 오히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SF와 판타지가 결합한 하이브리드 작품이 트렌드처럼 두드러진 움직임을 보이는 까닭에 (영화로 치면 <이터널 선샤인>이나 <스트레인저 댄 픽션> 같은 작품이, 소설로 치면 배명훈의 <타워> 같은 작품이 이에 속한다.) 더욱더 장르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고수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박상준은 말한다.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 SF가 또 한쪽 끝에 판타지가 있는 것 같다. 나머지 모든 작품들은 그 선상 어딘가에 위치하는 거지. 모든 세상일들이 그렇듯이. (웃음) SF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갖게 해준다. 나무를 논할 때 논하더라도 큰 숲을 보는 시야를 갖는 게 궁극적으로 우리들의 미래에 더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21세기로 들어오면서 과학 기술의 발달 속도는 인간의 생물학적인 세대교체 속도를 앞질러 버렸다. 이제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숲을 보는 시야를 가져야‘만’ 한다. SF쪽에서는 이런 담론들을 굉장히 구체적이면서 진지하게, 깊이 있게 계속해서 탐구하고 있다. 내가 SF분야에서 일한 지 20년이 다 되가는데 초창기에는 나 역시도 작품 하나를 두고 SF냐, 아니냐를 따지는데 민감하기도 했고 집착도 했고 고집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것 자체는 비본질적인 문제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렇게 연연하지 않았다.”

그래서 박상준이 생각하는 올해의 SF영화제는 SF안에서도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엇보다 한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다소 중립적인 행사로 기획될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SF문화는 마니아적인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영화제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SF를 알리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보다 중립으로 가는 것이 취지에 맞는다고 보는 것이다. 영화제의 이름을 내걸고 진행하는 행사이지만 영화뿐 아니라 소설과 만화, 전시 등을 아우르고 정통 SF뿐만 아니라 판타지 요소가 다분한 영화도 상영할 예정이며 시대의 변화를 담고 있는 이야기라면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개의치 않겠다는 것이 박상준이 이번 SF영화제를 통해 드러내고 싶은 주제다.

한마디로 ‘SF에 대한 모든 것’이 될 이번 SF영화제는 SF와 관련한 모든 콘텐츠, 모든 사람들, 모든 경험들을 맛볼 수 있는 자리다. 결국 SF를 좋아하거나 과학 문화에 관심 있는 이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SF문화를 다양하게 누리게 함으로써 탈골된 SF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좋을 기회가 될 전망이다. “그냥 SF를 즐기자, 작품을 즐기자. SF에 대한 개념은 필요할 때 고민하고 그저 재밌게 영화제를, 행사를 즐겼으면 좋겠다.” 박상준이 올해 SF영화제를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하려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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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10.3.17)

‘2010 국제SF영화제’ 박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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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독특한 영화제가 생겼다. 올해 10월 말부터 10일 동안 열릴 예정인 ‘2010 국제SF영화제'(‘SF영화제’)는 말 그대로 SF를 특화한 영화제다. 영화제의 나라 한국에서도 SF영화제는 가장 색깔이 분명한 행사다. 바로 그 때문에 SF영화제에 갖는 선입관은 다른 영화제에 비해 클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는 SF하면 떠오르는 것, 즉 애들이나 보는 것,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든 것이라는 부정적인 인식과 궤를 함께 하는데 SF영화제는 그런 선입관을 깨기 위한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SF영화제의 수석 프로그래머 겸 집행위원장 (내정자)인 박상준은 국내 SF 문화를 말할 때 가장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인물이다. 그는 SF영화제를 영화뿐만 아니라 소설, 만화 등등 ‘SF의 모든 것’으로 꾸밀 생각이다. 그래서 SF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든,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든 남녀노소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행사가 될 것이라고 박상준은 말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SF를 단순히 유치하고 혹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SF영화제가 왜 필요한지 알리는 것은 중요하다. 이야말로 SF영화제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제를 통해 스스로 존재 이유를 증명할 테지만 신생영화제이니 만큼 먼저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인터뷰는 3월 5일 SF영화제의 메인 상영관 역할을 할 과천의 국립 과천 과학관에서 이뤄졌다. 박상준과 함께 김노경 사무국장이 동석한 가운데 진행된 1시간여의 인터뷰는 한편으론 ‘SF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허남웅 기자(이하 ‘허’) SF영화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웃음)
박상준(이하 ‘박’) 이 바닥에 사람이 없다는 얘기지. (웃음)

저변이 협소한 국내 SF 시장에서 매번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장르문학 월간지 ‘판타스틱’에 있을 당시에는 잡지가 만들어지고 스스로 가는 탄력이 생겨서 풀타임으로 안 붙어있어도 되겠다는 생각에 SF만 전문으로 다루는 출판사를 만들면 어떨까 했다. 다행히 웅진에서 받아줘 ‘오멜라스’를 운영했던 건데 2년 있다 보니 책을 낸다는 게 창의적인 작업이 아니라 지루하고 단순하더라. 책 계약에서부터 번역, 편집, 출간의 과정이 사실은 단순 반복 작업이다. 마침 웅진에서도 SF가 생각보다 돈은 안 되는구나 하던 차에 타이밍이 잘 맞았다. (웃음) 작년 말에 웅진의 정규직에서 퇴사를 했고, 퇴사 한두 달 전에 과천 과학관과 영화제를 하기로 얘기를 나눴다. 현재 오멜라스에는 기획위원 정도의 지위를 가지고 기획과 전반적인 디렉팅에 관여하고 있고 SF영화제를 위해 과학관에 풀타임으로 나오고 있다.


