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한국형 하드보일드의 진화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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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아저씨>와 <열혈남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정범 감독은 남성성을 다루는데 남다른 재능을 가졌다. 데뷔작 <열혈남아>(2006)에서 사람 냄새 물씬한 조폭 캐릭터를 창조해 호평을 받은 그다. 콘크리트 같은 남성의 내면을 파고들어 순수성을 캐내는 것이 바로 이정범의 특기다. <아저씨> 역시 그렇다. 다만 주연을 맡은 원빈은 마초 형(形)의 인물과는 거리가 멀다. 원빈은 배우의 이미지 그 자체로 마초적인 면을 탈색할 뿐 아니라 그럼으로써 남성 호르몬 과다 분비의 영화 <아저씨>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다. 조폭영화에 ‘모성애’를 더해 장르의 진화를 도모한 <열혈남아>처럼 이정범 감독은 원빈이라는 배우를 앞세워 <아저씨>에서는 한국형 액션의 새로운 면모를 꾀한다.


태식은 한국의 레옹? 해머?

태식은 주인 없는 물건마냥 전당포에 눌러앉은 은둔자다. 덥수룩한 머리로 한쪽을 가린 눈과 어두운 표정에서는 밝히기 꺼려하는 남다른 사연이 감지된다. 박절한 태식이 유일하게 소통하는 인물은 옆집 사는 소녀 소미(김새론)다. 그녀에게도 말 못할 사정이 있으니, 엄마가 마약 범죄에 연루된 것. 설상가상으로 엄마가 벌인 일 때문에 납치되기에 이른다. 제 자식과도 같았던 소미의 실종으로 태식은 결국 세상 밖으로 정체를 드러내게 된다. 그렇게 인간병기의 과거가 들통 난 태식은 소미를 찾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마약조직과 맞선다.

태식은 겉보기에 꽤 ‘무심한 듯 시크’해 보이지만 감정의 댐이 인내의 수위를 넘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통제가 힘든 인물로 묘사된다. 사실 태식이 아니더라도 소미처럼 맑은 영혼의 소유자가 범죄자의 손에 놀아난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라도 증오심을 떨치기 어렵다. 그렇다고 태식처럼 분노를 총알삼아 악인을 응징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감독들이 태식 같은 반(反)영웅의 이야기를 즐겨 영화화하는 것일 테다. 일찍이 반영웅의 매력을 스크린에 전시한 건 미국이 원조다. 이성보다 감정이, 법보다 주먹이, 교화보다 복수가 우선하는 태식의 행동에서 <레옹>(1994)이, <테이큰>(2008)이, ‘마이크 해머’의 그림자가 어룽거리는 것이다.

실제로 이정범 감독은 태식과 소미의 관계를 들어 극중 우유와 화분과 같은 소품을 통해 <레옹>에 오마주를 바쳤을 정도다. 세상에 나서길 꺼려하고 웬만한 자극엔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선 둘은 짝패라 할만하다. 하지만 한 번 시야에 들어온 먹잇감은 도대체가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테이큰>의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 브라이언(리암 니슨)이 연상된다. 또한 “소미를 찾아도 너희 둘은 죽는다.”는 태식의 비장한 대사는 폭력탐정으로 악명 높은 마이크 해머의 “살인범은 내 손으로 잡겠어. 그리고 마지막엔 내 손으로 방아쇠를 당기겠다.”는 분노 섞인 직설화법과 맞닿아있는 것도 흥미롭다. 사실 이정범 감독의 원안대로 태식의 캐릭터를 40대 설정으로 끌고 갔다면 이들과 더욱 가까운, 그러니까 아버지의 모습에 근접한 인물이 되었을 터다.

