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매치! <박쥐> vs <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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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계신 <아레나> 독자 여러분,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상반기 충무로를 달굴 문제적 두 무비, <박쥐>(4/30 개봉)와 <마더>(5/28)의 미리 보는 명승부전을 중계방송 해드리겠습니다. 본격적인 대결에 앞서 간략하게 선수소개 있겠습니다.

선수소개  먼저 홍코너 박찬욱의 <박쥐>로 말할 것 같으면, 어머나 세상에! 한국영화계에선 유례가 없는 흡혈귀 무비에요. 항간엔 제목을 거꾸로 읽으면 ‘쥐박’이 된다고 하여 상위 1%를 위해 서민‘s Life를 절단 내고 있는 現정부를 향한 복수무비일 것이라는 평가가 잇따랐더랬는데, 오해입니다. 당 영화는 천주교 신부께옵서 수혈을 잘못 받아 배트맨 아니 뱀파이어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맞서는 청코너 봉준호의 <마더>는 ‘괴물’이 주인공이었던 전작과 달리 인간, 그것도 모자(母子)가 주인공 듀오로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군요. 살인사건에 휘말린 아들의 누명을 풀기위해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타나는 마더의 고군분투기를 다뤘다고 합니다. 마더 테레사도 울고 갈, 지는 모르겠지만 주최 측에 따르면 심금을 울리고, 오금이 저리고, 심지어 손발까지 오그라드는 영화가 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아~ 말씀드린 순간, 1 Round 공이 울렸습니다.

1 Round  <박쥐>는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복수 삼부작을 완성한 박찬욱 감독의 또 하나의 삼부작이라 할 만합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와 제작자로 참여한 <미쓰 홍당무>, 그리고 <박쥐>까지. 로봇과 채소, 조류를 제목으로 붙인 걸 보아 ‘비인간 삼부작’에 대한 야망을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데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미쓰 홍당무>의 연달은 흥행실패로 비인간적인 관객에게 배신감을 느낀 박 감독이 ‘이래도 정말 안 볼래!’ 밀어붙이는 심정으로 작정하고 만든 작품인 거 같아요. 다시 한 번 비인간 주인공 흡혈귀를 앞세워 모든 걸 쏟아 부은 작품인 거죠. 정말이냐고요? 아님 말고. 그에 반해 <마더>는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로 영화 제목 국산화를 선도해온 봉준호 감독이 영문제목으로 유턴한 경우에요. 국내 영화제목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한 이번 사태에 대해 혹자는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고 싶은 봉 감독이 자신의 심정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라고 분석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마더>를 비롯하여 <박쥐>까지 두 편 모두 칸 영화제 경쟁부문 가능성이 높아 동반진출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2 Round  흡혈귀 vs 모자, 흡사 무(모)한 도전 시즌1의 인간 vs 소의 줄다리기를 연상시키는 이번 대결에서 <박쥐>와 <마더>가 내세우는 핵심 소재는 각각 불륜과 모성애입니다. <박쥐>가 높은 수위의 응응응 장면 때문에 여배우 캐스팅에 난항을 겪은 일화는 유명하죠. 흡혈귀로 분한 송강호가 절친의 여자 김옥빈과 사랑을 나누는 <박쥐>의 부제를 단다면, 송강호에겐 ‘불륜은 나의 것’, 김옥빈에겐 ‘흡혈귀지만 괜찮아’일 정도로 <색, 계>의 그것을 넘어설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해요. <마더>에는 <박쥐>처럼 관객의 대뇌피질에 피가 되고 살이 될 응응응 장면은 없어요. 혹시 이런 거 기대하고 <마더> 보러 간다면?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아, 좋지 않은 짓이에요. 대신 영화는 모자 관계에 초점을 맞춰 사골국물처럼 순수한 모성애의 결정체를 탐구합니다. 원빈처럼 티 없이 맑은 우리 아가가 누명을 썼는데 어느 마더인들 미치지 않겠어요. <남극일기>의 도달 불능점처럼 모성애의 마지막 남은 골수까지 쪽 파먹을 거라고 기염을 토합니다.

