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The Ameri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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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코르빈의 <아메리칸>은 코난 도일의 전기소설 작가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마틴 부스의 <미스터 버터플라이 A very private gentleman>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조지 클루니가 처음 도전하는 액션물이라고 해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요. 사실 조지 클루니는 1997년에 <배트맨과 로빈>에 출연해 배트맨 역할을 맡아 액션 연기를 펼친 전례가 있으니까요,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오히려 <아메리칸>은 액션영화로 분류되지만 단순히 때리고 부수고 주먹을 휘두르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오히려 흥미롭습니다.

조지 클루니는 이 영화에서 잭 혹은 에드워드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그의 정체는 굉장히 모호합니다. 다만 무기를 직접 제작해 돈을 버는 것을 보니 무기제조업자이면서 종종 청부살인도 하는 걸 보니 암살자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스웨덴의 한적한 별장에서 여자 친구와 함께 휴식을 취하는 잭/에드워드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곧이어 또 다른 암살자의 습격을 받고 곧바로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로 도피하는 잭/에드워드는 새로운 임무를 맡아 무기를 제조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 습격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하룻밤 사랑으로 위안을 얻으며 위태로운 생활을 영위해갑니다.

사실 이탈리아 배경의 영화는 로마나 베네치아, 피렌체 등과 같은 유명한 관광지를 끌어들이기 마련인데요. <아메리칸>은 우리에게 생소한 카스텔 델 몬테가 주요한 장소로 등장합니다. 이는 잭/에드워드가 숨어사는 신세인 까닭에 설정한 배경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안톤 코르빈 감독은 주인공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부러 이탈리아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촬영지를 찾았다고 하네요. 하지만 왜 굳이 이탈리아여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나요? 이탈리아보다 덜 알려진 몬테네그로나 슬로바키아 같은 곳에서 숨어 지내는 것이 잭/에드워드에게는 더 유리하지 않았을까 하는데요.

무엇보다 이 영화는 제목이 심상치 않습니다. <아메리칸>, 즉 미국인의 어떤 심리 상태를 은유한다고 보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미국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테러에 대한 공포는 극성스러운 면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9.11 이후 언제 테러를 당할지도 모르는 공포가 미국인들의 심리를 지배한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아메리칸>의 잭/에드워드도 그래요. 미국이 무기 제조와 드러나지 않는 각종 잔혹한 음모를 통해 잇속을 챙기다가 결국 그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된 것과 같은 이치인데요. 극중 조지 클루니는 그 불안한 심리를 대변하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아메리칸>은 자기 정체성에 혼란을 갖고 있는 무기제조업자 겸 암살자가 새 출발하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아주 오래 전에 있었어요. 1953년에 로베르토 로셀리니라는 이탈리아 감독이 미국인 배우 조지 샌더스와 잉그리드 버그먼을 기용해 <이탈리아 여행>이라는 작품을 찍은 적이 있거든요. ‘현대영화의 출발점’이라고 평가받을 만큼 영화사적으로도 중요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관계가 어긋난 부부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새 출발을 모색합니다. 그런 여정이 <아메리칸>과 굉장히 닮아있어요. 안톤 코르빈은 <이탈리아 여행>을 염두에 두고 <아메리칸>의 배경을 이탈리아로 잡았다고 해요. 게다가 극중 조지 클루니 상대역으로 등장하는 이탈리아 배우 비올란테 플라치도라의 외모는 정말이지 잉그리드 버그먼을 쏙 빼닮았답니다. (너무 자주 벗는다는 건 다르지만요. 보기에는 정말 좋답니다.)

조지 클루니도 그래요.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얼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가장 고전적인 이미지를 품고 있는 배우이기도 해요. 코언 형제가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2000)에 조지 클루니를 캐스팅한 것도 클라크 케이블을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죠. 클라크 케이블의 코믹한 형상을 조지 클루니에게서 찾았다고 해요. 그런 점에서 <아메리칸>은 고전영화를 연상시키는 올드패션한 느낌이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영화 기술적인 면에서도 ‘본 시리즈’ 이후 액션영화 촬영의 클리셰로 자리 잡은 핸드 헬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암살자를 다루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고정된 숏이 많을 정도니까요. 어찌 보면 요즘 관객들이 쉽게 적응하기 힘든 영화이지만 그만큼 색다른 액션물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지금 현재 미국인의 심리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시사 하는 바가 많은 영화이기도 하고요. 안타깝게도 개봉과 함께 벌써 교차상영에 들어갔다고 하는데요. 좀 더 많은 관객들이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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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Entertainment Report
EBS RADIO(2010.12.30)

