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싸개 소년, 소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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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떠나 벨기에 브뤼셀로 떠나는 날. 런던의 숙소에서 짐을 챙기는 내게 한 스태프는 노스트라다무스라도 되는 양 ‘행복 끝, 고생 시작’이라며 다음 여행지에서의 고난을 예고했다. 워낙 관광지로 유명한 런던인지라 그에 비해 볼거리가 많지 않은 브뤼셀에서 여행자가 느끼는 상대적인 실망감은 클 수밖에 없다는 것.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런던 워털루 역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도버해협을 건너 브뤼셀의 미디 역에 도착하자 나를 반기는 건 3월의 봄 날씨에도 불구하고 휑한 찬바람이었다.

말없이 앞만 보고 나아가는 브뤼셀의 시민들, 역사의 온기가 바싹 말라버린 듯한 차가운  빌딩 숲 등 런던에 비해 활기 없는 이 도시에 오니 말 그대로 막막하다. ‘Van Gogh Club’이라는 이름에 혹해 미리 예약하고 찾아간 유스호스텔의 방에는 떨렁 침대 한대뿐. 깔끔한 감옥 같은 인상까지 더하니, 여행에도 궁합이라는 게 있으면 당장에 파혼하고 싶은 심정이 간절했다. 불안과 실망감으로 점철된 브뤼셀에서의 첫 인상을 시원하게 배설하고픈 마음에 이 도시의 명물이라는 ’오줌싸개 소년 동상‘(Manneken-Pis)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오줌싸개 옆에서 안 좋은 기억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갈겨(?)버릴 테다, 하는 기세로 보무도 당당히 목적지인 그랑 플라스(Grand Place) 광장을 찾았으나 어느 외진 곳에 숨어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나 달라, 차 두 대 간신히 지나갈 듯한 도로 한쪽 귀퉁이에서 과감하게 노상방뇨를 하고 있는 오줌싸개 소년 동상을 찾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에게, 이렇게 번데기만할 수가” 어허! 야한 상상은 금물. 소년의 고추 크기가 아니라 동상의 크기 자체가 상상한 것보다 너무 작다는 얘기다.

키가 겨우 50cm밖에 안 될 정도로 왜소한 오줌싸개 소년 동상의 모습은 관광지로서의 브뤼셀의 현재를 나타내는 상징물 같았다. 하지만 1619년 세워진 이 동상이 왜 브뤼셀 시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지는 이와 관련한 전설을 보면 알만하다. 16세기경 프랑스군이 브뤼셀을 침략해 도시에 불을 지르자 한 소년이 오줌을 싸 불을 껐다는데 그가 바로 오줌싸개 소년 동상의 장본인인 것. 이렇게 황당한 이야기라니. 소년의 오줌발이 강해봤자 수도꼭지에서 졸졸 흐르는 정도 아닌가. 브뤼셀의 빈약함에 실망한 나에게는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소리로 들린다. 그런데 벨기에는 전쟁이 빈번했던 유럽에서도 가장 피해가 적은 나라였다고 한다. 그 같은 배경 덕에 일종의 중립국 지위를 부여 받아 브뤼셀에 EU 본부가 세워졌다. 다시 말해, 브뤼셀의 평화의 상징인 셈이다. 쳇, 평화는 소년만 지키나. 소녀도 오줌 쌀 줄 안다고. 전설의 내용도 맘에 안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2~30명씩 떼로 몰려다니며 오줌싸개 소년 동상을 향해 기관총처럼 카메라 플래시를 쏘아대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내겐 더 큰 볼거리였다. 우르르~ 구름처럼 몰려왔다 기념사진만 촬영한 후 슝~하고 사라지는 그네들의 모습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나도 모르게 그들 뒤를 졸졸 따르고 있었다. 그때,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또 다시 불어난 눈덩이처럼 대오를 이뤄 기민하게 이동한 후 받들어 총 자세로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우리의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 오오~ 그들이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오줌싸개 ‘소녀’ 동상!(Jeanneke-Pis)

많은 이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적나라한 포즈를 취한 채 ‘아무튼, 내 할 일을 하련다.’는 자세로 일을 보고 있는 오줌싸개 소녀 동상을 보자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한 레스토랑이 한 명의 손님이라도 더 유치하려는 목적으로 동상을 세웠다는데 오라는 이는 안 오고 이를 훔쳐가려는 사람만 늘어나 철조망으로 철저 봉쇄해놓았다는 것이 소녀의 전설 아닌 전설이었다. 하지만 그런 전설 따위 눈에 들어올 리 없는 나는 속으로 ‘역시 브뤼셀의 평화는 소녀도 함께 지켰어.’ 하며 감탄사를 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브뤼셀에 볼거리가 없다고 했는가. 누가 브뤼셀 시민들이 무표정하다고 했는가. 그제야 브뤼셀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유럽의 앞마당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아름다운 그랑 플라스 광장,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대형 쇼핑몰 갤러리 샹 위베르(Galeris Saint Hubert), 그리고 오줌싸개 소년과 소녀 커플(?) 동상까지. 브뤼셀만큼 놀라운 볼거리가 있고 거기다 ‘빅’유머까지 있는 도시 있으면 어디 나와 보라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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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사보
(201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