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L’Enf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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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은 원래 앙리 조르주 클루조(<디아볼릭><공포의 보수>)의 프로젝트이었다. 클루조 경력 상 가장 큰 야심이 집약됐던 작품인 만큼 그가 가진 모든 걸 쏟아 부었다. 예컨대, 의처증 남편에게 지독한 의심을 받는 부인의 심리를 묘사하기 위해 색색의 조명들을 그녀의 얼굴에 쏘는가 하면, 남편의 비뚤어진 정신 상태를 드러내기 위해 수십 개의 거울 이미지를 활용하는 등 주로 실험적인 연출을 통한 미스터리를 선보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옥>은 클루조 경력에 가장 큰 오점을 남긴 프로젝트가 되고 말았다. 남편 마르셀 역의 세르주 레지아니가 촬영과 동시에 병에 걸려 자크 갬블링으로 대체됐고 부인 오데트 역의 로미 슈나이더를 못미더워했던 제작사는 베레니체 베조로 일방적인 교체를 감행했다. 이에 따른 압박감으로 불면의 밤을 지새웠던 클루조 감독은 그만 심장 발작 증세를 보여 결국 영화는 중단되고야 말았다. (이 과정을 담은 메이킹 다큐멘터리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지옥>이 2009년 공개됐다.)

클로드 샤브롤이 <지옥> 프로젝트를 넘겨받은 건 그로부터 28년 뒤인 1992년이었다. 클루조의 미망인으로부터 시나리오 저작권을 양도받은 샤브롤은 이야기의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리조트 구입을 위해 차용한 빚 때문에 고민이 많은 폴(프랑스와 클루제, 원작의 마르셀)이 부인 넬리(엠마뉴엘 베아르, 원작의 오데트)가 바람을 핀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정신병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큰 맥락은 이어받고 있는 것이다. 대신 디테일한 부분에서 자신이 즐겨했던 집 안을 벗어나지 않는 스케일의 이야기로 꾸미는데 주력했다.

<지옥>은 클루조와 샤브롤 버전을 비교하며 보는 것도 꽤 흥미롭다. 클루조가 꽉 짜인 게임과 같은 이야기를 통해 계산적인 미스터리를 선보이는 것에 반해 샤브롤의 경우, 영화적인 느낌은 철저히 배제한 채 현실적인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느껴진다. 샤브롤이 클루조의 중단된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인 것도 클루조의 영화치고는 현실에 바탕을 둔 이야기에 매력을 느낀 탓이 크다.

클루조의 영화는 대개가 영화적인 유희를 위해 현실을 포기하는 편이었다. (<디아볼릭>의 숨진 남편이 마지막 장면에 살아 돌아오는 장면을 상기해보라!) 샤브롤이 아무리 히치콕의 영향력을 숨기지 않았다고 하지만 (클루조는 히치콕의 라이벌이기도 했다!) 구현에 있어서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영화적인 표현보다 실제에 바탕을 둔 현실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히치콕에 비해서, 또 클루조에 비해서 원작을 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샤브롤의 영화는 갑작스런 사건이 서사를 추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부에 상존하고 있는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구체화를 띄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것은 계급의 문제일수도 있고(<미남 세르쥬><의식>), 남녀 간의 사랑을 대하는 근본적인 차이일수도 있으며(<도살자><초콜릿 고마워>), 역사가 가족사에 남긴 상흔의 흔적일 수도 있다(<여자 이야기><악의 꽃>). <지옥>은 강박증에 따른 이상심리의 비극이라 할만하다. 폴의 의처증은 실제로 넬리가 다른 남자와 정분이 났기 때문이 아니라 리조트 구입 당시부터 안고 있던 빚 문제가 부인에 대한 의심으로 드러난 경우이었다.

