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한 장풍대작전>(Arahan Jangpung Daejakjeon)


<피도 눈물도 없이>에 이은 류승완 감독의 메이저 입성 두 번째 영화 <아라한-장풍대작전>이 우리 곁에 찾아왔다.

이름하여 도시무협액션이라고 붙여진 당 영화, 평범한 짭새였던 상환(류승범 분)이 자운(안성기 분) 이하 七仙도인들의 수련을 받고 ‘마라치’가 되어 ‘아라치’ 의진(윤소이 분)과 합체, 나쁜넘 흑운(정두홍 분)을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당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장르명에서 드러나듯 축구와 쿵후를 결합한 <소림축구>처럼  2004년 서울이라는 현대 배경 속에 무협을 접목하여 만화책 속에서나 가능한 황당한 상상력을 스크린에 현실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당 영화 속 주인공들은 고층빌딩을 강호 삼아 공중부양을 하고 경공술을 뽐내며 장풍을 쏘아대는 등 도시무협을 펼치는데 아뿔싸! 이와 같은 현대와 무협이라는 짬뽕이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는 형세다.

왜일까? 두 요소사이의 이질적인 간극을 메꾸어 줄 수 있는 류승완 감독의 장기인 ‘지 멋대로 스피릿’이 당 영화에서 부재하기 때문이다.

사실 류승완 영화의 백미는 기존의 영화 재료를 자양분 삼아 그것을 단순히 흉내내는 것이 아닌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가운데 지 멋대로 자기화 시켜 쌈마이화 한 점에 있다.

그런데 <아라한-장풍대작전>에는, 우리 눈에 익숙한 짱깨영화를 호러, 다큐멘터리 등 장르 뒤섞기 속에 버무려넣었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새로운 형식미도, 오로지 6~70년대 국산 액숀영화들을 재료 삼아 <킬빌>보다 먼저 컴플레이션 영화를 만들었던 <다찌마와리>에서의 기깔난 상상력도 없다.

대신 ‘지 멋대로 스피릿’이 들어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소림축구>에서 이미 써먹은 아이디어와 <매트릭스>의 전매특허인 촬영기술, 그리고 <반지의 제왕>에서의 절대반지 사수하기류의 이야기 등 따라하기에 급급한 모습만 있을 뿐이다.  

물론 당 영화, 한가닥했던 왕년의 액숀배우를 등장시켜 6~70년대 액숀영화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고, 류승완 영화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똥꼬박진한 액숀을 시원스레 구사하고는 있지만 그 뿐, 이를 새롭게 구성하거나 류승완만의 상상력으로 재해석하는 등의 ‘지 멋대로 스피릿’은 어디다 엿 바꿔 먹었는지 온데간데없다.  

그나마 류승범의 코믹연기가 당 영화를 재미없음의 나락에서 간신히 건져내고는 있지만 앞썰에서 밝혔듯 우리가 류승완 감독에게 바라는 건 이와 같은 코미디가 아니지 않나.  

상상력으로 먹고사는 본 공사,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와 <다찌마와리>에서 보여줬던 류승완의 상상력에 뿅가 한국의 타란티노가 되기를 바랬거늘 메이저에 입성한 이후 <피도 눈물도 없이>도 그렇고 당 영화 <아라한-장풍대작전>까지, 타란티노가 아니라 헐리웃으로 가 방황하고 있는 로버트 로드리게스가 연상돼 그에게 실망을 금치 않을 수가 없음이다.

그런 전차로 하루 빨리 류승완 감독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다찌마와리> 시절로 복귀하기를 바라며, 당 영화를 워스트 주녀에 봉하는 바이다.  


<딴지일보>

<어린 신부>(My Little Bride)


당 영화는 집안 어른들의 강요에 못 이겨 머리에 피도 안 마른 16살의 핏뎅이 女高생 보은(문근영 분)이 24의 男大생 상민(김래원 분)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산다는, 굉장히 자극적인 설정의 로맨틱 코미디다.

열여섯 여고생의 본의 아닌 결혼. 여타의 로맨틱 코미디와는 차별화를 긋는 나름대로 꽤 참신한 설정이긴 한데 본 특위가 검열해 본 결과, 당 영화는 이를 통해 이야기로 승부하기보다는 두 배우의 이미지만을 베껴먹고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한마디로 17세 미만의 중고딩들에게나 약빨이 먹힐 듯한 당 영화는 오로지 문근영의 깨물어주고 싶고, 앙증맞고, 오동통한 내 너구리같은 귀여움을 기대하고 잇는 남성관객에게 은근한 성적 판타지를, 그리고 여성관객에게는 백마 탄 왕자와 같은 김래원의 이미지에 투영한 영화같은 사랑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는데 상당부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 당 영화는 보은의 입장에서 굉장히 불합리한 결혼임에도 불구하고 고민내지 저항 같은 건 이미 저 하늘높이 나빌레라~ 남의 집 이야기로 날려 버리고 단순히 보은과 상민의 결혼생활에서 벌어지는 아기자기하게 우끼고 자빠라지는 소동에 집중하고 있음이다.

