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 451>(Fahrenheit 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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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451>은 Sci-Fi 문학의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2012년 6월 6일 향년 9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했다. 제목이기도 한 ‘화씨 451’은 책이 불타는 온도를 상징한다. 그래서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크레딧은 여느 작품처럼 관객이 읽을 수 있도록 자막으로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성우의 내레이션으로 소개된다. <화씨 451>은 사람들이 비판정신을 갖지 못하도록 책이 금지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몬태그(오스카 워너)는 사람들이 숨겨놓은 책을 찾아 태우는 방화수(fireman)다. 열심히 임무를 수행하던 중 세상에 대한 온갖 호기심으로 가득한 이웃 여인 클라리세(줄리 크리스티)를 만나면서부터 꼭두각시 같은 삶에 의문을 갖게 된다. 자신의 삶이 텅 비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녀의 조언에 따라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것. 그때부터 몬태그의 생각과 행동은 극적인 변화를 맞지만 동료 방화수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트뤼포는 <화씨451>을 유니버설 제작으로 영국의 파인우드 스튜디오에서 만들었지만 스튜디오 시스템 전통 바깥에 있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크리스 마르케의 <방파제>(1961) 장 뤽 고다르의 <알파빌>(1965) 로제 바딤의 <바바렐라>(1967), 알랭 레네의 <사랑해, 사랑해>(1968)와 같은 Sci-Fi처럼 미래사회에 대한 현란한 볼거리의 설정은 최소화하고 의미 있는 메시지를 보다 부각하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 때문에 원작자 브래드버리는 “썩 반갑지만은 않은 작품이었어요. 응당 따라야 할 원작의 줄거리도 지키지 않았죠. 몇몇 중요한 캐릭터는 완전히 사라졌어요. 하지만 엔딩은 정말 멋있었어요.”라며 동명영화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전반적으로 <화씨 451>에 대해서 트뤼포의 걸작은 아닐지언정 가장 아름다운 엔딩을 가진 작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워 후세에 전달하는 일명 ‘북 피블’이 모여 사는 공동체를 비추는 영화의 결말은 원작이 품고 있는 세계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화씨 451>은 비록 책이 금지된 사회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는 획일화된 사회 전체에 대한 비판에 더 가깝다. (동성애의 억압을 암시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전까지 흑백 필름으로만 작업했던 트뤼포가 첫 번째 컬러영화로 <화씨 451>을 선택한 건 획일화를 반대하고 다양성의 가치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촬영은 <쳐다보지 마라> <지구로 떨어진 사나이>를 연출한 니콜라스 뢰그가 맡았다.) 하여 미장센은 물질과 자연의 철저한 대비 속에서 이뤄진다. 방화수의 유니폼, 비슷한 모양의 집 등과 같은 물질문명의 반대편에서 다양한 종류의 책으로 대표되는 정신문명의 회복을 역설하는 것이다. 

가상현실이 실제현실을 압도하는 사회적 분위기, 즉각적인 반응에 익숙해진 세태 속에서 진지한 성찰이 사라진 시대, 그래서 책을 읽지 않아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이는 현실은 <화씨 451>이 묘사하는 사회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그 때문일까, 브래드버리의 최근 인터뷰에 따르면, <화씨 451>은 프랭크 다라본트(<쇼생크 탈출><미스트>)에 의해 리메이크가 추진 중에 있다. (몬태그 역에는 톰 행크스가 물망에 올랐다.) 그에 비해 트뤼포의 <화씨 451>은 오래된 과거의 작품이지만 다소 촌스럽게 보이는 화면과 달리 세월의 때를 타지 않는 메시지 덕분에 지금에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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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트뤼포
전작 회고전

<화씨 451>(Fahrenheit 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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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사라지고 있다. 어찌된 일인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 이미 1953년에 이를 예견한 사람이 있다. 바로 레이 브래드버리(Ray Douglas Bradbury)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아서 C. 클라크(<2001:스페이스 오디세이><라마와의 랑데부>), 아이작 아시모프(<아이, 로봇><파운데이션>) 등과 함께 SF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작가다. <화씨 451>(Fahrenheit 451)은 그의 대표작으로, 책이 사라진 미래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제목은 ‘책이 불타는 온도’를 상징한다. 주인공 가이 몬태그는 책을 찾아 태우는 방화수(fireman)다. 책을 태우는 이유는 독서가 불법으로 규정됐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 비판정신이 생긴다는 이유로 오래전부터 정부가 금지한 것이다. 그러니까 <화씨 451>은 사상이 통제되는 사회에 경고를 보내는 작품이다. 다만 통제사회라는 결과에 대해 그 책임을 세계 지배의 야욕을 드러내는 정치가 또는 기업가에게 묻지 않는다. 오히려 대다수의 일반인들에게 묻고 있다는 점에서 <화씨 451>의 진가가 드러난다.

번역한 박상준은 이 책을 두고 “시대가 바뀔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메시지를 담아서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고 설명한다. 안 그래도, <화씨 451>을 읽다보면 기시감을 느끼는 순간을 자주 접한다. TV의 가상현실이 실제현실을 압도하는 사회적 분위기, 즉각적인 반응에 익숙해진 세태 속에서 깊이 있는 생각과 진지한 성찰이 사라진 시대, 그래서 책을 읽지 않아도 전혀 부끄럽거나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소설 속 현실은 놀라울 정도로 현재와 닮았다. <화씨 451>의 초판이 1953년에 발행됐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레이 브래드버리가 보여준 통찰력은 가히 노스트라다무스급 예언에 가깝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책이 없어진 사회의 즉각적이고 말초적인 감정의 대척점에서 회복해야 할 가치로 자연을 꼽는다. 자연이야말로 물질적 세계를 구성하는 원료에 가깝다는 것이 그의 작품 철학이다. <화씨 451>뿐 아니라 <민들레 와인>에서도 확인된 바, 정신을 도외시하는 현실에 우려하며 자연을 회복하는 것, 즉 정신적인 삶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연을 절대적인 가치로 두는 것이 아닌 자연과 물질의 조화를 호소하는 것이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늘 대상의 양면성을 바라보는 너른 자세로 문학성을 높여 왔다. 이는 <화씨 451>의 주요 이미지인 ‘불’을 다루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책을 태움으로써 인간성을 말살하는 ‘부정적인’ 불이 있는 한편엔 추위에 떠는 인간의 몸을 따스하게 해줄 ‘긍정적인’ 불이 있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어둠을 밝히는 것이 불이듯 인간의 무지를 구원할 빛이 책이라는 사실을 <화씨 451>은 역설한다.

우리가 소위 SF(Science Fiction)라 부르는 환상문학은 미래를 밝혀주는 빛과 같은 존재다. 훌륭한 환상문학을 읽다가 감탄하게 되는 건 작가의 상상력보다 실제성에 있다. 흔히 한국 사람들은 환상문학에 대해 미래를 배경으로 한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하는 경향이 짙은 것 같다. 물론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기에 정확도는 떨어질지언정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토대로 미래를 내다본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욱 현실친화적인 것이 환상문학이다. 그런 점에서 <화씨 451>은 뛰어난 환상문학이다. <화씨 451>은 책이 사라져가는 시대의 파수꾼으로 손색이 없는 소설이다.


          덧붙여,
          마이클 무어는 이 책의 제목을 빌어 <화씨 9/11>을 제작할 수 있었으며 1966년 프랑소와 트뤼포에
          이어 현재 프랭크 다라본트(<미스트><쇼생크 탈출>)가 <화씨 451>의 영화화에 착수했다. 가이 몬
          태그 역에 톰 행크스가 물망에 올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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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0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