40대가 아닌 30대의 원빈 캐스팅 덕에 <아저씨>에는 뭔가 제한적인 섹슈얼리티가 기묘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젊은 원빈의 육체가 상대방과 충돌하면서 생기는 액션의 편린이 스크린 밖으로 섹스어필한 면을 제공하지만 스크린 안에서는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 이는 태식이 몸과 마음을 바치는 대상이 초등학생인 소미인 까닭과 무관치 않다. 이처럼 태식의 제한적인 섹슈얼리티를 ‘이정범의 남성성’이라고 불러도 큰 무리는 아닐 듯 보인다. 이것이 바로 이정범 연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정범 감독은 (비록 두 편의 영화에 불과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마초 주인공을 대상으로 인간이란 감정을 불어넣어 모나지 않은 마초로 탈색화하는 작업에 매력을 느낀다.


<열혈남아>의 진화형?

<아저씨>는 액션에 공을 들인 배우와 스태프 이하 노고의 흔적이 역력하다. 아무래도 태식의 분노가 표출되는 액션이니 만큼 수위가 높고 무엇보다 극비 특작부대의 ‘섬멸요원’으로 복무했던 전력의 소유자답게 엄청난 스피드를 요하는 무술을 선보인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필리피노 칼리’와 ‘아르니스’라고 부르는 동남아 무술을 가져왔다고 한다.) 액션에 힘을 들인 연출에 맞먹을 정도로 태식이 베일에 싸인 마약 조직을 쫓는 과정은 ‘발로 쓴’ 르포를 방불케 한다. 마약 밀매 과정에서 아이들은 어떤 역할을 맡는지, 그 후 이들이 어떻게 버려져 장기 적출을 당하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지가 낱낱이 폭로된다.

<아저씨>가 액션영화 (또는 복수극)의 테두리를 뛰어넘어 좀 더 사회적인 발언처럼 느껴지는 건 마약밀매의 실제적 세계에 대한 탐문에서 비롯된다. 소미의 납치에서 시작한 태식의 추적이 단계를 거듭할수록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부조리의 단편들이 아귀를 맞춰 거대한 악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아저씨>는 느와르(noir)보다 하드보일드(hard-boiled)란 명칭이 더 어울린다. 느와르가 일종의 세계에 대한 스타일의 현시(顯示)라면 하드보일드는 곪아터진 세상에 맞서는 인물의 상태를 예후하는 용어에 가깝다. (하드보일드는 추리보다 주인공의 행동에 초점을 맞춘 작품을 가리키기도 한다.)

하드보일드는 시간과 공간에 가장 밀접하게 반응하는 장르다. 하드보일드는 그 시대와 지역의 특성을 따른다. 하드보일드가 다루는 범죄를 보면 동시대 우리 사회의 환부가 파악 가능하다. <아저씨>가 묘사하는 감때사나운 범죄의 풍경은 곧 우리가 처한 비극적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저씨>의 액션이 관객에게 쾌감을 선사한다면 그것은 액션 그 자체보다 액션이 추동하는 배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그렇다. 아동 대상의 범죄는 지금 우리의 증오심과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끓는점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아동 대상 범죄에 맞춰 경찰력의 예방이 만족스럽게 이뤄지지 못하다 보니 우리는 좀 더 강한 힘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아저씨>는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제작된 영리한 상업영화다. <아저씨>는 그 수단이 폭력일지언정 영화로나마 관객의 은밀한 욕구를 대리만족토록 기능한다. 관객의 대리만족을 위해 소환된 태식의 죄의식을 건드리는 것은 그의 과거다. 태식은 과거 임신한 부인의 죽음으로 세상 빛을 보지 못한 아이에 대한 죄의식을 원죄처럼 안고 살아가는 인물로 설정된다. 죄의식은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다. 그런 이유로 이정범 감독은 남자들, 특히 거친 남자들의 죄의식을 자극해 인간다움에 대해 발언했다. <열혈남아>가 조폭 재문(설경구)으로 하여금 어머니에 대한 죄의식을 건드렸다면 <아저씨>는 부성애를 일떠세워 이 험한 세상에 맞선다.

