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 라세즈 무덤은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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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가볼만한 곳으로 페리 라세즈 무덤(Cimetiere du Pere Lachaise)을 추천해놓은 가이드북을 보면서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며 코웃음 쳤더랬다. 무덤에 무슨 볼거리가 있다고 추천씩이나, 뇌까리면서 말이다. 근데 웬걸, 파리 도심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단다. 그러면서 소개하기를 파리를 대표하는 무덤이란다. 그렇다면 파리지엔들에게 무덤은 혐오시설이 아니라는 건가. 아니란다. 그들에게 무덤은 죽은 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소란다. 이거 참, 명절 때 산소 아니면 무덤 근처에도 가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은 당최 이해할 수가 없는 설명이다. 어쩔 수 있나, 한 번 방문해볼 수밖에.

세상에나! 입구에서부터 사람이 북적인다. 그것도 젊은 여성들이 압도적이다. 그래서 페리 라세즈 무덤이 파리의 관광 명소인 것인가.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 정말 오기를 잘했어. 음화하하하. 그런데 그녀들은 하나같이 손에 사진 아니면 CD를 가지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도어즈’ CD와 ‘짐 모리슨’ 사진이다. 그들에게 듣자하니 1960년대 후반 전 세계 음악 팬들을 매료시켰던 록그룹 도어즈의 리드싱어 짐 모리슨의 묘지가 이곳에 있단다.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그의 음악도 추억할 겸 이곳에 왔다는 것이 이들의 얘기였다.

실제로 페리 라세즈를 찾는 방문객의 대다수는 짐 모리슨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한다. 지난 2001년 프랑스 관광청은 여행자를 대상으로 짐 모리슨 묘지를 찾는 방문객의 수를 계산해보았다고 한다. ‘럴수럴수 이럴 수가!’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노트르담 성당, 베르사이유 궁전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은 수치를 기록했단다. 매년 200만 명 이상의 다녀간다고 하니 여느 관광명소가 부럽지 않은 수치다. 페리 라세즈를 설명하면서 도어즈의 짐 모리슨을 언급하지 않는 건 추리소설을 말하면서 셜록 홈즈를 빼 먹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페리 라세즈가 짐 모리슨 때문에 먹고 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짐 모리슨의 묘지 앞에만 유독 사람들이 모여 있다. 가지고 온 사진과 CD, 팬레터와 꽃 등을 비석 앞에 경건히 놓으며 눈물을 훔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 뒤에 도열한 사람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도어즈의 히트곡 <Light My Fire> <Riders on the Storm> 등을 속삭이듯 부르기도 한다. 국적과 나이도 다양해서 미국에서 왔다는 후덕한 아줌마, 칠레에서 온 섹시한 소녀, 일본의 인형 같은 여인까지. 아, 참! 한국에서 온 꾀죄죄한 나도 있지. 그나저나 내게는 참 별난 광경이다. 이를 두고 죽은 자와 대화를 나눈다고 하는 걸까.

페리 라세즈 뿐만이 아니다. 몽마르트 묘지(Cimetiere de Montmartre)에도 그렇게 사람이 몰릴 수가 없다. 프랑스의 지성으로 불리는 대문호 에밀 졸라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프랑소와 트뤼포와 이야기하기 위해, 세기의 배우 이브 몽탕의 체취를 느끼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몽마르트를 찾는다. 그런 점에서 죽음은 결코 부정적인 관념이 아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을 뿐 끊임없이 산 자들과 대화를 나눈다. 산 자는 듣지 못하지만 죽은 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로 인해 삶과 죽음의 경계는 희미해지고 우리는 삶처럼 죽음을 긍정하기에 이른다.

무덤을 산책로 삼아 산 자가 죽은 자에게 말을 거는 장면을, 또는 죽은 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본다는 건 파리에서 만큼은 결코 낯선 광경이 아니다. 파리의 무덤이 도시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전혀 별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나 역시 짐 모리슨 팬들 사이에 끼어 그들과 함께 <Light My Fire> <Riders on the Storm>를 맘껏 불러 젖혔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향했다. 무덤에서는 그렇게 돼지 멱따는 소리로 크게 노래를 부르면 안 된다나. 아무튼 파리의 무덤은, 페리 라세즈는 특별한 공간으로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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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카페는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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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도착해서 본 가장 신기했던 광경은 바로 카페였다. 방글라데시의 인구밀도를 재현한 듯 답답할 정도로 따닥따닥 늘어서있는 원형의 테이블들. 그런 발 디딜 틈 없는 좁은 간격에도 아랑곳없이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파리지앵들. 듣자하니, 프랑스에는 6만여 개의 카페가 있다고 한다. 그중 6분의 1에 해당하는 1만 여개의 카페가 파리에서 성업 중이란다. 파리의 면적이 대략 100평방km니, 1평방km당 100여개의 카페가 있는 셈이다.

