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상반기 영화계 기대작 정리 – <박쥐>에서 <왓치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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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영화계 상반기는 ‘거장과 귀환’과 ‘전설적 원작의 재림’으로 요약된다. <올드보이>의 박찬욱부터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까지, 그래픽 노블의 걸작을 영화화한 <왓치맨>에서부터 6년 만에 새로운 감독과 배우로 시리즈를 재가동한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이하 <터미네이터4>)까지. 반가운 이름과 익숙한 제목으로 무장한 2009년 상반기 기대작 목록에는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다. 이름값에 기대고 있다는 것. 이는 최근 몇 년 사이 두드러진 현상으로 신예감독의 부재와 창작 시나리오 침체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있다. 발견의 희열을 느낄 수 없지만 대신 반가운 대상이 주는 기대감에 들뜬 설렘이 이 목록에는 있다.  

먼저 ‘거장의 귀환’ 가장 눈에 띠는 이름은 박찬욱 감독이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이후 3년. 박찬욱 감독은 공포영화의 겉모습을 가진 종교영화 <박쥐>(5월 개봉)로 찾아온다. 송강호와 김옥빈, 신하균과 김해숙 등이 출연한다는 것 외에 알려진 것이 없지만 이전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이 신작에 대해 살짝 내비쳤던 내용을 유추해본다면, 존경받던 종교인사가 친구에게 수혈을 잘못 받아 흡혈귀가 되고 친구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내용이 될 전망이다.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 등 전작에서 보여줬던 박찬욱 감독의 성향으로 보건데, 종교와 악마가 만나 하느님을 섬기는 흡혈귀의 이야기로 예측해 볼 수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박찬욱 감독 특유의 금기를 위반하는 설정에서 나오는 쾌감과 이야기를 압도하는 매혹적 이미지는 그의 신작을 기다리게 만드는 주요한 요소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체>는 혁명가 체 게바라를 다룬 작품이다. 여느 전기물과 달리 체의 일생이 아니라 혁명과정에만 집중하지만 상영시간은 무려 4시간 30분에 달한다. 다행히 국내 수입사 측에서는 이를 두 편으로 나눠 1부 ‘아르헨티나’(1월 개봉) 2부 ‘게릴라’(2월 개봉)로 개봉한다고. ‘아르헨티나’는 아르헨티나의 의사 출신인 체가 쿠바로 넘어가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혁명에 성공하는 이야기, ‘게릴라’는 이에 안주하지 않고 볼리비아로 넘어가 혁명정신을 전파하는 이야기다. 체 게바라를 연기한 베니치오 델 토로는 배우 생활 최고의 연기를 펼친다. 외모도 외모지만 소소한 버릇 하나까지 재현하며 혼신을 다한 연기는 체의 재림으로 느껴진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베니치오 델 토로는 2008년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에 무혈입성 하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체인질링>(1월 개봉)을 통해 다시 한 번 위대한 작가임을 증명해 보인다. 안젤리나 졸리가 주인공으로 참여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체인질링>은 모성애를 통한 여성의 강인함을 말한다. 당국의 도움으로 실종당한 아이를 찾지만 실제 자신의 아이가 아니면서 벌어지는 절망적인 현실 앞에 삶을 포기하지 않는 어머니의 위대함을 웅변하는 것. <미스틱 리버> <밀리언 달러 베이비> 등에서 가혹한 운명을 맞이한 인간이 이에 맞서는 행위를 고귀하게 묘사했던 이스트우드의 태도는 여기서도 이어진다. 그의 최고작이라고 할 수 없지만 여느 평범한 감독의 걸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이 있는 연출과 거장다운 시선이 <체인질링>에는 있다.

이번엔 ‘전설적 원작의 재림’ 차례. <아이언맨> <인크레더블 헐크> <다크 나이트> 등 2008년은 그야말로 슈퍼히어로물의 전성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 슈퍼히어로의 팬들이 영화화를 학수고대했던 작품이 있다. 바로 <왓치맨>(3월 개봉)이다. 앨런 무어(<브이 포 벤데타> <프롬 헬>)의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영화화한 <왓치맨>은 연출을 맡은 잭 스나이더(<300> <새벽의 저주>)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그래픽 노블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은 작품’이다. 슈퍼히어로의 활약을 흥미 위주로 다루던 기존 장르에 현실과 정치가 개입하면서 심리학적 리얼리즘으로 변모하였는데 그 시초가 되는 작품이 바로 <왓치맨>인 것이다. <12 몽키즈>의 테리 길리엄부터 <본 얼티메이텀>의 폴 그린그래스가 이 프로젝트에 군침을 흘렸지만 최종적으로 잭 스나이더에게 낙점됐다.

<터미네이터4>(5월 개봉)는 최근 모션 포스터, 즉 움직이는 포스터를 온라인을 통해 공개하며 팬들의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도시 한 가운데 폭탄이 투하되면서 도시의 모습이 해골로 변하는 포스터였는데 안 그래도 <터미네이터4>는 인간 저항군 리더 존 코너가 기계군단과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고유명사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빠지긴 했지만 <다크 나이트>의 크리스천 베일이 존 코너 역으로, <미녀 삼총사>의 맥지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면서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기존 세 편의 <터미네이터>가 현대를 배경으로 했다면 <터미네이터4>는 미래3부작의 서막을 여는 것이다.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2>(6월 개봉 예정)는 2009년 상반기 가장 많은 관객이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라 할만하다. 만화 상에서만 존재하던 로봇들이 실사로 스크린에 구현된 <트랜스포머>는 수많은 로봇 만화 팬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니 속편 제작은 당연지사. <트랜스포머2>는 오토봇과의 로봇전쟁에서 패한 디셉티콘이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디셉티콘은 새로운 로봇들을 규합하니 오토봇 또한 비밀병기를 출현시키기에 이른다. 하여 <트랜스포머2>는 전편보다 더 많아진 로봇들이 더 거대한 전쟁을 펼치는 상황으로 진행이 될 예정. 샤이어 라보프, 메간 폭스 등 인간 배우들이 로봇들 사이에서 어떤 매력을 펼칠지 기대를 모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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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claire
2009년 1월호