<오션스 13>(Ocean’s Thirteen)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등 스타파워에만 기댄 채 유럽 곳곳의 유려한 풍광을 보여주기에 급급했던 <오션스 트웰브>는, 한마디로 실망스러웠다. <오션스 일레븐>의 성공은 화려한 기술로 무장한 우리의 주인공들이 카지노 금고를 터는 과정과 그 속에서 소비되는 스타들의 쿨한 이미지가 균형을 이뤘기 때문이다. 이를 상기한다면 <오션스 트웰브>의 실패는 더욱 명백해진다.

<오션스 13>은 <오션스 트웰브>가 실패한 지점에서 다시 출발한다. 화려한 출연진은 유지한 채 1탄의 무대였던 라스베가스로 돌아와 2탄에서 소홀하게 다뤘던 오션스 일당의 범행 과정에 많은 공을 들이는 것. 포커 판의 세계를 사실적이면서 흥미롭게 묘사했던 <라운더스>(1998)의 콤비 작가 브라이언 코플만과 데이비드 레비엔을 영입한 건 그런 <오션스 13>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결정적인 대목이다. 다시 말해, <오션스 13>은 <오션스 일레븐>이 다뤘던 세계로 유턴한다. 심각함이나 긴장감 따윈 찾아볼 수 없는 깃털처럼 가볍지만 공작새처럼 화려한 세계로. 즉, 하룻밤 사이 일확천금을 얻을 수도, 쫄딱 망해 깡통을 찰 수도 있는 라스베가스의 즉흥성이야말로 <오션스> 시리즈의 존재 이유이자 관객에게 강력하게 어필했던 요소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1989), <트래픽>(2000)으로 명성을 얻은 스티븐 소더버그는 이런 <오션스 13>를 쉬어가는 작업으로 만들진 않았다. “전편보다 힘 있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는 조지 클루니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는 “<트래픽>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한다. 세 번째 시리즈인 만큼 오션스 일당에게 ‘무려’ 3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그뿐인가, 열세 번째 멤버로 놀랍게도 알 파치노를 영입하는 등 규모에 걸맞은 영화를 위해 무척이나 공을 들였다. 특히 “영화 속에서 13명 캐릭터 모두를 구현하는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는 스티븐 소더버그는 하나의 원칙을 세웠다. 비슷한 장면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 대신 장면의 구성을 짧게 해 13명 캐릭터 각각의 개성을 일일이 살려냈고 장면 전환을 빠르게 가져가 리듬감을 강조함으로써 범행과정의 치밀함과 복잡함을 꾀했다.

감독인 스티븐 소더버그는 “<오션스 13>은 코미디”라고 규정한다. 일례로, ‘오션스’ 시리즈는 ‘복수’로부터 출발한다. <오션스 일레븐>에서 대니가 자신의 범행계획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던 건 카지노 거물 테리에게 전 부인 테스(줄리아 로버츠)를 빼앗긴 반발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오션스 13>은 또 어떤가. 카지노 대부 윌리 뱅크의 카지노를 파산시키려는 건 그에게 사기를 당한 오션스 멤버 루벤의 굴욕을 되갚아주기 위함이다. 하지만 <오션스 13>은 복수 그 자체나 복수에 대한 정당성을 설득하는 데만 관심을 집중하진 않는다. 사소한 복수의 이유는 거대한 핑계일 뿐, 이미 성공이 예정된 불가능한 임무를 어떻게 능수능란한 기술로, 얼마나 화려하게 묘사하는지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새어나가는 헐거운 서스펜스는 스타들의 넉살 좋은 연기와 톡톡 쏘는 대사로 채워진다. 알 파치노가 일종의 악역에 캐스팅된 사실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오션스 일당에게 멋지게 한 방 먹는다고는 하지만 그는 패배감에 고개 숙이거나 좀체 흥분하지 않는다. 다만 태연할 뿐. 이런 태도야말로 <오션스> 시리즈가 배우의 쿨한 이미지를 활용해 결국엔 관객에게 선사하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오션스 13>은 13인조로 구성된 보이 그룹의 댄스곡에 맞춰 현란하게 편집된 최신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보는 순간 만족감은 극에 달하지만 끝난 이후엔 어쩐지 무엇 하나 기억에 남지 않는 영화. 그러나 이는 <오션스 13>의 단점이 아니다. 서로 마음 맞는 스타와 연출진끼리 부담 없이 놀아보자고, 이왕 노는 김에 관객과 함께 즐겨보자는 취지를 그대로 살려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특성상 시리즈의 시효가 길지 않다는 점. 다행히도 <오션스 13>은 초심으로 돌아가 <오션스 트웰브>에서 드러났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성공도 <오션스 일레븐> 때의 신선함엔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스티븐 소더버그는 2006년 에든버러국제영화제에 참석해서 <오션스 13>이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것임을 밝혔다.







