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가 만든 20대의 영화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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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극장가는 한국영화의 군웅할거 시대다. 이정범 감독의 <아저씨>가 8월 4일 개봉 이후 한 달 넘게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데 이어 <해결사> <시라노 ; 연애조작단>(이하 ‘<연애조작단>’) <심야의 FM> <부당거래> 그리고 <초능력자>까지, 한국영화는 제목만 바꿔가며 3달 넘게 선두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전 세계 극장가의 90% 이상을 점유한다는 할리우드라지만 한국영화 앞에서는 간신히 명함만 내미는 신세로, 꼴이 말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영화 위기라고 말들이 많은데 극장가 풍경만 봐서는 썩은 홍시에 이도 안 들어갈 소리처럼 공허할 뿐이다.

한국영화의 강세를 지켜보는 개인적인 심정은 사실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영화가 흥행했다고 내가 돈 번 것도 아닌데 뭐, 그런 얘기는 아니고. 너무 기성품 냄새가 강해서 이러다가 충무로가 급격히 노쇠화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예후가 심상치 않은 것이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을 보자면, 원빈(<아저씨>), 황정민(<부당거래>), 강동원(<초능력자>) 등 인기가 검증된 배우들이 주연으로 출연하고 무엇보다 탐정물(<해결사>), 로맨틱코미디(<연애조작단>), 스릴러(<심야의 FM>) 등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된 장르에 충실하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개봉 첫 주말의 흥행 결과가 영화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제작사의 과감한 도전보다는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겠다는 ‘안전빵’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요컨대, 지금 충무로에서 젊은 감각으로 무장한 20대의 영화를 찾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영화판, 특히 메이저 시장에서 20대가 주도하는, 20대를 위한, 20대의 영화는 언제부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신작영화가 쏟아지고 더불어 새롭게 데뷔하는 감독의 수는 넘쳐나지만 주목받는 20대 감독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올해 데뷔한 감독 중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장철수는 37살(1974년생)이고 <초능력자>의 김민석과 <불청객>의 이응일은 33살(1977년생)이며 그나마 어린 축에 속하는 <해결사>의 권혁재는 30살(1980년생)이다. 이는 올해만 유독 두드러진 현상이 아니다. 2009년 최고의 장편 데뷔작이었던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은 1975년생이었다. 2008년의 신인감독이라 할 만한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은 1974년생, 2007년 <기담>을 발표하며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평단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정가형제의 정범식, 정식 감독은 각각 1970년생, 1975년생으로 알려졌다.

메이저에서 데뷔하는 감독의 절대수가 30대이다 보니 충무로에는 청춘물이라고 부르는 20대 영화(와 10대 영화)가 거의 전멸상태에 이르렀다. 물론 올해 개봉작 중 신연식 감독의 <페어 러브>와 김현석 감독의 <연애조작단>이 20대의 사랑을 이야기하긴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페어 러브>는 아빠뻘 남자와 여대생의 사랑을, <연애조작단>은 오래된 사랑의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30대 남자의 정신적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묘사되는 등 온전히 20대의 이야기로만 보기에는 나이 많은(?) 감독(신연식 1975년생, 김현석 1972년생)들의 20대에 대한 판타지 혹은 선입견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올해 우리가 영화를 통해 보게 된 20대의 모습이란 30대와 40대 감독의 시선이라는 필터를 통해 걸러진 단편적인 풍경이었을 뿐이다.

영화는 우선적으로 유희를 목적으로 하지만 그 또한 사회 반영을 전제로 한다. 즉, 내용 뿐 아니라 제작을 둘러싼 온갖 환경이 작용한 결과물로서의 영화 역시 그 시대를 담고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20대 감독이 전무하다는 건 20대 젊은이들의 사회 활동의 체증을 증명하는 영화적 반영에 다름 아니다. 지금 한창 <부당거래>로 흥행은 물론 좋은 평까지 얻고 있는 류승완 감독의 경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를 통해 화려하게 장편 데뷔했던 당시의 나이가 28살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독립영화계에서 출중한 재능을 보인 젊은 감독들은 한국영화 호시절의 분위기를 타고 심심찮게 메이저 데뷔를 이룰 수 있었더랬다. 그에 반해, 경기침체에 따른 극심한 투자 난(亂)을 겪고 있는 지금의 충무로에서 여러 루트를 통해 재능을 인정받은 젊은 감독들의 메이저 데뷔는 ‘언감생심‘한 일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스크린을 통해 20대의 현실을 목격하고 경험하는 일은 낯선 풍경에 가까워졌다.

