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2010 충무로에서 영화감독으로 살아남는 법

사용자 삽입 이미지한국에서 영화 만들기 갈수록 힘들어지는 요즘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제작 지원 요건을 따르는 건 왜 이렇게 까다로운지, 그에 맞춰 간신히 완성을 해도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에서는 왜 이렇게 문제 삼는 장면이 많은지, 상영등급을 받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역으로, 그들이 원하는 조건을 충족하면 영화를 제작하고, 개봉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에 미래의 영화감독을 꿈꾸는 예비 영화인들을 위한 특강 시간을 마련했다. 강의명 하여, ‘충무로에서 영화감독으로 살아남는 법’ <시>의 시나리오 0점 논란부터 <악마를 보았다> 제한상영가 파문까지, 최근 문제를 일으켰던 영화들의 풍부한 사례를 통해 영화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자 한다.

단, 본 강의대로 영화를 만들 경우, 일말의 작품성도, 반 푼어치의 개성도 보장할 수 없음을 미리 경고한다. 순전히 영진위, 영등위의 눈높이에 맞춘 영화 제작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그럼 본격적인 강의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수강생들은 교재의 1장을 펴주기 바란다. 


1장  0점 안 받는 시나리오 쓰는 법

시나리오를 소설 형식으로 썼다는 이유로 영진위 제작지원사업 심사과정에서 이창동 감독의 <시>가 0점을 받은 사태가 있었더랬다. 이후 영화를 포기하는 예비 영화인들이 줄을 이어 주변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했다. ‘천하의 이창동이 0점이라면 나 같은 듣보잡이 쓴 시나리오는 마이너스 점수를 먹고 들어가는 것’이라며 자포자기한 것. 본 강의는 바로 그런 이들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자 마련된 시간이다. 사실 영진위가 바라는 시나리오 요건은 생각 외로 쉬운 편이다. 전통의 시나리오 작성법대로 씬(scene) 넘버 적고 지문과 대사를 갖다 붙이면 해결될 문제다.

오히려 영진위 지원 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시나리오 형식에 상관없이 심사 위원의 심기를 거스른 일이 없었는지 신중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창동 감독처럼 노무현 정권 당시 친정부 성향의 발언과 활동 전력의 소유자라면 심사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현 영진위의 참여정부 알레르기 증상은 <시>에 각본상을 수여한 칸영화제의 세계적인 명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수강생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영진위 관계자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기술의 연마에 있다. 조희문 위원장과 같은 고위직 포섭에 성공한다면 합격은 따 놓은 당상에 가깝다. 일례로, 조 위원장은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심사가 마감된 지원사업의 심사 위원에게 전화를 돌려 자신이 출연한 영화에 대해 특별 심사를 요구한 전과가 있다. 하여 제작지원사업 지원 시, 시나리오 맨 위에 ‘조희문 위원장 출연 예정’ 등과 같은 훈훈한 멘트를 써놓는 것이 중요하다. 가산점은 물론 특혜까지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만 일부 심사위원의 폭로와 언론의 반발에 대해서는 본 강의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알려드린다.


2장 청소년 모방 위험의 이해와 실제

각종 특혜를 통해 시나리오 지원 사업에 통과하였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특정 장면의 수위에 따라서 이후 등급 판정에 곤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영화의 등급을 판정하는 영등위의 심사 기준을 파악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영등위의 청소년 사랑은 유별나기로 잘 알려졌다. 그들이 보기에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자아 발달이 덜 된 까닭에 각종 ‘모방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게 영등위의 입장이다. 동반 자살 모방 위험 때문에(<여고괴담5: 동반자살>), 주가 조작 모방 위험 때문에(<작전>), 동성애 모방 위험 때문에(<친구사이?>) 등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영등위의 각종 ‘모방 위험’ 때문에 숱한 청소년 관람가 영화가 제한상영가 등급으로 피를 본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럼 청소년 모방의 위험이 제로인 동물이나 로봇 주연의 영화만 만들어야 하나?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지금처럼 투자 환경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비싼 돈 들어가는 <킹콩>과 <트랜스포머>같은 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신 본 강의가 더 좋은 방법을 알려주겠다. 청소년이 주인공이라면 집, 학교, 학원을 왕복하는 일상을 테오 앙겔로플로스의 <안개 속의 풍경>처럼 무료하게 묘사한 영화를, 성인 주연이라면 <인생극장> <생활의 달인> 유의 도덕 교과서에 실려도 무방한 내용의 영화 연출을 강력 추천하니, 밑줄 쫙! 도리어 영등위에서는 모방을 장려하며 전체관람가 등급으로 화답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어찌됐든 영등위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좌빨용공’ 영화에 물들지 않고 (가령, <반두비>의 “왜 이명박 대통령의 별명은 ‘쥐’인가요?” 같은 대사) 참되거라 바르거라 자라주는 것이 목적이다. 단, 이런 내용의 영화는 극장에서라면 흥행 가능성이 극히 낮은 전차로, 이번에도 다시 한 번 본 강의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거.


