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좌우(左右)를 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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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0월 과천의 국립과천과학관에서 ‘2010 국제SF영화제’(이하 ‘SF영화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수석프로그래머 겸 집행위원장 내정자인 박상준을 만나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어떤 영화제로 만들 계획인지, 어떤 영화를 상영할 예정인지, SF영화제 전반에 대해 물으러 간 자리였지만 결과적으로 ‘SF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얻고 온 시간이기도 했다.

사실 국내에서 SF만큼 장르에 대한 개념이 극단적으로 왜곡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대해 박상준은 사람들이 SF에 대해서 갖고 있는 부정적인 선입관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 번째가 아이들이나 보는 유치한 것, 두 번째는 과학기술을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어려운 장르, 세 번째는 SF팬들 사이에서도 아직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건데, 과학적인 묘사라든가, 그런 쪽의 아이디어가 뛰어나면 다른 부분은 떨어져도 용서가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

이는 수용하는 측의 입장에서 오로지 두드러진 몇 개의 특징만 가지고 SF를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로봇이나 우주선이 등장하는 까닭에 유아적인 장르로 치부한다든가, Science-Fiction, 즉 과학을 기반으로 한 소설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든 장르로 미리부터 손사래를 치는 것이 바로 그런 예라 할만하다. 거꾸로 보자면, SF에 대한 스펙트럼이 유아적 상상력부터 첨단의 과학기술에 이르기까지 그만큼 다양하고 넓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았던 테드 창(<당신 인생의 이야기>)은 “SF는 반드시 변화하는 것을 다뤄야한다.”고 말했다. 아, 물론 변화가 진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테드 창이 말한 변화의 주체는 인간과 인간이 속한 사회이고 그렇기 때문에 SF는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안 그래도 미국이 국제적으로 점하는 독점적 지위가 각종 전쟁으로 흔들리고 있는 요 근래 우리가 스크린에서, 책에서 만났던 대표적인 SF 작품들은 주요하게 미국의 팽창주의를 배경 삼은 경향이 두드러졌다. 영화에서는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과 <스타트렉: 더 비기닝>이 남자들의 유년시절 판타지를 현실로 끌어내 전쟁을 미화했다. 또한 지난 한해 ‘웃기는 SF소설’로 화제를 모았던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은 주인공 노인이 젊은 육체를 받는 조건으로 군 입대 후 외계생물과의 전쟁을 통해 전쟁을 혐오하게 되고 인간의 가치를 더욱 그리워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렇듯 SF가 다루는 스펙트럼은 좌(左)에서부터 우(右)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실제로 베트남전 당시만 해도 아이작 아시모프(<아이, 로봇><파운데이션>)를 비롯한 일군의 작가들이 월남전 참전 반대 광고를 실으면 그 반대편에서 대표적인 우익 리버럴리스트인 로버트 하인라인(<스타쉽 트루퍼스:우주의 전사><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을 포함한 몇몇 작가들이 찬성 광고를 싣기도 했을 정도다. 모든 장르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SF는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고 이에 반응하는 의견 역시 좌우를 가리지 않는 만큼 그 개념에 대해서는 가변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하겠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 역시 SF팬덤에서 오랫동안 논쟁을 거듭하고 있는 사안인데) SF와 판타지의 비교 역시 무 자르듯 구별하는 것이 그리 옳지만은 않아 보인다. 테드 창의 표현을 빌리자면, “판타지는 모든 이야기에 적합한 장르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바통을 이어받아 박상준의 표현을 이어보자면, 그렇기 때문에 “상상문학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SF와 판타지의 경계는 사실 굉장히 모호한 편이다.” 오히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SF와 판타지가 결합한 하이브리드 작품이 트렌드처럼 두드러진 움직임을 보이는 까닭에 (영화로 치면 <이터널 선샤인>이나 <스트레인저 댄 픽션> 같은 작품이, 소설로 치면 배명훈의 <타워> 같은 작품이 이에 속한다.) 더욱더 장르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고수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박상준은 말한다.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 SF가 또 한쪽 끝에 판타지가 있는 것 같다. 나머지 모든 작품들은 그 선상 어딘가에 위치하는 거지. 모든 세상일들이 그렇듯이. (웃음) SF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갖게 해준다. 나무를 논할 때 논하더라도 큰 숲을 보는 시야를 갖는 게 궁극적으로 우리들의 미래에 더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21세기로 들어오면서 과학 기술의 발달 속도는 인간의 생물학적인 세대교체 속도를 앞질러 버렸다. 이제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숲을 보는 시야를 가져야‘만’ 한다. SF쪽에서는 이런 담론들을 굉장히 구체적이면서 진지하게, 깊이 있게 계속해서 탐구하고 있다. 내가 SF분야에서 일한 지 20년이 다 되가는데 초창기에는 나 역시도 작품 하나를 두고 SF냐, 아니냐를 따지는데 민감하기도 했고 집착도 했고 고집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것 자체는 비본질적인 문제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렇게 연연하지 않았다.”

그래서 박상준이 생각하는 올해의 SF영화제는 SF안에서도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엇보다 한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다소 중립적인 행사로 기획될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SF문화는 마니아적인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영화제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SF를 알리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보다 중립으로 가는 것이 취지에 맞는다고 보는 것이다. 영화제의 이름을 내걸고 진행하는 행사이지만 영화뿐 아니라 소설과 만화, 전시 등을 아우르고 정통 SF뿐만 아니라 판타지 요소가 다분한 영화도 상영할 예정이며 시대의 변화를 담고 있는 이야기라면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개의치 않겠다는 것이 박상준이 이번 SF영화제를 통해 드러내고 싶은 주제다.

한마디로 ‘SF에 대한 모든 것’이 될 이번 SF영화제는 SF와 관련한 모든 콘텐츠, 모든 사람들, 모든 경험들을 맛볼 수 있는 자리다. 결국 SF를 좋아하거나 과학 문화에 관심 있는 이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SF문화를 다양하게 누리게 함으로써 탈골된 SF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좋을 기회가 될 전망이다. “그냥 SF를 즐기자, 작품을 즐기자. SF에 대한 개념은 필요할 때 고민하고 그저 재밌게 영화제를, 행사를 즐겼으면 좋겠다.” 박상준이 올해 SF영화제를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하려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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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1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