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그대>(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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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그대>는 우디 알렌의 무려 40번째 작품입니다. 8명의 남녀노소가 등장해 저마다의 인생과 사랑을 가감 없이 들춰 보입니다. 일찍이 환갑을 넘긴 알피(안소니 홉킨스)는 늙어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제2의 청춘을 찾고 싶다며 조강지처인 헬레나(젬마 존스)를 쓰레기 처리하듯 버립니다. 그리고는 천박해 보이는 어린 삼류 배우와 결혼을 발표하죠. 일방적인 남편의 이혼 통보로 제정신을 잃은 헬레나는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 간신히 마음의 평화를 얻는데 성공합니다. 헬레나의 딸 샐리(나오미 와츠)는 그런 엄마가 불쌍하면서도 못마땅합니다. 밥 먹듯 점쟁이만 찾아나서는 엄마 때문에 남편 로이(조쉬 브롤린)와도 다툼이 끊일 날이 없습니다. 잘 나가는 의사에서 소설가로 데뷔 이후 이렇다 할 작품을 내지 못해서인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로이는 건너편 창가의 붉은 옷을 입은 신비스런 여인에게 집착하게 되고, 샐리 역시 부유하고 매력적인 직장 상사 그렉(안토니오 반데라스)에게 빠져듭니다.

우리에겐 한국인 아내 순이 프레빈과의 결혼으로 더 친숙한 우디 알렌 감독인데요. 이미 1969년 <돈을 갖고 튀어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에 반해 한국 관객에게는 <브로드웨이를 쏴라>(1996)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뉴욕 출신의 우디 알렌은 주로 뉴요커의 자의식과 죄의식,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와 강박증을 그대로 코미디 소재 삼아 영화세계를 구축해왔는데요. <돈을 갖고 튀어라> 이후 <애니 홀>(1977) <맨하탄>(1979) <카이로의 붉은 장미>(1985) 등 초창기 작품이 따발총 같은 수다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맨하탄 미스테리>(1993) <브로드웨이를 쏴라> <스윗 앤 로다운>(1999) 등 중기 작품은 특정한 상황이 만들어내는 코미디가 일품이었습니다. 최근 들어 뉴욕은 물론 런던(<매치포인트>(2005)), 바르셀로나(<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2008)), 파리(<자정의 파리 Midnight in Paris>(2011)) 등 세계 주요 도시를 순회하길 즐기는 우디 알렌은 인생의 비극에 더 많은 관심을 드러내는 것 같아요.

<환상의 그대>만 하더라도 이런 콩가루 가족이 있나 싶어요. 막장드라마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도대체가 가족에 대한 예의란 게 없어요. 알피와 젬마 부부는 말할 것도 없고 로이와 샐리 부부 역시 각자 그렇게 멋진 남편과 부인을 냉대하는 것으로 모자라 새로운 짝을 찾아 나서잖아요. 그럼에도 우디 알렌의 영화가 한국의 막장TV드라마와 다르다면, 품격이 느껴진다는 점일 거예요. 비극적인 삶의 풍경을 특유의 유머러스한 시선을 통해 통찰한다고 할까요. 우디 알렌의 영화는 무척이나 수다스럽지만 한편으로는 꽤나 지적입니다. <환상의 그대>는 시작과 함께 내레이션으로 다음과 같은 대사를 깔아놓아요. ‘셰익스피어는 일찍이 인생은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고, 그래서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라고 말이죠. <맥베스>를 인용한 대사인데요. 흔히 우리들은 인생을 굉장히 의미 있는 무언가로 생각하기 마련이잖아요. 우디 알렌이 보기엔 이런 인간들이 너무 미련하고 어리석은 거예요. 인생은 자신의 뜻과 달리 아이러니와 불확정성이라는 궤도 속에서 흘러가는 것이거든요.  

알피만 해도 그래요.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고 과감하게 아내를 버리잖아요. 근데 그렇게 해서 만나는 젊은 여자의 정체라는 게 전직 콜걸 출신이에요. 그런 여자에게 돈을 물 쓰듯 쓰다가 나중에야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깨닫게 되죠. 그런 후에 전 부인을 찾아가 재결합하자고 싹싹 비는데 이미 때는 늦은 거죠. 그게 바로 인생이란 거예요. 그러니까 우디 알렌이 보기에 인간의 욕망이란 건 부질없어요. 무의미한 욕망 때문에 오판을 되풀이하는 인간들이 우스워 죽겠어요. 그래서 제목부터 멍청한 인간들을 놀려먹기에 바빠요. <환상의 그대>의 원제는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인데 극중 점쟁이가 헬레나에게 ‘키 크고 어두운 외모의 이방인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점괘에서 따온 제목이에요. 사실 우리말로 치자면, ‘귀인을 만나다’ 정도가 될 텐데요. 웬걸, 우리의 주인공들이 귀인을 만나겠다며 부인을 내팽개치고, 남편을 한 데로 몰아넣고 만나는 새로운 인연이란 게 오히려 그들의 인생을 더한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계기가 되고 맙니다. 우디 알렌 감독 정말 심술궂지 않나요. 인생의 혹한기에 빠진 인간의 어리석음을 이렇게 제목으로 반어하고 있어요.

