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치맨>(Watchmen)


사용자 삽입 이미지<새벽의 저주>(2004) <300>(2007)으로 유명한 잭 스나이더 감독의 방한에 맞춰 내년 3월 개봉 예정인 <왓치맨>의 영상 일부가 11월 10일 공개됐다. 이번 행사는 영상 공개는 물론 이에 따른 감독의 장면 소개 및 기자회견까지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미국과 영국을 제외하고 호주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진행된 이날 로드쇼에서 <왓치맨>의 영상은 10분씩 세 부분으로 나눠 총 30분 분량이 공개됐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영화들이 개봉 직전까지 기본 정보 외의 것을 공개하길 극도로 꺼리는 상황에서 <왓치맨>의 영상 공개는 꽤 이례적인 일이다. <왓치맨>의 원작인 동명의 그래픽 노블이 미국과 영국을 제외하곤 폭 넓게 알려지지 않은 까닭에 영화 개봉에 앞서 인지도 상승을 위해 전략적으로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의 영상은 <왓치맨>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라도 실체를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게끔 줄거리, 캐릭터, 볼거리에 맞춰 엄선돼 공개됐다. 비록 완성된 영화를 시사하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부분 영상만으로도 <왓치맨>의 진가를 파악하기에는 크게 부족함이 없는 자리였다.


원작에 충실하다

먼저 공개된 영상은 오프닝이었다. 때는 1985년. 정부 후원 하에 활동하는 코미디언(제프리 딘 모건)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 여부를 주제로 벌이는 TV 토론을 시청 중이다. 이때 갑자기 들이닥친 정체불명의 괴한의 습격에 한바탕 싸움을 벌이지만 힘에 밀리던 코미디언은 23층 창문 밖으로 내팽개쳐져 목숨을 잃고 만다. 이에 맞춰 배경음악으로 밥 딜런의 ‘시대가 변해가네’(The Times They are A-Changin’)가 흐르고 원작 만화의 주요 장면이 실사로 이미지화돼 몽타주(특정 장면을 병렬적으로 조합한 편집) 형식으로 제시되며 타이틀 시퀀스가 진행된다.

1960년대 당시 반전운동이 한창이던 미국에서 대표적인 민중가요로 불리던 ‘시대가 변해가네’를 타이틀 시퀀스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건 꽤 의미심장하다. <왓치맨>이 베트남전을 주요하게 언급하면서 미국이 승리했다는 가정 하에 슈퍼히어로가 출현하는 대체역사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미국의 영웅적 행위가 세계 평화를 불러왔다는 허무맹랑한 논리를 펴는 것은 아니다. <왓치맨>은 기존 슈퍼히어로물이 가지고 있던 설정을 완전히 해체한다. 정부를 위해 임무를 수행하는 슈퍼히어로라는 설정에서 이를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왓치맨’은 특정 슈퍼히어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감시자들’(Watchmen)을 뜻한다. 이를 통해 <왓치맨>은 미국 정부에 의해 이용당하는 슈퍼히어로에 의해 세상이, 시대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준다.

앨런 무어가 쓰고, 데이브 기븐스가 그린 그래픽 노블 <왓치맨>은 슈퍼히어로 집단이 그들과 연관된 살인사건을 위해 다시 뭉치면서 냉전 당시 그들의 목적을 다시금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1986년부터 1년 동안 DC코믹스를 통해 연재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왓치맨>은 잭 스나이더의 표현에 따르면, “그래픽 노블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슈퍼히어로의 활약을 흥미 위주로 다루던 기존 장르에 현실과 정치를 대입하니 슈퍼히어로물은 이제 그들의 가면 뒤에 감춰진 이야기, 즉 심리학적 리얼리즘이자 누아르로 변모했다. 하여 <왓치맨>은 표면상 코미디언의 의문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 형태를 띤다. 하지만 이면에는 정치적인 관점과 장르 자체에 대한 비틀기, 그리고 인간의 조건에 대한 깊이 있는 고뇌가 다층적으로 펼쳐진다.