그리고 당 영화는 남성관객을 위해 어린 신부라는 설정에 착안, 섹스와 관련된 성적 농담 따먹기 수준의 말장난을 주로 구사하고 있다. 더 우낀 건, 이런 가운데서 당 영화는 나름대로 결혼 후 보은이 절라게 고민하는 모습을 낑구는데 그것이 강요된 결혼에 대한 자아찾기류의 고민이 아니라 멋진 두 남자 사이에서의 갈등인 걸 보면 감독이 위의 성적 혐의를 교묘히 벗어나려 얍삽하게 삽입한 설정임을 대충 눈치 깔 수가 있다.

물론 대관객서비스에만 절라 치중하고 있는 당 영화가 영화계의 주소비층인 여성을 위한 배려를 잊을리 없다. 이를 위해 당 영화는 운명적이고 영화같은 사랑의 결실을 보여줄 요량으로 이 장르에 익숙한 공식을 대거 끌어들인다.

그래서 <어린신부>에는 TV 주말연속극을 보는 듯한 좁은 세계 안에서의 우연이 빗발치고, 청소년용 할리퀸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쟤네, 공주병 걸린 애들이야, 넌 진짜 공주고..”와 같은 민망체감지수 무한대의 대사가 진을 치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마지막 장면. 뭔가 거하게 끝내고 싶은 마음과 안일한 해피엔딩이 결합하여 거의 전위수준의 이벤트를 만들어낸다. 거 있잖아, 서로 갈등 때리던 연인이 막판 무대같은 대형공간에서 극적으로 서로 화해하니까 주변에 있던 관중들이 개떼같이 우루루 일어나서 일동 박수 치는 거…

이렇게 배우는 있되 인물과 이야기는 실종된 당 영화에서 그나마 볼만한 부분은 문근영과 김래원 뿐이다. 모, 이 두 배우 보는 것만으로 입장료가 아깝지 아니하다고 생각하시는 독자라거나 청소년 독자라면 본 특위 굳이 나서서 말리고 싶지 않지만 그게 아니라면 웬만하면 극장에서 보지말고 비디오로도 신중히 결정한 다음에 대여료가 한 500원쯤 내려가면 보덩가 말덩가 하시기를 권한다.


<딴지일보>

<범죄의 재구성>(The Big Swindle)


한국판 <오션스 일레븐>이라 할 만한 <범죄의 재구성>은 1996년 구미에서 실제 발생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로, 쥔공 최창혁(박신양 분)과 김선생(백윤식 분)이 주축이 된 독수리 5인조 사기단이 함께 짱구를 굴려 한국은행에서 50억을 삥땅치는 과정을 그린 범죄사기극이다.

그리고 당 영화는 제목답게 이야기를 단순히 시간 순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첫머리에 사기단의 범죄가 실패한 듯한 삘을 풍기는 장면을 제시한 후, 차반장(천호진 분)에 의해 검거된 얼매(이문식 분)와 김선생의 측근인 인경(염정아 분)의 진술에 맞춰 거사가 실패(?)하게 된 과정까지를 재구성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범죄의 재구성>이 이러한 전략을 취하며 보는 이의 의문을 만빵으로 증폭시키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삥땅 친 50억에 만족하지 않고 혼자 몽창 다 꿀꺽하기 위해 서로를 속여먹는 창혁과 김선생처럼 영화 역시 관객과 머리싸움을 벌이기 위함이다.

그래서 당 영화는 전언했듯 과거와 현재를 오락가락하며 여러 인물의 시점에서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은 물론이요, 1인 2역, 화면분할 등의 다양한 트릭을 동원할 뿐 아니라 장면 컷 역시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빠르게 가져감으로써 관객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이렇듯 사기 친 돈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박 터지는 머리싸움을 벌인다는 당 영화의 이야기는 범죄영화 장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뻔하다는 느낌 없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건 바로 이와 같은 영리한 구성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다. 사실 당 영화 속 우리의 쥔공들이 한국은행을 상대로 벌이는 사기행각 과정에서의 수법은 눈을 뿅가게 할 만큼 거창하거나 첨단의 장비가 동원되는 그런 류의 화려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꽤나 그럴싸하게 보이는 이유는 사기계에서 금방 건져 회친 듯 싱싱한 캐릭터 묘사가 기본안주로다 탄탄히 깔려있는 덕택이다.

감독은 이를 위해 직접 리얼 사기꾼을 만나 그 세계를 현미경 바라보듯 절라게 세밀히 관찰했다고 하는데 “청진기 대 보니까 시추에이션이 딱 나와”, “똥구멍 대보면 답 나오지”와 같은 업자필 물씬 풍겨나는 대사는 바로 이런 노력 끝에 얻어진 결과물로 캐릭터에 깊이를 부여할 뿐 아니라 이야기에 사실감을 불어넣는 등 재미를 따따블로 증폭시키고 있다.

하지만 비유띄 벗뜨!

추리극으로써의 이야기만 놓고 보았을 때 당 영화가 관객에게 거는 머리싸움은 그렇게 눈치가 빠르지 않은 잉간이라도 인물의 설정만 보면 그 속임수를 능히 간파할 수 있을 만큼 그 고리가 정교한 편은 아니다.

다시 말해, 비교적 치밀하게 쌓아올린 단서에 비해 사건의 비밀이 밝혀지는 반전 포인트는 상당히 평범하다는 얘기로 그로 인해 전반부동안 증폭된 관객의 의문은 박카스 한큐에 들이키듯 속 시원하게 풀리지는 못하고 있다.

