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 호스>와 서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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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호스>의 마지막 장면은 흡사 존 포드 영화의 결말을 보는 것 같다. 서부극의 미장센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다. 세트임이 명백해 보이는 농장 위에서 지는 석양의 빛을 등지며 그림자의 모습으로 재회하는 알버트(제레미 어바인) 가족의 모습. 스티븐 스필버그의 가족주의를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결말이지만 여기에 의외의 존재가 끼어든다. 바로 ‘조이’라는 이름의 말이다.

서부극은 대개 미국의 이상주의를 옹호했다. 백인 개척자들의 활약상을 통해 삶의 터전을 일구고 공격적인 외부 세력에 맞서 가족을 보호하는 모습은 곧 미국적 가치의 실현이었다. <수색자>(1956) 이후 존 포드가 수정주의 서부극으로 백인에 의해 (그리고 그 자신에 의해) 일방적으로 쓰인 미국의 가치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서부극이 미국의 장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첨단의 영화를 만들면서 고전에 대한 오마주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스필버그는 <워 호스>를 통해 현대판 수정주의 서부극을 선보인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 나갔던 말 조이도 알버트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극적으로 가족과 결합한다. 말하자면 <Saving War Horse>인 셈인데 스필버그는 서부극의 필수요소였지만 주변 풍경으로 밀려났던 말을 중심부로 이식한다. 가족의 범주에 말을 포함시킴으로써 스필버그 특유의 가족주의에 확장을 시도한다. 그리고 서부극의 미장센을 빌려 미국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옹호하는 것이다. 

<죠스>(Jaws)


몇 편의 TV영화와 극장용 장편영화 <슈거랜드 특급(The Sugarland Express)>으로 주목받은 26세의 스티븐 스필버그에게는 한가지 고민거리가 있었다. 평단으로부터 재능은 인정받았지만 재능을 돈(?)으로 환원시켜줄 관객의 호응은 얻지 못한 까닭이었다. 그는 피터 벤칠리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죠스>에 영화생명을 담보로 신경쇠약 직전까지 이르는 집중력을 발휘하였다. 그 결과 <죠스>는 헐리우드 최초의 1억 달러 흥행수입 돌파는 물론 블록버스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폭탄의 명칭이기도 한 블록버스터에는 몇 가지 공식이 있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제작비에 쏟아 부어 그를 능가하는 수익을 올리기 위해 전 세계 시장을 겨냥한 공격적인 마케팅과 막강한 배급력을 통한 상당수의 극장을 확보한다. 많은 관객을 유혹하기 위해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하고 영화팬의 발길이 집중되는 여름시즌에 개봉한다. 마지막으로 영화가 성공할 경우 그 브랜드를 이용하여 이벤트 상품을 기획하고 속편시리즈를 제작한다.

<죠스>의 제작비용은 $12,000,000 우리 돈으로 약 120억(1,000원 환산)에 육박하는 돈이다. <진주만>의 $15,275,000,000에는 미치지 못 하지만 1975년이란 시간대에 <블레어 윗치(The Blair Witch Project)>가 고작 $35,000의 제작비를 들였음을 상기해 본다면 무시 못 할 수준의 액수였음은 틀림이 없다. 이 수치만 보더라도 <죠스>가 얼마나 대규모 영화였는지 짐작 할 수 있다. 거기다 흔히 접할 수 없는 상어를 특수 제작하여 관객의 이목을 끈 점, 후에 테마 파크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관련 상품이 인기를 모았으며 속편은 물론 여러 편의 <죠스> 시리즈가 줄을 이은 사실은 <죠스>를 블록버스터의 효시로 보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토록 <죠스>에 열광하도록 만들었을까? 식인상어에 의해 첫 희생자가 발생하는 초반장면부터 언급해 보자.


파티를 즐기는 일군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눈이 맞은 두 남녀는 해변으로 빠져나온다. 술에 잔뜩 취한 남자는 백사장에 곯아떨어지고 여자는 홀로 바다에 뛰어 들어 유유자적 수영을 즐긴다. 이 때부터의 카메라 앵글은 상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관객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트릭을 선보인다.


