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한국형 하드보일드의 진화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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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아저씨>와 <열혈남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정범 감독은 남성성을 다루는데 남다른 재능을 가졌다. 데뷔작 <열혈남아>(2006)에서 사람 냄새 물씬한 조폭 캐릭터를 창조해 호평을 받은 그다. 콘크리트 같은 남성의 내면을 파고들어 순수성을 캐내는 것이 바로 이정범의 특기다. <아저씨> 역시 그렇다. 다만 주연을 맡은 원빈은 마초 형(形)의 인물과는 거리가 멀다. 원빈은 배우의 이미지 그 자체로 마초적인 면을 탈색할 뿐 아니라 그럼으로써 남성 호르몬 과다 분비의 영화 <아저씨>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다. 조폭영화에 ‘모성애’를 더해 장르의 진화를 도모한 <열혈남아>처럼 이정범 감독은 원빈이라는 배우를 앞세워 <아저씨>에서는 한국형 액션의 새로운 면모를 꾀한다.


태식은 한국의 레옹? 해머?

태식은 주인 없는 물건마냥 전당포에 눌러앉은 은둔자다. 덥수룩한 머리로 한쪽을 가린 눈과 어두운 표정에서는 밝히기 꺼려하는 남다른 사연이 감지된다. 박절한 태식이 유일하게 소통하는 인물은 옆집 사는 소녀 소미(김새론)다. 그녀에게도 말 못할 사정이 있으니, 엄마가 마약 범죄에 연루된 것. 설상가상으로 엄마가 벌인 일 때문에 납치되기에 이른다. 제 자식과도 같았던 소미의 실종으로 태식은 결국 세상 밖으로 정체를 드러내게 된다. 그렇게 인간병기의 과거가 들통 난 태식은 소미를 찾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마약조직과 맞선다.

태식은 겉보기에 꽤 ‘무심한 듯 시크’해 보이지만 감정의 댐이 인내의 수위를 넘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통제가 힘든 인물로 묘사된다. 사실 태식이 아니더라도 소미처럼 맑은 영혼의 소유자가 범죄자의 손에 놀아난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라도 증오심을 떨치기 어렵다. 그렇다고 태식처럼 분노를 총알삼아 악인을 응징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감독들이 태식 같은 반(反)영웅의 이야기를 즐겨 영화화하는 것일 테다. 일찍이 반영웅의 매력을 스크린에 전시한 건 미국이 원조다. 이성보다 감정이, 법보다 주먹이, 교화보다 복수가 우선하는 태식의 행동에서 <레옹>(1994)이, <테이큰>(2008)이, ‘마이크 해머’의 그림자가 어룽거리는 것이다.

실제로 이정범 감독은 태식과 소미의 관계를 들어 극중 우유와 화분과 같은 소품을 통해 <레옹>에 오마주를 바쳤을 정도다. 세상에 나서길 꺼려하고 웬만한 자극엔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선 둘은 짝패라 할만하다. 하지만 한 번 시야에 들어온 먹잇감은 도대체가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테이큰>의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 브라이언(리암 니슨)이 연상된다. 또한 “소미를 찾아도 너희 둘은 죽는다.”는 태식의 비장한 대사는 폭력탐정으로 악명 높은 마이크 해머의 “살인범은 내 손으로 잡겠어. 그리고 마지막엔 내 손으로 방아쇠를 당기겠다.”는 분노 섞인 직설화법과 맞닿아있는 것도 흥미롭다. 사실 이정범 감독의 원안대로 태식의 캐릭터를 40대 설정으로 끌고 갔다면 이들과 더욱 가까운, 그러니까 아버지의 모습에 근접한 인물이 되었을 터다.

