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펜, 연기를 인간의 경지로 끌어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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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칸국제영화제 취재차 프랑스 칸을 방문했다가 숀 펜을 본 기억이 있다. 음, 직접 대면한 건 아니고 경쟁부분 심사위원들의 공개 기자회견 장소에서였다. 그 해의 심사위원장은 바로 숀 펜이었는데 나탈리 포트먼, 알폰소 쿠아론 등 쟁쟁한 심사위원들 가운데서도 스포트라이트는 유독 그에게로만 모아졌다. 그 자리에 모인 많은 기자들은 정치적인 견해를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는 숀 펜에게서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던 부시에 대한 ‘독설’을 듣고 싶어 했다. 

숀 펜은 기자들의 기대감을 배신하지 않았다. “부시 정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치라는 용어를 야만스럽게 만든 부시가 부끄럽다.”고 얘기했다. 이에 “그것이 이번 영화제의 경쟁부문 심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으냐?”는 우문에 대해서는 “세상이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소통이 단절되면서 영화는 더욱 중요한 매체가 됐다.”고 현답으로 응수했다.


하비 밀크의 페르소나가 되다

숀 펜은 삶의 가치관이 그대로 영화의 필모그래프에 나이테처럼 새겨지는 배우다. 영화의 안과 밖 행동이 전혀 구별되지 않는 그는 배우 생활이 곧 정치임을 증명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밀크>(2008)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숀 펜의 수상 소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자신이 연기한 극중 게이 정치가 하비 밀크의 목소리와 몸짓을 빌려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이들이 반성해야할 시간이군요. 계속 동성결혼 반대를 지지할 생각이신가요? 후손들이 당신들을 부끄럽게 여길 겁니다. 우리는 누구나 평등할 권리를 가지고 있거든요.”라고 피력한 것.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연출한 <밀크>는 미국 최초의 커밍아웃한 게이 정치가 하비 밀크가 샌프란시스코 시장으로 활동하다 살해당하기까지의 정치적 이력을 다룬다. 소수자인 게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대변자로 나서고 이들의 인권을 제한하는 보수주의 기독교 세력에 맞서는 하비 밀크에게서 숀 펜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다. 이라크 전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조지 W.부시 정부의 비도덕성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며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를 누구보다 안타까워한 숀 펜의 ‘진보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는 그대로 하비 밀크에게로 겹쳐진다. 

그런 점 때문에 <밀크> 출연이 당연히 하비 밀크와의 정치적 신념을 공유하는 성향 때문이라고 쉽게 분석할 수 있겠지만 숀 펜의 속내는 좀 더 복잡하다. “나의 정치적 감정이 극중 하비 밀크와 연결되는 것을 경계했다. 다만 내가 도전해볼만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출연을 승낙한 결정적인 이유라면 구스 반 산트다. 구스와 같은 예술가와의 환상적인 작업을 두고 이리저리 재는 연기자는 없을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숀 펜의 필모그래프에서 진보적인 성향의 캐릭터는 의외로 적다. 오히려 타락한 정치인(<올 더 킹즈 맨>(2006))이나 대통령 암살 모의자(<대통령을 죽여라>(2004)), 부패한 변호사(<칼리토>(1993))와 같은 사회악에 기반을 둔 캐릭터가 더 눈에 띈다.

그럼에도 숀 펜이 연기한 캐릭터마저 진보적인 인물로 착각(?)하게 만드는 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옹호하고 지켜내는 급진적 성향이 그의 연기 속에 고스란히 배어나는 탓이다. 구스 반 산트가 할리우드를 통틀어 연설에 가장 능한 배우로 숀 펜을 꼽고 하비 밀크 역에 캐스팅한 사실은 유명하다. 실제로 <올 더 킹즈 맨>에서 정치인 윌리 스탁으로 출연한 숀 펜이 펼치는 연설은 내용을 떠나 감동적이고 호소력이 넘친다. 그것은 극중 윌리 스탁의 특징이면서 영화 바깥에서의 숀 펜의 장기이기도 하다. 2008년 칸영화제에서의 기자회견이나 2009년 아카데미에서의 수상 소감은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배우가 영화 안팎에서 쌓은 이미지는 캐릭터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바탕으로 작용한다. 선한 역할이든, 악한 역할이든 캐릭터의 모습에는 배우의 특징적인 이미지가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이다. 그것이 외모일수도, 평소 성격일수도 있지만 숀 펜에게는 활동가적인 기질에서 드러나는 자기 확신에 찬 신념이다. 그가 연기한 배역은 게이 정치가(<밀크>), 전직 갱단 출신의 딸을 잃은 아버지(<미스틱 리버>(2003)), 지적 장애인(<아이 엠 샘>(2001)), 사형을 앞둔 죄수(<데드맨 워킹>(1995)) 등 스펙트럼이 천차만별이지만 의지를 굽히지 않는 캐릭터라는 점에서는 한결 같았다.

