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셉션>의 초현실적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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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영화 관람을 방해할만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인셉션>을 보고 나오면서 ‘크리스토퍼 놀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피터 트래비스, 로저 이버트 등 해외 유명 평자들의 평가처럼 절대적인 걸작이라거나 우리 시대의 클래식이라고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극중 생각의 조작이란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대사를 남발하고 무리하게 장면을 늘이는 등의 무리수가 종종 눈에 띈다.) 다만 기존의 재료를 가지고 영화라는 매체의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해 새로운 ‘무엇’으로 뒤바꿔놓는 그의 연출력에는 특별한 것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인셉션>은 타인의 꿈속에 잠입해 생각을 심거나 혹은 훔쳐오는 이들의 활약을 담았다. 데뷔작 <미행>(1998) 이후 놀란 최초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인 <인셉션>의 이야기는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새롭지 않다. 꿈의 세계에 접속해 생각을 읽는다거나 조작한다는 내용은 이미 타셈 싱의 <더 셀>(2000),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2004) 등이나 소설 쪽에서는 로저 젤라즈니와 윌리엄 깁슨이 각각 <드림 마스터>와 <뉴로맨서>에서 다뤘던 것이다. 팀원 각자의 장기를 살린 치밀한 계획을 통해 임무를 완수한다는 설정은 <오션스 일레븐>(2001) 시리즈와 닮았다. 심지어 <인셉션>은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제3자를 끌어들인 후 상황을 ‘조작해’ 뒤집어씌우는 <미행>의 이야기를 꿈의 구조로 번안한 것에 가깝다. (두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 코브인 것과 그들의 극중 역할이 도둑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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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형식 속에 쌓아올려 새롭게 만들기를 즐겼다. 시간과 공간을 교란한 편집으로 비선형적 서술을 선보였던 <미행>,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의 처지를 관객에게 이입시키기 위해 7개의 에피소드를 10분씩 시간 역순으로 진행한 <메멘토>(2000), 허구의 코믹스에 사실주의를 접목한 <배트맨 비긴즈>(2005)와 <다크 나이트>(2008)까지, 놀란의 연출은 설계자의 그것과 무척이나 닮았다. <인셉션>도 내용이 아니라 형식과 구조로 승부를 보는 영화다. 꿈속을 탐구하는 영화답게, 그것도 꿈속의 꿈, 더 나아가 꿈속의 꿈속의 꿈으로 확장하며 아예 다중의 꿈을 통해 영화적인 미로를 설계해버린다.

극중 미로의 구조는 주인공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꿈을 통해 드러나는 강박관념, 불안감, 무의식 등 심리적인 상태로 구획 지어진다. 자칫 관객들에게 어렵게 다가갈 수 있는 소재이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인셉션>은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한 영화다. ‘꿈의 미로’라고 했을 때 우리는 흔히 장자, 프로이트, 니체 등을 이정표삼아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꿈의 시각화를 감안했을 때 <인셉션>은 개념정리와 해설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극중에서 충분히 설명되기도 한다.) 놀란이 참조했음이 명확해 보이는 두 명의 화가 M.C. 에셔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속 익숙한 구도가 <인셉션>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또 하나의 힌트다. 이는 이 영화의 지향점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입구와 출구가 동일한 미로

놀란 감독이 <인셉션>으로 설계한 미로는 들어가는 입구와 나오는 출구가 동일한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형태다. 코브가 경찰에 쫓기는 수배자 신분인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그로인해 집을 떠나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만날 수 없는 코브는 기업 총수 사이토(와타나베 켄)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합병을 위해 라이벌 기업의 후계자 피셔(킬리언 머피)의 생각을 개조해달라는 것. ‘생각 추출자’ 코브는 제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수배 혐의를 풀어줄 것을 조건으로 건다. 다시 말해, <인셉션>은 집 떠난 코브가 누명이라는 ‘이상한 고리’를 풀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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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누명을 소재로 한 영화는 오인 받은 주인공의 꼬인 사연을 풀기 위해 알리바이, 증거, 과학적인 수사 등과 같은 이성적인 개념을 동원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인셉션>은 이성의 영역을 무너뜨려 꿈이라는 가상 세계 속으로 침투한다. 물론 현실의 시간이 꿈속에서는 12분의 1의 단위로 흘러간다는 등의 꿈과 관련한 나름의 과학적인 현상을 접목하기도 한다. 다만 어쨌든 인간의 심리는 과학이나 이성으로 그리 쉽게 증명되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런 탓에 수학적인 연출로 정평이나 난 크리스토퍼 놀란이 꿈의 ‘설계’를 통해 코브의 심리를 드러낸다는 설정은 확실히 이율배반적으로 비친다. 

이런 이율배반의 미학이 가능한 세계는 예술이 유일하다. 특히 에셔는 공간의 구획을 무화함으로써 현실과 가상의 벽을 무너뜨린 화가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들은 수학적인 계산에 따라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균등하게 구획이 분할되고, 경계가 존재하지 않아 여러 세계가 공존하며, 그럼으로써 그림 속 세계는 무한대로 확장한다. 이는 놀란이 <인셉션>에서 보여주는 꿈의 개념과 조응한다. 극중 꿈과 현실의 경계는 희미하고, 현실에서 꿈으로, 꿈에서 꿈으로, 다시 꿈의 꿈에서 꿈으로 무한히 증식하며, 그럼으로써 늘어나는 세계를 신(scene)별로 교차(혹은 분할)하는 연출을 통해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실제로 <인셉션>에는 에셔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장면들이 종종 튀어나온다. 일례로, 에셔가 즐겨 그렸던 거울에 비춘 상은 설계자로 영입된 아리아드네(엘렌 페이지)가 처음으로 꿈의 세계를 경험할 때 활용된다. 거대한 거울로 현실과 가상의 테두리를 지워 세계를 확장하는 장면에서 제시되는 것. 코브의 오랜 친구 아서(조셉 고든 레빗)가 (역시 꿈속에서!) 그들의 임무를 방해하는 추격자를 따돌리기 위해 계단의 구조를 조작, 끊어지지 않는 선처럼 만드는 것이 또한 그렇다. 이처럼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이상한 고리는 화가 에셔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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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은 앞서 언급했듯이 뫼비우스의 띠를 이야기의 구조로 삼는다. 그러다보니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직선을 이루지 않고 원을 그려 서술의 궤도가 돌고 돈다. 현실이 꿈이 되고, 꿈이 현실이 되고, 출발점이 귀환점이 되고, 다시 귀환점이 출발점이 되는 등의 상반되는 두 가지 가능성의 공존 혹은 순환. 하여 <인셉션>의 결말은 어느 쪽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무한대의 길이 열리는데 이 영화를 보고 느끼게 되는 모호함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그래서 <인셉션>을 지배하는 영화적 정서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초현실주의’가 될 텐데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역시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인용된다.

