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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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의 장르탐험가를 연재하면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장르문학 월간지 <판타스틱>이었다. 지난해 6월 여름 호를 낸 이후 발행이 중단돼 독자들의 궁금증을 샀던 <판타스틱>이 시공사에 인수, 계간에서 월간으로 전환하며 올 1월에 복간했다. 나를 비롯해 많은 장르문학 독자들이 <판타스틱>의 복간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발행이 중단된 동안 <판타스틱>에 대한 소식을 듣기 위해 장르문학 출판사 관계자에게 ‘혹시 아는 얘기 없느냐‘며 옆구리(?) 찔러보고 해당 블로그(http://blog.fantastique.co.kr/)를 들락날락 거린 노력을 생각하면 감개가 무량할 정도다. 하지만 그것이 직접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감격에 비할쏘냐.

정성원 편집장은 2010년 1월호 데스크칼럼을 통해 복간의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존망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험난했던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자니 감회가 깊어서일까요, 아니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거창하고 웅장하지는 않을지라도 날이 갈수록 즐거움이 더해갈 월간 <판타스틱>의 앞날을 생각하자니 가슴이 벅차오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재발간사를 쓴 지 1년이 채 안되어 또다시 재발간사를 쓰는 희귀한 기록의 소유자가 되는 기쁨(?) 때문일까요. 조금은 비장하고 조금은 긴장되고 조금은 행복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마치 연필로 연애편지를 처음 쓰던 때처럼 말이에요.”

정성원 편집장의 마지막 말을 나의 경우로 살짝 변형하자면, 2007년 5월 <판타스틱> 창간호 표지를 펼쳐볼 때의 기분은 마치 첫 번째 연애편지를 받고 봉투를 막 뜯는 설렘과 다르지 않았다. 당시는 (딴지일보의 편집장으로 유명했던) 최내현 발행인(현 번역가) 체제이던 시절인데 개인적인 친분으로 <판타스틱> 창간 소식을 누구보다 일찍 접할 수 있었더랬다. 그는 <판타스틱> 이전에도 <드라마틱>이라는 드라마 전문지를 발행하는 등 국내에선 일찍이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잡지 문화를 선도하는데 관심이 많았다. 비록 <드라마틱>은 채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지만 흥미위주로 소비되는 드라마를 비평적 대상으로 다룸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런 전례처럼 <판타스틱> 역시 기대한 것 이상의 질적, 양적 콘텐츠로 또 하나의 잡지 보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국내 어느 매체에서도 시도한 적 없던 미야베 미유키의 인터뷰를 성사시켰고 (모 영화주간지에 근무하던 나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미야베 미유키의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복거일, 듀나 등 국내의 대표적인 장르작가부터 폴 윌슨(<다이디타운>), 루이스 캐럴 등 유명 해외 작가들까지 모두 아우른 작품을 소개했다. 무엇보다 ‘DO IMAGINE․BE FANTASTIQUE’를 표어로 내건 <판타스틱> 창간호의 특집 기획은 ‘영화인 17명의 ’꿈의 프로젝트‘’와 ‘한국사 최고의 상상 25’이었다. 이는 판타스틱의 지향점을 잘 보여주는 기획이었다.

당시 발행인의 글에서 최내현은 “장르를 다룬다는 것만이 잡지의 정체성은 아닐 것”이라며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상상력을 주제로 한 잡지”라고 <판타스틱>의 성격을 규정했다. 상상력은 모든 예술의 원천이면서 특히 영화는 (소설과 더불어) 가장 대중적인 상상의 산물이랄 수 있는데 그래서일까, <판타스틱> 창간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건 다름 아닌 한국영화계였다. 당시는 한국영화의 장르를 향한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던 시기로 <판타스틱>은 많은 국내 영화인들에게 일종의 이야기의 보물 상자 같은 의미로 다가갔다. 취재차 영화사를 찾아가면 대표와 감독의 책상에는 여지없이 그 달의 <판타스틱>이 놓여있었고 국내에 불어 닥친 장르 붐의 원인에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판타스틱>의 창간을 언급했을 정도였다.

