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가까이> 김종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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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은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을 비롯하여 20여 편이 넘는 단편을 만든 독립영화의 스타감독으로 통한다. <조금만 더 가까이>는 첫 번째 장편영화로, 다섯 개의 에피소드가 사랑의 감정 교류라는 일관된 주제 속에 하나의 궤를 만든다. 김종관 감독의 새로운 면모보다는 여전한 그의 감수성과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로테르담의 폴란드 남자와 서울의 한국 여자 간의 이야기다. 다섯 개의 단편을 모은 영화지만 감정적인 거리감을 주제로 삼는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 같다.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에피소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라는 건 개인적으로 겪은 것도 있지만 수많은 거짓말을 덧칠해서 섞어버리는 거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 조그만 화면으로 나오는 이미지들은 4년 전 로테르담 영화제 여행 가서 찍은 것들이다. 그러니까 내가 구성해놓은 거짓말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게 하면 재밌겠다 싶어서 처음에 배치했다. 

첫 에피소드의 주인공을 폴란드인으로 설정한 건 왜인가?
로테르담 영화제 당시 단편 섹션에 함께 초청받은 감독이었다. 그때 얘를 데리고 핸디캡으로 뭔가를 찍어볼까 했는데 벌써 떠난 뒤였다. 실제로 폴란드 친구들이 직업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로테르담처럼 먼 도시로 다닌다고 한다. 로테르담은 2차 대전 때 도시 전체가 폐허가 돼서 다시 재건축했다고 한다. 우리로 치면 분당 신도시 같은 곳이다. 옛날 것들이 남아 있지 않아 휑하고 외부인들이 많이 머무는 공간이다. 여자 친구를 찾으러 왔다가 직업을 구하는 쓸쓸한 폴란드 남자라는 설정이 로테르담과 잘 어울렸다.   

두 번째 에피소드와 네 번째 에피소드는 주인공이 같다. 그런데 굳이 떨어뜨린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연애는 다면적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다섯 개 에피소드로 쪼갰다고 할까. 정서적인 궤를 차고 있는 다섯 개가 모두 연결이 돼있다고 생각해서 굳이 두 번째와 네 번째 에피소드를 붙이지 않았다. 내가 처음에 레퍼런스로 생각했던 영화는 왕가위의 <중경삼림>(1994)이었다. 연결고리가 없으면서 각 에피소드끼리 소통의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랑이 주제인 영화다. 하지만 현재형이라기보다 기억을 다룬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것이 영화가 주는 매력인 것 같다. 독립영화 쪽에서 주로 활동하다 보니 (인터뷰가 진행되던 삼청동 카페의 창밖을 가리키며) 이런 길이나 공간이 변하기 전에 기록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1960~70년대 작품을 봐도 극중 공간들이 가지고 있는 다큐멘터리적인 속성 때문에 재미가 있다. 그런 공간감들이 잘 살아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영화를 즐기게 된다. 

공간감을 살리기 위해 주변 소품이나 음악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왔다. 우리가 과거의 사랑을 기억할 때 주로 떠오르는 것들이 그런 요소 아닌가.
영화라는 게 전체를 완전한 걸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 한 장면이라도 관객의 마음을 건드려주어야 한다. 윤계상과 정유미 주연의 에피소드에는 카페에서 징글징글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믹싱 작업할 때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하나 얹어놓으니 옛 기억으로 확 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 연애하면서 다투고 그럴 때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나 음악 소리 같은 게 있지 않나. 믹싱 하면서 느낀 건데 사람의 기억을 환기해주는 공간음들이 있더라.

가을을 배경으로 삼은 점도 눈에 띈다. 가을 풍경을 필름으로 담고 싶었나? 
내 영화중에 가을 배경이 없었기 때문에 담아보고 싶었다. 사실 다른 상업영화를 준비하다가 <조금만 더 가까이>를 만들었다. 큰 규모의 영화들은 기다리는 작업인데 개인적으로 그런 것들을 못 견뎌한다. 환경이 주어지면 당장에 그 안에서 해결하는 스타일이다. 이 영화는 총 16회차로 찍었다. 작은 회차에 할 수 있는 내러티브를 찾는 중에 가을을 배경으로 내게 익숙한 공간들을 남겨두고 싶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 솔직하게 고백하는 느낌이 든다.
내 작품 중에 대사 많은 게 없다. 단편 <모놀로그 #1>(2006) 이후 대화가 많은 영화를 해보고 싶었다. 다양한 패턴으로 대사가 주가 되는 형식의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요조와 윤희석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다섯 번째 에피소드가 그렇다. <비포 선라이즈>나 <비포 선셋>을 연상시킨다.
좋아하는 취향이 그런 영화들이다. 특히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중 <파리의 랑데부>(1995)는 단락 지어진 구성인데 파리의 공간과 계절의 분위기를 보여주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런 종류의 영화를 보면 마음에 젖는 게 있다. 평소에 해보고 싶었고 여유로운 느낌도 주고 싶었다.  
 