화면은 평화롭게 헤엄을 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수면 위에서 비추어준다. 곧이어 카메라는 객관적인 시점에서 수면 속 상어의 시점으로 바뀌고 관객은 곧 긴장에 쌓이게 된다. 수면 위와 아래의 광경을 교차로 편집, 반복한 후 어떠한 힘에 의해 희생당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며 대미를 장식한다. 당연히 상어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은 것이다.


상어의 실체를 전혀 보여 주지 않으면서도 관객을 공포로 몰아넣는 이 장면은 상어의 시점을 도입한 오프닝 시퀀스와 존 윌리엄스가 맡은 영화음악(일명 죠스송) 그리고 영화를 보러 온 관객의 연상행위 덕에 속임수의 효과를 더욱 극대화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러 온 관객의 연상행위라니?


여러분들은 영화 <사이코>를 기억 할 것이다. <사이코>가 무서움을 일으키는 지점은 영화가 시작되고 약 1시간이 지난 마리온이 욕실에서 살해를 당하는 순간부터이다. 혹자는 마리온의 공금횡령 후 도시를 빠져나오는 상황도 공포를 일으킨다고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그것은 긴장감일 뿐이다. 긴장감을 공포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일까? 그것은 알프레드 히치콕이라는 이름과 영화 제목이 주는 연상작용 때문이다. 관객은 히치콕이라는 이름에서 반사적으로 그가 이번에도 무서운 스릴러영화를 만들었구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게다가 제목까지 ‘사이코’이니 관객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충분히 겁을 먹고 관람을 하게 된다.


<죠스>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신인급이였던 스필버그는 논외로 치더라도 개봉 전 요란할 정도의 홍보와 ‘죠스’라는 이미지가 주는 거대함과 두려움은 극장에 들어서기 전까지 관객에게 <죠스>에 대한 기대감은 물론 이 영화가 나아갈 지향점을 충분히 인식시켜 주었다. 스필버그는 이 점을 철저하게 이용하였고, 마침내 관객은 스필버그의 영화를 즐기기 시작하였다.


확실히 <죠스>가 노리는 공포의 발화점은 ‘최소한의 드러냄’이다. 이처럼 상어의 모습을 숨기면서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카메라 트릭과 함께 몇몇 소품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극중에서 상어와 최후의 결전을 펼치는 마틴(로이 샤이더 분)과 퀸트(로버트 쇼 분), 맷(리처드 드라이퍼스 분)은 상어의 움직임을 감지하기 위해 부력통을 이용하였고 관객은 이 부력통이 물위로 떠오를 때마다 상어의 출몰을 두려워하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특수 제작된 상어가 물 속에서 잦은 고장을 일으켜 고육지책으로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부력통이란 사실이다. 이 발상은 결말부 시나리오의 수정을 불러왔음은 물론 더 짜릿한 공포를 몰고 왔다.

<죠스>는 여러모로 히치콕의 필체가 강하게 느껴지는 영화이다. 언제나 오프닝 시퀀스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히치콕의 언급도 있었고, 존 윌리엄스와의 음악작업은 영상과 음향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버나드 허먼과의 파트너 관계를 연상시킨다. 또한 상어의 시점은 새 시점 (bird eye’s view)과 겹쳐진다. 그것은 아마 <죠스>를 만들던 시기가 스타일이 완전하게 확립되지 못했던 초창기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바꿔 말하면 히치콕 영화의 특징을 상당부분 참조했다는 소리가 될 것이다.


그 후 스필버그는 거장의 대우를 받지 못했지만(대신 상업영화의 귀재라는 호칭을 얻었다) <죠스> 이 후 영화계를 주름잡는 거물이 되었다.


