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종종 음식과 비유된다. 이안의 <음식남녀>(1994), 가브리엘 악셀의 <바베트의 만찬>(1987) 등은 음식 만들기를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함으로써 좋은 점수를 받았다. 2008년 스페인 영화계를 강타했던 나초 G. 베일라 감독의 <산타렐라 패밀리> 또한 주방을 무대로 인생의 한 단면을 표현함으로써 자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영화다.
막시(하비에르 카마라)는 레스토랑 ‘산타렐라’의 주인이자 주방장. 10년 넘게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막시에게 동료들은 가족 같은 존재다. 다만 너무 가족 같아 소동이 끊이지 않는데 미쉐린 음식 평가원의 방문도 그 중 하나다. 막시는 이번 기회에 좋은 점수를 얻어 레스토랑의 이름을 알리려하지만 이게 웬걸, 게이인 탓에 결혼과 동시에 헤어졌던 아내가 숨을 거두면서 두 아이가 막시 곁으로 온다. 10년 동안 멀어진 관계가 쉽게 회복될 리 만무한 터. 설상가상으로 동료 알렉스(롤라 두에냐스)가 좋아하는 축구선수가 그에게 마음을 품으면서 막시는 자식에게 인정 잃어, 친구에게 절교당해 사면초가에 빠진다.
<산타렐라 패밀리>는 철없는 막시의 아버지 되기를 그린다. 아이들이 찾아오기까지 막시의 삶은 몇 개의 불안정한 정체성이 파편처럼 흩어진 인생에 다름 아니었다. 레스토랑 주인으로써 인정받기에 안달 났고 게이라는 사실 때문에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알렉스와 갈등을 빚었으며 부모님과의 왕래도 오래 전에 끊어진 터다. 영화는 그런 막시의 삶을 재료삼아 소동극의 과정을 거쳐 아버지라는 요리를 완성해낸다.
혹자는 게이가 주인공인데다가 스크루볼 코미디에 버금가는 대사가 압도적이고 소동극의 형태를 띤 까닭에 페드로 알모도바르(<나쁜 교육><내 어머니의 모든 것>)의 영향력을 언급하지만 이는 <산타렐라 패밀리>를 설명하는 적합한 방법은 아니다. 언급된 요소들이 공통된 건 사실이지만 알모도바르 작품의 경우, 지극히 개인적인 사연과 결합하면서 도발적으로 기능한다면 <산타렐라 패밀리>는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 시종일관 따뜻한 기운을 풍기며 마음 훈훈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것은 아버지 되기라는 이 영화의 주제가 결국 해체된 가족의 결합이라는 고전적 이야기의 틀을 빌려온 것에서 기인한다. 신기하게도 극중 인물들은 하나같이 인간관계에 있어 절름발이에 다름 아니다. 10년 넘게 가족을 등진 막시는 말할 것도 없고 알렉스는 너무 쉽게 정을 줘서인지 남자들은 그녀의 육체만 맛(?)보곤 돌아서기 일쑤다. 막시와 알렉스가 동시에 사랑하는 남자 호라시오(벤자민 비쿠나)는 어떤가. 전직 축구선수 출신인 까닭에 성정체성을 숨겨온 지 오래다.
이 지점에서 <산타렐라 패밀리>는 전통적인 가족영화와는 다른 길을 걷는다. 기존의 가족이 재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막시와 호라시오가 짝을 이루고 막시의 아이들과 함께 이합집산 하여 새로운 가족을 이루는 것. 이 영화는 막시의 아버지 되기를 통해 전통적인 개념의 가족 봉합이 아닌 전혀 새로운 차원의 가족 재구성을 말하는 셈이다.
극중 막시가 운영하는 산타렐라는 스페인 음식에 프랑스풍을 가미한 일종의 퓨전레스토랑이다. 세상은 변했고 사람들은 전통적인 음식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10년 넘게 산타렐라가 운영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테다. 막시가 이룬 가족 또한 산타렐라의 퓨전음식과 다르지 않다. 가족관계도 이제 퓨전음식처럼 변해가고 있다. 극중 막시는 호라시오와의 관계가 잠시 흔들릴 때 이런 얘기를 한다. “이렇게 다르다면 서로 같이 있을 필요 없겠네.” 영화가 보여주지는 않지만 이에 대한 호라시오의 답변을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서로 마음만 맞는다면 헤어질 필요 없겠네.’
이처럼 해체된 가족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이를 전통적인 의미의 재결합으로 이끌지 않는다는 점에서 <산타렐라 패밀리>는 스페인 버전의 <가족의 탄생>이라 할만하다.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이 남자 없는, 핏줄 없는 가족의 탄생을 보여줬다면 <산타렐라 패밀리>는 여자가 없어도 가족을 이루는데 하등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전통적인 가족 형태를 고집하지 않으니 이 영화가 보여주는 대안가족들은 더 없이 행복해 보인다.

(2009.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