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사이코>를 許하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근 번역 출간된 소설 <아메리칸 사이코>가 9월 18일 간행물윤리위원회(이하 ‘간윤’)로부터 판매금지(이하 ‘판금’) 결정을 받았다. 판금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지만(해당 출판사로 이유 설명 없이 판금 결정만 적어놓은 공문이 도착했다고 한다.) 청소년보호법에 의해 출범된 간윤의 배경 상, 청소년들의 정서에 반하는 특정묘사가 원인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힘을 얻는다.

국내 팬들에겐 소설보다 영화로 더 유명한 <아메리칸 사이코>는 1980년대 미국문학계에 새 바람을 불어넣은 대표적인 문제작으로 평가받는다. 저자인 브렛 이스턴 엘리스 자체가 파격적인 작품을 연달아 선보이며 ‘문학계의 브랫 팩’(1980년대 등장한 할리우드 청춘스타를 일컫는 용어로, 미국 문단에서는 젊은 작가군을 지칭한다.)이란 별칭을 얻었을 정도인데, 과연 <아메리칸 사이코>의 필체에는 기존 문학의 얌전한 표현력을 뛰어넘겠다는 젊은 작가 특유의 객기가 넘쳐난다.

<아메리칸 사이코>는 뉴욕에 거주하며 금융 직에 종사하는 젊은 남자, 소위 여피족(yuppie)으로 불리는 주인공 패트릭 베이트먼이 사이코로 돌변하는 과정을 그렸다. 이 작품에서 베이트먼은 명품 브랜드로 자신을 꾸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방조차 브랜드와 스타일로 평가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아메리칸 사이코>는 그런 베이트먼을 앞세워 물질로 모든 가치를 평가받는 1980년대 당시의 세태를 통해 물질주의가 만연한 미국 사회를 비판한다. 이 책이 출간과 함께 화제를 모았던 이유 역시 문명의 병폐를 날카롭게 지적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지난해 불어 닥친 세계 금융위기의 주범인 월스트리트 주역들의 도덕적 해이를 이미 오래 전에 지적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브렛 이스턴 엘리스는 그런 베이트먼 세대가 지닌 분열증적 사고(思考)를 강조하기 위해 철저히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며 표현의 수위를 높인 것으로 유명하다. 베이트먼이 정신분열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행하는 살인을 세심하게 묘사하는 것은 물론 살인의 대상이 되는 목록은 노숙자, 여자,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들이 대다수다.

“… 나는 길고 가느다란 톱니날 칼로 아주 세심하게 놈의 오른쪽 눈알에 칼날을 2센티미터쯤 찔러 넣고 손잡이를 위로 홱 꺾는다. 순식간에 놈의 망막이 파열된다. (중략) 부랑자의 눈알이 터져 안구 밖으로 매달린 채 얼굴로 흘러내리고 연신 눈을 깜빡이자 상처 안에 남아 있던 내용물이 핏줄에 불그레한 달걀 노른자위처럼 쏟아져 나온다.”

“꼬마가 조그만 머리를 가만히 위아래도 끄덕이며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별안간 집채만 한 분노의 파도에 내 갑작스러운 애정결핍이 물마루에 치닫자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잽싸게 꼬마의 목을 찌른다. 놀란 꼬마가 쓰레기통 쪽으로 물러나며 아기처럼 꼴록꼴록 소리를 내지만 목에 난 자상에서 뿜어 나오는 피 때문에 비명을 지르거나 울지도 못한다.”


