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의 혜자가 ‘여자’에서 ‘엄마’가 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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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의 오프닝은 무척이나 강렬하다. 반듯한 엄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김혜자가 추레한 몰골로 광활한 갈대밭을 헤매다가 느닷없이 막춤을 춘다. 얼굴을 보면 넋이 나간 표정이 역력하다. 정상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김혜자가 미쳤다! ‘국민엄마’에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봉준호에게 장르는 익숙한 형식의 전형이 아니라 비틀기의 대상이다. <살인의 추억>은 끝내 범인의 정체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미스터리 스릴러의 공식을 배반했고, <괴물>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족이 등장해 할리우드와는 차별되는 한국형 괴수물을 창조했다. 봉준호가 <마더>에서 비트는 장르는 ‘김혜자’다. 김혜자라는 장르는 완벽한 어머니 상을 대표한다. 그녀는 한국의 모성신화다. 하지만 봉준호는 모성애의 극단을 보여주겠다며 국민엄마의 이미지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마더>의 오프닝은 그런 감독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목적은 극중 엄마인 혜자가 미친 이유를 밝히는데 있다. 발단은 아들 도준(원빈)의 여고생 살인 누명 죄다. 엄마에게 도준은 “물방개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애”다. 그녀 입장에서 보건데 아들이 잡혀간 이유는 순전히 좀 모자란 아이이기 때문이다. “항상 만만한 게 우리 도준이지”라고 형사 제문(윤제문)을 원망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공권력에 대한, 더 나아가 사회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있다. 그래서 엄마는 자신이 스스로 도준의 무죄를 추적하기에 이른다.

<마더>는 봉준호의 필모그래프에서 가장 추리소설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엄마가 준(準)수사관이 되어 탐문과 추리, 목격담을 통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건에 접근해가는 방식도 그러하거니와 그 과정에서 봉준호 월드 특유의 엇박자스러운 느낌이 상당 부분 배제돼있다. 심각한 순간에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이 영화에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마더>는 전작과 비교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경우가 잦다. 특히 공포를 자아내는 시점이 (도준이 사건에 연루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엄마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자식 잃은 혹은 자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어미의 공포가 짙게 배어있는 것이다.

봉준호의 전작들을 보면 자식(과 아이들)은 하나같이 온전한 형태가 아니었다. 엄마 뱃속에 있거나(<플란다스의 개>),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당하고(<살인의 추억>), 납치당한 후 주검으로 돌아온다(<괴물>). 급기야 <마더>에서는 살인죄를 뒤집어쓰기까지 한다. 기본적으로 봉준호 영화의 기저에는 부모의 공포가 깔려있었던 셈이다. 그중에서도 <마더>와 <괴물>은 직접적으로 가족을 다루는 까닭에 흥미로운 비교 대상이다.

두 영화는 모두 가족의 사투를 다루지만 <괴물>은 부성을, <마더>는 모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일종의 상대급부로 기능한다. <괴물>이 아버지의 성장을 다룬다면 <마더>는 엄마의 성장을 그린다. 더 정확히는 주인공 혜자가 여자에서 엄마가 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이는 엄마를 여자로 인식하지 않는 저변의 의식에서 출발한다. 엄마를 섹스하지 않는 무성의 존재로 바라보는 한국인 특유의 시선이 담겨있는 것이다.

