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通天帝國之狄仁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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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홍콩영화를 소개해주신다고요.

<황비홍>으로 유명한 서극 감독과 말이 필요 없죠, 20년 넘게 홍콩을 대표하고 있는 배우 유덕화가 출연하는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이하 ‘<적인걸>’)입니다.

‘적인걸’은 무슨 의미인가요? 사람 이름인가요?
적인걸은 중국 당나라 시절에 실존했던 명판관이자 천재수사관으로 중국의 셜록홈즈라 불리며 세계적 명성을 떨친 인물이라고 하는데요. 대륙 역사상 최초의 여황제를 노리는 측천무후의 즉위식을 앞둔 어느 날, 그녀의 심복들이 차례로 불에 타 죽는 의문의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하늘의 분노라며 백성들의 공포가 커지고 황실은 점점 혼란에 빠집니다. 급기야 측천무후는 최후의 수단으로, 누명을 쓴 채 변방으로 좌천당한 적인걸을 불러들이고요, 타죽은 시체에서 남은 한줌의 재를 가지고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합니다.

주인공 적인걸도 그렇고, 측천무후도, 그러니까 실존인물이 등장하는 영화네요?
등장인물로만 보자면 그렇습니다. 줄거리만 봐도 실제 일어났을 법한 사건은 아니고요. 극중 액션 장면을 보면 공중으로 날아다니고 그러거든요. (웃음) 무엇보다 서극이 묘사하는 적인걸은 실제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극중 적인걸은 유덕화가 연기하는 까닭에 굉장히 외모가 출중한 인물로 묘사가 되는데 실제로는 뚱뚱한데다가 그리 잘 생긴 편은 아니라고 하니까요. 오락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역사의 일부를 가져와 그 나머지를 상상력으로 다시 창조한 일종의 팩션이라고 보면 됩니다.

어떤 점에서 <적인걸>은 오락성이 뛰어난가요?
요즘은 한 장르가 아닌, 여러 장르를 섞는 것이 유행인데요. <적인걸> 역시 그렇습니다. 일단은 역사물이지만 말씀 드린 대로 경공술이 등장하는 무협이기도 하고요. 적인걸의 추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탐정물이기도 하죠. 무엇보다 관객을 사로잡는 것은 중국영화 특유의 거대한 스케일로 구현되는 CG입니다. 황제의 즉위식이 벌어지는 궁궐 주변에 63빌딩을 능가하는 거대한 불상이 마치 영화의 중심축처럼 떡하니 박혀 눈을 현혹하고요. 불에 타 죽는 모습도 CG로 처리되며 볼거리에 굉장히 신경 쓴 모습이 역력합니다.

감독이 서극이라고 하셨죠. 원래부터 이런 종류의 영화를 만들어왔던 감독인가요?
서극은 ‘아시아의 스필버그’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볼거리에 신경을 많은 쓰는 감독인데요. <황비홍> <동방불패> 같은 경우, 볼거리로써의 무협 연출에 능했죠. <순류역류> 같은 경우, 앞선 영화와 달리 현대물인데 좁은 홍콩 거리에서 펼쳐지는 액션 장면에 굉장한 장기를 보였고요. <적인걸>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장르의 혼합 및 CG를 통해서 또 다른 오락영화의 경지에 도전합니다.

근데 너무 볼거리만 신경 쓰면 이야기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잘 지적해주셨는데요. 사실 서극의 영화는 종종 볼거리를 강조하는 까닭에 이야기가 다소 헐거워지는 경우가 있어요. <적인걸>도 마찬가지인데요. 사실 탐정이라고 하면 사소한 단서를 통해 추리하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요. <적인걸>은 머리를 쓰는 탐정이라기보다는 추리하는 과정에서 뭔가 사건이 터져 그를 쫓아가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요. 누군가가 방해한다든가, 액션이 펼쳐진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더군다나 극중 드러난 사건의 실체를 교란시키기 위해 음모론을 난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역시 이야기를 산만하게 만드는 편이고요.

