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赤壁之戰)


사용자 삽입 이미지서기 208년, 위, 촉, 오 삼국이 대립하던 중국 한 왕조 말기 혼란의 시대. 위나라 조조(장풍의)는 천하를 통일할 꿈에 젖어 있다. 이미 대륙의 반 이상을 차지했으며 촉나라 유비 군마저 물리친 상황. 손권(장첸)의 오나라 인근으로 피난 간 유비 군은 남은 병력을 추슬러 위나라에 대응하려 한다. 이를 위해 오나라와 손을 잡으려 하지만 전쟁을 기피하는 손권 때문에 일이 쉽지 않다. 유비는 책사 제갈량(금성무)을 보내 손권의 마음을 바꿔보려 하지만 여의치가 않다. 결국 제갈량은 오나라 명장 주유(양조위)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고 마침내 손권의 마음을 돌려 동맹을 맺기에 이른다. 때마침 조조의 백만 대군이 적벽으로 쳐들어오고 이에 맞서 촉과 오는 십만 대군을 이끌고 적벽으로 향한다.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하 <적벽대전>)은 오우삼 감독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작품이다. <영웅본색>(1986) 이후 촬영에 들어가려 했으나 거대한 예산과 부족한 기술력, 그리고 원활하지 못한 중국 로케이션 문제로 20여 년 가까이 기다려온 꿈의 프로젝트였다. 또한 <첩혈쌍웅2: 첩혈속집>(1992) 이후 16년 만에 홍콩으로 돌아와 작업한 컴백 작품이고, 처음으로 연출을 맡은 역사극이자 한국, 중국, 일본, 홍콩, 대만 다섯 국가가 참여한 제작비 800억 원의 아시아 최초 초대형 블록버스터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적벽대전>은 오우삼에게 한 편의 영화를 넘어 또 하나의 분기점이 될 만한 작품이다.

<적벽대전>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했던 전쟁이자 나관중 원작 <삼국지연의>의 하이라이트인 ‘적벽’ 부분에 집중한다. 총 2부로 나뉘어 개봉될 이 시리즈에서 1부 <적벽대전>은 말 그대로 거대한 전쟁의 시작, 즉 적벽대전이 일어나기 바로 전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오나라 손권 군의 제일 명장 주유와 촉나라 유비의 최고 지략가 제갈량이 손잡고, 천하를 통일하겠다며 적벽의 해상으로 쳐들어온 위나라 조조의 80만 대군과 맞선다는 이야기가 1부와 2부의 이야기다. 이번에 개봉하는 1부 <적벽대전>은 아직 본격적인 적벽의 대전이 벌어지기 전 육상전을 비중 있게 다뤘다. 촉과 오의 연합군이 ‘구궁팔괘진’으로 위의 기선을 제압한 후 적벽에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끝을 맺는 <적벽대전>은 시쳇말로 2부의 예고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전쟁의 스펙터클을 전시하기보다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주요 캐릭터 묘사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화끈한 전쟁 장면을 기대한 관객은, 그래서 1부가 심심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역으로 말한다면 <적벽대전>은 시리즈의 의도가 잘 드러난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는 주인공으로 으레 기대할 법한 유비, 관우, 장비 같은 친숙한 캐릭터나 이인항 감독의 <삼국지: 용의 부활>의 조자룡 같은 장수 대신 지략가인 주유와 제갈량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확연해진다. 특히 <적벽대전>의 경우, ‘주유의 전쟁’이라고 할 만큼 주유의 ‘원맨쇼’가 두드러진다.(2부에서는 최소 1부보다는 두드러진 제갈량의 활약을 예상해볼 수 있다.) 일찍이 주윤발이 캐스팅됐다가 하차, 양조위로 바뀌면서 주유는 장수의 모습에서 부드러운 지략가의 모습으로 자연스레 변모했다. 결과적으로는 치열하고 처절했던 적벽대전을 소재로 하여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감독의 의도에 더욱 맞아떨어졌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아무래도 전쟁을 다루고 있다 보니 <적벽대전>에서 두드러지는 감정은 오우삼 감독의 영원한 테마, 남자들 간의 우정이다. 원작에서는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는 주유와 제갈량이지만 극중 서로에게 호의를 품은 사이로 등장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영화는 두 캐릭터의 지략과 인품, 그리고 관계를 보여주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한다. 조조의 천하통일 야욕을 뿌리치기 위해 손을 잡은 주유와 제갈량의 모습에는 <영웅본색> <첩혈쌍웅>에서 경험한 오우삼 영화 특유의 세계관이 잘 녹아들어가 있다.

