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아누 리브스, 자체 완결성을 갖는 캐릭터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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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누 리브스가 다시 한 번 인간을 넘어선 존재로 등장한다. 그는 1951년 발표된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스콧 데릭슨 감독의 <지구가 멈추는 날>에서 외계에서 온 남자 클라투를 연기했다. 인간의 무절제에서 비롯된 기후 변화로 고통스러운 진화를 겪은 외계 문명을 지키고자 인류를 파멸시킬 목적으로 지구에 파견된 외계인이 바로 클라투다.

초월적 존재의 초상

키아누 리브스는 클라투와 같은 초월적 존재를 심심치 않게 연기해왔다. <매트릭스> 시리즈의 구원자 네오 역으로 배우 인생의 한 획을 그었고 <콘스탄틴>(2005)에서는 천사와 악마를 구별할 줄 아는 존 콘스탄틴으로 등장해 악이 점령한 어둠의 세계를 구원하기도 했다. 또한 그 훨씬 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리틀부다>(1993)에서는 환생한 왕자 싯다르타 역으로 출연해 일찌감치 초월자의 연기를 보여준 전례가 있다.

이 같은 캐릭터 성향을 두고 스콧 데릭슨 감독은 “키아누는 비관주의와 낙관주의를 동시에 자극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서 “그것이 바로 클라투 역에 그를 캐스팅한 결정적인 이유”라고 밝힌다. 안 그래도 클라투는 인류 파멸을 목적으로 지구를 찾은 존재인 까닭에 극 초반 위협적인 존재로 그려지지만 점차 인간의 감정에 동화되며 희망적인 존재의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인간과의 내밀한 교류를 통해 부정적인 견해는 용해되기 시작하고 급기야 인류를 말살해 지구를 청소하겠다는 결심이 흔들리는 것.

키아누 리브스가 지금까지 연기했던 초월자들은 처음부터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어떤 ‘깨달음’을 겪은 후에야 초월자로 거듭나는 것이 그가 보여준 영웅 캐릭터의 공식이었다. 이는 1990년대 초반 할리우드 대스타로 발돋움하며 비슷한 행보를 보인 브래드 피트와 비교해봐도 확연히 구별된다. 브래드 피트는 그 자체로 절대자고 영웅이었다.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의 암살>(2006)의 제시 제임스나 <트로이>(2004)의 아킬레스, <파이트 클럽>(1999)의 테일러 더든은 그 전형이다. 하지만 키아누 리브스는 처음부터 절대자로 군림하기엔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인상이 짙다. 예컨대, 네오는 모피어스(로렌스 피쉬번)를 만나기 전까지 컴퓨터가 지배하는 가상현실 하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프로그래머였고 콘스탄틴은 자신의 능력을 저주하며 수차례 자살 시도 끝에 운명을 받아들이는 퇴마사였다. 클라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외계에서 온 존재라지만 인류에 대한 지식이 아주 없었던 클라투는 그를 보호해주는 우주생물학자 헬렌(제니퍼 코넬리)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인간성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리메이크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가 클라투 역할을 수락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불시에 나타난 영웅이 아니라 서서히 깨달아가는 영웅이라는 것. 이를 두고 키아누 리브스는 ‘여정’이라고 표현한다. “외계인을 연기할 때와 인간을 연기할 때 생기는 격차를 줄일 수 있을지 걱정됐다. 클라투는 점차 인간화되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바로 자신을 찾아가는 인생 여정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키아누 리브스가 연기한 절대자 캐릭터는 싯다르타를 제외하면 영웅의 탈을 쓴 인간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 부족으로 운명을 의심하고(<매트릭스>), 외계 생명체이면서 감성적이고 사교적일 수 있는 건(<지구가 멈추는 날>) 모두 절대자이기 이전 인간에 가까운 존재이기에 가능한 행동들이다. 대표작으로 언급한 영화에서 수많은 액션 연기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액션 스타로 기억하는 이가 없는 건 이 때문이다. (물론 몸치에 가까운 부자연스러운 액션 연기도 한몫했다!) 오히려 키아누 리브스가 연기한 캐릭터의 대부분은 내면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깊이를 얻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화려한 외향이나 현란한 제스처보다 절제된 몸짓과 미묘한 표정으로 내면을 드러내는 배우에 가깝다. 그동안 쌓아온 화려한 이력에 비해 그만큼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건 많은 것을 내보이지 않으면서 속마음을 드러낼 줄 아는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 방식에서 기인한 것도 크다.