이처럼 <범죄의 재구성>은 반전이 약한지라 결말부가 힘을 받지 못하는 대신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 장르에 익숙한 공식을 충실히 그려내고 있는데 그 결과, 강한 인상을 남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크게 흠잡을 것도 없는 무난하게 잘 만든 영화가 되었다.

덧붙여,
범죄세계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혼란을 일으키는 팜므파탈 인경. 표독한 여성이라는 기존의 편견을 깨고 맹한 팜므파탈로 등장하여 역할 깨기의 재미를 주는 ‘구로동 샤론스톤’ 인경은 그러나 남자만 디글거리는 당 영화에서 극의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줄 알았더니 단순히 구색 맞추기에 불과한 여성 캐릭으로 등장, 아쉬움을 주고 있다. 그래도 빤스만 입고 추는 뇌쇄적 댄스 고거 하나만은 꽤나 인상적이었더랬다.

<황산벌>(Hwang San Bul)


당해 영화 <황산벌>은 신라, 고구려, 백제 핏줄만 같았지 사이라고는 개뿔도 안 좋은 이 삼국이 한 곳에 모여 지네 사투리로 마구 썰을 풀어대면 과연 어떤 커뮤니케이숑이 이루어질지 그 궁금증에서부터 시작된 작품이다.

그래서 당 영화는 중국의 당을 등에 업고 한반도를 꿀꺽하려는 신라와 이들 나당연합의 보급로를 내어주지 않기 위해 뻐팅기는 백제, 요 두 나라간의 황산벌 싸움을 배경으로 전라도 사투리와 갱상도 사투리를 충돌시키면서 발생하는 개그에 주력하기 시작한다. “아따 씨벌 와이리 듭노?”이러면 “겁나게 덥구마잉~” 이런 거.

그 중에서도 스피킹의 백미는 재래식 특수용어, 즉 욕설이라고 신라 정예 욕부대의 “조까조까”를 행위예술로 형상화한 절도 있는 동작에 맞춰 백제의 벌교 출신 욕쟁이 3인방이 “니 똥구멍에서 내장을 히껍 뽑아 선지국에 푹 담궈 우짜고저짜고 씨벌씨벌”거리는 대목은 근래 나온 코미디 영화를 통해 가장 우끼고 자빠라진 개그가 아니었다 싶다.

그렇다고 해서 당 영화가 우직한 돌쇠마냥 사툴 스피킹 하나만을 내세운 개그로 뽕을 뽑을 때까정 일관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당 영화는 강대국의 입김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좌지보지되는 현재의 국제 정세와 완전 흡사한 660년 당시의 전황에 착안하여 극중 김유신(정진영 분)의 대사를 빌자면 “전쟁은 미친넘들 짓인기야!”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첨에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계백(박중훈 분)이가 지 마눌과 자식내미덜 죽이고 전쟁터로 나가는 장면이 낭중에 다시 한 번 등장하는데 “호랭이는 죽어서 꺼죽을 냄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겨불재!’라는 계백의 말에 그 부인이 “호랭이는 그 꺼죽땜시롱 죽고 사람은 이름 땜에 죽는거시여라~”라고 자식새끼를 부여 앉고 목놓아 부르짖는 장면에 이르면 당 영화가 <황산벌>을 통해 말하려는 바는 자명해진다.

이처럼 당 영화는 엄밀히 말해서 코미디 영화가 아니다. 그리고 이건 단순히 우끼리라고만 생각했던 당 영화가 예상과 달리 묵직한 주제를 갖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초반엔 우낌, 중반엔 감동 전략을 구사하는 당 영화가 중반까정 줄기차게 구사하는 사투리 개그, 이거 별루 안 우낀다.

그럼 왜 안 우끼느냐, 개그의 호흡을 전혀 못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당 영화가 주로 구사하는 개그는 편지를 국어책처럼 또박또박 읽는다든지,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을 “신~라 만세 짝짝짝 짝짝”으로 바꾸어 외치는 등 1회용 단순개그가 주를 이룬다. 그런데 요런 개그가 나올 때마다 한번에 딱 끊어주는 게 아니라 매번 길게 끌구 간다고 생각을 해바라… 흐미~

특히 이와 같은 안쓰런 경향은 당 영화의 중요한 뼈다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거시기’를 신라군이 해독하는 장면에서 뚜렷이 드러나는데 이미 관객이 그 의미를 다 알고 있는 마당에 지네들끼리 이게 몬 말입네 줄창 머리 쥐뜯고 있음 보는 관객 지루해서 워쩌라고…

그래서 본 특위는 이런 안 우낀 개그덜은 과감하게 싹둥 잘라 버리고 차라리 전쟁의 무해함 이 쪽으로 더 전념했으면 후반부 감동의 약빨도 더 살고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의 어색한 이음새도 깔끔하게 연결되지 않았을까 아쉬워 해보지만 이미 엎어진 거 우짜겠는가.

그런 전차로 초반엔 상당히 거시기하게 출발함에도 불구하고 중반이후 상당히 선전하여 머시기한 결말을 보여줬지만서리 결국 전체적으로 상당히 거시기한 영화가 돼 버린 까닭에 당 영화 <황산벌>을 뮝기적에 봉한다.