2010 국제SF영화제란?

SF영화제는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작년에 과천 과학관에서 3일간 소규모로 ‘2009 SF과학영화제’를 했었다. 당시 막 부임하신 현 이상희 관장님이 이 행사 괜찮다, 내년에 본격적으로 제대로 한 번 해보자 해서 따로 예산도 배정했다.

어느 정도의 성과가 있었기에 올해 이렇게 국제 규모로 SF영화제를 키울 수 있었나?
작년에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3일간 했었다. 당시는 신종플루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거나 학생을 동원할 수 있는 행사가 전면 금지됐던 시기였다. 게다가 중간에 비도 오고 날씨가 안 좋았다. 그런 불리한 조건 속에 여섯 작품을 총 8번 상영했는데 1000명 정도가 왔다. 조그맣게나마 부대행사도 함께 진행했다. 정재승 박사 특강, SF피규어 전시회 등을 했는데 좁은 로비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는 모습이 보였다. 과학관에서 보시기에 썩 나쁘지 않았다, 올해는 좀 더 확장을 해보자 했던 거다.   

그래서 올해 역시 영화제 기간을 10월로 잡았나?
원래는 9월 초에 하려고 했다. 9월 초만 해도 날씨가 따뜻해서 과학관 앞의 넓은 마당을 활용할 수가 있다. 근데 과학관에서 SF영화제와 별도로 자체 기획하는 전시회가 있을 예정이다. ‘UFO와 외계 생명체’라는 테마의 전시회인데 10월말부터 행사가 진행된다. 이왕이면 영화제와 맞추는 게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을까 하는 판단에 SF영화제도 그 시기에 잡았다. SF영화제 기간은 10월 28일부터 11월 7일까지 열흘간을 생각하고 있다.

지금 어느 정도까지 준비 단계인가?
지난해 SF과학영화제는 나와 고려대 대학원의 과학기술학협동과정의 김동관 교수님, 그리고 석박사 대학원생들이 진행했었다. 올해는 그분들이 풀타임으로 참여는 안 하시지만 부대행사나 학술 관련해 도움을 주실 거다. 내가 전반적인 부분들을 하는 걸로 얘기가 돼서 작년 11월부터 준비를 했다. 1월부터 구체적인 기획과 일정 등을 짜고 있는데 세부 프로그램은 어느 정도 디테일한 윤곽이 1차로 잡힌 상태다.

그럼 정확한 직책은 어떻게 되는 건가?
수석프로그래머 겸 집행위원장 내정자다.

아무래도 국제영화제라고 하면 부산이나 부천, 전주 등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텐데 SF영화제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SF영화제 예산은 두 자리 수까지는 안 간다. (웃음) 극장도 일단은 과학관에 있는 600석 규모의 영화전용관 하나와, 아무래도 영화제인데 인근의 한두 군데를 더 섭외해볼 생각이다.

상영작 프로그램의 규모는 어떤가?
상영작 규모는 장편과 단편 모두 합해서 50편정도. 그 대신 부대행사를 다채롭게 꾸미려고 한다. 

프로그램의 테마는 어떻게 정했나?
2010년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생물 다양성의 해’다. 이를 고려해 올해 영화제 테마는 우주와 생명으로 잡았다. 담론적인 가치를 바로 반영하기에 적당한 테마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미래 사회의 전망 이러면 할 게 많은데 올해는 중립적인 행사로 갈 생각이고 내년에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테마를 잡으려고 한다.

한국에서 SF문화는 마니아적인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보다 중립으로 가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그렇다. 일단은 한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영화제가 되고 싶다. 사실 SF는 그 스펙트럼이 좌에서부터 우까지 다양하다. 미국의 경우, 아이작 아시모프(<아이, 로봇><파운데이션>)를 비롯한 일군의 작가들이 월남전 참전 반대 광고를 실으면 그 반대편에서 로버트 하인라인(<스타쉽 트루퍼스:우주의 전사><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을 포함한 몇몇 작가들이 찬성 광고를 싣기도 했다.

현재 한국 사회가 처한 좌와 우의 이념 혼돈 속에서 흥미로운 주제가 될 법도 하다. (웃음)
SF영화제가 SF안에도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우주와 생명이라는 큰 테마로 가기 때문에 다소 희석되지 않겠나. 다만 단편은 상대적으로 상업 장편영화에 비해 제약이 덜하기 때문에 뚜렷한 색깔을 가진 다양한 시각의 작품을 많이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오히려 한국에서 만든 SF영화를 찾는 것이 더 힘들 것 같다.
‘한국 SF영화 50년 회고’라는 주제로 섹션을 준비하고 있다. 왜 50년으로 잡았냐 하면, 한국 최초의 SF영화가 뭘까 라는 의문에서 한국영상자료원 DB를 검색해보니 1960년에 만들어진 <투명인의 최후>라는 작품이 나오더라. 근데 이 영화는 필름도 없고, 시나리오도 없고, 포스터 한 장만 달랑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투명인의 최후>를 최초라고 간주한다면 올해가 50년으로 딱 떨어지더라. 그렇더라도 한국 SF영화는 만화를 빼면 별로 없다. 그나마도 2000년대 이후 발표된 <지구를 지켜라>(2003) <괴물>(2006) <디 워>(2007) 등과 같은 작품이다.