40대가 아닌 30대의 원빈 캐스팅 덕에 <아저씨>에는 뭔가 제한적인 섹슈얼리티가 기묘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젊은 원빈의 육체가 상대방과 충돌하면서 생기는 액션의 편린이 스크린 밖으로 섹스어필한 면을 제공하지만 스크린 안에서는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 이는 태식이 몸과 마음을 바치는 대상이 초등학생인 소미인 까닭과 무관치 않다. 이처럼 태식의 제한적인 섹슈얼리티를 ‘이정범의 남성성’이라고 불러도 큰 무리는 아닐 듯 보인다. 이것이 바로 이정범 연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정범 감독은 (비록 두 편의 영화에 불과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마초 주인공을 대상으로 인간이란 감정을 불어넣어 모나지 않은 마초로 탈색화하는 작업에 매력을 느낀다.


<열혈남아>의 진화형?

<아저씨>는 액션에 공을 들인 배우와 스태프 이하 노고의 흔적이 역력하다. 아무래도 태식의 분노가 표출되는 액션이니 만큼 수위가 높고 무엇보다 극비 특작부대의 ‘섬멸요원’으로 복무했던 전력의 소유자답게 엄청난 스피드를 요하는 무술을 선보인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필리피노 칼리’와 ‘아르니스’라고 부르는 동남아 무술을 가져왔다고 한다.) 액션에 힘을 들인 연출에 맞먹을 정도로 태식이 베일에 싸인 마약 조직을 쫓는 과정은 ‘발로 쓴’ 르포를 방불케 한다. 마약 밀매 과정에서 아이들은 어떤 역할을 맡는지, 그 후 이들이 어떻게 버려져 장기 적출을 당하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지가 낱낱이 폭로된다.

<아저씨>가 액션영화 (또는 복수극)의 테두리를 뛰어넘어 좀 더 사회적인 발언처럼 느껴지는 건 마약밀매의 실제적 세계에 대한 탐문에서 비롯된다. 소미의 납치에서 시작한 태식의 추적이 단계를 거듭할수록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부조리의 단편들이 아귀를 맞춰 거대한 악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아저씨>는 느와르(noir)보다 하드보일드(hard-boiled)란 명칭이 더 어울린다. 느와르가 일종의 세계에 대한 스타일의 현시(顯示)라면 하드보일드는 곪아터진 세상에 맞서는 인물의 상태를 예후하는 용어에 가깝다. (하드보일드는 추리보다 주인공의 행동에 초점을 맞춘 작품을 가리키기도 한다.)

하드보일드는 시간과 공간에 가장 밀접하게 반응하는 장르다. 하드보일드는 그 시대와 지역의 특성을 따른다. 하드보일드가 다루는 범죄를 보면 동시대 우리 사회의 환부가 파악 가능하다. <아저씨>가 묘사하는 감때사나운 범죄의 풍경은 곧 우리가 처한 비극적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저씨>의 액션이 관객에게 쾌감을 선사한다면 그것은 액션 그 자체보다 액션이 추동하는 배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그렇다. 아동 대상의 범죄는 지금 우리의 증오심과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끓는점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아동 대상 범죄에 맞춰 경찰력의 예방이 만족스럽게 이뤄지지 못하다 보니 우리는 좀 더 강한 힘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아저씨>는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제작된 영리한 상업영화다. <아저씨>는 그 수단이 폭력일지언정 영화로나마 관객의 은밀한 욕구를 대리만족토록 기능한다. 관객의 대리만족을 위해 소환된 태식의 죄의식을 건드리는 것은 그의 과거다. 태식은 과거 임신한 부인의 죽음으로 세상 빛을 보지 못한 아이에 대한 죄의식을 원죄처럼 안고 살아가는 인물로 설정된다. 죄의식은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다. 그런 이유로 이정범 감독은 남자들, 특히 거친 남자들의 죄의식을 자극해 인간다움에 대해 발언했다. <열혈남아>가 조폭 재문(설경구)으로 하여금 어머니에 대한 죄의식을 건드렸다면 <아저씨>는 부성애를 일떠세워 이 험한 세상에 맞선다.