다만 재문이 느끼는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나 태식이 갖게 되는 부성애는 피를 나눈 혈육이 아닌 각각 복수를 감행한 상대방 조직원의 어머니, 이웃집 소녀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반대로 이들이 행하는 원죄는 재문이 몸담은 폭력조직, 태식의 가족으로 인해 발생한다. 한국 사회에서 조폭과 가족은 일종의 신화다.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조폭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 또한 한국 사회 대부분의 악의 근원지다. (<마더>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타인을 희생물 삼는 가족 이기주의의 고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정범 감독은 조폭과 가족의 영역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인간다움을 논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와 관련, 재문과 태식이 용서를 구하는 형태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열혈남아>의 재문은 죽음으로써 원죄를 사하였다. <아저씨>의 태식은 죽음을 선택하는 순간, 소미의 등장으로 구원에 이른다. 죽음은 자신으로 인해 발생하는 악의 고리는 끊을지언정 그 이상 퍼져나가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태식은 죽음 대신 갱생을, 더 나아가 사회의 정화를 택한다. 소미를 끌어안은 태식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끝맺음하는 <아저씨>의 결말은 그가 아이를 위해 살 것임을 암시한다. 피를 나누지 않은 이들끼리의 연대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희망의 가능성에 다름 아니다. 사회 전체를 아름답게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견고해 보이는 가족 신화에 균열을 가한다. <아저씨>가 <열혈남아>와 동일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 파장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저씨>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태식의 의지처럼 이 험한 세상 적어도 무릎 끓지 않겠다는 결기가 강하게 느껴진다. <열혈남아>의 성취를 넘어 한국형 액션의 혹은 하드보일드의 진화형으로 손색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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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10.8.10)

<아저씨>(The Man from No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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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정(이하 ‘최’) 오늘은 어떤 영화로 우리를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건가요?
허남웅(이하 ‘허’) 저는 아직도 이 사람이 왜 아저씨 반열에 올랐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원빈이 아저씨로 출연한다고 해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아저씨>(8월 4일 개봉)입니다.

어머, 원빈이 아저씨로 출연한다고요? 그게 가능한가요?
영화에서는 가능합니다만, 이게 말이나 됩니까. 저 같은 아저씨들은 어찌 고개 들고 살라고 말이죠. 근데 실은 원빈이 아저씨인 이유가 있습니다.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은 말 못할 사연을 안고 전당포를 운영하는 비밀스러운 인물 태식으로 등장하는데요. 유일하게 마음을 여는 대상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미라는 이름의 소녀입니다. 근데 이 소녀의 어머니가 범죄에 연루되면서 소녀가 인질로 잡혀가는 일이 생기고요. 그러면서 소녀를 구하기 위해 원빈이 연기한 태식이 가담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태식의 과거도 밝혀진다는 내용입니다.

이야기만 들어도 굉장히 남성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데요?
<아저씨>는 원빈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데요. <마더>에서는 다소 덜 떨어진 아들 역할을 맡았었죠. 굉장히 순박했던 인물이었던 것에 반해서 <아저씨>에서는 마초적인 인물을 연기합니다. 근데 마초적이라고 해서 여자를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그런 의미는 아니고요. 남성미가 넘친다는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마초입니다. 어린 소녀를 구하기 위해 자기 몸과 마음을 바친다는 남성은 얼마나 멋진가요. 멋지지 않나요?

그런 남자를 만나면 원이 없죠.
그게 또 원빈의 매력인 것 같아요. 영화 출연작만 해도 <킬러들의 수다>나 <마더>에서는 웃으면 티 없이 맑은 우리 아기 같은 영혼처럼 비치다가도 <우리 형>이나 <아저씨> 같은 작품에서는 야성적인 느낌을 선보이잖아요.