이는 단순히 독자들의 오르가즘이나 자극해 판매부수를 늘리려는 얕은 수의 묘사가 아니다. 베이트먼의 잔인한 행동을 통해 이들의 피상적인 인간관계의 부작용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문명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미국에서도 극단적인 논란이 일긴했지만 ‘지난 수년 동안 나온 책들 중에서 심원한 주제, 도스토옙스키의 테마를 다룬 첫 책’(배너티 페어), ‘즐거운 독서를 제공하는 책도 아니며, 포르노는 더더욱 아니다. 이것은 고통스러움에 단련되어 가는 사회를 비평하는 진지한 소설이다.’(라이브러리 저널)와 같은 평가처럼 문제가 되는 부분과는 별개로 작품 자체에 족쇄를 채우는 짓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을 유해도서로 지정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문화적 안목에 먹칠을 하는 것과 진배없다. 더군다나 어떤 사회적인 합의도 없이 간윤의 결정에 따라 일방적으로 판금 조치한다는 것은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판금 도서는 차치하더라도 19세 미만 구독 불가(이하 ‘19금’) 도서 목록만 보면 음란물이 압도적이라는 점에서 이번 <아메리칸 사이코>에 내려진 결정은 실로 세계문학계의 토픽감이라 할만하다.

현재 <아메리칸 사이코>는 해당 출판사의 재심의 요청으로 이에 대한 최종 판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판매가 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책 표지 앞뒷면에 19금 딱지를 붙이고 랩으로 꽁꽁 싸인 채 나이 확인을 거쳐 판매가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인터넷서점에서 역시 인증을 거친 후에 책에 대한 정보가 확인 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조치만으로도 <아메리칸 사이코>의 특정 묘사가 품고 있는 유해함(?)을 청소년으로부터 차단하기에 충분하다. (성인에게까지 차단해야 할 이유가 뭘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심의에서도 판금 조치가 내려진다면 이것은 명백히 독자들의 볼 권리에 대한 침해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아메리칸 사이코>의 판금 조치에 대해 간윤에서는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전해진다. 이에 대한 해당 출판사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판금이란 사실만 알려주는 간윤의 처사는 여러 모에서 지탄받아 마땅하다. 우선 ‘간행물 심의 및 규제’의 조항을 살펴보면 청소년 유해간행물로 결정된 간행물에 대해서는 ’해당 간행물을 발행한 자에게 그 결정내용과 이유를 명시하여 서면으로 통보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간윤은 <아메리칸 사이코>의 판금 결정 과정에서 이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설사 청소년 유해간행물이 아닌 다른 이유로 조치를 취했다 해도 그 이유를 명확히 밝혀야 차후에 발생하게 될 혼란을 막을 수 있음을 감안할 때, 이를 방관하는 건 책임 있는 기관의 행동으로 부적절하다.

나는 이 부분이야말로 독자들의 볼 권리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만에 하나 <아메리칸 사이코>와 비슷한 성격의 작품이 등장했을 때 이번 사태가 일종의 보이지 않는 검열의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2006년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이 과도한 폭력 묘사로 인해 19금 판정을 받으며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작품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특정 묘사만을 지적해 문제 삼은 조치로 해당 작가는 그 이후 자기 검열 속에 작풍을 바꾸는 일까지 있었을 정도다. 이건 단순히 해당 소설, 작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잠재적인 볼 권리를 앗아갔다는 점에서 우리 문학계의 큰 손실에 다름 아니다. 하물며 <아메리칸 사이코>와 같은 우수한 해외 작품을, 특정 묘사가 간윤의 기준에 벗어난다고 해서 앞으로 보지 못하게 된다면 이 또한 한국 독자들에겐 손해가 아닐 수 없다.

<아메리칸 사이코>의 패트릭 베이트먼은 잘 나가는 브랜드를 기준으로 상대방을 평가하고 일종의 등급을 매긴다. 그에게 등급 외의 인간은 살아있을 필요조차 없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아메리칸 사이코>에 대한 이번 간윤의 판금 조치는 흡사 베이트먼의 인생철학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모든 인간이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듯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작품들은 대중에게 공개돼 평가받을 권리가 있다. 대중들은 생각만큼 어리석지 않아서 스스로가 자정능력을 가지고 작품을 판단할 정도는 된다. 간윤은 청소년들이 볼만한 도서인지, 봐서는 안 되는 도서인지만 판별하면 된다. 판금은 간윤의 몫이 아니다. 독자의 몫이고, 대중의 몫인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MOVIST
(2009.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