다만 재문이 느끼는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나 태식이 갖게 되는 부성애는 피를 나눈 혈육이 아닌 각각 복수를 감행한 상대방 조직원의 어머니, 이웃집 소녀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반대로 이들이 행하는 원죄는 재문이 몸담은 폭력조직, 태식의 가족으로 인해 발생한다. 한국 사회에서 조폭과 가족은 일종의 신화다.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조폭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 또한 한국 사회 대부분의 악의 근원지다. (<마더>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타인을 희생물 삼는 가족 이기주의의 고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정범 감독은 조폭과 가족의 영역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인간다움을 논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와 관련, 재문과 태식이 용서를 구하는 형태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열혈남아>의 재문은 죽음으로써 원죄를 사하였다. <아저씨>의 태식은 죽음을 선택하는 순간, 소미의 등장으로 구원에 이른다. 죽음은 자신으로 인해 발생하는 악의 고리는 끊을지언정 그 이상 퍼져나가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태식은 죽음 대신 갱생을, 더 나아가 사회의 정화를 택한다. 소미를 끌어안은 태식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끝맺음하는 <아저씨>의 결말은 그가 아이를 위해 살 것임을 암시한다. 피를 나누지 않은 이들끼리의 연대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희망의 가능성에 다름 아니다. 사회 전체를 아름답게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견고해 보이는 가족 신화에 균열을 가한다. <아저씨>가 <열혈남아>와 동일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 파장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저씨>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태식의 의지처럼 이 험한 세상 적어도 무릎 끓지 않겠다는 결기가 강하게 느껴진다. <열혈남아>의 성취를 넘어 한국형 액션의 혹은 하드보일드의 진화형으로 손색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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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10.8.10)

<아저씨>(The Man from No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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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정(이하 ‘최’) 오늘은 어떤 영화로 우리를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건가요?
허남웅(이하 ‘허’) 저는 아직도 이 사람이 왜 아저씨 반열에 올랐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원빈이 아저씨로 출연한다고 해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아저씨>(8월 4일 개봉)입니다.

어머, 원빈이 아저씨로 출연한다고요? 그게 가능한가요?
영화에서는 가능합니다만, 이게 말이나 됩니까. 저 같은 아저씨들은 어찌 고개 들고 살라고 말이죠. 근데 실은 원빈이 아저씨인 이유가 있습니다.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은 말 못할 사연을 안고 전당포를 운영하는 비밀스러운 인물 태식으로 등장하는데요. 유일하게 마음을 여는 대상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미라는 이름의 소녀입니다. 근데 이 소녀의 어머니가 범죄에 연루되면서 소녀가 인질로 잡혀가는 일이 생기고요. 그러면서 소녀를 구하기 위해 원빈이 연기한 태식이 가담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태식의 과거도 밝혀진다는 내용입니다.

이야기만 들어도 굉장히 남성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데요?
<아저씨>는 원빈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데요. <마더>에서는 다소 덜 떨어진 아들 역할을 맡았었죠. 굉장히 순박했던 인물이었던 것에 반해서 <아저씨>에서는 마초적인 인물을 연기합니다. 근데 마초적이라고 해서 여자를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그런 의미는 아니고요. 남성미가 넘친다는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마초입니다. 어린 소녀를 구하기 위해 자기 몸과 마음을 바친다는 남성은 얼마나 멋진가요. 멋지지 않나요?

그런 남자를 만나면 원이 없죠.
그게 또 원빈의 매력인 것 같아요. 영화 출연작만 해도 <킬러들의 수다>나 <마더>에서는 웃으면 티 없이 맑은 우리 아기 같은 영혼처럼 비치다가도 <우리 형>이나 <아저씨> 같은 작품에서는 야성적인 느낌을 선보이잖아요.

야성적인 느낌이라면 액션이 빠질 수 없겠군요?
물론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원빈이 외모만 활용하는 배우가 아니라 몸을 사용하는데도 능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저씨>의 무술감독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상한 것보다 그림이 잘 나왔다고 하네요. 이 영화에서 쓰인 무술이 동남아의 ‘필리피노 칼리’와 ‘아르니스’라고 하는데 엄청나게 스피드 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원빈이 잘 했다는 얘기가 되고요.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원빈이 비밀을 간직한 인물인 만큼 말이 거의 없는 인물로 나와요. 간혹 대사를 치는데 그 대사들도 거의 단문 형식에 불과한데 굉장히 심금을 울려요. 무슨 말인가 하면 그만큼 몸으로 펼치는 액션 연기가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짧은 말 한 마디가 위력이 있다는 얘기거든요. 제가 알기로 원빈은 여성 팬에게 어필하는 배우지만 <아저씨>의 원빈 연기는 아저씨들마저도 팬들로 포섭할만한 연기를 펼쳐 보입니다.   