야성적인 느낌이라면 액션이 빠질 수 없겠군요?
물론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원빈이 외모만 활용하는 배우가 아니라 몸을 사용하는데도 능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저씨>의 무술감독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상한 것보다 그림이 잘 나왔다고 하네요. 이 영화에서 쓰인 무술이 동남아의 ‘필리피노 칼리’와 ‘아르니스’라고 하는데 엄청나게 스피드 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원빈이 잘 했다는 얘기가 되고요.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원빈이 비밀을 간직한 인물인 만큼 말이 거의 없는 인물로 나와요. 간혹 대사를 치는데 그 대사들도 거의 단문 형식에 불과한데 굉장히 심금을 울려요. 무슨 말인가 하면 그만큼 몸으로 펼치는 액션 연기가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짧은 말 한 마디가 위력이 있다는 얘기거든요. 제가 알기로 원빈은 여성 팬에게 어필하는 배우지만 <아저씨>의 원빈 연기는 아저씨들마저도 팬들로 포섭할만한 연기를 펼쳐 보입니다.   

<아저씨>를 연출한 감독은 누구인가요?
이정범 감독이라고요, 예전에 설경구, 나문희, 조한선이 출연했던 <열혈남아>를 연출했던 감독인데요. 이정범 감독은 굉장히 마초적인 장르, 그러니까 <열혈남아>는 조폭 장르였고, <아저씨>는 액션물인데 여기에 모성애와 같은 인간적인 감정을 접목하는 것이 특징이에요. 마초를 세탁기에 넣고 인간적인 감정이라는 세제를 넣어 돌리면 부정적인 마초 때가 쏙 빠진다고 할까요. <아저씨>의 경우, 감독의 표현에 의하면 “옆집 아저씨가 소녀를 구하는 설정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이 영화를 시작했다고 하거든요. 다시 말해, <아저씨>는 ‘액션영화가 부성애를 만났을 때’라고 생각하면 될 만한 장르입니다.

하지만 극중 옆집 아저씨인 원빈과 소녀는 피를 섞인 관계는 아닌데 납치당한 소녀를 위해 아저씨가 뛰어든다는 설정이 가능한가요?
바로 그 지점에 이 영화의 작은 비밀이 숨겨져 있기도 하고요. 이와 관련해서, 제가 흥미로웠던 것은 말씀처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이 맺는 소통의 관계였는데요. 최근 보면 아이 관련한 큰 사고들이 잇달아 벌어지고 있어 공분을 사고 있잖아요, 그것에 대한 일종의 대리만족처럼 <아저씨>의 주인공 원빈이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서슴지 않는 범죄 집단에 단죄를 가하고 있고요. 극중 소녀의 경우도 보면 엄마가 있긴 하지만 전혀 보살핌을 받지 못해요. 대신 극중 아저씨가 그런 감정을 주는 것인데 영화를 인간의 감정 교류는 단순히 피를 나눴다고 이뤄지는 건 아니잖아요. 아마 그런 게 소통일 것이고. 그래서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그런 관계와 소통을 보여주려고 했던 게 아닌가 해요. 다만 문제는 그런 정서를 깔고 있다는 전제를 감독이 하고 있는 것인지 극중 아저씨와 소녀의 관계가 깊이 들어가는 건 아니거든요. 관계의 묘사는 다소 피상적인 게 사실이죠.

소녀 역의 연기도 그만큼 중요했을 텐데요, 누가 연기를 했나요?
김새론이라고요, 우니 르콩트 감독의 <여행자>라는 작품에 출연해서 아빠에게 버림받은 아이 연기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이목을 끈 적이 있어요. <아저씨>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일화가 김새론은 그 전까지 원빈이 누구인지 몰랐데요. <아저씨>를 하면서 비로소 원빈을 알게 됐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워요. 그러니 옆집 아저씨라도 이런 아이가, 비록 영화이긴 하지만 납치됐다고 하면 가만히 있을 리 없잖아요.

그럼 <아저씨>는 어떤 분들이 관람을 하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까요?
당연히 여성분들, 원빈이 너무 멋있으니까. 아니 예쁘니까. 다만 안타깝게도 <아저씨>는 잔인한 장면들이 생각 외로 많이 나오거든요. 아무래도 아이를 납치해간 이들에게 단죄를 가하는 영화이니 만큼 잔인한 장면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이런 장면을 잘 못 보시는 분께서는 염두에 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소식 감사합니다.