볼거리가 <적인걸>의 강점이라는 얘기처럼 들리네요.
근데 제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최고 볼거리는 유덕화이었습니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유덕화가 올해 한국 나이로 치면 1961년생이니까, 올해로 쉰이거든요. 50세요. 근데 오히려 유덕화를 CG로 처리한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얼굴 피부가 너무 좋아요. 그 비결이 무엇인지 묻고 싶을 정도에요. (웃음)

유덕화 외에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가 <적인걸>에 등장하나요?
한국에서는 프랑스영화 <연인>에 출연했던 배우로 유명하죠. 당시 소녀 역으로 출연했던 제인 마치와의 18금 사랑으로 화제를 모았던 양가휘가 극중 적인걸의 오래된 동료로 등장해 오랜만에 한국 팬들과 만나고요. 양조위의 연인, 아니 이제는 결혼을 했으니까 부인이죠. <아비정전> <2046> <무간도 2,3>에도 출연했던 유가령이 측천무후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출연하지는 않지만요, 홍금보가 무술감독을 맡아 참여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간단하게 총평을 해주신다면요?
제가 워낙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그런 쪽으로 기대를 해서였는지 다소 실망한 편이었습니다. 전 오히려 극중 측천무후가 벌이는 일들이 정당하지 않은 것들이 있는데 국가의 대운을 위해서 정당성을 부여하는 측면이 있거든요. 저는 그걸 옹호하는 게 아니라 최근의 일부 중화권 영화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어서 그것이 흥미로웠고요. 다만 <적인걸>은 이야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볼거리 위주로 본다면 크게 실망스럽지는 않을 거예요. 현란한 CG와 무엇보다 오랜만에 무협액션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을 여는 아침 최현정입니다사용자 삽입 이미지
MBC FM4U(6:00~7:00)

<상성: 상처받은 도시>(傷城: Confession Of Pain)


5월의 홍콩은 덥다, 라는 데 생각이 미치기도 전 바라본 고층빌딩이 즐비한 풍경은 30도를 훌쩍 넘긴 날씨를 한방에 잊게 해줄 만큼 시원했다. <무간도> 시리즈 이후 3년 만에 다시 뭉친 유위강, 맥조휘 감독과 양조위의 신작 <상성: 상처받은 도시>(이하 <상성>)은 빅토리아 파크에서 내려다본 시원스러운 풍경으로 문을 연다. 그런데 두 감독이 바라보는 홍콩의 화려한 모습은, 애절하게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캐럴과 느리게 이동하는 카메라 움직임 속에 쓸쓸함을 자아낸다. 외부인과 내부인의 시선 사이에 생긴 관점의 차이일까. 아니면 이게 진짜 홍콩의 모습일까.

지난 5월 13일과 14일, 이틀간에 걸쳐 <상성>의 주연배우 양조위와 유위강, 맥조휘 감독의 기자회견이 홍콩에서 열렸다. 첫 장면과 달리,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은 채 과장된 동작을 섞어가며 열변을 토하는 유위강 감독과 회견장에 들어서자마자 “한국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빠른 시일 안에 한국을 찾아뵙겠다”라며 환하게 미소 지은 양조위. 본색을 숨긴 채 다른 삶을 사는 <무간도>(2002)의 유건명(유덕화)과 진영인(양조위)이 그들 위에 겹쳤다면 과장일까?


상처 받은 도시의 상처 받은 남자들


<상성>의 유위강, 맥조휘 감독은 <무간도>에 이어 다시 한 번 깊은 시름에 잠긴 두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유정희(양조위)와 아방(금성무)은 오랫동안 형사로서 파트너 관계를 유지해온 절친한 선후배 사이. 크리스마스에 여자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아방은 그 충격을 못 이겨 형사생활을 접고 술에 절어 산다. 유정희는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고 결국 아방은 사립탐정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유정희의 장인어른과 집사가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를 미심쩍게 여긴 유정희의 아내 숙진(서정뢰)은 남편 몰래 아방에게 사건을 재수사해줄 것을 요구한다. 비밀리에 수사에 들어간 아방은 몇 가지 단서를 포착하고 이 사건에 유정희가 연루되었음을 알게 된다.

