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사용자 삽입 이미지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이하 <비긴즈>)는 꽤나 당혹스러우면서 동시에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선사했다. 슈퍼히어로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라면 으레 비현실적이고 만화적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사실주의적인 접근을 시도해 슈퍼히어로물의 새 지평을 열었다. 또한 <비긴즈>는 영화나 만화에서 다뤄진 적 없었던 주인공 영웅의 기원에 초점을 맞춘 첫 번째 배트맨 영화이기도 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배트맨의 팬이지만 원작 만화는 접한 적이 없다”는 감독의 시큰둥한 태도에서 기인한 듯 보인다. 원전의 무게에 눌리지 않고 상상력을 제한하는(?) 원작을 교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기본적인 캐릭터 설정만 가지고도 그동안 슈퍼히어로물이 도달하지 못했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할 수 있었다.

속편으로 돌아온 놀란은 이번엔 아예 제목에서 배트맨이라는 이름을 지워버렸다. 바로 <다크 나이트>. 배트맨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초의 경우로, 그는 이참에 자신만의 배트맨 시리즈를 완성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자신만만한 태도는 <다크 나이트> 미국 개봉을 앞두고 영국 영화 월간지 ‘토털 필름’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내가 좋아하는 <대부2>나 <스타워즈 에피소드5: 제국의 역습>과 경쟁한다는 야망을 가지고 연출에 임했다”

전편을 넘어서는 속편을 만들겠다고 공개석상에서 밝힌 놀란 감독의 거대한 야심은 <다크 나이트>가 공개된 현재 괜한 공염불처럼 들리지 않는다. <다크 나이트>는 <비긴즈>가 이룬 성과를 발판 삼아 이전에 보지 못했고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슈퍼히어로물을 보여주었다.


세트에서 현장으로, 개인에서 사회로

“골 아픈 놈이 있어. 무장 강도, 연쇄살인. 자네처럼 쇼를 좋아해. 늘 현장에 카드를 남기지” <비긴즈> 결말에 등장하는 짐 고든 경위(게리 올드만)의 대사는 속편의 가능성을 열어두며 배트맨(크리스천 베일)과 조커가 대결할 것을 예고했다.

예상대로, <다크 나이트>는 조커와 그 일행이 대낮에 고담 시의 중앙은행을 습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후 거액의 돈을 손에 넣은 조커는 팔코니 조직의 수장 마로니(에릭 로버츠)를 찾아간다. 마로니는 갑작스런 조커의 방문이 심히 불쾌하다. 얼굴을 하얗게 회칠하고 입술 주위를 빨간 루주로 떡칠한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조커가 강탈한 거액이 바로 조직의 검은 돈이었던 것. 그러나 돈을 되찾고 싶으면 함께 배트맨을 제거하자는 제안을 뿌리치기 힘들다. 한편, 브루스 웨인은 낮에는 그룹의 회장 역할을 하고, 밤에는 범죄를 퇴치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 와중에 희망을 얻는 건, 지방검사 하비 덴트(아론 엑하트)의 강력한 부패 척결 의지에서 당당한 영웅의 면모를 보았기 때문이다. 브루스는 더 이상 가면을 쓰지 않고도 하비를 통해 악을 소탕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그러나 사상 최강의 적 조커 앞에서 이들의 의지는 힘을 잃고 만다. 계속되는 조커의 범죄에 도시는 무정부 상태에 빠지고 급기야 배트맨이 가면을 벗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악행을 멈추지 않겠다고 압박한다. 결국 하비에게 뒤를 맡기고 가면을 벗으려는 브루스. 그러나 고담 시의 안전과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가면을 벗어던질 수 없다.