독특한 이중성의 소유자

스티븐 시걸 표정 16종 세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키아누 리브스 역시 기쁨, 슬픔, 짜증, 외로움 등 표정 연기가 한결같다 하여 호사가들로부터 놀림을 당하던 때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많은 감독들이 키아누 리브스를 캐스팅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백지 상태와 같은 인상이다. 실사에 애니메이션을 덧칠한 <스캐너 다클리>(2006)에서 함께 작업했던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그의 강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웬만해선 꿈쩍도 하지 않는 모아이 석상 같다. 하지만 세부적인 손길을 가하면 희미한 정체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카멜레온으로 돌변한다.”

한마디로 키아누 리브스는 채워야지만 캐릭터가 완성되는 유형의 배우다. 그와 반대편에 위치한 브래드 피트를 예로 든다면 그 차이는 더욱 확연해진다. 가령 브래드 피트는 완벽해 보이는 자신의 고유한 이미지 덕에 덜어냈을 때 좋은 연기를 보였다. 일은 뒷전이요, 인터넷으로 데이트 상대를 고르는 데 여념이 없는 <번 애프터 리딩>(2008)의 체드나 <스내치>(2000)의 사투리 강한 시골 촌뜨기 믹키, <세븐>(1995)의 성미 급한 형사 밀스는 모두 기존의 이미지를 버린 덕에 좋은 평가를 받은 연기였다.

이 점을 상기한다면, 키아누 리브스가 유독 두 개의 자아 혹은 두 개의 세계에 동시에 속한 인물을 연기했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스트리트 킹>(2008)의 톰 러들로는 정의를 수호한다는 명분하에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형사였고 <스캐너 다클리>의 프레드는 약물에 중독돼 자아분열을 일으켜 마약 딜러로도 활동하는 첩보경찰이었다. 또한 <레이크 하우스>(2006)의 알렉스는 2004년을 사는 남자로 2006년을 사는 여자와 편지로 감정을 나누는 관계였고 <아이다호>(1991)의 스콧은 거리의 부랑아 마이크(리버 피닉스)와 동성애적인 사랑을 나누는 친구였지만 그와 헤어진 후 나이 어린 소녀와 사랑에 빠지는 한편 아버지의 막대한 재산까지 물려받는 인물이었다.

<지구가 멈추는 날>의 클라투는 외계인이면서 인간성을 획득하는 존재이고 외계에서 온 존재이면서 지구에서 활동한다는 점에 비춰 키아누 리브스의 전형적인 배우 이미지가 집약된 캐릭터라 할 만하다. 스콧 데릭슨 감독은 “그는 객관적인 상태에서 등장인물과 주변의 사물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지나치게 과장되지도, 지나치게 극단적이지도 않은 방식으로 캐릭터를 획득해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건 놀라웠다”고 촬영 당시를 회상한다. 이처럼 백지 상태에서 모든 걸 흡수하는 듯한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는 마치 지구를 찾은 클라투가 인간의 신체를 빌려 입고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어떤 용기(用器)로 연상하고 그 안에 캐릭터를 채워가는 모습이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에 담겨 있는 것이다.

편집증 혹은 분열증으로 요약할 수 있는 그의 캐릭터에 부여된 독특한 이중성은 키아누 리브스만의 전매특허다. SF영화(<체인 리액션>(1996) <코드명J>(1995))나 형사영화(<스피드>(1994) <폭풍 속으로>(1991))와 같은 특정 장르에서 그의 이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건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어릴 적부터 <왓치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등 앨런 무어나 프랭크 밀러의 코믹스를 즐겨 읽었다는 그는 <엑스맨>의 울버린 역에 캐스팅되지 못한 것을 배우생활 중 가장 아쉬운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또한 코믹스 캐릭터 중 로닌을 가장 좋아한다는 그가 클라투 이후 연기할 캐릭터로 <47 로닌>의 사무라이(‘RONIN’은 군주를 잃은 사무라이를 뜻한다)를 결정했다는 사실은 배우로서 키아누 리브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일화다.

영원한 배우

키아누 리브스는 일반인으로서의 삶과 배우의 생활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니 ‘철저한 구분’이라는 표현이 무색하리만치 일반인 키아누 리브스와 배우 키아누 리브스는 극단적인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일찍이 스타덤에 오르면서 돈방석에 앉은 그였지만 2003년 LA에 자기 소유의 집을 장만하기 전까지 호텔과 월셋집을 전전하며 생활한 건 유명하다. 심지어 술에 취해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다가 파파라치에게 걸려 곤욕을 치른 적도 여러 번이다.