거대한 운명에 휘말려 이중적인 생활을 해야만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상성>과 <무간도>는 닮아 있다. 하지만 “가장 전형적인 홍콩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는 맥조휘 감독의 바람처럼 <상성>은 도시와 인물 간의 관계를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돌이켜 보건대, 지난 10년간 홍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침체의 연속이었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기점으로 홍콩 사람이 떠난 자리에 본토 동포가 대거 유입됐지만 상이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오해가 빚어졌고, 2003년 홍콩을 할퀴고 간 사스의 창궐은 오랜 시간 소통단절을 불러왔다. ‘상처 받은 도시’를 뜻하는 <상성>은 홍콩의 사연을 유정희와 아방이 처한 상황과 쓸쓸한 감정을 도시의 풍광 속에 담아낸다. 유위강의 카메라는 젊음의 거리 소호에서 옛 홍콩을 머금은 금정까지, 중심 주룽반도에서 변방 마카오까지, 홍콩에서 담아낼 수 있는 모든 풍경을 훑는다. 특히 영화의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초반 야경 장면의 경우, 고공 촬영을 금지한 정부를 설득해 홍콩영화사상 처음으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감정을 공간 속에 구현한다는 점에서 <상성>은 코넬 울리치로 잘 알려진 윌리엄 아이리시의 추리소설 <환상의 여인>이나 <상복의 신부>를 연상시킨다. 축축한 재즈가 구슬프게 울려 퍼지는 1940~50년대 뉴욕의 밤거리를 배경으로 고독한 도시인의 정서를 잡아낸 서술방식과 닮아 있는 것이다. 그런 상관성 덕분인지, 이 영화는 추리적 요소가 유난히 강하게 부각되는 작품이다. 사건을 쫓는 자와 사건을 은폐하려는 자의 대결구도 속에 ‘누가 죽였을까?’가 아닌 ‘왜 죽였을까?’에 집중하는 이야기 방식이 그렇고, 극중 인물의 사연이 하나하나 단서로 쌓여가며 마지막 순간, 한방에 비밀이 폭로되는 구조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추리극의 익숙한 구조를 차용한 듯 보이지만 <상성>의 재미는 그 구조를 비트는 데서 나온다. 극 초반에 범인의 정체를 노출하고 그런 가운데서 범인의 사연을 추리해가는 것. 이는 추리를 활용한 영화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상황에서 관객에게 새로운 충격을 제공하려는 맥조휘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가 성공적이었다고 보기에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범인을 미리 밝힌다는 것은 장르적으로 신선한 시도임에는 분명하지만 연출하는 입장에서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추리극은 관객의 흡인력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상성>의 경우, 범인을 알게 된 관객들이 그 뒤의 사연을 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관객이 시선을 놓지 않을 만한 전개로 끌고 가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는 유위강의 말처럼 중반 이후 <상성>의 극적 긴장감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또한 유정희와 아방의 비밀이 밝혀지는 결말부 역시 <무간도>로 기대치가 높아진 관객의 기대감을 채우기엔 2% 모자란 감이 있다.


양조위, 악한이 되라


<상성> 역시 요즘 유행하는 반전을 쓰고 있다. 하지만 반전을 위한 영화가 아닌, 철저히 영화에 복무하는 반전을 만들어냈다는 건 신선하다. 유위강과 맥조휘 콤비는 기존 홍콩영화에서 무한 반복했던 요소뿐 아니라 장르영화의 습관적인 룰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데 인색하다. <무간도>는 그런 이들의 방식이 가장 최대치로 발휘된 경우였다. 그리고 <상성>은 <무간도>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맥조휘의 표현을 빌자면 “스토리와 감정 선의 변화에 더욱 신경을 쓴 영화”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유정희로 분하는 양조위의 변신이다. 20년이 넘도록 양조위의 연기를 지켜봐왔던 유위강은 유약한 이미지의 그에게서 악한 모습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양조위의 연기 중 <상성>보다 악랄하고 간사한 건 없었다. 그런 역할을 맡겨 놓고 흥분했다”는 유위강의 호언은 영화 속에서 그대로 증명된다. 단순한 악의 모습이 아닌 악한 행동마저 정당성을 획득하는, 기존 단세포적 악한과 사뭇 다르게 유정희를 묘사한 것이다.

