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잇&데이>(Knight&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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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정(이하 ‘최’)
다음 달 15일에 개막하죠? 제1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홍보대사 피판 레이디로 배우 황정음씨가 선정됐습니다. 홍보대사 같은 자격이 주어지면 사명감을 띄고 더 열심히 하게 되잖아요. 해서, 이분께도 하나 만들어드릴까 합니다. 레이디는 아니니까 무비 가이더 정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벌써 네 번째 시간인데요. 오늘은 정말 재밌는 영화 한편 소개시켜주신다고요.
허남웅(이하 ‘허’) 예, 재미 하나만큼은 제가 보장하는 영화입니다. 

정말입니까?
정말입니다. 아니면 제가 앞으로 이 프로의 메인 DJ를 맡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영화이겠군요. 대체 어떤 영환가요?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가 주연을 맡은 <나잇&데이>(6/24 개봉)입니다. 톰 크루즈 이름이 나오니까 좋아서 어쩔 줄 모르시는군요. 

지난 해 <작전명 발키리>로 한국에 내한했던 톰 크루즈를 직접 인터뷰한 적이 있거든요.
전 카메론 디아즈 쪽이라 톰 크루즈는 관심 없고요. 톰 크루즈 팬들께는 죄송합니다. 농담이고요. 아무튼, 여자 관객이라면, 좀 늙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꽃미모’와 올록볼록한 ‘몸빨’을 과시하고 계신 톰 크루즈의 출연만으로, 남자 관객이라면, 주름살이 좀 늘긴 했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외모와 ‘쭉쭉 빵빵’한 몸매로 뭇 남성들을 침 흘리게 만드시는 카메론 디아즈의 출연만으로도 <나잇&데이>는 올 여름 최고 기대작이라 할 만합니다.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는 <바닐라 스카이>에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지요.
예, <바닐라 스카이>가 2001년 작품이니까, <나잇&데이>는 거의 10년 만에 만나는 작품인데요.

<바닐라 스카이>에서는 극중 카메론 디아즈가 바람둥이 남자친구 톰 크루즈를 차에 태우고 자살을 시도했던 장면이 생각나는데요. 이번 영화에서는 어떤가요?
<바닐라 스카이>에서는 비극적인 커플이었지만 <나잇&데이>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굉장히 유쾌한 커플로 등장합니다. 카메론 디아즈는 여동생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보스턴 공항에 왔다가 우연히 톰 크루즈와 만나 비행기에서 동석하게 되는데요. 말이 굉장히 잘 통하는 커플이에요. 톰 크루즈가 자신의 꿈이 “여행지의 고급 호텔에서 낯선 여자와 키스하기”라고 말하자, 카메론 디아즈는 그 말에 홀딱 반해버립니다. 그래서 잠시 화장실에 가서 화장도 고치고 옷도 매만지고 그렇게 나와 보니 글쎄 비행기 안이 쑥대밭이 된 거 아니겠습니까. 톰 크루즈가 자신이 누명을 쓴 최정예 비밀요원이라고 하는데 그때부터 카메론 디아즈는 영문도 모른 채 톰 크루즈와 함께 FBI에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그럼 굉장히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 많이 나오겠네요?
박진감이 넘치면서 한편으로는 굉장히 아기자기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 영화는 카메론 디아즈와 톰 크루즈의 로맨틱코미디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들의 사랑이 맺어지는 과정이 액션으로 채워진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예고편을 보니까, 톰 크루즈가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고 카메론 디아즈가 오토바이에서 총을 쏘고 굉장히 살벌해 보이던데요?
사실 <나잇&데이>에서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갑니다. 근데 별로 사실적이지가 않은 게 그 마저도 코믹하게 묘사되는 경우가 더 많거든요. 오히려 우리의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가 각각 남자로써, 여자로써 얼마나 멋진 매력을 뽐내느냐가 이 영화에서는 더 중요합니다. 원래 우리가 이 영화에서 원하는 게 바로 이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이 영화 제목의 ‘나잇’은 밤(night)이 아니라 ‘기사’(knight)입니다. 톰 크루즈는 마치 백마 탄 왕자 같이 어느 날 ‘뿅’하고 멋지게 나타나 매력을 뽐내고요. 카메론 디아즈는 아무 것도 모르는 초반에는 백치미를 풍기다가 톰 크루즈의 정체를 알아 갈수록 적극적인 여성상으로 변모합니다.