<아저씨>를 연출한 감독은 누구인가요?
이정범 감독이라고요, 예전에 설경구, 나문희, 조한선이 출연했던 <열혈남아>를 연출했던 감독인데요. 이정범 감독은 굉장히 마초적인 장르, 그러니까 <열혈남아>는 조폭 장르였고, <아저씨>는 액션물인데 여기에 모성애와 같은 인간적인 감정을 접목하는 것이 특징이에요. 마초를 세탁기에 넣고 인간적인 감정이라는 세제를 넣어 돌리면 부정적인 마초 때가 쏙 빠진다고 할까요. <아저씨>의 경우, 감독의 표현에 의하면 “옆집 아저씨가 소녀를 구하는 설정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이 영화를 시작했다고 하거든요. 다시 말해, <아저씨>는 ‘액션영화가 부성애를 만났을 때’라고 생각하면 될 만한 장르입니다.

하지만 극중 옆집 아저씨인 원빈과 소녀는 피를 섞인 관계는 아닌데 납치당한 소녀를 위해 아저씨가 뛰어든다는 설정이 가능한가요?
바로 그 지점에 이 영화의 작은 비밀이 숨겨져 있기도 하고요. 이와 관련해서, 제가 흥미로웠던 것은 말씀처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이 맺는 소통의 관계였는데요. 최근 보면 아이 관련한 큰 사고들이 잇달아 벌어지고 있어 공분을 사고 있잖아요, 그것에 대한 일종의 대리만족처럼 <아저씨>의 주인공 원빈이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서슴지 않는 범죄 집단에 단죄를 가하고 있고요. 극중 소녀의 경우도 보면 엄마가 있긴 하지만 전혀 보살핌을 받지 못해요. 대신 극중 아저씨가 그런 감정을 주는 것인데 영화를 인간의 감정 교류는 단순히 피를 나눴다고 이뤄지는 건 아니잖아요. 아마 그런 게 소통일 것이고. 그래서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그런 관계와 소통을 보여주려고 했던 게 아닌가 해요. 다만 문제는 그런 정서를 깔고 있다는 전제를 감독이 하고 있는 것인지 극중 아저씨와 소녀의 관계가 깊이 들어가는 건 아니거든요. 관계의 묘사는 다소 피상적인 게 사실이죠.

소녀 역의 연기도 그만큼 중요했을 텐데요, 누가 연기를 했나요?
김새론이라고요, 우니 르콩트 감독의 <여행자>라는 작품에 출연해서 아빠에게 버림받은 아이 연기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이목을 끈 적이 있어요. <아저씨>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일화가 김새론은 그 전까지 원빈이 누구인지 몰랐데요. <아저씨>를 하면서 비로소 원빈을 알게 됐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워요. 그러니 옆집 아저씨라도 이런 아이가, 비록 영화이긴 하지만 납치됐다고 하면 가만히 있을 리 없잖아요.

그럼 <아저씨>는 어떤 분들이 관람을 하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까요?
당연히 여성분들, 원빈이 너무 멋있으니까. 아니 예쁘니까. 다만 안타깝게도 <아저씨>는 잔인한 장면들이 생각 외로 많이 나오거든요. 아무래도 아이를 납치해간 이들에게 단죄를 가하는 영화이니 만큼 잔인한 장면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이런 장면을 잘 못 보시는 분께서는 염두에 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소식 감사합니다.


