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성: 상처받은 도시>(傷城: Confession Of Pain)


5월의 홍콩은 덥다, 라는 데 생각이 미치기도 전 바라본 고층빌딩이 즐비한 풍경은 30도를 훌쩍 넘긴 날씨를 한방에 잊게 해줄 만큼 시원했다. <무간도> 시리즈 이후 3년 만에 다시 뭉친 유위강, 맥조휘 감독과 양조위의 신작 <상성: 상처받은 도시>(이하 <상성>)은 빅토리아 파크에서 내려다본 시원스러운 풍경으로 문을 연다. 그런데 두 감독이 바라보는 홍콩의 화려한 모습은, 애절하게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캐럴과 느리게 이동하는 카메라 움직임 속에 쓸쓸함을 자아낸다. 외부인과 내부인의 시선 사이에 생긴 관점의 차이일까. 아니면 이게 진짜 홍콩의 모습일까.

지난 5월 13일과 14일, 이틀간에 걸쳐 <상성>의 주연배우 양조위와 유위강, 맥조휘 감독의 기자회견이 홍콩에서 열렸다. 첫 장면과 달리,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은 채 과장된 동작을 섞어가며 열변을 토하는 유위강 감독과 회견장에 들어서자마자 “한국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빠른 시일 안에 한국을 찾아뵙겠다”라며 환하게 미소 지은 양조위. 본색을 숨긴 채 다른 삶을 사는 <무간도>(2002)의 유건명(유덕화)과 진영인(양조위)이 그들 위에 겹쳤다면 과장일까?


상처 받은 도시의 상처 받은 남자들


<상성>의 유위강, 맥조휘 감독은 <무간도>에 이어 다시 한 번 깊은 시름에 잠긴 두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유정희(양조위)와 아방(금성무)은 오랫동안 형사로서 파트너 관계를 유지해온 절친한 선후배 사이. 크리스마스에 여자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아방은 그 충격을 못 이겨 형사생활을 접고 술에 절어 산다. 유정희는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고 결국 아방은 사립탐정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유정희의 장인어른과 집사가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를 미심쩍게 여긴 유정희의 아내 숙진(서정뢰)은 남편 몰래 아방에게 사건을 재수사해줄 것을 요구한다. 비밀리에 수사에 들어간 아방은 몇 가지 단서를 포착하고 이 사건에 유정희가 연루되었음을 알게 된다.

거대한 운명에 휘말려 이중적인 생활을 해야만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상성>과 <무간도>는 닮아 있다. 하지만 “가장 전형적인 홍콩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는 맥조휘 감독의 바람처럼 <상성>은 도시와 인물 간의 관계를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돌이켜 보건대, 지난 10년간 홍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침체의 연속이었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기점으로 홍콩 사람이 떠난 자리에 본토 동포가 대거 유입됐지만 상이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오해가 빚어졌고, 2003년 홍콩을 할퀴고 간 사스의 창궐은 오랜 시간 소통단절을 불러왔다. ‘상처 받은 도시’를 뜻하는 <상성>은 홍콩의 사연을 유정희와 아방이 처한 상황과 쓸쓸한 감정을 도시의 풍광 속에 담아낸다. 유위강의 카메라는 젊음의 거리 소호에서 옛 홍콩을 머금은 금정까지, 중심 주룽반도에서 변방 마카오까지, 홍콩에서 담아낼 수 있는 모든 풍경을 훑는다. 특히 영화의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초반 야경 장면의 경우, 고공 촬영을 금지한 정부를 설득해 홍콩영화사상 처음으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감정을 공간 속에 구현한다는 점에서 <상성>은 코넬 울리치로 잘 알려진 윌리엄 아이리시의 추리소설 <환상의 여인>이나 <상복의 신부>를 연상시킨다. 축축한 재즈가 구슬프게 울려 퍼지는 1940~50년대 뉴욕의 밤거리를 배경으로 고독한 도시인의 정서를 잡아낸 서술방식과 닮아 있는 것이다. 그런 상관성 덕분인지, 이 영화는 추리적 요소가 유난히 강하게 부각되는 작품이다. 사건을 쫓는 자와 사건을 은폐하려는 자의 대결구도 속에 ‘누가 죽였을까?’가 아닌 ‘왜 죽였을까?’에 집중하는 이야기 방식이 그렇고, 극중 인물의 사연이 하나하나 단서로 쌓여가며 마지막 순간, 한방에 비밀이 폭로되는 구조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추리극의 익숙한 구조를 차용한 듯 보이지만 <상성>의 재미는 그 구조를 비트는 데서 나온다. 극 초반에 범인의 정체를 노출하고 그런 가운데서 범인의 사연을 추리해가는 것. 이는 추리를 활용한 영화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상황에서 관객에게 새로운 충격을 제공하려는 맥조휘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가 성공적이었다고 보기에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범인을 미리 밝힌다는 것은 장르적으로 신선한 시도임에는 분명하지만 연출하는 입장에서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추리극은 관객의 흡인력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상성>의 경우, 범인을 알게 된 관객들이 그 뒤의 사연을 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관객이 시선을 놓지 않을 만한 전개로 끌고 가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는 유위강의 말처럼 중반 이후 <상성>의 극적 긴장감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또한 유정희와 아방의 비밀이 밝혀지는 결말부 역시 <무간도>로 기대치가 높아진 관객의 기대감을 채우기엔 2% 모자란 감이 있다.