3 Round  근데 <마더>는 모성이 등장하는 첫 번째 봉준호 영화에요. <괴물>만 하더라도 엄마 없는 하늘 아래 펼쳐지는 아빠 이야기였더랬어요. 봉준호 영화에 약방에 감초처럼 변희봉이 안 나오면 배, 배, 배신이었는데 김혜자가 등장하는 건 그래서예요. 그 결과, <마더>는 <괴물>과 스타일이 많이 다를 뿐이고, 그래서 <마더>가 더욱 기대될 뿐이고. 반면 <박쥐>는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 전작의 빛나는 공식을 이어 받아 안으로 자기 색깔 확립하고 밖으로 관객 공영에 이바지하려는 기세가 등등합니다. 특히 박찬욱 영화에서 늘 리피트 되는 ‘도덕적 딜레마’, 즉 당 영화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흡혈귀로 형상화되니, 기존 뱀파이어 무비와 안녕을 고하고 New 뱀파이어 무비를 창조하려는 박 감독을 이길 자 그 누가 있겠습니까. <마더>? 그 결과가 궁금하시다고요? 결과는 <박쥐>와 <마더>가 개봉한 이후에 공개됩니다. 이상 <아레나>에서 알려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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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NA
2009년 5월호

꽃 피는 봄이 오면 한국영화 온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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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봄이 오면 한국영화 온다고 말했지 노래하는 국산무비 관계자들의 예언처럼, <워낭소리>의 깜짝 대박에 제대로 필 받은 한국영화계는 4월 2일 개봉하는 <그림자 살인>을 필두로 <우리 집에 왜 왔니> <똥파리> <7급 공무원> <김씨표류기> <박쥐> <인사동 스캔들>까지, 춘 사월에만 대거 일곱 편의 영화를 선보이며 관객의 호주머니 공략에 나선다.


<박쥐>는 흡혈귀 영화


그중 많은 이들이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문제적 무비는 다름 아닌 박찬욱 감독의 <박쥐>(4/30 개봉) 항간엔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복수 삼부작을 완성한 그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 이어 신작 <박쥐>까지, 로봇과 조류를 제목으로 붙인 걸 보아 ‘비인간 삼부작’에 대한 야망을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조심스럽게 잇따랐더랬다.

당 영화는 잘 알려졌듯 ’흡혈귀 무비‘다. 만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천주교 신부님께옵서 어찌저찌해설랑 수혈을 잘못 받아 흡혈귀가 된다는 스토리. 그렇다고 미제산 뱀파이어 무비처럼 ’우두둑우두둑 발라당 쩍‘ 소리 내며 호들갑스럽게 흡혈귀로 변신한다든가, 부수고, 까고, 조시는 등의 과도한 액션을 전시하는 것도 아님이다. <박쥐>의 포인트는 다름 아닌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흡혈귀 신부의 대구빡 터지는 도덕적 딜레마에 있으니, 박찬욱 감독은 이를 두고 러브스토리라고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당 영화는 제작초기부터 주인공 송강호와 김옥빈의 수위 높은 응응씬으로 높은 관심을 모았더랬다. 특히 야리야리한 댄스로 뭇남성들의 애간장을 녹였던 김옥빈의 훌러덩 장면은 당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치사량에 가깝게 올리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무튼, 기존 흡혈귀 무비의 장르적 규칙에 빠빠이를 고하면서 스리슬쩍 한발 걸치고 있는 모양새는 본 기자가 <박쥐>를 4월의 필견무비로 추천하는 이유다.  


이 영화도 주목!

