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7 프로젝트>(577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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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입이 문제였다. 하정우는 2010년 연말 모 시상식에서 주연상 획득 시 국토대장정에 나서겠다고 공약을 하는 바람에 서울의 예술의 전당에서 해남의 땅끝마을까지 무려 577km에 이르는 대장정에 나서게 됐다. 여기에 <러브 픽션>에서 함께 했던 공효진과 하정우와 연을 맺고 있는 동료들이 합류하면서 거대(?) 프로젝트가 되었으니, <577 프로젝트>는 그 22일간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즉흥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이니만큼 이 영화에는 정해진 시나리오라는 게 없다. 말 그대로 리얼 다큐멘터리인 셈인데, 하여 스타라는 껍질을 벗어젖힌 하정우와 공효진의 ‘민낯’을 볼 수 있다는 건 큰 매력이다. 그뿐이 아니다. 사실 <577 프로젝트>의 가장 큰 재미는 출연진 각자의 사정이 마치 ‘인간극장’을 연상시킬 만큼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데 있다. 스타의 말 한마디로 출발한 영화지만 하정우, 공효진을 제외한 대원들은 모두 무명의 연기자들이다. (그중 김성균은 먼저 촬영한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가 흥행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진 경우다.) 이들에게 국토대장정은 단순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기 위한 중요한 시험대다.

배우로 활동하고 싶지만 찾아주는 영화가 없어 백수 상태거나 이 영화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싶은 이들의 사연은 대장정의 날짜가 거듭되고 체력이 소진될수록 인간승리의 영역으로 옮겨가면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감동의 진폭이 더 큰 이유는 무료한 여정에 웃음을 주려고 하정우가 계획한 장난이 예상과 달리 파장이 커지면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까닭이다. 가볍게 시작된 프로젝트라서 단순히 웃고 즐기는 대장정일줄 알았더니 여기에는 우리 인생사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이 여정이 얼마나 만족스러웠던지 하정우는 이 프로젝트가 끝난 후 다시 한 번 국토대장정에 나서겠다고 또 하나의 공약을 남발(?)했다. 조만간 우리는 <577 프로젝트>의 후속편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movieweek
NO. 544

<나나나 : 여배우 민낯 프로젝트>(My Sel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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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 나 : 여배우 민낯 프로젝트>(이하 ‘<나 나 나>’)는 배우가 곧 감독인 영화다. 인디영화계의 여배우 트로이카로 통하는 김꽃비, 서영주, 양은용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그 자신을 드러낸다. 그리고 부지영 총감독은 이들이 1년간 촬영한 분량을 추려 지금의 형태로 완성했다.

김꽃비는 <똥파리>로 각종 세계영화제를 돌며 알게 된 해외의 영화 친구들과 함께 작업하는 과정을, 서영주는 여배우로서 갖게 된 고민과 아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양은용은 여전히 잊지 못하는 옛사랑에 대한 혼란함과 외로움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나 나 나>는 우리가 스크린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여배우들, 그중에서도 인디영화에서 활약하는 이들의 무대 뒤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다만 그 이전 피사체로써 카메라에 찍히기만 했지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이들의 사연이란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실제로 부지영 총감독은 이들에게 카메라를 나눠주며 구체적인 디렉션은 주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나 나 나>는 말하자면 김꽃비, 서영주, 양은용의 ‘줄탁동시 프로젝트’, 즉 여배우라는 인위적 굴레를 뚫고 나오는 과정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환상보다 현실, 배우보다 자연인, 영화보다 삶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평범한 개인들의 모습이 담겨있을 뿐이다. 관객들에게는 여배우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관음의 기회를 제공할지 모르겠지만 배우들 각자에게는 그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나 나 나>는 공적으로는 다큐멘터리이면서 사적으로는 비디오 다이어리라고 부를만한 작품인 것이다. 

movieweek
NO. 542

<어메이징 스파이더맨>(The Amazing Spid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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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레이미 이후 시리즈의 리부트를 담당할 연출자로 마크 웹이 결정되면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나아갈 바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500일의 썸머>(2009)에서 탁월한 러브 스토리 연출을 선보였던 마크 웹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피터 파커를 데리고 10대의 사랑을 멋들어지게 묘사할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니나 달라, 우리의 주인공 피터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스파이더맨 특유의 책임 의식을 완전히 깨닫기 전 그웬 스테이시와의 사랑을 이어가기에 바쁘다.