SF영화제가 과학관이니만큼 기술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구성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곳에 ‘플라네타리움’(planetarium)이라고 천체투영관이 있다. 둥근 원형 돔 위에 별자리를 그대로 투영한 광경을 누워서 볼 수 있는 상영관이다. 요즘은 별자리만 투영하는 게 아니라 돔을 스크린 삼아서 극영화를 상영하기도 한다. 과천 과학관에 있는 플라네타리움은 전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최대 규모의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다. 플라네타리움에서 상영하는 영화 프로그램 한 섹션이 전용으로 들어간다. 국내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플라네타리움용 영화를 많이 상영할 거다. 이를 위해 해외에서 열리는 플라네타리움 영화제도 갔다 올 예정이다.

기존의 극장 시설과 상영 방식이 다른가?
옛날에는 필름으로 상영했는데 요즘은 대부분 디지털로 상영한다. 원형 돔 안에 프로젝터가 여러 개가 있다. 플라네타리움 섹션은 다른 영화제와 확실히 차별되는 프로그램이 될 거다.

3D가 최근 영화계의 화두인 것처럼 SF영화제는 플라네타리움을 전면에 내세워도 괜찮겠다.
플라네타리움에서 상영할 수 있는 3D영화가 있나 찾아봐야겠는데. 그런 게 있으면 뉴스 되겠다. (웃음)


SF(영화제)를 즐기는 좋은 방법이란?

국제영화제가 열릴 정도면 해당 장르에 대한 기반이 탄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인데 한국의 SF영화제는 SF문화를 알리는 일종의 첨병 역할을 하는 인상이 짙다.
SF장르로만 한정지은 영화제는 외국에서도 큰 건 없다. 오히려 SF만 다루는 제일 큰 행사라면 SF 컨벤션(convention)이 있다. 그중에서 월드컨벤션은 1년 한 번씩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열리는 행사다. 주로 미국에서 열리고 재작년에는 일본, 그리고 작년에는 캐나다에서 열렸다.  

한국의 부천이나 스페인의 시체스, 포르투갈의 판타스포르토 같은 판타스틱 영화제는 알고 있지만 SF만 특화한 영화제는 접한 적이 없다.
SF만 개별화한 큰 규모의 영화제는 없다. 다만 ‘사이파이 런던’(Sci-Fi London http://www.sci-fi-london.com/)이라는 SF영화제가 있다.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는데 매년 거듭하다보니까 규모가 꽤 커졌다. 매년 봄에 열리는데 2008년부터는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라고 가을에 짧게 또 하더라. 미국의 시애틀에도 SF단편영화제가 있다.

한국의 SF영화제가 모델로 삼는 영화제가 있나?
지금으로써는 없다고 본다. 사이파이 런던은 얘기만 듣고 아직 못 가봤는데 4월 말에 열린다. 올해는 가볼 생각이다. 프로그램도 프로그램이지만 전반적인 행사의 성격이나 운영 같은 것을 모니터 해보려고 한다.

아무래도 SF영화제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니 만큼 지속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겠다.
맞다. 올 한 해만 하고 말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SF영화제를 통해 한국 내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싶은 게 있다. 좁게는 SF영화, 넓게는 SF와 관련한 모든 분야의 한국적인 창작 역량을 강화하고 지원하는 플랫폼을 마련하고 싶은 바람이다. 만화든, 소설이든, 영화든, 그림이든 간에 한국에서 SF로 창작을 꿈꾸는 분들에게 외국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보여주고, 외국에서 작업하는 분들을 초청해 같이 워크숍도 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SF를 좋아하거나 과학 문화에 관심 있는 분들, 그리고 일반인들에게 영화제가 아니면 접하기 힘들었을 SF문화를 이 기회에 다양하게 펼쳐서 누리게 하고 싶다.

영화제 준비 및 SF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기 위한 사전 행사의 일환으로 SF영화 동호회 ‘사이네마토리움’을 만들고 오늘 그 첫 번째 행사로 신태라 감독(<7급 공무원>)의 <브레인웨이브>를 상영한다.
한 달에 두 번, 첫째 주, 셋째 주 금요일 저녁에 상영회를 진행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을 잡았다. SF영화제가 정해진 기간에만 압축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1년 내내 상시적으로 가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서 그 일환으로 가장 먼저 생긴 거다. 한 달에 두 번 상영 중 한 편은 한국영화로 상영하고 가능하면 감독님을 초빙해서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난 사실 이번 영화제와 상관없이 작년부터 한국에서 SF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영화인들, 주로 단편영화 감독이나 작가들과 함께 SF영화를 제대로, 잘 만들기 위한 일종의 네트워크나 워크숍을 해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두어 번 정도 했지만 지속은 안 됐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 다시 본격적으로 준비할 계획이고 이와 연계시킬 목적으로 정기상영회도 마련했다.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국내 SF문화 특성상 질문의 대부분이 SF가 무엇이고, 일반인들에게 더 많이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와 같은 기본적인 사안에만 머물 수밖에 없어 아쉽더라.
김노경 사무국장 이번 영화제의 타깃 층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의 문제인 것 같다. SF영화제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니라 교육과학기술부 소속의 행사라 학생과 아이들을 주 타깃으로 잡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더불어서 일반인들에게는 어떻게 SF가 편안하게 다가갈 것인지 고민도 해야 한다.