양조위, 악한이 되라


<상성> 역시 요즘 유행하는 반전을 쓰고 있다. 하지만 반전을 위한 영화가 아닌, 철저히 영화에 복무하는 반전을 만들어냈다는 건 신선하다. 유위강과 맥조휘 콤비는 기존 홍콩영화에서 무한 반복했던 요소뿐 아니라 장르영화의 습관적인 룰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데 인색하다. <무간도>는 그런 이들의 방식이 가장 최대치로 발휘된 경우였다. 그리고 <상성>은 <무간도>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맥조휘의 표현을 빌자면 “스토리와 감정 선의 변화에 더욱 신경을 쓴 영화”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유정희로 분하는 양조위의 변신이다. 20년이 넘도록 양조위의 연기를 지켜봐왔던 유위강은 유약한 이미지의 그에게서 악한 모습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양조위의 연기 중 <상성>보다 악랄하고 간사한 건 없었다. 그런 역할을 맡겨 놓고 흥분했다”는 유위강의 호언은 영화 속에서 그대로 증명된다. 단순한 악의 모습이 아닌 악한 행동마저 정당성을 획득하는, 기존 단세포적 악한과 사뭇 다르게 유정희를 묘사한 것이다.

인물을 통해 스토리의 변화를 주었다면 감정 선의 변화를 가져온 건 이제는 변한 홍콩 사람들의 감성이다. 이전까지 우리가 ‘홍콩 누아르’라고 칭한 일련의 영화들은 의(義)와 협(俠) 등 인간관계를 극도로 강조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무간도>를 기점으로 홍콩영화 속 인물들은 개인의 안위에 따른 욕망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홍콩을 가로지르는 시대의 감수성이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가령, 홍콩 반환을 앞둔 시점에서 홍콩영화는 한 치 앞을 모르는 불안한 시대적 감성을 묘사하기 위해 끈적끈적한 남자들의 의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홍콩이 중국으로 편입되면서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었다. 제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에서 선과 악의 구분은 무의미해졌고 친구와 적을 규정하는 선 역시 희미해졌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간파해 먼저 영화에 반영한 것이 <무간도>였고 신작 <상성>에서는 가장 극대화된 형태로 드러난다. 유정희와 아방은 절친한 파트너 이상의 유사 형제관계를 이루면서, 또 한편으론 한 사건을 사이에 두고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관계가 된다.


유위강, 맥조휘 감독이 보기에 지금 홍콩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는 대부분 유정희와 아방처럼 애매한 삶의 형태로 드러난다. 그래서 인연의 끈은 희미해지고 사람 사이의 소통은 주파수가 안 맞는 고장 난 라디오처럼 홀로 파열음을 낼 뿐이다. 그 결과, 도시를 가득 매운 건 상대방을 잃은 채 말없이 부유하는 인간들. <상성>의 첫 장면에서 빌딩 창 밖으로 흘러나온 빛들이 뭉치지 않고 흩어져 보이는 건, 선에서 점으로 변한 인간관계를 상징하는 이미지는 아닐까. <상성>은 상처 받은 도시를 채우는 건 상처 받은 인간이라는 지당한 사실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필름2.0 336호
(2007. 5. 22)

<데이지>(Daisy)


빈 수레가 존나 요란하다고 했나? 지금 소개하는 당 영화 <데이지>가 바로 그 짝이다.

이미 개봉 전부터 한국의 전지현, 정우성, 이성재 쓰리톱에, <무간도>로 일약 최고 감독 반열에 올라선 홍콩의 유위강 감독에, 그리고 또 음악 감독을 맡은 일본의 시게루 우메바야시까지 다국적 프로젝트를 앞세워 그렇게 여론몰이에 나섰건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뚜껑이 열린다.