<오션스 13>(Ocean’s Thirteen)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등 스타파워에만 기댄 채 유럽 곳곳의 유려한 풍광을 보여주기에 급급했던 <오션스 트웰브>는, 한마디로 실망스러웠다. <오션스 일레븐>의 성공은 화려한 기술로 무장한 우리의 주인공들이 카지노 금고를 터는 과정과 그 속에서 소비되는 스타들의 쿨한 이미지가 균형을 이뤘기 때문이다. 이를 상기한다면 <오션스 트웰브>의 실패는 더욱 명백해진다.

<오션스 13>은 <오션스 트웰브>가 실패한 지점에서 다시 출발한다. 화려한 출연진은 유지한 채 1탄의 무대였던 라스베가스로 돌아와 2탄에서 소홀하게 다뤘던 오션스 일당의 범행 과정에 많은 공을 들이는 것. 포커 판의 세계를 사실적이면서 흥미롭게 묘사했던 <라운더스>(1998)의 콤비 작가 브라이언 코플만과 데이비드 레비엔을 영입한 건 그런 <오션스 13>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결정적인 대목이다. 다시 말해, <오션스 13>은 <오션스 일레븐>이 다뤘던 세계로 유턴한다. 심각함이나 긴장감 따윈 찾아볼 수 없는 깃털처럼 가볍지만 공작새처럼 화려한 세계로. 즉, 하룻밤 사이 일확천금을 얻을 수도, 쫄딱 망해 깡통을 찰 수도 있는 라스베가스의 즉흥성이야말로 <오션스> 시리즈의 존재 이유이자 관객에게 강력하게 어필했던 요소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1989), <트래픽>(2000)으로 명성을 얻은 스티븐 소더버그는 이런 <오션스 13>를 쉬어가는 작업으로 만들진 않았다. “전편보다 힘 있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는 조지 클루니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는 “<트래픽>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한다. 세 번째 시리즈인 만큼 오션스 일당에게 ‘무려’ 3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그뿐인가, 열세 번째 멤버로 놀랍게도 알 파치노를 영입하는 등 규모에 걸맞은 영화를 위해 무척이나 공을 들였다. 특히 “영화 속에서 13명 캐릭터 모두를 구현하는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는 스티븐 소더버그는 하나의 원칙을 세웠다. 비슷한 장면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 대신 장면의 구성을 짧게 해 13명 캐릭터 각각의 개성을 일일이 살려냈고 장면 전환을 빠르게 가져가 리듬감을 강조함으로써 범행과정의 치밀함과 복잡함을 꾀했다.

감독인 스티븐 소더버그는 “<오션스 13>은 코미디”라고 규정한다. 일례로, ‘오션스’ 시리즈는 ‘복수’로부터 출발한다. <오션스 일레븐>에서 대니가 자신의 범행계획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던 건 카지노 거물 테리에게 전 부인 테스(줄리아 로버츠)를 빼앗긴 반발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오션스 13>은 또 어떤가. 카지노 대부 윌리 뱅크의 카지노를 파산시키려는 건 그에게 사기를 당한 오션스 멤버 루벤의 굴욕을 되갚아주기 위함이다. 하지만 <오션스 13>은 복수 그 자체나 복수에 대한 정당성을 설득하는 데만 관심을 집중하진 않는다. 사소한 복수의 이유는 거대한 핑계일 뿐, 이미 성공이 예정된 불가능한 임무를 어떻게 능수능란한 기술로, 얼마나 화려하게 묘사하는지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새어나가는 헐거운 서스펜스는 스타들의 넉살 좋은 연기와 톡톡 쏘는 대사로 채워진다. 알 파치노가 일종의 악역에 캐스팅된 사실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오션스 일당에게 멋지게 한 방 먹는다고는 하지만 그는 패배감에 고개 숙이거나 좀체 흥분하지 않는다. 다만 태연할 뿐. 이런 태도야말로 <오션스> 시리즈가 배우의 쿨한 이미지를 활용해 결국엔 관객에게 선사하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오션스 13>은 13인조로 구성된 보이 그룹의 댄스곡에 맞춰 현란하게 편집된 최신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보는 순간 만족감은 극에 달하지만 끝난 이후엔 어쩐지 무엇 하나 기억에 남지 않는 영화. 그러나 이는 <오션스 13>의 단점이 아니다. 서로 마음 맞는 스타와 연출진끼리 부담 없이 놀아보자고, 이왕 노는 김에 관객과 함께 즐겨보자는 취지를 그대로 살려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특성상 시리즈의 시효가 길지 않다는 점. 다행히도 <오션스 13>은 초심으로 돌아가 <오션스 트웰브>에서 드러났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성공도 <오션스 일레븐> 때의 신선함엔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스티븐 소더버그는 2006년 에든버러국제영화제에 참석해서 <오션스 13>이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것임을 밝혔다.







필름2.0 339호
(2007. 6.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