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는 장르문학 시장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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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장르문학 출판사 관계자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역시나(!) 이 자리에서도 지난달 27일 공개된 애플의 태블릿PC ‘아이패드’(iPad)는 단연 화제였다. 아이패드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에서부터 국내 출시 전망까지, 그중에서도 아이패드가 소설 시장의 미래, 좀 더 구체적으로는 국내 장르소설 시장의 활성화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여부에 집중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패드가 출시되어봐야 알 수 있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수준에서 서둘러 수다(?)를 마무리 지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의 장점만 살린 혁명적인 제품’, ‘아이폰의 신화를 이어가기에는 역부족’ 등 아이패드를 두고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전자책(e-book)을 위한 가장 최적화된 기기라는 사실에는 별다른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아마 없을 듯하다. A4 용지 크기의 680그램짜리 아이패드는 휴대가 간편해 언제 어디서나 꺼내보기 용이하고, 흑백만 가능한 기존의 전자책과 달리 컬러가 지원돼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며, 아이폰보다 월등한 크기의 액정은 눈의 피로감을 덜어줘 장시간 화면을 응시할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특히 입체형 가상 서가를 통해 책을 검색할 수 있고 애플 특유의 정전식 터치로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등 실제 책을 소유한 듯한 느낌을 제공한다는 점은 가히 획기적이라 할만하다.

아이패드가 기존의 전자책 시장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아니 머지않아 판도를 뒤흔들 것으로 전망된다. 아닌 게 아니라, 애플은 아이패드 출시와 함께 ‘아이북스토어’(iBookstore)라는 새로운 온라인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해 변화를 예고했다. 사용자들은 아이북스토어를 통해 책을 구매하거나 다운로드 할 수 있다. 이미 애플은 아이팟의 콘텐츠망인 ‘아이튠즈’(iTunes)로 음악 다운로드 시장의 유료화를 정착시키며 사양길로 접어들던 음반시장을 회생시키기도 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미국 내 주요 출판업체인 하퍼콜린스, 펭귄, 사이먼앤슈스터, 맥밀란, 하체트 북그룹 등이 아이북스토어에 참여해 전자책 시장에서의 선점효과를 노리고 있다. 또한 더 많은 전자책 콘텐츠 업체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 태세란다.

국내 출판계 또한 아이패드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연내 출시가 힘들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르는 가운데서도 출시를 기정사실화하고 콘텐츠 마련에 분주한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에서처럼 아이패드가 국내 전자책 시장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시각이 짙게 깔려있다. 안 그래도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을 중심으로 아이패드에 적합한 콘텐츠 개발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진다. 주로 젊은 층을 타깃 삼은 콘텐츠에 주력하고 있다는데 이들이 핸드폰을 통한 정보 습득을 생활화한 까닭에 아이패드를 이용한 전자책 소비에 거부감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따른 결과다. 처세술서와 경영서에 집중된 콘텐츠를 다양화하고 링크 기능 및 동영상 등 부가서비스를 강화하면 수지맞는 장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넘어야 할 벽 또한 만만치 않다. 우선 가격 경쟁력 획득은 필수적이다. 전자책은 일정 시간 동안 관람이 가능한 영화와 드라마 동영상 서비스와 달라서 파일 자체의 영구 소장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출판사는 (해당 작가나 수입 출판사에) 별도의 판권료를 지불해야 하는 부담을 갖는다. 기존 전자책의 가격이 실제 책의 70%를 상회하는 상황에서 훨씬 저렴해지지 않는 이상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데 장애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처럼 자금력이 막강한 곳을 제외한 업체들이 아이패드의 출현과 그에 따른 시장의 변화가 예고됨에도 콘텐츠 개발에 쉽게 나서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이 시장 진입을 망설이는 보다 더 큰 이유는 아이패드가 기존 전자책 시장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것이라고 보는 까닭이다. 이미 애플이 앱스토어(App Store)로 프로슈머(Prosumer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개발하거나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이를 기업이 받아들이는 방식) 환경을 본격화한 상황에서 아이북스토어를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사이버 시장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많은 이들이 생각한다. 그렇게 될 경우, 작가가 글을 완성하면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곧바로 앱스토어에 등록해 독자와 만날 수 있다. 아이패드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사실은 명약관화하지만 변화의 추이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금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군소업체들은 선뜻 나서기 쉽지 않은 것이다.

대신 작가들에게 아이패드의 출현은 높은 기대감을 갖게 한다. 특히 국내 장르 작가들에게 아이북스토어와 같은 앱스토어는 폭넓은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신천지다. 순문학이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는 한국에서 장르문학은 소위 소장 가치가 떨어지는 책이란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그래서 일찍이 국내 장르소설은 온라인상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장르문학의 활성화를 도모해왔다. 하지만 아이패드가 국내에 출시되고 아이북스토어가 상용화된다면 장르작가들의 등단의 무대는 온라인상에서 앱스토어로 옮겨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아이패드가 국내 장르소설의 보다 빠른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 믿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아이패드가 출판시장에서의 전자책이라는 디지털 환경 자체의 변화 뿐 아니라 오프라인 시장의 재편까지 포괄한다고 보는 쪽이다. 최근 국내 장르작가들의 데뷔 형태가 ‘매드클럽’, ‘환상문학 웹진 거울’ 등과 같은 장르문학 웹진을 발판삼아 오프라인으로 진출하는 것임을 감안할 때 아이패드의 출현은 이 같은 환경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본다. 예컨대, 온라인을 통해 기량을 갈고 닦은 작가는 때가 됐다싶으면 아이북스토어를 통해 독자들로부터 실력을 검증받을 수 있고 출판사는 앱에 올라온 목록을 검색하면서 될 성싶은 나무를 선별해 오프라인에서의 안정적인 작품 수급으로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개인적으로 추론해본 예상 시나리오일 뿐 결과를 미리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 아이패드가 언제 출시될지 알 수 없고, 처세술서와 화제작 위주로 전자책 판매가 호조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패드가 국내의 독서 인구, 특히 장르소설 독자를 비약적으로 늘릴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아이북스토어가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장(章)으로 기능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내가 장르문학 출판사 관계자와 아이패드에 대한 열띤 수다를 펼치고도 ‘출시되어봐야 알 수 있다.’고 꼬리를 내린 이유는, 그래서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이패드가 작가와 같은 생산자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는 점이다.

문화비평가 이택광은 자신의 블로그(http://wallflower.egloos.com/)에서 아이패드의 가능성에 대해 ‘거대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문화생산자들이 자기 제품을 앱으로 만들어서 마음껏 팔 수 있는 사이버 시장이 열릴 수 있다. 콘텐트 제작자가 산지직송판매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는 셈이다.’라고 얘기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미 아이폰의 앱스토어를 통해 앱개발자가 대박을 쳤다는 소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지면과 대형 포털 사이트의 헤드를 장식하고 있다. 분명 이는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국내 장르작가들에게 희소식이다. 만약 누군가가 아이패드가 장르소설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해주고 싶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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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