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트 세라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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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주영화제가 마련한 특별전의 주인공은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의 알베르트 세라 감독이다. 지금 전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독특한 영화미학을 선보이고 있는 알베르트 세라 감독에게 그만의 특별한 연출방식에 대해서 들었다.

연출에 관심을 둔 계기가 있었나?
2000년대 초반 지루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재미있는 걸 해보고 싶었다. 마침 디지털 매체의 매력을 발견하게 됐다.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저렴한 장비로도 괜찮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됐다. 또한 그 당시에 UCC(사용자 직접 제작의 콘텐츠) 유행이 막 시작되기도 했는데 소소한 일상을 담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와 달리, 나는 역시나 신화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영화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전문배우를 철저히 배제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다. 
전문배우는 정형화된 캐릭터가 있기 때문에 일부러 캐스팅하지 않는다. 첫 작품부터 비전문배우와 작업했다. 과하게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했을 뿐더러 함께 영화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전혀 어렵지 않았다.

현재 후반작업 중인 <내 죽음의 이야기>는 ‘카사노바’와 ‘드라큘라’ 캐릭터를 혼합한 이야기다. 이 역할의 캐스팅은 어떤 식으로 이뤄졌나?
<내 죽음의 이야기>는 카사노바라는 실존 인물의 사연과 드라큘라의 신화적인 이미지를 혼합한 영화다. 기존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카사노바와 드라큘라의 이미지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인물로 캐스팅, 새로운 캐릭터로 보이게끔 했다. 그들은 전문적인 연기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주어진 복장이나 공간에 반응해 즉흥에서 연기를 해낸다. 내게는 그런 즉흥적인 방식이 가장 중요하다.

이야기 역시도 즉흥적으로 구상하지 않나. <내 죽음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돈키호테와 산초의 여행기를 가져온 <기사에게 경배를>(2006)처럼 기존의 이야기가 존재하는 작품의 경우, 시나리오는 어떻게 구상하나?
캐스팅한 비전문배우들의 외모나 습관, 행동 방식을 관찰해서 이야기에 적용한다. 첫 영화 <Crespia>(2004)를 만들 때 친분이 있는 사람 위주로 캐스팅을 하다 보니 배우가 대부분 카탈루냐 사람이었다. 내 영감의 원천은 절대적으로 배우에서 시작된다.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내 영화에서 목격되는 특정한 요소들, 가령 기독교 문화라든지, 미술 작업과의 유사성은 마침 캐스팅된 배우들이 그런 환경이나 문화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인 까닭이 절대적이다. 카사노바, 돈키호테에 어울리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니 카사노바, 돈키호테가 어울린다는 방식이 내게는 더 중요하다.

‘시네마스코프’의 편집장 마크 페란슨은 <새들의 노래>(2008)의 동방박사 3인 중 한 명을 연기했다. 동방박사는 유대인이지만 마크 페란슨은 캐나다 출신이다. 그런데 어떻게 캐스팅하게 된 건가?
마크 페란슨이 직접 영화를 만든 경험이 없어서 함께 작업을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새들의 노래>의 메이킹 다큐멘터리인 <산초를 기다리며>(2008)를 만들었다. 출연하게 된 계기는, 유대인과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나. (웃음) 그래서 출연하게 됐다.

롱테이크를 굉장히 선호한다. 그 이유 역시 비전문배우와 관련이 있나?
그렇다. 그들에게 스크립트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깊은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롱테이크가 중요하다. 또한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상황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 극 중 환경이나 배우들의 손짓, 발짓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세세히 표현해내야 한다. 그래서 롱테이크는 내게 가장 중요한 미학이다.

<내 죽음의 이야기>는 당신의 필모그래프에서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로 알려진다. 언제 볼 수 있을까?
18세기 성을 빌려야 했고 출연진들이 더 많았고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조명을 더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제작비가 많이 들었다. 그런 이유뿐이지 내 작업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 400분 분량의 장면을 찍었고 두 달 전부터 편집을 시작했다. 2시간 정도로 완성해 내년에 선보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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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전주영화제 공식 데일리
NO.6

알베르트 세라에게 경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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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르트 세라는 지금 전 세계 영화계를 통틀어 가장 혁신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실제로 장편데뷔작 <기사에게 경배를>(2006)이 발표된 후 ‘카이에 뒤 시네마’는 데이비드 린치의 <인랜드 엠파이어>, 지아장커의 <스틸라이프>,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징후와 세기> 등과 함께 2007년 올해의 영화 10편 중 한 편으로 선정했다. 또한 ‘사이트 앤 사운드’의 영화평론가 키에른 콜리스는 그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all-time favourite) 작품으로 꼽으며 열렬한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세라는 키에른 콜리스와의 인터뷰에서 그 자신을 일러 “가장 뛰어난 감독 I’m the best one”, “스페인의 가장 위대한 감독 Greatest director in spain”이라고 지칭했다.)

