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Wien) 곳을 찾을 수 없는 유럽의 배꼽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 유럽의 대표적인 도시라고 하면 대개 영국의 런던이나 프랑스의 파리, 독일의 베를린, 이탈리아의 로마 정도를 연상하게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유럽 여행을 하면서 오스트리아 빈은 북유럽의 독일에서 남유럽의 이탈리아로 넘어갈 때 잠시 들리는 경유지로만 생각했더랬다. 거기다 도시 이름이 빈이 뭐야, 너무 ‘빈’해 보이잖아. 다만 배낭 여행자의 로망, 그러니까 타국에서 이성을 만나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는 내용의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배경이 됐던 곳이 빈이었던 만큼 설레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과연! 빈의 서역에서 내려 개찰구를 나와보니 그 어느 도시보다 젊은 남녀가 수두룩하다. 오랜 이동 시간에 지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그들의 동요하는 눈빛에는 <비포 선라이즈>의 주인공이 되어보겠다는 전의로 눈동자에는 작은 불꽃이 이글이글 타오른다. 나 또한 빈에 볼 게 없다면 젊은 여자들이나 많이 보자는, 아니 사귀어보자는 생각에 의욕이 마구 불타올랐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비포 선라이즈>의 주인공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이동했던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목표 달성에 유리할 거라고 판단했다. 이 영화를 보고 빈을 방문한 배낭 여행자라면 모르긴 몰라도 영화처럼 행동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비포 선라이즈>의 커플이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배경으로는 이른바 빈의 관광 명소들이 줄을 잇는다. 사랑에 목 마른 20대 답게 ‘프라터 놀이공원’의 회전 관람차 안에서 아름다운 ‘다뉴브 강’을 바라보며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고, ‘성 마르크 공동 묘지’에서는 어느 묘지를 바라보며 눈 깜짝할 새 지나가 버릴 젊음에 대해 아쉬워 하며, ‘오페라 하우스’의 야경을 뒤로 한 채 별이 빛나는 하늘을 담요 삼아 ‘시민 공원’의 풀밭에 누워 잊지 못할 하룻밤을 보낸다. 그렇게 영화를 핑계 삼아 빈의 매력을 만끽하다 보면 멋진 데이트나 해보겠다는 얄팍한 계산일랑 저 멀리 나빌레라~ 떠나버리고 이 멋진 도시를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가슴 속 어디멘가 깊은 곳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오기 시작한다.

예로부터, 오스트리아의 빈은 예술의 도시로 명성을 떨쳤다. 실제로 음악의 거장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하이든 등이 빈을 무대로 활동했고,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쉴레, 오스카 코코슈카와 같은 오스트리아 현대 화가들은 퇴폐로 상징되는 강렬한 표현기법을 유럽 전역에 퍼뜨렸으며 이들 예술가들에 의해 ‘영혼의 치료제’로 추앙 받았던 커피 또한 이곳을 중심으로 문화가 형성되어 오래된 카페는 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다. 이처럼 빈이 그 어느 것보다 예술로 흥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적으로 빈에는 서역과 남역, 북역과 중앙역, 그리고 프란츠 요제프역까지 모두 5개의 기차역이 존재한다. 동유럽과 서유럽, 남유럽과 북유럽을 모두 연결하는 곳이기 때문에 유럽의 배꼽으로도 불리는 빈은 유럽의 교통 요충지로 기능해왔다. 다시 말해, 유럽의 모든 문화가 빈에 집결했고 그럼으로써 새롭게 형성된 문화가 유럽 곳곳으로 널리 전파됐던 것이다.

물론 교통 요충지라는 이유로 예술이 발달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오스트리아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비유 중 하나가 바로 ‘자연을 닮은 국가’이다. 한국의 영토를 일러 호랑이를 연상시킨다고 하는데, 그럼 지도에 표시된 오스트리아의 모습이 자연과 닮았다는 얘기인가? 에이, 농담도. 알프스 산맥이 국토의 3분의 2를 뒤덮고 있는 데다가 이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인간이 사는 곳을 최소화한 정책이 오스트리아를 자연과 가깝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빈의 현대적인 시설에 눈길을 보내도 과거의 향수가 떠오르고, 도심을 걷고 있어도 자연의 숨결이 느껴지는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실제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빈 도심의 상당 구역이 파괴됐을 때 오스트리아 정부가 가장 먼저 재건을 위해 전력을 기울인 곳이 바로 ‘국립 오페라 극장’이라고 한다. 1869년 5월 15일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공연을 시작으로 문을 연 이곳은 여전히 프랑스 파리의 오페라 극장, 이탈리아 로마의 스칼라 극장과 함께 유럽의 3대 오페라 극장으로 평가받으며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현악기와 타악기, 무엇보다 인간의 목소리를 우선으로 치는 오페라야말로 자연과 가장 닮은 음악이라고 하는데 클래식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에도 왜 빈에서 주로 활동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만하다.