개인적으로 10대와 20대 시절을 통과했던 1980,90년대만 하더라도 내 세대의 관심사와 고민이 투영된 영화를 보는 일은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이들은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1987) <내 사랑 동키호테>(1989) 등을 보며 젊음의 낭만과 고민을 공유했고, 1990년대 입시 교육을 받았던 이들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 <있잖아요 비밀이에요>(1990)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1992) 등을 통해 희망과 위안을 얻기도 했다. 또한 컴퓨터가 급속도로 보급되던 시기에 등장했던 <접속>(1997)의 경우, PC통신과 채팅에 열광하는 당시 젊은이들의 세태를 적극적으로 영화에 담아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젊은 세대와 호흡하길 즐겼고 그들의 사연을 이야기의 보고로 삼았던 충무로가 20대의 재능과 그들의 영화를 외면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연유가 있다. 우선적으로, 영화가 품고 있는 내적 질보다는 이름난 배우들을 앞세운 과도한 홍보, 자극적인 볼거리와 거대 제작비의 스케일을 앞세운 예고편 등 외적 포장물이 흥행의 결과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흥행력이 검증된 기성감독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있다. 그러다보니 젊은 예비 감독들은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스태프 생활이 길어지면서 데뷔 또한 늦어지는 악순환을 되풀이한다. 더군다나 1990년 중반 이후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젊은 제작자와 프로듀서들이 이제는 충무로의 기성세대가 되어 젊은 감각을 잃은 것 역시 주요한 원인으로 제기된다.

혹자는 미래가 보장된 직장과 안정적인 삶에 개인적 취향과 자유 의지가 저당 잡힌 사회 시스템 하에서 20대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을 이유로 들기도 한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온전한 지적은 아니다. 젊은 세대들은 여전히 그들만의 언어와 몸짓으로 특정문화를 조성해 꾸준히 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남자 1명을 가운데 놓고 30명의 여자가 사랑 경쟁을 벌이는 TV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가 하면 눈두덩이 시커먼 갸루 화장으로 자신을 드러내는데도 거침이 없다. 단순히 소비문화에서만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낙과나 흠집 난 과일을 판매하는 ‘B급 농산물 중개상인’, 아티스트와 동네 주민을 이어주는 ‘동네문화 기획자’ 등 새로운 직업을 창조하는데 가장 활발한 이들도 바로 20대다.

2000년대 초반 ‘귀여니’를 앞세운 인터넷 소설이 한국을 강타한 적이 있었다. 그때 충무로는 <늑대의 유혹>(2004) <그놈은 멋있었다>(2004) <내 사랑 싸가지>(2004) 등을 영화화하며 발 빠른 움직임을 보여줬다. 다만 그들의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스크린에 옮기려는 고민 없이 인터넷 소설이 구가하던 폭발적 인기의 덕을 보려 했던 까닭에 반짝 흥행에 그친 전례를 가지고 있다. 그 후로 20대의 영화는 적어도 메이저 영화사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시 말해, 지금 충무로를 이끄는 오피니언 리더들에게서 20대 문화 발굴의 의지를 읽을 수 없고 젊은 재능에 충분한 기회를 주려는 시도는 더더욱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럼으로써 충무로 스스로가 한국영화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죽이고 노쇠화를 재촉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더한다.

그렇다고 한국 영화계에서 20대가 만든, 20대의 영화가 완전히 실종된 것은 아니다. 독립영화 쪽만 하더라도 각개전투를 하듯 젊은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개중에는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1982년)처럼 영화제를 통해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재능이 있기도 한데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좀 더 많은 극장에서 더 많은 관객들과 20대의 현실을 반영한 작품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 영화계가 지향해야 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지금 극장가에서 한창 잘 나가고 있는 한국영화라고 하지만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젊은 피의 수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영화에 열광을 보내는 많은 외국평자와 관객들이 아쉬워하는 사실 중의 하나가 언제까지 임권택, 홍상수, 김기덕, 박찬욱, 봉준호에게만 의지할 수 있느냐는 거다. 한국 관객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의 영화, 잘 만든 장르영화와 기획영화도 필요하지만 고인 물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어줄 신인류, 신감각의 영화도 고픈 것이다. 20대가 만든 20대의 영화를 발품 팔지 않고 가까운 극장에서 보고 싶다.

일러스트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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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NA
2010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