초현실적인 꿈의 세계

꿈의 세계는 현실을 초월한다. 이성과 상식을 넘어선 세계다. 초현실적인 세계의 묘사에 관한한 할리우드는 단연 독보적이다. 그들이 가상의 천지창조를 밥 먹듯이 이뤄내는 배경에는 CG의 힘이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하여 티가 난다. 허황한 맛이 없지 않다. 놀란은 좀 다르다. 그는 CG보다 여전히 특수효과를 신봉하는 고전주의적 연출가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묘사한 꿈속은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한 눈에 보면 현실인데 현실에서 통용되는 물리력이 갑자기 무너지는 순간, 그제야 꿈이라는 실체가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인셉션>의 꿈의 세계는 개별적이지 않고 현실과 깊은 연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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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인 360°도 회전하는 호텔 복도에서의 액션 시퀀스는 단적인 예다. 아서의 꿈속에서 벌어지는 상황인데 복도가 회전을 하는 이유는 잠을 자는 현실의 피셔의 육체에 충격이 가해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 촬영은 세트로 지은 복도를 전기모터를 이용해 회전시켰다고 한다.) 이처럼 꿈과 현실의 연관성을 이용해 놀란이 창조한 꿈의 풍경은 발상의 전환을 꾀하는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파리 시내가 반으로 접혀 하늘을 가리고 도시에서나 볼법한 첨단의 건물들이 파도치는 해변에 즐비하며 ‘킥’(kick)이라 하여 현실에서 잠든 신체에 추락을 가하거나 특정음악을 들려주면 꿈속은 무중력 상태로 돌변해 잠을 깨게 된다. 

이질적인 요소의 하나 됨, 즉 인식의 경계를 허물어 기이함을 부여하는 기법을 들어 미술계에서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이라고 부른다. 르네 마그리트는 데페이즈망의 대가다. 에셔 그림의 주제가 <인셉션>의 구조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면 마그리트의 그림은 극중 꿈속 장면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활용된다. 영화의 첫 장면, 파도치는 해변 위에 쓰러져있는 코브의 이미지는 <집학적 발명>이, 이동하는 차속에서 복면을 쓰고 잠이 든 인물들은 <연인들>이, LA 시가지 도로 한가운데 별안간 출몰하는 기차 장면은 <피레네 산맥의 성체>가, 그리고 코브의 ‘림보’(원초적인 무의식의 세계) 속 허물어진 빌딩 사이에서 홀로 제 모습인 집은 <빛의 제국>이 연상되는 것이다.

이 장면들의 공통된 특징은 ‘낯섦’이다. 낯선 광경은 이목을 끌기 마련이다. 놀란은 굳이 알록달록한 이미지를 동원하지 않고도 일상을 낯설게 함으로써 꿈의 효과와 더불어 그 정체에 대해 보는 이를 궁금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마그리트가 궁극적으로 의도한 그 자신의 예술적 장기다. 이를 위해 마그리트가 동원한 방법을 들어 위에 언급한 <인셉션>의 장면들이 의도한 바를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 해변 위에 쓰러진 코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복면을 쓴 이들은 혹시 죽은 것이 아닐까? 도로 위에 나타난 기차는 코브 이하 팀원들 앞으로 닥칠 파괴의 전조인가? 폐해 속 집은 불안정한 코브의 심리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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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와 에셔 모두 초현실주의를 지향하지만 마그리트는 철학적이고, 에셔는 수학적이고 논리적이라는 점에서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그중 크리스토퍼 놀란이 마그리트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뽑아낸 장면의 또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불길하거나 암울한 기운을 뽐낸다. 그것은 현실의 물리력이 파괴됨으로 인해서 꿈이라는 공간을 상기시키기 때문일 터. 극중 꿈을 침투 당하는 당사자 코브(아리아네드는 코브가 가진 불안한 심리의 정체를 풀기 위해 코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의 꿈에 수시로 잠입한다.)와 피셔의 현실이 어려움에 처할수록 이들의 꿈의 내용은 더욱더 초현실적으로 변모한다.

현실이 더 초라해지고 끔찍해질수록 그에 맞춰 꿈도 합을 맞추니, 꿈속에 현실이 ‘실재’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게다. 그렇다면 현실은 현실의 세계뿐 아니라 꿈에도 속하는, 일종의 ‘증강현실’이 된다. 이렇게 꿈과 현실이, 가상과 실제의 경계가 애매해지면서 무한으로 확장해가는 것이 지금 우리의 진짜 세계다. <인셉션>은 꿈의 침투라는 오래된 설정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은유한다. 그러니까 놀란 감독은 <인셉션>을 통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이 발을 딛고 있는 세계는 꿈인가? 현실인가? 실제인가? 가상인가? <인셉션>은 여기에 대해 답하지 않는다. 답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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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10.8.1)

<인셉션>(Ince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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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 쇼(이하 ‘야후’)
 <메멘토>, <다크나이트> 등을 연출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번에 <인셉션>이라는 영화를 선보였습니다. 어떤 내용을 담은 영화인지 소개 부탁 드릴께요.
허남웅(이하 ‘허’) ‘인셉션’은 타인의 꿈속에 들어가 생각을 주입하는 작전을 말하는데요. 이 영화는 다른 사람의 꿈속에 들어가 생각을 훔쳐오는 조직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극중 주인공 코브를 연기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바로 이 조직의 리더 격인 인물인데요, 한 기업 총수로부터 라이벌 기업 후계자의 정보를 빼내오라는 제안을 받고 팀 동료들과 함께 후계자의 꿈속에 침투합니다.