오우삼 감독은 역사(혹은 판타지)를 소재 삼은 대형 블록버스터영화란 점에서 <반지의 제왕>과 비견되는 <적벽대전>을 두고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밝혔었다. “영상을 다루는 기술이나 CG를 다루는 능력으로 볼 때 영화의 질감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단순히 액션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동양의 정신이나 문화를 구현한다는 점에서 차별된다.” 원작 <삼국지연의>에서 일부 묘사만 가져오고 대부분의 이야기와 캐릭터를 역사적 사료에 기반을 두어 구성한 건 이 때문이다. <삼국지연의>가 구전되고 후세에 알려지는 과정에서 너무 신화화된 까닭에 인간에 대한 묘사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오우삼은 <적벽대전>이 신화로 작용하는 걸 원치 않는다. 신화에는 인간이 다가서지 못할 경외의 감정이 숨겨져 있기에 자칫 전쟁을 옹호하고 승자를 영웅시하는 논리를 경계한 탓이다. 적벽대전을 다루면서 굳이 두 편으로 나눠 한 편을 캐릭터 묘사에 통째로 할애한 것이나, 군주나 장수 대신 지략가인 주유와 제갈량을 내세운 의도는 어렵지 않게 설명이 된다. 이에 덧붙여, <적벽대전> 2부가 궁극적으로 반전(反戰)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안 그래도 오우삼 감독은 내한 인터뷰에서 “관객들에게 적벽전쟁의 참혹함을 지옥을 경험하는 것처럼 보여주려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적벽대전>에는 오우삼이 과거 구축한 홍콩 누아르의 영기를 넘어서는 지점이 존재한다. 홍콩 누아르 시절에 보여준 의리와 <적벽대전>에서 드러나는 의리 사이에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홍콩 누아르의 그것이 철저히 자신이 속한 남자라는 세계 안에서만 기능했다면 <적벽대전>은 그 울타리를 훨씬 뛰어넘어 전 세계를 겨냥한다. (서양 관객을 고려해 최대한 등장인물을 줄여 몰입도를 높였다고 오우삼은 말했다.) 이는 오우삼이 홍콩(을 넘어 아시아) 귀환 작품으로 아시아 초대형 블록버스터 <적벽대전>을 택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원작보다 사실에 기초해 신화의 기운을 최대한 덜어내려 했다지만 오우삼은 오히려 영화를 통해 자신의 신화를 쓰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 이는 많은 이야기를 남겨둔 2부에서 곧 밝혀질 것이다.


Tip! 숫자로 보는 <적벽대전>

4 4년. 영화 제작 기간. 2004년 여름, 서안(西安)이 촬영 주 무대로 결정되면서 본격적인 제작 돌입.
5 5개국. <적벽대전> 제작을 위해 참여한 아시아 국가 수. 홍콩에 기반을 둔 Three Kingdoms 제작. 한국의 쇼박스, 일본의 Avex Entertainment Inc, 대만의 CMC Content Corporation, 중국의 China Film Group Corporation 투자.
18 18년. 오우삼 감독이 <영웅본색>(1986) 이후 2004년까지 <적벽대전>을 영화화하기 위해 기다린 시간.
35 35개국. 개봉 전 <적벽대전>이 판매된 국가의 수.
36 36미터. 적벽 장면을 위해 실제 제작한 배의 높이.
40 40피트. 장대한 스케일의 적벽을 위해 서안에 재건한 언덕의 높이.
300(+) 300필 이상. <적벽대전>에 사용된 실제 말의 수.
2,000 2,000척. 적벽에 주둔한 위나라 조조 군의 위용을 보여주기 위해 띄운 실제 배의 수.
2,000(+) 2,000명 이상. <적벽대전>에 참여한 기본 스탭 숫자. 세트 공사를 위한 인부와 마부 등 단기 계약직까지 포함시킬 경우, 3,000명 이상으로 추정.
100,000 10만 대군. 촉과 오 연합군이 적벽에서 위의 백만 대군과 맞서기 위한 군사의 수
1,000,000 100만 대군. 위나라 조조가 적벽대전을 위해 이끌고 온 군사의 수.
80,000,000 8천만 달러. <적벽대전> 총 제작비. 우리 돈으로 약 800억 원.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필름2.0 395호
(2008.07.15)

<상성: 상처받은 도시>(傷城: Confession Of Pain)


5월의 홍콩은 덥다, 라는 데 생각이 미치기도 전 바라본 고층빌딩이 즐비한 풍경은 30도를 훌쩍 넘긴 날씨를 한방에 잊게 해줄 만큼 시원했다. <무간도> 시리즈 이후 3년 만에 다시 뭉친 유위강, 맥조휘 감독과 양조위의 신작 <상성: 상처받은 도시>(이하 <상성>)은 빅토리아 파크에서 내려다본 시원스러운 풍경으로 문을 연다. 그런데 두 감독이 바라보는 홍콩의 화려한 모습은, 애절하게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캐럴과 느리게 이동하는 카메라 움직임 속에 쓸쓸함을 자아낸다. 외부인과 내부인의 시선 사이에 생긴 관점의 차이일까. 아니면 이게 진짜 홍콩의 모습일까.

