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반영한 장르영화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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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운이 좋게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SF작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배명훈과 테드 창이었다. 배명훈은 그의 이름을 단독으로 내건 첫 번째 소설 <타워> 출간에 맞춰, 테드 창은 게스트 자격으로 참가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 방문에 맞춰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두 사람은 한국 대중들 사이에서 낯선 이름이지만 장르 팬들에게는 거의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작가다. 배명훈의 경우, 소설가 박민규의 표현을 빌자면, ‘아마도 100년 후, 한국 문단은 작가 배명훈이 이 땅에 있었다는 사실에 뒤늦은 감사를 표해야 할’만큼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작가이고, 테드 창은 장편 하나 없이 단편소설 발표만으로 이미 전 세계적으로 SF소설계의 거장 대접을 받는 작가다. (한국에 출간된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2004년 1쇄 출간 후 지금까지 SF로는 이례적인 8쇄 판매를 기록했다!)

사실 배명훈과 테드 창은 SF를 다룬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판이한 작가들이다. 1990년 데뷔한 이후 단 12편의 단편을 발표한 과작의 테드 창과 달리 배명훈은 한 달에 한 편 이상의 단편을 쓸 만큼 다작의 작가다. 또한 테드 창은 소설쓰기를 부업으로 삼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것에 반해 배명훈은 현재 전업 작가다. (그는 조만간 직장을 얻을 계획이란다!) 그러다보니 이 둘은 작품의 스타일도 참으로 상이하다. 테드 창이 과학현상 혹은 수학공식을 풀어나가는 듯한 건조한 문체를 선보인다면 배명훈은 사람 사는 이야기에 집중하며 따뜻함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배명훈과 테드 창이 비슷한 부류의 SF작가로 기억되는 것은 둘의 작품이 모두 영화화하기 힘든 구조로 되어있다는 점 때문이다. 안 그래도 이들과의 인터뷰에서 영화화를 염두에 둔 소설 쓰기에 대해 질문을 던졌는데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다.

“영화화를 염두에 둔 소설이 각광을 받는 것 같은데 나는 그걸 피한다. 영화에 종속되는 서사가 아니라 텍스트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미학을 끌어내보려고 한다. 영화에서 잡아낼 수 있는 미학과 글에서 잡아낼 수 있는 미학은 다른데 영화를 염두에 든 글쓰기를 하다보면 글의 미학이 점점 사라진다.” (배명훈)

“몇 년 동안 소설쓰기를 완전히 포기한 적이 있었다. 대신 창조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다른 방법으로 저예산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그 작업으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결국 나는 다시 소설 집필을 하게 됐다.” (테드 창)

한때 영화기자를 업으로 삼았던 사람으로서, 장르소설 애호가로서 이들의 작품을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진한 아쉬움을 느꼈더랬다. 내가 알고 있는 장르 지식 범위 안에서 SF문학은 많은 이들이 영화화를 바라지만 실제로 영화화가 가장 힘든 장르로 평가받는다.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알프레드 베스터다. 그의 대표작인 <파괴된 사나이> <타이거! 타이거!>는 많은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들이 스크린으로 옮기겠다며 호방하게 달려들었다가 금방 꼬리를 내린 ‘비운의 프로젝트’로 유명하다. (<타이거! 타이거>의 경우, 박찬욱 감독이 해외로 진출하게 되면 가장 먼저 연출하고 싶은 작품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는 조만간 다룰 예정이다!) 속마음을 간파당하지 않기 위해 ‘음악’으로 심리를 조작한다는 설정(<파괴된 사나이>), 소리를 시각으로, 움직임을 소리로 지각한다는 설정(<타이거! 타이거!>)을 영화의 이미지로는 어떻게 묘사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알프레드 베스터 역시 배명훈이나 테드 창과 같은 입장과 다르지 않아서 소설 자체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욕망으로 절대 영화화되지 않도록 구성하는데 많을 공을 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이들의 발언에서 영화매체의 보수성을 읽는다. 영화는 대중들이 가장 즐겨 찾는 오락일 뿐 아니라 문화의 전위(前衛)를 자처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보수적인 매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백년의 역사가 넘는 영화가 기술의 발전을 통해 진보하고 있다지만 그것은 단순히 관객들이 보고 경이감을 느낄만한 시각적인 측면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영화가 자본의 힘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막강한 산업으로 군림하면서 보다 안전한 수익창출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지양하고 오로지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볼거리에만 치중하는 풍토가 영화의 보수성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는 것이다.