피터가 스파이더맨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2002)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에게는 말 못할 과거사가 있다. 실종된 부모의 행방을 밝히는 것. 삼촌 내외와 살고 있던 피터는 우연히 부모의 실종과 관련된 비밀 가방을 발견한다. 이를 가지고 단서를 쫓던 중 아버지의 옛 동료 코너스 박사와 연결된 사실을 알게 된다. 코너스를 찾아간 연구소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그웬와 마주한 피터는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며 관계를 이어간다. 하지만 피터의 도움을 받아 모종의 연구를 진행하던 코너스는 도마뱀 모양의 악당 ‘리저드맨’이 되어 피터와 그웬을 위협한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코믹북 6호(1963)에서 처음 등장한 리저드맨은 원작자 스탠 리의 소개에 따르면, “가장 위협적인 악당이지만 코너스일 때는 심성이 착해 스파이더맨이 제거하고 싶어 하지 않는 캐릭터”다. 마크 웹이 부모의 실종이라는 새로운 설정을 코너스와 연결시킨 건 이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코너스는 리저드맨이 아닐 때 피터에게 아버지와 같은 자상한 면모를 선보인다. 태생적으로 성장영화일 수밖에 없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결국 피터가 부모의 실종(과 삼촌의 죽음)에 따른 아픈 기억을 이겨내고 대체 부모인 리저드맨까지 무찔러야 성립하는 이야기다.

그렇게 해서 피터가 얻게 되는 건 그웬과의 사랑이다. 그래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결과적으로 여러 가지 형태의 부모의 반대(경찰관으로 등장하는 그웬의 아빠는 스파이더맨을 뉴욕의 평화를 위협하는 범죄자로 단정하며 방해꾼 역할을 톡톡히 한다.)를 극복하는 피터와 그웬의 사랑으로 수렴된다. 그 과정이야말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삼촌의 죽음에 큰 책임감을 느낀 샘 레이미의 피터(토비 맥과이어)가 메리 제인(커스틴 던스트)에게 자신의 정체를 최대한 숨기며 사랑을 유예했던 것에 반해 마크 웹의 피터는 자신이 스파이더맨임을 밝혀서라도 그웬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럼 이 영화의 3D는 극중 이야기와 어떻게 조응할까. <스파이더맨>은 고층빌딩 사이를 유영하는 스파이더맨의 수직운동을 강조하며 시리즈의 출발을 상징했고, <스파이더맨2>는 ‘미국 88만원 세대 히어로’의 아픔에 공감한다는 의미에서의 평등을 상징하는 수평 컷을 강조했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3D는 특유의 입체감으로 스파이더맨의 하강운동에서 입이 쩍 벌어지는 스펙터클의 위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언급한 전작들이 이야기와 형식의 일체를 꾀하며 작품성까지 획득한 반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어메이징’한 볼거리 수준에서 머문다.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의 여정을 생각하면 성급한 판단이지만 일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소재의 가능성이 충분히 활용된 영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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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54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Two Weddings And a Fu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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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 감독의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하 ‘<두결한장>’)은 퀴어 영화다. 게이(와 레즈비언)에 관한 영화란 얘기다. 그렇다고 특별한 이야기란 의미는 아니다. 같은 성(性)이 대상이라는 점에서 이성애자와 다를 뿐 동성애자 역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욕망하는 건 같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란 이유로 차별 받고 그로 인해 정체성을 숨기는 탓에 이들의 사연은 좀 더 특별해질 수밖에 없다.

민수(김동윤)와 효진(류현경)은 막 결혼식을 마쳤다. 근데 신혼여행을 가던 길에 효진이 차를 갈아탄다. 민수의 얼굴에는 아쉬워하는 표정이 없다. 오히려 기뻐하는 인상이 강하다. 위장결혼이기 때문이다. 게이 민수는 아들을 이성애자로 아는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효진은 아이를 입양, 레즈비언 커플인 서영(정애연)과 가족을 이루고 싶어서다. 하지만 효진의 과거를 아는 누군가의 폭로 때문에 이들의 위장 결혼은 위태로워진다.