지난 5월 13일과 14일, 이틀간에 걸쳐 <상성>의 주연배우 양조위와 유위강, 맥조휘 감독의 기자회견이 홍콩에서 열렸다. 첫 장면과 달리,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은 채 과장된 동작을 섞어가며 열변을 토하는 유위강 감독과 회견장에 들어서자마자 “한국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빠른 시일 안에 한국을 찾아뵙겠다”라며 환하게 미소 지은 양조위. 본색을 숨긴 채 다른 삶을 사는 <무간도>(2002)의 유건명(유덕화)과 진영인(양조위)이 그들 위에 겹쳤다면 과장일까?


상처 받은 도시의 상처 받은 남자들


<상성>의 유위강, 맥조휘 감독은 <무간도>에 이어 다시 한 번 깊은 시름에 잠긴 두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유정희(양조위)와 아방(금성무)은 오랫동안 형사로서 파트너 관계를 유지해온 절친한 선후배 사이. 크리스마스에 여자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아방은 그 충격을 못 이겨 형사생활을 접고 술에 절어 산다. 유정희는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고 결국 아방은 사립탐정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유정희의 장인어른과 집사가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를 미심쩍게 여긴 유정희의 아내 숙진(서정뢰)은 남편 몰래 아방에게 사건을 재수사해줄 것을 요구한다. 비밀리에 수사에 들어간 아방은 몇 가지 단서를 포착하고 이 사건에 유정희가 연루되었음을 알게 된다.

거대한 운명에 휘말려 이중적인 생활을 해야만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상성>과 <무간도>는 닮아 있다. 하지만 “가장 전형적인 홍콩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는 맥조휘 감독의 바람처럼 <상성>은 도시와 인물 간의 관계를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돌이켜 보건대, 지난 10년간 홍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침체의 연속이었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기점으로 홍콩 사람이 떠난 자리에 본토 동포가 대거 유입됐지만 상이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오해가 빚어졌고, 2003년 홍콩을 할퀴고 간 사스의 창궐은 오랜 시간 소통단절을 불러왔다. ‘상처 받은 도시’를 뜻하는 <상성>은 홍콩의 사연을 유정희와 아방이 처한 상황과 쓸쓸한 감정을 도시의 풍광 속에 담아낸다. 유위강의 카메라는 젊음의 거리 소호에서 옛 홍콩을 머금은 금정까지, 중심 주룽반도에서 변방 마카오까지, 홍콩에서 담아낼 수 있는 모든 풍경을 훑는다. 특히 영화의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초반 야경 장면의 경우, 고공 촬영을 금지한 정부를 설득해 홍콩영화사상 처음으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감정을 공간 속에 구현한다는 점에서 <상성>은 코넬 울리치로 잘 알려진 윌리엄 아이리시의 추리소설 <환상의 여인>이나 <상복의 신부>를 연상시킨다. 축축한 재즈가 구슬프게 울려 퍼지는 1940~50년대 뉴욕의 밤거리를 배경으로 고독한 도시인의 정서를 잡아낸 서술방식과 닮아 있는 것이다. 그런 상관성 덕분인지, 이 영화는 추리적 요소가 유난히 강하게 부각되는 작품이다. 사건을 쫓는 자와 사건을 은폐하려는 자의 대결구도 속에 ‘누가 죽였을까?’가 아닌 ‘왜 죽였을까?’에 집중하는 이야기 방식이 그렇고, 극중 인물의 사연이 하나하나 단서로 쌓여가며 마지막 순간, 한방에 비밀이 폭로되는 구조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추리극의 익숙한 구조를 차용한 듯 보이지만 <상성>의 재미는 그 구조를 비트는 데서 나온다. 극 초반에 범인의 정체를 노출하고 그런 가운데서 범인의 사연을 추리해가는 것. 이는 추리를 활용한 영화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상황에서 관객에게 새로운 충격을 제공하려는 맥조휘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가 성공적이었다고 보기에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범인을 미리 밝힌다는 것은 장르적으로 신선한 시도임에는 분명하지만 연출하는 입장에서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추리극은 관객의 흡인력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상성>의 경우, 범인을 알게 된 관객들이 그 뒤의 사연을 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관객이 시선을 놓지 않을 만한 전개로 끌고 가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는 유위강의 말처럼 중반 이후 <상성>의 극적 긴장감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또한 유정희와 아방의 비밀이 밝혀지는 결말부 역시 <무간도>로 기대치가 높아진 관객의 기대감을 채우기엔 2% 모자란 감이 있다.