<기사에게 경배를>은 세르반테스의 풍자소설 <돈키호테>를 다루지만 (세라는 바르셀로나 대학에서 라틴문학과 비교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모험담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 속 돈키호테만 해도 괴팍하기보다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잃은 염세주의자로 묘사된다. “아담과 이브 때만 해도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로웠는데 지금 세상은 전혀 딴판이야” 산초에게 읊조리듯 얘기하며 먼 풍경을 응시하는 돈키호테의 시선에는 기사 특유의 어떤 의기양양한 목적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돈키호테를 바라보는 충복 산초에게도 씁쓸하고 무기력한 기운만 엿보일 뿐이다. 해서 모험담인 소설과 달리 목가적인 풍경이 사건을 대체하며 상업영화에서라면 버려졌을 법한 장면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 같은 대담한 연출은 <돈키호테> 모티브를 다시 한 번 가져오려 했던 <주께서 내게 기적을 행하셨도다>(2011)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사실 이 영화의 애초 목적은 소설의 실제 무대가 됐던 라만치 지역을 찾아 신화화된 이미지의 풍경을 가지고 로드무비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세라는 홍상수 감독처럼 시나리오에 의존하지 않고 즉흥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연출가로 알려진다.) 하지만 흙먼지가 풀풀 날리고 현대화된 풍차가 관광객의 눈을 현혹하는 풍경은 예상을 완전히 빗겨가는 것이었다. 흥미를 끌만한 것도, 아름다운 것도 없는 라만차에 실망한 세라는 대신 감독 이하 배우와 스태프들이 영화 현장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며 잡담이나 나누는 장면들로 3시간 가까운 상영 시간을 채웠다.

“영화처럼 사고(思考)하지 않고 꿈도 꾸지 않는다.”는 세라 감독은 신화화된 이야기나 배경, 무엇보다 영화적 사고를 해체하는 쪽으로 영화를 만든다.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러 가는 동방박사 3인의 행보가 중심에 놓이는 <새들의 노래>(2008)의 경우, 성경 이야기가 주는 경건함이나 종교적 신념 같은 아우라는 철저히 배제했다. 마태복음에는 ‘동방으로 온 박사들이 예루살렘 왕궁에 도착하여 새 아기 왕을 찾습니다.’라고 나오지만 극 중의 예루살렘은 풀 한포기 보기 힘든 척박한 돌무지 땅으로 묘사된다. 게다가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길을 나선 동방박사들은 불편한 잠자리를 불평하거나 시시콜콜한 꿈 얘기를 화두로 삼는 등 <새들의 노래>는 독특한 코미디로 기능한다.  

이렇듯 알베르트 세라는 우리가 익히 아는 스토리텔링에 변주를 가해 관객의 예상을 깨는 동시에 전통적인 영화문법과는 철저히 안녕을 고한 연출을 구사한다. 그것은 세라가 다양한 영화잡지에 비평을 기고하는 비평가 출신이란 배경과도 무관치 않은 듯 하다. <벌집의 정령>(1973)이 유아적이라며 빅토르 에리세를 무시하고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감독 루이스 브뉘엘을 옹호하는 (그와 같은 이유로 고전기의 할리우드 영화는 좋아하지만 현재의 미국영화는 혐오한다.) 그의 영화적 철학은 단호하다. “영화의 로맨틱한 상상을 믿지 않는다. 내게 영화란 획기적인 방식으로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사전에 기획된 것이 아닌 처한 상황에 맞춰 즉흥성을 꾀하고 모든 영화에서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배우를 고집하는 건 그의 영화관(觀)을 반영한 결과다.

그래서 세라는 영화가 영화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에게 영화는 수많은 예술매체 중의 하나일 뿐이다. “향수나 우울증으로 점철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술가들의 로맨틱한 아이디어는 좋아한다. 그들을 보통 사람들과 달라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구별할 줄 아는 안목을 지녔다.”는 발언은 세라가 영화를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반영한다. 예술 창작의 고통을 종교적 고행에 빗댄 <그리스도의 이름들>(2010)은 그 좋은 예다. 14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영화는 제작비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화가와 큐레이터, 감독과 제작자의 각각의 사연이 엇갈리는 구조로 진행된다. 서로 연관 없어 보이는 에피소드를 병치시켜 몽타주 효과를 발휘해 관객들이 직접 창작의 고통을 체험토록 하는 것이다.

이때 알베르트 세라가 숏을 다루는 방식은 화가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과 무척이나 닮았다. <기사에게 경배를>에서부터 <주께서 내게 기적을 행하셨도다>까지,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굳어진 롱테이크와 롱숏에는 인물들의 표정이나 행위의 움직임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어 정물화처럼 보일 정도다. 오히려 대사로만 의미를 생성하는 형태를 취하는데 이는 언어를 최소화하고 이미지를 이야기 전달의 최우선으로 삼는 고전적인 영화문법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즉, 숏 안의 정보(미장센)를 고정하는 것이 아닌 일정 시간동안의 대사로 의미를 생성하는 방식은 미술관의 작품을 감상하듯 관객들에게 고도의 관찰력과 집중력을 요한다. 그럼으로써 감독은 예술가로, 관객은 수동적인 감상자가 아니라 해석하는 사람으로 위치시키는 것이다.

알베르트 세라는 현재 그의 필모그래프에서 가장 많은 제작비(1,200,000)가 들어간 ‘드라큘라’ 프로젝트 <내 죽음의 이야기>(2012)의 후반 작업 중에 있다. 드라큘라는 많은 이들에게 피를 빠는 공포의 존재로 각인됐지만 세라는 카사노바 캐릭터를 덧입혀 전혀 새로운 인물로 변주할 계획이다. 비록 이번 전주영화제에서는 그의 신작을 볼 수 없지만 앞서 언급한 4편의 장편 외에 세라의 흥미로운 작업을 보여주는 2편의 작품도 함께 소개된다. ‘시네마스코프’의 편집장 마크 페란슨이 <새들의 노래>의 현장을 담은 메이킹 다큐멘터리 <산초를 기다리며>(2008)와 <주께서 내게 기적을 행하셨도다>와 함께 영상편지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짝을 이루는 리산드로 알론소의 <무제(세라에게 보내는 편지)>(2011)가 그것. ‘알베르트 세라 특별전’은 ‘위대한 감독’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알베르트 세라의 소개가 단순히 치기어린 허풍이 아님을 증명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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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전주영화제 공식 데일리
NO.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