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즈는 홈즈일 뿐 오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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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셜록 홈즈>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극명히 엇갈리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기자시사회를 통해 최초 공개했을 때부터 예상된 바였다. <셜록 홈즈>가 추리소설의 대표적인 탐정 캐릭터를 액션 영웅으로 탈바꿈시킨 영화로 알려지면서 기자들 사이에서 이미 호불호 논쟁이 뜨거웠던 것이다. ‘홈즈는 성룡이 아니다 vs 홈즈는 원래 복싱에 능하다’, ‘왓슨이 언제 그렇게 홈즈와 맞먹었나 vs 홈즈와 왓슨은 주종관계가 아니다’ 라는 식의 구도로 진행된 논란은 결과적으로 영화의 흥행에 일정 부분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아바타>와 <전우치>의 압도적인 2강 체제 속에서도 <셜록 홈즈>는 3주 연속 3위를 굳건히 하며 꾸준한 흥행 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홈즈의 변신(?)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을 못 느끼는 쪽이다. (오히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스내치>에서 보였던 가이 리치 감독 특유의 개성이 상당 부분 제거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가이 리치는 영화 시작과 함께 주먹질에 능한 홈즈를 클로즈업하며 변화를 선전포고하고 홈즈와 왓슨의 관계를 거의 동성애자 커플에 가깝게 묘사해 논란을 부추긴다. 셜록 홈즈의 첫 번째 소설 <주홍색 연구>(1887)가 등장한 지 100년도 훌쩍 지난 마당에 현대적인 기준에 맞춰 캐릭터에 변화를 꾀한 것이 불가피했다는 투다. 사실 이 같은 태도는 가이 리치가 처음은 아니다. 이는 셜록 홈즈의 세계에서 그리 낯선 광경이 아닌 것이다.

홈즈 소설은 안작(贋作)으로도 불리고, 모작(模作)이라고도 표기되는 소위 패러디가 가장 발달한 시리즈다. 저자인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한 4편의 장편과 53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면 홈즈를 사랑하는 작가와 전 세계 산적한 팬들이 완성한 ‘그들 각자의 셜록 홈즈 소설’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최초의 셜록 홈즈 안작소설로 평가받는 <페그람의 수수께끼>는 코난 도일이 살아생전이던 1892년에 발표됐다. 그 이후 지금까지 매년 수십 종의 신간 안작소설이 나오고 있는 실정인데 셜록 홈즈의 안작소설 역사 역시 100년이 넘은 셈이다. 이 같은 배경의 결정적인 계기는 코난 도일이 1893년에 발표한 <최후의 사건>이다. 이 단편은 셜록 홈즈가 ‘범죄의 왕’으로 불리는 모리아티 교수를 스위스 마이링겐의 라야헨바흐 폭포로 유인해 함께 떨어져죽은 에피소드로 유명하다.

그 당시 코난 도일은 홈즈에게로 향하는 팬들의 관심이 자신을 월등히 넘어서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진다. 원래 ‘챌린저 교수 시리즈’로 명명된 모험소설에 더 관심이 많았던 코난 도일은 준비과정의 일환으로 홈즈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집필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자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결국 홈즈의 죽음이라는 초강수를 두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홈즈를 되살려내라는 독자의 항의가 빗발쳤고 코난 도일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후에 코난 도일은 다시 홈즈 소설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급기야 팬들은 안작소설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시작했다.