양조위, 악한이 되라


<상성> 역시 요즘 유행하는 반전을 쓰고 있다. 하지만 반전을 위한 영화가 아닌, 철저히 영화에 복무하는 반전을 만들어냈다는 건 신선하다. 유위강과 맥조휘 콤비는 기존 홍콩영화에서 무한 반복했던 요소뿐 아니라 장르영화의 습관적인 룰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데 인색하다. <무간도>는 그런 이들의 방식이 가장 최대치로 발휘된 경우였다. 그리고 <상성>은 <무간도>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맥조휘의 표현을 빌자면 “스토리와 감정 선의 변화에 더욱 신경을 쓴 영화”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유정희로 분하는 양조위의 변신이다. 20년이 넘도록 양조위의 연기를 지켜봐왔던 유위강은 유약한 이미지의 그에게서 악한 모습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양조위의 연기 중 <상성>보다 악랄하고 간사한 건 없었다. 그런 역할을 맡겨 놓고 흥분했다”는 유위강의 호언은 영화 속에서 그대로 증명된다. 단순한 악의 모습이 아닌 악한 행동마저 정당성을 획득하는, 기존 단세포적 악한과 사뭇 다르게 유정희를 묘사한 것이다.

인물을 통해 스토리의 변화를 주었다면 감정 선의 변화를 가져온 건 이제는 변한 홍콩 사람들의 감성이다. 이전까지 우리가 ‘홍콩 누아르’라고 칭한 일련의 영화들은 의(義)와 협(俠) 등 인간관계를 극도로 강조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무간도>를 기점으로 홍콩영화 속 인물들은 개인의 안위에 따른 욕망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홍콩을 가로지르는 시대의 감수성이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가령, 홍콩 반환을 앞둔 시점에서 홍콩영화는 한 치 앞을 모르는 불안한 시대적 감성을 묘사하기 위해 끈적끈적한 남자들의 의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홍콩이 중국으로 편입되면서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었다. 제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에서 선과 악의 구분은 무의미해졌고 친구와 적을 규정하는 선 역시 희미해졌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간파해 먼저 영화에 반영한 것이 <무간도>였고 신작 <상성>에서는 가장 극대화된 형태로 드러난다. 유정희와 아방은 절친한 파트너 이상의 유사 형제관계를 이루면서, 또 한편으론 한 사건을 사이에 두고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관계가 된다.


유위강, 맥조휘 감독이 보기에 지금 홍콩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는 대부분 유정희와 아방처럼 애매한 삶의 형태로 드러난다. 그래서 인연의 끈은 희미해지고 사람 사이의 소통은 주파수가 안 맞는 고장 난 라디오처럼 홀로 파열음을 낼 뿐이다. 그 결과, 도시를 가득 매운 건 상대방을 잃은 채 말없이 부유하는 인간들. <상성>의 첫 장면에서 빌딩 창 밖으로 흘러나온 빛들이 뭉치지 않고 흩어져 보이는 건, 선에서 점으로 변한 인간관계를 상징하는 이미지는 아닐까. <상성>은 상처 받은 도시를 채우는 건 상처 받은 인간이라는 지당한 사실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필름2.0 336호
(2007. 5. 22)

슬픈 눈에서 건진 행운 – 양조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양조위를 만났다. 아니 양조위의 눈을 보았다. 남자에게도 보호본능을 자극하게 만드는 그의 눈이 빨아들이는 힘은 여전했다. 개봉을 앞둔 <상성: 상처받은 도시>에서도 양조위는 예의 그 눈빛으로 사람을 홀린다.

양조위는 특별하다. 특별하지 않은 배우가 어디 있겠냐마는 그는 더욱 특별하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 양조위는 눈이 특별한 배우다. 눈에도 표정이 있다면 양조위는 눈의 표정을 가장 잘 구사하는 배우다. 그 하나만으로 할리우드를 통하지 않고 세계적인 배우의 반열에 오르는 흔치 않은 사례가 됐다. 특히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눈은, 겨냥하는 목표물은 없지만 적중률은 백 퍼센트에 가깝다. 그 눈빛은 발사되는 것이 아니라 흡수하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연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양조위의 연기는, 아니 그의 눈은 늘 관객의 마음을 당긴다. 역사의 소용돌이 앞에서 귀머거리이자 벙어리인 ‘문청’은 눈빛 하나만으로 개인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줬고(<비정성시>), 이과수 폭포를 바라보는 ‘아휘’의 눈에는 연인 보영(장국영)과 함께할 수 없다는 비탄이 서려 있었으며(<해피 투게더>), 자신의 여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미리 이별연습을 할 수밖에 없는 ‘차우’는 애절한 눈길로 수 리첸(장만옥)을 바라봤다(<화양연화>). 사진 촬영을 위해 카메라 앞에 섰을 때도 양조위는 그랬다. 165cm의 작은 키와 왜소한 어깨를 가진 평범한 체구를 보고 있노라면, 주변에 몰려든 스탭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오직 하나, 사막을 홀로 걷는 듯 시름에 잠긴 눈만이 유난히 반짝일 뿐이다.

