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사바>(Bunshinsaba)


국내 유일의 현역 호러 전문 연출가 안병기 감독. 전작 <가위>와 <폰>을 통해 더위를 씻어주기는커녕 되려 궁뎅이에 땀띠 나는 안 무서움을 선사했던 그가 세 번째 작품 <분신사바>로 우리 곁에 찾아왔다.

당 영화는 과연 전작에서 관객의 복장에 지핀 불신지옥을 씻어낼 수 있을 것인가?

서울에서 전학 온 유진(이세은 분), 왕따를 견디다 못 해 분신사바 주문을 외운다. 그랬더니만 다음 날부터 반 친구들이 깜장 비닐 봉다리를 뒤집어 쓴 채 산화해가고 자신은 사경을 헤매던 중 그 배후에 있는 30년 전의 비밀이 서서히 그 전모를 드러내는데…

이렇게 ‘분신사바’라는 소재와 <모녀귀> 라는 원작소설을 짬뽕한 당 영화, 결론부터 말해 공포영화로써 자신이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전혀 안 무서운 결과를 연출하고 있다. 이런 꼬락서니를 가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첫 번째. 원작소설 좋고, 아이디어 있으면 모 하나. 이를 풀어내는 각본과 연출력이 따라주지 못하면 말짱 꽝인데.

이미 <가위>와 <폰>에서 문제시 됐던 문어체 대사의 각본은 차치하더라도 당 영화는 30년의 시간을 넘나드는 방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를 수습하지 못 하느라 절라 정신 엄따. 왕따 당하는 쥔공의 사연 보여줘야지, 그녀 곁에 궁디 밀착 붙어 다니는 모녀 구신의 사연도 설명해 줘야해, 30년 전 학교와 마을의 비밀까지 오지랖 찢어지게 도때기 시장 좌판처럼 펼쳐놓기만 하니 관객은 장황한 이야기 따라가느라 무서울 틈이 없다, 씨바!

그리고 두 번째. 당 영화는 관객의 오줌보를 지리게 하는 그런 공포가 아닌 귀청 떨어져 나갈 듯한 볼륨 이빠이 사운드를 가지고 꼴에 공포라고 우기고 있다.

몬가 으실으실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하면 시도 때도 인정사정 볼 것도 없이 찾아오는 only ‘뚜둥’ 사운드에, 쥔공 등짝 뒤에서 어김없이 ‘뿅’하고 나타나는 구신 등 <분신사바>가 선사하는 공포는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놀래킬지 삼척동자도 척하면 삼천리 할 만큼 그 부라에 그 빤스로 일관하니 무섭겠어, 안 무섭겠어? 안 무섭겠지. 조또..

마지막 세 번째. 이제는 만드는 지들조차도 지겨울 때가 된 거 같은데 <링> 비스무리한 거 집어넣지 않으면 사다꼬의 저주라도 받는지 젖은 미역마냥 장발을 늘어뜨린 채 눈깔 히번덕 부라리며 어기적 어기적 기어나오는 비쥬얼을 남발하느라 쎄빠닥 늘어지게 더운 이 여름에 고생하고 자빠지셨다.

게다가 비쥬얼만으로는 모자라 엄마가 딸뇬에게 초능력을 빙의해 한(恨)을 풀 게 한다는 설정까지 <링>과 흡사한 모냥새를 띄고 있다. 물론 <모녀귀>를 각색한 설정이라고는 하지만 그따구로 사다꼬를 베껴먹고 있는 판국에 그 누가 아무리 <링> 아니라고 우겨도 믿을 사람 그 누가 있겠냐. 그러다보니 가뜩이나 안 무서워 죽겠는데 더 안 무서워서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다. 이런 닝길..

이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지만 지면관계상 이쯤에서 마치기로 하고. 그나마 당 영화가 관객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공포의 탈을 뒤집어 쓴 코미디 <페이스>, <령>보다는 봐줄만 하다는 사실. 게다가 어설픈 반전이 없는 공포영화 보는 게 대체 그 얼마만이냔 말이다.