<마더>에서 노골적으로 제시되는 성적인 코드는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너 여자랑 자봤어?” “어” “누구?” “엄마” 진태(진구)와 도준이 나누는 얄궂은 대화에서부터 한 이불에서 서로의 몸을 밀착하는 모자간의 잠자리, 진태 집에 몰래 숨어들어간 혜자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질펀한 섹스까지. 그중 어두운 약재상 안에서 좁고 기다란 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는 혜자의 시선은 명백히 여성의 성기를 시각화하는데, 동일한 장면이 수미쌍관을 이룬다는 점에서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첫 장면에선 바깥을 보며 작두질하던 혜자가 손을 베어 피를 흘림으로써 생리가 가능한 ‘여자’로 비추는 것에 반해 마지막엔 안전하게 작두질에 성공함으로써 ‘엄마’가 됐음을 알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혜자가 미친 이유를 밝히는 영화의 목적은 곧 엄마는 왜 섹스와 별개의 존재가 되었는지를 따라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이를 작동시키는 변곡점은 아들 도준의 살인사건이다. 사건 전까지 이들 모자관계는 어쩌면 남녀관계일 수도 있을 만큼 모호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누명을 쓴 줄 알았던 도준이 실은 진범이었음이 밝혀지는 순간, 혜자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만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오프닝에 제시됐던 그녀의 넋 나간 얼굴을 다시 한 번 클로즈업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표정에서 하나의 질문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가슴 찢어지는 자식의 진실을 마주한 순간, 당신이 엄마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마더>는 진범 찾기보다 진범을 찾은 후 이에 대응하는 엄마의 행동을 통해 모성의 극단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자식 때문에 엄마가 미칠 수밖에 없는 원인을 밝히는 것이 <마더>의 목적이다. 봉준호 감독의 말을 빌자면, “<남극일기>의 도달불능점처럼 모성의 최극단에 가보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도준이 진범임을 밝히면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간다. 거기에는 제 새끼의 죄악마저 눈감아 줄 수 있는 이기적 모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결국 가족의 행복을 지키기 위함인데 다만 혜자의 모성이 더욱 지독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다른 이를 희생함으로써 획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혜자가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시키는 대상이 자신보다 더 약자라는 데 있다.

봉준호 영화에서 약자는 늘 주인공이었고 약자를 도와주지 않는 사회의 시스템과 사투를 벌였으며 그래서 약자끼리 연대했다. <마더> 역시 약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강자에 대항하기는커녕 약자와 약자끼리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작들과는 확연히 차별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더욱 어두워졌다. 약한 자를 밟고, 약한 자의 지분을 빼앗아야만 가정의 행복을 지킬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괴물이 되지 않고서는 이 험한 세상 (혹은 부자들만의 나라)에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안 그래도, ‘엄마=괴물’이라는 등식은 전작 <괴물>에서 이미 등장했었다. 한강에 방류된 독극물, 즉 한국에 존재하는 온갖 부조리를 씨앗삼아 태어난 괴물은 강두(송강호) 가족에게 부재한 엄마의 상징이었다. 단적인 예로, 강두가 괴물의 입에서 딸 현서를 꺼내는 장면은 출산에 다름 아니었다. 다만 강두는 현서(고아성)를 잃는 대신 세주(이동호)를 얻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보자면 <괴물>은 ‘가족의 탄생’이었던 셈이다. <마더>는 ‘가족의 유지’다. 아버지까지 부재한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 자식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혜자, 아니 오로지 ‘엄마’뿐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살인(murder)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mother)는 괴물의 다른 이름이다.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라면 망각하는 것일 뿐.

한국영화사에 명장면으로 회자될 관광버스 장면은 망각을 방패삼은 모성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뒷자리에 앉은 혜자는 허벅지에 침을 놓음으로써 도준의 살인을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그럼으로써 동시에 혜자는 여자라는 자신의 성도 망각하고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제 엄마는 아들에게 가슴을 내어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들 또한 엄마와 잔다는 얘기를 입 밖에 꺼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아들을 보호하는 것만이 그녀의 임무이자 의무가 됐다. 이는 곧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의 비극이요, 운명이다. 그래서 오프닝에서 혼자 춤추던 혜자는 엔딩에 이르러 관광버스 막춤을 추며 동네 엄마들과 한데 뒤섞인다. 봉준호는 김혜자라는 숭고한 모성신화를 해체하고 새로운 모성신화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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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6.8)

<기담>(奇談)


사용자 삽입 이미지<천변풍경>(1936)의 박태원은 당시의 경성을 묘사하길, ‘전차도 전차려니와, 웬 자동차며 자전거가 그렇게 쉴 새 없이 뒤를 이어서 달리느냐. 이층, 삼층, 사층 웬 집들이 이리 높고’라며 급변하는 현대화에 놀라움을 감추질 못했다.