<왓치맨>의 영화화에 많은 제작사들이 군침을 흘린 건 당연지사. 그동안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12개 챕터로 이뤄진 <왓치맨>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데는 실패했다. 잭 스나이더가 메가폰을 잡기까지 거쳐 간 감독의 면면은 화려하다. 테리 길리엄(<12 몽키즈> <여인의 음모>)은 2001년 <왓치맨>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며 이렇게 말했다. “<왓치맨> 각색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내가 원한 건 다섯 시간 버전의 TV 시리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레슬러> <레퀴엠>)가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이번엔 예산 문제로 꿈을 이룰 수 없었다. 폴 그린그래스는 <본 슈프리머시>(2004) 이후 차기작으로 <왓치맨>을 점찍었지만 비평적인 찬사만 받을 것이라고 우려한 제작사의 미온적인 반응으로 <유나이트 93>을 연출하기에 이른다.

사공을 많이 거치면서 <왓치맨> 각색은 그만 산으로 가고 말았다. 연출자로 확정된 이후 잭 스나이더는 각본을 보자마자 “이것이 정녕 <왓치맨>인가?” 할 정도로 원작이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1985년 배경이 2000년대로, 리처드 닉슨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 베트남전은 아랍권을 겨냥한 테러와의 전쟁으로 바뀌어 있었다. 잭 스나이더의 첫 번째 임무는 이야기를 본 상태로 돌리는 것이었다.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내 관점을 관객들이 궁금해 하겠나. 원작의 텍스트가 품고 있는 은유로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원작과 다르게 수정된 각본을 원작에 가깝도록 수정했다.”

잭 스나이더는 <왓치맨>의 대사를 술술 외울 정도의 열혈 팬이다. 하지만 그 사실만으로 잭 스나이더가 <왓치맨>의 최선의 연출자라고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다층적이고 복잡한 이야기를 두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압축해야 한다면 <본> 시리즈의 폴 그린그래스가 더 나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폴 그린그래스가 연출했다면 대단한 영화가 됐을 거다.” 15년 동안 <왓치맨> 프로젝트를 지켜봤던 프로듀서 로이드 레빈의 얘기다. “잭 스나이더도 마찬가지다. 조지 로메로의 <시체들의 새벽을>을,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 <300>을 멋지게 리메이크 하고 영화화하지 않았나.” 잭 스나이더는 “무엇보다 팬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원작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려 했다”고 연출 의도에 대해 밝힌다.


리얼리즘을 구현하다

두 번째로 공개된 영상은 닥터 맨해튼(빌리 크루덥)이 슈퍼히어로가 되는 과정이다. 시계수리공을 꿈꾸던 존 오스터맨은 냉전시대가 도래하자 물리학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된다. 그곳에서 만난 제인 슬레이터(로라 멘넬)와 사랑을 키워가던 중 원자물리학 테스트용 금고실에 갇히는 사고를 당하게 되니. 불멸의 초자연적 존재 닥터 맨해튼으로 거듭난다. 닥터 맨해튼은 베트남전에 참전해 항복을 얻어내고 미국 정부는 그 덕에 소련과의 대치 상황에서 유리한 지점을 확보한다. 하지만 그의 존재가 주변 사람들에게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닥터 맨해튼은 자진해서 화성으로 망명을 떠난다. 그의 공백을 타고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이 임박한다.

이 영상은 그래픽 노블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뜨린다. ‘원작에 충실하겠다’는 감독의 의도는 이야기와 대사는 물론 장면의 구도부터 소품에 이르기까지 만화의 컷을 그대로 재현한 연출에서 확인된다. 촬영감독 래리 퐁과 미술감독 마이클 윌킨슨은 “촬영 들어가기 전, 앵글의 구도가 맞는지, 다르게 배치된 소품은 없는지 해당 장면의 만화 컷을 다시 살펴보며 오차가 없도록 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할 정도다. 잭 스나이더 역시 이를 단 한 번도 제지하는 경우가 없었다. 감독 자신에게도 <왓치맨>을 연출한다는 건 곧 그래픽 노블의 컷들 속으로 직접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잭 스나이더 감독은 리얼리즘을 구현하려 했다. “<왓치맨>은 <300>과 같은 블루 스크린용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실제다.” 여기에는 <왓치맨>을 현대의 신화로 바라보는 감독의 정서가 반영돼 있다. 안 그래도, <왓치맨>은 슈퍼히어로물이지만 인간의 고뇌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전쟁에 대한 공포, 즉 세계 평화에 대한 도덕적 딜레마를 제공하는 <왓치맨>은 조화롭게 살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곧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의 도덕성에 대해 던지는 궁극적인 질문인 셈이다.