세상을 여는 아침 최현정입니다사용자 삽입 이미지
MBC FM4U(6:00~7:00)

조폭영화, 어느새 진화하다 – 2006년, 세 편의 조폭영화




<조폭 마누라>는 충무로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조폭 마누라>(01)의 대박 이후 충무로는 조폭을 소재로 한 영화를 우후죽순처럼 양산했다. 흥행에도 성공적이어서 <조폭 마누라>를 필두로, <가문의 부활> <두사부일체> 등은 시리즈화 되어 지금까지도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실정이다. 허나 이들 시리즈에 향하는 시선이 그리 고운 것만은 아니다. 조폭을 미화하는 설정에, 말장난과 성희롱으로 일관하는 유머, 무엇보다 관객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영화적 고민 없이 싸구려 통조림처럼 가볍게 기획, 제작하는 방식은 한국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떨어뜨렸다는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우리가 흔히 조폭영화라고 지칭하는 것은, 다양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속칭 ‘저질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로만 비하돼온 것이 사실. 더군다나 매년 십여 편이 넘는 조폭 소재 영화가 제작될 정도로 특수한 그룹을 형성했으면서도 그런 가벼움 탓에 하나의 장르로서 대접을 받지 못한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조폭 마누라>가 조폭을 소재로 한 첫 번째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동안 뜸했었던 것뿐이지 <조폭 마누라> 이전에도 조폭은 충무로가 심심치 않게 이용해 온 소재였다.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94), 이창동 감독의 <초록 물고기>(97), 송능한 감독의 <넘버3>(97)는 이 분야의 고전으로 통한다. 물론 조폭이라는 소재가 폭넓게 소비되도록 불을 지핀 것 역시 <조폭 마누라>다. 특히 ‘여자’ 보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한국영화사에서 볼 수 없었던 강력한 여자 캐릭터의 출현을 통해 조폭영화도 충분히 변형과 변주, 무엇보다 진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해 2006년, 오랫동안 코미디 장르에서만 제자리 걸음을 하던 조폭영화가 큰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6월에 개봉한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다.  



2006년, 세 편의 조폭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있나


<말죽거리 잔혹사>(04)에 이은 ‘폭력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인 <비열한 거리>는 조폭이 현실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어떤 방식에 따라 기능하는지 그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미화와 유머의 대상에서만 머물던 조폭을 현실로 끌어내려 진지한 관찰의 대상으로 접근한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조폭 영화에서 그 의미가 철저히 무시되어온 가족은 이 영화에서만큼은 큰 의미를 갖는다. 병두(조인성)가 그토록 조직 보스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건 오로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탓. 하지만 이를 달성하려면 보스를 배신해야 하고, 이는 자신 또한 부하에게 배신 당할 수 있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이처럼 음모와 배신의 메커니즘을 통해 유하 감독은 조폭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비열한 거리>는 세부 묘사에 있어서도 궤를 달리한다. 조폭 영화의 상징적 이미지랄 수 있는 액션에 있어서, 화려하고 합이 잘 짜인 영웅적인 액션을 거부한다. 대신 먹고살기 위해 주먹을 휘두르고 칼을 쓸 수밖에 없는 절실하고 비루한 막싸움이 스크린에 배치된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는 관객의 감정을 유머와 신파조로 쥐락펴락 조절하지 않는다. 병두의 친구로 영화감독 민호(남궁민)를 등장시킨 건 이 때문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관찰자의 시점에서 영화를 볼 수 있게 하여, 감정이 개입할 수 없게끔 조치를 취한 셈이다.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가 조폭 신화를 철저히 해체하고 있는 것과 비교한다면 장진 감독의 <거룩한 계보>는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기존 조폭 코미디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남자의 우정을 전면에 배치하고 이를 유머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다. 그런 점에서 <거룩한 계보>는 ‘조폭 코미디’ 그룹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폭영화 특유의 감성은 살리되 이것을 흔히 우리가 ‘장진식 유머’로 편의상 표현하는 코드로 재해석해 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진감독은 조폭영화의 전유물인 비장미를 코미디의 소재로 최대한 놀려 먹는다. 이는 확실히 말장난 수준에 그쳤던 이전의 조폭 코미디 영화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이와 더불어, 치성(정재영)과 순탄(류승용)과 주중(정재영) 간의 우정을 멜로적 감성에서 접근한 시각도 짚어볼만하다. 물론 그런 의도가 비장미를 유발하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시각을 불러온 것도 사실이지만, 장르의 규칙 안에서 이를 의도적으로 배반하고 그러면서 장르의 범위를 넓혀가는 장진 감독의 작업은 장르 영화가 발전하는 과정에서의 독특한 시도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이정범 감독의 <열혈남아>는 또 다른 위치에 서 있다. 새로운 유형의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를 제시하는 방법이 조금은 낯선데, 감독은 조폭 세계에 모성애를 슬쩍 끼워넣는다. 그래서 <열혈남아>는 조폭도 사람이라는 전제하에서 출발한다. 유독 ‘사람’을 강조하는 상황과 대사가 많이 등장하는 건 이 때문이다. 부당한 이유로 재문(설경구)에게 얻어맞은 치국(조한선)이 대뜸 “형님도 건달이기 이전에 사람 아닙니까?”라고 말하는 상황은 이 영화를 가장 잘 대변하는 대사 중 하나다. 이들도 사람이기에 감정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가 있을 텐데 그 존재가 바로 어머니다.