야후 한 마디로 정리를 하자면 ‘꿈을 해킹한다’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꿈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 어떻게 보면 단순하면서도 쉽지 않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전 영화인 <메멘토>도 쉬운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거든요? 어떠한 방법으로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나요?
사실 관객들에게 어렵게 다가갈 수 있는 소재인데요, 그렇다고 이 소재가 딱히 새롭지도 않은 게 말씀하신 것처럼 ‘꿈을 해킹한다’는 설정은 다른 작품에서도 사용된 적이 있거든요. 단적인 예로, 타셈 싱 감독의 <더 셀>은 연쇄살인마의 무의식 세계로 들어가 납치당한 여자의 소재를 찾기 위해 단서를 구하고요, 그 외에도 <매트릭스>나 <아바타>나 <이터널 선샤인>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등이 있겠고요. 그러니까 제 말은 은근히 익숙한 소재가 이 ‘꿈’과 관련한 영화이고요. 무엇보다 이 영화는 강탈영화처럼 구성이 되어있어요. 마치 은행에서 돈을 훔치듯이 꿈속에서 생각을 훔치는 영화인데 팀원 각자의 장기를 살린 치밀한 계획을 통해 임무를 완수한다는 설정은 <오션스 일레븐>나 <이탈리안 잡> 같은 영화와 닮아있다는 점에서 관객들이 즐기기에는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야후 이 영화의 주인공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국내에서도 아주 잘 알려진 배우이며, 많은 사랑을 받는 배우 중 하나인데요, 1990년 중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그저 잘 생긴 꽃미남 배우였습니다. 그러다가 확실히 배우라는 느낌이 났던 영화는 바로 작년에 개봉한 ‘셔터 아일랜드’가 아닌가 싶은데요, 이번 영화 <인셉션>에서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디카프리오를 캐스팅하기 위해 엄청 공을 들였다고 하는데요. <인셉션> 만들기 몇 년 전부터 디카프리오에게 의견을 물어봤는데 번번히 거절을 했데요. 그래도 지금과 같은 완성본의 시나리오를 보여주니까 그제야 수락했다고 하네요. 사실 <인셉션>도 그렇고 <셔터 아일랜드>도 결국엔 주인공의 분열증을 탐구하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 분야 연기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해도 될 텐데요. 놀란 감독이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나 디카프리오에게서 덜 자란 어른의 모습을 보는 듯해요. 실제로 <갱스 오브 뉴욕>부터 계속해서 마틴 스콜세지 영화에 출연하는 디카프리오는 두 개의 세계에서 방황하는 연기를 하고 있거든요. <셔터 아일랜드>만 봐도 정상인과 정신병자 사이를 오가는 연기를 보여주잖아요. <인셉션>도 그렇거든요, 꿈과 현실에서 방황하는 연기를 펼치는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꽃미남 배우가 아니라 그냥 배우로 평가받는 것은 그만이 할 수 있고 해낼 수 있는 연기를 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야후 만약 한국영화에서 비슷한 ‘인셉션’ 분위기가 나오는 영화가 개봉한다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할에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배우는 누가 있을까요?
누가 있을까요, 이런 분열증적 연기에 능한 배우가. 일단 <올드 보이>의 최민식이 생각이 나는데요, 아버지와 애인의 입장에서 분열하는 연기를 보여줬는데, 너무 나이가 많아 보이죠. 그럼 젊은 배우들 중에서는 최근 <이끼>에 나온 박해일도 어울릴 것 같습니다. 저는 박해일 배우를 볼 때마다 묘한 이중성이 느껴지는데요. <살인의 추억>이 그랬잖아요. 앳된 용모를 지녔지만 연쇄살인도 저질렀을 것만 같은 악마적인 기운도 희미하게 느껴지고 말이죠. 나이대도 디카프리오와 비슷하니, 디카프리오보다 세 살이 어린 걸로 아는데, <인셉션>과 같은 영화에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야후 영화 러닝타임이 142분이라고 들었어요. 굉장히 러닝타임이 긴 영화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나요?
개인적으로 꿈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장면들이 흥미로웠거든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웬만해서는 CG를 쓰지 않는 감독인데요. 대신 특수효과를 신봉하는 감독입니다, <다크 나이트>에서도 트럭이 뒤집어지는 장면을 실제로 촬영했다고 하잖아요. <인셉션>에서는 꿈속에서 벌어지는 초현실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와요. 근데 대부분 실제 촬영인 게 360도로 돌아가는 호텔 복도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액션 같은 경우, 현실에서는 잠을 자는 이들에게 충격이 가해졌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단순히 상상력에 의지한 게 아니라 현실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흥미가 동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야후 제일 명장면으로 꼽을 수 있는 장면이 있다면?
뒤로 갈수록 <인셉션>은 꿈속 뿐만 아니라, 꿈속의 꿈, 꿈속의 꿈속의 꿈, 심지어 무의식의 세계까지 들어가는데요, 말로 하면 참 어려워보여도 놀란 감독은 장소와 의상 등을 달리해서 구별할 수 있도록 해놓거든요. 근데 이게 사실 보면 꿈을 통해 드러나는 강박관념, 불안감, 무의식 등 심리적인 상태로 구획 지어놓은 것이거든요. 그래서 놀란 감독을 보면 영화감독이라기보다는 ‘설계자’라는 생각이 드는데 바로 그런 연출력을 해낼 수 있다는 게 놀라운 것 같아요. 

야후 반면 흥미롭지 못 했거나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다면?
피터 트래비스, 로저 이버트 등 해외 유명 평자들의 평가처럼 절대적인 걸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게 극중 꿈의 침투, 생각의 조작이란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대사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영화 속 규칙을 관객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심지어 개념을 만들어내기까지 하고요. 그러다 보니까 무리하게 장면이 길어지고 잡아먹는 등의 무리수가 종종 눈에 띕니다. 더군다나 꿈과 현실의 모호함이 이 영화를 지배하는 정서이데 이는 여러 가지 해석의 곁가지를 뻗겠지만 결말이 확실하게 딱 떨어지지 아니라는 점에서도 지금의 관객들에게는 약점으로 다가갈 만합니다. 

야후 압도적인 스케일과 CG 등이 볼거리로 꼽혔는데요, 사실 다른 영화들도 개봉 전에는 이러한 홍보문구들로 관객몰이를 하다가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많이 있거든요? <인셉션>은 어떤가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영화의 시각적인 효과는 압도적이죠. 파리 시내가 반으로 접히는 장면도 그렇고 LA 시가지에 불쑥 기차가 튀어나오는 장면들도 굉장히 생소한 볼거리라 눈을 떼기 힘들거든요. 게다가 이런 장면들을 대부분 실제 촬영을 했다고 하니까 더 놀라운 거죠.