세상을 여는 아침 최현정입니다사용자 삽입 이미지
MBC FM4U(6:00~7:00)

<마더>의 혜자가 ‘여자’에서 ‘엄마’가 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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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의 오프닝은 무척이나 강렬하다. 반듯한 엄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김혜자가 추레한 몰골로 광활한 갈대밭을 헤매다가 느닷없이 막춤을 춘다. 얼굴을 보면 넋이 나간 표정이 역력하다. 정상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김혜자가 미쳤다! ‘국민엄마’에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봉준호에게 장르는 익숙한 형식의 전형이 아니라 비틀기의 대상이다. <살인의 추억>은 끝내 범인의 정체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미스터리 스릴러의 공식을 배반했고, <괴물>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족이 등장해 할리우드와는 차별되는 한국형 괴수물을 창조했다. 봉준호가 <마더>에서 비트는 장르는 ‘김혜자’다. 김혜자라는 장르는 완벽한 어머니 상을 대표한다. 그녀는 한국의 모성신화다. 하지만 봉준호는 모성애의 극단을 보여주겠다며 국민엄마의 이미지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마더>의 오프닝은 그런 감독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목적은 극중 엄마인 혜자가 미친 이유를 밝히는데 있다. 발단은 아들 도준(원빈)의 여고생 살인 누명 죄다. 엄마에게 도준은 “물방개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애”다. 그녀 입장에서 보건데 아들이 잡혀간 이유는 순전히 좀 모자란 아이이기 때문이다. “항상 만만한 게 우리 도준이지”라고 형사 제문(윤제문)을 원망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공권력에 대한, 더 나아가 사회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있다. 그래서 엄마는 자신이 스스로 도준의 무죄를 추적하기에 이른다.

<마더>는 봉준호의 필모그래프에서 가장 추리소설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엄마가 준(準)수사관이 되어 탐문과 추리, 목격담을 통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건에 접근해가는 방식도 그러하거니와 그 과정에서 봉준호 월드 특유의 엇박자스러운 느낌이 상당 부분 배제돼있다. 심각한 순간에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이 영화에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마더>는 전작과 비교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경우가 잦다. 특히 공포를 자아내는 시점이 (도준이 사건에 연루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엄마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자식 잃은 혹은 자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어미의 공포가 짙게 배어있는 것이다.

봉준호의 전작들을 보면 자식(과 아이들)은 하나같이 온전한 형태가 아니었다. 엄마 뱃속에 있거나(<플란다스의 개>),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당하고(<살인의 추억>), 납치당한 후 주검으로 돌아온다(<괴물>). 급기야 <마더>에서는 살인죄를 뒤집어쓰기까지 한다. 기본적으로 봉준호 영화의 기저에는 부모의 공포가 깔려있었던 셈이다. 그중에서도 <마더>와 <괴물>은 직접적으로 가족을 다루는 까닭에 흥미로운 비교 대상이다.

두 영화는 모두 가족의 사투를 다루지만 <괴물>은 부성을, <마더>는 모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일종의 상대급부로 기능한다. <괴물>이 아버지의 성장을 다룬다면 <마더>는 엄마의 성장을 그린다. 더 정확히는 주인공 혜자가 여자에서 엄마가 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이는 엄마를 여자로 인식하지 않는 저변의 의식에서 출발한다. 엄마를 섹스하지 않는 무성의 존재로 바라보는 한국인 특유의 시선이 담겨있는 것이다.