<그림자 살인> <똥파리>(4/16) <김씨표류기>(4/30)도 최소 입장료 대비 본전치기가 가능한 작품들이다. <그림자 살인>은 ‘훈남 of 훈남’ 황정민과 ’국민남동생‘ 고지가 멀지 않은 류덕환이 콤비를 이뤄 맹활약 펼치는 조선시대 추리극이라는 점에서, <똥파리>는 대사의 반이 전문용어(일명 ’욕‘)일 정도로 독립영화 특유의 날 느낌이 충만하다는 점에서, <김씨표류기>는 밤섬을 배경으로 히키코모리’s way를 걷는 주인공 두 남녀의 기발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준(準)필견무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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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OOK TV
 2009년 4월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The Good The Bad The Weird)


사용자 삽입 이미지<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이 5월 24일(현지 시간) 칸영화제에서 세계 월드 프리미어를 갖고 공개됐다. 이번에 공개된 판본은 영화제 상영에 맞춰 손을 본 버전으로 최종 완성본은 아니다. 영화는 시작 전 자막을 통해서도 편집 중이라는 사실을 친절하게 밝힌다(결말부는 편집의 리듬이 고르지 않은 확연한 미완성 상태였다).

김지운 감독은 한국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버전은 완전히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2시간 15분의 칸 버전을 2시간으로 줄이고 결말을 대폭 수정할 것이며, 유머와 액션이 가미된 훨씬 오락적인 영화가 되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칸 공개 버전만으로도 <놈놈놈>은 충분히 통쾌하고 활기 넘치는 오락의 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만주에서 말 타고 보물 찾던 시절

1930년대 만주를 배경으로 하는 <놈놈놈>은 청나라 때 사라진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물고 물리는 추격전을 벌이는 ‘세 놈’ 박도원(정우성), 박창이(이병헌), 윤태구(송강호)의 이야기다. 목적은 같지만 보물을 찾기 위한 수법도 가지가지. ‘좋은 놈’ 박도원은 현상금 사냥꾼. 돈 되는 일이면 포기하는 법이 없는 놈은 보물에까지 눈독을 들인다. ‘나쁜 놈’ 박창이는 악명 높은 마적단 두목. 자신을 최고로 인정하지 않는 인간은 죽음으로 응징할 만큼 명예에 집착한다. 하지만 놈의 관심사도 역시 보물. ‘이상한 놈’ 윤태구는 열차털이범이자 전설의 고수. 그러나 어떤 전설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가장 먼저 보물의 위치를 발견할 만큼 수완이 탁월하다. 문제는 보물을 찾는 데 혈안이 된 게 이들 세 놈만이 아니라는 것. 일본군과 만주군, 그리고 러시아군까지 합세하면서 이들의 욕망은 혼잡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알려졌다시피 <놈놈놈>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966)에서 제목, 인물 설정을 가져왔다. 좋은 놈과 나쁜 놈은 동일하지만 못난 놈이 이상한 놈(The Weird)으로 달라진 게 차이랄까. 눈에 띄는 건 좋은 놈 블론디(클린트 이스트우드) 위주로 진행되는 <석양의 무법자>와 달리 <놈놈놈>은 이상한 놈 태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송강호가 벌판에서 쌍권총을 들고 달리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양의 무법자>를 떠올렸고, 못난 놈 투코(엘리 왈락)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로 시나리오를 썼다”는 김지운 감독은 설정의 변경만으로 흥행 코드를 확보할 수 있었다. 태구를 앞에 두고 창이와 도원이 쫓는 구조를 설정함으로써 액션 활극의 요소를 얻었고, 송강호 특유의 코믹 연기를 한껏 살려 유머러스한 오락물을 만들 수 있었던 것. 아닌 게 아니라 <놈놈놈>은 ‘세 놈이 대치한다’는 기본 설정을 제외하면 <석양의 무법자>와는 많이 다르다. 심지어 “3인 대치 설정은 오마주라고 하기엔 너무 유명하다”는 김지운의 표현처럼 직접적으로 <석양의 무법자>를 연상시키는 장면도 별로 없다.