<영어완전정복>(Please Teach Me English)


<비트>, <태양은 엄따>의 김성수 감독이 장기간 중국에서 모래바람 맞아가며 <무사>를 찍더니 크게 디었나부다. 그래서 차기작으로 들고 나온 것이 부담을 약 세스푼 반큰술 정도 덜어내고 맹근 <영어완전정복>.

<영어완전정복>이라는 제목과 왕대갈의 두 남뇨가 떨렁 박혀있는 포스터만 잘 조합해보면 얼추 스또리가 짐작되듯, 당 영화는 영어회화능력이 쥐뿔도 안 되는 9급 공무원 영주(이나영 분)와 어설픈 바랑둥이 문수(장혁 분)가 영어를 정복해 가는 과정 속에 서로 호감을 느껴 밀고 땡기고 지지고 볶고 줄다리기 좀 하다가 결국 러부를 정복한다는 로맨틱 코미디다.

그리고 감독은, 놈씨들 영화만 만들 줄 알았지 뇨자 캐릭터와 코미디엔 영 재능이 없을 것 같다는 충무로 참새덜의 쎄바닥을 뽑아버리기라도 하듯 이 두 가지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당 영화에서 제일 먼저 돋보이는 부분은 이나영이 연기한 영주라는 캐릭. 거의 사활을 걸었다고 할 정도로 당 영화가 그뇨에게 들인 공이 큰데 절라 이쁜 그뇨를, <네 멋대로 해라>에서의 털털하고 매력 만점의 그뇨를 완전 어리버리 공주병 9단으로 싹 망가뜨려 놓은 것도 그러려니와 이나영 자신도 여기에 개의치 않고 아낌없이 망가져 주니… 근데 얘는 왜 몰해도 이렇게 구여운 거냐.. 헝, 너무 조아…

게다가 당 영화는 이런 코믹발랄 캐릭인 영주를 앞세워 영어회화강좌시간에 쉬이 벌어지는 에피소드, 가령 노말(normal)을 노루말로 발음한다던지 하는 그런 상황들로 우낌을 유도할 뿐 아니라 애니메이숑, 오락화면, 말풍선, 사극, 액숑 등 우낄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 출동시키지는 않지만 우쨌든 그런 전투적인 태세로 우껴주고 있음이다.

하지만비유띄벗뜨…

이렇게 우껴주는데 있어 찬밥 더운밥 따지지 않고 이것저것 다 끌어들이는 형국이니 영화가 농수산물 새벽 시장통마냥 존나게 산만하다. 게다가 영화가 너무 우껴주겠다는 의지가 강력하다보니 인물이고 상황이고 너무 희화화해 오바하는 경향이 짙다.

아무리 코미디라도 그렇지 운행 중인 버스 운전기사한테 공무원 카드 보여주면서 나 이런 사람인데 앞차 따라가 주세요, 이런다구 기사가 슬슬 기면서 정말 따라가는 게 어딨냐. 버스운전기사가 그렇게 물로 보이냐…

그러나 당 영화의 가장 결정적인 패착은 울나라 사람덜의 영어에 대한 과열현상을 코믹으로 승화하여 풍자하려는 시도가 중반 이후 게눈 감추듯 쏙 사라지고 그 자리를 오로지 영주와 문수의 러부질로만 도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당 영화는 결국, 여타 로맨틱 코미디와 차별화 되는 부분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영주와 문수의 러부질이 기깔나게 재미난 것도 아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걍 산만한 로맨틱 코미디가 되고 말았다.

<올드보이>(OldBoy)


전작이 쫄딱 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이 멀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그 강렬한 스타일 덕에 차기작에 대한 궁금증을 배로 더했던 박찬욱 감독, 그가 신작을 내 놓았다. <올드보이>.

거기에 국내 최고 연기파 배우 중 1人인 최민식이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 젊은 아덜도 소화하기 힘들다는 마카로니 파마를 멋지게 소화하여 눈길을 끈 점, 또한 그 선하디 선한 눈망울 덕에 악역은 평생 맡지 못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유지태가 악당(으로 보이는) 역에 캐스팅 된 점 등 당 영화가 뿜어대는 화제는 실로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이라 아니 할 수가 엄따.

그리고 개인적으로 <은실이> 시절부터 눈 여겨 보아왔던 ‘영채’ 강혜정이 출연한다는 것까정… 므흣

그러니 이 문제적 영화를 본 우원이 어찌 기냥 모른 척 지나갈 수 있으랴, 해서 늦었지만 검열평 올린다.

1.

당 영화 <올드보이>는 츠치야 가롱(Tsuchiya Garon)이 이야기를 쓰고 미네기시 노부야키(Minegishi Nobuaki)가 그림을 그린 일본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라 이에 대해선 잘 알고 있겠지만 이 만화가 국내에 소개된 지 벌써 7~8년이 지났고 또 원작이 있다니까 그 내용이 어떤지 궁금하자너, 그래서 원작만화에 대해 잠시간 썰 풀자면..