베드신 장면 연출도 이번이 처음이다. (웃음)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데스크신이라고 하더라. 책상에서 한다고. (웃음) 나는 이걸 섹스신이 아니라 설렘이 있는 신이라고 한다. 첫 관계 시 갖게 되는 설렘 같은 감정을 준 것 같다. 거기서 배우들이 존재감 있게 해줬다. 둘 다 영화를 처음 한 배우들이었다. 특히 세연을 연기한 염보라가 날 것 같은 연기를 했다. 그런데 4일 동안 촬영을 하면서 뭔가 조율이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가령, 배우 옆에서 촬영했는데 카메라가 자기 시선 바깥에 있으니까 여배우가 굉장히 잘 해줬다. 마지막 날 촬영은 야한 장면이 아니었다. 얼굴만 클로즈업으로 가는 장면이었다. 그때 힘들어했다. 옆에 있던 촬영진들이 정면으로 몰려와 시선 근처에서 얼굴을 찍으니 수치심을 느낀 것 같더라. 감독의 입장에서 배우가 힘들어 하는 게 마음이 아팠다.

베드신이라고 하지만 육체의 전시가 아니라 역시나 특기인 감정 포착에 집중했다. 그래서 시나리오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 클 것 같지가 않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는 시나리오보다 잘 나오는 것이다. 독립영화 작업을 오래 했기 때문인지 구체적인 상(像)에 대해 정확하게 쓴 시나리오를 그대로 표현하는 게 너무 힘들다. 현장에서는 너무 많은 변형의 순간들이 있잖나. 그렇기 때문에 시나리오에서는 감정적인 것만 잡아놓고 현장에서 적응해 가며 긴장감 있게 찍으려고 한다. 배우들도 신인일 때 그런 방식을 잘 따라온다. 

단편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에서 배우 정유미를 발굴했다. 그때의 정유미는 굉장히 수줍은 소녀로 등장했었다. <조금만 더 가까이>에서는 ‘진상’으로 나온다. (웃음)
성격적으로 극중 캐릭터 은희와 닮아있는 건 아니다. 다만 오래 보아오면서 내가 유미에 대해 느끼는 게 있지 않나. <폴라로이드 작동법>에서 처음 만났을 때 수줍은 소녀가 보였다면 이후 오래 관계를 하다 보니 유미가 은희를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좋은 인연으로 만났고 서로 같이 시작을 한 거니까 소중한데 그래서 같이 작업을 하는 게 조심스럽기도 했다. 유미를 과거의 이미지 그대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다른 성격의 캐릭터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띠는 캐스팅이라면 인디뮤지션 요조다.
이 영화에 음악적 구성이 있기 때문에 노래를 할 줄 알고 뮤지션인 배우로 알아봤다. 처음 만났을 때 요조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연기적인 부분이 걱정돼서 만났다. 의외로 요조가 극중 캐릭터와 잘 맞으면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쳐줬다. 더군다나 내 영화에 대해서 가장 잘 이해를 해줬다. 그래서 가장 먼저 캐스팅된 경우이었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에 대해서 잘 이해해준 덕분에 이번 작업을 할 수 있는 동력이 많이 생겼다. 

결국 이 영화가 추구하는 사랑의 감정적 거리는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을 한다. 그것은 한편으로 감독이 배우에 대한, 배우가 감독에 대한 감정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은유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이 연애를 하면서 호기심과 욕망 때문에 스스로가 변화를 겪기도 하고 소중히 지키고 싶은 것들을 버리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나도 옛날부터 꼭 지키고 싶은 것이 있었다. 벗어날 수 없는 욕망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영화다. 그것 때문에 자책도 생기고 하지만 이런 부분들을 솔직하게 영화 속에 담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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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2010.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