인물을 통해 스토리의 변화를 주었다면 감정 선의 변화를 가져온 건 이제는 변한 홍콩 사람들의 감성이다. 이전까지 우리가 ‘홍콩 누아르’라고 칭한 일련의 영화들은 의(義)와 협(俠) 등 인간관계를 극도로 강조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무간도>를 기점으로 홍콩영화 속 인물들은 개인의 안위에 따른 욕망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홍콩을 가로지르는 시대의 감수성이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가령, 홍콩 반환을 앞둔 시점에서 홍콩영화는 한 치 앞을 모르는 불안한 시대적 감성을 묘사하기 위해 끈적끈적한 남자들의 의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홍콩이 중국으로 편입되면서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었다. 제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에서 선과 악의 구분은 무의미해졌고 친구와 적을 규정하는 선 역시 희미해졌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간파해 먼저 영화에 반영한 것이 <무간도>였고 신작 <상성>에서는 가장 극대화된 형태로 드러난다. 유정희와 아방은 절친한 파트너 이상의 유사 형제관계를 이루면서, 또 한편으론 한 사건을 사이에 두고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관계가 된다.


유위강, 맥조휘 감독이 보기에 지금 홍콩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는 대부분 유정희와 아방처럼 애매한 삶의 형태로 드러난다. 그래서 인연의 끈은 희미해지고 사람 사이의 소통은 주파수가 안 맞는 고장 난 라디오처럼 홀로 파열음을 낼 뿐이다. 그 결과, 도시를 가득 매운 건 상대방을 잃은 채 말없이 부유하는 인간들. <상성>의 첫 장면에서 빌딩 창 밖으로 흘러나온 빛들이 뭉치지 않고 흩어져 보이는 건, 선에서 점으로 변한 인간관계를 상징하는 이미지는 아닐까. <상성>은 상처 받은 도시를 채우는 건 상처 받은 인간이라는 지당한 사실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필름2.0 336호
(2007. 5. 22)

<무간도>(無間道)


1.

無間道. 보도자료에서 말하길, 열반경 제19권은 무간지옥에 대해 ‘불교에서 썰하는 18층 지옥 중 가장 낮은 층의 지옥’이라 정의 내리고 있다 전한다. 그니까 한마디로 ‘절라 조뙌 상황’이 바로 <무간도>라는 얘기되겠다. 그렇다면 당 영화에서는 이 지옥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

지금 홍콩은 삼합회로 혼란스럽고 짭새들은 이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형국이다. 이 상황에서 삼합회의 조직원 유건명(유덕화 분)은 경찰 내부에 잠입하여 유능한 짭새로 인정받고 있고, 삼합회에 숨어든 짭새 스파이 진영인(양조위 분)은 보스 한침(증지위 분)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적의 내부에 몇 년간 숨어들어 생활한다고 생각해봐라. 아무리 유능하고, 신뢰를 받고 있다해도 걸리면 끝장인데 얼마나 살 떨리겠냐. 근데 어찌저찌해서 이 둘의 존재가 상대방에게 동시에 발각되고야 마니, 절라 후달리지 아니 할 수 없는 분위기다.

그렇다. <무간도>는 이 두 쥔공, 유건명과 진영인의 절라 조뙌 상황을 그리고 있는 영화 되겠다.

당 영화와 같이 내부에 잠입한 첩자를 소재로 삼은 언더커버(undercover) 영화들은 그런 비밀스런 설정이 주는 긴장감 덕택으로 관객의 구미를 당기고 재미를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당 영화는 이들 영화와 같은 설정에서 한 똥꼬 더 나아가 양쪽 진영에 각각 숨어든 첩자를 대립시킴으로 해서 꼴림을 두 배로 유도하고 있다. 겁나게 흥미를 끄는 구도라 아니 할 수 없음이다.