야후 영화 뿐만 아니라 “극”의 형태를 지닌 것들에는 들을 거리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관객들의 눈 뿐만 아니라 귀까지도 사로잡은 많은 영화음악들이 사랑 받고 있는데요, 가끔씩은 정말 저희 같은 사람들이 생각해도 영 안 어울리는 영화음악들을 접할 때가 있어요. 정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죠. 이번 영화 <인셉션>의 OST들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이 영화의 음악은 한스 짐머가 맡았는데요, 그래도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남는 음악은 <라비앙 로즈> 주제곡일 거예요. 이 영화에는 마리온 코티아르도 출연을 하거든요, 그럴 때마다 <라비앙 로즈>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이 흐르는데, 한편으로 일종의 조크이기도 하면서 이 주제곡은 Non, je ne regrette rien라는 곡으로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라는 의미를 갖는데 극중 마리온 코티아르의 행동과 관련해 연관을 갖는 복선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야후 영화 개봉 전 시사회를 통해서 먼저 영화를 보셨다고 들었습니다. 시사회가 끝난 후 함께 시사회에 참석하신 분들은 어떤 평가들을 내리셨나요?   
대체적으로 놀라워하는 분위기였고요, 영화가 끝났을 때는 이것이 꿈인가 현실인가 애매하게 처리했기 때문에 결말의 해석을 두고 의견이 갈리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야후 실제로 다른 사람의 꿈에 들어가 5분이라도 자신의 목적을 주입시킬 수 있다고 가정을 한다면 칼럼리스트님은 누구에게 어떤 정보를 가지고 다른 사람 무의식 속에 들어가실 건가요?
모 당연히 지금 같은 사회 분위기라면 당연히 나랏님의 머릿속 아니겠어요. 저 같은 빈자들을 위한 정책도 펼쳐주시고 4대강 사업도 그만 멈춰주시고 무엇보다 잠 좀 푹 주무시라고 생각을 주입하고 싶습니다. 

야후 <인셉션>이란 영화에 평점과 한 줄 평을 남겨주신다면 어떻게 말씀하실 수 있으세요? 
전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다 라는 평으로 별점을 대신하고 싶고요, 한줄 평으로 이 영화를 평가한다면, ‘기억과 마술, 슈퍼히어로에 이머 꿈마저도 설계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은 욕심쟁이 우후훗!’으로 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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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7.22) 

그리고 2008년은 슈퍼히어로물의 진화를 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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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 전성시대다. <아이언맨>으로 출발한 2008년의 슈퍼히어로물은 <인크레더블 헐크> <원티드> <핸콕> 등을 거쳐 현재 <다크 나이트>로 정점을 찍고 있는 추세다. <아이언맨>은 국내 개봉과 함께 2주 연속, <원티드>와 <핸콕>은 일주일동안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슈퍼히어로의 위용을 과시했다. 특히 <다크 나이트>의 흥행 기세는 놀랍다. 미국에서 <타이타닉>에 이어 역대 흥행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더니만 한국에서는 4주 연속 관객동원 1위를 차지하며 여차하면 2006년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세웠던 5주 연속 1위도 넘볼 태세다.

슈퍼히어로물의 기세는 이게 끝이 아니다. <헬보이2: 골든 아미> <왓치맨> <스피릿> 등과 같은 기대작들이 개봉 대기 중에 있을 뿐 아니라 작금의 유행을 타고 <플라스틱맨> <그린 애로우> <퍼스트 어벤져: 캡틴 아메리카> <저스티스 리그> <토르>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슈퍼히어로물이 제작을 앞두고 있어 그 열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쉽게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만큼 슈퍼히어로는 최근 영화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현상이요, 탐내는 소재라 할만하다.

2008년의 슈퍼히어로물이 얻은 성과는 비단 폭발적인 인기에만 있지 않다. 불과 1년 전의 슈퍼히어로와 비교하더라도 올해 등장한 슈퍼히어로물은 장르가 품고 있는 내적인 논리 면에서나 허구를 다루는 형식적인 면, 그리고 그 속에 침전한 정치적인 무의식에 이르기까지 많은 지점에서 변화한 면모를 보여준다.

우선, 태어날 때부터 영웅의 능력을 부여받거나 아니면 불의의 사고로 초인적인 능력을 얻게 된 과거의 슈퍼히어로와 달리 2008년의 슈퍼히어로는 만들어지는 존재로 거듭났다. 이제 슈퍼히어로는 더 이상 하늘이 점지해 주지 않는다. 개인의 능력 여하에 따라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물론 그것은 ‘돈’이다.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와 같은 가난한 고학생 슈퍼히어로는 올해 들어 대기업의 ‘회장님’들로 환골탈태(?)했다.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와 <다크 나이트>의 브루스 웨인이 대표적이다.

토니 스타크는 대형군수업체 CEO. 신무기 홍보차 방문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신이 만든 무기가 살상용으로 이용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이후 세계평화를 위한 방법을 모색하니. 천재적인 과학적 지성과 자본을 바탕으로 슈퍼히어로 ‘아이언맨’이 된다. 브루스 웨인 역시 다르지 않다. 부모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그는 복수를 목적으로 초인적 존재로 거듭난다. 아버지가 물려준 천문학적 재산과 마음속에 도사린 두려움을 분노로 승화시켜 고담시를 지키는 ‘밤의 기사’가 된 것.

두 영화와는 다르지만, <인크레더블 헐크>와 <핸콕> 역시 이해 가능한 논리가 슈퍼히어로 탄생 과정의 기저에 깔려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슈퍼히어로로 기능한다. 예컨대, <인크레더블 헐크>의 브루스 배너는 헐크로 변신하는 자신의 분노를 치료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 분노를 억제하는데 성공한다. 이안이 만들었던 <헐크>(2003)가 감마선 실험의 실패로 헐크가 된 것과 비교, <인크레더블 헐크>는 이제 슈퍼히어로의 탄생이 이성(혹은 과학)으로 설명 가능한 텍스트가 됐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핸콕>의 주인공이 흑인이라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지금까지 슈퍼히어로가 백인 일색이었다는 점에 비춰 흑인 슈퍼히어로 <핸콕>의 등장은 이제 슈퍼히어로가 백인의 영역을 넘어 누구나 될 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한 사례다.