왜 사람들은 SF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한국만의 현상인가?
외국도 그렇다. 내 생각에 SF는 태생적으로 마이너리티일 수밖에 없는 문화다. 나는 늘 사람들이 SF에 대해서 갖고 있는 부정적인 선입관에 대해 세 가지를 얘기하는데 첫 번째가 아이들이나 보는 유치한 것, 두 번째는 과학기술을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어려운 장르, 세 번째는 SF팬들 사이에서도 아직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건데, 과학적인 묘사라든가, 그런 쪽의 아이디어가 뛰어나면 다른 부분은 떨어져도 용서가 된다는 것. 심형래의 <디 워> 때문에 세 번째 선입관이 더 심화가 된 것 같은데 SF에서 과학만 강조되면 그건 SF가 아니라 사이언스인 거다. 특수효과 장면이 좋다, 그럼 스토리가 담긴 극영화가 아니라 특수효과 대모 필름인 거지. 그래서 이 세 가지 선입관을 가능하면 불식시킬 수 있는 감상꺼리를 일반 대중들에게 제공해주고 싶은 거다. 결코 아이들만 보는 장르가 아니라 진지한 거고, 과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고, 과학적인 사실과 좀 틀려도 중요한 건 예술 창작 장르이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얼마나 정확도가 높은가는 둘째 문제고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는 거다.

이를 위해서라도 이번 SF영화제에는 한국의 모든 SF 관련자들이 참가해 SF에 대한 선입관을 희석시켜주면 좋겠다.
당연히 국내에 계신 SF 유력 인사들이 와야지. SF영화제 명칭이 필름페스티벌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필름을 포함한 종합 페스티벌, 그냥 SF페스티벌인 거다. 나는 영화제의 실질적인 성격을 이걸로 본다. 영화제가 메인이되 사이드 디시들도 메인 못지않게 나름의 무게를 잡고 있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영화제 기간 동안 과천의 과학관에 오시면 SF와 관련한 모든 콘텐츠, 모든 사람들, 모든 경험들을 맛볼 수 있도록 구상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SF=박상준’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게 깨져야 한다고 본다. SF에도 새로운 인물이 계속해서 생겨나야 지금보다 저변도 넓어지고 문화적 깊이도 더 생겨날 수 있다.
맞다, 정말 그렇다. 내 입으로 말해서 그렇지만 SF쪽에서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많이 아는 것도 아니다. 워낙 이쪽에 사람이 없다보니까 그런 거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뭘 하자고 제안이 들어오면 웬만해선 거절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내세우는 논리는 여기 또 박상준 들어가면 욕먹는다, 대신 다른 사람을 추천하는데 나름 풀(pool)이 적다. 예전에는 내가 등 떠밀려서 일을 했는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사람이 없다보니까 나 말고도 등 떠밀려서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결국 SF시장 규모가 작다보니까 그만큼 이걸로 생활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되는 거다.   

언제쯤이면 SF로 생활이 가능해지는 시절이 올까? (웃음)
다른 시각에서 이 문제를 얘기하자면, 왜 우리나라에서 SF는 시장도 작고 저변도 얇고 대중화가 안 될까. 내가 볼 때는 무엇 하나 대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안 나와서 그렇다. 1990년대 초반 SF동호회 활동을 할 때만 해도 판타지 장르는 오히려 SF보다 훨씬 더 존재감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해리 포터> 나오고 <반지의 제왕> 영화 나오고, 그에 앞서 국내에서는 이우혁의 <퇴마록>, 그 다음에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 같이 국산 창작 판타지들이 많이 출간되고 갑자기 국내외 조건이 맞아 떨어지면서 확 커진 거다. 추리소설이야 이미 몇 십 년 전부터 그런 조건이 형성돼있었고. 근데 유독 SF만 스타작가가 안 나왔다. 그렇다고 스타작가가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신><개미>)도 있고 마이크 크라이튼(<잃어버린 세계><넥스트>)도 있다. 얄궂은 게 베르베르나 크라이튼 독자들은 책을 읽고 나면 ‘재밌네, 다른 SF도 봐야지’가 아니라 ‘베르베르랑 크라이튼의 다른 작품도 봐야지’가 된다. 그리고 이건 조금 미묘한 문제지만 한국에서도 골수 SF팬임을 자임하는 사람들은 베르베르나 크라이튼은 오소독스한 SF로 안 본다.

SF에 대한 개념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 아닌가?
SF에 대한 개념은 그게 참, 세월이 갈수록 어려운 이야기다. 잘 모르는 사람들처럼 우주선 나오고 외계인 등장하는 작품이 SF라고 하면 틀리지 않은데 서양 사람들의 문학평론적인 말을 빌리자면, 상상문학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SF도 있고 판타지도 있다. SF와 판타지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과학적 논리성의 적용을 받느냐, 안 받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사실 SF와 판타지의 경계는 되게 모호하다. 아서 C.클라크(<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마와의 랑데부>) 같은 사람은 <스타워즈>를 두고 SF가 아니라고 한다. 빛의 속도로 가도 몇 백 년, 몇 천 년 걸리는 우주여행을 무슨 항공기 타고 왔다 갔다 하는 건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다.    

