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볼리끄>(Les Diaboliq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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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볼리끄>의 영화화 판권을 두고 앙리 조르주 클루조와 알프레드 히치콕이 맞붙은 일화는 유명하다. 피에르 부왈로와 토마스 나르세작의 <악마 같은 여자 Celle qui n’était plus>판권 확보를 위해 두 감독이 모두 달라붙었다가 히치콕에 몇 시간 앞서 클루조 감독이 극적으로 구입한 것. 이를 놓친 히치콕의 격노는 대단했는데, (이 때문에 부왈로와 나르세작은 히치콕을 위해 특별히 <죽음의 입구 D’Entre les Morts>를 집필했고 후에 <현기증>(1958)으로 영화화됐다.) 그가 평생의 라이벌로 생각한 감독이 앙리 조르주 클루조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 심정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후에 제레미아 체칙 감독이 샤론 스톤과 이자벨 아자니를 기용해 리메이크하기도 했던 <디아볼리끄>는 1명의 남자를 사이에 두고 2명의 여자가 신경전을 벌이는 빗나간 사랑의 정략에 대한 영화다. 기숙사 학교 교장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셸 들라살은 인정이라고는 코딱지만큼도 없는 인물이다. 학생들에게는 싸구려 음식을 먹여도 양심의 거리낌이 없고, 무엇보다 부인 크리스티나와 정부 니콜에게 서슴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는 폭군이기도 하다. 이에 격분한 크리스티나와 니콜은 공모 하에 미셸을 살해하려 한다. 니콜은 위스키에 독약을 타고 크리스티나는 남편을 외딴 방에 불려들어 일을 꾸미는 것. 하지만 그 후로 미셸의 양복이 배달되고 그를 봤다는 목격담이 전달되면서 크리스티나와 니콜은 공포에 휩싸인다.  

클루조와 히치콕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온도 차에 있다. 히치콕이 스크루볼 코미디의 감성으로 스릴러를 운용함으로써 따뜻한 감성을 발하는 것에 반해 <디아볼리끄>의 클루조는 사랑을 소재 삼아도 남녀 사이에 권력 관계를 형성해놓고 약육강식의 세계 속에 약자의 위치를 점한 인물을 메몰 차리만치 몰아붙이는 것이다. 안 그래도 클루조의 영화 속에서 불운한 최후를 맞는 인물은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고향으로 갈 날을 학수고대하는 트럭 노동자(<공포의 보수>)이거나 남편에게 대접 못 받아, 천성적으로 심장은 약해, 가까운 인물에게 이용당하는 여자(<디아볼리끄>)처럼 약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클루조의 미스터리는 종종 호러의 관점에서 해석되기도 한다. <디아볼리끄>에서 관을 연상시키는 기다란 네모 상자는 미셸을 물속에 처넣어 익사시키는 욕조로, 시체를 숨기기 위한 옷상자로, 실제 관으로 형태를 달리하며 극중 중요한 도구의 콘셉트를 이루는 것은 물론 극한 상황에 처한 여자, 그중 크리스티나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대리하기도 한다. 그것은 미셸로 상징되는 기득권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해 살해를 실제로 옮기는 행위의 과감함, 하지만 그 자신의 행위가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더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크리스티나의 처지, 즉 남성에 의해 삶의 지위를 박탈당하는 여성의 공포가 담겨 있는 것이다.

클루조의 메마르고 음산하며 한기가 서려 있는 <디아볼리끄>를 감상한 히치콕은 이를 넘어서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절치부심했고 <사이코>(1960) 완성 후에는 그의 영화가 훨씬 뛰어나다며 호들갑스러운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원작소설 <사이코>의 저자 로버트 블록은 어느 인터뷰에서 그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호러영화로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디아볼리끄>를 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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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바캉스 서울
(2011.7.28~8.28)

<콰이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


사용자 삽입 이미지프랑스 소설 <Le pont de la rivière Kwai>을 영화화한 <콰이강의 다리>는 데이비드 린의 필모그래프에서 분기점 같은 작품이다. <밀회> <올리버 트위스트> 등 소박한 규모의 이야기를 만들었던 린은 <콰이강의 다리> 이후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 등 대작영화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개인사, 이국을 무대로 한 대자연의 스펙터클 등 <콰이강의 다리>에는 이후 린의 영화에서 보이는 원형적인 특징이 다수 목격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중 스펙터클 중심의 영화가 빠질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의 함정을 돌파하기 위해 인물에 입체감을 더하는 린의 솜씨는 곱씹어볼만하다. 

영화는 2차 대전 당시 버마의 포로수용소를 무대로 영국군 니콜슨 대령과 일본군 사이토 소장, 미국군 소령 쉬어스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들에겐 전쟁에 임하는 거대한 명분도 승패에 대한 집착도 없다. 오로지 개인의 영달과 안위에만 관심 있을 뿐. 이를 ‘전쟁에 임하는 그들 각자의 강박적 태도’라고 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포로 처지에도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겠다는 일념 하 일본군 지휘 아래 다리를 건설하는 니콜슨의 헌신도, 니콜슨이 자신보다 뛰어난 교량건설자라는 점 때문에 남 몰래 눈물을 곱씹는 사이토의 좌절도,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했다 다리 폭파를 위해 다시 돌아오는 쉬어스의 결심도, 극중 군의관의 대사를 빌리자면 모두 “미친 짓”으로 수렴된다.

<콰이강의 다리>는 세 주인공의 강박적인 행동이 불러온 비극을 통해 인간성의 극단을 탐구한다. 특히 전쟁이 아닌 철저히 개인에 초점을 맞춘 전쟁영화라는 점에서 거대한 이미지를 넘어서는 미시적 관점의 신선함이 돋보인다. 린의 소박한 영화를 좋아했던 이들은 대작이란 이유로 <콰이강의 다리>를 비난하기도 했지만 심리적 접근을 통해 긴장감을 자아내는 솜씨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변한 게 없었다. 그래서 스티븐 스필버그는 데이비드 린의 영화를 일러 ‘심리적 스펙터클’(psychologically spectacle)이라고 명명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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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린 회고전
카탈로그
(2009.4.28~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