데이지의 꽃말은 숨겨진 사랑. 킬러인 박의(정우성 분)는 한눈에 뻑 간 혜영(전지현 분)에게 매일 데이지 꽃을 보내며 몰래한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혜영은 그 꽃을 보낸 이가 국제경찰 정우(이성재 분)인지로 알고 그와 폴링 인 러브하니, 경찰과 킬러, 그리고 아름다운 거리화가 혜영 간의 비극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얼추 살펴본 바에 의하면 당 영화는 홍콩 느와르의 비장한 감성이 물씬 풍기는 스토리이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유위강 감독을 영입한 거겠지만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되나. 당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그 바장한 감성을 보여주기 위해 가장 중요한 쥔공의 감정을 살릴 생각은 안 하고, 그보다는 전지현의 예쁘장한 얼굴, 정우성의 우수에 찬 모습을 쓸따리없이 부각시키는데 더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왜일까? 왜는, 이야기 쓸 능력이 안 되니까 그렇지. 이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없었던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박의와 정우가 만나는 장면. 킬러의 정체를 캐내기 위해 잠복 중이던 정우가 그를 찾아온 박의를 보고, ‘아니 내 뒤통수를 보고 단번에 나를 알아보다니, 그가 킬러다!’ 이러고 자빠진다. 논리는 어디 엿바꿔 먹고 그냥 들이대는 식이다.

근데 이거 하나면 또 몰라, 천하의 국제 경찰이 킬러 조직에게 접근하기 위한 수사방법이 다 이렇다. 씨바, 그렇게 해서 범인 잡으면 본 우원은 오사마 빈 라덴도 잡을 수 있다 모. 그러니 이를 밑바탕 삼아 클라이막스에서 제대로 한방 터뜨려 보여주려는 비극적 사랑의 애달픔, 애잔함 이런 감정이 관객에게 와 닿을 리가 없다. 대신 깊은 졸음에의 유혹만이 있을 뿐.

그래서 당 영화가 내세우는 비장의 카드는 나레이숑. 화면으로 전혀 전달되지 못하는 감정을 나레이숑으로 어떻게든 메꿔보려고 하는데 노력은 참 가상하다만, “그 다리는 당신과 나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었죠”, “나는 영혼까지 화약 냄새로 물든 킬러다” 등등 그 대사의 진부함과 민망함이란.. 더군다나 감독이 홍콩사람인 까닭에 배우들이 치는 대사의 발성이라든가 대사와 대사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을 조율하는데도 실패하고 있으니 엎친 데 덮친 격.

멋진 화면 함 만들어보겠다고 저 멀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정 가서 올로케해가며 영화 찍은 노력, 세계 시장을 겨냥하겠다고 범아시아적 스케일로 스탭을 꾸린 노력, 그리고 전지현과 정우성의 미모. 본 우원이 왜 걱정해야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음부터는 여기에다 하나 더 뿌라스 이야기를 제대로 만드는 노력을 좀 더 기울인 다음에 영화를 만들기 바란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대박시즌이 지나서인지 요즘에는 개봉하는 영화도 많고 그중 볼 영화도 참 많다. 그러나 쒯으로 마주친 그대 <데이지>는 안타깝게도 이런 꼬라지라면 명함 일 장 내밀기도 힘들어 보인다.

그런 전차로 당 영화를 워스트에 봉한다.


(2006. 3. 6. <딴지일보>)

<무간도>(無間道)


1.

無間道. 보도자료에서 말하길, 열반경 제19권은 무간지옥에 대해 ‘불교에서 썰하는 18층 지옥 중 가장 낮은 층의 지옥’이라 정의 내리고 있다 전한다. 그니까 한마디로 ‘절라 조뙌 상황’이 바로 <무간도>라는 얘기되겠다. 그렇다면 당 영화에서는 이 지옥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

지금 홍콩은 삼합회로 혼란스럽고 짭새들은 이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형국이다. 이 상황에서 삼합회의 조직원 유건명(유덕화 분)은 경찰 내부에 잠입하여 유능한 짭새로 인정받고 있고, 삼합회에 숨어든 짭새 스파이 진영인(양조위 분)은 보스 한침(증지위 분)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적의 내부에 몇 년간 숨어들어 생활한다고 생각해봐라. 아무리 유능하고, 신뢰를 받고 있다해도 걸리면 끝장인데 얼마나 살 떨리겠냐. 근데 어찌저찌해서 이 둘의 존재가 상대방에게 동시에 발각되고야 마니, 절라 후달리지 아니 할 수 없는 분위기다.