무절제한 생활로 가십 란을 장식하기를 여러 번, 하지만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진지하고 지적이며 심지어는 겸손하기까지 하다. <매트릭스 레볼루션>(2003)으로 대망의 시리즈를 마친 후 그가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2003)에 출연을 결정하자 화제가 된 것은 오디션을 본 후 젊은 주치의 줄리안 역에 캐스팅됐다는 점이었다. “거짓말 같겠지만 사실이다. 나는 항상 배역을 찾아 나선다. 잭 니콜슨을 보라. 그는 71살인데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잭이 연기한 모든 배역이 그를 위해 만들어졌을까? 천만의 말씀, 잭 역시도 배역을 찾아다녔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키아누 리브스는 스콧 데릭슨 감독으로부터 클라투를 제안받고 우선적으로 자신이 왜 이 역을 맡아야 하는지 이유를 찾는 데 몰두했다. 감독의 집에 며칠간 머무르며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씩 대화를 나눴고 만족스러운 답을 얻은 끝에야 배역을 수락할 만큼 신중을 기했다. 스콧 데릭슨은 이에 크게 감명을 받은 눈치다. “키아누가 자신에게 얼마나 엄격한지 보고 놀랐다. 뭔가 부족하다 싶으면 자신의 우려를 명확하게 표현한다. 그는 자기계발에 전념하는 연기자일 뿐 아니라 매우 지적이다. 그처럼 오랫동안 연기자로 성공하는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평상시에는 아슬아슬하게, 촬영 시에는 엄격하게, 이중생활(?)을 즐겨온 키아누 리브스의 필모그래피는 그의 인생을 보듯 다소 위태위태한 경향을 보인다. <매트릭스>의 대성공 이전에 <체인 리액션>이나 <코드명J> 같은 졸작 SF영화가 있었는가 하면 그가 출연했던 로맨틱코미디(<스위트 노벰버>(2001) <필링 미네소타>(1996) <구름 속의 산책>(1995))는 예의 그 무뚝뚝한 인상과 뻣뻣한 연기 덕에 대부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성공한 작품보다 오히려 실패한 작품이 더 많은 키아누 리브스이지만 이에 개의치 않는 듯 그는 꾸준한 행보를 이어왔다. “나는 항상 내 삶과 연기를 조화시키려고 노력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좋은 평가를 받고 흥행에도 성공하면 배우로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만 그와 반대여도 내게는 의미가 있다. 나는 앞으로도 배우일 것이기 때문이다.”

키아누 리브스는 캐릭터 안에서 자체 완결성을 갖는 흔치 않은 배우다. 그래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는 곧 배우 인생의 종착역이자 새로운 출발이 되곤 했다. 그것은 키아누 리브스가 지닌 고유한 성질의 것으로 1985년 데뷔한 이래 20년 넘게 연기생활을 이어온 원동력이기도 하다. ‘지구가 멈추는 날’이 올 때까지 키아누 리브스는 천상 배우로 남아 있을 것이다.

(FILM2.0 418호 12월 13일자에 실릴 예정이었으나 책의 발매가 중단되는 바람에 누락된 기사임을 알려드립니다)

<스트리트 킹>(Street Kings)


사용자 삽입 이미지<L.A 컨피덴셜> <블랙달리아>의 원작 소설가로 유명한 제임스 엘로이(James Ellroy)의 작품세계엔 몇 가지 주요한 특징이 존재한다. 고향인 LA가 배경이란 점(그는 1948년 3월 4일 LA에서 출생했다!), 지역 특유의 범죄, 즉 할리우드에서나 발생할 법한 사건을 소재로 한다는 점, 사건의 커넥션을 시 전체로 확장해 LA를 비리의 온상으로 묘사한다는 점(엘로이 소설 속 주인공은 크든 작든 비리를 저지른다), 무엇보다 개인의 비리를 쫓아가면서 결국 거대한 집단의 비리를 적출하는 하드보일드 소설의 구성을 취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트레이닝 데이> <S.W.A.T 특수기동대> 각본가 출신인 데이빗 에이어 감독이 연출한 <스트리트 킹>은 하드보일드 소설가 제임스 엘로이가 각본으로 참여한 또 한 편의 ‘LA하드보일드’다. 특히 <L.A 컨피덴셜> <블랙달리아> 등 1940~1950년대 배경의 작품만 소개된 국내에서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제임스 엘로이의 작품을 접한다는 건 무척 흥미롭다.