다만 만주를 배경 삼은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부극을 만들고 싶었지만 한국적인 요소와의 접목에 고민하고 있던 차 김지운 감독에게 실마리를 준 것은 고(故)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1971)였다. “한국에서 서부극을 어떻게 토착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쇠사슬을 끊어라>를 보았다. 아주 오래 전 만주 웨스턴이라는 장르로 당시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던 영화다. 그걸 새롭게 재현해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김지운 감독의 말이다. <석양의 무법자>에서 캐릭터를 가져왔지만 시대적 배경을 통해 이를 묘사하는 방식은 <쇠사슬을 끊어라>에 가까운 것이다. 독립군 명단이 감춰져 있는 티베트 금불상을 원하는 이에게 넘기면 큰돈을 벌 수 있기에 독립군 철수(남궁원)와 도적 태호(장동휘), 일본군 첩자 달건(허장강) 세 인물이 연루된다는 <쇠사슬을 끊어라>의 스토리 라인은 여러모로 <놈놈놈>과 닮았다. 특히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의리’나 ‘역사’ ‘민족감정’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캐릭터는 가장 중요하게 가져온 부분이다. “과거 만주 웨스턴을 현대적으로 되살리고 싶었다”는 감독의 바람이 향하고 있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그렇다면 만주 웨스턴으로서 <놈놈놈>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만주는 어떤 공간인가? 만주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으로만 머물지 않고 인물의 성격과 조응하며 영향을 미친다.


무국적 이종 공간의 판타지

다소간의 변형을 가했다 하지만, <놈놈놈>엔 우리가 서부극에 기대하는 요소가 대부분 담겨 있다. 기적을 울리며 벌판을 가로지르는 열차, 검은 옷의 무법자가 말을 몰며 총을 쏘아대는 장쾌한 스펙터클, 드넓은 대지를 배경으로 인물들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마지막 결투 등. 허나 이런 요소들의 바탕이 되는 황야에 대한 묘사는 독특하다. 예컨대, 미국 서부극의 황야는 이제 막 발굴되고 개발되는 공간이라 빈 곳이 많고 가옥들도 점점이 박혀 있어 빈약해 보인다. 스파게티 웨스턴은 서부가 영토 확장을 위한 폭력의 세계였음을 폭로하기 위해 물 한 방울 찾을 수 없는 무미건조한 곳으로 황야를 묘사했다. 이와 반대로 <놈놈놈>은 서부극치곤 세트 촬영이 많으며 기차 내부 묘사도 꽉 찬 느낌을 줄 정도로 밀도가 높다.

<놈놈놈>이 묘사하는 만주는 돈을 좇아 수많은 욕망이 몰려든 곳이자 이상을 찾아 새 출발을 다짐한 사람들이 찾아든 곳이다. 러시아인, 중국인, 만주인, 조선인, 일본인 등 다종다양한 인종들과 각양각색의 문화까지 가세해 난맥상을 이루었던 공간이니만큼 무법천지의 카오스, 무국적의 욕망이 들끓는 거대한 용광로였던 것이다. 그런 만주 벌판이 스파게티 웨스턴의 무대처럼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메마른 땅으로 묘사될 수는 없는 법. 조화성(<짝패> <친절한 금자씨>) 미술감독이 담당한 <놈놈놈>의 국적불명 미술에는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형형색색의 타락한 에너지로 넘쳐난다.

세 놈의 추격전이 처음 벌어지는 제국열차 장면에서 이런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일등칸에서 삼등칸까지 다양한 계급과 인종이 뒤섞인 이곳에는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 이들의 이상과 욕망이 빼곡히 담겨 있는 짐들은 조그마한 충격에도 금세 폭발할 듯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런 맥락은 무법자들이 들끓는 귀시장이나 유혹의 기운이 넘쳐나는 아편굴 세트에서도 발견되는데, 타락한 욕망의 기운이 전편에 짙게 서려 있는 것이다.

액션으로 재현되는 폭력 역시 욕망의 한 형태다. 그에 따라 주인공 세 놈이 펼치는 액션에도 성격이 반영돼 있다. 가장 전형적인 서부극의 주인공이라 할 만한 좋은 놈 도원은 말 위에서 시원스레 장총을 휘두르고 귀시장에서는 화려한 밧줄 타기 액션까지 선보인다. 나쁜 놈 창이는 비열하기 짝이 없다. 눈 깜짝할 사이 상대를 제압하는 칼 기술은 현란하지만 최소한의 목숨 줄만 남겨놓은 채 고통은 고통대로 가하는 행위는 가히 나쁜 놈답다. 재미있는 건, 이상한 놈 태구. 홀로 오토바이를 몰며 쌍권총을 쏘아대지만 액션이라기보다는 몸 개그에 가까울 정도로 큰 웃음을 준다.