“전편 말미에 배트맨이 더 강한 적과 맞선다는 암시를 뒀다. 배트맨의 명성이 더욱 사악한 악당의 출현을 부른 거다. 배트맨이 오히려 고담 시에 악영향을 끼친 형국이랄까” 놀란 감독의 말에 따르자면, <비긴즈>의 결말은 속편의 핵심 설정을 꽤 직접적으로 지적한 셈이다. 고담 시에 만연한 범죄와 부정부패에 대한 배트맨의 즉각적인 대응이 역설적으로 새로운 범죄 집단의 부상을 야기하니, 놀란은 이를 ‘고담 시에 거대한 위기가 닥친다’는 설정으로 수렴, 배트맨의 존재가 고담 시를 어떻게 바꾸는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브루스의 내면에 집중한 전작과 달리 <다크 나이트>는 한 인물이 도시에 미치는 영향력을 다뤄야 했기에 고담 시의 물리적 범위를 더욱 크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15/70㎜ IMAX 카메라의 도입이었다. <다크 나이트>는 메이저영화 사상 처음으로 35㎜ 카메라와 IMAX가 혼용된 경우다. 총 여섯 장면에서 사용된 IMAX 촬영은 놀란이 원했던 도시의 규모를 키우는 데 그만이었다. <다크 나이트>는 시카고에서의 실제 로케이션 촬영 장면이 영화의 60%를 차지할 정도인데 IMAX로 잡은 도시의 전경은 시각 면에서나, 규모 면에서 충분히 압도적이다.

세트였으면 불가능했을 이런 식의 배경 묘사는 전작에서 고담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기에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비긴즈>는 브루스가 겪는 심리적 갈등을 구체화하기 위해 고담 시를 세트로 지어 제한적인 범위에서 활용했을 뿐이다. 그에 반해, <다크 나이트>는 시카고 로케이션을 통해 실제 도시처럼 묘사, 극중 고담 시에 닥친 재앙이 사실성을 띠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 그래서일까, 극중 고담 시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캐릭터처럼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는 <다크 나이트>가 일반적인 장르의 관점에서 대도시를 배경으로 한 거대한 범죄물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구체성을 띤다. 안 그래도, 오프닝의 은행 강도 장면은 배트맨 시리즈란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마이클 만의 <히트>나 캐서린 비글로우의 <폭풍 속으로>와 같은 범죄액션물로 착각하기 쉽다. 캐릭터 가면을 쓴 무리가 은행에 침입, 총격전 속에 거액을 훔치는 과정을 현장 로케이션을 통해 사실적으로 묘사한 장면에는 슈퍼히어로물 특유의 허구적인 느낌이 철저히 배제돼있다. 이에 대해 놀란은 “<히트>와 같은 마이클 만의 영화가 범죄와 도시의 상관관계를 잘 드러냈던 것처럼 내 영화 역시 그런 종류의 작품으로 다뤄지길 희망한다”고 피력했다.

정리하자면, 놀란이 의도한 <다크 나이트>의 물리적 확장은 배경의 규모를 늘린 것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비긴즈>에서 브루스의 개인 드라마에 머물렀던 이 시리즈가 범죄 서사시로 확장되며 결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배트맨과 조커, 너는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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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가 전작과 크게 차별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 <비긴즈>는 브루스/배트맨 그 자신의 캐릭터적 동력으로 완성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럼에도 주변 캐릭터를 당대 가장 뛰어난 배우들로 채웠던 건 주인공이 조연들에 의해 강조되는 효과를 원한 놀란 감독의 노림수였다. <다크 나이트>는 전작보다 더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식엔 변화가 있다. 개인 드라마를 벗어난 <다크 나이트>는 배트맨과 주변 캐릭터가 계속해서 충돌하는 관계 속에 이야기가 진행되는 까닭에 조커와 같은 악당이 배트맨의 아우라를 넘어설 만큼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캐릭터 묘사와 관련, 브루스 웨인의 첫 등장은 <다크 나이트>의 테마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비긴즈>의 브루스는 적에게 두려움을 주는 영웅으로 거듭나는 존재였기에 건장한 체격을 과시했다면 <다크 나이트>에서는 눈에 띄게 야윈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를 통해 브루스가 자신의 이중생활에 여전히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과 정의를 수호할수록 그에 배가해 늘어나는 악당들로 인해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래서 <다크 나이트>에는 ‘이중성’과 ‘상반성’의 테마가 영화 전반에 걸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를 형상화한 관계가 바로 배트맨과 조커다.