이렇게 슈퍼히어로가 현실세계에 깊이 뿌리를 내린 만큼 이들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만화를 연상시키는 허구적인 묘사를 벗어나 사실주의에 기반 한 형태로 변모한 것. 그에 따라, 인물의 내적 고민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와 깊은 연관을 맺게 됐고 세트 차원에서 머물던 공간 묘사는 현장 로케이션으로 그 범위를 넓혔으며 이야기를 다루는 장르의 활용 역시 느와르와 범죄물로까지 나아가며 더욱 더 현실적인 모습을 취하게 됐다. 허구의 세계를 맴돌던 과거 슈퍼히어로물이 캐릭터의 수와 이야기의 규모, 무엇보다 기술적인 면에서만 진화를 꾀한 것과 비교하자면 실로 획기적인 변화다.

그 시작은 <배트맨 비긴즈>(2005)에서 있었다. 허구의 이야기에 사실주의를 접목한 <배트맨 비긴즈>는 전례 없던 형식의 진화를 꾀하며 새로운 슈퍼히어로물의 전범이 됐다. 그때부터 우리는 혼란스러웠다. 슈퍼히어로물의 영화적 재미를 떠나 변모한 형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어리둥절했다. 그건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슈퍼히어로물을 준비 중이던 관계자들도 <배트맨 비긴즈> 이후 이 영화의 성과를 어떤 식으로 반영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 “슈퍼히어로물은 늘 진화해왔다. <배트맨 비긴즈>도 의심의 여지없는 진화의 한 사례다.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실주의(realism)가 무엇을 겨냥하는지는 명확하지가 않다. 좀 더 기다려 봐야할 것 같다.” 당시 <스파이더맨 3>를 준비 중이던 샘 레이미 감독의 말이었다.

그에 대한 답변은 2008년에 이르러서 밝혀졌다. 그것은 물론 <배트맨 비긴즈>를 감독한 크리스토퍼 놀란에 의해 이뤄졌다. 속편 <다크 나이트>는 사실주의 노선을 유지하면서 이야기의 심화를 꾀해 전편의 성취를 뛰어넘는다. 그리고 이야기의 심화를 이룬 부분에는 명백히 지금 미국이 처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크 나이트>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배트맨의 명성이 더 강한 적을 부른다.’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는 9.11 이후 ‘적’을 소탕하겠다며 전쟁을 일상화한 미국이 더 큰 재앙에 직면한 현실세계의 정치학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에서 탄생한 슈퍼히어로물은 결국 미국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사실주의적인 묘사가 겹쳐진 <다크 나이트>는 미국의 현실에 대한 은유로 작용하기 안성맞춤인 구조다. 공교롭게도 <다크 나이트>의 성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이언맨>에서도 슈퍼히어로물을 통한 미국의 정치학을 감지할 수 있다. 극 초반 등장하는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이 9.11의 주범으로 지목한 빈 라덴을 제거하겠다며 무모한 전쟁을 감행한 곳이다. (1963년 선을 보인 원작만화에서는 베트남이었다!) 영화는 이곳을 배경 삼아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을 통해 테러리스트를 응징하고 약자를 지킨다는 논리를 은연중에 구축하며 전쟁에 대한 일종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처럼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물은 미국 주도하의 국제 정세에 대한 자국의 입장을 반영한 알레고리로 작용해왔다. 하여 슈퍼히어로의 진화는 흥미롭게도 세계 경찰국가로서의 미국이 정치적으로 큰 변화를 겪을 때마다 있어왔다. 슈퍼히어로물의 장르 공식을 창조한 것으로 평가받는 리처드 도너 감독의 1978년 작품 <슈퍼맨>은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 강한 미국에 대한 상징에 다름 아니었다. 이후 이에 영향 받은 대부분의 슈퍼히어로물은 소련을 위시한 공산국가를 적으로 상정해 무찌르는 ‘미국 만만세’ 영화로 전락(?)하며 지극히 단순화되어갔다.

이에 변화가 생긴 건 9.11을 전후해 슈퍼 국가 미국의 위상에 의문부호가 달린 2000년대부터다. 브라이언 싱어, 샘 레이미 등과 같은 비주류 성향의 감독들이 <엑스맨> <스파이더맨>과 같은 작품을 만들면서 슈퍼히어로는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1989년 등장한 팀 버튼의 <배트맨>은 이런 흐름의 시초라 할 수 있지만 당시 정치적 상황을 보건데 너무 앞서간 슈퍼히어로물이었다) 우리의 슈퍼히어로는 더 이상 주류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이 아닌 타자였으며 돌연변이였고 가난한 고학생이었다. 그래서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고 책임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만 했다.

특히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이전에 없던 슈퍼히어로에 대한 내적 고민을 구체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징후적이었다. 스파이더맨은 미국의 평화를,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에 앞서 자신조차 추스르기 힘든 상황이었다. 슈퍼 파워를 가지고 있음에도 집세도 내지 못하는 가난뱅이였고 변변한 일거리도 얻지 못하는 백수신세였다. 그렇게 미국은 외부의 적에만 신경 쓰는 사이 내부적으로 곪아가고 있었다. 그 결과, 슈퍼 파워에 대한 강한 의문부호가 따라붙었고 그에 따르는 책임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아이언맨>과 <다크 나이트>는 그에 따른 고민의 결과가 각각 어떤 형태로 구체화됐는지 잘 보여준다. <아이언맨>은 내부의 환부를 도려내고 (더 이상 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토니 스타크의 결심에 불만을 품은 오베디아 사장과의 마지막 대결!) 슈퍼히어로의 역할을 긍정했다. 그에 반해 <다크 나이트>는 여전히 파악하지 못한 적의 정체(극중 조커는 ‘악’일뿐 그 어떤 부연설명도 없다!)에 혼란스러워하며 자신을 ‘어둠의 기사’라고 명명하곤 현실을 뒤로 한 채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렸다. 이제 더 이상 감출 것이 없어진 2008년의 슈퍼히어로물은 허구의 외피를 벗어던지고 리얼리즘을 끌어와 또 한 번의 진화를 꾀했다. 9.11 이후 미국 사람이 체감하는 불안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변화다.