슬픔을 봉인한 눈

유위강, 맥조휘 감독의 <상성: 상처받은 도시>(이하 <상성>)는 떨치기 힘든 과거 때문에 삶의 함정에 빠진 두 남자의 시련을 다룬다. 이 작품에서 양조위는 의문의 살인사건에 말려든 경찰, 유정희를 연기한다. 경찰관 역할만 이번이 세 번째. 실연의 아픔을 이기기 위해 타월과 비누를 친구 삼아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고독한 ‘경찰 633’(<중경삼림>)과 삼합회에 잠입한 비밀경찰로 늘 불안에 떨며 복귀를 갈구하는 ‘진영인’(<무간도>)을 기억한다면 <상성>의 유정희가 평범한 경찰과 거리가 먼 캐릭터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번에 양조위가 맡은 역은 실력 있는 경찰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끔찍한 범죄와 연관된 인물.

이중적인 생활을 보여준 <무간도>의 진영인이 처한 상황과 비슷하지 않느냐고? 그의 생각은 좀 다르다. “진영인은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인물이지만 그 속에서 여유를 찾는다. 그에 반해 유정희는 건강한 삶을 살아도 될 정도로 여유로운 선택의 가능성을 지닌 캐릭터다. 하지만 그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냉정하다” 양조위의 말처럼, 진영인이 상관의 부탁에 자신의 감정을 일시적으로 포기하는 따뜻한 가슴의 소유자라면 유정희는 자신을 위해서라면 가족도 과감히 내칠 수 있는 차가운 인물로 그려진다. 천성적으로 감정을 잘 표출하지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의 양조위는, 그래서 <상성>의 시나리오가 좋았다. 연기를 감정 표출의 대체물로 삼는 그에게 유정희란 인물은 새로운 도전, 즉 ‘자연인’ 양조위의 가슴 속에서 꾹꾹 눌려진 채 연기로 발산될 날만 기다렸던 또 하나의 감정을 드러낼 좋은 기회였다. “처음으로 시도하는 역할이라 도전 의욕이 생겼다. 그런 기대감은 연기에 임하는 배우에게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 이와 같은 연기는 어릴 적 우울감에서 비롯된 내 성격을 극복할 수 있게 만들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는 그는 “또 하나의 내 자신을 찾은 것 같다”고 덧붙인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연기를 이용했듯 양조위의 필모그래피는 껍질을 까야 비로소 그 속을 알 수 있는, 모순으로 가득 찬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첩혈가두>(1990)의 ‘아비’는 사람을 좋아할 정도로 정이 많지만 친구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고, <씨클로>(1995)의 ‘시인’은 갑갑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한 여인에게 매춘을 알선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그녀를 사랑했기에 고통스러워하며, <2046>(2004)의 ‘차우’는 여러 여자의 육체를 탐닉하지만 그런 방탕함은 옛 여인을 잊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불과하다. <상성>의 유정희는 또 어떤가. 아름다운 부인과 재산, 끝까지 함께하는 동료까지 부러울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걸 포기하는 쪽을 선택하는 인물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순된 성격은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거역할 수없는 운명으로부터 기인한다. <해피 투게더>의 아휘, <화양연화>의 차우, <무간도>의 진영인, 그리고 <상성>의 유정희까지. 이들은 애당초 운명을 이기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없다. 그래서 감정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다. 운명을 거스르지 못해 세상과 인연을 끊고자 하는 이의 눈은 차갑게 깊어지고 그 속에서 슬픔은 떨어지지 않는 눈물로 봉인될 수밖에 없다.

유위강, 맥조휘의 페르소나

양조위가 품고 있는 ‘슬픔’을 가장 잘 활용한 감독은 왕가위와 유위강, 맥조휘 콤비다. 육체를 앞세운 연기 대신 감정의 언어를 선호하는 이들 감독에게 양조위는 페르소나 같은 존재였다. <아비정전>(1990)을 시작으로 <2046>까지, <열혈남아>(1987)를 제외한 왕가위의 모든 작품에 출연했으며 유위강, 맥조휘 감독과는 <무간도> 시리즈 이후 <상성>에서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췄다. 왕가위는 양조위의 본 모습을 가장 먼저 알아본 감독이었다. 왕가위는 액션이나 코미디에서 보여줬던 모습 아래 침전한 그의 내성적인 성격들을 끄집어냈다. 언제 왕가위 영화에서 활짝 웃는 표정으로 등장한 양조위의 모습을 본 적이 있던가.