(2001. 7. 29. <무비클래식>)

<태양의 제국>(Empire of the Sun)


일본의 기습적인 진주만 공습을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다는 점을 들어 마이클 베이의 <진주만>과 리차드 플라이셔와 후카사쿠 긴지의 1970년 작 <도라 도라 도라(Tora! Tora! Tora!)>와의 직접적인 유사성을 언급하는 일은 웬만한 영화지식을 습득하고 있는 이들의 안전한 자기 과시일 것이다. 물론 <진주만>이 <도라 도라 도라>를 참고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소재의 유사성말고 마이클 베이가 유아적인 복수심을 내세워 어설픈 애국주의를 설파하려 했던 무모한 연출력 바로 그 지점에서 선배 격을 찾아보는 일은 어떨까? 더 의미 있는 비교행위가 아닐까? 그렇다면 필자는 <태양의 제국 (Empire of the Sun)>을 추천하고 싶다.

J. G. 발라드의 자전소설을 영화로 옮긴 <태양의 제국>은 2차 대전의 혼란함과 참혹함을 12살 소년의 시선에 담아 바라보고 있다. 주인공의 이름이 제임스 그라함(J. G)인 점으로 보아서는 상하이에서 태어나 중·일 전쟁을 몸소 겪은 작가 발라드의 실제 이야기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소설의 판권이 스티븐 스필버그의 손으로 넘어온 것으로 미루어 보아 소설이 갖는 사실성이 설득력을 발휘하는지는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 같다. 당시의 스필버그는 단순히 오락영화를 잘 만드는 흥행감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먼저 그의 성향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이 영화를 이해하는 최적의 단서가 될 듯하다.

동화적 감수성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스필버그를 넘볼 수 없을 만큼 유별나다는 것은 너무도 유명한 사실이다. <E.T.>와 <인디애나 존스>, <쥬라기공원> 등은 그가 아니면 생각 할 수 없는 영화이다. 그와 동시에 이름 있는 흥행감독으로 안주하기보다는 <칼라 퍼플>, <쉰들러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은 일련의 작품을 발표함으로 해서, 작가로 대접받기를 간절히 원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확실히 그의 영화는 두 개의 고리로 나뉘어진다. 철저히 오락성을 추구한 상업영화와 휴머니티를 강조한 예술영화.


그러나 스필버그가 작가 대접을 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철저히 맘먹고 아카데미를 노린 <칼라 퍼플>은 주제가 내포하는 진지함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지 못하였다. 너무나 많은 흥행작을 낸 나머지 상상력이 돋보이는 상업영화감독이라는 편견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곧바로 <태양의 제국>을 발표함으로써 그런 인상을 지우기 위한 작업을 계속했다. 하지만 <태양의 제국>은 시대적 배경이 갖는 전쟁의 특수성에도 불구 진지한 영화가 되지 못 하였다. 의도와는 달리 감독의 상업적인 장기가 너무나 빛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스필버그가 ‘작가’의 위치에서 이 영화에 접근했다는 의혹은 몇 군데에서 목격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이 그렇고 제이미(크리스천 베일 분)가 부모와 헤어진 지 5년 만에 재회하는 결말부가 그렇다. 스필버그는 이 부분을 짧게 처리함으로써 극적인 감동을 유도하기보다는 멀찍이 떨어져서 관조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는 수작으로 평가받는 많은 전쟁영화들이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더욱 이해가 쉬울 것이다.

더욱 결정적인 사실은 전쟁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다. 후에 그가 <쉰들러 리스트>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아카데미의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것처럼 스필버그는 작가적 기질의 원천을 전쟁의 비극성에서 찾았다. 특히, <태양의 제국>의 카메라가 바라보는 전쟁의 광경은 포화가 들끊는 전장이 아닌 변방에 위치한 피난민과 포로들이다. 그것도 침략자에게 핍박받는 약자로서가 아니라 포로가 포로에게, 피난민이 피난민에게 행하는 약탈과 배신의 모습이다. 생존의 사활이 걸린 전쟁터에서 가해자건 피해자건 인간은 모두 똑같은 본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의도가 감독의 유아적인 연출력으로 인해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데 있다. 비행기만 보면 이성을 잃는 제이미의 동심을 표현하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판타지적 요소를 끌어들인 것이다. 일부 전쟁의 장면을 오락게임처럼 묘사한 부분이라든지 존 윌리엄스가 맡은 음악은(비록 그 해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긴 했지만) 전쟁영화가 가져야 하는 객관성을 지키지 못했다. 제이미의 시선을 빌어 전쟁의 실체를 바라보던 영화는 판타지를 차용한 감독의 지나친 개성에 그만 중심을 잃어버리고 어정쩡한 영화가 되고 만 것이다.