반면 ‘경성기담’(2006)의 전봉관은 1940년대 경성을 무대로 ‘두 남녀는 부인의 침실에서 밀회를 즐기다가 마리아에게 발견되었다. 다카하시 부인은 영원한 함구책으로 마리아를 살해하기로 결심하고 이것을 이노우에와 상의했다’며 근대 조선을 뒤흔든 살인사건을 묘사했다. 1930~40년대 경성은 그야말로 이성과 비이성이 교차하는 모순의 시대였다. <기담>은 바로 그 시기의 경성을 무대로 아름답지만 섬뜩한 사랑이야기를 보여준다.

원 시나리오 ‘병원기담’을 토대로 한 <기담>은 ‘1942 경성 공포극’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만큼 시대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은 이 영화의 공포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1942년은 일본의 제국주의가 막바지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바다 건너 신문물의 유입이 한창이던 시대였다. 그 중심 경성에서는 낮이 되면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의 향락이, 밤에는 비명이 난무하는 살육이 거리를 지배했다.

정가형제 감독은 이 시대를 살려내는 방식으로 하얀 소복 입은 귀신과 원혼의 귀기 서린 복수 따위를(?) 보여주는 데 러닝타임을 허비하지 않는다. 대신 신구이념이 충돌하는 이중의 시대를 통해 모순된 공포를 자아낸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과 행복을 만끽하는 주인공의 생명력 넘치는 감정 뒤에서 썩은 곰팡이처럼 삶을 좀먹는 죽음의 그림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병원장 딸과의 결혼을 앞두고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정남이지만 어쩐 일인지 아리따운 여고생 시체에 마음을 빼앗겨 정신을 홀리고, 멋쟁이 새 아빠가 생겨 환희에 들뜬 아사코의 기쁨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와 동시에 악몽으로 급전직하하며, 동원과 인영은 예정된 파멸 앞에서 시한부 사랑을 나눌 뿐이다.

사랑도 넘어서지 못한 시대의 이중성. 아름다운 시기에 닥친 슬픔을 공포로 승화하는 <기담>은 묘사의 극적 대비를 통해 말 그대로 색깔 있는 공포를 선사한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붉은 장미잎이나 하얀 눈밭 위에 흩뿌려진 핏방울, 또는 다다미방에서 상징적으로 펼쳐지는 사계절처럼 아름답지만 끔찍한 느낌을 강조한다. 이처럼 직접적인 공포보다 철저히 형식미에 입각한 공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담>은 독특하다. 게다가 표현을 과장하지 않고 절제하다보니 무섭기보다는 안타깝다. 사랑과 죽음이 뒤엉킨 순간에 발생하는 비극에 초점을 맞춘 까닭이다. 물리적인 공포보다 심리적인 공포에 주력하는 <기담>은 무서움을 유발하는 장치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전단계의 장면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켜켜이 쌓아가며 사랑에서 공포로, 외부세계에서 내부세계로 이동하는 것. 정남이 이승과 저승의 심리적 경계에서 혼을 빼앗기는 것도, 아사코가 밤이면 죄의식에 못 이겨 늘 가위에 눌리는 것도, 인영이 과거를 잊지 못해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 것도 모두 이에 따른 것이다.

‘안생병원’이라는 공간은 이런 등장인물들의 혼란한 심리상태를 상징화한다. 하여 공포의 원인이 되는 장소도, 마무리되는 장소도 병원이다. 사건 대부분은 안생병원에서 이뤄지며 제작진이 가장 공을 들인 곳도 안생병원의 세트다. 양수리 종합촬영소의 세트장을 중심으로 그 외의 공간이 들어선 별도 세트장까지 합쳐 무려 1,300평 규모의 병원 세트를 마련했다. 또한 실제 동선을 계산하고 철저한 고증을 거쳐 1942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단, 혼란스러운 시대상과 인물의 이중적 심리를 반영하기 위해 건축양식에 있어서는 서양식과 일본식을 적절히 혼합했다. 정남이 여고생 시체에 남모를 감정을 느끼는 시체안치소 세트의 경우, 숭고한 사랑임을 강조하기 위해 유럽풍의 아치형 구조를 끌어들여 종교적인 느낌을 살렸다. 차가운 느낌의 하얀 타일을 깔아 음산한 분위기도 자아냈다. 하지만 전체적인 병원의 내부 모양새에 있어서는 한정된 공간이 주는 폐쇄감과 원색 위주의 인테리어가 풍기는 자폐적인 분위기를 접목, 인간 심리의 구체화를 꾀했다.

