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K.딕, 작가들이 더욱 사랑하는 작가

(장르의 사소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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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 미발표된 작품은 원제 그대로 표기하였습니다.

필립 K.딕의 <유빅> 국내 출간 소식을 듣고는 의아했다. 필립 K.딕이 국내 대중들 사이에서 그리 인기 있는 작가가 아닐뿐더러 그의 소설은 대개 원작영화의 개봉에 맞춰 출간된 것이 대부분이었던 까닭에 다소 뜬금없이 느꼈던 것이다. 그와 관계없이 장르문학을 다루는 출판사라면 필립 K.딕은 굳이 장삿속이 아니더라도 의무감처럼 반드시 다뤄보고픈 작가 중 하나다.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지면서 누구도 모방하기 힘든 세계를 창조한 독보적인 작가이기 때문이다.


대중과 비평 모두 외면하다

필립 K. 딕은 1952년 데뷔한 이래 1982년 <The Owl in Daylight>를 쓰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하기까지, 30년의 작가 생활 동안 단 한 편의 상업적인 성공도 거두지 못했다. 일례로,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이하 <전기양>)에 얽힌 일화는 그의 작가로써의 삶이 얼마나 기구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으로 유명한 <전기양>은 K.딕의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다만 처음 발표됐던 1966년만 하더라도 그의 작품은 주류 비평가들의 철저한 외면 속에 작가 본인은 신경 쇠약 증세를 보이며 약물에 의존한 삶을 살기에 이른다. 오히려 필립 K.딕은 동료들이 먼저 알아봐준 작가 중의 작가였다. 영국의 SF작가 브라이언 올디스(<온실>)는 “현대 세계의 불안을 그려내는 대가급의 작가”라고 그를 추켜세웠고 <전기양>을 읽고 필립 K.딕의 세계에 푹 빠졌던 존 레논은 <유빅>의 영화 제작을 추진한 적도 있었다. 

<전기양>의 발표 당시 갓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로저 젤라즈니(<드림 마스터>)는 그중 가장 열렬한 독자였다. <전기양>을 읽고 난 후의 느낌에 대해 “강렬한 은유를 담은 시를 읽었을 때와 비슷하다.”고 극찬했고 1976년에는 그와 함께 <Deus Irae>을 함께 집필하기도 했으며 후에 <블레이드 러너>의 개봉과 함께 <전기양>이 재출간됐을 때는 직접 서문을 쓰기도 했을 정도다.

이처럼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손꼽히지만 필립 K.딕이 <전기양>으로 누린 재정적인 혜택은 얼마 되지 않는다. 지금이야 걸작으로 평가받지만 <블레이드 러너>는 1982년 6월 미국 개봉 당시만 해도 ‘올 여름 최대 실패작’이라는 멍에를 짊어지며 할리우드에 재앙을 안겨줬던 작품이었다. 필립 K.딕은 <블레이드 러너>가 완성되기 전 20분가량의 영상을 보고 꽤 흡족해했다. 하지만 시사회 직전, 병원에서 숨을 거두며 안타깝게도 그 후에 이뤄진 영화의 재평가로 얻게 될 작가적 성공을 누리지 못했던 것이다.


사후에야 인정받다

필립 K.딕은 오히려 사후에 더 유명세를 치룬 작가다. 영화의 참패에도 불구, <블레이드 러너>가 비디오 출시 이후 극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필립 K.딕의 작품 역시 재조명받게 됐다. 생전에 발표하지 못했던 미공개 소설들이 출간 붐을 이루었고 영화 판권 계약도 경쟁적으로 이뤄졌으며 1982년에는 ‘필립 K.딕 상’까지 제정될 만큼 그의 이름은 SF와 동일한 의미로 평가받는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한창 활동 중인 SF소설가들에게 ‘영향 받은 작가’를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반드시 필립 K.딕을 꼽는다. 개인적으로 2008년과 2009년 각각 베르나르 베르베르(<개미>)와 테드 창(<당신 인생의 이야기>)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 같이 필립 K.딕에게서 받은 영향을 숨기지 않았다.

<신>의 완간으로 국내를 찾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필립 K.딕을 꼽으면서 “필립 K.딕의 철학이 맘에 든다. 그는 독자들이 이전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로봇의 감정 같은 것을 소재 삼아 문제를 제기했다.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가 제기한 문제들을 새롭게 해석해 보여주고 있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또한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방문했던 테드 창은 국내 독자들에게 <Life Cycle of Software Object>을 낭독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작품을 두고 “필립 K.딕의 <전자 개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단편”이라 소개하기도 했다.