<마더>에서 노골적으로 제시되는 성적인 코드는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너 여자랑 자봤어?” “어” “누구?” “엄마” 진태(진구)와 도준이 나누는 얄궂은 대화에서부터 한 이불에서 서로의 몸을 밀착하는 모자간의 잠자리, 진태 집에 몰래 숨어들어간 혜자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질펀한 섹스까지. 그중 어두운 약재상 안에서 좁고 기다란 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는 혜자의 시선은 명백히 여성의 성기를 시각화하는데, 동일한 장면이 수미쌍관을 이룬다는 점에서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첫 장면에선 바깥을 보며 작두질하던 혜자가 손을 베어 피를 흘림으로써 생리가 가능한 ‘여자’로 비추는 것에 반해 마지막엔 안전하게 작두질에 성공함으로써 ‘엄마’가 됐음을 알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혜자가 미친 이유를 밝히는 영화의 목적은 곧 엄마는 왜 섹스와 별개의 존재가 되었는지를 따라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이를 작동시키는 변곡점은 아들 도준의 살인사건이다. 사건 전까지 이들 모자관계는 어쩌면 남녀관계일 수도 있을 만큼 모호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누명을 쓴 줄 알았던 도준이 실은 진범이었음이 밝혀지는 순간, 혜자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만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오프닝에 제시됐던 그녀의 넋 나간 얼굴을 다시 한 번 클로즈업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표정에서 하나의 질문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가슴 찢어지는 자식의 진실을 마주한 순간, 당신이 엄마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마더>는 진범 찾기보다 진범을 찾은 후 이에 대응하는 엄마의 행동을 통해 모성의 극단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자식 때문에 엄마가 미칠 수밖에 없는 원인을 밝히는 것이 <마더>의 목적이다. 봉준호 감독의 말을 빌자면, “<남극일기>의 도달불능점처럼 모성의 최극단에 가보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도준이 진범임을 밝히면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간다. 거기에는 제 새끼의 죄악마저 눈감아 줄 수 있는 이기적 모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결국 가족의 행복을 지키기 위함인데 다만 혜자의 모성이 더욱 지독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다른 이를 희생함으로써 획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혜자가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시키는 대상이 자신보다 더 약자라는 데 있다.

봉준호 영화에서 약자는 늘 주인공이었고 약자를 도와주지 않는 사회의 시스템과 사투를 벌였으며 그래서 약자끼리 연대했다. <마더> 역시 약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강자에 대항하기는커녕 약자와 약자끼리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작들과는 확연히 차별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더욱 어두워졌다. 약한 자를 밟고, 약한 자의 지분을 빼앗아야만 가정의 행복을 지킬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괴물이 되지 않고서는 이 험한 세상 (혹은 부자들만의 나라)에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안 그래도, ‘엄마=괴물’이라는 등식은 전작 <괴물>에서 이미 등장했었다. 한강에 방류된 독극물, 즉 한국에 존재하는 온갖 부조리를 씨앗삼아 태어난 괴물은 강두(송강호) 가족에게 부재한 엄마의 상징이었다. 단적인 예로, 강두가 괴물의 입에서 딸 현서를 꺼내는 장면은 출산에 다름 아니었다. 다만 강두는 현서(고아성)를 잃는 대신 세주(이동호)를 얻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보자면 <괴물>은 ‘가족의 탄생’이었던 셈이다. <마더>는 ‘가족의 유지’다. 아버지까지 부재한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 자식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혜자, 아니 오로지 ‘엄마’뿐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살인(murder)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mother)는 괴물의 다른 이름이다.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라면 망각하는 것일 뿐.

한국영화사에 명장면으로 회자될 관광버스 장면은 망각을 방패삼은 모성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뒷자리에 앉은 혜자는 허벅지에 침을 놓음으로써 도준의 살인을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그럼으로써 동시에 혜자는 여자라는 자신의 성도 망각하고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제 엄마는 아들에게 가슴을 내어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들 또한 엄마와 잔다는 얘기를 입 밖에 꺼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아들을 보호하는 것만이 그녀의 임무이자 의무가 됐다. 이는 곧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의 비극이요, 운명이다. 그래서 오프닝에서 혼자 춤추던 혜자는 엔딩에 이르러 관광버스 막춤을 추며 동네 엄마들과 한데 뒤섞인다. 봉준호는 김혜자라는 숭고한 모성신화를 해체하고 새로운 모성신화를 완성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프레시안
(2009.6.8)

5월은 <마더>의 달 봉준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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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계절의 여왕, 또 누군가는 가정의 달, 또또 누군가는 징검다리 연휴의 달이라고 얘기하지만 5월은 대박영화의 달이라고 이 필자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왜냐고? <스타트렉: 더 비기닝>부터 <천사와 악마> <박물관이 살아있다2>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이하 <터미네이터4>), 그리고 <마더>까지, 블록버스터 영화가 떼거지로 개봉하니까.