3장 제한상영가 판정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최근 <악마를 보았다>가 두 차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으면서 수강생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신체 절단과 시체 훼손, 그리고 인육 먹는 장면을 넣고 싶어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 훼손을 들어 제동을 거는 영등위의 보수적인 판정 앞에 무슨 방도가 없느냐는 거다. 없긴, 있다. 물론 지적당한 장면을 삭제하거나 길이를 줄여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판정에 성공한 <악마를 보았다>의 사례도 있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이런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경우, 오락가락하는 영등위 판정의 사각지대를 노릴 필요가 있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라면 필요 이상으로 관대해지는 영등위의 판정 사례를 역으로 이용해야 한다.

예컨대, <악마를 보았다>의 시신 일부를 바구니에 던지는 장면처럼 <킬빌>(청소년관람불가)에는 절단된 팔과 다리와 심지어 머리통이 스크린에 난무한다. 또한 인육을 먹고, 개에게 던지는 할리우드 영화도 세고 셌다. <얼라이브>(15세 관람가)에는 추운 겨울 조난당한 생존자들이 먹을 게 없어 동료의 살을 뜯어 먹는 장면이 나오고 <왓치맨>(청소년관람불가)에는 신체 일부를 먹어치우는 개도 등장한다. 그렇다. 바로 여기에 해결책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용상 신체 절단, 시체 훼손 등과 같은 불경한 장면을 넣어야 한다면 할리우드 영화로 둔갑하면 된다. <박쥐>처럼 할리우드 자본을 끌어들인다든지(송강호의 성기가 그대로 노출됐다!) 최후의 수단처럼 할리우드 출신의 미국인을 신체 절단 및 시체 훼손의 재료로 활용해 볼만하다.(미국 외 지역 출신은 영등위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이 높다!) 그럼 이쯤에서 다들 예상하겠지만, 이 방법 역시도 본 강의의 책임에는 한계가 있다. 워낙에 영등위의 판정 잣대가 바람 앞에 갈피 못 잡는 오줌발처럼 일관성이 없어 언제 돌변할지 어떻게 알겠냐고. 


4장 강의를 마치며

예비 영화감독 여러분들은 어디에서도 수강할 수 없는 족집게 명강의에 힘입어 특별한 영화 만들기 과정을 수료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영진위, 영등위의 각종 정신 나간 요구에 버틸 수 있는 강심장과 비위 연마에도 함께 힘써줄 것을 당부하는 바이다. 허나 이 모든 것이 임시방편일 뿐 하루 빨리 영진위와 영등위가 실종된 원칙과 탈골된 상식을 되찾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임은 자명하다. 그래야 비로소 한국 영화계는 다양한 개성이 공존하는 건강한 영화생태계로 군림할 것이다. 이로써 예비 영화인들에게 한걸음 다가가는 강의가 된 것 같다. 이상으로 마치도록 하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ARENA
2010년 9월호

‘영진위’라는 이름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낙원동에 위치한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현재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이하 ‘친구들 영화제’)가 한창이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친구들 영화제는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광 감독과 배우, 영화평론가들이 직접 추천한 영화를 한 달 넘게(1.15~2.28) 상영하는 자리로 박찬욱, 봉준호, 이명세, 최동훈, 김지운, 안성기, 정성일 등이 참여한 명실공이 서울아트시네마의 대표적인 행사다. 이 기간 동안 서울아트시네마는 상영관을 찾는 관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으며 영화가 끝난 후면 이를 추천한 영화인과 관객 사이에서는 열띤 토론이 이뤄지는 등 말 그대로 ‘시네마 천국’에 다름 아니다.