김조광수 감독은 단편(<소년, 소년을 만나다><친구사이?>) 시절부터 게이의 사랑을 ‘샤방샤방’하게 그려왔다. 동성애가 죄도 아닌데 어둡게 묘사하는 것은 사실적이지 않다는 이유가 하나요, 게이들에게 세상 밖으로 나와 좀 더 떳떳하게 살자고 ‘커밍아웃’을 독려하기 위해서다. <두결한장> 역시 명랑하고 발랄한 게이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한편으로 정체성 때문에 어쩔 수없이 겪게 되는 아픔을 감내하고 극복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 과정의 연출이 김조광수 감독의 작품을 다른 퀴어 영화들과 다르게 만드는 지점이다.   

그러니까, <두결한장>에는 동성애의 사랑이라고 해서 키스 정도는 등장하되 파격적이라 할 만한 베드신은 묘사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15세 관람가다!) 충격을 주기보다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동성애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한 목적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 영화의 관점은 극 중 민수와 효진을 비롯한 동성애자들에게 적대적이거나 거부감을 갖는 이들을 묘사하는 연출에서도 잘 드러난다. 예컨대, 민수가 호모포비아 택시 기사 때문에 친구를 잃는 순간에도 김조광수 감독은 비난하거나 단죄하는 법이 없다.

이는 이성애 중심 사회라는 견고한 편견의 벽을 허물어뜨리기 위해 동성애자 그들 자신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의 우회적 반영이다. 커밍아웃에 대한 강요는 아니지만 <두결한장>은 결국 민수가 겪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성정체성을 밝히지 않을 경우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동성애를 너무 어둡게만 보여주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밝게만 묘사, 게이와 레즈비언을 미화하는 것도 일종의 편견이 될 수 있다는 김조광수 감독의 세심한 의도가 어렵지 않게 읽히는 것이다.

이처럼 <두결한장>에는 동성애의 진실과 오해에 대한 사연이 다양한 층위로 존재한다. 김조광수 감독의 첫 장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에피소드 위주의 전개가 단편 시절의 호흡을 연상시킨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동성애에 대해 알려줄 것이 많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그만큼 한국 사회가 여전히 동성애에 대해서는 경직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의 반증인데 그렇기 때문에 <두결한장>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한편으로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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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 plus
NO. 63

<타부>(Ta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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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부>는 포르투갈 출신의 미겔 고미스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혁신적인 미학을 보여준 작품에 수여하는 알프레드 바우어상(2007년 박찬욱 감독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로 수상한 경력이 있다.)을 획득했고, 데뷔작 <당신에게 어울리는 얼굴>(2004)과 두 번째 장편 <우리가 사랑하는 팔월>(2008)로 좋은 평가를 얻었지만 미겔 고미스는 한국의 영화 팬들에게는 여전히 미지의 감독으로 통한다.

제목이 직접적으로 명시하듯 <타부>는 일종의 ‘금지된 사랑’을 다룬다. 그런데 영화의 구조는 흥미롭다. 1부에 해당하는 ‘실낙원’에서는 기행을 일삼는 노부인의 미스터리한 사연을 현재 시점의 포르투갈 리스본을 배경으로 따라간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 이후 이탈리아 출신의 노신사가 등장해 그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이를 내레이션 삼아 2부인 ‘낙원’이 진행된다. 50년 전 아프리카의 타부로 불리는 깊은 산작으로 돌아가 당시 유부녀였던 젊을 적 노부인과 노신사가 나눴던 몰래한 사랑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리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러브스토리이지만 <타부>는 이를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미학적인 빛을 발한다. 고미스 감독이 보기에 사랑이란 시간과 공간으로 기억되는 지극히 개인적인 역사다. 영화를 이를 명제삼은 듯 현재와 과거, 포르투갈과 아프리카와 같은 시공의 조건을 지표면에 깔고 그 위에 사랑(의 감정)과 관련한 여러 가지 영화적 실험을 퇴적하는 연출을 선보인다.