<마더> 아빠 없는 하늘 아래

허나 ‘5월은 <마더>의 달 봉준호 세상’이라고 마더송을 제창해도 될 만큼 <마더>(5/28 개봉)를 향한 국민적 기대치는 김연아, 박태환에 모아지는 그것을 1.73배가량 능가하는 형국이다.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등 영화 제목 국산화를 선도해온 봉 감독이 <마더>에서 영문 제목으로 유턴하며 변신을 예고하는 통에 당 영화는 일찌감치 2009년 한국영화의 지존으로 자리 잡은 터.

‘국민엄마’로 추앙받는 김혜자가 마더로, ‘국민꽃돌이’ 원빈이 아들로 출연, <전원일기>의 금동엄마와 금동의 관계에 오마주 바치는 것 아니냐며 갖은 추측이 난무했더랬는데 <마더>는 전혀 사맛디 아니한 이야기다. 집나간 아들을 향해 빤쓰끈 줄여 놨다, 컴백 홈 해다오 눈물로 호소하던 엄마가 아들의 살인 소식을 접하곤 누명을 풀어주기 위해 특유의 마더파워를 과시한다는 이야기다.

그럼 파더는 뭐하고? 당 영화는 철저히 아빠 없는 하늘 아래에서 진행된다. 전작 <괴물>에서 아빠를 전면에 내세워 부성애를 보여준 까닭에 <마더>에서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모성애의 결정체를 탐구생활해보겠다는 것이 봉 감독의 자세다. 그래서 ‘봉 감독의 변신은 무죄!’야 말로 <마더>의 밑줄쫙 관람 키워드다.


<터미네이터4> 새로운 시작

미제산 대박무비 쪽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라면 단연 <터미네이터4>(5/22)다. 박힌 돌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뽑힌 자리를 배트맨의 탈을 벗은 크리스천 베일이 굴러와 박혔다. 고로 기존 세 편의 <터미네이터>와 안녕을 고한 <터미네이터4>는 미래를 배경으로 새로운 시리즈의 서막을 열어 제친다는 점에서 기대할 법한 영화인 것이다. 5월은 곧 죽어도 가정의 달이다, 가족영화를 소개해다오 눈물로 호소하는 그대들에겐 <박물관이 살아있다2>(5/22)를 추천하는 바이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웃기고 자빠진 행각을 벌였던 벤 스틸러가 이번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배꼽을 강타할 빅웃음을 선사할 예정이란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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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OOK
2009년 5월호

빅 매치! <박쥐> vs <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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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계신 <아레나> 독자 여러분,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상반기 충무로를 달굴 문제적 두 무비, <박쥐>(4/30 개봉)와 <마더>(5/28)의 미리 보는 명승부전을 중계방송 해드리겠습니다. 본격적인 대결에 앞서 간략하게 선수소개 있겠습니다.

선수소개  먼저 홍코너 박찬욱의 <박쥐>로 말할 것 같으면, 어머나 세상에! 한국영화계에선 유례가 없는 흡혈귀 무비에요. 항간엔 제목을 거꾸로 읽으면 ‘쥐박’이 된다고 하여 상위 1%를 위해 서민‘s Life를 절단 내고 있는 現정부를 향한 복수무비일 것이라는 평가가 잇따랐더랬는데, 오해입니다. 당 영화는 천주교 신부께옵서 수혈을 잘못 받아 배트맨 아니 뱀파이어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맞서는 청코너 봉준호의 <마더>는 ‘괴물’이 주인공이었던 전작과 달리 인간, 그것도 모자(母子)가 주인공 듀오로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군요. 살인사건에 휘말린 아들의 누명을 풀기위해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타나는 마더의 고군분투기를 다뤘다고 합니다. 마더 테레사도 울고 갈, 지는 모르겠지만 주최 측에 따르면 심금을 울리고, 오금이 저리고, 심지어 손발까지 오그라드는 영화가 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아~ 말씀드린 순간, 1 Round 공이 울렸습니다.