샤브롤은 늘 이성이 작동하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가 늘 중산층 혹은 부르주아 계급을 즐겨 배경 삼은 이유는 최소한 이들이 인간이라는 가식을 내세울 만큼 삶의 조건을 갖춘 까닭이었다. 다만 샤브롤이 인지하는 인간의 이성이란 불완전한 형태로써, 도덕 혹은 윤리의 수면위로 흘러넘칠 듯한 지나친 욕구와 본능을 가리기 위한 (‘제어’가 아니다.) 수단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성의 둑이 터졌을 때 펼쳐지는 상황이 바로 그가 주목한 소재요, 다루는 주제이었다. 하늘에 있는 앙리 조르주 클루조가 샤브롤 버전의 <지옥>을 맘에 들어 할지는 모르겠지만 샤브롤 자신이 관심 가질법한 소재를 충실하게 영화로 옮겼을 뿐이다. 그리고 샤브롤의 영화를 대표할만한 작품으로 손색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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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mage
Claude Chabrol
(2010.12.14~12.26)

<초콜릿 고마워>(Merci pour le chocol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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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면 일군의 사람들이 미카(이자벨 위페르)와 폴론스키(자크 뒤트롱)의 결혼에 대해 숱한 의심의 말들을 쏟아낸다. 그럴만한 것이, 첫 번째 결혼 실패 이후 이들은 동일한 상대방과 다시 한 번 결합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두 번째 결혼까지 시간 간격이 무려 18년에 이른다. 그러니, 미카와 폴론스키의 재결합에 대한 무수한 말들은 의심의 실타래를 만들어 이렇게 따져 묻는 듯하다. ‘너희들의 관계가 순수하다고? 그걸 우리더러 믿으라는 거야?’

미카는 스위스에 본사를 둔 유명 초콜릿 회사 사장이다. 그녀는 18년 전 짧게 결혼생활을 했던 유명 피아니스트 폴론스키와 재결합한다. 그동안 폴론스키에게는 아들 기욤(로돌프 파울리)이 생겼는데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지 못한 탓인지 어딘가 모르게 풀이 죽은 모습이다. 한편 피아노에 재능을 보이는 잔느(아나 무글라리스)는 태어나던 날 산부인과에서 폴론스키의 아들과 뒤바뀔 뻔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흥미를 느낀다. 그 길로 폴론스키를 방문하는 것이다.

<초콜릿 고마워>는 ‘의심의 미스터리’라 부를 만하다. 극중 인물들 모두에게는 의문으로 남은 상실된 가족사가 존재한다. 폴론스키는 기욤의 생모가 어떻게 목숨을 잃었는지 여전히 그 진상을 모르고, 기욤은 자신이 진짜 아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며, 잔느는 일찍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폴론스키에게서 찾으려 애쓴다. 현실이 더욱 중요한 이들에게 가족의 비밀은 그냥 묻어둘만한 일이다. 헌데 미카는 그렇지가 않다. 겉으론 태연한 척 속으론 폴론스키와의 사이에 끼어든 잔느가 못마땅하고 거치적거리는 기욤이 눈엣가시처럼 느껴진다.

웬만하면 의문의 사연을 미스터리 구조 삼아 충격적인 가족사의 기원을 파고들 법도 한데 샤브롤은 진상을 밝히는 데 큰 관심이 없다. 오히려 탈골된 가족사로 빚어지는 꼬리에 꼬리를 문 의심이 어떻게 가족 관계의 해체로 발전하는지에 주목한다. 더 정확히는 잘 나가는 기업 사장에, 유명 피아니스트 남편과 이룬 가정 등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미카가 유별난 ‘의심’ 때문에 어떻게 파국으로 치닫는지를 따라간다.

<초콜릿 고마워>는 미국의 범죄소설가 샬롯 암스트롱의 <초콜릿 거미집 The Chocolate Cobweb>을 영화화했다. 샤브롤은 원작소설의 ‘거미집’을 제목에서 빼버리는 대신 극중 미카의 심리상태를 대변하는 상징물로 그물모양의 ‘나이트캡’을 활용한다. (이 영화의 영제는 다름 아닌 <Nightcap>이다!) 예컨대, 미카가 소파에 앉아 조용히 나이트캡을 짜고 있을 때면 세상 편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족에 대한 의심이 극에 달해 머릿속으로 온갖 음모들을 짜내고 있을 때다. 하여 그 모습은 마치 거미가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 분주히 거미집을 짜는 행위를 연상시킨다.