필립 K.딕에 대한 애정과시는 비단 SF작가에만 한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은 할리우드 영화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으로도 유명한데 리처드 링클레이터(<비포 선라이즈>)와 찰리 카우프먼도 그중 하나다. 특히 이 둘은 <스캐너 다클리>의 영화화를 두고 악연을 맺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연출을 맡은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인간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원작의 주제가 찰리 카우프먼이 해온 그간의 시나리오 작업(<존 말코비치 되기><어댑테이션>)과 일맥상통하다는 점에서 각색을 맡겼지만 맘에 들지 않았던 것.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문제의 시나리오를 깡그리 무시한 채 직접 각색까지 맡아 영화를 완성했고 카우프먼은 이를 계기로 그간 꿈꿔왔던 연출에 대한 욕심을 더욱 굳건히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첫 번째 결실이 바로 얼마 전 국내에 개봉했던 <시네도키, 뉴욕>이다.)


박찬욱, 필립 K.딕의 영화를 꿈꾸다

국내 영화인들 중에서 필립 K.딕에 대한 애정이 가장 높은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박찬욱이다. SF광으로 소문난 박찬욱은 해외에서 만들고 싶은 영화 중 하나로 필립 K.딕의 작품을 염두에 두고 있을 정도다. <올드 보이> 개봉 당시 해외에서의 연출 의사를 타진해온 프랑스 제작자에게 “<전기양>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그거 혹시 <블레이드 러너>의 리메이크 아니냐고. 설마, 그럴 리가.

“<블레이드 러너>를 원작에 가깝게 만드는 기획이었다. 원작소설은 액션영화 느낌이 덜한 대신에 데커드가 스스로 ‘레플리칸트가 아닐까?’하는 의문을 많이 담고 있다. 그 외에도 재미있는 소재가 굉장히 많다. TV에서 사이비종교 지도자가 진행하는 것 같은 프로그램도 나오고 흥미 있는 모티브가 참 많다.” 하지만 프랑스로부터 답변이 오지 않아 그 이상은 진행되지 못했다. “<매트릭스> 이후 SF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되었기 때문”에 필립 K.딕 원작의 박찬욱 감독 연출의 작품은 그렇게 묻힌 프로젝트가 되고 말았다. SF를 좋아하는 팬으로써 국내 SF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것에 대해 굉장히 아쉬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유빅>의 출간 소식을 듣곤 뒤도 돌아볼 것 없이 대형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덥석 구입했더랬다. 어느 지인은 필립 K.딕이 그렇게 대단하냐며 나의 호들갑스러운 행동에 우스개처럼 핀잔을 주기도 했다. 웬만해선 신간을 바로 구입하는 편은 아니지만 필립 K.딕 만큼은 예외다. SF를 필두로 장르문학의 국내 독자층이 살얼음처럼 얇은 상황에서 필립 K.딕의 작품은 때를 놓치면 구입하기가 쉽지 않은 일종의 레어 아이템이다. 미국에서는 K.딕에 대한 비평서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여전히 찬밥 신세인 것이다.

‘장르의 아주 사소한 역사’는 장르문학에 대한 관심을 조금이라도 이끌어보기 위해 기획된 코너다. 이 기사를 통해 필립 K.딕도 그렇지만 조금이나마 장르문학에 관심을 갖는 독자가 생겼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Tip!  필립 K.딕의 세계로 잠입한 맷 데이먼


사용자 삽입 이미지현재 할리우드에서 진행 중인 필립 K.딕의 영화화는 물경 10여 편에 이른다. 이미 촬영을 마친 동명 원작의 <Radio Free Albemuth>가 올해 개봉이 예정된 상태고 <Adjustment Team>을 원작으로 한 <The Adjustment Bureau>가 한창 후반 작업 중에 있다. 또한 리메이크가 결정된 <토탈 리콜>이 <이퀼리브리엄>의 연출가로 유명한 커트 위머를 각본가로 고용했으며 <King of the Elves> <Flow My Tears, the Policeman Said> <유빅> 등이 영화화를 기다리고 있다. 한편 배우 폴 지아메티는 2006년부터 자신의 제작사에서 필립 K.딕의 전기 영화를 개발 중에 있다.