“현재의 LA, 현재의 거리, 현재의 경찰 당국 업무를 이해하고 파악하고 있는 것을 제임스 엘로이는 뛰어난 감각을 통해 지금의 각본으로 완성했다. 특히 내가 주목한 건 어느 날 갑자기 톰에게 발생한 특정한 사건을 거대한 이야기로 구성한 점이다”는 데이빗 에이어 감독의 말처럼, <스트리트 킹>은 시간 배경만 현대일 뿐 제임스 엘로이의 전작들에서 보여준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다. 비록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추악한 이면을 다루지 않지만 극중 인물들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LA경찰국을 할리우드로 치환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다. 범인 검거 후 신문기사 1면 헤드라인에 집착하는 이들의 모습은 ‘딴따라’ 배우인지, ‘민중의 지팡이’ 경찰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요부가 등장하지 않지만 자신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상대가 누구이든 서슴없이 살해하는 모습에서는 치명적인 유혹 앞에 굴복하고 마는 하드보일드 특유의 남성 캐릭터 모습이 중첩된다.

안 그래도 <스트리트 킹>에서 요부 역할을 대신하는(?) 폭력 묘사는 중요하게 다뤄진다.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려지는 폭력은 주인공 톰을 나락의 문턱까지 빠뜨리면서 LA 전체를 비리의 도시로 묘사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 그런 점에서 데이빗 에이어의 감독 발탁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트레이닝 데이> <S.W.A.T 특수기동대> 모두 공권력의 내부 비리를 액션 장르를 빌어 고발했던 그다. 다시 말해, <스트리트 킹>의 사실적인 폭력은 눈요깃감으로 삼기 위해 동원된 것이 아니다. 데이빗 에이어 감독은 폭력을 특정 인물, 특정 집단의 전유물로 만들지 않고, LA의 시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필수요소이자 순환구조로 다루는 데 주력한다. 비리가 존재 이유이자 도시 운영의 원천인 곳에서 폭력은 목숨을 날려버릴 수도, 구제할 수도 있는 일종의 생명줄인 셈. 하여 영화는 비리를 막기 위해서는 또 다른 비리가 필요악이라 주장한다. 경찰서장 완더가 톰에게 내뱉는 “우린 하나야, 운명으로 묶였어”라는 대사는 영화의 주제는 물론 현대 하드보일드 서사의 특징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만하다.

이 같은 구조는 마이클 만이 <마이애미 바이스>를 통해 보여준 것과 흡사하다. 특히 <스트리트 킹>이 LA를 묘사하는 방식은 마이클 만이 마이애미를 그리는 방식과 놀라우리만치 닮았다. <스트리트 킹>의 LA는 우리가 흔히 보아온 LA와 사뭇 다르다. 야자수가 늘어선 화려한 거리는 온데간데없고 네온사인이 발광하는 어두운 뒷골목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빛에서 어둠으로 전락한 LA의 쾌락은 격렬한 힙합 리듬에 맞춰 더러운 돈의 흐름에 따라, 의미 없이 부유할 뿐이다. 이제 LA는 범죄 집단이든, 경찰이든 돈의 쾌락을 좇는 타락한 도시로 변모했다. 그러니 범인 검거를 위해 치밀하게 조직된 경찰 수사망은 갑작스러운 배신으로 구멍이 뚫리고, 이용 가치가 없어진 조직원은 쥐도 새도 모르게 처형된다. 돈을 따라 움직이지만 결과적으로 죽음 외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도시. 마이클 만이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데이빗 에이어 역시 도시와 범죄의 상관관계를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다.

<스트리트 킹>은 제임스 엘로이의 각본, 마이클 만, 그리고 <트레이닝 데이>(톰과 워싱턴 커플은 <트레이닝 데이>의 아론조(덴젤 워싱턴)와 제이크(에단 호크) 커플의 변주다)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아우라에 눌리는 듯한 인상을 주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물론 영화 진행에 크게 방해가 되는 건 아니지만 하드보일드 스타일이 연출자의 개성에 상당 부분 의지한다는 점에서 감독 데이빗 에이어의 색깔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애석하다. 더불어, 제임스 엘로이의 이야기는 워낙 거대한 내용을 다루는 까닭에 브라이언 드 팔마의 <블랙달리아>처럼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설명이 불친절해질 수 있는데 <스트리트 킹> 역시 그런 약점을 노출한다. 영화는 꽤 볼만하지만 디테일 면에서 초짜 감독의 딜레마를 드러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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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 383호
(2008. 4. 22)

<매트릭스 2 리로디드>(The Matrix Reloaded)


‘~스키’가 만든 영화는 무조건 졸리다는 업계의 속설을 가뱝게 뒤집기 한판, ‘영화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등극한 <매트릭스> 그 두 번째 이야기 <매트릭스 2 리로디드>가 4년 만에 왔따! 정말 왔따!! 드디어 왔따!!!