사실 그렇게 따지면 조건을 충족할만한 SF는 몇 편 없게 될 텐데.
그렇다, SF는 그런 식으로 적용을 할 수는 없다는 거다. 더군다나 더 헛갈리게 하는 것은 20세기 말부터 SF와 판타지와 주류의 순수문학의 하이브리드들이 나오는 거다. 모던 판타지라고 해야 할까. 영화중에서도 <존 말코비치 되기>(1999)라든가 <스트레인저 댄 픽션>(2006) 같은 작품은 SF는 아니고 판타지다. 그렇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 하이 판타지처럼 검 나오고 마법 나오는 판타지도 아니다. 이런 이상한 모던 판타지들. 굳이 따지면 SF는 아니지만 내가 볼 때 그런 영화 중 어떤 작품은 SF영화제에서 상영해도 괜찮을 것 같다. 

SF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는 가변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 SF가 또 한쪽 끝에 판타지가 있는 것 같다. 나머지 모든 작품들은 그 선상 어딘가에 위치하는 거지. 모든 세상일들이 그렇듯이. (웃음) 내가 주장하고 싶은 건 SF는 어쨌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갖게 해준다. 나무를 논할 때 논하더라도 큰 숲을 보는 시야를 갖는 게 궁극적으로 우리들의 미래에 더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만큼 문제를 잘 포착할 테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도 더 넓은 시야로 볼 수 있을 거고. 그리고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21세기로 들어오면서 과학 기술의 발달 속도는 인간의 생물학적인 세대교체 속도를 앞질러 버렸다. 이제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이런 시야를 가져야‘만’ 하는 것 같다. 과학기술은 이렇게 앞서가고 있는데 여전히 과거의 좁은 시야에 머물러 있으면 데드 엔드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에 대한 역할 모델로 삼을 수 있는 지구상의 공동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는 게 미국의 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舊)소련이 쓰러지고 나서 미국은 정치적으로든, 문화, 경제적으로든 독점적인 헤게모니를 거머쥐지 않았나. 내가 갖는 고민은 저대로 가도 될까 하는 의문인 거다. 굉장히 교묘하지 않나. 자유가 다 보장되는 건 맞지만 계급을 컨트롤하면서 거대한 우민화로 가는 시나리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SF쪽에서는 이런 담론들을 굉장히 구체적이면서 진지하게, 깊이 있게 계속해서 탐구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든다면?
과학 기술의 발달이라는 변수가 마르크스나 레닌이 있을 당시만 해도, 산업혁명이 생산적인 발전에 쓰일 때 어떤 세상이 초래될 것인지에 대한 근시안적인 시점으로써 미래상을 그렸다면 지금은 생산력 발전으로 인한 사회의 변화를 넘어선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20세기적 담론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SF작가들은 미리 포착을 하고 있다. 그런 점을 감안했을 때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SF에 대해 인식을 하고 SF에서 어떤 얘기들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지, 이를 통해 어떤 시야를 가질 수 있는지, 접했으면 하는 게 내가 원하는 바다.

SF영화제가 왜 필요한지를 구구절절이 설명해주셨다. (웃음)
내가 어쩌다보니까 SF분야에서 일한 지 20년이 다 되가는데 초창기에는 나 역시도 작품 하나를 두고 SF냐, 아니냐를 따지는데 민감하기도 했고 집착도 했고 고집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것 자체는 비본질적인 문제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렇게 연연하지 않았다. 그냥 이야기를 즐기자, 작품을 즐기자. 이게 SF인지, 판타지인지는 필요하면 그때 가서 고민하고. (웃음) 그래서 영화제 오시는 분들도 재밌게 영화를 보고 행사를 즐겼으면 좋겠다.   사진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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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10.3.10)

<더 문>과 <디스트릭트9> 영화광 세대의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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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영화 감상에 방해가 될 만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신예 던컨 존스 감독의 <더 문 Moon>은 올해 나온 SF영화 중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을만하다. 제작비 500만 달러에 불과한 <더 문>은 첨단의 기술력과 그에 비례하는 고비용의 장르로 인식된 SF에 대한 편견을 순전히 아이디어 하나로 극복한다.


저예산이라 놀리지 말아요

영화는 가까운 미래 지구에 불어 닥친 에너지난을 달에 매장된 헬륨3로 해소한다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달기지 ‘사랑’에서 홀로 작업 중인 한 남자를 비춘다. 그는 다국적 기업 루나 인더스트리에 근무하는 샘 벨(샘 록웰)이다. 샘은 인공지능 컴퓨터 로봇 거티(케빈 스페이시 목소리 출연)의 도움을 받아 달 표면의 헬륨3을 채취해 지구로 보내는 것이 임무다. 3년 계약을 맺어 이제 2주 후면 사랑하는 부인과 갓 태어난 딸이 있는 지구로 귀환할 예정이지만 아뿔싸!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만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몸을 추스른 샘 앞에 자신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샘이 나타나니, 어찌된 일일까.