그래서 <무간도>의 각본은 당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차별성을 최대한 살릴 요량으로 서로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한 쫓고 쫓기는 상황을 적극 활용한다.

특히 극중 영화관에서 진영인이 유건명을 몰래 뒤쫓다가 갑자기 터진 핸드폰 벨소리로 사면초가에 놓이는 설정이라던지, 유건명이 황국장(황추생 분)의 핸드폰을 이용, 진영인에게 접근해 가는 장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긴장감은 실로 똥꼬에 땀을 차게 할 정도로 당 영화의 백미라 하겠다.


2.

게다가 당 영화의 이야기가 더욱 재미를 주는 건, 각본을 공동으로 맡은 맥조휘와 장문강이 <무간도>를 마치 추리소설처럼 미스터리하게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로 당 영화의 서두에서 제시되는 등장인물덜의 별 시덥지 않은 행동이나 하찮은 물건들이 종국에 가서는 결정적인 단서로 작용할 뿐 아니라 영화는 끝까정 두 쥔공간의 관계를 알 수 없게끔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당 영화를 보면 액숑장면이 별로 없다. 그나마 가장 큰 액숑장면이라 할 수 있는 거리 총격전 씬같은 경우도 몇 십 초 밖에는 보여주지 않을뿐더러 이런 류의 영화가 주는 역동적인 느낌도 거의 받을 수가 없다.

이 말은 곧 당 영화가 단순한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오락영화가 아님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하겠다.

아시다시피 당 영화는 유건명과 진영인의 대립이 전체의 분위기를 좌지보지하고 있음이다. 그럼 이 둘은 왜 대립하는가? 물론 살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살기 위함이란 곧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말과 동일하다. 그런데 오랫동안 첩자 노릇을 해오다 보니 자기가 좋은 분인지 나쁜 쉐이인지 헤깔릴 때가 많다.

보스인 한침이 유건명에게 유반장이라고 부르자 놀라는 건 이 때문이다. 정체성에 혼란이 온 거다. 그러니 이 두 명의 쥔공, 심적으로 절라 고민 때림이다.

첩자를 다룬 영화가 대개 소재가 갖는 말초적인 점만 이용, 액숑에 그치거나 스릴만을 강조하는데 반해 정체성의 문제까정 건드려 쥔공의 심리를 이처럼 자연스럽게 녹인 점은 당 영화의 시나리오가 갖는 또 하나의 우수성이라 할 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당 영화에서 유건명, 진영인의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연기는 절라 중요하다. 내적인 고민을 외면으로 드러내야 하자너.

쥔공 역을 맡은 배우는 양조위와 유덕화다. 양조위야 원래 세계가 인정한 연기파이지만 당 영화에서 유덕화의 연기도 이에 못지 않았음이다. 특히 아내에게 자신의 정체가 발각된 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라. 왜 그가 20여 년 동안 홍콩영화계의 주연으로 군림하고 있는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 안 옴 말구…

당 영화의 감독은 이들의 캐스팅 배경에 대해 양조위와 유덕화가 아니었다면 제작비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마빡 하나만을 들이밀고 있는 스타급 배우였다면 영화가 어떻게 되었을까? 마치 <비싼무>, <별루>의 신횬준처럼 말이다.

유위강이 겉으로는 우스개처럼 말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배우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연기력을 중요시한 속내가 숨어 있는 것이다.


3.

그러나 아무리 이야기가 훌륭하고 배우덜의 연기가 뛰어나도 이를 담는 화면이 형편없으면 영화는 조또 아닌 게 되기 십상이다. 시나리오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촬영과 이야기의 구도를 잘 살려낼 수 있는 미쟝센이 서로 상호작용을 해야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 법이니까.

당 영화의 촬영은 감독인 유위강과 크리스토퍼 도일이 맡아, 극중 유건명과 진영인의 암울한 처지를 그대로 화면에 반영하여 어둠이 강조된 검은 필름 즉, 필름 느와르의 촬영술을 고스란히 차용하고 있음이다.