그래서 <타부>의 핵심적인 정서는 ‘노스탤지어라’할만 하다. 실제로 고미스 감독은 제목이 동일한 F.W.무르나우의 유작 <Tabu: A Story of the South Seas>(1931)를 적극 끌어와 이를 환기하는 방식을 취한다. 부족의 금기를 어긴 폴리네시아 섬 소년과 소녀의 사랑을 흑백의 기록물처럼 담은 무르나우의 영화를 향수하듯 비슷한 정서와 방식으로 <타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다만 시공이 중요하게 기능하는 영화답게 고미스 감독은 자신만의 시공간 개념을 인장으로 새겨 넣는 걸 잊지 않는다.  

예컨대, 흑백필름이되 배경이 현재인 ‘실낙원’은 35mm로, 과거인 ‘낙원’은 16mm로 촬영해 당대의 영화적 스타일을 반영한다. 또한 각각의 에피소드별로 발성영화와 무성영화의 형식을 차용해 보편적인 이야기를 좀 더 특별하게 보이게끔 연출한다. 특히 이국적인 아프리카의 풍광에 팝송을 연주하는 서구인 밴드를 배치하는 방식의 연출은 현실과 환상이 혼재하는 양상으로 드러나며 색다른 영화 보기의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극 중 대비되는 온갖 것들의 요소를 혼합, 다양한 결을 쌓아가며 그 충돌 지점에서 새로운 미학을 생성해낸 결과다. 만약 이번 전주영화제에서 딱 한 편의 영화만 골라야한다면 <타부>는 그에 걸맞은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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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전주영화제 공식 데일리
NO.1

<해로>(Hand in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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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사랑합니다>(2010)는 ‘노인의 사랑’에 집중함으로써 젊은 관객 위주의 콘텐츠가 절대적인 한국영화계의 빈틈을 공략한 영화로 평가받는다. 최종태 감독의 <해로>는 그 기세를 이어받은 작품으로 황혼의 사랑을 그린 또 한 편의 ‘어른 영화’라 할만하다. 다만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어른들의 사랑이 폭넓은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로맨틱 코미디의 변형태로 기능했다면 <해로>는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문제작에 가깝다.

민호(주현)와 희정(예수정)은 40년 넘게 결혼생활을 이어온 부부다. 아들을 프랑스로 유학 보내고 단 둘이 오붓하게, 하지만 정 하나만을 가지고 관성적으로 부부생활을 이어가던 이들에게 경천동지할 일이 닥친다. 가벼운 뇌졸중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한 민호에 이어 희정이 말기 암 진단을 받은 것. 그동안 희정에게 소홀했던 것이 미안해진 민호는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기에 이른다. 병이 찾아오면서 서로가 더욱 절실해진 이들은 부부간의 사랑을 다시금 느끼게 되고 예정된 죽음이 가까워오자 한낱 한시에 함께 죽자는 약속을 한다.

<해로>가 원작삼은 핀란드 소설가 타우노 일리루시의 <Hand in Hand>(국내에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동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제목으로 두 차례 발행됐지만 현재는 절판된 상태다.)는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노부부가 홀로 생에 남는 것이 싫어 함께 죽음을 선택한다는 결말로 인해 유럽과 미국에서 굉장한 이슈를 불러왔다. 다만 그 쟁점이 논쟁적이면서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동반자살의 전제가 서로에 대한 절실한 사랑인 까닭이다. 이승에서 얻은 인연을 저승으로까지 이어가고자 하는 생사를 초월한 사랑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최종태 감독은 이를 그대로 스크린에 가져오되 생과 사가 전혀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 긴밀하게 이어진 것임을 상영 내내 강조한다. 민호와 희정 부부가 별 탈 없는 생활을 이어가는 극 초반에는 폐차 직전의 자동차 두 대가 함께 있는 모습을 몽타주하며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암시하는가 하면, 동반자살을 앞두고 민호가 생명력 넘치는 꽃들로 집안을 장식한 미장센에서는 죽음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식이다. 이와 같은 연출에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시작이라는 이 영화의 핵심적인 세계관이 짙게 배어있다.

실제로 죽음의 그림자가 덮치기 이전 노부부의 삶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서로에 대한 무료한 감정 때문에 생명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에 반해 죽음이 얼마 남지 않자 이들은 서로에게 더욱 애착을 느끼면서 오래된 부부만이 가질 수 있는 남다른 감정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든 사랑과 설렘, 그중에는 죽음의 고통을 이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자유의지도 포함된다. 배우자의 고통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죽음을 초월한 자유에 이르게 되는 민호화 희정 부부의 사랑이 완성되는 것이다.