이처럼 숀 펜은 특정 영화의 출연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그의 연기 이면에서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의지와 신념은 그의 활동가적인 면모를 더욱 고결한 차원으로 승화한다. <밀크> 역시 다르지 않다. 숀 펜은 하비 밀크를 연기했다는 이유로 게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하비 밀크가 되려했을 뿐. 숀 펜은 하비 밀크의 페르소나로 완벽히 변신하여 연기로써 대중을 압도하고 감동을 주는 것이다.


예술가의 피를 물려받다

숀 펜이 가진 연기관은 조지 클루니와 비교할 때 더욱 선명해진다. 조지 클루니는 숀 펜과 함께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반골 기질의 배우로 유명하다. 앞장 서 부시를 반대했고 오바마의 당선을 누구보다 기뻐했으며 요즘도 연일 수단 다푸르 지역의 난민 인권을 위해 도움을 호소하는 조지 클루니의 입장을 숀 펜에게 치환하더라도 전혀 어색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정치적인 태도를 영화로 가져오는 방식은 판이하다. 숀 펜은 앞서 밝힌 바, 연기와 정치를 굳이 구분하지 않는 것에 반해 조지 클루니는 어느 정도 삶과 정치를 구분해 영화에 임하는 자세를 보인다.

<시리아나>(2005)와 <굿나잇 앤 굿럭>(2005)처럼 노골적으로 미국의 부시 정부를 겨냥한 영화에 출연(하고 감독)하는 한편으로 ‘오션스’ 시리즈처럼 절친한 동료들과의 화합과 재미를 위해 연기를 하기도 하는 것. 그와 달리 숀 펜은 일시적인 외도의 차원으로라도 영화를 스스로의 재미를 위한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 깊은 속사정까지야 헤아릴 수 없는 노릇이지만 숀 펜의 가정사는 이에 대한 하나의 단서가 되어줄 만하다. 그는 영화의 피를 물려받았다. 아버지 레오 펜(Leo Penn)은 TV와 영화를 넘나들며 1990년대 중반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친 연출자였고 어머니 에이린 라이언(Eileen Ryan)은 지금도 활동 중인 현역 연기자이며 동생 크리스 펜은 <저수지의 개들>(1992), <트루 로맨스>(1994), <퓨너럴>(1996)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배우였다. (2006년 심장 비대증으로 사망했다.) 

사실 숀 펜의 꿈은 연기보다 연출에 있었다. 아버지를 보며 연출의 꿈을 키웠던 그는 배우 활동 중간 중간 <인디언 러너>(1991)를 시작으로 <인투 더 와일드>(2007)까지 4편의 장편을 연출하고 1편의 옴니버스영화에 참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숀 펜이 아버지 레오 펜에게서 직접적으로 배운 가치라면 자신의 신념을 굳히지 않는 강인한 정신이다. 러시아 혈통을 물려받은 레오 펜은 매카시 시절 타협하지 않는 정치적 신념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는데 그가 견디었던 고생에 대해 숀 펜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곤 했던 것이다. 1960년 캘리포니아 산타 모니카에서 태어나 플라워 파워(Flower Power 히피족 사상의 중심인 사랑과 평화의 슬로건)의 세례를 듬뿍 받으며 자란 그에게 더해진 아버지의 영향은 그대로 지금에 남았다. 

하비 밀크의 정치 활동은 겉보기엔 우연한 기회로 이뤄졌다. 사랑하는 애인의, 친구의, 이웃의 인권이 유린당하는 부조리한 상황에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으로 정치에 뛰어든 건 하비 밀크에게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비 밀크의 사랑에 대한 실천이 정치라는 형태로 이뤄진 것처럼 숀 펜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자기 확신은 자연스럽게 신념에 찬 연기로 승화했다. 그에게 연기는 삶도, 정치도, 그리고 재미도 초월한 예술의 한 종류다. 예술의 목적이 천변만화한 형태로 대중을 놀라게 하는 것이라면 숀 펜이야말로 예술가의 전형이라 할만하다.

그는 감독 불문, 장르 불문, 국적 불문, 그리고 역할 불문 자신의 예술혼을 자극하는 역할이라면 까다롭게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 <밀크> 이후 4편의 영화가 개봉을 기다리거나 촬영을 앞두고 있는데 덕 리먼의 <페어 게임>은 이라크 전의 비리와 관련한 정치 스릴러물이고 브래드 피트와 함께 출연하는 <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는 거장 테렌스 멜릭의 작품이며 <디스 머스트 비 더 플레이스 This must be the Place>는 <일 디보>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이탈리아 출신의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 작품이다. 그리고 <쓰리 스투지스 The Three Stooges>는 그 악명 높은(!) 패럴리 형제의 코미디인 것이다.