양조위는 촬영 전까지 아무 대본도 준비하지 않는 왕가위의 방식을 선호한다. “왕가위 감독은 요구가 많은 사람이다. 그는 나를 깊은 수렁 속에 빠뜨리고 캐릭터 자체로 변화시킨다. 나는 그 방식이 좋다”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양조위의 연기는 말 그대로의 연기가 아닌 자신을 드러내는 제2의 감정. 자신의 필터를 통과할 만큼의 정보만을 원하는 그에게 완성된 시나리오를 던진다는 건, 곧 양조위 자신이 아닌 제3자를 연기하라는 주문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감정 발산이 익숙하지 않은 그는, 몸과 표정의 동선이 화려한 영화보다 미묘한 감정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왕가위 영화에서 유독 빛을 발할 수 있었다.

그와 달리, 유위강과 맥조휘는 현장의 즉흥성보다 안정성을 중시하는 철저한 준비로 유명하다. 왕가위의 방식을 절대적으로 믿는 양조위에게 이들의 방식은 언뜻 상극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속의 인물이 양조위를 모델로 한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상성>의 유정희가 처한 상황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비슷하다. 선과 악이 모호하고 적과 친구가 애매한 삶을 살고 있다”는 유위강의 말처럼 양조위가 맡은 인물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자기 세계에 갇혀 고독을 곱씹었다. 배우로서 양조위의 이력도 마찬가지였다. 홍콩에서 활동했지만 그는 홍콩배우와는 다른 행보를 보여줬다. 성룡과 이연걸이 아크로바틱한 몸놀림을 선보일 때 그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감정을 추슬렀고, 주윤발과 유덕화가 남자들의 의리를 위해 숨을 거둘 때 그는 맺어질 수 없는 사랑에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유위강, 맥조휘 감독은 <상성>의 첫 캐스팅이 확정된 4개월 후 양조위를 유정희 역으로 바꿀 수 있었다. 원래 그가 맡기로 했던 역할은 금성무가 연기한 사립탐정 아방. 유정희는 상반된 두 개의 가치 사이에서 애매하게 줄타기를 하느라 삶의 뒤편에 숨어버린 인물이다. 가슴에 뚜렷하게 남은 멍 자국과 눈 속에 깊이 각인된 슬픔을 연기의 동력으로 삼는 양조위만큼 유정희 역할에 어울리는 배우가 있을까. 데뷔 후 처음으로 예전의 이미지를 거스르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양조위의 눈을 빌린 유정희의 악함은 이상하리만치 설득력을 발휘하며 보는 이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자신을 아주 잘 아는 감독을 만난다는 건 놀라운 행운이다. 양조위 역시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연기자로서 행운아다. 드라마로 데뷔한 이래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 허우 샤오시엔, 오우삼, 왕가위, 유위강, 맥조휘, 이안, 지금 생각해봐도 난 정말 운이 좋은 연기자다. 이들과 함께하는 작업을 통해 새로운 행복감과 즐거움을 자주 반복하니 이 얼마나 놀라운 행운이란 말인가.” 양조위가 웃었다. 이런 모습을 본 게 얼마 만인가. <상성>의 한국 개봉을 앞두고 이안 감독의 신작 <욕망, 신중(色, 戒)>에 참여 중인 그의 눈에는 오랜 만에 슬픔 대신 기쁨이, 절망 대신 행복감이 어렸다. 양조위는 그날 인터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활짝 웃음 지으며 자리를 마무리했다. 창문 틈을 파고드는 햇살을 받아 그의 눈도 빛났다.

필름2.0 336호
(2007. 5. 22)

<무간도>(無間道)


1.

無間道. 보도자료에서 말하길, 열반경 제19권은 무간지옥에 대해 ‘불교에서 썰하는 18층 지옥 중 가장 낮은 층의 지옥’이라 정의 내리고 있다 전한다. 그니까 한마디로 ‘절라 조뙌 상황’이 바로 <무간도>라는 얘기되겠다. 그렇다면 당 영화에서는 이 지옥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

지금 홍콩은 삼합회로 혼란스럽고 짭새들은 이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형국이다. 이 상황에서 삼합회의 조직원 유건명(유덕화 분)은 경찰 내부에 잠입하여 유능한 짭새로 인정받고 있고, 삼합회에 숨어든 짭새 스파이 진영인(양조위 분)은 보스 한침(증지위 분)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적의 내부에 몇 년간 숨어들어 생활한다고 생각해봐라. 아무리 유능하고, 신뢰를 받고 있다해도 걸리면 끝장인데 얼마나 살 떨리겠냐. 근데 어찌저찌해서 이 둘의 존재가 상대방에게 동시에 발각되고야 마니, 절라 후달리지 아니 할 수 없는 분위기다.