무릇 전쟁을 소재로 삼는 영화는(특히 고발의 성격이 강하다면) 죽음을 생산하는 인간의 잔혹함으로 인해 매우 조심스러운 접근방법을 택해야 한다. 마이클 치미노의 <디어 헌터>를 간단히 예로 들어보자.

<디어 헌터>는 베트남 전에 참전함으로써 겪게되는 젊은이들의 정신적인 외상을 사회 부적응과 죽음으로 연결시킨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아 1979년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러시안 룰렛을 끌어들여 죽음을 극단적으로 처리한 비현실성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현재 베트남전을 대표하는 영화치고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는 처지이다. 이처럼 인간의 죽음이 직접적으로 연결된 전쟁영화는 연출자의 주관적인 사상과 표현력이 지나치게 개입될 경우 논란을 일으킬 여지가 다분한 것이다. 그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러니 스필버그가 <태양의 제국>을 발표한 동시에 ‘유아적 감수성을 지닌 피터팬’이라는 비아냥섞인 꼬리표를 단 것도 무리는 아닐테다. 그리고 그 꼬리표를 떼어내기까지는 6년이라는 시간을 감수해야 했다. 확실히 스필버그의 영화는 성격규정이 명확할 때 빛을 발휘하였다. <죠스>와 <E.T.>, <인디애나 존스>가 그랬고 <쉰들러 리스트>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그랬다.


(2001. 6. 22. <무비클래식>)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




1.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대구리에 피도 안 마른 17세의 나이에 사기 하나로 미국의 금융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FBI를 농락하며 천재 칭호를 얻은 프랭크 윌리엄 에버그네일 2세(Frank W. Abagnale Jr)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그래서 서두에 ‘야부리 아님’이라는 자막을 깔고 시작하는 당 영화는 희대의 미성년 사기꾼 에버그네일 주녀(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와 경력은 쫌 되는데 하는 행동은 어리버리해 보이는 FBI 수사관 칼 핸래티(톰 행크스 분)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기본 뼈다구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음이다.

하지만 아무리 당 영화가 사실에 바탕을 둔 동명의 평전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서도 스필버그가 이것을 그대로 영화화하지 않았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최근 들어 더 노골적으로 어떤 소재든 만졌다하면 가족을 결부시켜 지겹도록 가족이념을 썰 푸는 그의 행보를 상기해 보라.

그래서 필립 K. 딕의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 소설임에도 불구 스필버그는 자신의 영화 속에서 이를 희석시키고 가족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풀어 넣었듯이 당 영화에서도 역시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가족주의를 대입하고 있다.

그런 관계로 당 영화는 표면상 사기꾼 VS FBI의 열라 박진 추격전을 예고하는 액숑의 모냥새를 띄고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보다 고아나 다름없는 에버그네일과 가정이 없는 핸래티가 대립을 통해 새로운 부자(父子)관계를 성립하며 대체가정의 결합 수순을 따르는 드라마적 성격이 더 강하다.

이제 눈치들 다 까셨나? 그러니 만약 당 영화의 포스터와 마빡 카피만을 보고 우리가 흔히 아는 범죄물을 예상 때리고 관람에 임한다던가 스필버그가 감독이라는 이유만으로 휘황찬란한 볼꺼리 가득, 말초적 재미 충만한 영화 기대했다간 정신 건강 나빠져 육체적 피로 동반돼 애정전선까정 이상 생겨, 불신지옥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2.