테드 창은 그날 인터뷰에서 영화 시나리오 집필 경험에 대해 이런 얘기를 했다. “내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얻은 단 하나의 깨달음이라면, 말이 되는 소재와 보기에 좋은 소재 사이에서 선택이 주어졌을 때 영화를 찍는 사람들은 후자를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곧 시나리오 작업을 접고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문학 쪽에서는 흥미로운 SF소설이 계속 등장하는 것에 반해 영화 쪽에서는 국내외를 통틀어 인상적인 SF영화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한국의 SF영화는 신태라 감독의 <브레인웨이브>(2006) 이후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제작이 거의 유일하다!) <스타트렉: 더 비기닝>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등이 등장하긴 했지만 SF라는 장르적 특성만 사용됐을 뿐 실제적으로 변화하는 시대를 담지 못했기 때문에 진정한 SF라고 부르기엔 어딘가 부족한 모습이었다.

테드 창은 이번 부천영화제가 마련한 강연회에서 “SF는 반드시 변화하는 것을 다뤄야한다.”고 말했다.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변화를 담아내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좋은 SF”라면서 “진보야말로 SF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장르는 소위 시대의 산물이다. 마치 살아 숨 쉬는 생물과 같아서 적극적으로 시대를 반영하고 내부 규칙을 업데이트하면서 진화해온 까닭이다. 그중에서 SF는 시대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장르다. 그래서 좋은 SF를 발견하기 힘든 요즘 극장가에서 시대를 반영한 영화를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힘들다. 관객의 취향에 영합한 오락영화도 분명 필요하지만 시대를 외면하고 반쪽짜리 역할만 하는 영화계가 급격히 보수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전 세계적으로 시대가 하수상하기 때문일까. 시대를 반영한 장르영화가, 특히 잘 만든 SF영화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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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09.8.12)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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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의 최고 귀빈은 배우도, 감독도 아닌 세계적인 SF작가 테드 창(Ted Chiang)이었다. 부천영화제 산하 아시아 판타스틱 영화제작 네트워크(NAFF)에서 주관하는 환상영화학교 게스트 자격으로 참가한 테드 창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척박한 한국 SF시장의 실정을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하지만 국내에 출간된 그의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이례적으로 8쇄를 기록했다는 점만 보더라도 그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7월 18일 경기예고 내 부천시 경기아트홀에서 열린 강연회를 시작으로 팬 미팅, SF소설 워크숍과 같은 공식일정은 물론이고 각종 매체의 인터뷰로 테드 창은 지난 주말동안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더랬다. 그 과정에서 테드 창에게 집중된 궁금증의 핵심은 다름 아닌 ‘SF란 무엇인가?’였다. 강연의 주제가 ‘하드 SF-서사의 논리와 글쓰기의 미학’이란 사실에서 알 수 있듯 SF가 독립된 장르로 인식된 영어권 문화와 달리 비주류 장르의 허황된 이야기 정도로 천시돼(?) 온 국내 상황에서 테드 창의 방한은 SF에 대한 개념과 장르의 틀을 정확히 짚어볼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테드 창과의 인터뷰는 7월 19일 그가 묵고 있는 고려호텔의 게스트 라운지에서 약 40여 분간 진행됐다. 그의 작품과 SF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에는 한 없이 모자란 시간이었지만 테드 창의 진면목을 확인하기엔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었다. (기사 중 일부 대답은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의 네뷸러상 중단편부문 수상을 기념해 2008년 12월 ‘네뷸러어워드닷컴’(
www.nebulaawards.com)과 나눈 인터뷰에서 발췌했음을 밝힌다)

외국의 영화감독들이 한국에 오면 꼭 하는 말이 있다. 언젠가 미래도시 같은 한국을 배경으로 SF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한국을 배경으로 소설을 쓸 만한 영감을 받지는 않았나?
글쎄, 여기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많은 걸 보지 못했다. 스케줄이 많아 경험한 것도 별로 없다. 여자 친구와 함께 왔는데 그녀는 부천 주변을 돌아보고는 <블레이드 러너>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라. 