그렇다. <무간도>는 이 두 쥔공, 유건명과 진영인의 절라 조뙌 상황을 그리고 있는 영화 되겠다.

당 영화와 같이 내부에 잠입한 첩자를 소재로 삼은 언더커버(undercover) 영화들은 그런 비밀스런 설정이 주는 긴장감 덕택으로 관객의 구미를 당기고 재미를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당 영화는 이들 영화와 같은 설정에서 한 똥꼬 더 나아가 양쪽 진영에 각각 숨어든 첩자를 대립시킴으로 해서 꼴림을 두 배로 유도하고 있다. 겁나게 흥미를 끄는 구도라 아니 할 수 없음이다.

그래서 <무간도>의 각본은 당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차별성을 최대한 살릴 요량으로 서로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한 쫓고 쫓기는 상황을 적극 활용한다.

특히 극중 영화관에서 진영인이 유건명을 몰래 뒤쫓다가 갑자기 터진 핸드폰 벨소리로 사면초가에 놓이는 설정이라던지, 유건명이 황국장(황추생 분)의 핸드폰을 이용, 진영인에게 접근해 가는 장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긴장감은 실로 똥꼬에 땀을 차게 할 정도로 당 영화의 백미라 하겠다.


2.

게다가 당 영화의 이야기가 더욱 재미를 주는 건, 각본을 공동으로 맡은 맥조휘와 장문강이 <무간도>를 마치 추리소설처럼 미스터리하게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로 당 영화의 서두에서 제시되는 등장인물덜의 별 시덥지 않은 행동이나 하찮은 물건들이 종국에 가서는 결정적인 단서로 작용할 뿐 아니라 영화는 끝까정 두 쥔공간의 관계를 알 수 없게끔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당 영화를 보면 액숑장면이 별로 없다. 그나마 가장 큰 액숑장면이라 할 수 있는 거리 총격전 씬같은 경우도 몇 십 초 밖에는 보여주지 않을뿐더러 이런 류의 영화가 주는 역동적인 느낌도 거의 받을 수가 없다.

이 말은 곧 당 영화가 단순한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오락영화가 아님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하겠다.

아시다시피 당 영화는 유건명과 진영인의 대립이 전체의 분위기를 좌지보지하고 있음이다. 그럼 이 둘은 왜 대립하는가? 물론 살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살기 위함이란 곧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말과 동일하다. 그런데 오랫동안 첩자 노릇을 해오다 보니 자기가 좋은 분인지 나쁜 쉐이인지 헤깔릴 때가 많다.

보스인 한침이 유건명에게 유반장이라고 부르자 놀라는 건 이 때문이다. 정체성에 혼란이 온 거다. 그러니 이 두 명의 쥔공, 심적으로 절라 고민 때림이다.

첩자를 다룬 영화가 대개 소재가 갖는 말초적인 점만 이용, 액숑에 그치거나 스릴만을 강조하는데 반해 정체성의 문제까정 건드려 쥔공의 심리를 이처럼 자연스럽게 녹인 점은 당 영화의 시나리오가 갖는 또 하나의 우수성이라 할 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당 영화에서 유건명, 진영인의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연기는 절라 중요하다. 내적인 고민을 외면으로 드러내야 하자너.

쥔공 역을 맡은 배우는 양조위와 유덕화다. 양조위야 원래 세계가 인정한 연기파이지만 당 영화에서 유덕화의 연기도 이에 못지 않았음이다. 특히 아내에게 자신의 정체가 발각된 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라. 왜 그가 20여 년 동안 홍콩영화계의 주연으로 군림하고 있는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 안 옴 말구…

당 영화의 감독은 이들의 캐스팅 배경에 대해 양조위와 유덕화가 아니었다면 제작비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마빡 하나만을 들이밀고 있는 스타급 배우였다면 영화가 어떻게 되었을까? 마치 <비싼무>, <별루>의 신횬준처럼 말이다.

유위강이 겉으로는 우스개처럼 말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배우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연기력을 중요시한 속내가 숨어 있는 것이다.


3.

그러나 아무리 이야기가 훌륭하고 배우덜의 연기가 뛰어나도 이를 담는 화면이 형편없으면 영화는 조또 아닌 게 되기 십상이다. 시나리오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촬영과 이야기의 구도를 잘 살려낼 수 있는 미쟝센이 서로 상호작용을 해야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 법이니까.