우디 알렌의 영화를 보면 우리의 땅콩영감이 신의 위치에서 인간을 조롱하고 있다는 게 너무 명백하게 드러나요. 카메라 운용 법만 해도 그래요. 공중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부감 숏이 적어도 한두 장면씩 어김없이 등장해요. 특히 인생의 비극에 집중하기 시작한 <매치 포인트> 때부터 이런 카메라 워크가 두드러지기 목격됐거든요. 아주 고약한 영감이에요. 자신이 신이라니. 사실 우디 알렌이 올해 우리 나이로 일흔 여섯입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한 어른이니 만큼 신의 위치에서 우리 인간사를 관찰한다고 해도 크게 무리한 설정은 아닌 거죠. 더군다나 알피의 설정은 어떤 면에서는 우디 알렌의 개인사를 연상시키기도 하거든요. 미아 패로우를 버리고 입양한 딸인 순이와 결혼한 우디 알렌의 처지가 보는 이에 따라 알피와 겹쳐진다고 할까요. 아무리 무거운 주제라고 해도 우디 알렌의 유머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자신을 버리는 태도에서 기인합니다. 내 인생과 상관없는 타인의 비극을 본다는 건 또 다른 의미에서 볼거리이기도 한데 우디 알렌처럼 그 자신까지 던져 비트니 그게 또한 얼마나 웃기겠어요. 근데 정말 <환상의 그대>를 보고 여러분은 맘 놓고 웃으실 수 있을까요? 그게 바로 우디 알렌의 모습이고 당신의 현실이고 우리의 인생인데 말이죠. 우디 알렌이 이렇게 서슬 퍼렇게 지적이랍니다. 정말 신이라고 해도 믿으시겠죠. 우디 알렌, 정말 ‘환상의 그대’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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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Enterainment Report
(2011.1.27)

<매치 포인트>(Match Point)


슬랩스틱 코미디(<돈을 갖고 튀어라>), 로맨틱 코미디(<애니홀>), SF 코미디(<슬리퍼>), 스릴러 코미디(<맨하탄 미스테리>), 뮤지컬 코미디(<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등 어떤 꺼리든 쪼물딱거렸다하면 뉴욕을 배경으로 한 특유의 코미디로 완성시켰던 우끼고 자빠라짐의 대가 우디 알렌.

이번엔 쫌 다르다. 지금 소개하는 <매치 포인트>는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모냥새를 지니고 있다. 일단 우디 알렌이 출연하지 않는다. 게다가 배경은 뉴욕에서 런던으로 이사하였다. 더군다나 땅콩영감 특유의 자폐적 개그도 사라졌다. 당 영화에서 선보이는 이야기는 웃음기가 쫄아든 순도 98% 정통 치정극이다.

테니스 강사로 하루살이 하는 크리스(조나단 리스 마이어 분). 부잣집 되련님 톰(매튜 굿 분)을 지도하던 중 그의 동생 클로이(에밀리 모티머 분)와 결혼에 골인한다. 그러던 중 톰의 애인이자 가난뱅이 배우 지망생 노라(스칼렛 요한슨 분)를 만나 첫눈에 뿅~ 사랑에 빠지게 되니 크리스는 쩐과 사랑 두 갈래 인생극장에서 운을 시험하게 된다.

당 영화에서 재미있는 설정은 주인공 크리스의 처지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와 일정부분 겹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감독은 크리스가 <죄와 벌>을 읽는 장면을 삽입하는 것은 물론이요, 가난에 비관한 라스콜리니코프가 노파를 살해하는 소설속 살해 장면을 크리스에 빙의해 비스 무리한 형태로 재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를 통해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건 몰까. 매치 포인트. 즉, 감독은 <죄와 벌>의 설정에 더해 테니스에서 공이 네트를 넘어가느냐 넘어가지 않느냐에 따라 마지막 1점이 승패를 가르는 순간을 대입하여, 삶은 의지나 노력보다는 운에 의해 좌지보지된다고 얘기한다. <죄와 벌>에서는 의지와 노력이 더 큰 가치를 갖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다르다는 의미.

이처럼 인생의 대가가 보기에 삶은 교과서처럼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단순히 도덕적으로 끌고가지 않고 보다 현실적으로 크리스의 인생이 운에 따라 결정되는 모습을 통해 세상은 원래 로또라고 인생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는 거다. 확실히 요리법은 바뀌었을지언정 그 요리의 맛이 보여주는 인생의 깊이라든지 이야기의 전개는 여전한 것이 어느 모로 보나 메이드 인 우디 알렌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하지만 그런 대가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그리 편한 것만은 아니다. 위에 언급한 ‘삶은 로또!’라는 성찰을 보기 위해서는 영화 중반부 동안의 지루한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

기존의 치정극에서 볼 수 없는 메시지를 담고있지만서도 이를 끌어내는 과정의 크리스와 노라의 치정관계는 배우자의 눈을 피해 나누는 아슬아슬한 사랑, 배우자의 의심, 예상치 못한 임신, 이에 따른 협박과 살인 등등 기존의 치정극에서 보여주는 전개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 치정극을 비틀기 위한 의도로 이런 전개가 필요했다는 거 모르는 바 아니지만 지루한 건 지루한 거다.

물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영화는 두 쥔공 쭉빵남녀가 엉키는 바디액숑을 보여주긴하지만서리 우디 알렌이 어디 그걸 야리야리얄라리스럽게 묘사할 사람인가. 그나마 스칼렛 요한슨의 살짜쿵 비치는 속살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 헝 그래도 너무 조아~

하여 당 영화는 영화적 완성도와 달리 그 재미가 뽕나게 뛰어난 편은 아니다. 우디 알렌 영화 애호가라면 두말할 필요 없이 베스트하게 볼 수 있겠지만 우디 알렌에 대한 사전지식이 별로 없는 이들은 낭패 보기 십상이다.

그런 점에 비추어 본 특위는 당 영화를 뮝기적에 봉한다.


(2006. 4. 10. <딴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