원래 이번 강연회에서 <숨결>을 낭독하려 했다가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Life Cycle of Software Object>로 변경했다고 들었다.
아니다, <숨결>을 낭독하라고 이야기된 건 없었다. 어떤 작품을 낭독할까 고민하다가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Life Cycle of Software Objects>으로 선정했다. 한국에서는 처음 낭독하는 것이지만 미국에서는 올 초에 몇 번 낭독회를 가진 적이 있다.

어떤 작품인지 소개해줄 수 있나?
‘가상 애완동물’(virtual pet)에 관한 이야기다. 가상 애완동물을 만드는 회사에서 15년 동안 일한 두 명의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그 둘 간의 관계와 가상 애완동물과의 관계를 다뤘다.


<숨결> 테드 창 또 하나의 걸작 단편

<숨결>은 국내에 소개된 테드 창의 최신작이다. 계간 <판타스틱> 2009년 여름 호에 실린 <숨결>은 자신의 몸을 해부하던 주인공이 우주가 인간의 숨결을 동력원삼아 평형상태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자신의 몸에 기록으로 남긴다는 내용이다. 번역한 김상훈의 표현을 빌자면, “‘자체적 원리에 입각한 세계 구축(構築)’이라는 작가의 화두가 물리학의 인간 원리와 엔트로피 개념을 둘러싼 바로크적인 기상(奇想)을 통해 꽃을 피운 걸작 인공지능 SF이다.‘ 2008년 발표와 함께 다음 달 개최될 세계SF대회에서 수여하는 휴고상 최우수 단편 부문 후보작에 선정된 상태다.  

한국에서 최근에 소개된 작품은 <숨결>이다. <숨결>의 이야기는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나?
<Life Cycle of Software Objects>는 아직 출간 전인 작품이라 더 많은 정보를 알려줄 수 없어 미안하다. <숨결>은 두 가지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첫 번째는 필립 K.딕의 <전자 개미>(기자 주_국내에는 <사기꾼 로봇>(집사재)에 수록돼있다)다. 남자 주인공이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아가지만 의사는 ‘당신은 로봇이기 때문에 치료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사실을 몰랐던 남자는 집으로 돌아와 특정모델의 로봇을 어떻게 해부하는지 찾아보고 직접 자신의 몸을 해부하기 시작한다. 그 이미지가 내게 너무 강렬했다. 두 번째로 영감을 받은 작품은 로저 펜로즈의 <황제의 새 마음>이다. 마음의 본질에 대해서 논의한 작품인데 굉장히 흥미로웠다. <숨결>은 이 두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

<숨결>도 그렇지만 시간여행을 다룬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시각적으로 미(美)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칼리그노시아(Callignosia) 장치가 등장하는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 등 최근 작품일수록 미래적인 설정이 두드러진 것 같다.
의도한 것은 아니다. <바빌론의 탑>처럼 신화적인 이야기도 계속 할 것이고 미래적인 이야기도 계속 쓸 예정이다. 

<숨결>의 주인공은 인간의 모습을 가진 사이보그다. 인류의 형태가 인간에서 사이보그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진화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
인류문화는 오랫동안 진화해오고 있다. 고전적인 예를 들자면, 화전식의 농업은 모기를 통한 말라리아의 증가를 가져왔지만 한편으론 말라리아에 저항할 수 있는 인간 유전자의 진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이처럼 인간진화의 결과는 우리의 의도를 반드시 반영하지는 않는다. 농업기술이 겸상적혈구빈혈증(sickle-cell anemia)을 일으키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나. 유전자공학을 의도적으로 시도하지 않았지만 인간의 행동이 궁극적으로 진화의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은 과거의 예를 되돌아보더라도 명백하다.   

하지만 진화의 형태가 반드시 행복한 것만은 아님을 <숨결>은 보여준다.
인간의 진화에 대해서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진화가 개인의 행복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진화는 성공적인 측면에서만 흥미를 끌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인간 유전자 실험이 어떤 특별한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실험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데 도움을 줬으면 바랄 뿐이다.  

언어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발명됐고 진화를 거듭해왔다. 인간의 사고(思考)를 돕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안 그래도, 당신의 작품에서는 언어적인 요소가 꽤 자주 발견된다.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는 인간의 언어가 인과론의 산물임을 증명했고, <일흔 두 글자>에서는 최적의 글자로 인형에게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설정을 통해 언어의 창조적인 힘을 소재로 삼았다. <숨결>에서는 언어를 통한 기록의 효과를 중요하게 언급한다.
이 역시 특별하게 의도하고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다만 언어는 정말 놀라운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데 그걸 적어두면 몇 년 후에 나와 관계없는 남이 그것을 읽었을 때,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언어는 경이롭다.