이처럼 안작소설의 역사가 깊고 너르다보니 개중에는 유명 작가의 작품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코난 도일 자신부터가 홈즈와 왓슨이 등장하는 두 편의 안작소설을 썼고 마크 트웨인과 오 헨리, 존 딕슨 카 등과 같은 당대의 작가들은 물론 코난 도일의 아들인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도 패러디를 통해 홈즈 소설에 대한 욕구를 채웠다. 또한 <Y의 비극>으로 유명한 앨러리 퀸은 서른 두 편의 안작소설을 모아 <셜록 홈즈 앤솔로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초기의 홈즈 안작소설이 코난 도일이 창조한 이야기와 극중 분위기를 최대한 거스르지 않는 것에 반해 최근의 작품들은 기존 이미지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변주를 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포소설에 가까운 작품이 있는가 하면(<셜록 홈즈의 유언장> 봅 가르시아) 홈즈가 93세라는 노령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며(<셜록 홈즈 마지막 날들> 미치 컬린) 심지어 홈즈와 왓슨이 게이 커플로 등장하는 팬픽도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 역시 최근의 경향을 따르는 일종의 안작영화로써 기능한다고 보면 된다. 다만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홈즈의 안작소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까닭에 액션에 능한 그를 두고 유난히 영화에 대한 논란이 크게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가 국내에 들어온 건 이미 백년도 훨씬 전이지만 홈즈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지는 채 10년이 넘지 않는다. 지금은 안작소설까지 소개되는 단계지만 채 10종이 되지 않는 까닭에 홈즈는 여전히 추리하는 탐정의 이미지로 견고한 것이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독자는 셜록 홈즈 소설의 완전한 판본을 접하지 못했다. 주로 아동용으로 소비됐고 그나마도 일본어 판본을 번역한, 다시 말해 원작을 중역한 작품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런 홈즈 소설 시장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것은 2002년 1월 출판사 황금가지를 통해 소개된 ‘셜록 홈즈 전집’이었다. <주홍색 연구>를 시작으로 <셜록 홈즈의 사건집>까지 9권이 소개되는 동안 홈즈 소설은 일시적인 붐을 넘어 미스터리 소설이 국내 출판 시장에 단단하게 발을 붙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출간 1년도 되지 않아 80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할 정도였는데 이는 전혀 예상 밖의 결과였다.

셜록 홈즈 소설을 기획한 당시 황금가지 편집부의 팀장이었던 최준영 씨(현 번역가)는 “기본적인 독자층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베스트셀러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다만 그는 “당시에 형성되던 마니아 문화의 증가가 셜록 홈즈 시리즈의 인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한다. 그래서 “특별히 한국인들이 셜록 홈즈에 열광한다기보다는 한국에도 셜록키언(sherlockian 홈즈 소설의 열혈 팬들)이 증가했다고 보는 게 맞는 표현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는 많은 이들이 홈즈 소설을 청소년용으로 생각하는 상황에서 셜록 홈즈 전집이 원본에 최대한 충실했기 때문에 나온 효과로 보인다. 최준영 씨는 셜록 홈즈 전집을 기획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던 사안에 대해 “무엇보다 원작의 분위기와 내용을 전달하는데 충실하자는 게 제1의 원칙이었다.”며 “완역을 중요시했고 캐릭터나 문체 등의 일관성을 위해 한 사람의 번역자와 작업했으며 가능한 많은 외국의 판본들을 구하여 참조했다.”고 밝혔다. 셜록 홈즈 탄생 한참 뒤에야 이뤄진 제대로 된 번역이었지만 폭발적인 반응은 한편으론 홈즈 소설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열망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이기도 하다.

국내는 물론이고 셜록 홈즈에 대한 인기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셜록 홈즈처럼 백년이 넘게 사랑 받아온 캐릭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셜록 홈즈는 추리소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탐정 캐릭터의 원형을 제시한 인물이다. 안 그래도 최준영 씨는 “인류가 창조한 허구의 인물들 중에서 셜록 홈즈처럼 강력한 이미지를 지닌 주인공은 많지 않다.”고 말한다. 또한 셜록 홈즈가 오랜 세월 사랑 받는 이유 중 하나의 증거로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는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구체적으로 안작소설을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홈즈 안작소설은 과거 홈즈 팬들의 사랑이 창조적으로 집약된 결과물이면서 또한 미래의 인기를 담보하는 보증서이기도 하다. 이 같은 배경을 이해한다면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가 전혀 허무맹랑한 홈즈 관련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례로, 가이 리치는 홈즈의 액션도 사실은 추리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노골적으로 암시한다. 홈즈가 극중 권투경기를 치르면서 주먹을 날리기 전 상대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어디를 가격할지 머릿속으로 미리 계산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홈즈의 활약상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캐릭터의 본질적인 성격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홈즈는 홈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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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10.1.11)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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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의 셜록 홈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캐릭터를 두고 말들이 많다. 추리소설의 대표적인 캐릭터이자 추리형 탐정인 그를 액션영웅으로 탈바꿈시켰다는 것이 논란의 요지다. 어느 평자는 ‘이런 농담 같은 영화가 다 있냐’며, 어느 소설가는 ‘홈즈는 성룡이 아니다’라며 셜록 홈즈의 변신(?)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주먹질에 능한 홈즈의 모습을 부각시키는데 주저함이 없다. 왓슨(주드 로)과 짝을 이뤄 젊은 여자를 비밀 종교의식의 제물로 바치는 연쇄살인마 블랙 우드(마크 스트롱)를 말 그대로 때려눕히는 것. 블랙 우드는 곧바로 사형이 집행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무덤에서 되살아나며(?) 홈즈와 왓슨은 괴이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여기에 홈즈가 평생에 걸쳐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 아이린(레이첼 맥아담스)이 가담하면서 일은 점점 더 꼬여만 간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스내치> 등으로 유명한 가이 리치 감독은 코난 도일이 쓴 소설 속 그대로의 셜록 홈즈를 재현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시대가 한참 변한 만큼, 또한 영화가 블록버스터를 지향하는 만큼 셜록 홈즈 역시 현대적인 캐릭터에 걸맞은 위용을 뽐낸다. 액션영웅의 면모는 밝힌바 그대로고 홈즈와 왓슨의 관계 역시 우리가 알던 주인공과 조력자 간의 전통적인 관계를 넘어서 게이 커플이 아닐까 의심을 살만큼 동등한 관계로 급진전을 이뤘다. (왓슨이 홈즈에게 주먹을 날리기까지 한다!)