우짰든 감독은 에버그네일의 실화를 바탕에 깔고 자신의 일관된 생각을 주입하는데 꼭 그의 개인사 및 핸래티와의 관계에서만 ‘가족’을 보는 것은 아니다. 스필버그는 에버그네일을 희대의 사기꾼으로 만든 1960년대라는 특정시기에도 주목하고 있음이다.

당 영화에 따르면 그 당시는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물질(돈)과 외양에만 집착하게 만든 시기로써 내적인 가치가 그 힘을 잃으며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붕괴되었다는 것이다. 당 영화에서도 보면 아버지 에버그네일(크리스토퍼 월켄 분)과 한 지루박을 땡기시며 단란한 한 때를 보내던 어머니가 집안이 쫄딱 망하자 뒤돌아보지도 않고 돈 많은 변호사와 재혼을 하지 않나.

게다가 그렇게 붕괴된 가정을 재결합시키기 위해 우리의 쥔공 에버그네일 주녀 역시 뽀다구만으로도 먹고 들어가는 파일럿, 의사 등의 제복을 입고 사기행각을 벌이는 아이러니를 보이는 것이고.

바로 이러한 겉모습 위주의 시대상을 강조하기 위해 당 영화는 뉴욕 양키스가 승승장구하는 배경에 대해 선수들의 실력보다 오히려 양키스의 줄무늬 유니폼이 상대방 선수를 주눅들게 하는 마빡이라고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전차로 당 영화는 60년대가 물질 숭배로 표면화된 외양에만 집착하다 보니 헛된 환상에만 들떠있는 시대라고 정의 내린다. 그런 느낌을 잡아내기 위해 야누스 카민스키 촬영감독은 인물을 잡는데 있어 창문을 통해 투영되는 빛으로 인물을 비추고 그 주위를 감싸는 등 몽롱한 화면을 보여주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물론 썩어도 참치라고 천하의 스필버그가 독창적인 문화와 예술이 활개치던 60년대를 가지고 가족과 관련된 메시지만을 뽑아 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라고 본다. 스필버그의 주특기, 다 알잖어…

하지만 당 영화에서 스필버그는 <쥬라기 공원>이나 <A.I.>,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처럼 눈에 확 띄는 비주얼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대신 당 영화에서 시대를 드러내는 주요한 방법으로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문화요소, 즉 TV 프로와 영화, 만화 등을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당 영화를 보면 이전 스필버그 영화와는 달리 상상력이 돋보인다거나 비주얼에 압도당한다는 감이 들지 않아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스케일이 작게 느껴져 결론적으로 소품스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본 우원이 보기엔 이렇게 규모를 크게 부풀리지 않고 소박하게 간 것이 영화의 주제를 확고히 하는데 더 부합했던 것으로 사료된다. 당 영화는 결국 두 쥔공이 서로의 정신적인 아버지, 자식이 된다는 스또리인데 만약 시끌벅적한 추격씬에 눈에 띄게 부풀려진 세트, 씨쥐 등이 전면에 나섰다면 감독의 의도가 잘 살지 않았음은 자명한 사실이라 하겠다.

왜 <A.I.>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그런 경험 있잖나, 영화의 스케일과 현란한 씨쥐, 그리고 긴장감 도는 상황전개에 막 몰입해 있다가 갑자기 튀 나온 가족 우짜구 저짜구에 대한 장광설 부분에서 영 적응하지 못했던 분위기… 그게 당 영화에는 얼마간 감소되었다는 얘기다.


3.