그래서 당 영화에는 지옥에 빠져있는 두 쥔공의 상황을 포착하기 위해 낮은 조도를 이용한 밤거리/극장/버스 안/엘리베이터 등 좁아터진 공간에서의 촬영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유건명, 진영인의 절망적인 심정을 외양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깊은 그림자를 강조한 촬영술을 구사하고 있으며, 여백이 강조된 넓은 공간에 쥔공이 서 있다거나 동료들에게서 떨어져 혼자 외따로 있는 등 버림받은 듯한 인상을 주는 구도가 많다.

그런 전차로 당 영화는 유기적으로 잘 연결된 세 요소(이야기/연기/촬영)가 위기에 빠진 두 쥔공이라는 중심 틀에 맞춰 별 무리 없이 조화를 이루며 통일성을 확보, 제목이 주는 지옥스런 느낌을 잘 살려내고 있다 하겠다.


4.

허나 그렇다고 해서 당 영화에 단점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당 영화는 유건명과 진영인의 어릴 적 장면을 영화의 시작과 끝에 놓고, 이야기를 베베 꼼으로써 끝까정 두 쥔공 간의 관계를 관객에게 오리무중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럼으로 해서 당 영화는 반전을 숨기고 있다. 근데 한 번만 꼬아놓았어도 관객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을 텐데, <식스센스>처럼 다시 봐야 이해가 되는 그런 차원의 스토리가 아님에도 한 번을 더 꼬아 영화의 이해에 혼란을 준 건 어찌됐던 좀 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홍콩 영화계도 반전에 대한 압박이 꽤나 심한가부다.

게다가 많은 재래식 언론덜이 ‘홍콩 느와르가 다시 똥꼬를 열기 시작했다!’는 삘루다가 당 영화를 홍보하고 있는 까닭에 <무간도>를 보려는 예비 관객덜에게 괜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하겠다.

무슨 말인고 하니, 홍콩 느와르는 시절이 하 수상하던 때, 희망이 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초상을 어두운 화면에 담는다는 점에서 필름 느와르와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쥔공이 돈과 욕망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의(義)와 협(俠) 등 인간관계에 매달린다는 점에선 차별화 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동양적 감성이 먹혔던 이유 중의 하나는 홍콩 반환을 앞둔 시점에서 홍콩 느와르가 홍콩민들의 불안한 시대적인 감성을 반영하고 있던 탓이었다.

근데 시대는 바뀌었다. 홍콩은 중국의 한 도시로 편입되었고, 사람들의 감성도 변하였다. 물론 시대를 반영하는 영화도 달라졌다. 그러니 당 영화도 홍콩 반환 이전 시절과 달리 홍콩 느와르의 특징을 그대로 답습할 리 없다.

그 결정적인 증거로 당해 영화 <무간도>의 쥔공들은 절대 의리, 우정, 협 이런 카인드 오부의 감정에 자신을 내던지지 않는다. 오로지 개인의 안위에 따른 욕망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그 결과 당 영화 어두운 인간들을 어두운 화면에 담은 전체적인 모양새에 있어선 홍콩 느와르의 냄새를 풍기나 이를 이루는 요소들 – 쥔공들의 감정 표현이 개인에 우선하고 별루 폭력적이지 않다 – 은 전혀 홍콩 느와르스럽지 못함이다.

만약 오우삼 감독의 홍콩 느와르 스타일을 기대하고 당 영화를 볼작시엔 심히 조뙈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당 영화의 관람에 앞서 고려하시라.


5.

롱롱타임동안 침체를 거듭하던 홍콩 영화계에서 오랜만에 자국민의 호응을 듬뿍 얻고 있는 당해 영화 <무간도>가 울 영화계에 주는 교훈은 자명하다.

남의 나라에서 크게 성공한 영화 수입하면 대박난다,는 수입사의 입장은 차치하고라도 시나리오가 말이 되고, 촬영이 이를 뒷받침하며, 배우의 연기가 연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기본 명제에 충실 할 경우, 관객이 알아서 찾아든다는 사실.