슈퍼히어로물은 어느 날 갑자기 진화를 이룬 것이 아니다. 현실세계의 변화에 맞춰, 그에 따른 장르의 역사가 쌓이면서 그렇게 자가 증식해왔다. 2008년은 슈퍼히어로물의 진화가 어디까지 이뤄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기념비적인 해라고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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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 404호
(2008.9.9)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


사용자 삽입 이미지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이하 <비긴즈>)는 꽤나 당혹스러우면서 동시에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선사했다. 슈퍼히어로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라면 으레 비현실적이고 만화적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사실주의적인 접근을 시도해 슈퍼히어로물의 새 지평을 열었다. 또한 <비긴즈>는 영화나 만화에서 다뤄진 적 없었던 주인공 영웅의 기원에 초점을 맞춘 첫 번째 배트맨 영화이기도 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배트맨의 팬이지만 원작 만화는 접한 적이 없다”는 감독의 시큰둥한 태도에서 기인한 듯 보인다. 원전의 무게에 눌리지 않고 상상력을 제한하는(?) 원작을 교본으로 삼지 않았기에 기본적인 캐릭터 설정만 가지고도 그동안 슈퍼히어로물이 도달하지 못했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할 수 있었다.

속편으로 돌아온 놀란은 이번엔 아예 제목에서 배트맨이라는 이름을 지워버렸다. 바로 <다크 나이트>. 배트맨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초의 경우로, 그는 이참에 자신만의 배트맨 시리즈를 완성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자신만만한 태도는 <다크 나이트> 미국 개봉을 앞두고 영국 영화 월간지 ‘토털 필름’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내가 좋아하는 <대부2>나 <스타워즈 에피소드5: 제국의 역습>과 경쟁한다는 야망을 가지고 연출에 임했다”

전편을 넘어서는 속편을 만들겠다고 공개석상에서 밝힌 놀란 감독의 거대한 야심은 <다크 나이트>가 공개된 현재 괜한 공염불처럼 들리지 않는다. <다크 나이트>는 <비긴즈>가 이룬 성과를 발판 삼아 이전에 보지 못했고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슈퍼히어로물을 보여주었다.


세트에서 현장으로, 개인에서 사회로

“골 아픈 놈이 있어. 무장 강도, 연쇄살인. 자네처럼 쇼를 좋아해. 늘 현장에 카드를 남기지” <비긴즈> 결말에 등장하는 짐 고든 경위(게리 올드만)의 대사는 속편의 가능성을 열어두며 배트맨(크리스천 베일)과 조커가 대결할 것을 예고했다.

예상대로, <다크 나이트>는 조커와 그 일행이 대낮에 고담 시의 중앙은행을 습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후 거액의 돈을 손에 넣은 조커는 팔코니 조직의 수장 마로니(에릭 로버츠)를 찾아간다. 마로니는 갑작스런 조커의 방문이 심히 불쾌하다. 얼굴을 하얗게 회칠하고 입술 주위를 빨간 루주로 떡칠한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조커가 강탈한 거액이 바로 조직의 검은 돈이었던 것. 그러나 돈을 되찾고 싶으면 함께 배트맨을 제거하자는 제안을 뿌리치기 힘들다. 한편, 브루스 웨인은 낮에는 그룹의 회장 역할을 하고, 밤에는 범죄를 퇴치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 와중에 희망을 얻는 건, 지방검사 하비 덴트(아론 엑하트)의 강력한 부패 척결 의지에서 당당한 영웅의 면모를 보았기 때문이다. 브루스는 더 이상 가면을 쓰지 않고도 하비를 통해 악을 소탕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그러나 사상 최강의 적 조커 앞에서 이들의 의지는 힘을 잃고 만다. 계속되는 조커의 범죄에 도시는 무정부 상태에 빠지고 급기야 배트맨이 가면을 벗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악행을 멈추지 않겠다고 압박한다. 결국 하비에게 뒤를 맡기고 가면을 벗으려는 브루스. 그러나 고담 시의 안전과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가면을 벗어던질 수 없다.

“전편 말미에 배트맨이 더 강한 적과 맞선다는 암시를 뒀다. 배트맨의 명성이 더욱 사악한 악당의 출현을 부른 거다. 배트맨이 오히려 고담 시에 악영향을 끼친 형국이랄까” 놀란 감독의 말에 따르자면, <비긴즈>의 결말은 속편의 핵심 설정을 꽤 직접적으로 지적한 셈이다. 고담 시에 만연한 범죄와 부정부패에 대한 배트맨의 즉각적인 대응이 역설적으로 새로운 범죄 집단의 부상을 야기하니, 놀란은 이를 ‘고담 시에 거대한 위기가 닥친다’는 설정으로 수렴, 배트맨의 존재가 고담 시를 어떻게 바꾸는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브루스의 내면에 집중한 전작과 달리 <다크 나이트>는 한 인물이 도시에 미치는 영향력을 다뤄야 했기에 고담 시의 물리적 범위를 더욱 크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15/70㎜ IMAX 카메라의 도입이었다. <다크 나이트>는 메이저영화 사상 처음으로 35㎜ 카메라와 IMAX가 혼용된 경우다. 총 여섯 장면에서 사용된 IMAX 촬영은 놀란이 원했던 도시의 규모를 키우는 데 그만이었다. <다크 나이트>는 시카고에서의 실제 로케이션 촬영 장면이 영화의 60%를 차지할 정도인데 IMAX로 잡은 도시의 전경은 시각 면에서나, 규모 면에서 충분히 압도적이다.

세트였으면 불가능했을 이런 식의 배경 묘사는 전작에서 고담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기에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비긴즈>는 브루스가 겪는 심리적 갈등을 구체화하기 위해 고담 시를 세트로 지어 제한적인 범위에서 활용했을 뿐이다. 그에 반해, <다크 나이트>는 시카고 로케이션을 통해 실제 도시처럼 묘사, 극중 고담 시에 닥친 재앙이 사실성을 띠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 그래서일까, 극중 고담 시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캐릭터처럼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는 <다크 나이트>가 일반적인 장르의 관점에서 대도시를 배경으로 한 거대한 범죄물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구체성을 띤다. 안 그래도, 오프닝의 은행 강도 장면은 배트맨 시리즈란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마이클 만의 <히트>나 캐서린 비글로우의 <폭풍 속으로>와 같은 범죄액션물로 착각하기 쉽다. 캐릭터 가면을 쓴 무리가 은행에 침입, 총격전 속에 거액을 훔치는 과정을 현장 로케이션을 통해 사실적으로 묘사한 장면에는 슈퍼히어로물 특유의 허구적인 느낌이 철저히 배제돼있다. 이에 대해 놀란은 “<히트>와 같은 마이클 만의 영화가 범죄와 도시의 상관관계를 잘 드러냈던 것처럼 내 영화 역시 그런 종류의 작품으로 다뤄지길 희망한다”고 피력했다.