<왓치맨>의 세계관은 단순히 이야기와 대사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슈퍼히어로물이지만 종말론의 기운을 품고 있는 <왓치맨>은 누아르의 미술적 분위기가 흠뻑 묻어난다. 주요한 공간으로 등장하는 뉴욕은 익히 알고 있는 낭만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해가 비추는 날이 거의 없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에게서는 웃음기를 찾을 수 없으며 도시에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의 징후가 짙게 드리워 있다. 잭 스나이더의 아내이자 프로듀서인 데보라 스나이더는 “<왓치맨>은 미술적인 면에서 <택시 드라이버>와 유사하다. 거기에는 현실을 부정하는 비루함이 묻어난다”고 말한다.

이런 비루함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잭 스나이더에게 원작의 배경을 구현하는 실제적인 공간은 중요한 요소였다. <300>과 달리 CG를 위한 블루 스크린에서의 촬영을 최소화하고 세트작업을 늘린 건 이 때문이었다. 닥터 맨해튼이 망명을 떠나는 화성과 오지맨디아스(매튜 구드)의 남극 요새 장면을 제외하곤 모두 세트에서 촬영이 이뤄졌다. 그래픽 노블 속 뉴욕이 워낙 수많은 빌딩들로 짜인 형태일 뿐 아니라 광대한 음모이론이 기저에 깔려 있어 주로 내부에서 사건이 진행되는 까닭에 닫힌 공간이 주는 폐쇄성과 불안함을 어렵지 않게 구현할 수 있었다.

이는 흡사 견고한 성을 쌓는 과정과 흡사했다. 보충하자면, 원작자 앨런 무어는 <왓치맨>의 크레딧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했을 정도로 영화화에 반대했다. 조금이라도 구조가 흐트러지면 원작이 품고 있는 세계관이 훼손될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앨런 무어는 극중 또 다른 이야기인 <검은 수송선>을 삽입해 영화가 절대 구현할 수 없는 그래픽 노블만의 구조를 창조했을 정도다. (<검은 수송선>은 영화 속에서 다뤄지지 않지만 이후 DVD에 삽입될 예정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잭 스나이더는 앨런 무어를 작가로, 예술가로 존경하는 입장에서 “그의 원칙을 최대한 존중해 영화적인 접근을 시도했다”고 밝힌다. 주관적 해석이나 관점을 철저히 배제한 잭 스나이더의 리얼리즘은 곧 원작의 견고한 구조에 티끌만 한 흠집도 내지 않으려는 그래픽 노블 그 자체의 리얼리즘 실현이었던 셈이다.


캐릭터의 재미를 배가하다

마지막 영상은 나이트 아울Ⅱ(패트릭 윌슨)와 실크 스펙터Ⅱ(말린 애커맨)가 감옥에 갇힌 로어셰크(재키 얼 할리)를 구출하는 장면이다. 이들 셋은 그 전까지 어떤 기로에 서 있었다. 나이트 아울Ⅱ는 일찍이 슈퍼히어로를 은퇴한 후 나약하게 생을 보내던 중이다. 실크 스펙터Ⅱ는 그녀의 어머니와 코미디언 사이에 있었던 과거 일로 연인인 닥터 맨해튼과의 사이가 악화되고 그가 화성으로 떠나버리자 마음을 잡지 못한다. 로어셰크는 누군가의 계략에 빠져 감옥에 수감돼 정체가 탄로 난 상태다. 습관처럼 집에 돌아온 나이트 아울Ⅱ 앞에 실크 스펙터Ⅱ가 나타나고 서로를 위로 삼아 원기를 회복한다. 이를 계기로 로어셰크를 구출한 이들은 본격적으로 사건의 배후를 캐기 시작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원작과는 약간의 변화를 꾀한 슈퍼히어로의 모습이다. 특히 나이트 아울Ⅱ의 경우, 그래픽 노블에서는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해 힘도 빠져 있고 늘 졸린 모습으로 다니지만 영화에서는 격투에 능한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등장한다. 잭 스나이더는 “나는 액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원작에는 액션 장면이 별로 없지만 이것만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서 최대한 많이 넣으려고 했다”고 캐릭터 변화의 의도에 대해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는 원작을 최대한 존중하려는 애초 기획 의도에서 벗어난 것이 아닌가.

