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바바(Mario Bava)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리오 바바는 이탈리아 북부의 산 레모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유제니오 바바는 초기 이탈리아 영화계에서 이름을 떨쳤던 촬영 감독이었다. 그러니까, 마리오 바바는 영화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던 것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미술 교육을 받으며 이미지 창조를 놀이 삼아 성장기를 보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따라 촬영 감독 조수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미술에 일가견이 있었던 만큼 그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이미지를 포착하고, 더 나아가 창조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고 1939년에 드디어 촬영 감독의 자리에 올랐다. (연출자로 데뷔한 이후 <사탄의 가면>을 비롯해 몇 편의 작품에서 직접 촬영을 담당했으며 그외에도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을 뿐이지 대부분의 작품에서 적극적으로 촬영에 개입했다.)

1960년까지 촬영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마리오 바바는 특히 광학 렌즈를 이용해 관객의 눈을 현혹하는 장면 만들기에 일가견을 보이면서 명성을 얻었다. 촬영 틈틈이 단편 영화를 만들었지만 마리오 바바는 정식으로 연출자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감독이 되려면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감독이 될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친구 리카르도 프레다가 연출을 맡은 <뱀피리>(1956)의 촬영 감독으로 참여했지만 제작자와의 불화로 감독이 현장을 떠나면서 대신 영화를 완성했던 것. 그때만 해도 단 한 번의 외도로 생각했지만 뒤이어 <칼티키: 불멸의 몬스터>(1957)에서 (또 한 번!) 리카르도 프레다를, <마라톤의 거인>(1959)에서 자크 투르뇌르를 대신해 메가폰을 잡으면서 마리오 바바는 본격적으로 감독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마라톤의 거인>의 제작사는 영화를 찍고 남은 필름과 적은 예산을 책정해 만들고 싶은 영화를 연출해보라고 권유했다. 손해 볼 것이 없었던 마리오 바바는 이를 받아들여 46세의 나이에 공식적인 장편 데뷔작 <사탄의 가면>을 완성하게 된다. 이후 <너무 많은 것을 안 여자> <피와 검은 레이스>(1964) <킬, 베이비… 킬!> 등과 같은 지알로의 걸작을 남기면서 이탈리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감독 중의 한 명으로 이름을 떨친다. 1965년 이후에는 아들 람베르토 바바가 조감독으로 참여하고, 다리오 아르젠토가 그의 영화에 열광적으로 관심을 보이면서 지알로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하나의 독립적인 장르로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계속 되는 상업적 실패는 그를 반 은퇴 상태로까지 몰아가기에 이른다. 그의 실질적인 유작이라고 해도 좋을 <납치 kidnapped>는 1974년 촬영에 들어갔지만 제작사가 파산하면서 완성되지 못한 상태로 창고에 묻히게 된다. (1998년 람베르토 바바는 아버지가 남긴 편집 노트를 원본 삼아 복원판을 만들었다. 우리가 아는 <미친 개들>은 <납치>의 새로운 제목인 셈이다.) 마리오 바바는 람베르토 바바의 주선으로 TV용 영화 <쇼크>(1977)를 만들기도 했지만 더 이상 극장용 장펴 영화를 만들 기회는 얻지 못했다. 1980년 4월 27일 갑자기 찾아온 심장 발작으로 마리오 바바는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Mario Bava Special
(2011.6.21~7.3)  

마리오 바바 특별전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리오 바바 특별전은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오래 전부터 기획해 왔던 프로그램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로 난관에 부딪히다 이제야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특별전을 통해 공개하는 작품은 모두 12편입니다. (하지만 특별전 며칠을 앞두고 마리오 바바 측에서 <블레이드 스톰>과 <하우스 오브 엑소시즘> 프린트를 보내줄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촬영 감독으로 활약하다 46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연출자 데뷔해 25편의 영화를 만든 것을 감안하면 그의 작품을 기다려왔을 국내 팬들의 성에 차지 않는 편 수일지도 모릅니다. 감히 말씀드리건데, 장편 데뷔작 <사탄의 가면>(1960)을 비롯해 그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너무 많이 아는 여자>(1963) <킬, 베이비… 킬!>(1966) <블러드 베이>(1971)가 모두 포함된 이번 특별전은 마리오 바바의 진가를 확인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목록이라고 자신합니다.  


흔히 마리오 바바를 일러 ‘이탈리아의 히치콕’이라고 부릅니다. 히치콕이 현대 스릴러 영화의 문법을 확립한 것처럼 바바는 현대 공포 영화의 모든 것을 창조했습니다. 살인을 다룬 1960년대 이후의 이탈리아 영화를 통칭하는 장르명이 된 ‘지알로’는 <너무 많이 아는 여자>가 출발점입니다. ‘노랑’을 뜻하는 지알로는 1920년대 중반 이탈리아의 한 출판사가 노란색을 표지로 한 저가의 장르 소설을 발표하고 이것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싸구려 가판 소설을 일컫는 말이 되었습니다. 온갖 종류의 소설을 좋아했던 바바는 이를 영화로 만들길 즐겼고 지알로는 이후 람베르토 바바, 다리오 아르젠토 등에 의해 계승되며 이탈리아 영화의 빛나는 업적이 되었습니다.

아니, 세계 영화사의 유산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겠군요. 쿠엔틴 타란티노는 틈만 나면 그 자신의 영화의 뿌리를 일러 지알로라고 말합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역시나 가판 소설을 의미하는 <펄프 픽션>은 미국의 지알로인 셈이고 이 영화를 통해 타란티노는 전 세계적인 감독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블러드 베이> 의 경우, 미국으로 넘어가 슬래셔의 원전이 되었습니다. <13일의 금요일> <나이트 메어> 같은 난도질 종류의 영화가 나올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한 것도 바로 마리오 바바의 영화이었던 것입니다. 한 핏줄 영화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마틴 스콜세지, 존 카펜터,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브라이언 드 팔마 등 거장으로 칭송되는 감독들이 그들 각자의 방식을 통해 마리오 바바에 오마주를 바친 것은 유명합니다.

다소 과장해 말하자면, 마리오 바바의 출현 이후 전 세계의 영화는 마리오 바바에 영향 받은 영화와 영향 받지 않은 영화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마리오 바바 영화에 열광했던 감독 중 한 명이었던 페데리코 펠리니는 이런 얘기를 했다죠.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공포 영화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었다. 내 작업이라고 밝히지 않고 지인들에게 보여줬더니 하나 같이 마리오 바바가 쓴 거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들은 최고의 찬사였다.” 세계 최고의 감독들이 그 자신들보다 더 최고라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드는 감독, 공포 영화 팬들 사이에서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감독이지만 마리오 바바는 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소수의 팬을 제외하면 여전히 미지의 이름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번 특별전은 마리오 바바 단독의 이름으로는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프로그램입니다. 특히 이번에 상영되는 작품은 바바의 영화가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새롭게 편집된 미국판으로 상영될 예정입니다. 지알로와 슬래셔뿐 아니라 스파게티웨스턴과 섹스코미디물 등 장르를 총망라한 마리오 바바 특별전을 주목해 주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Mario Bava Special
(2011.6.2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