그렇다. <무간도>는 이 두 쥔공, 유건명과 진영인의 절라 조뙌 상황을 그리고 있는 영화 되겠다.

당 영화와 같이 내부에 잠입한 첩자를 소재로 삼은 언더커버(undercover) 영화들은 그런 비밀스런 설정이 주는 긴장감 덕택으로 관객의 구미를 당기고 재미를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당 영화는 이들 영화와 같은 설정에서 한 똥꼬 더 나아가 양쪽 진영에 각각 숨어든 첩자를 대립시킴으로 해서 꼴림을 두 배로 유도하고 있다. 겁나게 흥미를 끄는 구도라 아니 할 수 없음이다.

그래서 <무간도>의 각본은 당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차별성을 최대한 살릴 요량으로 서로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한 쫓고 쫓기는 상황을 적극 활용한다.

특히 극중 영화관에서 진영인이 유건명을 몰래 뒤쫓다가 갑자기 터진 핸드폰 벨소리로 사면초가에 놓이는 설정이라던지, 유건명이 황국장(황추생 분)의 핸드폰을 이용, 진영인에게 접근해 가는 장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긴장감은 실로 똥꼬에 땀을 차게 할 정도로 당 영화의 백미라 하겠다.


2.

게다가 당 영화의 이야기가 더욱 재미를 주는 건, 각본을 공동으로 맡은 맥조휘와 장문강이 <무간도>를 마치 추리소설처럼 미스터리하게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로 당 영화의 서두에서 제시되는 등장인물덜의 별 시덥지 않은 행동이나 하찮은 물건들이 종국에 가서는 결정적인 단서로 작용할 뿐 아니라 영화는 끝까정 두 쥔공간의 관계를 알 수 없게끔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당 영화를 보면 액숑장면이 별로 없다. 그나마 가장 큰 액숑장면이라 할 수 있는 거리 총격전 씬같은 경우도 몇 십 초 밖에는 보여주지 않을뿐더러 이런 류의 영화가 주는 역동적인 느낌도 거의 받을 수가 없다.

이 말은 곧 당 영화가 단순한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오락영화가 아님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하겠다.

아시다시피 당 영화는 유건명과 진영인의 대립이 전체의 분위기를 좌지보지하고 있음이다. 그럼 이 둘은 왜 대립하는가? 물론 살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살기 위함이란 곧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말과 동일하다. 그런데 오랫동안 첩자 노릇을 해오다 보니 자기가 좋은 분인지 나쁜 쉐이인지 헤깔릴 때가 많다.

보스인 한침이 유건명에게 유반장이라고 부르자 놀라는 건 이 때문이다. 정체성에 혼란이 온 거다. 그러니 이 두 명의 쥔공, 심적으로 절라 고민 때림이다.

첩자를 다룬 영화가 대개 소재가 갖는 말초적인 점만 이용, 액숑에 그치거나 스릴만을 강조하는데 반해 정체성의 문제까정 건드려 쥔공의 심리를 이처럼 자연스럽게 녹인 점은 당 영화의 시나리오가 갖는 또 하나의 우수성이라 할 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당 영화에서 유건명, 진영인의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연기는 절라 중요하다. 내적인 고민을 외면으로 드러내야 하자너.

쥔공 역을 맡은 배우는 양조위와 유덕화다. 양조위야 원래 세계가 인정한 연기파이지만 당 영화에서 유덕화의 연기도 이에 못지 않았음이다. 특히 아내에게 자신의 정체가 발각된 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라. 왜 그가 20여 년 동안 홍콩영화계의 주연으로 군림하고 있는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 안 옴 말구…

당 영화의 감독은 이들의 캐스팅 배경에 대해 양조위와 유덕화가 아니었다면 제작비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마빡 하나만을 들이밀고 있는 스타급 배우였다면 영화가 어떻게 되었을까? 마치 <비싼무>, <별루>의 신횬준처럼 말이다.

유위강이 겉으로는 우스개처럼 말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배우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연기력을 중요시한 속내가 숨어 있는 것이다.


3.

그러나 아무리 이야기가 훌륭하고 배우덜의 연기가 뛰어나도 이를 담는 화면이 형편없으면 영화는 조또 아닌 게 되기 십상이다. 시나리오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촬영과 이야기의 구도를 잘 살려낼 수 있는 미쟝센이 서로 상호작용을 해야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 법이니까.

당 영화의 촬영은 감독인 유위강과 크리스토퍼 도일이 맡아, 극중 유건명과 진영인의 암울한 처지를 그대로 화면에 반영하여 어둠이 강조된 검은 필름 즉, 필름 느와르의 촬영술을 고스란히 차용하고 있음이다.