당 영화의 촬영은 감독인 유위강과 크리스토퍼 도일이 맡아, 극중 유건명과 진영인의 암울한 처지를 그대로 화면에 반영하여 어둠이 강조된 검은 필름 즉, 필름 느와르의 촬영술을 고스란히 차용하고 있음이다.

그래서 당 영화에는 지옥에 빠져있는 두 쥔공의 상황을 포착하기 위해 낮은 조도를 이용한 밤거리/극장/버스 안/엘리베이터 등 좁아터진 공간에서의 촬영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유건명, 진영인의 절망적인 심정을 외양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깊은 그림자를 강조한 촬영술을 구사하고 있으며, 여백이 강조된 넓은 공간에 쥔공이 서 있다거나 동료들에게서 떨어져 혼자 외따로 있는 등 버림받은 듯한 인상을 주는 구도가 많다.

그런 전차로 당 영화는 유기적으로 잘 연결된 세 요소(이야기/연기/촬영)가 위기에 빠진 두 쥔공이라는 중심 틀에 맞춰 별 무리 없이 조화를 이루며 통일성을 확보, 제목이 주는 지옥스런 느낌을 잘 살려내고 있다 하겠다.


4.

허나 그렇다고 해서 당 영화에 단점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당 영화는 유건명과 진영인의 어릴 적 장면을 영화의 시작과 끝에 놓고, 이야기를 베베 꼼으로써 끝까정 두 쥔공 간의 관계를 관객에게 오리무중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럼으로 해서 당 영화는 반전을 숨기고 있다. 근데 한 번만 꼬아놓았어도 관객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을 텐데, <식스센스>처럼 다시 봐야 이해가 되는 그런 차원의 스토리가 아님에도 한 번을 더 꼬아 영화의 이해에 혼란을 준 건 어찌됐던 좀 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홍콩 영화계도 반전에 대한 압박이 꽤나 심한가부다.

게다가 많은 재래식 언론덜이 ‘홍콩 느와르가 다시 똥꼬를 열기 시작했다!’는 삘루다가 당 영화를 홍보하고 있는 까닭에 <무간도>를 보려는 예비 관객덜에게 괜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하겠다.

무슨 말인고 하니, 홍콩 느와르는 시절이 하 수상하던 때, 희망이 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초상을 어두운 화면에 담는다는 점에서 필름 느와르와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쥔공이 돈과 욕망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의(義)와 협(俠) 등 인간관계에 매달린다는 점에선 차별화 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동양적 감성이 먹혔던 이유 중의 하나는 홍콩 반환을 앞둔 시점에서 홍콩 느와르가 홍콩민들의 불안한 시대적인 감성을 반영하고 있던 탓이었다.

근데 시대는 바뀌었다. 홍콩은 중국의 한 도시로 편입되었고, 사람들의 감성도 변하였다. 물론 시대를 반영하는 영화도 달라졌다. 그러니 당 영화도 홍콩 반환 이전 시절과 달리 홍콩 느와르의 특징을 그대로 답습할 리 없다.

그 결정적인 증거로 당해 영화 <무간도>의 쥔공들은 절대 의리, 우정, 협 이런 카인드 오부의 감정에 자신을 내던지지 않는다. 오로지 개인의 안위에 따른 욕망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그 결과 당 영화 어두운 인간들을 어두운 화면에 담은 전체적인 모양새에 있어선 홍콩 느와르의 냄새를 풍기나 이를 이루는 요소들 – 쥔공들의 감정 표현이 개인에 우선하고 별루 폭력적이지 않다 – 은 전혀 홍콩 느와르스럽지 못함이다.

만약 오우삼 감독의 홍콩 느와르 스타일을 기대하고 당 영화를 볼작시엔 심히 조뙈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당 영화의 관람에 앞서 고려하시라.


5.

롱롱타임동안 침체를 거듭하던 홍콩 영화계에서 오랜만에 자국민의 호응을 듬뿍 얻고 있는 당해 영화 <무간도>가 울 영화계에 주는 교훈은 자명하다.

남의 나라에서 크게 성공한 영화 수입하면 대박난다,는 수입사의 입장은 차치하고라도 시나리오가 말이 되고, 촬영이 이를 뒷받침하며, 배우의 연기가 연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기본 명제에 충실 할 경우, 관객이 알아서 찾아든다는 사실.

근데 이를 묵과하고 이야기에 상관없이 오로지 돈만 때려 박는 볼거리에만 치중하거나, 어찌됐든 우끼는 영화에만 주력하며, 계속해서 조폭 붕알만 만지고 있다간 홍콩 영화계 꼴 안 나리라는 보장은 엄따.

부디 한국 영화계는 <무간도>가 재미있다는 그 사실만을 볼 것이 아니라 재미있게 된 그 연유, 그 과정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럼 이상!!


<딴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