<해로>는 제목처럼 부부가 한평생 같이 살며 함께 늙고 죽는다는 것에 대한 영화다. 죽음의 시기를 선택하고 죽음을 초월한다는 설정 때문에 이들의 사랑이 특별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이 영화는 가장 보편적인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바로 삶의 찬미. 죽음을 가까이 하기 때문에 오히려 삶이 소중해지는 경험을 관객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민호가 병상의 희정을 향해 “우리에게 지금 시간 많아”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현재의 삶이 더욱 소중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죽음이 가르쳐주는 지혜다. <해로>는 사랑이 무엇인지, 평생을 함께한다는 가치가 무엇인지, 결과적으로 행복이 무엇인지 죽음을 통해 포장하지 않고 과장하지 않는 시선으로 어른의 면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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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58

<가비>(加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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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비>는 장윤현 감독의 연출력이 2000년대 들어 시효가 다 됐음을 <황진이>(2007)에 이어 다시 한 번 증명한다. 남자에 의해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여자 캐릭터, 애국심을 건드려 울음을 조장하는 이야기, 그럼으로써 전체적으로 시대와 역행하며 촌스러워지는 영화적인 만듦새까지, <가비>는 저 먼 지방 변두리에서나 찾을 법한 다방에서 마시는 싸구려 커피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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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호

<화차> 변영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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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화차>는 변영주 감독의 8년만의 신작이다. 영화 한 편을 완성하는데 걸린 시간치고는 꽤나 길어 보인다. 그런데 영화라는 건 제작과 촬영 기간 외의 숙성의 시간이 더 필요한 법이다. 그러니까 변영주 감독은 다른 감독에 비해 숙성의 시간을 더 거쳤다. 더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더 좋은 감독으로 거듭나기 위한 그 ‘더’의 시간을. (영화의 재미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스포일러가 소량 포함되어 있습니다.)

2007년이었을 거다. 개인적으로 미야베 미유키 소설의 도도한 물결에 발을 적시고 있을 때 변영주 감독이 <화차>를 연출할 거란 소식을 들었다. 어머나, 헛소문인줄 알았다.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1995)로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 된 후 충무로로 넘어와 전경린의 동명소설 <밀애>(2002), 발레 하는 남학생들이 등장하는 <발레 교습소>(2004)를 만드는 등 장르와는 전혀 무관한 감독이지 않았던가. 

<화차>를 만나다

<화차>를 통해 미스터리라는 장르물로 형식 전환을 꾀한 계기가 있었다. 사실 그녀는 <낮은 목소리>의 후광을 등에 업고 상업영화를 만들었지만 <밀애>와 <발레 교습소> 모두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특히 <발레 교습소>는 당시 국민그룹 ‘GOD’를 갓 탈퇴한 윤계상이 처음으로 주연을 맡으며 어느 정도의 기대를 모았지만 전국 관객 8만 명을 간신히 넘기는 수치로 흥행에 참패를 기록했다. 

변화하지 않으면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초조한 마음에 변영주 감독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자신의 지난 연출가 생활을 뒤돌아보며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싶어 친한 PD와 함께 무작정 여행가방을 쌌다. “그때 가네시로 가즈키의 <레볼루션 No.0> <GO> 같은 책을 가져가 읽었다. 무릎, 탁! 내가 <발레 교습소>에서 못한 게 이거구나. 유쾌하게 접근했어야 할 아이들의 얘기를 너무 꼰대처럼 바라봤구나.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너무 부끄러웠다.”

<발레 교습소>의 패인을 분석한 후 변영주 감독은 가까운 서점을 들러 당시 가장 잘 나가는 일본의 장르소설을 모두 사들여 독파했다. 그때 만난 작품이 바로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였다. 장르의 형식을 빌려 현실의 이야기를 펼치는 <화차>를 보며 그녀는 발상의 전환을 가질 수 있었다. “장르라는 건 어떻게 이야기를 다루느냐에 따라서 대중에게 폭넓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을 가졌다. 그 당시 내가 쓰고 있었던 시나리오는 자전적인 이야기였다. 소위 386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이 2000년대 들어서면서 망가지는 모습이었는데 뭐, 영화로 만들면 재미없는 거지.” 그때 마침 <화차>의 연출 제안이 들어왔고 따지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예” 덜컥 물어버렸다.