이를 반영하듯, <열혈남아>는 조폭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칼 들고 피 튀기며 싸우는 장면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대치하는 상황은 이뤄지지만, 눈앞에 표적을 두고도 재문은 어머니 때문에 심정적으로 흔들린다. 그런 탓에 <열혈남아>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을 일차원적으로 똑 떨어지게 설명할 수 없다. 재문만 하더라도, 살인에 목매다는 정신이상자로 보이다가 어느 순간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보이고, 패륜아처럼 행동하다가도 효심이 깊은 아들처럼 행동한다. 바로 그런 다중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이 인물에 입체성을 부여한다. <열혈남아>의 가장 큰 성과는, 조폭영화 사상 유례없는 다차원적인 인물을 창조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제 조폭영화의 진화는 어디로 갈 것인가

영화의 역사는 곧 장르 발전의 역사다. 특히 범죄영화는 영화사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관객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온 장르이며,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시대에 맞춰 변화해왔고 또 지역과 나라에 따라 변형된 모습으로 발전해왔다. 그래서 같은 범죄를 소재로 하고 있더라도 미국에서는 갱스터와 사립탐정이 등장하는 필름 느와르가, 프랑스는 개인주의가 극에 달한 멜랑콜리한 프렌치 느와르가, 홍콩에서는 남자의 우정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한 홍콩 느와르가 그 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며 나름대로의 장르로 토착화되었다.

한국의 느와르, 즉 한국 범죄영화의 고유한 장르라고 한다면, 단연 조폭영화라고 할 수 있다. <비열한 거리>에서 잘 묘사되었듯 조폭은 한국 사회를 반영하는 하나의 유용한 거울이다. 그 장르엔 한국인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고, 한국 사회의 속성이 숨겨져 있으며, 또한 이것들이 기능하는 메커니즘이 반영되어 있다. 조폭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등장했던 것은, 단순히 흥행적 의도 말고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테다.

하지만 충무로는 조폭을 희화화하고 미화하는 데만 주력했다. 물론 그런 시도는 조폭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경직성이 많이 순화되었음을 의미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학자들에겐 흥미 있는 연구 대상이겠지만 영화 팬들에겐 안타깝게도 장르의 발전을 가로막는 저해요소였다.

장르의 발전은 장르의 규칙을 위반하면서, 혹은 다른 장르와 결합하면서, 그리고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이루어진다. 그런 점에서 한국 조폭 영화의 2006년은 남다른 한 해로 기억될 듯싶다. 코미디에 안주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조폭의 본질이 무엇인지 관찰한 작품이 등장했고(비열한 거리), 색깔 있는 조폭 영화가 모습을 드러냈으며(거룩한 계보),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는(열혈남아) 등,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현재, 한국의 조폭영화는 진화하고 있다.


(2006. 11. 8. <스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