왜 이렇게 카페가 많은 것일까? 파리지앵에게 카페는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란다. 왜 특별한 걸까? 파리의 카페가 특별하기 때문이란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카페는 그저 음료 한잔 시켜 놓고 수다를 떠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어떤 이유로 파리의 카페는 특별해진 것일까? 나도 카페에 앉아 커피를 한잔 시켜 마셔봐야겠다.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라는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제르맹 데 프레(Saint Germain des Pres) 거리는 문학인의 공간으로 유명하다. 수많은 문인들이 이곳에 밀집한 카페들을 수시로 드나들며 많은 작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레 되 마고는 그런 분위기를 이끌어온 선두주자라 할만하다.

레 되 마고는 지금으로부터 124년 전인 1885년에 문을 열었다. 원래 중국산 비단을 판매하는 가게였는데 그래서 레 되 마고는 ‘2개의 중국인형’을 뜻한다. 입구 주변에 진을 치고 앉아 커피를 마시는 무리들을 뚫고 카페에 들어서니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벽 위에 조각상 하나가 떡하니 걸려 있다. 실존주의로 유명한 장 폴 사르트르다. 그는 이곳에서 대표작 <구토>를 저술했다고 한다.

“아니 사르트르는 시끌벅적한 카페에서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었단 말입니까?”라고 나는 갸르송(Garcon, 프랑스에서 웨이터를 지칭하는 말)에게 묻고 싶었지만 불어 실력이 형편없어 동행한 친구에게 대신 부탁했다. 갸르송 왈, 글 쓰는 틈틈이 여자 친구와 사랑을 나누었단다. 음, 사랑의 힘을 빌려 글을 썼군.

문인은 아니었지만 피카소도 이곳에서 사랑을 나누었다고 전해진다. 피카소가 처음 도라 마르를 보았을 때 옆 테이블에서 한쪽 손을 테이블 위에 펴고 주머니칼로 손가락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장난을 치고 있더란다. 그러다가 손을 베어 피를 흘렸는데 이 광경에 넋을 잃은 피카소가 대뜸 작업을 걸었고 그래서 이들은 레 되 마고에서 피처럼 강렬한 사랑을 나누었다고 한다. (음, 유명인의 사랑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 그리고 피카소가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시를 썼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글을 쓰는 이들이 모두 그런 사랑을 나눈 것은 아닐 게다. 계속해서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일개 카페에서 글을 쓰게 한 걸까? 나는 “공짜 커피가 아닐까?”라고 동행한 친구에게 진지하게 말했다가 물 컵의 물을 뒤집어 쓸 뻔했다.

레 되 마고는 파리에서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인 동시에 ‘레 되 마고 문학상’으로 또한 유명하다. 1933년에 제정된 이 상은 첫 해 100프랑의 상금을 내걸고 신진작가를 발굴한 이래 지금까지 70년이 넘도록 문학상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상금 액수가 무려 8,000유로라고 하는데 물론 중요한 건 액수가 아니다. 일개 카페에서 주관한 문학상이 신진작가의 등용문이 되고 프랑스 문단에서 주목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으며 프랑스 문학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그러니 작가를 꿈꾸는 이가 레 되 마고를 찾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다.

카푸치노를 한 점의 거품도 없이 모두 핥아 마신 후 레 되 마고를 떠나려는 찰나 갸르송이 내게 물었다. “당신도 글을 쓰신다고요. 그렇다면 이곳에서 무엇을 느꼈습니까?” 유창한 불어로 답해주고 싶었지만 미소 한 번 지어주고 서둘러 레 되 마고를 떠났다. 대신 마음속으로 이렇게 답해줬다. ‘정말 너무합니다. 카푸치노 한잔이 8유로라니요. 너무 비쌉니다. 저는 글쓰기를 포기하렵니다.’ 과연, 파리의 카페는 특별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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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