근데 이를 묵과하고 이야기에 상관없이 오로지 돈만 때려 박는 볼거리에만 치중하거나, 어찌됐든 우끼는 영화에만 주력하며, 계속해서 조폭 붕알만 만지고 있다간 홍콩 영화계 꼴 안 나리라는 보장은 엄따.

부디 한국 영화계는 <무간도>가 재미있다는 그 사실만을 볼 것이 아니라 재미있게 된 그 연유, 그 과정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럼 이상!!


<딴지일보>

<이도공간>(異度空間)


당해 영화의 가장 큰 프리미엄은 한마디로 장국영의 유작이란 점이다.

장국영이 누군가? <영웅본색>, <천녀유혼> 시리즈와 투유 쪼꼬렛 씨에푸로 지금의 2,30대 애간장을 살살 녹이며 학창시절을 그의 브로마이드로 도배하게 만든 장본인이 아닌가. 물론 <아비정전>, <패왕별희>, <춘광사설>도 좋았찌..

그런 장국영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마지막 출연작이 된 <이도공간>은 그 사실만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영화임에는 두말할 나위가 엄따.

하지만비유띄벗뚜, 이렇게 말하기 미안시럽지만 아쉽게도 당 영화는 장국영 팬이라면 모를까 그 외의 잉간덜에겐 큰 재미를 줄 만한 작품이 아니다. 홍콩에서 개봉된지 1년이 지나도록 눈길 함 안 주다가 그가 죽자 급작스레 수입된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당 영화는 구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정신과 의사 짐(장국영 분)이, 부모에게 버림받은 뒤 구신을 보는 옌(임가흔 분)의 정신치료를 맡으면서 벌어지는 무서븐 사건을 다루고 있다.

보시다시피 장르는 공포지만 당 영화는 <무언의 목격자>처럼 초반엔 공포 후반엔 미스터리, 이 두 가지 필이 듀오를 이루고 있음이다. 사실 옌이 구신을 보며 공포를 제공하는 당 영화의 초반 이야기는 주제와는 크게 상관없지만,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극대화하고 후반에 관객을 놀래키려는 속셈이었는데 이를 차용한 건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구신과의 사투가 짐에게로 넘어가는 순간 공포에서 미스터리로 안면을 싹 바꾸는데 그 상황이 자연스럽지 몬하고 너무나 급작스럽다보니 관객에게 속았다는 기분을 별루 주지 못하고 결국 그 효과를 전혀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당 영화는 전반과 후반의 이야기가 통일성을 갖지 못해 마치 2개의 긴 단편영화를 본 것 같은 삘을 다분히 풍김이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겁나 재미있는 것도 아니다. 죽은 사람이 눈에 보인다는 설정이나 이것이 과거의 비극적인 사고와 관련되어 있다는 ‘원혼’ 이야기는 다른 영화에서 흔하게 본 소재인데 별 차별점을 갖지도 못하니까.

게다가 공포를 자아내는 연출에 있어서도 당 영화는 약간 후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존의 영화문법을 답습하고 있는데 그게 나쁜 건 아니다. 다만 말 그대로 답습에만 그치니 심심스럽고 밋밋할 뿐이라는 얘기지.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결정적 구신의 등장도 정말이지 이제는 신물이 난다. 왜? <링>의 사다꼬 출현을 그대로 빼다 박은 듯한 동작은 무섭기는커녕 이제는 오래된 친구 만나는 기분이 들 정도라서. 그래설까, 그 귀신 쫌 귀엽더라.

그러다 보니 영화자체로만 놓고 보면 당 영화는 절대 남에게 추천 때리고 싶지 않음이다. 그러나 장국영 팬이라면 당 영화 꼭 봐라. 이들에겐 당 영화의 관람이 재미있고, 엄꼬의 차원이 아니지 않는가. 물론 본인이 굳이 시어머니 잔소리처럼 이렇게 얘기 안해도 알아서들 보시겠지만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