이처럼 샤브롤은 <초코릿 고마워>에서 주변 도구를 활용한 심리 묘사에 능한 모습을 보여준다. 나이트캡은 물론이고, 이 영화가 주요하게 다루는 초콜릿 또한 그저 달콤한 먹을거리와는 거리가 멀다. 모든 외적 배경을 갖춰 단단해 보이는 미카가 실은 내부에서 발열하는 의심으로 녹아내리기 쉬운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이 샤브롤이 묘사하는 초콜릿으로 설명된다. 그래서 <초콜릿 고마워>의 미스터리의 경지는 심리로 완성한 액션물에 맞닿아있다. 성룡이 주변 도구들을 적극 활용해 액션의 동선을 짜는 것처럼 샤브롤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심리가 충돌하고 합을 겨루는 미스터리의 액션을 만들어낸다. 이를 보고 있으면 <초콜릿 고마워>가 아니라 ‘샤브롤 고마워’를 외치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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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e Chabrol
(2010.12.14~12.26)

<마스크>(Masq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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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쇼다. 드러난 사실만 가지고는 진위 여부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다. 최소한 클로드 샤브롤의 생각은 그렇다. TV쇼 사회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브라운관을 통해 드러나지 않는 그의 경악할만한 가정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마스크>(1987)만 봐도 알 수 있다.

범죄소설가로 활동하는 롤랑(로빈 르누치)은 어쩐 일인지, TV쇼 사회자 크리스티앙(필립 느와레)의 전기를 써보려고 한다. 이에 크리스티앙은 흔쾌히 응하며 자신의 별장으로 롤랑을 끌어들인다. 그곳에서 롤랑이 관심을 갖는 인물은 크리스티앙의 양녀인 카트린(안느 브로쉐)이다. 실내에서도 벗을 줄 모르는 선글라스와 그에 대비되는 창백한 피부는 뭔가 비밀을 감춘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과연, 롤랑은 그녀 주변에서 감지되는 이상한 행동을 단서삼아 크리스티앙의 가면 뒤에 숨겨진 진짜 모습을 추적해 들어간다.

크리스티앙은 롤랑과의 인터뷰 중 이런 말을 한다. “난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반응하는 사람이야.” 다시 말해, ‘본능적’으로 행동한다는 크리스티앙의 대사는 뒤를 캐는 롤랑을 향한 선전포고이자 은연중에 속마음을 내비친 자기 고백에 다름 아니다. 역설적으로 이 말은 노인들을 상대로 한 TV쇼에서 따뜻한 가슴의 소유자로 비칠지언정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작동한다는 것에 <마스크>의 진면목이 담겨 있다.

사실 샤브롤의 모든 영화는 이성이라는 ‘마스크’에 가려진 본능의 실체에 대한 폭로다. 그의 작품에 따르면, 인간의 이성이란 것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본능을 가리기 위할 때 필요한 긴급 처방에 불과하다. 특히 가족이란 울타리는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지라 폐쇄성을 띠는 까닭에 허울뿐인 인간의 이성을 드러내기에 좋은 조건으로 작용한다. 그가 연출 후반기로 갈수록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 집중하며 추악한 본능을 폭로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마스크>는 그런 샤브롤 후기 연출작의 특징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경우라 할 만한데 무엇보다 크리스티앙이 가족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벌이는 일련의 허위의식이 텔레비전의 속성과 닮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것은 클로드 샤브롤의 현실의식이 얼마나 첨예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실례다. 극중 크리스티앙처럼 미디어를 적극 끌어들여 자신을 유리하게 이미지화한 뒤 이면에서 나쁜 욕망을 드러내는 경우는 현대영화의 흔한 레퍼토리가 되었다. 하지만 <마스크>가 발표된 당시를 상기해본다면, 이 같은 설정이 얼마나 획기적이었는지는 이 작품이 최근 영화들에 미친 영향으로 증명된다. 예컨대, 로만 폴란스키의 <유령작가>(2010)에서 <마스크>의 흔적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고립된 장소에서 전기를 쓰는 작가가 해당 인물의 비밀을 파헤친다는 설정은 차치하더라도 (더군다나 <유령작가>가 원작소설을 취하고 있지만) 작가를 실체 없는 존재로 그리기 위해 미로 같은 집안의 구조와 사소한 행위를 미스터리 삼는다는 점에서 두 영화가 닮아있는 것이다.