언어학자들은 생각 자체가 언어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의견을 밝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언어로 존재하는 생각과 언어로써 존재하지 않는 생각이 있다고 본다. 예컨대, 어느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할 때 생각만으로는 분명하게 알 수 있지만 말로 표현하려고 할 때는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존재하는 사고(思考)는 그렇게 두 가지 종류일 거라고 생각한다.  

<숨결>의 배경이 되는 우주는 크롬 벽으로 담을 쌓고 있지만 또 다른 우주 세계와 면해있다. <바빌론의 탑>에서도 하늘이 천장으로 막혀 있어 주인공은 이를 뚫고 들어간다. 우리가 존재하는 세상 이외의 또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고 믿나?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런 경계가 없기 때문에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과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역사적으로 우리는 우주에 경계가 있다고 믿어왔지만 현재는 그런 경계들이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 되었다. 그래서 소설을 통해 벽이 있다고 믿는 것이 우주를 바라보는 흥미로운 관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이나 <바빌론의 탑>에서처럼 지금의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행동은 세상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의도라고 봐도 될까?
항해사들이 항해를 마쳤다고 그것이 우리가 사는 우주가 유한하다고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과 <바빌론의 탑>의 가장 중요한 유사점은 두 작품 속 주인공 모두 종교적인 신념을 가지고 그들에게 발생한 사건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사실이다. 두 작품의 배경이 되는 세계는 모두 순수한 기계 작용을 보여주는데 주인공들은 구지 그 방법을 캐내려 들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신념에 대한 증거를 찾고 발견할 뿐이다. 그에 반해, <네 인생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세속적인 방식으로 의미를 발견하는데 그런 관점에서라면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과 <바빌론의 탑>과는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다만 그 기저에는 우리의 삶에 대한 이해가 흐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테드 창이 생각하는 SF란?

테드 창의 작품은 하드SF(기자 주_과학적 사실이나 법칙에 입각해 구성한 과학소설) 중에서도 더욱 하드하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독자에게 상당한 지식을 요한다. 그럼에도 많은 팬을 거느릴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하드SF적인 설정 그 한편에 대중 친화적이라고 해도 될 만큼 익숙한 장르적 요소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해>가 ‘슈퍼히어로’의 주인공을 내세웠다면 <네 인생의 이야기>는 ‘외계인’과의 교감을 다룬다. 그중에서도 신화는 테드 창의 작품에서 빈번하게 감지되는 장르적 요소다. <바빌론의 탑>은 제목에서 감지되듯 바벨탑을 배경으로 삼고 있고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천일야화>의 분위기를 접목했다. 그래서 이번 환상영화학교에서 주요하게 언급됐던 강연내용 중의 하나가 바로 ‘SF와 판타지의 관계’였다. 테드 창이 생각하는 SF와 판타지는 무엇일까.  

이번 강연에서 SF는 반드시 변화하는 것을 다뤄야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SF는 필연적으로 진보적인 것인가? 그것이 좋은 SF의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하나?
필요조건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좋은 SF문학을 보면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변화를 담아내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신은 SF작가로 분류되지만 판타지의 요소도 굉장히 강하다. SF와 판타지가 서로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나?
맞다, 나는 SF 장르를 취하면서 판타지 요소를 적극 활용한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판타지를 끌어오는 것은 아니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의 경우는 반대였다. 판타지 장르를 가져와 SF를 덧붙인 것이다. 판타지는 모든 이야기에 적합한 장르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판타지가 SF에서 절대로 모순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두 장르의 결합은 이야기 전개상 자연주의를 표방하는데 제한적이라고 생각한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처럼 중세 바그다드 시대에 타임머신이 존재한다는 설정은 현실에선 절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아마도 내가 쓴 작품 중에서 아마도 가장 변칙적인 작품일 것이다.

그렇다면 SF와 판타지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무엇인가?
에밀 졸라는 소설을 쓸 때 과학적인 방식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 생각에 SF는 과학 시대의 산물이지만 판타지는 그렇지 않다. SF를 기술하는데 과학적인 사실을 반드시 고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과학적인 세계관은 고수해야 한다.