배트맨과 조커의 성격은 나란히 놓을 수 없는 동전의 양면 같다. 검은색 슈트와 하얗게 회칠한 얼굴, 질서 수호와 파괴, 심각함과 익살스러움, 너무 많이 가진 것과 아예 없는 것, 그리고 가면 뒤에 정체를 숨긴 것과 흉측한 얼굴을 더욱 과장한 것까지. 노골적으로 정반대되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동질성이 느껴지는 이들은 말 그대로 짝패다. 극중 이들이 소개되는 장면의 배치 역시 그렇다. 환한 대낮에 은행을 강탈하는 조커와 어두운 밤에 팔코니 조직원을 때려눕히는 배트맨의 활약상을 첫 장면과 두 번째 장면에 차례로 배치한 흑백구도의 편집은 흡사 <대부>를 연상시킨다.

<대부>의 첫 장면은 유명하다. 마당에서 벌어지는 딸의 성대한 결혼식과 어두운 사무실에서 은밀한 뒷거래가 이뤄지는 순간을 교차시킨 편집은 이탈리아 마피아의 냉혹한 이중성을 잘 드러낸 장면이다. <다크 나이트> 역시 배트맨과 조커가 벌이는 일의 교차편집을 통해 고담 시가 잉태한 범죄의 이중성을 밝히려 한다. 재미있는 건 배트맨은 정의를 수호하지만 시민의 입장에서는 또 한 명의 범죄자로 비추어진다는 점이다. 그가 계속해서 범죄를 불러오는 까닭에 사회에 해를 끼친다고 염려하기 때문이다.(이는 배트맨이 어둠의 기사(Dark Knight)가 될 수밖에 없는 단초를 제공한다!). 브루스의 고민은 이런 차원에서 설명 가능하다. 그는 고담 시의 평화가 목적이지만 법을 수호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에 혼란을 느낀다. 폭력 없이는 고담 시의 평화가 불가능한 걸 알지만 그럼으로써 부모가 경멸했던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고민스럽다.

이처럼 자신의 윤리와 행동 준칙을 가지고 있는 배트맨에게 조커는 새로운 종류의 적수다. 혼돈을 통해 즐거움을 얻고 죽음도 두려워 않는 조커는 그런 배트맨의 규칙을 깨고 싶어 안달이다. 배트맨의 입장에선 매우 상대하기 어려운 적수인 것이다. 이처럼 행위에 대한 동기가 불명확한 조커를 설명하기 위해 놀란 감독은 그에 대한 기원도, 심지어 성격조차 부여하지 않았다. 인간의 성질을 부여한다고 조커가 무시무시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완벽한 파괴 행위의 원인과 결과일 뿐인 조커를 설명적으로 다룬다면 캐릭터에 대한 매력이 반감될 것이라 판단한 놀란 감독은 “<죠스>에서 상어가 그랬던 것처럼 조커가 영화를 마음대로 헤집고 다니길 바랐다.”

때문에 조커는 배트맨과의 대결에서 결코 질 수 없는 캐릭터다. 극중 말미에 이르러 배트맨이 조커를 생포하는 데 성공하지만 영화는 그 이후에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 배트맨과 짐 고든, 하비 덴트의 작전으로 조커가 감옥에 갇힌 사연이 극 중반에 나오긴 하지만 어렵지 않게 탈출에 성공했던 전력에 비춰 그의 생존을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다. 놀란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그의 등장만을 보여줄 뿐이다. 다만 극단적인 행동을 부추기는 인물인 조커는 언제고 배트맨이 필연적으로 마주칠 적이다.” 바꿔 말해, 배트맨과의 관계에서만 재미를 얻는 조커는 배트맨이 존재하는 한 계속 따라다닐 운명의 캐릭터다. 이는 또한 고담 시의 미래에 당분간 평화가 요원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존재 자체가 악을 불러 고담 시를 위협하는 주적(?)으로 낙인찍힌 배트맨이 고담 시민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어둠의 기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슈퍼히어로물로 증명한 혼돈이론

<다크 나이트>는 프랜차이즈 특성상 배트맨의 영화이자, 이 작품을 통해 기념비적인 연기를 펼친 (故)히스 레저의 영화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투톱의 영화로 보이는 <다크 나이트>의 구도에 더욱 입체감을 불어넣는 건 하비 덴트/투 페이스의 존재다. 하비는 배트맨과 조커의 대결로 흐르는 ‘흑과 백’의 구도 속에 섞여 들어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으며 섣불리 예상할 수 없는 회색빛 이야기를 만든다.