이는 셜록 홈즈 세계에서 그리 낯선 광경은 아니다. 셜록 홈즈는 소위 패러디라 불리는 안작(贋作)소설이 가장 발달한 시리즈다. 홈즈를 사랑하는 작가들이, 팬들이 그들 각자의 셜록 홈즈 소설을 완성한 것. 역사가 아주 깊어서 최초의 셜록 홈즈 안작소설은 이미 코난 도일이 살아생전이던 1892년에 발표된 <페그람의 수수께끼>이다. 그 후 코난 도일이 1893년에 발표한 <최후의 사건>에서 홈즈가 목숨을 잃자 (이때 함께 라이헨바흐 폭포에 뛰어들었던 모리아티 교수는 영화 <셜록 홈즈> 2편의 악당으로 예정된 상태다!) 그 충격에게 헤어나기 위해 팬들이 직접 안작소설을 ‘마구잡이’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 인기가 지금까지 이어져 셜록 홈즈 소설의 하위 장르가 된 것이다.

<Y의 비극>의 앨러리 퀸은 서른 두 편의 안작소설을 모아 <셜록 홈즈 앤솔로지>를 편집했고 최근 들어 국내 출판계에도 미치 컬린의 <셜록 홈즈의 마지막 날들>, 칼렙 카의 <셜록 홈즈 이탈리아인 비서관> 등 홈즈 안작소설이 활발하게 번역, 출간되는 실정이다. 이들 작품의 특징은 셜록 홈즈 캐릭터의 기본 설정은 갖추되 기존 이미지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변주를 꾀한다는 것이다. 공포소설에 가까운 작품이 있는가 하면(<셜록 홈즈의 유언장>) 홈즈가 93세라는 노령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며(<셜록 홈즈 마지막 날들>) 심지어 홈즈와 왓슨이 게이 커플로 등장하는 팬픽도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 역시 전혀 말이 안 되는 영화가 아니다. <셜록 홈즈>는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 안작인 셈이다. 오히려 가이 리치가 이야기의 변주는 꾀하였을지언정 홈즈 캐릭터의 기본 설정에는 굉장히 충실한 편이다. 4편의 장편과 53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대부분 영화 속에 포함되어 있을뿐더러 (개인적으로 베이커가 특공대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주먹질에 능한 모습만 하더라도 실제로 홈즈는 수준급의 복싱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코난 도일의 작품 속에 묘사되고 있다. 더군다나 가이 리치는 홈즈의 액션도 사실은 추리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노골적으로 암시한다. 홈즈가 극중 권투경기를 치르면서 주먹을 날리기 전 상대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어디를 가격할지 머릿속으로 미리 계산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 다만 셜록 홈즈라고 하면 추리 능력이 더 부각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달리 액션 영웅적 면모가 더 강조되는 까닭에 일부 홈즈 팬들의 불만을 불러온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느끼는 <셜록 홈즈>의 불만은 굳이 가이 리치여야 했나는 점이다. 이왕 홈즈 소설의 변주를 꾀할 생각이었으면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나 <스내치> 버전으로 갔어도 좋을 듯 했다. 물론 극중 홈즈의 복싱 장면처럼 의도적인 시간 비틀기를 통한 가이 리치만의 장기를 드러내는 부분이 있지만 일부에 그칠 뿐이다. 특유의 베베 꼬인 스토리에 발맞춘 MTV적인 현란한 편집이 더욱 강조됐다면 더 완벽한 가이 리치만의 셜록 홈즈 안작영화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홈즈는 홈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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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0)