다만 <유령작가>가 검은 세계의 풍경에 대한 영화라면 <마스크>는 일그러진 가족의 초상에 대한 영화다. 크리스티앙 역의 필립 느와레 얼굴이 이를 대표하는 오브제라 할 만한데 후에 <시네마천국>(1988)을 통해 인심 넉넉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을 생각하면 <마스크>는 시대를 더할수록 그 진가를 발휘하는 영화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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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e Chabrol
(2010.12.14~12.26)

<사촌들>(Les Cous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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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브롤의 미스터리는 당시로써 생소한 것이었다. 대개 상황의 급전환을 통한 심리 변화로 눈에 띄는 미스터리를 형성한 것에 반해 데뷔작 <미남 세르쥬>(1958)는 의식의 서서한 흐름에 이야기를 맡겨 미묘한 분위기로 미스터리를 구축한 까닭이다. 그래서 <미남 세르쥬>는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 흥행에 큰 재미를 못 보았지만 두 번째 작품 <사촌들>(1959)에 이르러서야 관객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샤를르(제라드 블라인)는 법률 시험을 치르기 위해 파리로 상경, 사촌 폴(장 클로드 브리알리)의 집에 머물며 시험에 대비한다. 모범적인 샤를르와 달리 폴은 음주가무를 즐기는 까닭에 큰 도움을 받지는 못한다. 대신 자유분방한 파리의 환경과 적극적인 폴의 성격에 매료되지만 여인 플로랑스(줄리엣 마뉴엘)를 두고 둘의 사이가 어그러지면서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사촌들>은 피를 나누었지만 서로 다른 행동 양식과 심리를 보여주는 두 인물 사이의 심리적 대비의 풍경을 보여준다. 이 모든 시작은 샤를르의 문화적 충격에서 비롯된다. 지방 출신인 그가 파리를 느끼며 즐기는 감정은 모두 파리지엔인 폴에게로 감정 이입이 된다. 그로인해 법학도로 대표되는 샤를르의 이성은 점차 플로랑스를 향한 애정의 본능에게로 자리를 내주게 되는데 후에 시험에 실패한 그의 모습은 비극의 전초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관계도 이성이 버팀목이 되어줄 때 유지되는 법이지만 정신이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이 앞서게 되면 그 상황은 결국 러시안 룰렛 게임이나 진배없다는 것이 샤브롤의 입장이다.

<사촌들>이 인물의 설정에서부터 상황 묘사까지 대비를 주요한 표현 양식으로 삼는 것은 이와 같은 감독의 철학에서 기인한다. 사실 <사촌들>이 개봉한 당시의 프랑스, 특히나 파리 는 전통에서 혁신으로, 구세대에서 신세대로의 도도한 시대 변화의 흐름 속에 무수한 문화 충돌로 들끓는 시기였다. 극중 샤를리와 폴이 처한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처럼 인간은 환경에 지배받기 마련이다. 급격한 환경 변화 속에서 흑과 백이 서로 공존하기보다는 그 성격상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이 튀어나오다보니 서로 충돌하고 부딪혀 회색빛 풍경이 된다는 것을 <사촌들>은 보여준다. 