그의 존재 자체가 그렇다. 하비는 영화 중반까지 고담 시의 미래를 책임질 또 한 명의 영웅으로 기능한다. 놀란이 아론 엑하트를 하비 역에 기용한 데에는 “로버트 레드포드처럼 미국 영웅의 모습이 아로새겨진 배우”였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극중 브루스는 젊고 패기 넘치는 지방검사 하비에게서 가면으로 얼굴을 감출 필요가 없는 진짜 영웅의 모습을 보고 안도한다. 배트맨슈트를 벗고 평범한 삶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는 브루스는 하비에게서 원하는 답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놀란의 의도는 배트맨과는 다른 곳을 향한다. “하비의 에피소드를 비극으로 만들어 또 하나의 중심 이야기로 삼으려 했다”는 놀란은 하비의 표면 아래 숨겨져 있는 그의 면모, 즉 불의의 사고로 얼굴 반을 잃고 희망마저 꺾이는 투 페이스를 등장시킨다. 이때부터 투 페이스를 이끄는 동력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대상에 대한 복수다. 그것은 투 페이스에게는 여전히 정의의 영역이지만 신봉하던 법의 영역을 벗어나 나쁜 방법으로 구체화하니, 또한 조커의 영역이기도 하다.

이 지점부터 <다크 나이트>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미국의 모습과 겹쳐진다. 고담의 영웅에서 악의 화신이 된 하비는 세계 영웅을 자처하다 어느 순간부터 그 지위를 남용해가며 복수의 일념에 불탄 지금의 미국과 영락없이 닮은꼴이다. 심지어 조커와 투 페이스가 손을 잡은 순간부터 극도의 혼란에 빠진 도시를 포착하는 이 영화의 카메라에는 9.11 테러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을 정도다.

미국에서 탄생한 슈퍼히어로물은 결국 미국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사실주의적 묘사까지 더해진 <다크 나이트>는 현실, 그것도 미국의 현실에 대한 은유로 작용하기 안성맞춤인 구조다. 그건 영화에 참여한 배우에게도 마찬가지다. “<다크 나이트>는 오늘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나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많은 일들이 대본 안에 있다고 믿고 연기했다” 아론 엑하트의 말이다. 놀란 감독은 엑하트의 의견과 다른 듯하지만 그런 의도가 있었음은 숨기지 않는다. “<다크 나이트>처럼 거대 규모의 영화를 다룰 때는 세상 사람들의 관점을 활용한다. 오락적인 성격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세상에 대해 탐구하는 것은 영화에 더 큰 힘을 제공한다.”

아닌 게 아니라, <다크 나이트>를 기획하면서부터 놀란은 인물과 사회의 관계를 탐구하려 했다. 배트맨의 존재가 고담 시를 어떻게 바꾸는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갔다는 의도를 상기한다면 <다크 나이트>는 놀란이 바라본 세계의 혼돈에 대한 영화적 탐구처럼 느껴진다. 이는 작은 변화가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는 ‘혼돈 이론’(Chaos Theory)을 연상시킨다. 놀란 감독이 이런 과학적 이론을 하나하나 대입해가며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크 나이트>는 사실주의적 묘사를 함으로써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현실과 보다 거대하고 밀접한 관련을 맺고, 뜻밖에도 확장된 의미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물론 영화의 사실적 접근을 이유로 배트맨과 미국의 영웅주의를 동일시, 현재 국제 정세에 대한 미국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알레고리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놀란의 시도가 배트맨 시리즈의 정수랄 수 있는 어둠의 정서를 더욱 심화시키려는 데 있었음을 인식한다면 <다크 나이트>는 ‘도식’이라는 단순한 성과를 뛰어넘었고, 그런 점에서 더욱 놀랍게 다가온다. <다크 나이트>는 마땅히 걸작이라고 불러야 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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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 398호
(2008.8.5)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1.
 