필름2.0 339호
(2007. 6. 19)

<시리아나>(Syriana)


<굿나잇 앤 굿럭>에서 감독을 맡아 진정한 언론’s Way에 대해 조용히 훈화말씀을 남기셨던 조지 클루니가 요즘 자국 돌아가는 꼬라지에 영 심기가 불편한가보다. 이번엔 <시리아나>라는 영화를 통해 조폭 저리가라 뺨치는 미국의 석유 이권 시스템을 고자질하고자 분연히 일어섰다.

그렇다고 당 영화에서 또 감독을 맡았다는 얘기는 아니고, 이번엔 제작과 배우의 자리로 이동했다. 대신 연출은 스티븐 소더버그의 <트래픽>에서 미국 내 마약의 총체적 난맥상을 한 큐에 멋드러지게 풀어냈던 시나리오 작가 스티븐 개건이 맡았다.

그래서일까, <시리아나> 역시 <트래픽>에서처럼 쥔공이 떼거지로 등장 이들의 스토리가 따로국밥마냥 제각각 놀다가 결국 주제는 하나로 크로스 합체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두 개의 스토리와 한두 명의 주인공 가지고는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침투하고 있는 미국의 석유 시스템을 온전히 보여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고로, CIA 요원 밥(조지 클루니 분), 변호사 베넷(제프리 라이트 분), 중동의 왕위 계승자 나시르(알렉산더 시디그 분)와 스위스 에너지 회사 직원 브라이언(맷 데이먼 분), 그리고 자살 테러리스트 와심 아흐메드(마자 무니르 분)가 각 파트별 마빡을 맡아,

석유 구매로 중동에 지불한 돈을 불법 무기로 되팔아 다시금 회수하는 과정(밥), 석유 이권을 둘러싼 미국 기업의 국제적 음모(베넷), 미국의 음모의 맞서 중동을 개혁하려 하나 되레 미국에 의해 뒤통수 맞는 모습(나시르와 브라이언), 미국 기업의 합병으로 실직자가 된 뒤 해당 기업의 유조선을 향해 자살 테러를 감행하는 순간(아흐메드)을 교차로 보여줌으로써 추접스런 미국의 석유 정치학을 스크린을 통해 생선가시 발리 듯 만천하에 드러낸다.

특기할 만한 건, 그런 전개 속에서 석유와는 코딱지만큼도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쥔공들의 가족이 항시 낑궈들어 이들을 힘들게 한다는 점이다. 그만큼 석유 패권주의라는 것이 미국이라는 윗대가리들 그 바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이들과 짝짝꿍 붙어먹은 중동 산유국 패밀리는 물론이요, 그 밑에서 먹고 싸느라 조빠지게 힘든 이들 나라의 구성원 하나하나에까지 똥꼬 깊쑤키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일 테다.

북경에서 나비가 날갯짓하면 뉴욕에 폭풍이 몰아친다 했나? 당 영화는 미국이 석유를 꿀꺽하면 전 세계가 꼴까닥거린다고 석유효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 ‘시리아나’가 뜻하는 건 미국이 맘만 먹으면 중동의 국경을 좌지보지할 수 있다는 은어라나 모라나. 이 씹쑝들.

그렇기 땜시롱 감독은 당 영화에서 자신의 의견을 적극 개입하기보다는 미국이 석유를 꿀꺽하는 일련의 불법적인 흐름을 그저 담담히 보여주기만 할 뿐이다. 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세상을 향한 고자질이 되니까. 그리고 반미(反美)를 외치는 목소리가 되니까.