이는 샤브롤이 히치콕의 영화를 추종하지만 히치콕과는 전혀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고 영화를 만든다는 결정적 대목이라 할만하다. (극중 서점에 들어간 샤를르가 샤브롤과 로메르가 공저한 연구서 <히치콕>을 만지작거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히치콕의 미스터리는 늘 남녀 간의 사랑으로 귀결되는 결말로 현실에서 맞보기 힘든 따뜻한 유희를 선보였다. 샤브롤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샤브롤의 작품에서 관계를 이룬 남녀라도 반드시 깨지기 마련이었다. 또한 <사촌들>에서처럼 (후기 연출작에서 더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가족일지라도 비밀의 틈새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기어코 풍비박산까지 밀어붙이고야 말았다.

그것이 샤브롤의 비관주의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지극히 현실주의자였다. 현실에서 목격한 부조리한 상황들을 접목해 미스터리를 삼는 것이 샤브롤의 장기였다. 같은 맥락에서 다른 누벨바그 감독들이 자신의 예술관을 지키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던 것에 반해 샤브롤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면 외부 조건 따위를 크게 개의치 않았다. 데뷔작 <미남 세르쥬>에서부터 <벨라미>(2009)를 유작으로 남길 때까지 50편, 그러니까 매년 한 편 꼴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 때문에 샤브롤은 누벨바그 내부에서도 크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작가였다. 지금이라도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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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e Chabrol
(2010.12.14~12.26)

클로드 샤브롤 추모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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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로 입사한 지 오늘로 3주차가 됩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생소한 일이다보니 실수하지 않으려고 매일 긴장한 채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처럼 영화를 고르고 글을 쓰는 건 맞지만 이곳에서는 필름도 직접 수급해야 하고 당직도 하면서 표도 받아야 하고 여러 가지로 일들이 많네요. 그래도 마감하느라 밤새는 게 예사인 잡지 일에 비하면 출퇴근 시간이 고정적이라 시간 활용하기가 좋아 한편으로 맘은 편합니다. 사무실이 상영관 바로 옆이라 고민 없이 바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것도 좋고요. 그래서 처음 성과물을 내는 것이 바로 12월 14일부터 시작하는 ‘클로드 샤브롤 추모 영화제 Hommage Claude Chabrol’입니다.

제가 들어가기 전부터 기획된 것인데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니, 클로드 샤브롤 사망(2010년 9월 12일) 후 추모 영화제를 하는 곳이 많을 것 같아 기대하지 않았다고 해요. 오퍼만큼은 넣어보자는 생각에 프랑스 쪽에 의뢰를 해보니 올해까지 필름 대여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클로드 샤브롤 이 양반이 평생에 50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저작권 관리가 여러 군데로 흩어져 있다 보니 필름 수급에 한계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영화는 모두 8편입니다. 목록은 <미남 세르쥬>(1958) <사촌들>(1959) 초기 두 작품과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시네마 천국>의 알프레도 할아버지가 코믹한 TV쇼 사회자로 등장하는 <마스크>(1987)를 제외하면 <지옥>(1994) <의식>(1995) <거짓말의 한가운데>(1999) <초콜릿 고마워>(2000) <악의 꽃>(2002)까지, 1990년대 이후의 작품이 주를 이룹니다. 샤브롤의 전성기라고 할만한 1960년대의 영화들, 가령 <도살자>(1969) <야수를 죽여야 한다>(1969) <부정한 여인>(1969)과 같은 작품을 상영하지 못하는 건 참으로 아쉽네요.