애니 프루(Annie Proulx)의 동명 단편소설을 영화화한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은 상자 속에 몰래 숨겨둔 한 장의 그림엽서처럼 남몰래 마음속에 꿍쳐두고 있는 비밀에 대한 영화다. 어떤 비밀? 동성친구를 사랑한 슬픈 비밀. 근데 왜 동성친구를 사랑한 것이 슬픈 일이 되어야하며 비밀이 돼야하는 걸까? 일단 스토리부터 살짜쿵 살펴보기로 하자.

에니스(히스 레저 분)와 잭(제이크 질렌할 분)은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하루살이 카우보이 인생들. 거미줄 친 입에 풀칠 좀 해보려고 인간 하나 없는 브로크백 산에서 양치기 임무를 수행하던 중 어느 날 새벽 버럭! 눈이 맞아 러브에 빠지고 마는데…


당 영화의 무대는 마초냄새가 코를 찌르는 카우보이 세계. 그 바닥에서 동성애는 놀림감이자 종국엔 사형감. 게다가 때는 1963년. 지금도 동성애가 자유롭지 못한 시절이니 주변 편견의 눈길 피하랴, 맘 놓고 러브 할 수도 없어 당시 잭과 에니스 커플의 사랑은 지금보다 몇 곱의 몇 갑절은 더 힘들었을 게다. 이들의 사랑이 슬프고 비밀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


특기할 만한 건, 영화가 이들 서서쏴 커플의 사랑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주로 에니스의 시점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사실 에니스는 잭을 알기 얼마 전 알마(미셸 윌리엄스 분)와 약혼한 이성애자다. 더군다나 존나게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탓에 아버지로부터 게이는 불알이 찢겨져 죽어도 싸다는 교육(?)까지 받고 자란 몸. 그런 그가 잭과 충동적으로 한 빠굴 뛰고 난 뒤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그러니 에니스에게 잭을 사랑한다는 건 처음부터 고난이 따르는 일.


물론 힘들기는 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원래부터 동성애자였던 (것으로 보이는) 잭은 이런 상황에 혼란스러워하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가 또는 정면으로 부딪쳐 극복을 해나가니 에니스처럼 정체성 혼란을 극심히 겪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고로 감독은 에니스의 시점을 중심에 두고 영화를 진행함으로써 관객에게 그런 슬픈 사랑이 더 잘 전달되게끔 설정을 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카메라와 장면의 설정도 이들의 감정 특히 에니스의 그것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가령 영화 초반, 잭과 에니스가 처음 만나 첫 번째 빠굴을 하는 장면까지 카메라는 브로크백 산의 풍광 속에서 초원의 말처럼 자유롭게 러브를 나누는 모습을 입이 쩍 벌어지는 스케일에 담아 속 시원하게 보여준다. 반면 산을 내려와 후일을 기약한 뒤 홀로 남은 에니스를 비추는 카메라는 브로크백 산에서와는 다르다. 그가 좁아터진 골목으로 들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주변의 건물을 이용 앞뒤로 에워싸은 뒤 속 좁은 소심처럼 답답하고, 공허하고, 쓸쓸한 느낌이 들게끔 촬영한다.

이처럼 당 영화는 잭과 에니스가 사회의 편견 속에서 맘 졸이며 닫혀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과 이들이 편견의 눈길을 피해 브로크백 산에서 마음 놓고 러브를 나누는 장면을 대조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두 상황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우리 주인공들이 겪는 슬픔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다시 말해 <브로크백 마운틴>은 힘든 사랑에 대한 영화다.



2.