마냥 축제 분위기여야 할 친구들 영화제의 올해 분위기는 예년과 달리 심상치 않다. 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서울아트시네마의 1년 운영비 중 30% 정도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공모제를 추진하면서 앞으로의 미래가 불투명하게 됐다. 이미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및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 선정을 둘러싸고 미디액트와 인디스페이스가 그간의 업적을 부정당하고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 ‘시민영상문화기구’라는 유령 단체에게 운영권을 강제로 넘겨준 상황. 서울아트시네마 역시 시네마테크 전용관 운영자 공모제를 통해 집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있는 것이다.

지난 1월 29일 오승욱 감독이 추천한 조셉 로지의 <트로츠키 암살>(1972)이 상영되기 전 관객 대표자가 서울아트시네마의 위기 상황을 알리며 사태 해결을 위한 관객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했다. ‘시네마테크, 관객이 공모한다!’는 주제로, 5000명 이상의 관객들이 매달 1만 원 이상 씩을 1년 동안 후원한다면 서울아트시네마를 1년 간 지킬 수 있다는 요지의 발언이었다. 당장 3월 만료를 앞둔 허리우드 극장 측과의 공간임대 계약을 연장해 급한 불을 끄고 관객의 후원으로 얻게 될 앞으로의 1년 동안 ‘서울에 시네마테크전용관을 설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가 정책 당국자와의 협의를 통해 안정적인 공간 확보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영화판에 ‘철거주의’ 유령이 떠도는 것은 사실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미디액트와 인디스페이스, 그리고 서울아트시네마의 공모제 사태는 영진위를 앞세운 MB정부의 개발논리가 빚은 또 하나의 참극이다. 겉으론 더 나은 환경을 정당성으로 내세우면서 결국엔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한 MB진영의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는 비단 용산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대기업과 지배층의 천문학적 수익 창출을 위해 서민의 기본권이 박탈당한 용산 참사의 개발논리 구조는 보수주의 세력을 등에 업은 영진위가 관객의 볼 권리를 침해하는 구도 속에 고스란히 영화판에서 재현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올해 친구들 영화제의 상영 목록을 보면 불도저식 개발논리를 비꼬거나 자본에 억압받는 민중의 분노를 다룬 영화들이 전면에 포진한다. 봉준호 감독이 추천한 존 부어맨의 <서바이벌 게임>(1972)은 무분별한 자연 훼손이 빚은 폭력과 야만성에 대한 비극적 최후를 다루고, 박찬옥 감독(<파주>)이 추천한 마이크 리의 <네이키드>(1993)는 대처리즘에 입각한 보수주의 정부 하에서 하층민과 노동 계급이 겪는 불안한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세기말적 풍경을 그리며, 존 포드의 <분노의 포도>(1940)는 자본가의 탐욕으로 궁지에 몰린 노동자가 사회의 불평등을 인식하고 각성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그중에서도 <트로츠키 암살>은 우연치고는 너무나 흡사하리만치 현재 서울아트시네마를 둘러싼 영화계의 환경을 은유(metaphor)하기 적절한 작품이라 할만하다. <트로츠키 암살>은 제목 그대로의 영화다. 트로츠키보다 ‘암살’쪽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영화는, 그래서 정치색을 띠지 않는다. 대신 혁명 주변을 떠도는 유령 같은 이들의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트로츠키 암살>이 다루는 유령(?)은 바로 트로츠키와 그를 암살하려는 암살자다. 트로츠키는 혁명 노선을 두고 스탈린과 맞서다 망명한 후 유령처럼 세계 각지를 떠돌았고 암살자는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이름도, 신분도, 무엇보다 스스로의 신념도 버린 유령 그 자체였다.