정리하자면, 놀란이 의도한 <다크 나이트>의 물리적 확장은 배경의 규모를 늘린 것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비긴즈>에서 브루스의 개인 드라마에 머물렀던 이 시리즈가 범죄 서사시로 확장되며 결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배트맨과 조커, 너는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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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가 전작과 크게 차별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 <비긴즈>는 브루스/배트맨 그 자신의 캐릭터적 동력으로 완성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럼에도 주변 캐릭터를 당대 가장 뛰어난 배우들로 채웠던 건 주인공이 조연들에 의해 강조되는 효과를 원한 놀란 감독의 노림수였다. <다크 나이트>는 전작보다 더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식엔 변화가 있다. 개인 드라마를 벗어난 <다크 나이트>는 배트맨과 주변 캐릭터가 계속해서 충돌하는 관계 속에 이야기가 진행되는 까닭에 조커와 같은 악당이 배트맨의 아우라를 넘어설 만큼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캐릭터 묘사와 관련, 브루스 웨인의 첫 등장은 <다크 나이트>의 테마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비긴즈>의 브루스는 적에게 두려움을 주는 영웅으로 거듭나는 존재였기에 건장한 체격을 과시했다면 <다크 나이트>에서는 눈에 띄게 야윈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를 통해 브루스가 자신의 이중생활에 여전히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과 정의를 수호할수록 그에 배가해 늘어나는 악당들로 인해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래서 <다크 나이트>에는 ‘이중성’과 ‘상반성’의 테마가 영화 전반에 걸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를 형상화한 관계가 바로 배트맨과 조커다.

배트맨과 조커의 성격은 나란히 놓을 수 없는 동전의 양면 같다. 검은색 슈트와 하얗게 회칠한 얼굴, 질서 수호와 파괴, 심각함과 익살스러움, 너무 많이 가진 것과 아예 없는 것, 그리고 가면 뒤에 정체를 숨긴 것과 흉측한 얼굴을 더욱 과장한 것까지. 노골적으로 정반대되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동질성이 느껴지는 이들은 말 그대로 짝패다. 극중 이들이 소개되는 장면의 배치 역시 그렇다. 환한 대낮에 은행을 강탈하는 조커와 어두운 밤에 팔코니 조직원을 때려눕히는 배트맨의 활약상을 첫 장면과 두 번째 장면에 차례로 배치한 흑백구도의 편집은 흡사 <대부>를 연상시킨다.

<대부>의 첫 장면은 유명하다. 마당에서 벌어지는 딸의 성대한 결혼식과 어두운 사무실에서 은밀한 뒷거래가 이뤄지는 순간을 교차시킨 편집은 이탈리아 마피아의 냉혹한 이중성을 잘 드러낸 장면이다. <다크 나이트> 역시 배트맨과 조커가 벌이는 일의 교차편집을 통해 고담 시가 잉태한 범죄의 이중성을 밝히려 한다. 재미있는 건 배트맨은 정의를 수호하지만 시민의 입장에서는 또 한 명의 범죄자로 비추어진다는 점이다. 그가 계속해서 범죄를 불러오는 까닭에 사회에 해를 끼친다고 염려하기 때문이다.(이는 배트맨이 어둠의 기사(Dark Knight)가 될 수밖에 없는 단초를 제공한다!). 브루스의 고민은 이런 차원에서 설명 가능하다. 그는 고담 시의 평화가 목적이지만 법을 수호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에 혼란을 느낀다. 폭력 없이는 고담 시의 평화가 불가능한 걸 알지만 그럼으로써 부모가 경멸했던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고민스럽다.

이처럼 자신의 윤리와 행동 준칙을 가지고 있는 배트맨에게 조커는 새로운 종류의 적수다. 혼돈을 통해 즐거움을 얻고 죽음도 두려워 않는 조커는 그런 배트맨의 규칙을 깨고 싶어 안달이다. 배트맨의 입장에선 매우 상대하기 어려운 적수인 것이다. 이처럼 행위에 대한 동기가 불명확한 조커를 설명하기 위해 놀란 감독은 그에 대한 기원도, 심지어 성격조차 부여하지 않았다. 인간의 성질을 부여한다고 조커가 무시무시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완벽한 파괴 행위의 원인과 결과일 뿐인 조커를 설명적으로 다룬다면 캐릭터에 대한 매력이 반감될 것이라 판단한 놀란 감독은 “<죠스>에서 상어가 그랬던 것처럼 조커가 영화를 마음대로 헤집고 다니길 바랐다.”

때문에 조커는 배트맨과의 대결에서 결코 질 수 없는 캐릭터다. 극중 말미에 이르러 배트맨이 조커를 생포하는 데 성공하지만 영화는 그 이후에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 배트맨과 짐 고든, 하비 덴트의 작전으로 조커가 감옥에 갇힌 사연이 극 중반에 나오긴 하지만 어렵지 않게 탈출에 성공했던 전력에 비춰 그의 생존을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다. 놀란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그의 등장만을 보여줄 뿐이다. 다만 극단적인 행동을 부추기는 인물인 조커는 언제고 배트맨이 필연적으로 마주칠 적이다.” 바꿔 말해, 배트맨과의 관계에서만 재미를 얻는 조커는 배트맨이 존재하는 한 계속 따라다닐 운명의 캐릭터다. 이는 또한 고담 시의 미래에 당분간 평화가 요원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존재 자체가 악을 불러 고담 시를 위협하는 주적(?)으로 낙인찍힌 배트맨이 고담 시민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어둠의 기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슈퍼히어로물로 증명한 혼돈이론

<다크 나이트>는 프랜차이즈 특성상 배트맨의 영화이자, 이 작품을 통해 기념비적인 연기를 펼친 (故)히스 레저의 영화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투톱의 영화로 보이는 <다크 나이트>의 구도에 더욱 입체감을 불어넣는 건 하비 덴트/투 페이스의 존재다. 하비는 배트맨과 조커의 대결로 흐르는 ‘흑과 백’의 구도 속에 섞여 들어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으며 섣불리 예상할 수 없는 회색빛 이야기를 만든다.