<더 문>은 배우 샘 록웰의 열렬한 팬인 던컨 존스 감독이 그를 위해 만든 영화다. 극중 샘 벨을 빼면 변변한 캐릭터가 없는 이 영화에서 샘 록웰은 원맨쇼에 가까운 활약을 펼친다. 한편으로 샘 록웰의 1인 3역을 비롯해 달기지 사랑을 벗어나지 않는 배경, 7,80년대 SF영화에서나 볼법한 아날로그적인 기지 내부 모습 등 <더 문>은 곳곳에서 저예산의 전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의미와 메시지마저 저예산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명의 샘이 등장하는 작품인 만큼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달에 홀로 남아 외로움과 사투를 벌이는 한 남자의 심리드라마이기도 하며 돈에 눈먼 대기업과 하청을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관계를 은유한 사회비판물로도 기능한다. (혹자는 다국적 기업이 한국과 미국의 합작회사라는 점을 들어 한국의 비인간적 노사관계의 메타포로 읽어내기도 한다.) 하여 드라마틱한 감정의 블록버스터를 선사하는 <더 문>은 작은 규모와 달리 다층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 작품인 것이다.

SF영화를 즐겨보는 관객들에게 <더 문>이 전하는 복합적인 메시지는 익숙한 구석이 많다. 사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그리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문>은 SF영화 자체에 대한 오마주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익숙한 설정과 요소가 수시로 눈에 밟힌다. 던컨 존스 감독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더 문>의 아이디어는 “블루컬러 노동자들이 주인공을 맡았던 7,80년대 SF영화에서 얻었”고 샘 록웰의 1인 다역은 “제레미 아이언스가 쌍둥이를 연기한 <데드 링거>(1988)를 참고했”으며 거티의 존재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와 <사일런트 러닝>(1972)에 대한 인용”이라고 한다.

감독의 언급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더 문>이 직간접적으로 영향 받은 SF영화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철학적 질문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1972)를 연상시키고 기지내부를 벗어나지 않는 구성은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1979)이 선배 격이며 1회용으로 소모되는 샘의 운명은 또한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와 조지 루카스의 <THX-1138>(1970)에서 먼저 시도됐던 것이다.


영화에서 원천을 얻다

나는 여기서 현대 SF영화의 중요한 변화를 감지한다. 요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SF영화가 삼는 원전은 소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도 아니면 <우주전쟁> <지구가 멈추는 날>과 같은 리메이크 작품이 차지했다. 하지만 원작영화 역시도 대부분 소설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우리가 SF영화에서 걸작이라 부르는 작품의 상당수는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더 문>에서 인용된 작품을 예로 들자면, <데드 링거>는 바리 우드의 <트윈스>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솔라리스>는 각각 아서 클라크와 스타니스와프 렘의 동명의 작품을, <블레이드 러너>는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가 원작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약관화하다. 이제 신예 SF연출자들은 소설보다 영화에서 더 많은 영감의 원천을 얻는다. <더 문> 이전에 SF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몰고 왔던 닐 블롬캠프의 장편 데뷔작 <디스트릭트9> 역시도 외계인 영화에 대한 공식을 뒤바꾼 그 기저에 제작자로 참여한 피터 잭슨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공교롭게도 <디스트릭트9>은 던컨 존스가 그랬던 것처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그것에 채 10분의 1도 되지 않는 3,000만 달러(그에 비하면 <더 문>의 제작비 500만 달러는 껌 값에 불과하다.)에 불과한 제작비의 한계를 발상의 전환으로 극복했다. 과연! 인간이 외계인을 슬럼가에 격리시켜 착취한다는 설정이 무릎을 치게 만드는 것이다.

원래 피터 잭슨은 닐 블롬캠프와 함께 게임원작 영화 <헤일로>를 준비하던 중 여의치 않자 <디스트릭트9>의 아이디어를 듣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제작을 결정했다. 여기에는 장르의 묵은 공식을 참신한 아이디어로 돌파하려는 젊은 감독의 패기가 영화 제작의 1순위로 작용했지만 피터 잭슨의 사심이 상당 부분 개입한 것 역시 주지의 사실이다. 제작자로 참여한 피터 잭슨의 초창기 작품을 기억하는 팬이라면 그가 <디스트릭트9>을 통해 초짜 감독 시절 꿈꿨던 영화적 야망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실제로 <디스트릭트9>에는 <고무인간의 최후>(1987)와 <포가튼 실버>(1996)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있다. <디스트릭트9>의 외계인이 생체실험에 차출되고 기업에게 기술력을 착취당하는 등 인간에게 유린당하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고무인간의 최후>를 닮았고 인터뷰와 뉴스릴 화면을 적극 이용해 대체역사물처럼 구성한 방식은 <포가튼 실버>에서 이미 피터 잭슨이 선보인 바다. 전설적인 B급영화로 회자되는 <고무인간의 최후>(1987)를 통해 잔인무도하게 외계인을 살상하는 인간을 다뤘고, ‘페이크 다큐멘터리‘ <포가튼 실버>(1996)에서는 허구의 인물을 등장시켜 조국 뉴질랜드의 영화사를 넘어 세계영화사를 다시(?) 썼던 그에게 <디스트릭트9>은 21세기 버전의 <고무인간의 최후>요, <포가튼 실버>이었던 셈이다.

피터 잭슨은 어느 인터뷰에서 <디스트릭트9>의 제작을 두고 사심이 얼마간 작용했음을 밝힌 적이 있다. “<디스트릭트9>을 두고 외계인 버전 <클로버필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입니다. 실황중계라는 점에서 두 영화는 동일한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클로버필드>는 장르의 공식을 그대로 따랐죠. <디스트릭트9>은 아예 장르를 새롭게 창조했어요. 그건 내가 <고무인간의 최후>와 <포가튼 실버>에서 궁극적으로 이루려고 했던 바죠. 그걸 이 애송이(닐 블롬캠프)가 데뷔작에서 멋지게 해낸 거예요.”