<기담>은 이야기에서부터 공간까지 시대가 품고 있는 이중성을 구현하려 애쓴다. 그래서 영화는 구구절절한 대사보다 단 한 컷의 이미지에, 익숙한 클리셰 대신 기묘한 상징에, 복잡한 플롯보다 강렬한 스타일에 이끌린다. 그 때문에 썩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겨둔 탓도 있지만 98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1979년과 1942년, 1942년 속에(?) 3개의 에피소드 등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등장한 공포영화 중에서나 그간의 공포영화들 속에서 차별화되는 지점에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경성을 트렌드로 한 작품 중 첫 스크린 개봉작이란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기담>은 1942년이라는 모순된 시대를 끌어들여 신구좌우의 이념이 충돌하는 작금의 대립양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공포영화가 단순히 공포를 유발하는 장르만은 아니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을 드디어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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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2.0 346호
(2007. 7. 30)

기이한 이야기로 맺는 인연 – <기담> 김태우, 김보경, 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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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은 극과 극의 감정을 오가는 영화다. 공포영화가 처음이라는 김태우, 김보경, 진구에게는 감정의 극단을 오가는 연기가 쉽지 않았다. 세 배우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해내기 힘들었을 거라고 말한다.


김태우, 김보경, 진구는 <기담>에서 처음 만났다. 하지만 세 개의 에피소드로 나뉜 이야기라 함께 출연하는 분량은 손에 꼽을 정도. 성격도 딴판이다. 진구와 김보경은 감정이 북받치면 어디서든 눈물을 잘 흘리는데, 김태우는 이게 잘 이해가 안 된다. 김태우와 진구는 공포영화를 싫어하지만 김보경은 호러 마니아다. 김보경과 김태우가 장난을 치며 현장 분위기를 돋우는 것에 비해 진구는 조용히 촬영을 기다리는 스타일이다. 셋 사이에 공통점이라 할 만한 게 별로 없는 셈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이런 얘기를 듣는다면 섭섭해 할지 모른다. <기담>은 이들에게 긴밀한 호흡을 느낄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특별한 만남


정식, 정범식 감독의 <기담>은 1942년 경성의 안생병원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을 다룬다. 동원(김태우)과 인영(김보경)은 엘리트 의사이자 부부다. 정남(진구)은 인영 밑에서 병원생활을 익히는 의대 실습생. 마음이 여려 시체를 보는 것만으로 속이 뒤틀리는 그에겐 병원생활이 고역이다. 그런 정남이 여고생 시체에 묘한 감정을 느낀다. 내키지 않는 결혼을 앞두고 마음 둘 곳이 없어서다. 인영도 마음을 못 잡기는 마찬가지. 사랑하는 남편과 남부러울 것 없는 직장, 최고 의사라는 명성까지 부족할 것 없는 그녀지만 1년 전 동경유학 중 발생한 사고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세 사람에게 <기담>은 모두 ‘특별한 영화’다. 각자에게 주는 의미가 각별하기 때문이다. 김태우는 이 영화를 위해 무려 1년을 기다렸다. 출연 결정을 한 게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2006)에 출연하기 전. 감독에 대한 믿음이 컸다. 검증되지 않은 신인 감독이었지만 탄탄한 시나리오는 기다림의 이유로 충분했다. 촬영을 끝낸 지금 “재미는 백 퍼센트 자신한다”고 말하는 그다. 김보경에겐 극중 인영이 복잡한 캐릭터라는 점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이전 역할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복잡한 연기를 펼쳤어요. 그 때문에 고민도 많았지만 그것마저 좋았어요.” <친구>(2001)의 보경 이후 <하얀거탑>(2007)의 강희재로 실로 오랜만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녀. 인영을 연기하면서 배우생활에 자양분이 될 만한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누구보다 <기담>이 특별하게 느껴질 법한 배우는 바로 진구다. 처음으로 맡게 된 주연작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진구가 연기한 정남은 전작 <비열한 거리>(2006)의 종수와 360도 바뀐 무르고 약한 인물. 연기경력 4년차인 배우에게 <기담>은 특별하기 이전에 벅찬 경험이었을 테다.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다. “부담이요? 그런 거 없었어요.” 이 친구 알고 보니 꽤나 강심장의 소유자다. “아니요, 전 겁이 많은 편이에요.” 대신 함께 출연한 김태우 ‘선배’와 김보경 ‘누나’에게 의지하고 의견을 구하면서 부담감과 책임감을 덜 수 있었단다. 첫 주연작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의식하지 못한 이유다. 진구에게 <기담>이 인상 깊은 작품으로 기억된다면 김태우, 김보경과 함께 동료 이상의 호흡을 나눈 까닭이다.