달콤한 장악의 경지 – 주드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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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드 로는 왕가위 감독과 함께한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서 한없이 순수한 남자 제레미로 분했다. 인상 하나 찌푸리지 않고 1년 가까이 사랑하는 여자를 기다리는 주드 로의 모습에서 강함을 넘은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거친 갑옷을 걸친 달콤한 기사. 잔뜩 날이 선 새파란 눈동자에는 날카로운 검을 숨기고 있지만, 한순간 이완되는 눈웃음으로 사람을 빨아들이는 흡입력을 지닌 주드 로에게 어울리는 수사다. 시야에 들어온 적군은 절대 놓치는 법이 없는 소련의 저격수였다가(<에너미 앳 더 게이트>) 이 여자, 저 여자 가리지 않는 뉴욕의 바람둥이를 연기할 수 있었던 것도(<나를 책임져, 알피>), 약속한 의뢰는 지옥 끝까지 쫓아가 끝을 보고 마는 잔인한 살인청부업자에서(<로드 투 퍼디션>) 첫눈에 반한 사랑에 운명을 거는 순수한 소설가 지망생으로 환골탈태가 가능했던 것도(<클로저>), 그런 이중적인 인상 덕이 크다.

다면체 인간성의 극단을 횡단하며 필모그래프를 채워온 주드 로는 양가적인 감정을 효과적으로 살리기 위해 눈빛과 표정은 물론 인공적인 분장()과 의도적인 탈모(<로드 투 퍼디션>까지,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연기 수단을 총동원한 배우다. 그런 주드 로가 왕가위 감독의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 참여한다는 소식은 기대만큼이나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사랑보다 이별에, 과정보다 순간에, 사건보다 감정과 관계에, 여자보다 남자 캐릭터에 집중한 왕가위는 언제나 남자 주인공의 눈 속에 무거운 눈물을 봉인해왔다. 하여 표정보다 눈빛을, 흔들림보다 떨림을, 변신보다 변화를, 과장보다 절제를 선호해온 왕가위의 페르소나 양조위와 비교해 주드 로가 상극으로 보였던 것이 사실. 아무래도 왕가위가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의 주인공으로 그를 낙점한 건 모험으로 보였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서 주드 로는 뉴욕 소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제레미로 등장한다. 적당히 바쁘고 영업시간 틈틈이 담배 한 대 피워 물 여유도 즐길 줄 아는 그 앞에 연인과의 이별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리지(노라 존스)가 서성댄다. 감정을 추스를 말벗이 필요했던 그녀를 위해 스스럼없이 친구가 돼주고 블루베리 파이 한 접시를 대접하는 그의 친절에서 사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리지를 향한 자신의 감정이 사랑임을 깨닫지만, 그녀가 여행을 하겠다며 곁을 훌쩍 떠난 지는 53일째. 매일같이 그녀의 엽서를 기다리지만 조급해하지 않는 그는 그리움을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순간이 만족스럽다. 300여 일이 지나고 카페로 찾아온 리지. 제레미는 예전과 다름없이 얘기를 들어주고 파이도 만들어주지만, 블루베리보다 달콤한 키스도 잊지 않는다.

제레미는 왕가위 영화라면 모름지기 기대할 법한 인물의 전형성을 배반한다. <해피 투게더>의 아휘처럼 사랑에 지쳐 상처받지도, <화양연화>의 차우처럼 사랑 앞에 머뭇거리지도, <2046>의 차우처럼 옛사랑에 얽매이지도 않는 제레미는 비극성이 배제된 순수의 캐릭터다. 희극과 비극 사이에서 모호한 태도를 취했던 왕가위 영화로는 드물게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 사랑을 긍정하는 기운이 짙게 서려 있는 건 제레미의 공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국에서 작업한 홍콩영화가 아니라 ‘그냥’ 미국영화를 만들려 했다”는 왕가위가 제레미 역에 처음부터 주드 로를 염두에 둔 건 그의 표정에서 미국식 여유가 묻어났기 때문이다. “주드 로의 표정엔 삶에 발목 잡힌 어두움이 없다. 가장 미국적인 캐릭터로 손색이 없다”고 이유를 단 왕가위는 주드 로가 가진 여유로움을 최대한 보여주기 위해 한 장면을 여러 개로 쪼개 갖다 붙이는 편집을 택했다.