<화차>는 갑자기 사라진 약혼녀를 찾아가는 한 남자의 여정을 통해 갖가지 욕망으로 얼룩진 우리 시대의 초상을 응시한다. 문호(이선균)는 선영(김민희)과 함께 부모님을 뵈러가다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그녀가 사라지자 전직형사 출신의 사촌 형 종근(조성하)에게 행방을 의뢰한다. 종근은 그 과정에서 그녀의 실제 이름은 경선이고, 선영의 모든 것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경선의 가짜 선영 행세가 신분상승, 부의 획득과 같은 세속적 욕망에서 비롯됐음을 확인하는 것. 그래서 이 영화는 미스터리라는 인위적인 장르의 틀을 취하지만 등장하는 인물과 욕망은 모두 우리가 발 딛는 현실에서 출발한다.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는 극 중 교코, 그러니까 영화의 경선에게 네가 잘못해서 빚을 진 게 아니다, 시스템이 그렇게 몰고 간 거다, 사회에 도움을 요청하라, 이다. 지금 2000년대 한국에서 그 얘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원작소설과 다른 접근법을 가져가기 위해 변영주 감독은 시나리오를 무려 20고까지 썼다. 그래서 얻게 된 지금의 버전은 관객이 경선에게 연민이나 동정심 따위를 갖지 못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선영을 죽인 사람이 경선이라는 사실이 잊히지 않도록 하는 게 굉장히 중요했다. 경선’도’ 불쌍하네 이건 안 된다. 관객이 스스로 그런 감정을 갖게 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영화가 그걸 유도하면 못된 작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변영주 감독은 예쁘기 때문에 동정 받아야 하는 여자 캐릭터 설정을 두드러기 날 정도로 싫어한다. 오히려 예쁜 여자여서 더 벌을 받아야 해, 라고 생각하는 쪽에 가깝다. 그 자신이 예쁘게 생긴 게 아니어서? 물론 그건 아니고. 그 자신이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의 심리를 잘 파악해서다. 오히려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에 취향의 더듬이가 더 끌린다. 해석할 여지가 더 많기 때문이라는데 그렇게 변영주 감독은 여자 캐릭터와의 거리 두기가 가능해 남(<화차>)과 여(<밀애>) (그리고 노(<낮은 목소리>)와 소(<발레 교습소>)) 모두에게 시선을 고루 나눠주는데 능한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좋은 사람을 만나다

그것은 그녀가 특정한 성(性) 혹은 위치라는 자각 없이 처음부터 영화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형성된 영화관(觀)이라 할만하다. 실제로 변영주 감독은 영화판만큼 여자가 편견 없이 일할 수 있는 분야가 없다고 말한다. “단적으로 여자 스태프에게 커피를 타오라고 하는 경우가 없다. 1990년대 이후 영화판이 물가리가 되면서 젊은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버렸다. 외국에서는 박찬욱 감독이 젊은 축에 속하는데 한국에서는 어른이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한국의 영화 현장은 권위적이기보다는 가족적이다.”

<화차>의 현장이 실제로 그랬다. 배우 김민희는 변영주 감독을 처음 본 순간 카리스마가 느껴져 무서웠다고 회고하지만 지금은 <화양연화> 같은 영화를 연출해 자신을 한국의 장만옥으로 만들어달라고 장난처럼 떼를 쓰는 중이다. 이선균의 경우, 변영주 감독을 만났던 첫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대낮에 모처의 음식점에서 수육을 앞에 두고 각각 소주 10병씩을 들이키며 새벽 4시까지 토론을 빙자한 잡담을 나누다 즉석에서 출연을 결정했을 정도다. 이들과 함께 변영주 감독은 <화차> 홍보를 위해 난생 처음 <놀러와>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까지 했다. 그녀는 별 말 하지도 않았는데 함께 출연한 배우들이 키득키득 웃어주는 바람에 가족 같은 유대감을 느껴 뿌듯했다.  