아니다. 이 또한 앨런 무어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한 결과다. 사실 앨런 무어가 <왓치맨>을 기획할 당시, 그는 DC코믹스가 권리를 가지고 있는 기존의 마이너한 슈퍼히어로들을 합법적으로 사용하려 했다. 기존 역사를 뒤집어 대체역사물의 형태를 띠고 있는 만큼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는 것보다 대중적으로 친근한 슈퍼히어로를 등장시켜 슈퍼히어로물에 대한 비틀기를 시도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DC는 이미 앨런 무어와 데이브 기븐스가 관심을 갖던 블루 비틀과 캡틴 아톰 캐릭터를 가지고 또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었고 결국 나이트 아울과 닥터 맨해튼, 로어셰크와 실크 스펙터를 창조하기에 이른다.

이를 모를 리 없던 잭 스나이더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왓치맨> 캐릭터에 기존 캐릭터를 혼합하는 방식을 택한다. 예컨대, 나이트 아울Ⅱ는 앨런 무어가 가져오길 원했던 블루 비틀과 크리스토퍼 놀란 버전의 배트맨 코스튬을 얼마간 도용(?)해 변화를 준 캐릭터다. 다만 닥터 맨해튼의 경우, 원작에서부터 이미 슈퍼맨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캐릭터였기에 영화 속에서는 원작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낸다. (사실 가장 크게 변화한 캐릭터는 오지맨디아스다. 원작의 모습은 시대에 너무 뒤떨어진다고 연출진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앨런 무어가 슈퍼맨을, 잭 스나이더가 배트맨을 특별히 고른 건 이들 캐릭터가 슈퍼히어로를 대표하는 까닭에 일종의 패러디 효과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던 탓이다. 이를 통해 노리는 효과는 바로 이것이다. ‘만약 슈퍼히어로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앨런 무어는 슈퍼맨을 이미 시효가 다한 캐릭터로 봤다. 선악이 혼재한 작금에 선을 대표하는 슈퍼맨은 시대에 뒤떨어진 캐릭터였던 것. 그래서 닥터 맨해튼은 갈수록 인간에 대한, 세계 평화에 대한 관심을 잃을 뿐 아니라 오히려 미소 간 핵전쟁의 위험을 가중시키는 역할로 기능하기까지 한다. 잭 스나이더의 배트맨? 나이트 아울Ⅱ는 성불구자 비슷하게 등장하는데 이 같은 설정에는 세계 평화를 앞당기기 위한 중요한 열쇠가 담겨 있다.

종합해보면, 결국 <왓치맨>은 간단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굉장히 복잡한 답변을 준비해두고 관객의 생각과 변화를 요구한다. 다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극중 중요한 메타포로 쓰이는 문구 ‘누가 감시자들을 감시하는가?’(Who Watches the Watchmen?) 이제나 저제나 <왓치맨>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관객들은 2009년 3월 5일까지 이 영화의 움직임을 언제, 어디서든 예의주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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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 414호
(2008.11.25)

<왓치맨> 잭 스나이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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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왓치맨>의 연출을 맡게 됐나?

이 작품은 20년 전부터 영화화가 시도됐지만 결국 오늘에야 영화로 만들어지게 됐다. 많은 유명 감독들이 기획에 참여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나는 <왓치맨>의 열혈 팬(Fan Boy)이었던 터라 워너브러더스의 제안을 받고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던 한편 부담스럽기도 했다. 이 작품을 영화화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감독을 꿈꿨다면 당연히 <왓치맨>의 영화화를 생각해봤을 텐데?
작품 자체로 즐겼다. 그럼에도 연출 제의가 들어왔을 때 흔쾌히 승낙한 건 처음에 스튜디오가 보여줬던 각본이 원작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거절하면 다른 누군가가 왜곡돼 있는 각본을 그대로 영화화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스튜디오에서는 내가 <왓치맨>을 좀 더 상업적인 작품으로 끌고 가길 바랐던 것 같다.