근데 그럼 모해, 공포영화가 한 개도 안 무섭고 말이야. 그런 전차로 당 영화를 워스트 주녀에 뽕한다.


<딴지일보>

<폰>(The Phone)


지난 2000년 여름, 더위를 식혀주겠다고 나타나 되려 관객의 복장에 100도가 넘는 지옥불을 지폈던 쒯호러 4인방 – <하피>, <가위>, <찍히면 죽는다>, <해변으로 가다> -을 기억하실 꺼다. 당 영화는 그 중 <가위>를 연출한 안병기 감독의 두 번째 영화로 역시 공포물 되겠다.

<폰>이라는 제목에서 은근히 단서가 내비치듯, 당 영화는 핸드폰과 관련된 호러틱 이야기다. 글고 그 스또리는 흡사 <링>과 <엑소시스트>를 닮아 있으며 결국에는 동양공포의 정수인 한(恨)으로 귀결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 영화가 무섭느냐? 결론부터 말하자면 존나 살 떨리게 무섭다. 그럼 왜 무섭냐?

일단 전작 <가위>에서 탄탄한 이야기나 존재하지 않는 존재를 통해 공포를 자아내는 그런 내공 대신 오로지 귀 떨어져 나가는 사운드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던 그때 그 실력이 당 영화에는 더욱 극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엔 아예 제목을 <폰>으로 박아놓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당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핸드폰 벨소리가 영화초반 거의 재앙이다 싶을 정도로 주구장창 울려대는 턱에 관객의 짜증은 ‘공포’스러울 정도다.

게다가 나올 때, 안 나올 때 가리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갑자기 튀나오는 ‘두둥~’ 사운드에는 아싸리 귀를 감고 싶을 정도다. 아직도 귓구녕에서 두둥~ 싸운드가 울린다. 아, 씨바… 무섭다.

포스터를 보면 당 영화의 공포는 하지원에게서 품어져 나오는 듯 하나 실상은, 귀신 쓰인 역으로 등장하는 아이 영주(은서우 분)와 한을 품고 사라진 여고생 진희(최지연 분)에게서 모든 공포가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그러나 영주의 경우 귀기 서린 역을 매우 호러틱하게 잘 소화했지만서도 그 나이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사, 가령 “이모… 사랑이 뭔 줄 알아?”, “이모는 진짜 사랑이 뭔 줄 모를 꺼야”같은 얼라의 입에서는 나오지 않음직한 대사만을 읊어댐으로써, 그런 대사를 만들어낸 그 얼토당토 시나리오가 무섭따.

그리고 진희는 인적이 드문 곳이거나 외진 곳, 귀신이 나올 만한 곳이라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어디서든 나타나 관객을 놀래킬라고 노력하는 그 지치지 않는 체력 땀시 역시 공포시럽따.

하지만 뭣보다 당 영화에서 가장 심장이 벌렁벌렁거리는 부분은 관객을 무서움의 도가니탕에 빠뜨리기 위해 공포영화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클리셰(자주 사용되는 설정)와 도구, 장소를 마구잡이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

또 거기에 앞썰한 <링>, <엑소시스트>와 비스무리한 설정 그리고 원조교제, 인공수정과 같은 사회문제까정 덧붙임으로써 이야기 구성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끝내는 당 영화가 도때기 시장처럼 풀어 헤쳐댄 이야기를 도대체 어떻게 수습할지 그 무대뽀 정신에 등골이 다 오싹할 정도다. 그리고 역시나 뭔가 제대로 보여줄랑말랑 싶더니만 흐지부지 마무리해 버리는 결말의 그 무지막지함엔 결국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릴 수밖에 엄따.

그러니 당 영화가 무서워? 안 무서워? 딥따 무섭지. 전작 <가위>에서도 그러더니만 당 영화 역시 공포물답게 꽤나 공포스럽더라구…


<딴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