원래 다정다감한 성격이 아닌 변영주 감독이 함께한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 건 현장에서 화를 내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를 시작하면서 그녀는 철직처럼 한 가지만은 꼭 지켜온 것이 있다. “평소 친절한 타입의 사람이 아니다. 단, 영화 현장에서는 친절하다. 감독은 배우와 스태프에게 설명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사람 앞에 가서 조용히 얘기한다.” 키가 크고 덩치가 있는 변영주 감독의 겉모습만 보면 귀에 대고 소곤소곤 얘기할 사람 같지는 않지만 <화차>의 홍보 때마다 영화보다 배우에 대한 자랑을 장시간 늘어놓으니, 세상에 팔불출도 이런 팔불출이 없다. 

이는 그녀가 20년 가까이 감독으로 충무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특유의 생존법이기도 하다. 변영주 감독은 영화계에 입문하려는 이들에게 한 가지 훈련을 받으라고 조언한다. 자기의 욕망을 풀어 설명하는 능력을 반드시 배우라는 것. 영화 현장이라는 곳이 수십 억 가까운 돈이 오가고 수많은 인원의 의견과 선택이 빈번한 곳이니 직설적이지 않으면 오해가 발생한 소지가 빈번하고 그것이 결국 인간관계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듣다 보면 영화인이 아니라 삶의 미스터리에 통달한 현자(賢者)가 내 옆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좀 짓궂은 질문을 던져봤다. 영화와 삶,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이냐고. 거두절미하고 “삶”이라는 대답이 빛처럼 입에서 발사됐다. “내게 삶은 영화보다 중요하다. 감독도, 배우도, 스태프도 영화인이기 이전 사람이다. 영화라는 것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삶이 그 바탕일 수밖에 없다. 좋은 사람이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겠나.” 변영주 감독의 대답을 이어 받아 이렇게 질문하면서 글을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럼 <화차>는 좋은 영화인가? 좋은 사람이 만들었다면 그렇지 않을까.

사진 최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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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호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We Bought a Z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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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론 크로우 감독이 예전 같지 않다. <엘리자베스 타운>(2005)에 이어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가 다시 한 번 증명한다.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벤자민 미의 동명 에세이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아내를 잃은 주인공 가족의 이야기다. 얼떨결에 동물원을 매입하면서 그곳의 직원과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되찾지만 상처에만 너무 초점을 맞추다보니 극복의 과정이 너무 일사천리로만 진행된다. <제리 맥과이어>(1996) <올모스트 페이모스>(2000)에서 극 중 인물의 구멍 난 가슴을 섬세하고 따뜻하게 메우는 데 특기를 보인 감독의 전작을 생각하면 더욱 비교되는 대목이다. 그것은 록이나 메이저리그 야구와 같은 미국의 대표적인 문화에 익숙한 그의 취향 탓일까. (그는 ‘롤링스톤’의 음악평론가 출신이기도 하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에서는 다양한 동물의 면모만 겉핥기 할 뿐, 동물원의 문화라 할 만한 요소를 벤자민 가족의 사연에 제대로 접합하지 못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아무리 가족영화라지만 천하의 맷 데이먼과 스칼렛 요한슨을 데려다 놓고 키스 한 번으로 마무리하는 러브스토리라니. (그래서 오히려 엘르 패닝이 등장하는 아이들의 러브스토리가 더 돋보이기는 한다.) 이래저래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는 영화가 가진 가능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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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호

<댄싱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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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 표 코미디는 늘 뻔하다. 그가 직접 연출하는 작품이든, <댄싱퀸>처럼 제작에 참여하는 영화이든 마찬가지다. 서울시장 후보자 남편과 걸 그룹 지망생 부인의 이야기를 통해 말장난과 슬랩스틱 류의 단세포적 코미디를 구사하면서 한국 사회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는 양 영화를 포장한다. 이건 연출력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보고 나면 진짜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에 지친 관객에게 2시간 동안이나마 활력을 주는 방법이라고 해도 개인적으로는 동의할 수 없다. 관객에 대한 위안이 항상 1차원적인 코미디를 통해 이뤄질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윤제균 표 코미디의 좌표를 다시금 살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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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