하지만 보물지도와 연관된 모든 인물들이 만주 벌판 한데 모여 대규모의 추격전을 벌이는 결말부에서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성격이 모호해진다. 욕망을 발현하는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종착점은 같기 때문이다. 김지운 감독은 “만주 벌판을 마음껏 달리는 활극을 찍어보고 싶었던 개인적인 판타지가 분명 존재한다. 서부극에 대한 개인적인 향수와 만주에 대한 민족적 판타지가 동시에 작용했다”고 말한다. 이는 <놈놈놈>이 오락적인 요소가 두드러지지만 잊힌 장르를 발굴하는 동시에 서부극을 통해 한국인의 무의식을 들여다보겠다는 저변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만주 웨스턴의 현대적 변용

어떤 장르보다 미국적인 장르로 평가받는 서부극은 21세기 장르영화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아시아만 보더라도 위시트 사사나티앙의 <검은 호랑이의 눈물>(2000), 미이케 다카시의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2007) 등이 ‘오리엔탈 웨스턴’의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다. <놈놈놈> 역시 그런 추세의 한가운데 서 있는 작품으로, 서부극이 변주하기 쉽고 장르 혼합이 용이하며, 특히 현실 반영을 통해 진화를 거듭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이다. 한편으로 서부극은 신화적인 세계를 창조해 공동체의 탄생과 유지, 소멸을 장르 안에서 완벽하게 구현한다.

김지운의 <놈놈놈> 역시 이런 신화화된 서부극의 틀을 빌려온다. 만주를 소우주로 상정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군상들의 욕망에 초점을 맞추면서 한국인의 신화를 다루려 한다. “미국의 서부가 그랬듯, 일제 강점기 만주는 우리 선조들에게 기회의 공간이자 꿈의 공간이고 개척의 공간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그리는 것도 <놈놈놈>을 만들게 된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미국의 서부극이 신대륙 발굴을 통해 개척정신을 미화함으로써 미국적인 사고방식과 이데올로기를 대변했다면 칸에서 공개된 만주 웨스턴 <놈놈놈>이 대변하는 것은 보물로 상징되는 황금만능주의다. 세 주인공을 비롯해 다양한 군상이 나오지만 이들의 욕망은 단 하나의 꼭짓점, 보물에 모아진다. 특히 “나라는 없어도 돈은 있어야지”(박도원) “과거 조선 일은 다 잊고 만주에서 새 출발 하려고 했더니”(윤태구) 등과 같은 대사는 당시 일본 지배하의 특수한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운명 따윈 초개처럼 집어던진 인물들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을 위해서만 살아가려 했던 인간의 내면이 들여다보이는 것이다.

<쇠사슬을 끊어라>가 만들어진 시대였다면, 이런 극단적 개인주의의 욕망은 집단주의로서 국가주의를 부정한 혁신적 묘사로 비춰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과 교묘히 맞물려 진행되는 <쇠사슬을 끊어라>와 달리 <놈놈놈>에는 당시 상황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다. 물론 극중 등장하는 일본군의 존재나 대사를 통해 어렵지 않게 시대를 유추할 수 있지만 그것이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아니다. 현실을 반영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장르의 이율배반적 속성을 이해한다면 <놈놈놈>이 보여주려는 것이 우리 시대 인간의 모습임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욕망의 끝은 어떨까? 미국 정통 서부극이라면 이를 신화화했겠지만 도덕적이고 이상화된 가치관을 전복하면서 실제적인 느낌을 강조한 <놈놈놈>은 반대의 길을 택한다. “서부극 특유의 추격전을 통해 인생이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을 단서 삼는다면 도원, 창이, 태구 이들의 끝이 해피엔딩보다 비극에 가까운 형태가 될 것임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딱 한 놈만 살아남는 형태인지, 모두 죽는 건지, 모두 사는 것인지는 7월 개봉 즈음이 돼봐야 알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떠돌이 무법자가 들끓는 타락하고 황량한 스파게티 웨스턴의 결말을 전용한 것인 동시에 <쇠사슬을 끊어라>로 대표되는 만주 웨스턴의 현대적 맥락(국가, 연대보다 개인, 영웅보다 떠돌이) 위에 놓이리라는 건 예측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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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 390호
(2008. 6. 10)