그래서 당 영화에는 지옥에 빠져있는 두 쥔공의 상황을 포착하기 위해 낮은 조도를 이용한 밤거리/극장/버스 안/엘리베이터 등 좁아터진 공간에서의 촬영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유건명, 진영인의 절망적인 심정을 외양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깊은 그림자를 강조한 촬영술을 구사하고 있으며, 여백이 강조된 넓은 공간에 쥔공이 서 있다거나 동료들에게서 떨어져 혼자 외따로 있는 등 버림받은 듯한 인상을 주는 구도가 많다.

그런 전차로 당 영화는 유기적으로 잘 연결된 세 요소(이야기/연기/촬영)가 위기에 빠진 두 쥔공이라는 중심 틀에 맞춰 별 무리 없이 조화를 이루며 통일성을 확보, 제목이 주는 지옥스런 느낌을 잘 살려내고 있다 하겠다.


4.

허나 그렇다고 해서 당 영화에 단점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당 영화는 유건명과 진영인의 어릴 적 장면을 영화의 시작과 끝에 놓고, 이야기를 베베 꼼으로써 끝까정 두 쥔공 간의 관계를 관객에게 오리무중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럼으로 해서 당 영화는 반전을 숨기고 있다. 근데 한 번만 꼬아놓았어도 관객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을 텐데, <식스센스>처럼 다시 봐야 이해가 되는 그런 차원의 스토리가 아님에도 한 번을 더 꼬아 영화의 이해에 혼란을 준 건 어찌됐던 좀 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홍콩 영화계도 반전에 대한 압박이 꽤나 심한가부다.

게다가 많은 재래식 언론덜이 ‘홍콩 느와르가 다시 똥꼬를 열기 시작했다!’는 삘루다가 당 영화를 홍보하고 있는 까닭에 <무간도>를 보려는 예비 관객덜에게 괜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하겠다.

무슨 말인고 하니, 홍콩 느와르는 시절이 하 수상하던 때, 희망이 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초상을 어두운 화면에 담는다는 점에서 필름 느와르와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쥔공이 돈과 욕망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의(義)와 협(俠) 등 인간관계에 매달린다는 점에선 차별화 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동양적 감성이 먹혔던 이유 중의 하나는 홍콩 반환을 앞둔 시점에서 홍콩 느와르가 홍콩민들의 불안한 시대적인 감성을 반영하고 있던 탓이었다.

근데 시대는 바뀌었다. 홍콩은 중국의 한 도시로 편입되었고, 사람들의 감성도 변하였다. 물론 시대를 반영하는 영화도 달라졌다. 그러니 당 영화도 홍콩 반환 이전 시절과 달리 홍콩 느와르의 특징을 그대로 답습할 리 없다.

그 결정적인 증거로 당해 영화 <무간도>의 쥔공들은 절대 의리, 우정, 협 이런 카인드 오부의 감정에 자신을 내던지지 않는다. 오로지 개인의 안위에 따른 욕망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그 결과 당 영화 어두운 인간들을 어두운 화면에 담은 전체적인 모양새에 있어선 홍콩 느와르의 냄새를 풍기나 이를 이루는 요소들 – 쥔공들의 감정 표현이 개인에 우선하고 별루 폭력적이지 않다 – 은 전혀 홍콩 느와르스럽지 못함이다.

만약 오우삼 감독의 홍콩 느와르 스타일을 기대하고 당 영화를 볼작시엔 심히 조뙈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당 영화의 관람에 앞서 고려하시라.


5.

롱롱타임동안 침체를 거듭하던 홍콩 영화계에서 오랜만에 자국민의 호응을 듬뿍 얻고 있는 당해 영화 <무간도>가 울 영화계에 주는 교훈은 자명하다.

남의 나라에서 크게 성공한 영화 수입하면 대박난다,는 수입사의 입장은 차치하고라도 시나리오가 말이 되고, 촬영이 이를 뒷받침하며, 배우의 연기가 연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기본 명제에 충실 할 경우, 관객이 알아서 찾아든다는 사실.

근데 이를 묵과하고 이야기에 상관없이 오로지 돈만 때려 박는 볼거리에만 치중하거나, 어찌됐든 우끼는 영화에만 주력하며, 계속해서 조폭 붕알만 만지고 있다간 홍콩 영화계 꼴 안 나리라는 보장은 엄따.

부디 한국 영화계는 <무간도>가 재미있다는 그 사실만을 볼 것이 아니라 재미있게 된 그 연유, 그 과정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럼 이상!!


<딴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