개인적으로는 <둘로 잘린 소녀>(2007)를 봤으면 했는데 이 또한 수급하는데 실패했습니다. 한국에는 잘 안 알려진 작품입니다. 한국의 영화 전문가들이 주로 1960년대 작품과 <의식>을 전후한 1990년 중반 몇몇 작품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둘로 잘린 소녀>를 중심으로 샤브롤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한창이라고 하네요. 대신 제가 이번 영화제를 통해 가장 기대하는 작품은 <지옥>입니다. <지옥>은 원래 앙리 조르주 클루조가 1964년에 시도했던 프로젝트입니다. 클루조 영화 경력에서 가장 큰 예산이 투입된 것은 물론이고 그의 야심이 가장 크게 반영됐던 영화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클루조의 <지옥>은 영화 역사상 가장 저주받은 미완의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투자사와의 마찰로 촬영에 들어가자마자 주인공 여배우가 교체되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촬영 3주 후 클루조가 심근경색을 일으키면서 끝내 촬영이 중단되고 말았죠. 그리고 30년이 지나서야 클루조의 미망인이 저작권을 넘기면서 샤브롤의 <지옥>이 탄생하게 되었던 겁니다.

전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앙리-조르주 클루조의 지옥>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히치콕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할 정도로 미스터리 연출에 일가견을 보였던 클루조답게 의처증에 시달리는 부인의 심리를 인공적인 배경과 다양한 색채의 조명으로 대담하게 표현한 것이 인상 깊었더랬습니다. 과연 클루조가 이루려던 <지옥>을 샤브롤이 어떤 버전으로 완성했을지 궁금하네요. 프랑스 제작사로부터 스크리닝 DVD로 받기는 했지만 아직은 보지 않았고요. ‘클로드 샤브롤 추모 영화제’가 열리면 볼 생각입니다. 극장이 엎어지면 코 닿을 덴데 굳이 작은 화면으로 볼 생각은 안 드네요. 이번 ‘클로드 샤브롤 추모 영화제’를 통해 샤브롤의 진가를 모두 확인할 수 없지만 그의 죽음 이후 찾아온 허기를 다소나마 달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을 기약해야죠. 보다 큰 규모로 샤브롤 영화제를 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영화뿐만 아니라 그가 쓴 연구서도 함께 볼 수 있으면 해요.

사실 샤브롤은 소르본대학에서 약리학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파리의 시네클럽을 통해 장 뤽 고다르, 프랑소와 트뤼포, 에릭 로메르, 자크 리베트 등과 어울리면서 이후 <카이에 뒤 시네마>를 통해 영화계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유명합니다. <미남 세르쥬>를 발표하기 전까지 활발한 평론 활동을 펼쳤던 그는 에릭 로메르와 공저로 알프레드 히치콕의 <누명 쓴 사나이>(1956)를 분석한 연구서 <히치콕>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보니 샤브롤도 그렇고 클루조도 모두 히치콕을 대입해야 흥미로운 설명이 이뤄지네요.) 저는 샤브롤이 쓴 글을 전혀 읽어본 적이 없어서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만 그 때문에 샤브롤의 영화가 과소평가됐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샤브롤은 ‘히치콕주의자’로 유명합니다. 히치콕 영화의 자장 안에서 샤브롤의 영화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다수라 그의 연출의 면모가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는 거죠. 샤브롤의 영화를 본 분들이면 잘 아시겠지만, 히치콕의 영화를 단순 모방한 것은 아닙니다. 누벨바그(Nouvelle Vague)에 대해서도 “뉴웨이브(누벨바그의 영어식 표현)는 없다. 영화의 바다만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특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인 영화 세계의 창조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감독이 바로 샤브롤이었습니다. 히치콕이 그랬듯 살인의 이면에 감춰진 죄의식과 강박증 같은 인간의 말라비틀어진 감정에 주목하되 프랑스적이라고 해도 좋을 배경과 감성을 섞어 샤브롤만의 미스터리 스릴러 문법을 완성했던 것입니다. 이래도 안 보실 겁니까. (반 협박 ㅋㅋ) 12월 14일부터 시작입니다. 개막작은 <사촌들>이고요. 그럼 ‘클로드 샤브롤 추모 영화제’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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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샤브롤
추모 영화제
(2010.12.14~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