닐 블롬캠프와 피터 잭슨의 관계처럼 던컨 존스 역시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대가의 후원을 등에 업은 것으로 유명하다. <더 문>을 보고 던컨 존스의 비범함을 알아본 리들리 스콧은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었다. 하여 던컨 존스는 <더 문> 이후 차기작 <소스 코드>를 리들리 스콧의 제작 하에 연출하며 차차기작 <뮤트>는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 많은 부분 아이디어를 얻어 기획된 작품으로 알려진다. 


모방을 넘어 장르의 규칙을 바꾸다

개인적으로 <디스트릭트9>와 함께 <더 문>을 올해 나온 가장 중요한 SF영화로 꼽고 싶다. 신예감독의 데뷔작, 저예산의 한계를 아이디어로 극복했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닮았지만 무엇보다 과거와 달리 선배 감독의 영화를 적극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징후적이다. 바야흐로 이제 SF에서도 영화광 세대가 주도하는, 그들이 영향 받은 영화에 대한 언급을 서슴지 않는 작품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영화광들의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를 위시해 많이 만들어졌고 현재도 만들어지고 있다. 다만 닐 블롬캠프와 던컨 존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SF 장르에서만큼은 SF소설광들이 만든 작품은 등장했어도 영화광들의 영화라고 부를만한 작품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SF영화를 위한 SF영화’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런 이유로 <더 문>과 <디스트릭트9>을 올해 가장 중요한 SF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만 영화광의 영화라고 해서 단순히 모방의 수준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더 문>과 <디스트릭트9>의 가장 훌륭한 점은 모방을 통해 창조를 이뤘다는 사실이다. 장르는 소위 시대의 산물이다. 마치 살아 숨 쉬는 생물과 같아서 적극적으로 시대를 반영하고 내부 규칙을 업데이트하면서 진화해온 까닭이다. 그중에서 SF는 시대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장르다. 우리가 소위 대가라고 칭송해마지 않는 SF소설가들은 가까운 미래를 부정적인 암흑세계로 즐겨(?) 예언해왔다. 그들이 묘사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는 불행하게도 지금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더 문>과 <디스트릭트9>은 오마주를 넘어 여기에 (영화광 세대의 놀이의 전유물 같은) 장르 비틀기를 통한 현실을 덧씌운다. <더 문>이 냉전시대 미국의 국력을 과시했던 달에 대한 상징을 날로 영향력을 잃어가는 국운의 공허한 이미지로 바꾸었다면 <디스트릭트9>은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도입해 인종차별이 횡행하는 현실의 남아공을 노골적으로 은유한다.

여기서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인간을 위협하는 적의 개념으로 인식돼 온 컴퓨터와 외계인이 도리어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모한 것. <더 문>의 거티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할(HAL)에게서 가져온 것이지만 인간을 감시하고 위협하는 대신 샘을 도와 지구로의 탈출을 돕는다. <디스트릭트9>의 외계인은 어떤가. 쓰레기 더미의 판자촌에서 생활하고 고양이 먹이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심지어 강제철거까지 당하는 그들의 모습에는 하층민의 삶이, 우리네 현실이 겹쳐진다. 바꿔 말해, 컴퓨터와 외계인은 더 이상 인간이 넘보지 못하는 미지의 존재가 아니다.

컴퓨터와 외계인을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로 인지하게끔 변화시킨 건 영화를 비롯한 영상매체다. 물론 <사이버리아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등과 같은 소설에서도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가진 외계인이 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지와의 조우>(1977) <E.T.>(1982) <새 엄마는 외계인>(1988) <너 어느 별에서 왔니?>(2000) 등 영화에 비할 바는 아니다. 던컨 존스와 닐 블롬캠프처럼 영화로 현실을 접하는 영화광 감독들에게 컴퓨터와 외계인은 이미 친숙한 존재다. 촛불을 든 시민에게 곤봉을 휘두르고 비인간적인 철거에 항의하는 철거민들에게 물대포를 쏘아대며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을 불법으로 매도하는 인간 실격의 현실에서 그들은 도리어 컴퓨터와 외계인으로부터 인간(적인 감정)을 본다. SF의 장르역사를 돌아보건데, 소설은 영화가 되었고 영화는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현실은 다시 영화를, 장르의 규칙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더 문>과 <디스트릭트9>은 그 명백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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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09.12.9)

시대를 반영한 장르영화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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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운이 좋게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SF작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배명훈과 테드 창이었다. 배명훈은 그의 이름을 단독으로 내건 첫 번째 소설 <타워> 출간에 맞춰, 테드 창은 게스트 자격으로 참가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 방문에 맞춰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두 사람은 한국 대중들 사이에서 낯선 이름이지만 장르 팬들에게는 거의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작가다. 배명훈의 경우, 소설가 박민규의 표현을 빌자면, ‘아마도 100년 후, 한국 문단은 작가 배명훈이 이 땅에 있었다는 사실에 뒤늦은 감사를 표해야 할’만큼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작가이고, 테드 창은 장편 하나 없이 단편소설 발표만으로 이미 전 세계적으로 SF소설계의 거장 대접을 받는 작가다. (한국에 출간된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2004년 1쇄 출간 후 지금까지 SF로는 이례적인 8쇄 판매를 기록했다!)