결혼을 앞둔 며칠 전 원인도 모른 채 실종된 주인공 고토, 깨어나보니 침대와 테레비만 딸랑 있는 어느 방안에 감금되어 있다. 그 방에서 자신이 왜 갇혀있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고 군만두로만 연명한지 10년, 풀려난 뒤부터 고토는 자신을 이케 만든 장본인을 찾아 나선다.

근데 독자제위덜께서는 본 우원이 원작의 이야기를 얼마간 까발렸다고 해서 지금 혹시 ‘씨바, 당했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어허, 오해 마시라. 관람에 방해될 정도까지는 밝히지 않을테니. 그랬다 그 후환을 어케 감당하려고…

웬만해선 당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는 불지 않겠지만 그래도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완전 백지상태에서 당 영화를 관람하고 싶다면 지금 즉시 빠꾸 버튼 누질러 다른 기사 찾아보시덩가 하시고.

애니웨이, 그래서 군만두 맛을 단서 삼아 자신을 10년 동안 감금한 이를 만난 고토. 결국 고토는 그가 자신의 학창시절과 관계 있는 넘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당시 머리는 좋았으나 하는 꼬라지나 생김새가 형편없어 반에서 왕따를 당했던 그의 뼈저린 고독을 고토가 알아차렸기 때문에 감금당했다는 기상천외한 이유가 밝혀지면서 원작만화는 그렇게 끝맺음된다. 절라 허무하게…

이것이 원작만화 <올드보이>의 대강의 스토리다. 모, 이거 알았다고 크게 걱정은 마시라.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이유도 모른 채 사설감옥에 갇힌 한 남자가 풀려난 뒤 이를 밝혀낸다는 원작의 설정은 따르고 있되 그 외의 부분들은 상이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전혀 다르게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사실 원작 <올드보이>의 경우, 감금당하는 쥔공의 설정이나 그가 그 이유를 추리해 가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재미는 끝내줬으나 그것에 비해 결말이 허탈할 정도로 시시하고 게다가 인물들의 깊은 묘사 없이 오로지 이유를 밝히는 데에만 집중하는 까닭에 전체적으로 앙상하고 건조한 느낌이 든다.

박찬욱 감독이 많은 언론에서 당 영화를 ‘과잉’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얘기하는 까닭은 아마 이런 부분들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영화를 ‘과잉’으로 보이게 하였을까? 그런 점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부분 중의 하나가 인물에 대한 묘사다.

당 영화에서 감금당하는 역을 맡은이는 ‘오늘이나 대충 수습하고 살자’는 엄청난 뜻이 담긴 이름의 오대수(최민식 분), 그리고 그를 15년(영화에서 감금기간이 5년 늘었다)이나 갇혀있도록 만든 이는 ‘젠틀맨’ 이우진(유지태 분)이다.

원작에선 이들이 단순히 쫓는 인물과 의도적으로 쫓기는 인물의 구도 속에 인물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박하게 이루어지는 것에 반해 당 영화에서 오대수와 이우진은 처한 상황이나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인물로 설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인물에 대한 묘사에 있어서도 만화와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오대수가 굉장히 폭발적이고 즉흥적이며 칙칙한 인상을 준다면 이우진은 그와는 정반대로 무척 차분하며 치밀하고 깔끔하게 그려지고 있다. 게다가 살고 있는 장소조차 ‘몇 평 안 되는 감옥 또는 단칸방 vs 100평이 넘는 사치스러운 펜트하우스’로 처리됨으로써 둘이 대립하고 있는 구도를 더욱 강하게 했을 뿐 아니라 감정이입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인물의 성격이 잘 살아나도록 하였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정반대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끝에 가보면 오대수, 이우진 모두 복수가 살아가는 원동력(?), 즉 성격이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또한 시간차이는 있지만, 같은 처지로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 역시 드러나게 된다는 점이다. 그니까 둘은 다르게 보이지만 실은 같은 인물인 셈이다.

사설감옥에서 15년 만에 풀려난 오대수가 옥상에서 자살하려는 남자의 넥타이를 붙잡고 있는 구도가 나중에 이우진에게 같은 모습으로 적용되는 등 당 영화에서 이야기적으로든, 형식적으로든 반복의 형태가 눈에 띄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당 영화는 차고 넘친다는 인상을 준다.  

3.  

그런데 이런 느낌이 드는 건 단지 반복의 구도가 되풀이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당 영화에서 보여지고 들려지는 스똬일에 있어서도 역시 차고 넘친다는 과잉의 느낌이 드는데 특히 영화 시작과 함께 울려 퍼지는 폭발적인 음악소리를 접하고 있노라면 감독이 ‘나 이 영화 존나게 넘쳐나게 만들 거야, 씨바!’ 라고 작정하고 들어오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전작 <복수는 나의 것>에서 보여졌던 메마르고 차분한 맛이 돋보였으며 그로 인해 안정감을 주었던 스타일과 비교하면 그 느낌이 더욱 확연해진다.  

일단 사운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당 영화에는 정말 음악이 많이 나온다. 영화 시작한 다음 중반정도에 가서야 음악이 흘러나오던 <복수는 나의 것>에 비하면 상영 내내 음악이 흘러나온다고 해도 될 정도다.  

