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Repul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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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폴란스키는 장편 데뷔작 <물속의 칼> 완성 이후 폴란드인의 삶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며 공산당에 대한 반감을 표출했다는 이유로 의회로부터 고발 조치를 당했다. 예술을 옥죄는 환경에 환멸을 느낀 로만 폴란스키는 고국을 탈출해 영국으로 향했고, <쉘부르의 우산>의 카트린 드뇌브를 캐스팅해 <혐오>를 완성했다. 연약한 감정의 틈 속에 똬리 튼 검은 사연을 탐구하길 즐겼던 폴란스키는 <혐오>를 통해 성적 폭력에 따른 강박증으로 무너진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에 주목했다.

뷰티 살롱에서 근무하는 미모의 여인 캐롤(카트린 드뇌브)은 성적으로 억압된 기억에 사로 잡혀 늘 불안에 시달린다. 직장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 것은 물론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에게마저 혐오감을 드러내는 그녀는 언니 소유의 아파트에서 거의 칩거하다시피 생활한다. 마침 언니가 남자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나며 집에 홀로 남게 되자 캐롤은 깊은 우울 속으로 빠져들고 급기야 강간당하는 환각에 사로잡힌다.

선명한 플롯이 주가 되는 대다수 영화들과 달리 <혐오>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 위에서 광기를 드러내는 캐롤의 심리적 지옥도를 그려낸다. 인간 감정의 깊은 우물 속을 헤엄쳐 문제작을 건져내는 폴란스키의 연출의 특징은 늘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하고는 했다. 입버릇처럼 “이야기의 힘에 매혹된다”고 말하지만 이야기를 시각화하는 연출을 보노라면 그가 추구하는 영화의 개념은 회화에 가깝다. “영화는 그림이나 조각과 같다. 영화는 바라보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혐오>가 극중 아파트와 같은 좁은 공간을 배경으로 삼은 것도 폴란스키의 영화적 성향을 반영한다. 아파트처럼 일상적인 장소를 환각의 지옥도로 그려내기 위해 그가 추구한 표현주의적 면모는 화가의 손길을 연상시킬 만큼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털이 모두 벗겨진 채 말라비틀어진 토끼 고기랄지, 귀청을 찌르는 초침 소리에 맞춰 벽이 쩍쩍 갈라지는 장면은 단순한 시각적 스타일을 넘어 보는 이의 심리를 동요케 할 정도로 충격을 선사한다. 특히 강간당하는 캐롤의 환각을 표현하기 위해 좁은 복도의 벽을 뚫고 나오는 수많은 손의 이미지는 세계영화사를 바꾼 문제적 장면, 아니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인상적인 이미지뿐 아니라 그 속에는 불안에 잠식당한 개인, 무의식적 폭력에 대항하는 인간의 싸움이라는 주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후에도 <테넌트> <악마의 씨> <차이나타운> <비터문> <피아니스트> <유령작가>와 같은 걸작을 쉬지 않고 발표했지만 <혐오>가 중요한 평가를 받는 이유는 폴란스키 영화의 원형이라 할 만한 것들을 대부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악마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폴란스키의 영화를 두고 혹자는 그의 비극적인 삶을 이유로 제시하기도 한다. 실제로 로만 폴란스키에게 삶은 거대 악에 맞선 투쟁이자 싸움이었다. “친구들이 서구에서 사는 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행복해할 때 나는 가능한 빨리 폴란드를 탈출하고 싶었다.”는 그의 심리적 압박감은 <혐오>로 보건데 그대로 영화 속에 적용해도 무방하다.

<혐오>와 함께 곧잘 ‘아파트 삼부작’으로 소개되는 <테넌트>와 <악마의 씨>는 극단적 감정의 세계를 넘어 거대 악의 탐구로 옮겨간 폴란스키의 영화적 진화의 형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악마의 씨>에서 악마의 자식을 낳은 로즈마리(미아 패로우)가 엄마의 본능으로 아이를 품는 장면은 폴란스키의 악에 대한 견해를 잘 보여준다. 일개 개인의 악마성이 ‘씨’가 되어 세상에 폭력과 악을 퍼뜨린다는 것. 이처럼 그의 필모그래프는 인간의 악마성, 그리고 거대 악에 맞선 개인의 비극적 싸움, 두 가지 형태로 분류된다. 모두 실체를 가늠할 수 없는 인간성의 극단으로 귀결되는데 <혐오>는 그의 영화적 주제가 가장 명징하게 드러난 경우라 할 만하다. 더군다나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심리를 구체화하기 위해 동원된 회화적 이미지는 그의 영화가 여전히 영화 팬들을 사로잡는 결정적 이유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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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2011.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