그의 존재 자체가 그렇다. 하비는 영화 중반까지 고담 시의 미래를 책임질 또 한 명의 영웅으로 기능한다. 놀란이 아론 엑하트를 하비 역에 기용한 데에는 “로버트 레드포드처럼 미국 영웅의 모습이 아로새겨진 배우”였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극중 브루스는 젊고 패기 넘치는 지방검사 하비에게서 가면으로 얼굴을 감출 필요가 없는 진짜 영웅의 모습을 보고 안도한다. 배트맨슈트를 벗고 평범한 삶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는 브루스는 하비에게서 원하는 답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놀란의 의도는 배트맨과는 다른 곳을 향한다. “하비의 에피소드를 비극으로 만들어 또 하나의 중심 이야기로 삼으려 했다”는 놀란은 하비의 표면 아래 숨겨져 있는 그의 면모, 즉 불의의 사고로 얼굴 반을 잃고 희망마저 꺾이는 투 페이스를 등장시킨다. 이때부터 투 페이스를 이끄는 동력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대상에 대한 복수다. 그것은 투 페이스에게는 여전히 정의의 영역이지만 신봉하던 법의 영역을 벗어나 나쁜 방법으로 구체화하니, 또한 조커의 영역이기도 하다.

이 지점부터 <다크 나이트>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미국의 모습과 겹쳐진다. 고담의 영웅에서 악의 화신이 된 하비는 세계 영웅을 자처하다 어느 순간부터 그 지위를 남용해가며 복수의 일념에 불탄 지금의 미국과 영락없이 닮은꼴이다. 심지어 조커와 투 페이스가 손을 잡은 순간부터 극도의 혼란에 빠진 도시를 포착하는 이 영화의 카메라에는 9.11 테러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을 정도다.

미국에서 탄생한 슈퍼히어로물은 결국 미국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사실주의적 묘사까지 더해진 <다크 나이트>는 현실, 그것도 미국의 현실에 대한 은유로 작용하기 안성맞춤인 구조다. 그건 영화에 참여한 배우에게도 마찬가지다. “<다크 나이트>는 오늘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나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많은 일들이 대본 안에 있다고 믿고 연기했다” 아론 엑하트의 말이다. 놀란 감독은 엑하트의 의견과 다른 듯하지만 그런 의도가 있었음은 숨기지 않는다. “<다크 나이트>처럼 거대 규모의 영화를 다룰 때는 세상 사람들의 관점을 활용한다. 오락적인 성격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세상에 대해 탐구하는 것은 영화에 더 큰 힘을 제공한다.”

아닌 게 아니라, <다크 나이트>를 기획하면서부터 놀란은 인물과 사회의 관계를 탐구하려 했다. 배트맨의 존재가 고담 시를 어떻게 바꾸는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갔다는 의도를 상기한다면 <다크 나이트>는 놀란이 바라본 세계의 혼돈에 대한 영화적 탐구처럼 느껴진다. 이는 작은 변화가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는 ‘혼돈 이론’(Chaos Theory)을 연상시킨다. 놀란 감독이 이런 과학적 이론을 하나하나 대입해가며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크 나이트>는 사실주의적 묘사를 함으로써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현실과 보다 거대하고 밀접한 관련을 맺고, 뜻밖에도 확장된 의미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물론 영화의 사실적 접근을 이유로 배트맨과 미국의 영웅주의를 동일시, 현재 국제 정세에 대한 미국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알레고리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놀란의 시도가 배트맨 시리즈의 정수랄 수 있는 어둠의 정서를 더욱 심화시키려는 데 있었음을 인식한다면 <다크 나이트>는 ‘도식’이라는 단순한 성과를 뛰어넘었고, 그런 점에서 더욱 놀랍게 다가온다. <다크 나이트>는 마땅히 걸작이라고 불러야 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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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 398호
(2008.8.5)

<프레스티지>(The Prestige)


영화와 마술의 공통점은 트릭, 즉 속임수를 기본으로 하는 장르라는 점이다. 영화는 카메라를 통해, 마술은 무대장치를 통해 관객을 황홀경에 빠뜨린다. <메멘토><배트맨 비긴즈>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프레스티지>는 영화이면서 한 편의 마술이자 거대한 속임수다.

앤지어(휴 잭맨)와 보든(크리스천 베일)은 런던의 잘 나가는 마술사. 그런데 둘 사이에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진다. 마술쇼를 벌이던 중 보든의 속임수로 앤지어의 아내 줄리아(파이퍼 페라보)가 목숨을 잃은 것. 이후 앤지어와 보든은 복수에 복수를 거듭하던 중 목숨을 건 마지막 마술 승부를 펼치기에 이른다.

<프레스티지>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마술은 3단계로 이루어져 있음을 밝힌다. 평범한 것을 보여주는 1단계, 이를 비범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2단계, 그리고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마술 ‘프레스티지’는 3단계라는 것. 그래서 영화는 이를 형식으로 구조화한다.  앤지어가 보든의 마술 책을 보는 시점, 보든이 앤지어의 일기장을 보는 시점, 그리고 두 주인공이 마지막 대결을 펼치는 시점으로 나누어 3개의 상황대별로 교차해 구성하는 것이다. 때문에 속임수의 최고 경지를 실현하기 위해 감독은 마지막 순간 영화의 ‘프레스티지’랄 수 있는 반전을 심어놓는다. 

하지만 <프레스티지>의 그것은 <식스 센스>나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오로지 반전을 향해서만 달려가지 않는다. 대신 이야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반전이 생겨난다. 그 내용과 상관없이 반전이 형식상 의미를 갖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보여주는 반전이 허무한 건 사실이다. 그 트릭이 관객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만큼 싱겁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프레스티지>를 실패한 영화로 본다면 이는 참으로 슬픈 일이 될 듯하다.  이미 언급했듯 이 영화에서의 반전은 그 내용보다 ‘왜’ 등장하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프레스티지>는 극 사이사이마다 마술을 이해하는데 있어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을 강조한다. 마술은 그 황홀함의 결과와 달리 속임수의 방법이 의외로 간단할 뿐더러 그것이 밝혀지기라도 하면 신비감이 깨져 매력이 사라진다는 것. 이를 인지한다면, 이 영화에서의 반전의 쓰임새가 훌륭하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마술에서 트릭이 밝혀지는 순간 허무해지는 속성을 <프레스티지>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쉬운 건, 이 영화의 홍보다. ‘침묵서약’ ‘경악할만한 반전’ 등의 문구를 앞세워 <프레스티지>가 오로지 반전으로만 존재 의미를 갖는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한 건 안타까운 일이다. <프레스티지>는 마술이라는 장르를 영화 속에 구조로, 또 형식으로 체화해 보여주는 데 더욱 공을 들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2006. 11. 11. <스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