<바빌론의 탑>에는 헤라클레스와 같은 영웅 신화적인 면모가 엿보인다.
그런가? 글쎄…

모험의 과정이 중요시되긴 하지만 주인공이 임무를 마치고 무언가를 이루는 모습은 문명에 대한 비유다. 이영웅이 고향으로 돌아오면 곧 변화를 가져올 텐데 그런 점은 SF에 대해 당신이 언급한 변화와 일맥상통하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면, 내게 익숙한 신화는 그리스 신화인데 과거에 대한 이야기다. 오늘 날 세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이야기하는 과정에 현재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한 의미는 내포되어 있지 않다. 대신 과거가 더 나았다는 것, 그리고 과거에는 이렇게 대단한 영웅들이 살았기에 더 대단했고 어떻게 보면 과거를 미화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신화는 SF와는 많은 지점에서 반대된다. SF는 현재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라는 가능성과 그것의 미래에 대해 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미화와는 굉장히 동떨어진 장르다. 하나 덧붙이자면, <바빌론의 탑>은 배경이 고전신화와 비슷하지만 근본적인 차이는 변화하는 세상을 그리고 있으며 주인공이 고전신화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이해의 관점을 얻고 새로운 이해를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야말로 SF와 신화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동시대의 SF/판타지 작가 중 변화에 대해 가장 새롭고 독특한 목소리를 내는 작가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그런 작가들은 정말로 많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에는 그렉 이건(Greg Egan)이나 카렌 조이 파울러(Karen Joy Fowler), 존 크롤리(John Crowley), 진 울프(Gene Wolfe), 그리고 켄 맥로드(Ken MacLeod)가 있다. 


테드 창에 대한 사소한 몇 가지 것들

테드 창은 열두 살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아이비리그의 브라운 대학에서 물리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할 정도로 과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만큼이나 이야기 쓰는 일에도 애착을 보였다. 또한 아이작 아시모프의 글을 읽고 소설쓰기에 관심을 보였던 그는 비소설 부류의 글도 많이 썼던 아시모프의 작품을 계기로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테드 창의 글쓰기는 흡사 과학자가 어떤 현상을 목격하고 이를 증명해가는 과정과 닮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단편 하나를 쓰는데 최소 1년에서 최대 6년이 걸릴 뿐 아니라(심지어 그는 지금까지 장편소설을 발표한 적이 없다!) <인류 과학의 진화>는 영국의 과학 잡지 <네이처>에 짧은 소설풍의 기사로 게재되기도 했다. 그래서 테드 창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소설로 변환된 과학현상을 경험하는 것과 진배없다.

작품을 구상할 때 자신만의 기준이 있나? 가령, 당신은 중국인 2세지만 그 영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특별히 기준이란 것은 없다. 나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내 자신이 미국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 숨길만한 것이 없다. 영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언어고 중국에 대한 신화나 역사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소설을 쓴 적도 없겠다.
단편집을 출간하는 과정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내가 신뢰하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기도 했고 출간과 관련한 비즈니스 문제 때문에 씁쓸한 맛을 보기도 했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소설쓰기를 완전히 포기했다. 대신 창조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때 나는 잠시 두 명의 친구와 집에 머물면서 저예산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공동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 작업으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그로 인해 장래에 대한 목표가 뚜렷해졌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 결국 나는 다시 소설 집필을 하게 됐고 점진적으로 나아질 수 있었다.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소설 쓰기에 대한 어떤 아이디어를 얻지는 않았나?
시나리오를 쓰면서 배운 것은 거의 없다. 내가 그 과정에서 얻은 가장 교육적인 깨달음이라면, 말이 되는 소재와 보기에 좋은 소재 사이에서 선택이 주어졌을 때 영화를 찍는 사람들은 보기에 좋은 소재를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이게 모든 영화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실제로 경험한 것은 재미있었다. 

어떤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 글을 쓰나, 아니면 이야기를 쓰고 싶은 욕망 때문에 소설을 쓰나?
글을 쓰게 만드는 가장 강한 계기는 어떤 현상이 내게 왜 흥미를 끄는지 독자들에게 설명하고 그것을 함께 공유하고 싶은 의지가 강하게 작용할 때다. 

장편소설을 쓸 계획은 없나?
장편소설에 걸맞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쓸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소설을 써왔지만 장편소설에 대한 영감을 얻은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단편소설만을 썼다.  공동진행 및 사진 김숙현 기자(프레시안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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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