<효자동 이발사>(The President’s Barber)


제목과 포스터만으로는 그 정체를 눈치 까기 힘든 당 영화 <효자동 이발사>로 말할 것 같으면, 4.19 혁명, 5.16 쿠데타, 10.26 대통령 살해사건 등 격동의 시기인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정치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한 아버지의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부성애를 그린 작품이다.

역사를 동화로 구성한 점에서 <포레스트 검프>, 비극적인 역사 속에 피어나는 부성애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인생은 아름다워>라 할 만한 당 영화. 좀 더 보충설명을 하자면,

효자동 소재 청와대 앞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던 깍새 성한모(송강호 분)가 우연한 기회에 청와대 전속 이발사로 재직하던 중 ‘마루구스’라는 설사병이 창궐하는데 이것이 무장공비에 의해 퍼진 전염병으로 알려지면서 정부는 이 병에 걸린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간다. 그리고 마루구스의 공포는 한모의 집안에까지 그 위력을 떨치는데…

물론 당 영화 속 마루구스 병은 실제로 존재하는 병도 아니거니와 무장공비가 퍼뜨린 전염병도 아니다. 다만 당 영화는 이와 같은 허황된 설정을 통해 정형그니나 김용개비가 잘 써 먹는 수구꼴통식의 트집을 잡아 성한모와 같은 소시민을 탄압했던 당시를 풍자하고 있음이다.

이처럼 당 영화는 부조리했던 시대를 직접적으로 걸고넘어지는 것이 아닌 효자동 이발사라는 허구의 인물과 허구의 설정에 빗대 현대사의 그늘을 들춰내는 우화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역사를 이렇게 다루는 영화는 울나라에서 거의 처음 있는 시도인지라 꽤 참신해 보이는데 그래서 당 영화는 무거운 역사를 다루고 있음에도 그 속에서 소시민적 웃음과 부성애의 감동을 통해 관객에게 쉽게 접근하고 있는 가운데 당시 살벌했던 시대의 공기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비유띄 벗뜨! 영화 속 특정인물, 특정 역사와 관련된 인사가 지금에 실재한 까닭인지 우화의 비중이 커지는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당 영화의 이야기는 해당 역사 속에 똥꼬 깊쑤키 개입한다기보다는 그저 재현 수준에서 조심스럽게 피해 가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시대는 잘 포착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보여주는 우화는 그닥 힘있지 못하다는 얘기.

일례로, 한모의 아들 낙안(이재응 분)이 전기고문을 당하는 장면에 이르면 당 영화는 피와 비명으로 점철된 역사의 부조리함을 묘사하는 것이 아닌 몸속에 흐르는 전기로 오색빛깔의 전구를 켜는 낭만적인 판타지로 업종전환을 감행한다. 우화로써 역사를 말하는 당 영화에 있어 이게 나쁘다는 얘기는 아닌데 문제는 환상성이 너무 강해 이 지점에서부터 현실과 우화간의 균형이 깨져 지루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별 감흥없는 낙안의 판타지처럼 후반부를 장식하는 성씨 부자의 감동 에피소드는 감독이 의도한 만큼 관객의 정서를 깊이 파고들지 못해 멕이 빠지며, 위와 같은 애매한 모습으로 인해 풍자의 칼날은 그리 날카롭지 못하니 당 영화의 우화가 관객에게 미치는 힘은 그리 강한 편이 아니다.

그 결과, 신인감독의 입봉작치고는 무난한 만듦새를 보이고 있고 또한 쥔공 한모의 희노애락을 담아내고 있는 송강호의 연기는 관객의 기대를 져 버리지 않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이야기가 임펙트를 발하고 있지 못하는 바, 본 특위는 당 영화를 뮝기적에 봉한다. 끝.


<딴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