인간을 연기하다

숀 펜은 늘 캐릭터에 동화되는 연기를 펼치는 까닭에 자신을 버리는데 익숙하다. 이는 외양의 변화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칼리토>의 ‘곱슬머리’ 변호사부터 <스윗 앤 로다운>(1999)의 ‘콧수염’ 기타리스트, <아이 엠 샘>의 ‘지체장애’ 아버지, <올 더 킹즈 맨>의 ‘시골뜨기’ 정치인까지, 그중 하비 밀크의 외모는 원래 숀 펜이 가지고 있는 선 굵은 외모에 ‘포샵’ 처리를 한 것처럼 역설적이게도 가장 격한(?) 변신에 속한다. 사실 20대 시절의 숀 펜은 각종 타블로이드로부터 ‘인간 폭풍우’(human tempest)라고 불릴 만큼 영화 안팎으로 악동 취급을 받던 배우였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숀 펜은 모든 배역을 ‘숀 펜化’하는 것에 능했지 그 자신이 역할에 깊이 빠져드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이는 숀 펜이 영화 바깥에서 보여준 악동의 면모와 정확히 일치했다. 마돈나와의 광란에 가까운 연애와 결혼 생활, 파리 떼처럼 몰려드는 기자를 상대로 한 기행에 가까운 폭력 등 각종 스캔들의 내용처럼 그의 역할은 단 두 가지, 반항아(<배드 보이즈>(1983)) 아니면 문제아(<리치몬드 연애 소동>(1982))였다. 심지어 첫 장편영화 출연작 <생도의 분노>(1981)에서는 전혀 다른 재능의 연기를 보여준 톰 크루즈가 명성을 얻은 것에 반해 숀 펜은 친구의 성공을 지켜봐야 했을 만큼 주목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후에 <스윗 앤 로다운>에서 숀 펜을 장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dt)에게서 영감을 얻은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에멧 역에 캐스팅했던 우디 알렌은 그의 섬세한 연기의 원천으로 20대 시절의 불안정했던 삶을 지목했다. “숀 펜이 겪은 고통은 그의 고차원적인 예민함에서 비롯됐다.”며 자신의 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를 펼쳤다고 평가한 것. 또한 “자신을 보호하려는 강박에서 드러나는 섬세함이 최고의 배우로 만들었다.”는 팀 로빈스의 표현처럼 숀 펜은 딸을 지키지 못해 실의에 빠져 친구를 범인으로 오인, 살해하고 마는 <미스틱 리버>에서의 지미 역으로 첫 번째 오스카를 수상하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의 대다수 영화 저널들은 숀 펜을 두고 데니스 호퍼와 잭 니콜슨의 계보를 잇는 ‘열혈 연기 클럽’(hot-blooded actor club)의 자랑스러운 일원이라고 종종 소개한다. (숀 펜은 둘째아들 이름을 두 배우의 이름에서 따와 ‘호퍼 잭 펜’이라 지었다!) 데니스 호퍼의 광란에 가까운 연기와 수십 년째 지치지 않는 열정을 과시하는 잭 니콜슨처럼 숀 펜은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극한의 연기와 장수하는 경력으로 할리우드를 대표한다는 것이다. 하여 그의 필모그래프에서 대가의 이름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흥미롭게도 숀 펜이 외모에 두드러진 변화를 주면서 역할에 자신을 철저히 맞추는 식으로 연기 패턴을 갖기 시작한 건 대가들을 만나면서부터다.

브라이언 드 팔마(<칼리토>)를 시작으로 닉 카사베츠(<더 홀 She so Lovely>(1997)), 올리버 스톤(<유 턴>(1997)), 데이비드 핀처(<더 게임>(1997)), 줄리앙 슈나벨(<비포 나잇 폴스>(2000)),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21그램>(2004)), 시드니 폴락(<인터프리터>(2005)) 등 숀 펜은 매 영화마다 변화한 모습과 새로운 표정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왔다. 어떤 계기가 그를 배우로써 각성을 이끌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숀 펜이 가진 연기의 철학은 <밀크>에서 어느 정도 가늠케 한다.

숀 펜은 하비 밀크 역을 제안 받기 전 이미 <밀크>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카스트로 지구를 모두 둘러본 후였고 (15년 전 구스 반 산트는 <The Mayor of Castro Street>라는 제목으로 하비 밀크에 관한 영화를 기획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미 숀 펜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감독과의 첫 미팅이 있던 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하비에게 동화된 상태였다. 구스 반 산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숀 펜 외에는 없었다. 그가 맡아야 했고 실제로 해냈다. 실제 하비 밀크라고 해도 믿을 만큼 그는 완벽한 연기를 펼쳤다.” 숀 펜은 이렇게 얘기한다. “연기는 거짓이 아니다. 사실 그 자체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모두 그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연기가 아니라 퍼포먼스일 수밖에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칼리토> 이후의 숀 펜은 늘 여러 가지 모습으로 기억된다는 점이다. 맡은 배역에 대한 존중과 이해심을 전제한 그의 변신은 캐릭터적인 볼거리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를 보여준다. 인물이 가진 배경에 한정하지 않고 아예 우주를 끌어안으려는 그의 태도는 인간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그의 필모그래프에서 소수자 캐릭터가 1990년대부터 집중된 건 우연이 아니다. 그 정점에 바로 <밀크>가 있다. <밀크>는 구스 반 산트의 영화지만 하비 밀크로 분한, 아니 하비 밀크가 된 숀 펜의 이미지로 기억될 영화다. 그는 앞으로도 연기를 할 것이고 또 다른 변신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 테지만 지금 이 순간, <밀크>는 숀 펜이라는 인간의 (배우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삶에서 어떤 상징성을 지니는 작품이라 할 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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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1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