게다가 마빡 하나가 스크린을 반이나 차지하는 클로즈업이 사용됨으로써 굉장히 극단적인 기운이 감지되며, 컷 수에 있어서도 당 영화는 <복수는 나의 것>에 비해서 많은 편인데 특히 오대수가 15년 동안이나 갇혀있던 사설감옥에서의 생활을 5분 정도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의 컷 편집은 분할화면까정 끌어들이면서 보다 빠르고 현란하게 구성하고 있다.

이외에도 누아르 화면을 도드라지게 하기 위한 촬영기법이라든지 거친 입자가 돋보이는 화면 등 <올드보이>에는 많은 영화적 기교가 사용되고 있고, 세트구성에 있어서도 오대수가 갇히는 방, 미도(강혜정 분)의 방, 대수와 미도가 잠시 묶는 여관의 벽지를 격자무늬의 컬러풀한 것으로 설정하여 색깔 있는 화면을 만든 것도 그런 의도의 일환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오대수가 자신이 감금되었던 장소에서 17:1로 싸우는 장면이 있는데 다른 장면들과는 달리 원 컷트 원 씬으로 단순간단명료하게 촬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폭이 여타의 과잉이 느껴지는 장면들에 비해 더 크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린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아 낼 수가 있다. 감독이 생각한 의도가 단순히 돈을 많이 들이고 기교로 무장한다고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충실하고 그런 기교들이 스토리를 받쳐주는 역할에 충실할 때 가장 적합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얘기.

그니까 종합해 보자면 당 영화에서의 ‘과잉’은 그냥 겉멋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복수’라는 폭발적인 감정을 묘사하기 위한 가장 주요한 표현방법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당 영화는 현실적이기보다는 비현실적으로 보여 만화스럽다는 느낌도 드는데 이처럼 여러 모에서 보았을 때 감독이 당 영화 <올드보이>를 ‘과잉’으로 떡칠(?)한 건 아주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4.

그러나 이 모든 걸 떠나서 관객이 당 영화를 통해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는 건 모니모니해도 그 반전의 충격이 얼마나 쎈가하는 그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당 영화가 노리는 반전의 효과는, “절름발이가 범인이다”라는 그 사실 하나가 <유주얼 서스펙트>의 전부였던 것과는 달리 <올드보이>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 영화의 반전이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또 놀랍지도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당 영화가 주장하고 있는 몇 가지 중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반전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대신 당 영화에서의 반전은 <식스센스>처럼 마지막까지 쌓아온 논리를 한 번에 박살내는 그런 이성적인 충격이 아닌 금기를 대할 때의 정서적인 충격과 같은 성격의 것이다. 게다가 이것이 밝혀졌을 때 영화가 금방 끝나는 것이 아닌 이로부터 또 다른 상황이 전개되는 것 역시 <올드보이>가 여타의 반전영화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지점이다.

최근 반전영화가 많아지면서 안 해도 될 반전을 억지로 낑궈서 영화의 재미를 떨어뜨리는 건 물론이고 같지 않은 반전을 마케팅 뽀인트 삼아 관객의 주머니를 털고 있는 작금의 反반전적인 영화들이 횡행하는 작태에 비추어 볼 때 당 영화가 반전에 목숨 걸지 아니하고 이야기를 전개한 것은 훌륭한 점이었다.      

하지만비유띄벗뚜…

이 반전의 결과가 ‘모모모’와 같은 현상에 기대고 있는 건 아쉬운 부분이었다. 특히나 당 영화가 많은 단서와 암시를 영화중반에 흘러 놓으며 꽤 치밀하게 진행되었던 이야기인 것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식의 처리는 쫌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오대수와 이우진의 관계가 형성되어 가는 이전의 이야기에 비해 재미를 떨어뜨린 부분이었다. 앞서의 상황들을 꽁으로 먹고 들어간다는 느낌이랄까…

우찌됐던 그리하야 당 영화는 이야기면 이야기, 스똬일이면 스똬일, 이 두 요소가 ‘복수’라는 하나의 틀 속에서 통일성을 이루며 독특한 세계를 구성하고 있지만 딱 하나, 반전 부분의 허탈함으로 인해 강한 에너지가 발산되는 그 뒤의 이야기가 크게 어필하지 못한 점, 그래서 재미의 반감은 물론이거니와 이야기의 짜임새가 다소 헐겁게 된 점은 심히 안타까웠음이다.  

5.

이렇게 해서 당 영화 <올드보이>에 대해 알아보았다. 결론 가보자.

당 영화, 스타일이 화사해지고 잔혹한 묘사가 줄어들긴 했지만 영화 전편에 흐르는 잔인한 기운이랄지 이야기에서 보여지는 예기치 몬한 설정은 <올드보이>가 <복수는 나의 것>처럼 매우 논쟁적인 영화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직도 박찬욱 감독에게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보여준 재미를 기대하고 당 영화를 관람했다간 심히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앞에서 말한 당 영화의 반전 이후 부분은 알려진 것과 달리 그렇게 뒷골을 땡기게 만들 정도로 충격적인 것도 아니었고 뽕나게 재미있는 것도 아니었음이다. 오히려 그런 부분들보다 <올드보이>는 상이한 두 캐릭터의 면면이라든지 그 스똬일이 더욱 흥미 있는 영화였다.  