감정의 이중주를 나눈 호흡


인터뷰 내내 세 사람은 촬영현장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강조하는 데 여념이 없다. 하지만 의문이다. 부부로 출연하는 김태우와 김보경은 그렇다 치고 시체와 소통(?)하느라 혼자 연기하는 분량이 많았던 진구는 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있기라도 했을까? 그 부분에선 전적으로 맏형 김태우의 역할이 컸다. 현장에서 김태우의 별명은 ‘김PD’. 촬영이 있건 없건 현장을 찾아 배우부터 스탭까지 세심하게 챙겨주는 어른 노릇을 했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진구는 그런 김태우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먼저 다가와 주셔서 쉽지 않은 연기를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김보경도 그의 덕을 톡톡히 봤다. 사랑하는 부부 사이로 등장하지만 공포영화인 <기담>에서 동원과 인영이 직접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행동이 아닌 감정으로만 보여줘야 하는데 실제로 사랑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었다. 김태우가 편안하게 분위기를 이끌어 김보경은 마음을 열 수 있었고 그런 솔직함이 원활한 소통을 만들었다.

이런 모습은 예전의 김태우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그 역시 내성적이었던 김태우가 배우생활 처음에 세웠던 목표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다. 상대 배우와의 소통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던 시절 얘기다. 지금은 목표가 달라졌다. “감독과 배우, 스탭과의 관계를 좋게 만드는 배우가 진정 좋은 배우죠.” 현장 분위기를 중요시하게 된 것도 생각이 바뀌면서다. 그래서일까? 후배들에 대한 칭찬만 늘어놓는 그에게 김보경, 진구에 대한 불만을 얘기해달라고 질문을 던졌다. “보경이의 감성은 때가 묻지 않았어요. 문제는 그게 너무 심해요. 연기에 빠지는 날엔 깊이 빠졌다가 안 되는 날에는 너무 힘들어하죠. 자신을 컨트롤했으면 좋겠어요. 진구는 나이가 어려 경험이 별로 없는데도 감성의 폭이 넓어요. 다만 거기에 빠져 감정을 너무 소비하지 않았으면 해요.” 단점 지적이라기보다 조언이다.

선배의 자상함을 보고 있자니 김보경과 진구는 안도감 대신 걱정부터 앞선다. 자신들도 김태우처럼 의젓한 선배 노릇을 할 수 있을까, 에서다. 당장에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기담>의 경험은 앞으로 연기생활을 해나가는 데 있어 큰 자산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차가운 공포영화에 출연했지만 오히려 포근함을 느꼈어요”라는 진구의 말처럼 <기담>은 상대 배우와의 호흡은 물론 현장에서의 호흡까지 두 가지를 동시에 경험한 특별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기담>은 전쟁과 신문물의 유입이 교차했던 1942년을 배경으로 신구좌우 이념이 대립하는 현재를 절묘하게 관통하며 이중적 매력을 발휘한다. 그 가운데서 사랑과 증오, 기쁨과 슬픔, 공포와 연민 등 감정의 이중주를 연주하는 김태우, 김보경, 진구의 연기는 <기담>의 이중성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볼거리. 이를 가능케 한 5할은 현장에서 쌓은 세 배우 사이의 신뢰요, 나머지 5할은 이를 바탕으로 한 연기를 통한 소통이었다. 사진 윤석무(세븐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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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2.0 345호
(2007.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