결국 로맨틱 코미디가 스파이액션을 만났을 때군요?
오~ 정말 예리하십니다. 두 배우는 굉장히 많은 흥행 대표작을 냈잖아요. 그중에서도 <나잇&데이>는 톰 크루즈의 대표작인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와 카메론 디아즈의 대표작인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을 섞어 만든 영화처럼 보여요. 의도적으로 설정한 장면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의 임무는 아까 제가 줄거리 설명하면서 말씀드렸던 이 영화의 결정적 대사 “여행지의 고급 호텔에서 낯선 이와 키스하기”를 수행하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커플들이 보기에 안성맞춤인 영화군요?
꼭 그렇지도 않아요. 저 같은 솔로가 봐도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만 커플끼리 보면 더 재미있겠죠. 사실 <나잇&데이>를 보면 정말 멋진 여행지가 많이 등장합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인상적인 알프스를 비롯해서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그리고 아랍문화와 스페인문화가 묘하게 섞인 스페인의 세비야 등등. 정말 극중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 커플은 데이트하기 좋은 여행지만 골라 다니더라고요.

<나잇&데이>를 보신 후에 이 영화에 나왔던 장소를 중심으로 올 여름 휴가 때 여행을 떠나는 것도 괜찮겠군요.
저도 이 영화를 본 후 당장에 하던 일 때려치우고 여행을 가야지 했다가 앞으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열심히 하기 위해서 당분간은 해외여행 계획을 미뤄뒀습니다.

좋은 소식 잘 들었고요. 그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세상을 여는 아침 최현정입니다사용자 삽입 이미지
FM4U (6:00~7:00)

<3:10 투 유마>(3:10 to Yuma)


사용자 삽입 이미지서부극은 케빈 코스트너의 <늑대와 춤을>(1990),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1992) 이후 간간히 명맥을 유지해오던 장르였다. 최근 이 전통적인 미국식 장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앤드류 도미닉의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과 같은 정통 서부극은 물론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러드> 등 변종 서부극까지 붐을 이루고 있는 것. 1957년 개봉한 델머 데이비스 감독의 동명작을 리메이크한 제임스 맨골드의 <3:10 투 유마>는 이 서부극 러시의 선두에 선 작품이다.

1953년 ‘다임 웨스턴 매거진 Dime Western Magazine’에 발표된 엘모어 레너드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3:10 투 유마>는 정해진 시간 안에 범인을 무사히 호송한다는 점에서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하이 눈>(1952)을 연상케 한다(엘모어 레너드는 TV용 영화 <하이 눈 파트 투: 윌 케인의 귀환 High Noon, Part Ⅱ: The Return of Will Kane>(1980)의 각색을 맡기도 했다!). <하이 눈>에서 보안관 케인(게리 쿠퍼)은 자신에게 앙심을 품은 악당을 실은 죄수 호송 열차가 12시 정오에 역을 무사히 통과하도록 해야 한다. 이 같은 시간 게임의 상황을 서스펜스와 연결하며 <하이 눈>은 선과 악의 선명한 대립을 통한 극적 재미를 주었다. 반면 <3:10 투 유마>는 제한된 시간이 주는 긴장감은 크지 않은 대신, 선악 구별이 혼재한 요지경 세상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사건보다 영화 내내 충돌하는 두 캐릭터 벤 웨이드와 댄 에반스의 묘사에 더욱 신경을 쓴 건 이 때문이다. <3:10 투 유마>는 서부극이면서 동시에 캐릭터영화다. 남자들의 세계를 다룬 서부극 속 인물은 섬세한 내면보다 선 굵은 외면 묘사에 신경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외양 못지않게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 데도 많은 공을 들인다. 예컨대, 22건의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며 200여 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낸 벤은 표면상 악인이지만 일차원적 인물로 그려지지 않는다. 틈만 나면 수첩에 그림을 그리고, “그 눈을 깊이 바라다보면 세상의 색깔이 바뀔 정도예요” 따위의 시적 대사를 읊조리는 그에게서는 악당에 어울리지 않는 신비로움이 묻어난다. 이는 댄도 마찬가지. 목장주에게 억압당하며 힘들게 가족을 부양하는 한낱 목동에 불과한 그도 알고 보면 남북 전쟁에 참전한 군인 출신으로 의족까지 하게 된 피치 못할 사연을 숨기고 있다. 즉 사건보다 캐릭터가 충돌하며 이야기와 분위기를 형성하는 영화인 것이다.