그런 전차로, 한결같은 만쉐이~ 대형을 보이고 있는 재래식 언론에 현혹되어 당 영화를 향한 과도한 기대감을 품거나 또한 반전이라는 부분에만 뽀인트를 맞추어 이것 외에 당 영화가 가지고 있는 많은 재미난 부분을 놓치는 愚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아무튼 여러 의미에서의 문제작, <올드보이>에 대한 검열보고 여기서 마친다. 이상!

<낭만자객>(Romantic Assassin)


<낭만자객>은 <두사부일체>, <색즉시공>의 연이은 대박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코미디 흥행감독의 반열에 올라선 윤제균 감독의 한자성어 시리즈 세 번째 작품으로,

허우대만 멀쩡했지 하는 짓은 영 얼빵한 요이(김민종 분)와 예랑(최성국 분)의 낭만자객단이 어찌저찌 우당탕해서 처녀구신 향이(진재영 분)에게 잡혀 그녀의 恨을 풀어주고 결국 저승 가는 길을 열어준다는 스또리의 영화다.

이렇게 당 영화는 감독의 전작을 보나, 옆에 있는 포스터를 보나, 위에 짧게 썰한 이야기를 보나 여러 모로 보았을 때 코미디의 외양을 두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본 특위가 확인해 본 결과, <낭만자객>은 놀랍게도 웃기기는커녕 볼수록 눈물만 줄줄 흐르는 신파영화였다는 사실이 뽀록나고야 말았다.

물론 당 영화는 코미디 비스무리한 걸 구사하기는 한다. 근데 그 수준이란 게, 우껴주고는 싶은데 말로 우껴줄 실력은 안 되니 영화 속에는 의미 없는 욕설과 음담패설, 그리고 더럽기만 한 화장실 개그만이 난무하고, 결국 하는 수 없이 슬랩스틱 코미디로 승부를 거나 이 역시 공허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으니…

이를 접한 관객은 전혀 우끼지도 않은 개그를 2시간 내내 보고 있는 자신의 팔자가 기구해지는 동시에 남산타워 3배 높이로 파도치며 밀려드는 회의감에 눈물이 절로 앞을 가리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감독은 한 번 울린 관객의 눈물샘을 제대로 터뜨려 주려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그래서 같잖은 개그에 이어 이번엔 거의 15년 전 <우뢰매>에서나 봤음직한 합성화면을 선보임으로써 관객을 다시 한 번 눈물의 도가니탕으로 진탕 빠뜨리니…  

아~ 정말이지 한국의 수려한 금수강산을 배경화면 삼아 불새가 되어서 하늘을 나르는 우리의 낭만구신들의 합성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이 꼬라지 가지고 올 겨울 <반지의 제왕>과 맞짱 뜨겠다는 그 무식한 기백이 놀라워 또 한 번 눈물이 앞을 가릴 따름이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스토리가 말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당 영화는 감독이 원하는 바와는 달리 우낀 대목에 이르면 관객이 울음을 터뜨려 버리고, 슬픈 대목에 이르면 웃음을 터뜨려버리는, 쒯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처절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 절체절명의 순간, 관객은 <나비>에서의 은퇴선언을 고무신 뒤집어 신듯 번복, 기염을 토악질하며 당 영화에 출연한 김민종이 이제는 정말로 영화계 은퇴의 길을 가야하는 건 아닌지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물을 훌쩍이게 되며, 나름대로 테레비에서 괜찮은 MC로 주가를 올리던 이매리가 왜 당 영화에 출연해 스타일 구김으로써 앞으로 활동하는데 지장이 생기는 건 아닌지 눈물이 글썽이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제쳐두고 당 영화가 많은 사람을 슬프게 하는 건 감독이 <천녀유혼>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결과물이 바로 이 꼬라지였다는 사실과 코미디도 아닌 주제에 자신을 코미디로 불러야 하고, 영화 같지도 않은 것이 영화 행세를 해야만 하는 그 기구한 운명이다.

해서 이 영화를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이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판단 하에 본 특위는 솟구치는 눈물을 연신 닦아내며 당 영화 <낭만자객>을 워스트에 뽕하는 바다… 훌쩍.  

<동해물과 백두산이>(Lost In The South Mission: Going Home)


당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는, 최근 북한을 뿔 달린 시뻘건 도깨비가 아닌 가끔가다 뻘짓꺼리도 하고 情도 나눌 줄 아는 따뜻한 인간의 시선으로 접근한 <휘파람 공주>, <남남북녀> 등의 북한人을 소재로 한 영화와 궤를 같이 하는 작품이다.

이는 곧, 북한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비스무리한 관점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물론이요, 전체적인 만듦새에 있어서도 ‘거기서 거기다’ 할 정도로 동일한 모냥새를 취하고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다.

북한 장교 최백두(정준호 분)와 그의 쫄따구 병장 림동해(공형진 분). 날씨 좋은 어느 날 낚시질 나왔다가… 술도 한 잔 걸치고 날씨도 급작스레 폭풍우 모드로 변하는 바람에 난파되어 눈을 떠보니.. 허걱! 이 곳은 남한..