여기서 조셉 로지 감독이 더욱 주목하는 이는 암살자다. 특히 암살자의 역할을 알랭 들롱이 연기했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많이 알려졌듯, 알랭 들롱은 날카로운 외모에서 풍기는 우수에 찬 고독의 이미지로 ‘엣지남’의 대명사처럼 통하는 전설적인 배우다. 그런 그가 <트로츠키 암살>에서 자신의 필모그래프를 통틀어 가장 이질적인 연기를 펼친다. 개인적으로 알랭 들롱이 암살자 역할을 맡았다고 해서 기대를 모았건만 웬걸 이 영화에서는 암살이라는 행위 자체에 함몰되어 사리불별이 제대로 되지 않고 때에 따라 신념이 오락가락하는 인물로 묘사되는 것이다.

조셉 로지 감독은 알랭 들롱이 전작에서 보여줬던 멋있는 킬러의 이미지를 비틀어 암살자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 극중 암살자가 행하는 암살의 기저에는 자신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혁명의 분위기에 휘둘려 달려가는 버스에 몸을 실으려는 객기의 기운이 짙게 깔려있다.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는 너무나 참혹해서 주변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을 넘어 트로츠키가 꿈꾼 영구혁명의 꿈은 그대로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날 <트로츠키 암살>의 상영 후 이뤄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 영화를 영진위가 서울아트시네마에게 가하는 공모제 시행과 연결 지어 설명하는 이들이 많았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암살자에게서 영진위의 모습이 겹쳐졌다. 물론 영진위가 암살자라는 뜻은 아니고 (설마 그럴 리가!) 극중 암살자의 결정적인 행동을 가능하게 한 ‘동기’와 그 행동이 가져온 ‘파장’이 지금 영진위가 영화계에 불러일으킨 혼란의 기운과 맞닿아있는 것이다. 미디액트부터 인디스페이스, 서울아트시네마까지 (들리는 바에 의하면 영진위의 다음 목표는 한국영화아카데미라고 한다!) 일련의 공모제 사태를 가능케 한 배경은 앞서 밝힌바 MB정부의 개발논리(를 앞세운 반대세력 척결?)이고 더욱 큰 문제는 그런 식의 일방적인 업무집행이 영화생태계의 기초터전을 파괴한다는데 있다.

그 과정에서 공정한 집행 절차와 투명한 심사를 요구하는 여론에 맞서 영진위가 내세운 논리라는 것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미디어센터 및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 선정 결과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는 ‘선정과정이 공정했다.’며 반박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여러 기사를 통해 보도됐듯이 결국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음이 밝혀졌고 서울아트시네마의 공모제에 대한 항의를 접한 조희문 위원장은 “관객은 안정적으로 영화만 보면 된다.”고 답했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여기서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것은 신념도, 목적도, 스스로의 존재 자체도 망각한 유령 같은 영진위의 정체다. 

<트로츠키 암살>에서 극중 트로츠키(리차드 버튼)는 이런 얘기를 한다. “나의 말은 앞문으로 나가 세계에 혁명을 전파하고 뒷문으로 돌아온다.” 극 중반까지 트로츠키의 이 말은 속뜻을 헤아리기 힘든 궤변처럼 비친다. 하지만 결말에 이르면 원래 의도가 특정 세력의 입맛에 맞게 왜곡되는 상황에 대한 비판임이 밝혀진다. 현 영진위가 우려와 반발에도 불구, 자기 입맛에 맞는 정책을 일방 추진하는 것은 국가 발전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 하에 뒤로는 자기 뱃속을 불리는 MB즘의 도래 탓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거창한 명분을 방패를 두르고 사회를 좀먹는 MB즘의 폐해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영화판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 우리 영화계에는 ‘영진위’라는 이름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ps. 기사가 나간 이후 영진위는 2월 10일 끝내 시네마테크 전용관 운영자 공모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것도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허리우드 3관이라고 장소까지 못 박으면서 말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영진위가 설립한 단체가 아니다. 그저 일정액을 지원만 했을 뿐이다. 애초 서울아트시네마는 공모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에 대해 해명해야할 영진위의 조희문 위원장은 베를린영화제 출장을 핑계로 한국을 떠났다고 한다. 유령처럼 훌쩍.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비스트
(201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