<3:10 투 유마>에는 통념적인 선악 구도를 뒤집는 전복의 재미가 있다. 벤 웨이드를 절대적인 악인으로 묘사하지 않은 것을 넘어 댄의 아들 윌리엄(로건 레먼)의 눈을 빌려 그에게 호감을 보낸다. 오히려 벤이 동정적으로 그려지는 것에 반해 그와 대척점에 서 있는 보안관과 목장주가 비열하거나 더한 악한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벤 역시 돈을 노린 보안관의 인정머리 없는 처사에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한 것으로 등장할 정도. 악인을 영웅시하고 공권력을 공공의 적으로 묘사하는 영화의 태도에는 전통적인 장르의 가치 기준을 위반하는 재미가 있다.

<3:10 투 유마>는 한 발 나아가 이들이 악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마저 제시한다. 댄이 벤의 호송을 맡은 건 그가 정의에 불타는 도덕군자기 때문이 아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당장에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는 일이라고는 벤의 호송에 참여하는 것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정의를 위해 나라 일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 돈을 위해 정의를 도모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 초기 서부극이었다면 마땅히 정의의 용사로 그려졌어야 하는 캐릭터지만, 세월이 변한 만큼 서부극이 품고 있는 함의 역시 변했음을 벤의 캐릭터는 증명해 보인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걸까. 해답은 대장의 탈출에 목숨을 건 부하들을 바라보며 댄에게 던지는 벤의 대사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내가 악당이 아니었다면 부하들이 나를 도와주지 않았을 거야.” 부정과 부패가 판을 치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부려먹는 약육강식의 세계, 악당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결국 먹힐 수밖에 없고, 죽을 수밖에 없는 세상의 이치를 보여주는 것이 영화가 진정 노리는 지점이다. 영화의 결말은 이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아군과 적군의 구분 없이 자신이 획득하고자 하는 바를 위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상황을 보여준다.

더욱 의미심장한 대목은 이런 불합리한 현실이 다음 세대에도 거듭할 만큼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이라는 사실이다. 댄의 14살 아들 윌리엄의 존재가 중요하게 부각되고, 특히 마지막 대결이 그의 시점으로 비춰지는 건 이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미국의 신화를 옹호하는 장르였던 서부극은 선악의 경계가 역전된 수정주의 서부극을 거쳐 이제 현재의 비극이 대물림되는 ‘신수정주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3:10 투 유마>는, 그 결정적인 증거다.


Tip!  디트로이트의 디킨스, 엘모어 레너드


사용자 삽입 이미지1925년 10월 11일 뉴올리언스 출신인 엘모어 레너드는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설가 중 한 명이자 할리우드 작가다. 1953년 소설가로 데뷔, 총 44편의 장편과 2편의 단편을 발표했고, 그중 21편의 작품이 영화화됐으며(TV 포함), <The Big Bounce>(1969) ‘Three-Ten to Yuma'(1953)는 두 차례씩 영화화되기도 했다.

<Rum Punch>(1992)를 원작으로 한 <재키 브라운>의 쿠엔틴 타란티노, <Out of Sight>(1996)를 원작으로 한 <조지 클루니의 표적>의 스티븐 소더버그 등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엘모어 레너드는 현재 82세에도 불구, 지난해 <Up in Honey’s Room>(2007)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1930년대 신문 헤드라인을 연일 장식했던 ‘보니 앤 클라이드’ 사건과 당시 메이저리그를 주름잡던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야구단의 경기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그는 지독할 정도의 현실성과 생생한 대화로 할리우드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디트로이트의 찰스 디킨스’라는 별명을 가진 엘모어 레너드의 작품은 도시에 사는 인물들을 주로 다루는 까닭에 하드보일드 혹은 누아르 이미지로 전환하기 쉽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종종 ‘뻣뻣한 레이몬드 챈들러 소설’이라는 혹평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Freaky Deaky>(1988)가 배우이자 감독인 찰스 매튜에 의해 영화화가 진행 중에 있는 등 그의 명성은 여전히 확고하다. 국내 출간된 엘모어 레너드의 작품으로는 <마지막 모험> <악어의 심판> <보안관과 도박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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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 375호
(2008.2.19)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정신병원은 이 공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기능으로 인해 현대산업사회의 병폐를 가장 날카롭게 반영할 수 있는 최고의 상징적인 공간이자 도구가 된다. 정신병원은 곧 사회의 축소판. 그래서 환자들은 매번 간호원의 눈을 피해 병원을 탈출하는 꿈을 꾸고, 이를 실행에 옮기려 한다.