이들은 과연 어떤 난관을 거쳐 북한으로 돌아오게 될 것인가, 가 바로 당 영화의 재미를 결정짓는 핵심부분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취하는 전략은 당근 코믹인데 그래서 당 영화의 성패여부는 관객을 얼마만큼 웃기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나 당 영화는,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조폭마누라 2>, <낭만자객>,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등 요즘의 한국 코미디 영화가 관객에게 똥칠을 가했던 그 뒤안길을 그대로 복습하는 추태를 범하고 있다.

일단 이야기의 대략적인 와꾸만 잡아놓으면 게임은 다 끝났다는양, 세부적인 상황을 더 다듬어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하기보다는 배우의 개인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전문용어 구사 못 해 안달 난 욕쟁이 할무이마냥 시도때도없이 씨벌씨벌을 입에 달고 다니며, 화장실 유모 안 넣으면 한국코미디쒯영화 협의회에서 과태료라도 물리는지 똥 넣는 장면 같은 類에 왜 이렇게 집착을 하는지…

그게 또 우끼다면 몰라, 당 영화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억지 웃음 유발에만 심하게 몰두하고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앞썰했듯 당 영화는 배우의 개인기에 심하게 의존하고 있으면서 그 배우들이 제대로 우껴주는 것도 아님인데 본 특위는 당 영화의 마지막, 전국노래자랑 무대에서 1등을 먹어야지만 북한으로 넘어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동해와 백두가 뭔가 크게 하나 제대로 터뜨려 주는 줄만 알았다.

무대에서 <챔피언>을 북한 사투리로 구성지게 부르는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어느 정도 각은 잡아주는 공형진은 둘째치고 당 영화에서 개그적 감각은 전혀 보여주지 못하는 정준호, 무대를 와리가리하며 뻘쭘한 동작으로 챔피언! 챔피언! 외쳐대는 모습을 보면서 본 특위는, 아이고! 안 우껴주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네, 하는 생각까정 들었더랬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 영화가 한 개도 안 우끼다는 얘기가 아니다. 공형진의 개그 타이밍을 맞추는 연기는 거의 송강호와 삐까맞다이 먹을 정도로 훌륭했는데 그게 자주 나왔으면 좋으련만 간혹가다 한 번씩 튀어나오니 이를 어째쓸까나…

우리가 야구장에 번트안타 하나 보러 경기장을 찾는 것이 아니듯 단지 우끼는 몇장면 건지려고 영화관에 가는 것이 아닌 전차로 해서 본 특위는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워스트에 뽕한다.

<실미도>(Silmido)


당 영화는 실제로 지난 1971년 서울 한가운데에서 벌어졌던 ‘실미도 사건’을 소재로 가져와, 북파공작원의 탄생에서부터 비극적 최후까지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즉, 강우석 감독이 시대를 우회적으로 풍자했던 <투캅스>나 <공공의 적>과 달리 이번엔 역사자체가 사회모순이자 아픔이었던 실미도 사건을 정면에 드러내놓고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얘기다.

일단 당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실미도 사건이라는 당시 역사가 운명적으로 내포하고 있었던 비극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이 속에서 양성된 인찬(설경구 분)을 위시한 북파공작원 개인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더해 그들을 조련한 기간병들과의 인간적인 관계를 접고 서로의 심장을 향해 총부리를 겨눌 수밖에 없었던 드라마틱한 관계 등 머리부터 발끝까정 말이 되게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캐릭터 코미디 영화에 일가견을 보여온 감독답게, 웃음기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쌀벌한 훈련과정에서 우리의 액숀협객 다찌마와리 임원희를 앞세워 의외의 우끼고 자빠라짐을 유도, 이를 통해 인물의 캐릭터를 살리고 관객의 감정이입까정 자연스럽게 이끎으로써 재미까정 일타쌍피한 솜씨는 관객을 재미의 도가니탕으로 흠뻑 빠뜨려놓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비유띄벗뜨… 그렇게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던 이야기는 북파공작원들의 김일성 모가지 따러가는 임무가 전격적으로 취소되면서부터 재미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한다. 왜냐?

당 영화는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북파공작원 vs 기간병’의 구도를 접고 대신 ‘북파공작원, 기간병 vs 국가’라는 새로운 관계에 초점을 맞춰 이들이 ‘희생양’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동시에 국가주의에 똥침을 놓을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를 위해 감독은 관객의 동정심을 유발하는 전략을 취하는데…

하지만 아쉽게도 북파공작원과 기간병간의 관계 묘사라는 것이 마치 감정표현에 서투른 중년남성을 보는 것처럼 굉장히 촌스러워 이야기에 몰입하려는 관객의 감정이입을 방해하고 있다. 특히 조중사(허준호 분)의 사탕봉지는 정말이지…

게다가 당 영화는 뒤로 갈수록 북파공작원이 희생양이라는 사실에만 치중하여 오로지 관객의 울음보를 터뜨리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데 이를 보여주는데 있어 하나의 사건을 축으로 전개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몇 개의 짜잘한 에피소드 위주로 끌고가니 이야기가 산만해져 갈등포인트가 힘을 받지 못해 결국 스토리는 늘어지고 전개는 산만해진다.

그 결과, 이런 힘있는 이야기를 그저 ‘실화 재현’ 수준에만 머물게 하고 관객의 감정을 순간순간 자극하여 울리기에만 바빴지 큰 감정의 울림을 주지 몬한 감독의 단순한 연출력은 상당한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