1 Round  <박쥐>는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복수 삼부작을 완성한 박찬욱 감독의 또 하나의 삼부작이라 할 만합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와 제작자로 참여한 <미쓰 홍당무>, 그리고 <박쥐>까지. 로봇과 채소, 조류를 제목으로 붙인 걸 보아 ‘비인간 삼부작’에 대한 야망을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데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미쓰 홍당무>의 연달은 흥행실패로 비인간적인 관객에게 배신감을 느낀 박 감독이 ‘이래도 정말 안 볼래!’ 밀어붙이는 심정으로 작정하고 만든 작품인 거 같아요. 다시 한 번 비인간 주인공 흡혈귀를 앞세워 모든 걸 쏟아 부은 작품인 거죠. 정말이냐고요? 아님 말고. 그에 반해 <마더>는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로 영화 제목 국산화를 선도해온 봉준호 감독이 영문제목으로 유턴한 경우에요. 국내 영화제목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한 이번 사태에 대해 혹자는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고 싶은 봉 감독이 자신의 심정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라고 분석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마더>를 비롯하여 <박쥐>까지 두 편 모두 칸 영화제 경쟁부문 가능성이 높아 동반진출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2 Round  흡혈귀 vs 모자, 흡사 무(모)한 도전 시즌1의 인간 vs 소의 줄다리기를 연상시키는 이번 대결에서 <박쥐>와 <마더>가 내세우는 핵심 소재는 각각 불륜과 모성애입니다. <박쥐>가 높은 수위의 응응응 장면 때문에 여배우 캐스팅에 난항을 겪은 일화는 유명하죠. 흡혈귀로 분한 송강호가 절친의 여자 김옥빈과 사랑을 나누는 <박쥐>의 부제를 단다면, 송강호에겐 ‘불륜은 나의 것’, 김옥빈에겐 ‘흡혈귀지만 괜찮아’일 정도로 <색, 계>의 그것을 넘어설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해요. <마더>에는 <박쥐>처럼 관객의 대뇌피질에 피가 되고 살이 될 응응응 장면은 없어요. 혹시 이런 거 기대하고 <마더> 보러 간다면?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아, 좋지 않은 짓이에요. 대신 영화는 모자 관계에 초점을 맞춰 사골국물처럼 순수한 모성애의 결정체를 탐구합니다. 원빈처럼 티 없이 맑은 우리 아가가 누명을 썼는데 어느 마더인들 미치지 않겠어요. <남극일기>의 도달 불능점처럼 모성애의 마지막 남은 골수까지 쪽 파먹을 거라고 기염을 토합니다.

3 Round  근데 <마더>는 모성이 등장하는 첫 번째 봉준호 영화에요. <괴물>만 하더라도 엄마 없는 하늘 아래 펼쳐지는 아빠 이야기였더랬어요. 봉준호 영화에 약방에 감초처럼 변희봉이 안 나오면 배, 배, 배신이었는데 김혜자가 등장하는 건 그래서예요. 그 결과, <마더>는 <괴물>과 스타일이 많이 다를 뿐이고, 그래서 <마더>가 더욱 기대될 뿐이고. 반면 <박쥐>는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 전작의 빛나는 공식을 이어 받아 안으로 자기 색깔 확립하고 밖으로 관객 공영에 이바지하려는 기세가 등등합니다. 특히 박찬욱 영화에서 늘 리피트 되는 ‘도덕적 딜레마’, 즉 당 영화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흡혈귀로 형상화되니, 기존 뱀파이어 무비와 안녕을 고하고 New 뱀파이어 무비를 창조하려는 박 감독을 이길 자 그 누가 있겠습니까. <마더>? 그 결과가 궁금하시다고요? 결과는 <박쥐>와 <마더>가 개봉한 이후에 공개됩니다. 이상 <아레나>에서 알려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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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NA
2009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