하지만 에니스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것만으로, 카메라가 그런 혼란을 황량하게 수놓는다고 그 사랑이 저절로 비극이 되는 것은 아닐 터. 에니스는 혼란을 겪는 것만으로 모자라 결국엔 어렵게 이룬 가정이 풍비박산 되는 꼬라지에 처하고 만다. 그놈의 동성애 때문. 어디 감히 아내가 있는 남자가, 그것도 카우보이 모자를 꾹 눌러쓴 그가 어떻게 같은 성인 서서쏴와 러브질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점에서 당 영화가 카우보이 세계를 무대로 삼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카우보이는 미국의 개척정신을 보여주는 신화의 무대. 미국인들이 그런 자신들의 신화를 가슴에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 근데 대만인인 이안이 보기엔 그렇지 않았나보다. 이미 <아이스 스톰>에서 콩가루 된 중산층 가족의 모습을 통해 미국 사회의 허약함을 들춰냈듯 당 영화에서도 이안이 보는 미국 신화의 세계는 허약하고 부실하기만 하다.


이와 같은 사실이 두드러져 보이는 부분이 바로 잭이 결혼 이후 텍사스를 본거지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텍사스는 카우보이의 중심지. 잭의 부인 로린(앤 헤서웨이 분)은 텍사스 출신이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로린은 먼저 잭에게 적극적으로 껄떡대고, 잭과의 빠굴을 리드하며, 사업가로서의 면모도 과시한다. 여자이면서 도리어 더 사내대장부 같은 모습. 남자의 가치가 우선하는 그곳에서는 그렇게 키우는 것이 당연했나보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아버지는 계집애처럼 구는 잭이 맘에 들지 않아 사사껀껀 그를 무시한다. 보건데 남자의 가치와 동떨어진 동성애자 잭의 최후 역시 에니스처럼 어떻게 진행될지 안 봐도 비디오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이렇듯 미국의 신화는 자신과 다른 이들은 무시하고 배제하는 식으로 자신들만의 에덴동산을 완성했다고 영화는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잭과 에니스의 러브질로 인해 이들 가정이 붕괴되는 모습을 비추며 카우보이로 상징되는 미국 신화의 허약한 고리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감독 이안이 이를 통해 대놓고 미국사회에 똥침을 놓는다든가 하는 뭔가 거한 주제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관객이 얼른 눈치 채지 못하게끔 간간히 사회의 편견을 드러낼 뿐 영화는 잭과 에니스의 비밀스런 러브를 중심에 두고 이들의 감정과 은밀한 감정교류를 담담히 영화적으로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그래서 카메라가 들이대는 공간은 카우보이의 전체적인 세계라기보다는 잭과 에니스가 러브를 나누는 브로크백 산의 한정된 공간과 이들의 사적인 공간만이 전부다. 그런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니 철저히 개인적이고 사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랑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법. 그렇기 때문에 상처받기 쉬운 것이 또한 사랑이다. 그리고 그 상처의 가해자는 대개 사회가 만들어놓은 규범 또는 제약, 편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타나는 모습은 시대에 따라, 공간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 가지각색일 것이다.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부운>은 2차 대전 직후 일본의 절망적인 시대상 속에서 비극적으로 끝맺음될 수밖에 없는 유키코·도미오카 커플의 러브를 보여줬다. 이창동 감독은 <오아시스>에서 메말라 버린 한국 현대사회에서 사회부적응자로 낙인 찍혀 처절하게 하지만 마술적으로 러브를 나누는 홍종두와 한공주 커플의 사연을 보여줬다. 이안 감독은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1960년대 미국 그것도 미국 신화의 상징적인 무대에서 벌어지는 동성애를 통한 에니스와 잭의 슬픈 사랑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의 사랑이 사랑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면, 그 슬픔을 마음에 담아둔 채 이를 살아가는 힘 삼아 삶에 대한 그리고 가족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모습(영화의 마지막, 에니스는 자신을 찾아온 딸의 결혼식 초대에 승낙하고 곧바로 잭과의 사연이 담긴 삐리리와 브로크백 산의 풍광이 담긴 그림엽서를 고이 간직한다) 때문일 테다. 본 우원 이런 표현하기 참으로 쑥스럽다만 우리는 이런 러브를 흔한 말로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사랑이라 불러마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당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두고 이 아니 훌륭하다 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이쯤에서 본 우원, 실로 간만에 검열보고 하는 당 영화에 베스트를 수여하며 짧은 소견을 마친다. 끝!


(2006. 3. 7. <딴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