<왓치맨>을 처음 봤던 때가 기억나나?
어머니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판타지물 <헤비메탈>을 성인물인지 모르고 정기구독을 했다. 내 나이 12살 적 일인데 섹스와 폭력이 난무하는 작품이다 보니 이후에 보게 된 작품들은 시시했다.(웃음) 1986년 두 편의 그래픽 노블이 연재되기 시작했는데 <왓치맨>과 <다크나이트 리턴즈>였다. 그때부터 다시 코믹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전작인 <300>은 프랭크 밀러의 동명 그래픽 노블이 원작이었다. 특별히 그래픽 노블의 영화화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나?
억지로 그래픽 노블을 영화화하겠다고 목표를 세운 건 아니다. 이런 소재들이 할리우드에 채택되면서 자연스럽게 내게 연출 의뢰가 들어왔고 운 좋게 트렌드로 형성됐다. 내가 추구하는 미적인 부분과 상당 부분 부합하는 면도 있고.

원작에 굉장히 충실하다. 그래픽 노블의 특정 컷을 그대로 재현한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원작에 대한 애정이 커서 그렇다. <300>에서도 그랬지만 관객들에게 그래픽 노블을 읽는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이미지를 원작과 비슷하게 가는 것이 개인적 취향이다. 만약 소설이 원작이었다면 원문에 가장 충실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을 것 같다.

애초부터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것이 원칙이었나?
다니엘 크레이그, 톰 크루즈, 키아누 리브스 등과 같은 배우들과도 접촉했다. 이런 대형 스타들은 투자한 것만큼 충분한 가치를 발휘하긴 하지만 비용이 너무 높다. 게다가 <왓치맨>은 한 명의 스타만으로 완성될 수 없는 작품이다. 만약에 톰 크루즈를 섭외한다면 다른 역할에도 그에 상응하는 스타를 데려와야 한다. <왓치맨>은 대형 서사시와 같은 작품이라 캐릭터를 감안해 능력 위주로 캐스팅해야 했다.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캐릭터가 워낙 중요한 작품인 만큼 배우들에게 특별히 요구한 것이 있을 법하다.
그렇다. 만약 원작을 읽지 않았다면 정독을 해서라도 캐릭터를 철저하게 익혀야 한다고 했다. 모든 배우들이 책을 꼼꼼하게 읽었고 캐릭터 연구를 잘 해서 나중에는 내가 반영하려는 뉘앙스를 스스로 창조해내기도 했다. 가령, 나이트 아울Ⅱ는 원작에선 과체중으로 등장하는데 실제 배우는 굉장히 날씬하다. 스스로가 배가 나오게끔 노력을 했고, 옷을 모두 벗고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는 배가 접혀 보이게 시도도 했다. 스튜디오에서는 배우가 살찐 모습을 싫어하지만 내게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왓치맨>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누구인가?
로어셰크다. 굉장한 흑백논리로 무장해 타협을 모르는 인물이다. 그런 고집이 맘에 든다. 닥터 맨해튼은 그 다음으로 좋아한다. 초인적인 존재인데 사람을 향하는 마음은 있지만 잘 이해는 못 하는 설정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닥터 맨해튼은 시공을 초월한 슈퍼히어로다. 실사로 구현하기가 쉽지 않았겠다.
소니 이미지 웍스(Sony Image Works)의 도움이 컸다. 닥터 맨해튼은 헐크와 달리 활동성이 큰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손만 들면 물건들이 파괴되는 초인적 존재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행동이 아니라 표정의 변화만으로 표현을 해야 됐다. 닥터 맨해튼을 연기한 빌리 크루덥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CG로 담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그래서 단순히 뛰어다니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앨런 무어는 영화화 작업에 회의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앨런 무어가 이 영화에 개입했는지 궁금하다.
내가 <왓치맨> 작업을 시작했을 때 앨런 무어는 이미 어떠한 형태로든 영화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였다. 반면 삽화를 담당한 데이브 기븐스는 내 작업에 적극 지지해줬고 미술 디자인 작업에 큰 도움을 줬다.

코미디언이 빌딩 밖으로 떨어지는 티저 포스터를 보면 건너편 빌딩 창문 위로 영화 문구가 삽입돼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타이틀 시퀀스를 연상시킨다.
아니다. 책에서 그대로 가져온 거다. 하지만 당신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 앨런 무어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거기서 영감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영화 속에는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나 스탠리 큐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테리 길리엄의 <여인의 음모>와 같은 작품들이 인용됐다.