허나 꼴림이 길면 사정이 빠른 법. 이 바닥에선 이를 ‘전편 만한 속편 엄따’고 우아고상하게 표현하는데…

전편에 이어 역시나 당 영화는 성경, 그리스 신화 그리고 불교관 등을 끌어와 철학적으로 썰 풀고 있다. 그리고 이번엔 기계들의 공격에 맞서 이를 저지하려는 네오(키아누 리브스 분)가 매트릭스 소스에 접근하는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다만 독립적으로 기획되어 확실한 결말을 가지고 있었던 1편과 달리 당 영화는, 조만간 3편이 개봉될 예정인지라 많은 부분이 다음 편을 위한 복선으로 처리되어 있는 관계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은 채 ‘투 비 컨티뉴’로 끝을 맺음으로써 ‘싸다 만’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게다가 ‘매트릭스’ 이론을 썰 하는데 있어 이미지와 대사가 균형을 이루었던 전편과 달리 당 영화는 초반부, 특히 오라클(글로리아 포스터 분)이 네오에게 선택이론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처럼 장시간 대사로써만 진행되는 부분이 많아 느슨하다. 또한 인간의 마지막 도시 ‘시온’을 보여주는 부분은 편집이 불필요하게 길어서 일방적인 강의를 듣는 것처럼 지루한 감을 지울 길이 엄꼬.

<매트릭스> 시리즈의 일등 자랑꺼리, 동양무술과 재패니메이숑, 헐리웃의 특수효과가 삼위일체 된 액숑 역시도 4년을 지둘려 온 관객의 기대감을 백푸로 충족시켜 주기엔 다소 힘에 부치는 형국이다.
모, 우루루 덤벼드는 스미스(휴고 위빙 분) 떼들과 네오가 오락기스럽게 싸우는 장면, 자동차 추격전의 A부터 Z꺼정 모든 것이 총망라 돼있는 20여분간의 고속도로 씬 등을 보고 있노라면 그 스케일에 입을 다물 수 없는 게, 관객을 놀라게 해주지 못한다면 혀 깨물고 자살해 버릴 것만 같은 워쇼스키 형제의 의지가 막 스크린을 뚫고 나올 것만 같다.

그런데 1편을 뛰어 넘어야겠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지들 말마따나 ‘더욱 거대해진 스똬일’, ‘환상적인 씨쥐’, ‘더욱 강력해진 액숑’을 펼치긴 하지만 전편에서 보여줬던 경이적인 기술력을 답습, 남발하며 물량으로 커버하려는 의도가 짙어 보인다. 우쨌든 당 영화를 향한 관객제위의 가장 큰 관심은 ‘날아오는 총알 림보 자세로 피하기’에 버금갈 만한 장면의 또 다른 재현 여부였는데… 아쉽다. 더군다나 네오의 슈퍼맨 놀이는 정말이지 민망해 죽는다, 죽어.

이렇게 말하다보니까 차 떼고 포 떼고 장기 두자는 얘기가 돼 버렸는데 어차피 당 영화의 관람은 본 특위의 검열결과에 상관없이 내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는 대 국민적 합의가 이미 개봉 전부터 이루어진 사안이 아니었덩가.

대신 당 영화에 품고 있는 기대감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63%만 덜어낼 수 있다면 사실 <매트릭스 2 리로디드>는 뮝기적에 머물 만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을 떨쳐낼 관객이 과연 얼마나 될지 심히 의심스럽다. 한마디로 너무나 잘 만들어진 전편 때문에 당 영화가 발목 잡힌 꼴이랄까…

그런 전차로 본 특위는 올 여름 시즌의 존나게 큰 화제작 <매트릭스 2 리로디드>를 뮝기적에 봉한다.


덧붙여,
영화가 끝났다고 평소 하던대로 서둘러 떠나면 니덜 손해다. 크레딧이 끝나면 <매트릭스 3 레볼루션> 예고편이 있으니까. 게다가 이 예고편에는 울덜에게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익숙한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놓치지 마시라!


<딴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