오랜 유럽 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어느 카페에 들어갔다가 메뉴에 비엔나커피가 적혀 있는 것으로 보고는 속으로 웃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빈은 비엔나라고도 불린다.) 블랙커피 위에 휘핑크림을 얹은 커피인데 오스트리아에서는 ‘아인슈페너’라고 부른다. 비엔나커피라는 건 오스트리아에는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좋아하는 도시락 반찬 줄줄이 비엔나소시지도 오스트리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줄줄이 엮여 있는 소시지는 있다. 그들의 주식이다.) 그만큼 빈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어떤 특징이 은연 중에 우리의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었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그런데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빈을 무시했으니 그 얼마나 빈해 보이는 처사였던 말인가. 지금의 내게 빈은, 영국의 런던보다도, 프랑스의 파리보다도, 독일의 베를린보다도, 이탈리아의 로마보다도 더 인상에 남은 유럽의 도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현대자동차
2011.5.30

잘츠부르크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싣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잘츠부르크는 빈에 이은 오스트리아의 제2의 도시다. 모차르트의 고향으로 유명했지만 1965년 개봉해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뮤지컬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시로 더욱 명성을 얻었더랬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7남매의 아버지이자 대령인 폰 트랩(크리스토퍼 플러머)과 아이들을 돌보는 가정교사 마리아(줄리 앤드류스)의 사랑을 그린 작품. 극중 잘츠부르크의 초록빛 풍광을 배경삼아 주인공들이 부르는 ‘에델바이스’와 ‘도레미 송’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먹었던지 인구 15만의 소도시에 매년 30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들 정도다.

잘츠부르크의 극성스러운 <사운드 오브 뮤직> 사랑을 느낀 건 숙소로 정한 어느 유스 호스텔에서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에델바이스’의 전주곡이 은은하게 귓가를 간질이고 이곡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도레미 송’이 그 뒤를 잇는 식이다. 이 두 곡이 쉬지 않고 반복되는 것을 보니 모르긴 몰라도 이 유스 호스텔에 하루만 묵으면 영화를 보지 못한 이라도 ‘에델바이스’와 ‘도레미 송’을 자신도 모르게 입으로 흥얼거릴 정도인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TV가 놓인 곳에서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으니, 그것 참.

무언의 압박으로 다가온 탓일까. 이곳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를 하지 않으면 잘츠부르크 시민들에게 몇 대 맞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에 하루 일정을 계획에도 없던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에 바치기로 전격 결정했다. 투어의 동선을 확인할 겸 유스 호스텔 프런트에 도움을 요청하니 아니나 달라, ‘Sound of Music Tour’라고 적힌 전단지 10여 종을 내어놓는다. 버스를 타고 영화 속에 등장했던 주요 장소를 둘러보는 것인데 차안에서 ’에델바이스‘ ’도레미 송‘에 맞춰 박수를 치며 따라 부른다는 스태프의 친절한 설명을 듣는 순간, 투어에 대한 생각이 싹 가시고 말았다. (그 놈의 <사운드 오브 뮤직>이 뭔지!)

대신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장소만 이동하기로 결정하니, 그 범위는 미라벨 정원과 논 베르크 수도원으로만 좁혀진다. 사실 영화 속 배경은 잘츠부르크뿐만 아니라 근교도시에까지 퍼져있어 전문투어의 도움 없이 개인적으로 돌아다니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다. 한 예로, 폰 트랩 가문의 저택은 프론부르그 성과 레온폴스크룬 궁 두 군데서 이뤄졌다. 그중 프론부르그 성은 잘츠부르크에서 1시간 넘는 거리에 위치한 아이겐이라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쉽게 갈 수 없는 것이다.

모 아쉽거나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투어를 포기함으로써 ‘에델바이스’와 ‘도레미 송’의 악몽에서는 벗어난 것 아닌가. 그렇다고 ‘내 인생의 영화’ 정도로 생각하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옥과 같은 장소를 포기할 수는 없는 법. 특히 미라벨 정원은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다. 가장 유명한 장면이랄 수 있는, 마리아와 7남매가 ‘도레미 송’을 부르는 장면은 여러 장소에서 촬영돼 편집된 것이지만 피날레를 장식하는 건 잘 정돈된 정원과 다채로운 색의 꽃들이 만발한 미라벨 정원이다. 그뿐인가. 이곳의 조그마한 유리 궁전에서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폰 트랩과 마리아가 환상적인 첫 키스와 함께 결혼 약속을 하지 않던가.

미라벨 정원의 유리 궁전 앞에 다다라 이 장면을 생각하고 있으니 갑자기 영화 속 감동의 순간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초췌한 몰골로 외롭게 여행하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라 울컥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어딘가에서 위로라도 받지 않으면 너무 외로운 나머지 미처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히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내 입에서는 거짓말처럼 ‘에델바이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유스 호스텔에 도착하면 아리따운 여자 친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지겹도록 귀에 들어와 박혀 이제는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지는 ‘에델바이스’와 ‘도레미 송’이 나를 반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잘츠부르크는 정말 이상한 방식으로 <사운드 오브 뮤직>을 사랑하게 만든다. 그 놈의 <사운드 오브 뮤직>이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현대자동차 사보
(2009.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