테리 길리엄도 <왓치맨> 연출에 관심을 보였던 감독이다. 하지만 각색 과정 중 포기했다. 당신은 어떤 원칙을 가지고 각색을 했나?
영화의 테마와 맞는 부분이 어디인지를 집중적으로 생각하며 책을 봤다. 이야기뿐 아니라 주제와 동반된 분위기나 캐릭터의 태도, 관점을 보여주는 요소들은 무엇인지 예의주시했다. 사실 이야기는 추리고 추리면 간단해진다. 그래서 이야기가 일관되게 유지된다면 나머지 요소들은 다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할리우드에서는 캐릭터와 관련된 내용을 우선적으로 빼기를 원한다. 하지만 <왓치맨>은 슈퍼히어로물인 만큼 나는 오히려 캐릭터를 강화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당신의 해석이나 관점을 담은 장면은 없나?
워낙 어마어마한 책이다 보니 결말을 깔끔하게 하기 위해 변화를 준 부분이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가 충실하려 했던 건 앨런 무어가 창조한 <왓치맨>만의 독창성이었다. 슈퍼히어로 장르의 요소를 해체하면서 도덕성에 대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방식과 그를 이루는 요소들을 모두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왓치맨>은 누아르에 가까울 정도로 어두운 이야기다. 영화의 정서가 성인 취향이다. 하지만 <왓치맨>은 대중적인 부분 역시 최대한 살리지 않았나. 성인과 대중 취향 사이에서 영화의 등급을 맞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할리우드에서 <왓치맨>은 <300>처럼 R(17세 미만 관람 불가)등급을 받았다. 섹스도 있고 폭력도 있고 게다가 수백만 명이 학살당하는 장면도 나오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스튜디오에서는 처음에 <트랜스포머>처럼 PG-13(13세 이하 부모 동반)등급을 노려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섹스와 폭력이 많이 나오더라도 진솔하게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원작에 충실한 <왓치맨>을 더 재미 있게 보기 위한 방법을 소개해달라.
많은 관객들이 원작의 분위기에 목말라하고 있으니까. 그 전에 <왓치맨>에 기대를 가지고 있는 팬들이라면 원작 그래픽 노블을 먼저 봤으면 좋겠다. 그래픽 노블을 영화화한 슈퍼히어로물이 이전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영화에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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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 414호
(2008.11.25)

2009년 상반기 영화계 기대작 정리 – <박쥐>에서 <왓치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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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영화계 상반기는 ‘거장과 귀환’과 ‘전설적 원작의 재림’으로 요약된다. <올드보이>의 박찬욱부터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까지, 그래픽 노블의 걸작을 영화화한 <왓치맨>에서부터 6년 만에 새로운 감독과 배우로 시리즈를 재가동한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이하 <터미네이터4>)까지. 반가운 이름과 익숙한 제목으로 무장한 2009년 상반기 기대작 목록에는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다. 이름값에 기대고 있다는 것. 이는 최근 몇 년 사이 두드러진 현상으로 신예감독의 부재와 창작 시나리오 침체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있다. 발견의 희열을 느낄 수 없지만 대신 반가운 대상이 주는 기대감에 들뜬 설렘이 이 목록에는 있다.  