이는 현실을 옥죄는 제도에서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의 처지와 딱 들어맞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의 통제에 의해 규격화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은 폐쇄된 공간에 갇혀 정신 이상자로 취급 받는 그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 점을 직시하고 있던 예술매체 작가들은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하여 사회제도의 모순에 일침을 가하는 비판적인 작품들을 다수 발표해왔다. 그럼으로써 현실을 은유하였으며, 때로는 국가와 마찰을 빚기도 하였다. 영화도 예외는 아니어서 밀로스 포먼(Milos Forman) 감독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75)는 정신병원을 소재로 한 영화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세상에는 언제나 부당한 국가의 체제에 맞서 대중을 인도하는 선동가가 있기 마련. 하지만 선동가란 무지한 대중에게 구원자일지는 모르지만 국가의 입장에서는 눈엣 가시 같은 존재다. 현실(국가체제)을 지탱하는 질서를 깨뜨리고 혼란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선동가의 최후는 그래서 비극적이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선동가 역을 맡은 인물은 잭 니콜슨이 연기한 맥 머피다.


스스로 정신이상자인척을 하며 병원에 들어온 머피는 자신에게 배당된 약조차 그대로 받아먹지 않을 정도로 투쟁심이 강한 인물로, 곧 병원내의 경계 대상 1호가 된다. 환자들을 규합하여 감시와 반(反) 강제적 규율로 평화를 유지하던 병동의 질서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 비친 환자들은 노예나 다름없다. 맥은 렛취드(루이스 플레처)를 위시한 간호원들의 명령에 자신의 의지를 전혀 내 세우지 못하는 환자들의 자유의지를 찾아주기 위해 체재에 도전한다.


같은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제임스 맨골드(James Mangold) 감독의 <처음 만나는 자유 Girl, Interrupted>(99)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는 사뭇 다르다. 이 영화가 등장하였을 때 대부분의 평자들은 공간적 배경과 그 공간을 장악하는 카리스마 형 인물의 등장으로 <처음 만나는 자유>를 밀로스 포먼의 영화와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의 잣대를 들이밀기도 하였다. 하지만 두 영화는 확연히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사회를 비판하는 기능을 주되게 호소하며 체제와 개인과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면 <처음 만나는 자유>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그리고 있는 개인 사(史)에 관한 영화다. 물론 주인공인 작가가 정신병원에 들어오게 된 과정에서 1968년의 도덕적 혼란을 보여주는 시대적 상황이 언뜻 비치기도 하지만 <처음 만나는 자유>는 자신의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수잔나 케이슨(Susanna Kaysen)이라는 여류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처음 만나는 자유>는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수잔나 역을 맡은 위노나 라이더(Winona Ryder)의 내래이션으로 극을 진행한다. 그래서 연출은 최대한 수잔나의 세계에 깊숙이 개입하려 하지 않는다. 음악을 깔더라도 잔잔하게, 되도록 자제하는 것이 그 좋은 예 중 하나다. 게다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환자들은 정신이상자라기보다는 고민이 심한 아이들로 보는 편이 더 적절할 듯 하다. 그 세대의 아이들에게 18세라는 나이는 정신적으로 제일 심하게 방황할 때가 아닌가.


반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부분은 메이저리그 월드 시리즈 TV 관람을 위해 투표를 하는 장면이다. 체제와 자유 의지간의 충돌에서 오는 결과물을 잘 보여주는 것. 가까스로 과반수를 넘겨 TV 시청이 가능해졌지만 렛취드 간호사는 이를 무시, 월드시리즈 시청을 금한다. 그대로 놔두었다가는 억압과 금지로 지금까지 이루어 온 병동내의 질서가 파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작 선동가 머피와 그를 지지하는 환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꺼진 TV를 보며 머피의 상상 속 멘트에 따라 환호할 뿐이다. 승리? 이들의 행위는 승리와 거리가 멀다. 그저 허공에 손 흔들기나 다름없다.


결국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처음 만나는 자유> 이 두 영화의 큰 차이는 결말부에서도 잘 드러난다. 머피와 그의 친구들이 맞이하게 되는 운명은 폭력에 의해 와해 되는 것이다. 머피는 뇌 이식술을 받고 식물인간이 되어 죽음을 맞게 된다. 선장을 잃은 환자들은 렛취드를 위시한 체제에 다시 순응하며 자유의지를 반납할 뿐. 이에 반해 <처음 만나는 자유>의 수잔나는 친구(환자)들과의 우정, 담당 간호사 발레리(우피 골드버그)의 자혜로 정신적 성숙을 얻게 된다.