그중 가장 관심을 모으는 작품은 <The Adjustment Bureau>다. <오션스 트웰브>의 각본가 출신인 조지 놀피의 연출 데뷔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맷 데이먼, 에밀리 블런트 등의 호화 캐스팅 덕택에 벌써부터 2011년의 기대작으로 손꼽힌다. 이 세계가 누군가에 의해 조종된다는 이야기로, 원작의 미래 배경을 현대로 바꿔 맷 데이먼과 에밀리 블런트의 러브스토리로 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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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EEN
2010년 3월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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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박쥐>의 일거수일투족이 매일같이 포털사이트의 대문을 장식하고 있다. 그중 눈길을 끈 기사가 있었다. 박찬욱 감독이 <할리우드 리포트>와 나눈 인터뷰였는데, “좋은 시나리오만 있다면 할리우드로 날아갈 준비가 돼있다”고 답했던 것. 이 기사를 접하곤 <올드보이> 개봉 당시 <딴지일보>와 박찬욱 감독이 나눴던 인터뷰 중 한 대목이 생각났다. 그는 자신을 SF소설 광이라고 소개하며 해외에서 찍고 싶은 영화 중 하나로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를 꼽았다.

“<블레이드 러너>를 원작에 가깝게 만드는 기획이었어요. 원작소설은 액션영화 느낌이 덜한 대신에 데커드가 스스로 레플리칸트가 아닐까 의문을 많이 담고 있죠. 그 외에도 재미있는 소재가 굉장히 많아요. TV에서 사이비종교 지도자 같은 프로그램도 나오고 재미있는 모티브가 참 많죠.”

1993년 출판됐다 절판된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가 최근 복간됐다. 박찬욱 감독의 말대로 필립 K. 딕의 작품은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다. 리들리 스콧은 원작소설의 방대한 이야기를 데커드(해리슨 포드)와 레플리칸트(극중 ‘로이 베티’(룻거 하우어))의 추격전으로 축소하며 원작 팬들로부터 강한 비난을 사기도 했다. 지금이야 <블레이드 러너>는 걸작으로 추앙받지만 1982년 6월 미국 개봉 당시만 해도 ‘올 여름 최대 실패작’이라는 멍에를 짊어지며 할리우드에 재앙을 안겨줬던 작품이었다.

<블레이드 러너>가 이후 팬들 사이에서 재조명 받으며 걸작의 반열에 오른 데에는 ‘데커드는 레플리칸트인가?’라는 의문이 중요하게 작용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데커드가 레플리칸트, 즉 안드로이드인지 아닌지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는 인간뿐 아니라 안드로이드의 생명도 모두 소중하다고 역설한다.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 묻는 원작소설의 테마는 영화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리들리 스콧은 ‘비인간화되는 인간, 인간화되는 레플리칸트’의 테마를 결말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내며 원작의 정수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K. 딕은 영화가 소설과는 내용이 상당히 다르지만 핵심정서를 충실히 재현했다며 <블레이드 러너>에 상당한 만족감을 표했다. (K. 딕은 <블레이드 러너>가 각광을 받으면서 거장 작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1982년 이미 사망한 뒤였다!)

개인적으로는 데커드와 베티의 대결을 통해 장황한 설교조로 주제를 늘어놓는 영화와 달리 인간과 안드로이드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데커드의 심리적 여정을 따라가는 소설이 더 맘에 들었다. 그러니까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가 보여주는 미래는 자아가 황폐한 심리적 공황의 시대다. 소설은 영화처럼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상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데커드의 마음 속 풍경을 주로 묘사하는 것이다.

데커드가 안드로이드의 정체를 숨기고 인간처럼 행세하는 현상금 사냥꾼과 짝을 이뤄 안드로이드를 제거하는 에피소드는 이를 잘 보여준다. 살상행위에 무감각한 자신과 달리 죄의식에 사로잡혀 잠바로 시체를 덮어주는 현상금 사냥꾼을 보면서 데커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혼란을 겪으며 인간성을 깨달아 간다. 이처럼 K. 딕은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대조적인 행동을 통해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즉, 인간성의 본질을 기계의 유무가 아닌 마음 그 자체에서 찾는다. 그래서 소설에서는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 타인의 재능을 알아보는 눈썰미, 잃어버린 자연에 대한 그리움 등 일상생활의 사소한 감정 하나하나가 큰 의미를 갖는다.

데커드 부부가 안드로이드 두꺼비를 애완동물로 받아들이는 결말은 의미 불명의 제목이 지향하는 바를 구체적인 에피소드로 통찰력 있게 풀어낸다. 이에 대해 로저 젤라즈니(<신들의 사회><별을 쫓는 자>)는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필립 K. 딕의 책은 사실 생각해 보면 이야기 자체는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강렬한 은유를 담은 시를 읽었을 때와 비슷하다.” 한마디로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는 필립 K. 딕의 정수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과연 박찬욱 감독이 해외에 진출하게 된다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영화화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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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09.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