먼저 ‘거장의 귀환’ 가장 눈에 띠는 이름은 박찬욱 감독이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이후 3년. 박찬욱 감독은 공포영화의 겉모습을 가진 종교영화 <박쥐>(5월 개봉)로 찾아온다. 송강호와 김옥빈, 신하균과 김해숙 등이 출연한다는 것 외에 알려진 것이 없지만 이전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이 신작에 대해 살짝 내비쳤던 내용을 유추해본다면, 존경받던 종교인사가 친구에게 수혈을 잘못 받아 흡혈귀가 되고 친구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내용이 될 전망이다.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 등 전작에서 보여줬던 박찬욱 감독의 성향으로 보건데, 종교와 악마가 만나 하느님을 섬기는 흡혈귀의 이야기로 예측해 볼 수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박찬욱 감독 특유의 금기를 위반하는 설정에서 나오는 쾌감과 이야기를 압도하는 매혹적 이미지는 그의 신작을 기다리게 만드는 주요한 요소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체>는 혁명가 체 게바라를 다룬 작품이다. 여느 전기물과 달리 체의 일생이 아니라 혁명과정에만 집중하지만 상영시간은 무려 4시간 30분에 달한다. 다행히 국내 수입사 측에서는 이를 두 편으로 나눠 1부 ‘아르헨티나’(1월 개봉) 2부 ‘게릴라’(2월 개봉)로 개봉한다고. ‘아르헨티나’는 아르헨티나의 의사 출신인 체가 쿠바로 넘어가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혁명에 성공하는 이야기, ‘게릴라’는 이에 안주하지 않고 볼리비아로 넘어가 혁명정신을 전파하는 이야기다. 체 게바라를 연기한 베니치오 델 토로는 배우 생활 최고의 연기를 펼친다. 외모도 외모지만 소소한 버릇 하나까지 재현하며 혼신을 다한 연기는 체의 재림으로 느껴진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베니치오 델 토로는 2008년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에 무혈입성 하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체인질링>(1월 개봉)을 통해 다시 한 번 위대한 작가임을 증명해 보인다. 안젤리나 졸리가 주인공으로 참여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체인질링>은 모성애를 통한 여성의 강인함을 말한다. 당국의 도움으로 실종당한 아이를 찾지만 실제 자신의 아이가 아니면서 벌어지는 절망적인 현실 앞에 삶을 포기하지 않는 어머니의 위대함을 웅변하는 것. <미스틱 리버> <밀리언 달러 베이비> 등에서 가혹한 운명을 맞이한 인간이 이에 맞서는 행위를 고귀하게 묘사했던 이스트우드의 태도는 여기서도 이어진다. 그의 최고작이라고 할 수 없지만 여느 평범한 감독의 걸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이 있는 연출과 거장다운 시선이 <체인질링>에는 있다.

이번엔 ‘전설적 원작의 재림’ 차례. <아이언맨> <인크레더블 헐크> <다크 나이트> 등 2008년은 그야말로 슈퍼히어로물의 전성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 슈퍼히어로의 팬들이 영화화를 학수고대했던 작품이 있다. 바로 <왓치맨>(3월 개봉)이다. 앨런 무어(<브이 포 벤데타> <프롬 헬>)의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영화화한 <왓치맨>은 연출을 맡은 잭 스나이더(<300> <새벽의 저주>)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그래픽 노블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은 작품’이다. 슈퍼히어로의 활약을 흥미 위주로 다루던 기존 장르에 현실과 정치가 개입하면서 심리학적 리얼리즘으로 변모하였는데 그 시초가 되는 작품이 바로 <왓치맨>인 것이다. <12 몽키즈>의 테리 길리엄부터 <본 얼티메이텀>의 폴 그린그래스가 이 프로젝트에 군침을 흘렸지만 최종적으로 잭 스나이더에게 낙점됐다.

<터미네이터4>(5월 개봉)는 최근 모션 포스터, 즉 움직이는 포스터를 온라인을 통해 공개하며 팬들의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도시 한 가운데 폭탄이 투하되면서 도시의 모습이 해골로 변하는 포스터였는데 안 그래도 <터미네이터4>는 인간 저항군 리더 존 코너가 기계군단과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고유명사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빠지긴 했지만 <다크 나이트>의 크리스천 베일이 존 코너 역으로, <미녀 삼총사>의 맥지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면서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기존 세 편의 <터미네이터>가 현대를 배경으로 했다면 <터미네이터4>는 미래3부작의 서막을 여는 것이다.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2>(6월 개봉 예정)는 2009년 상반기 가장 많은 관객이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라 할만하다. 만화 상에서만 존재하던 로봇들이 실사로 스크린에 구현된 <트랜스포머>는 수많은 로봇 만화 팬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니 속편 제작은 당연지사. <트랜스포머2>는 오토봇과의 로봇전쟁에서 패한 디셉티콘이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디셉티콘은 새로운 로봇들을 규합하니 오토봇 또한 비밀병기를 출현시키기에 이른다. 하여 <트랜스포머2>는 전편보다 더 많아진 로봇들이 더 거대한 전쟁을 펼치는 상황으로 진행이 될 예정. 샤이어 라보프, 메간 폭스 등 인간 배우들이 로봇들 사이에서 어떤 매력을 펼칠지 기대를 모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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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claire
2009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