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미국이 풍기는 외재적인 이미지는 흠잡을 것이 없을 만큼 완벽했다. 세계 2차 대전을 거치며 드러난 모습은 미국만이 세계의 질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진 대국의 면모로써 위상을 견고히 했다. 그래서 삶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려는 외부인들에게 미국은 개척의 이미지를 풍기는 기회의 땅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부풀려진 외부의 뜨거운 시선과는 달리 내부적으로 미국은 치유할 수 없는 골병을 앓고 있었다. 뿌리깊게 박혀있던 흑인과 백인간의 인종갈등은 노골적인 적의와 편견으로 미국 내 서로 다른 두 나라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1958년 갑작스레 출몰한 스탠리 크레이머의 문제작 <흑과 백>은 바로 인종주의 모순이 극단적인 대립양상을 보이던 당시 미국 내부의 아킬레스건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민다.
내리치는 빗발로 인해 불길한 전운이 감도는 새벽녘, 일군의 죄수를 실은 호송차량이 불의의 전복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두 명의 죄수, 흑인인 노아 컬렌(시드니 포이티어 분)과 백인 존 잭슨(토니 커티스 분)은 이 와중에 탈출을 감행한다. 감독의 문제의식과 관객의 긴장감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동반 탈출한 두 인종이 쇠사슬에 함께 묶여 있는 것이다.
– 어떻게 흑인과 백인을 함께 묶었죠?
– 소장이 유머가 있거든. 걱정은 하지 말래. 얼마 못 가 서로 죽일거라는군.
노아와 컬렌을 쫓는 수색대원들이 나누는 이 잔인한 대화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앙숙의 관계임을 나타내는 일종의 풍자이며 당시 사회에 퍼져있던 미국민의 의식을 잘 보여주는 사회 반영적 장면이다. 게다가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던 카메라는 위 대화를 나누던 인물에게 갑자기 다가감(zoom in)으로써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그렇지만 감독은 예상과는 달리, 잠시 둘간의 극단적인 갈등상황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주로 탈주과정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통해 흑인과 백인사이에 갈라져 있는 균열과 편견을 조롱하고, 백인과 흑인의 사회 속 지위를 신랄하게 폭로 해가며 그 두 인종의 마음이 어떻게 융화되어 가는지를 담담히 보여준다. 결국 이 길이 미국이 나아가야 할 미래라는 것이다.
이 영화의 원제는 <The Defiant Ones>로 굳이 해석하자면 ‘싸우는 이들’, ‘분노하는 사람들’ 정도가 된다. <흑과 백>으로 의역한 국내제목이 크게 틀린 것은 아니지만 자칫 관객에게 영화의 의도를 흑인과 백인간의 문제로만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다시 말해 <흑과 백>은 인종문제를 중심에 놓고 다루고 있지만, 쫓기는 죄수라는 두 주인공의 설정은 흑인의 시선에 동정표를 던지는 ‘인종문제’라는 상징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표면적으로 보이는 실체를 통해 ‘인간’자체의 자유를 갈구하는 사회의 약자 혹은 소외 받는 이들의 문제까지 다루고 있는 포괄적인 영화라는 사실이다. 단적인 예로, 남편에게 버림받은 아내가 잭슨을 이용 도회지로 나가려는 설정은 백인남성이 지배하는 미국의 주 체제 속에 소외 받는 또 하나의 계층인 여성이 겪는 갈등이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비꼬기의 대상은 더 있다. 노아와 잭슨을 쫓는 추적자의 모습에서 감독은 당시 미국 사회의 어두운 경향을 질타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유희인 듯 죄수를 쫓는 대원, 탈출한 죄수는 토끼와 같다며 사살을 주장하는 대원에게서 미국 전역을 레드 콤플렉스에 빠뜨렸던 매카시의 마녀사냥을 덧칠하며, 개를 끔찍이도 아끼는 대원의 행동은 동물은 이다지도 정성스레 보살피면서 왜 같은 인간인 죄수(혹은 흑인)에게는 그 보다 못한 학대를 가하냐며 꾸지람을 하는 듯 하다.
감독은 이 모든 요소를 한 영화 속에 반죽하면서도 이야기를 산만하게 풀어 헤치지 않고, 인종문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주변부 인간군상의 처지까지 함께 상쇄하는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잘 알려진 바대로 스탠리 크레이머(Stanley Kramer)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지성파 감독, 제작자로 유명하다. 그는 <흑과 백>을 감독하기 이전 <케인호의 폭동 The Caine Mutiny>의 제작에 참여, 미 해군 법조항이 내재하고 있는 모순을 지적함으로써 이미 미국 내부의 문제점에 이의를 제기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흑과 백>의 성공이후 흑인의 사회적 접근을 경계하는 미 국민의 편견에 더욱 따가운 경종을 울리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 Guess Who’s Coming to Dinner>과 같은 작품을 발표하여 흑인과 백인간의 갈등관계에 남다른 문제의식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흑과 백>은 여러 모로 의미가 깊은 영화이다. 그중에서도 앞서 밝혔듯이, 미국의 내부 문제 중에서 그것도 흑인과 백인간의 가장 민감한 상처부위를 정면으로 공격함으로써 논쟁을 불러일으킨 사실은 가장 높이 평가받는 부분이다. 또한 토니 커티스와 함께 공동주연을 맡은 시드니 포이티어에게 <흑과 백>은 자신의 연기 생활 중 첫 주연을 맡은 작품일 뿐 아니라 미국 영화사에서도 흑인이 주연을 맡은 경우는 이 영화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흑인들에게 <흑과 백>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포이티어를 헐리웃에 데려온 20세기 폭스사의 제작자 대릴 F. 자누크의 입김을 받은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이 시드니 포이티어에게 <흑과 백> 출연을 제의하면서 <Porgy and Bess>의 Porgy역에 출연해야한다는 조건을 제시, 승낙하지 않을 경우 기회를 박탈하겠다고 협박한(?) 일화는 시드니 포이티어가 ‘흑인’ 이었기 때문에 헐리웃에서 겪게된 정치적인 차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씁쓸한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2001. 11. 26. <무비클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