사실 배명훈과 테드 창은 SF를 다룬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판이한 작가들이다. 1990년 데뷔한 이후 단 12편의 단편을 발표한 과작의 테드 창과 달리 배명훈은 한 달에 한 편 이상의 단편을 쓸 만큼 다작의 작가다. 또한 테드 창은 소설쓰기를 부업으로 삼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것에 반해 배명훈은 현재 전업 작가다. (그는 조만간 직장을 얻을 계획이란다!) 그러다보니 이 둘은 작품의 스타일도 참으로 상이하다. 테드 창이 과학현상 혹은 수학공식을 풀어나가는 듯한 건조한 문체를 선보인다면 배명훈은 사람 사는 이야기에 집중하며 따뜻함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배명훈과 테드 창이 비슷한 부류의 SF작가로 기억되는 것은 둘의 작품이 모두 영화화하기 힘든 구조로 되어있다는 점 때문이다. 안 그래도 이들과의 인터뷰에서 영화화를 염두에 둔 소설 쓰기에 대해 질문을 던졌는데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다.

“영화화를 염두에 둔 소설이 각광을 받는 것 같은데 나는 그걸 피한다. 영화에 종속되는 서사가 아니라 텍스트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미학을 끌어내보려고 한다. 영화에서 잡아낼 수 있는 미학과 글에서 잡아낼 수 있는 미학은 다른데 영화를 염두에 든 글쓰기를 하다보면 글의 미학이 점점 사라진다.” (배명훈)

“몇 년 동안 소설쓰기를 완전히 포기한 적이 있었다. 대신 창조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다른 방법으로 저예산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그 작업으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결국 나는 다시 소설 집필을 하게 됐다.” (테드 창)

한때 영화기자를 업으로 삼았던 사람으로서, 장르소설 애호가로서 이들의 작품을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진한 아쉬움을 느꼈더랬다. 내가 알고 있는 장르 지식 범위 안에서 SF문학은 많은 이들이 영화화를 바라지만 실제로 영화화가 가장 힘든 장르로 평가받는다.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알프레드 베스터다. 그의 대표작인 <파괴된 사나이> <타이거! 타이거!>는 많은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들이 스크린으로 옮기겠다며 호방하게 달려들었다가 금방 꼬리를 내린 ‘비운의 프로젝트’로 유명하다. (<타이거! 타이거>의 경우, 박찬욱 감독이 해외로 진출하게 되면 가장 먼저 연출하고 싶은 작품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는 조만간 다룰 예정이다!) 속마음을 간파당하지 않기 위해 ‘음악’으로 심리를 조작한다는 설정(<파괴된 사나이>), 소리를 시각으로, 움직임을 소리로 지각한다는 설정(<타이거! 타이거!>)을 영화의 이미지로는 어떻게 묘사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알프레드 베스터 역시 배명훈이나 테드 창과 같은 입장과 다르지 않아서 소설 자체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욕망으로 절대 영화화되지 않도록 구성하는데 많을 공을 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이들의 발언에서 영화매체의 보수성을 읽는다. 영화는 대중들이 가장 즐겨 찾는 오락일 뿐 아니라 문화의 전위(前衛)를 자처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보수적인 매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백년의 역사가 넘는 영화가 기술의 발전을 통해 진보하고 있다지만 그것은 단순히 관객들이 보고 경이감을 느낄만한 시각적인 측면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영화가 자본의 힘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막강한 산업으로 군림하면서 보다 안전한 수익창출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지양하고 오로지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볼거리에만 치중하는 풍토가 영화의 보수성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는 것이다.

테드 창은 그날 인터뷰에서 영화 시나리오 집필 경험에 대해 이런 얘기를 했다. “내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얻은 단 하나의 깨달음이라면, 말이 되는 소재와 보기에 좋은 소재 사이에서 선택이 주어졌을 때 영화를 찍는 사람들은 후자를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곧 시나리오 작업을 접고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문학 쪽에서는 흥미로운 SF소설이 계속 등장하는 것에 반해 영화 쪽에서는 국내외를 통틀어 인상적인 SF영화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한국의 SF영화는 신태라 감독의 <브레인웨이브>(2006) 이후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제작이 거의 유일하다!) <스타트렉: 더 비기닝>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등이 등장하긴 했지만 SF라는 장르적 특성만 사용됐을 뿐 실제적으로 변화하는 시대를 담지 못했기 때문에 진정한 SF라고 부르기엔 어딘가 부족한 모습이었다.

테드 창은 이번 부천영화제가 마련한 강연회에서 “SF는 반드시 변화하는 것을 다뤄야한다.”고 말했다.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변화를 담아내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좋은 SF”라면서 “진보야말로 SF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장르는 소위 시대의 산물이다. 마치 살아 숨 쉬는 생물과 같아서 적극적으로 시대를 반영하고 내부 규칙을 업데이트하면서 진화해온 까닭이다. 그중에서 SF는 시대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장르다. 그래서 좋은 SF를 발견하기 힘든 요즘 극장가에서 시대를 반영한 영화를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힘들다. 관객의 취향에 영합한 오락영화도 분명 필요하지만 시대를 외면하고 반쪽짜리 역할만 하는 영화계가 급격히 보수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전 세계적으로 시대가 하수상하기 때문일까. 시대를 반영한 장르영화가, 특히 잘 만든 SF영화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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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09.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