근데 당해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에는 이야기의 몰입을 방해하는 결정적인 부분이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음에도 불구 보다보면 정말로 그랬을까, 라고 의심 때려지는 부분을 지적하려 하는 것인데,

TV 메디컬 드라마를 보고 수술과정을 익힌 의사(?) 에버그네일 주녀가 병원 사기를 무사히 마친다든지, 수백 명의 수사관으로 둘러 쌓인 공항을 그들의 눈을 홀리기 위해 고용한 미녀 승무원 사이에 숨어 탈출에 성공하고 또한 결혼할 여자의 부모가 어리숙하게 그의 의도에 너무나 쉽게 속아넘어가는 부분들 말이다.

물론 사실일 수 있다. 당 영화 실화라고 하지 않았냐. 그럼에도 위의 예를 든 몇 가지 경우는 관객에게 실소만을 자아낼 가능성 농후해 보인다. 이런 모습들은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알려진 에버그네일 주녀의 천재적인 면을 부각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주위에 있는 사람들, 특히 그를 쫓는 핸래티 이하 FBI를 존나게 무식한 바보로 보이게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묘사들을 보면 에버그네일 주녀를 제외한 당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전부다 바보멍충이똥개다.

하지만 핸래티가 에버그네일을 교묘하게 체포하는 모습을 보면 FBI는 전혀 바보스럽지 않음이다. 그만큼 당 영화는 인물에 대한 묘사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스필버그는 이런 인물들을 끌어안고 영화를 진행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쥔공 에버그네일의 사기행각이 결손된 가정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리고 그가 얼마나 가족을 갈구하는지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족 이데올로기를 전하는데 있어서 스필버그는 존나 단순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점은 특히 에버그네일과 핸래티와의 성탄절 이브의 전화통화에서 두드러짐이다.  

에버그네일은 매년 크리스마수 이브에 핸래티에게 전화를 해서 자신을 체포하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핸래티는 구라치지 말라며 무시한다. 그래서 에버그네일은 계속 범죄를 저지른다.

그러나 그의 사기행각을 막는 유일한 인물은 핸래티다. 에버그네일을 체포해서가 아니다. 핸래티가 그의 대체 아버지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니까 스필버그가 종국에 말하는 메시지 모냐? 간단하다. ‘결손가정이 문제아를 낳는다’ 모 그런 거다. 왜 중간에도 보면 에버그네일이 화를 내면서 아버지에게 “내가 범죄자인걸 알면서 왜 그만두라고 하지 않느냐며” 성내지 않냐.

그렇다고 혹시 오해는 마시라. 메시지가 단순하다고 비판하는 게 아니니까. 다만 이를 설득하기 위한 중간과정이 깊이가 없다보니 메시지 역시 큰 울림을 전달하지 못하고 스필버그의 단순함은 그저 단순함으로 비춰진다는 얘기다.


4.

결론 때려보자.

당 영화 ‘잡아 볼 수 있음 함 잡아봐’라고 수사관을 비웃는 17세 사기 소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스필버그 손에 들어간 결과, 가족에 대한 의미에 더 집중을 한 관계로 ‘잡혀줄테니 제발 잡아줘’로 바뀌었다.

액숑과 뭐 그런 오락꺼리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좀 더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렇다고 재미없다는 소리가 아니다. 역시 대가답게 스필버그의 이야기를 풀어 가는 연출력이며 관객의 감정을 조였다 푸는 실력은 여전함이다. 게다가 <비치> 이후 얼굴보기 힘들었던 디카프리오 보는 재미도 쏠쏠하구.

하지만 스필버그가 당 영화를 통해 표현했던 가족에 대한 메시지는 가슴팍에 팍 와닿지 않았음이다. 아직 인간탐구에 대한 수련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해서 본 우원은 당 영화를 뮝기적에 봉하려 했으나 며칠 안 있으면 구정인데 영화 한 편 안 보고 걍 지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잖냐. 그렇다고 썰만 무성했지 내용물은 별로 튼실하지 않은 <영웅>이나 <이중간첩>을 추천하자니 그렇고…

그나마 <캐치 미 이프 유 캔>이 화제작이 즐비한 이번 주 가장 볼 만한 영화라는 판단 하에 당 영화를 베스트 주녀의 반열에 올려놓는 바이다.


<딴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