여튼 미국 이 쉐이들 어디다 엿바꿔 처먹었는지 야구도 그렇고, 페어플레이 정신이라는 걸 도대체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마냥 역겨워하고 미워할 수만도 없는 것이 조지 클루니나 스티븐 개건처럼 <시리아나>와 같은 영화를 통해 탈골한 정의를 제자리에 갖다 붙이려는 이들도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란 단순히 판타지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잠시마나 시름을 잊게 해주는 기능만 있는 게 아니다. 또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당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요즘같이 시절이 하수상한 때에 더 절실하다는 것을.

그런 전차로 <시리아나>를 얄짤없이 베스트에 봉한다.


(2006. 3. 31. <딴지일보>)

<굿나잇 앤 굿럭>(Good Night, and Good Luck)


‘See It Now’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1951년부터 7년간 방영된 미국 CBS의 전설적 시사프로로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고자질하는 것을 그 임무로 삼았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진행자 에드워드 머로와 빨갱이 사냥꾼 조셉 매카시와의 맞짱. 지금 소개하는 당 영화는 바로 이 사건을 다루고 있다. 제목으로 사용된 ‘Good Night, and Good Luck’은 진행자 머로의 마지막 멘트.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매카시즘이 하늘을 찌르던 1950년대 초반, 머로(데이빗 스트라던 분)와 프로듀서 프레드 프렌들리(조지 클루니 분) 이하 스텝들은 빨갱이로 몰려 무고하게 피해를 입은 이들을 변호코자 ‘See It Now’를 통해 매카시를 정면에서 비판한다. 이때부터 시작되는 머로와 매카시 간의 침 튀기고 박 터지며 손에 땀을 쥐는 설전.

감독은 다 아시다시피 조지 클루니. 전작 <컨페션>에서 감독으로 혜성같이 등장, 냉전시대 미국의 TV쇼를 통해 ‘세상은 씨바, 쇼다!’라고 일갈하며 미국에 똥침을 놓은 경력의 소유자. 당 영화에서도 역시 1950년대 기념비적 사건을 재현하며 부시의 장단에 맞춰 놀아나는 언론 나부랭이들을 향해 언론의 참다운 역할이 무엇인지를 흐르는 강물처럼 조용히 설파한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그것이 언론만의 잘못인가 이를 묵인하는 사회도 매카시와 같은 똘아이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했다고 얘기한다.

무엇보다 당 영화는 흑백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매카시의 무식한 이분법적 논리를 강조하겠다는 의도도 있지만 그보다는 당시 매카시가 등장한 흑백 화면을 이용, 머로와의 말싸움 장면에 교차로 배치하여 사실성을 높이겠다는 의도.

그래서 영화는 매카시의 화면과 함께 주로 CBS 스튜디오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사건이 단순히 혀로 이뤄진 것에 착안, 영화의 무대 역시 말이 오고가는 장소로만 간결하게 구성한 까닭이다. 조지 클루니, 잘 빠진 외모답게 영화도 참 잘 빠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영화가 심심하게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허벌 살 떨리고 촌각을 다투는 사건을 얘기하고 있으면서도 이에 따른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영화는 미국 내에서 매카시즘의 공포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인 탓인지 이를 암묵적인 전제로 깔고 이야기를 진행을 한다. 무슨 소린고 하니, 매카시가 빨갱이 사냥을 하는 일련의 과정은 보여주되 그것이 몰고 온 피해와 공포에 대해서는 전혀 묘사를 하고 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처음부터 머로=좋은 분, 매카시=나쁜 새끼이기 때문에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갈등,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긴박감 이런 게 전혀 조성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심각함이 느껴진다면 그건 오로지 영화 속 CBS 스튜디오에서 옥신각신거리는 스텝들일 뿐 스크린을 넘어서 관객의 가슴에까지 전해지지 않으니 이 아니 안타까울쏘냐. 원래 TV 생방송 영화로 기획이 된 거라 그렇게 완성이 됐다면 말을 달라지겠지만 그건 그거고.

하여 결론을 때려보자면, <굿나잇 앤 굿럭>은 잘 만들어진 영화다. 하지만 잘 만들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재미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본 특위는 당 영화를 뮝기적에 봉하며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Good Night, and Good Luck!


(2006. 3. 13. <딴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