“특정 순간의 감정을 포착하기 위해 그렇게 집중적으로 촬영해본 적이 없었다. 왕가위 감독의 연출은 내게 매우 특별했다.” 제레미와 리지의 키스 장면을 위해 주드 로와 노라 존스가 3일 동안 100번도 넘게 입을 맞춘 건 널리 알려진 일화. 배우 입장에선 무한 반복되는 연기에 진이 빠질 만도 한데, “리지의 입에 묻은 크림을 1갤런이나 먹어치웠다. 배우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노라 존스와 그렇게 키스를 할 수 있었을까. 하하.” 실없는 농담을 날리는 걸 보니 꽤 유익한 경험이었던 모양이다. “촬영 가능한 각도에서 모든 앵글로 키스 장면을 찍었다. 즉석에서 무언가 계속 결정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라 재미있었다”는 주드 로는 “다만 매번 바뀌는 요구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왕가위 감독이 요구한 건 역할에 대한 완전한 신뢰였다. 그의 카리스마와 에너지가 안정감을 부여할 것이라 여겼던 감독은 “주드 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침착했다”며 캐릭터를 대하는 그의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노력과 열린 자세 덕분이었을까.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왕가위의 연출보다 주드 로의 연기로 기억될 공산이 크다. 영국 영화비평지 ‘사이트앤사운드’는 “결핍된 연출 속에서 주드 로의 연기는 오래된 불꽃처럼 강렬하다”고 이런 심증에 힘을 실어줬다. 거친 인상이나 찌푸린 표정과 카리스마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는 기준에 비춰, 주드 로는 부드러움으로 장악할 수 있는 카리스마의 어떤 경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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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2.0 377호
(2008. 3. 11)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My Blueberry Nights)


사용자 삽입 이미지<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왕가위 감독이 영미권 배우와 함께 미국에서 작업한 첫 번째 영화다. 원래 니콜 키드먼과 함께 <상하이에서 온 여인 The Lady from Shanghai>(오손 웰스가 1947년 연출한 동명영화와는 관련이 없다!)을 작업하려 했지만 준비기간이 길어지면서 니콜 키드먼이 하차, 재즈뮤지션 노라 존스와 함께 새 프로젝트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를 찍게 됐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2001년 칸영화제에서 상영된 왕가위의 단편 <화양연화 2001>을 원전으로 한 작품. 장편 <화양연화>(2000) 이후 차우와 수 리첸이 홍콩의 식료품 가게에서 우연히 만나는 이야기로, 양조위와 장만옥이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췄다. 왕가위 감독은 이 영화를 노라 존스에게 보여주면서 아이디어를 공유한 후, 배경을 미국으로 옮겨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를 완성했다. 식료품 가게 주인 양조위가 주드 로, 손님으로 출연한 장만옥이 노라 존스의 캐릭터가 된 것이다.

허나 2007년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최초 공개된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 대한 평가는 혹평에 가까웠다. “<중경삼림>(1994) <타락천사>(1995) <화양연화>를 패러디한 미국 감독의 영화처럼 보인다”는 노골적인 악평까지 나왔을 정도. 이후 왕가위 감독은 “극중 제레미의 내레이션 의도가 뻔히 들여다보인다”는 이유로 내레이션 대본을 다시 구성했고, 111분의 이야기를 94분으로 줄여 현재의 버전으로 완성했다.

왕가위의 신작에 대한 가장 큰 궁금증은 홍콩 시절 작품과 비교해 어떤 점에서 닮았고, 또 어떻게 다르냐는 점일 것이다. 연인과의 이별에 대한 사연을 사건이 아닌 캐릭터의 감정으로 진행하고 내레이션으로 주인공의 감정을 드러내며 이를 감각적인 영상으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영락없는 ‘왕가위표’다. 반면 시간의 흐름이 아닌 지역의 이동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에서는 새롭다. 특히 남녀 주인공이 이뤄질 듯 말 듯 안타까운 감정을 자아냈던 전작들의 결말과 달리 해피엔딩을 취한다는 점은 눈에 띄는 변화다. “타국의 감독이 미국에서 만든 영화들은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 이 영화가 미국영화처럼 보이길 바랐다”는 의도가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철저히 미국인 캐릭터를 창조하길 원했던 왕가위는 홍콩과 달리 미국이 거대한 땅덩이를 가졌다는 점에서 여행하는 영화의 설정을 착안했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남자친구와 이별한 리지가 뉴욕을 떠나 멤피스와 네바다를 여행한 후 뉴욕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통해 감정을 치유하는 과정을 담는다. 영화가 4장으로 구성된 건 이 때문. 리지의 감정적인 궤도를 따라가는 이 영화에서 지역의 특성은 고스란히 그녀의 감정을 대변한다. 예컨대, 짐 자무시가 <미스테리 트레인>(1989)에서 보여줬듯 황량한 멤피스의 풍광은 연인과의 이별로 인해 허해진 리지의 심정에 다름 아니다. 네바다 사막의 마지막 여정에서도 긴 방황 후 마음의 평안을 얻는 그녀의 극적인 감정 변화가 사막을 헤매다 오아시스를 찾는 과정과 닮았다.