정신병원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이 계열의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력은 필수다. 미친 척을 한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연기 중에서도 정신 이상자 역할은 배우에게 고도의 연기력을 요한다. 두 영화에서 다수의 연기상이 배출된 사실은 이를 잘 증명한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경우, 스크린을 지배하는 두 남녀의 불꽃 튀는 연기대결로 그 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남우주연과 여우주연을 동시에 차지하였다. 또한 <처음 만나는 자유>는 주연배우를 능가하는 인상적인 연기로 안젤리나 졸리가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수상하였다. 눈에 보이는 성과물은 없지만 두 영화의 환자 역으로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났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남녀 주연상 외에도 작품, 감독, 각본상 등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39)에 이어 두 번째로 ‘빅 파이브’를 수상하는 쾌거를 올릴 만큼 굉장한 수작이다. 현실의 반영론적 관점에서 이 영화가 높이 평가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감독인 밀로스 포먼의 감정을 서서히 고조시켜 머피에 동화시키는 연출력은 정말로 뛰어났다. 그러나 <처음 만나는 자유>의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정상적이지 못한 이들의 무거움이 감당하기 힘들었나보다. 수잔나의 이야기뿐 아니라 안젤리나 졸리가 맡은 또 한 명의 주인공인 리사의 문제까지 끌어안으려는 무리수로 결말부가 늘어지는 단점을 보여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였다.


(2002. 1. 25. <무비클래식>)

<아이덴티티>(Identity)


일단 당해 영화 <아이덴티티>의 줄거리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비가 억수로 내려 도로도 끊기고 전화도 끊겨 고립된 여관. 이곳에 뭔가 사연을 품고 있는 일군의 손님덜이 모여든다. 전직 짜바리 출신 에드(존 큐삭 분)와 죄수 호송 중인 현직 짜발 로즈(레이 리오타 분), 그리고 지면관계상 생략할 수밖에 없는 기타 등등 잉간덜. 그런데 그 날 밤 하나하나 죽어나가기 시작하니…

그래서 관객은 사람이 계속 디져나가고 사연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살인범을 나름대로 꿍쳐둘테고, 이와는 반대로 범인의 정체가 탄로 나지 않도록 끝까정 관객을 속여먹는 것이 당 영화가 맡은 바 임무다.

마치 한정된 공간의 살인사건이라는 전형적인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처럼 진행되는 당 영화는… 맞다. <아이덴티티>는 그녀의 작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적극 끌어들여 새롭게 변형한 영화다. 니거 섬은 고립된 여관으로, 인디언 인형은 여관 열쇠로, ‘열 꼬마 검둥이’ 시(poet)는 ‘내가 계단에 올라갔을 때 그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시로.

그런데 당 영화는 단순히 애거서의 소설만 써먹는 게 아니라 여기에 히치콕의 걸작 <사이코>의 배경과 결정적인 또 한가지를 혼합하여 이야기를 오리무중하게 끌고 갈 뿐 아니라 끝까정 범인의 정체를 아리까리하게 만듦으로써 똥꼬박진스런 서스펜스스릴러의 전형을 보여줌이다.
이렇게 <아이덴티티>는 뭔가 새로운 꺼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재료덜을 충분히 재활용하여 더욱 창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야기를 풀어 가는 방식에 있어서도 스릴러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객을 헷갈리게 하는 조명과 앵글, 음악 그리고 편집 등의 장치를 모범답안 베낀 것 마냥 알맞게 써서 머리싸움을 벌인다.

그렇다고 해서 그 속임수가 시원치 않냐 하면 그것도 아님이다. 특히 당 영화는 시공을 초월하며 관객을 속이는 까닭에 편집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게 여간 잘된 게 아니다. 얼마냐 잘 됐냐 하면.. 아주 잘됐다.  

이리하야 당 영화는 이야기 끄트머리에 니덜을 놀래킬 결정적인 한방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식스센스>나 <유줠 서스펙트>처럼 한방을 통해 한번에 교통정리 해주는 그런 카인드성 반전이 아니다. 대신 <아이덴티티>는 살인자가 밝혀지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많은 단서를 요기조기 구석구석 흩뿌려놓는 까닭에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그 살인자에 대해 더 추리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주면서 막을 내리고 있다.

그니까 당 영화가 노리는 건 살인자의 정체를 끝까정 숨기는 거지 상황자체를 뒤집어 버리는데 집중하는 영화가 아니다. 해서 당 영화가 반전이라고 내세우는 부분의 충격은 그리 큰 편이 아니다. 당 영화를 보러 가는데 있어 독자 제위덜께서는 반전의 강도를 확인하는데 뽀인트를 맞추지 말라는 얘기다.

게다가 당 영화의 이야기는 앞썰했듯 애거서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거의 그대로 옮겨온 까닭에 이 작품을 이미 읽은 독자라면 살인과정을 모두 예상할 수가 있어 영화의 중반은 약간 지루할 수도 있겠다.

그런 전차로 본 특위는 당 영화를 베스트 주녀에 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