다만 <판타스틱> 창간호가 전량 판매를 기록하고 그 이후에도 기대를 웃도는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지만 광고 매출이 판매량과 보조를 맞춘 것은 아니었다. 결국 <판타스틱>은 2년도 채우지 못하고 2008년 10월 1차 휴간에 들어갔다. (이후 2009년 계간지로 전환했지만 봄과 여름 호를 내고 2차 휴간에 들어갔다.) 이는 장르문화가 국내에서는 여전히 특정 계층, 즉 마니아의 전유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씁쓸한 사실이기도 했다. 예컨대, 영화 쪽에서 그렇게 높은 관심을 보였지만 <판타스틱>에 실린 소설과 만화 중 영화 판권 계약을 맺은 작품은 단 한 편도 없었다. 몇몇 영화사 관계자는 이에 대해 “<판타스틱>에 실린 작품을 재밌게 읽었지만 영화로 만들기엔 대중적이지 못했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그들의 게으름(비대중적인 소재도 대중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의 중요한 의무 중 하나다!)을 면피하기 위한 편견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창간 이후 2번의 휴간과 2번의 복간에 이르기까지 <판타스틱>이 겪은 흥망성쇠는 그대로 장르문학 시장이 처한 현주소이기도 했다. <판타스틱> 창간 당시의 국내 장르문학계는 일본 미스터리물의 폭발적인 인기를 등에 업고 슬금슬금 국내 장르문학이 고개를 들던 때이기도 했다. <판타스틱>이 고전을 면치 못했던 시기는 장르소설의 활발한 출간이 이뤄지던 때였지만 독자의 반응은 그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온 일본 미스터리물의 인기가 잠잠해지면서 장르문학 시장에 이슈가 사라진 것이 좋은 예다.) 그렇다면 <판타스틱>의 2차 복간이 갖는 의미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장르문학이 다시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장르문학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을 찾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 그래도 지금 장르문학 시장에는 주목할 만한 변화가 꿈틀거리고 있다. 먼저 번역 작품의 경우, <나는 전설이다> <셜록 홈즈> 등의 영화화로 덩달아 원작소설이 관심을 모으면서 영화를 활용한 마케팅이 활기를 얻고 있고, (<셜록 홈즈> 개봉 후 황금가지의 <셜록 홈즈> 전집이 2주 만에 무려 10만 부 넘게 팔렸다고 한다.) 국내 장르소설은 이종호, 김종일 등 굵직굵직한 작가들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제작될 예정이라 이슈를 만들어낼 좋은 기회를 잡았다. <판타스틱>도 다르지 않다. 22호와 23호, 즉 2010년 1월호와 2월호를 모두 읽고 보니 그간의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생존 전략이 엿보인다.

무엇보다 국내 작가들의 장편 연재가 과거의 <판타스틱>에 비해 늘어난 것이 가장 눈에 띤다. 좌백, 김창규, 김종일 등은 작가의 이름값만으로도 판매량을 보장하는 작가다. <판타스틱>에서의 연재로 독자의 관심을 모은 후 장편소설로 출간하겠다는 전략이 두드러진 것이다. 이는 광고 매출로 수익의 상당액을 보전하려 했던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면모다. 시공사라는 든든한 배경 하에서 <판타스틱>은 새로운 생존 전략을 장착하고 제2의 도약기를 맞이하였다. 문화 산업 안에서 잡지의 존재는 정보의 전달과 비평의 역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산업의 건강도를 드러내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한국 영화산업의 침체로 현재 영화잡지 시장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판타스틱>은 국내 장르문학 시장의 현재를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지표다. 국내 장르문학 시장이 살아야 <판타스틱>이 살고 <판타스틱>이 살아야 국내 장르문학 시장이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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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10.2.23)

‘충무로의 장르탐험가들’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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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genre)는 최근 한국 대중문화의 가장 중요한 화두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불붙어 여기저기서 감지되는 장르의 부상은 한국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장르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좋은 이야기를 갈망하는 충무로의 장르를 향한 구애는 장르소설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넘어 사활을 건 판권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백야행>), 미야베 미유키(<스나크 사냥>), 온다 리쿠(<유지니아>) 등 일본작가 편향에서 이종호(<흉가>), 김종일(<몸>), 듀나(<너네 아빠 어딨니?>), 최혁곤(<B컷>) 등 국내작가로까지,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장르소설은 검증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충무로가 군침을 흘리는 이야깃감의 보물창고다. 게다가 볼거리보다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 구조 탓에 거대 예산이 아니더라도 영화를 제작할 수 있어 장르는 충무로가 중요하게 삼는 화두로 부상하기에 이르렀다.

장르소설은 곧 추리, 범죄, SF, 공포물 등을 일컫는데 이들 장르가 영화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현실을 재미있게 반영하기 위해 특정코드를 대중화한 일종의 ‘스타일’로 변모했다. 때문에 별다른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대중이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를 최우선으로 삼는 충무로의 최근 조류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등의 감독들만 하더라도 장르영화를 통해 보편성을 획득한 경우다. <박쥐>는 ‘뱀파이어물’을 통해, <괴물>은 ‘괴수물’을 통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서부극’을 통해 대중성과 예술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버킹검! 장르는 이제 대세다. 장르와 관련하여 최근 이 바닥에는 물밀 듯이 흥미로운 사연들로 넘쳐난다. 봉준호 감독이 <마더>를 촬영하고 개봉하는 동안 SF소설가로 유명한 김보영 작가가 <설국열차> 시나리오 초고를 완성했고, <미쓰 홍당무>로 멋진 데뷔전을 치렀던 이경미 감독은 차기작으로 SF영화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이종호 작가의 <붉은 기와집>, 김종일 작가의 <혈투> 등은 출간계약을 마친 상태에서 영화 제작 시기에 맞춰 출간 시점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충무로의 장르탐험가들‘은 바로 이런 장르와 관련한 흥미로운 영화계와 문학계의 뒷이야기들을 연재하는 코너다. 다음 주에는 그 첫 번째 시간으로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 <설국열차>에 관련한 사연을 소개할 예정이다.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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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