리지의 여정은 촬영 전 자료조사를 위해 왕가위 감독이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 프로덕션 디자이너 장숙평과 함께 미국 전역을 돌며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반영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연을 접했던 촬영진은 이를 변용해 각각의 에피소드에 활용했다.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는 멤피스의 어니와 수 린 커플, 죽음을 매개로 아버지와 화해하는 네바다의 레슬리 사연은 리지의 감정적 흐름을 또 다른 방식으로 대변토록 했다. 왕가위가 “이 영화는 로드무비가 아니다. 단지 ‘거리’(distance)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한 건 그래서다. 표면상 미국 횡단 여행처럼 보이지만, 아픔을 치유한 리지가 뉴욕에 남아 그녀를 기다리는 제레미와 결국 하나가 된다는 점에서 감정적 거리에 관한 영화라는 것.

형식의 새로움과 달리 왕가위 특유의 현란한 영상은 좋게 말하면 홍콩 시절 그대로고, 나쁘게 말하면 게으를 정도로 답습하는 인상이 강하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가 왕가위 영화치고 평범해 보이는 것은 이야기 형식에 적합한 영상언어를 보여주지 못한 까닭이다. 이미지의 관점에서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는 <중경삼림> <타락천사> <화양연화>의 그림자가 짙게 서려 있다. 기다림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극단적인 클로즈업, 군중 속의 고독을 포착하는 스텝 프린팅, 안타까운 심정을 손짓 혹은 발짓만으로 전달하는 대담한 표현방식까지,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왕가위 이미지의 종합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이 영화에는 캐릭터의 감정을 영상으로 치환한 이미지가 부재하다. 가령 복작거리는 홍콩은 특성상 스텝 프린팅이 적합한 것에 반해, 한적한 뉴욕의 카페 안에서 구현되는 스텝 프린팅은 맥락 없이 사용된다. 그저 인물의 감정과 따로 놀며 눈을 현혹하는 이미지에 불과할 뿐이다. 리지, 제레미, 어니, 수 린, 레슬리 등 등장인물들은 미국의 캐릭터일지 모르지만, 홍콩 시절의 필터를 통과한 이들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불균형적이고 이질감이 느껴진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왕가위가 미국적 캐릭터를 창조하는 데 성공했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적인 영화로 만드는 데는 실패한 작품이다.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조차 모르겠지만.


Tip! 보이지 않는 손, 로렌스 블록

사용자 삽입 이미지<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를 찍기로 결심한 왕가위는 대본을 써줄 전문작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소설가 로렌스 블록의 팬이었던 왕가위는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1938년 미국 버펄로에서 태어난 블록은 미국 추리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국내에는 <800만 가지 죽는 방법> <무덤으로 향하다>로 유명하다. 대실 해밋, 레이먼드 챈들러, 미키 스필레인 등 하드보일드 소설의 창조적인 계승자로 평가받는 그는 지금까지 40여 편의 소설을 발표했고, 그중 5편이 영화와 TV시리즈로 제작됐다.

왕가위는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로렌스 블록의 소설을 여러 권 가지고 다녔고, 틈날 때마다 읽으면서 영감을 얻어 이야기를 구상하기도 했다. 특히 1973년 <성스러운 술집이 문을 닫을 때>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블록의 소설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된 매튜 스커더의 매력에 푹 빠졌다. 매튜 스커더는 작가 자신의 다양한 모습을 투영한 사립탐정이자 알코올 중독자인 복합적 캐릭터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 등장하는 경찰관 어니는 바로 이 캐릭터를 모델로 했다.

사실 왕가위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가 4장으로 이뤄졌다는 점에 착안, 장마다 다른 작가에게 대본을 요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블록의 빠른 작업방식과 무엇보다 자신이 요구하는 바를 즉각적으로 이해하는 태도가 맘에 들었다고. 결국 로렌스 블록은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의 모든 이야기를 왕가위와 함께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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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 377호
(2008.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