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이 5월 24일(현지 시간) 칸영화제에서 세계 월드 프리미어를 갖고 공개됐다. 이번에 공개된 판본은 영화제 상영에 맞춰 손을 본 버전으로 최종 완성본은 아니다. 영화는 시작 전 자막을 통해서도 편집 중이라는 사실을 친절하게 밝힌다(결말부는 편집의 리듬이 고르지 않은 확연한 미완성 상태였다).
김지운 감독은 한국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버전은 완전히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2시간 15분의 칸 버전을 2시간으로 줄이고 결말을 대폭 수정할 것이며, 유머와 액션이 가미된 훨씬 오락적인 영화가 되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칸 공개 버전만으로도 <놈놈놈>은 충분히 통쾌하고 활기 넘치는 오락의 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만주에서 말 타고 보물 찾던 시절
1930년대 만주를 배경으로 하는 <놈놈놈>은 청나라 때 사라진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물고 물리는 추격전을 벌이는 ‘세 놈’ 박도원(정우성), 박창이(이병헌), 윤태구(송강호)의 이야기다. 목적은 같지만 보물을 찾기 위한 수법도 가지가지. ‘좋은 놈’ 박도원은 현상금 사냥꾼. 돈 되는 일이면 포기하는 법이 없는 놈은 보물에까지 눈독을 들인다. ‘나쁜 놈’ 박창이는 악명 높은 마적단 두목. 자신을 최고로 인정하지 않는 인간은 죽음으로 응징할 만큼 명예에 집착한다. 하지만 놈의 관심사도 역시 보물. ‘이상한 놈’ 윤태구는 열차털이범이자 전설의 고수. 그러나 어떤 전설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가장 먼저 보물의 위치를 발견할 만큼 수완이 탁월하다. 문제는 보물을 찾는 데 혈안이 된 게 이들 세 놈만이 아니라는 것. 일본군과 만주군, 그리고 러시아군까지 합세하면서 이들의 욕망은 혼잡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알려졌다시피 <놈놈놈>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966)에서 제목, 인물 설정을 가져왔다. 좋은 놈과 나쁜 놈은 동일하지만 못난 놈이 이상한 놈(The Weird)으로 달라진 게 차이랄까. 눈에 띄는 건 좋은 놈 블론디(클린트 이스트우드) 위주로 진행되는 <석양의 무법자>와 달리 <놈놈놈>은 이상한 놈 태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송강호가 벌판에서 쌍권총을 들고 달리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양의 무법자>를 떠올렸고, 못난 놈 투코(엘리 왈락)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로 시나리오를 썼다”는 김지운 감독은 설정의 변경만으로 흥행 코드를 확보할 수 있었다. 태구를 앞에 두고 창이와 도원이 쫓는 구조를 설정함으로써 액션 활극의 요소를 얻었고, 송강호 특유의 코믹 연기를 한껏 살려 유머러스한 오락물을 만들 수 있었던 것. 아닌 게 아니라 <놈놈놈>은 ‘세 놈이 대치한다’는 기본 설정을 제외하면 <석양의 무법자>와는 많이 다르다. 심지어 “3인 대치 설정은 오마주라고 하기엔 너무 유명하다”는 김지운의 표현처럼 직접적으로 <석양의 무법자>를 연상시키는 장면도 별로 없다.
다만 만주를 배경 삼은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부극을 만들고 싶었지만 한국적인 요소와의 접목에 고민하고 있던 차 김지운 감독에게 실마리를 준 것은 고(故)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1971)였다. “한국에서 서부극을 어떻게 토착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쇠사슬을 끊어라>를 보았다. 아주 오래 전 만주 웨스턴이라는 장르로 당시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던 영화다. 그걸 새롭게 재현해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김지운 감독의 말이다. <석양의 무법자>에서 캐릭터를 가져왔지만 시대적 배경을 통해 이를 묘사하는 방식은 <쇠사슬을 끊어라>에 가까운 것이다. 독립군 명단이 감춰져 있는 티베트 금불상을 원하는 이에게 넘기면 큰돈을 벌 수 있기에 독립군 철수(남궁원)와 도적 태호(장동휘), 일본군 첩자 달건(허장강) 세 인물이 연루된다는 <쇠사슬을 끊어라>의 스토리 라인은 여러모로 <놈놈놈>과 닮았다. 특히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의리’나 ‘역사’ ‘민족감정’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캐릭터는 가장 중요하게 가져온 부분이다. “과거 만주 웨스턴을 현대적으로 되살리고 싶었다”는 감독의 바람이 향하고 있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그렇다면 만주 웨스턴으로서 <놈놈놈>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만주는 어떤 공간인가? 만주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으로만 머물지 않고 인물의 성격과 조응하며 영향을 미친다.
무국적 이종 공간의 판타지
다소간의 변형을 가했다 하지만, <놈놈놈>엔 우리가 서부극에 기대하는 요소가 대부분 담겨 있다. 기적을 울리며 벌판을 가로지르는 열차, 검은 옷의 무법자가 말을 몰며 총을 쏘아대는 장쾌한 스펙터클, 드넓은 대지를 배경으로 인물들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마지막 결투 등. 허나 이런 요소들의 바탕이 되는 황야에 대한 묘사는 독특하다. 예컨대, 미국 서부극의 황야는 이제 막 발굴되고 개발되는 공간이라 빈 곳이 많고 가옥들도 점점이 박혀 있어 빈약해 보인다. 스파게티 웨스턴은 서부가 영토 확장을 위한 폭력의 세계였음을 폭로하기 위해 물 한 방울 찾을 수 없는 무미건조한 곳으로 황야를 묘사했다. 이와 반대로 <놈놈놈>은 서부극치곤 세트 촬영이 많으며 기차 내부 묘사도 꽉 찬 느낌을 줄 정도로 밀도가 높다.
<놈놈놈>이 묘사하는 만주는 돈을 좇아 수많은 욕망이 몰려든 곳이자 이상을 찾아 새 출발을 다짐한 사람들이 찾아든 곳이다. 러시아인, 중국인, 만주인, 조선인, 일본인 등 다종다양한 인종들과 각양각색의 문화까지 가세해 난맥상을 이루었던 공간이니만큼 무법천지의 카오스, 무국적의 욕망이 들끓는 거대한 용광로였던 것이다. 그런 만주 벌판이 스파게티 웨스턴의 무대처럼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메마른 땅으로 묘사될 수는 없는 법. 조화성(<짝패> <친절한 금자씨>) 미술감독이 담당한 <놈놈놈>의 국적불명 미술에는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형형색색의 타락한 에너지로 넘쳐난다.
세 놈의 추격전이 처음 벌어지는 제국열차 장면에서 이런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일등칸에서 삼등칸까지 다양한 계급과 인종이 뒤섞인 이곳에는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 이들의 이상과 욕망이 빼곡히 담겨 있는 짐들은 조그마한 충격에도 금세 폭발할 듯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런 맥락은 무법자들이 들끓는 귀시장이나 유혹의 기운이 넘쳐나는 아편굴 세트에서도 발견되는데, 타락한 욕망의 기운이 전편에 짙게 서려 있는 것이다.
액션으로 재현되는 폭력 역시 욕망의 한 형태다. 그에 따라 주인공 세 놈이 펼치는 액션에도 성격이 반영돼 있다. 가장 전형적인 서부극의 주인공이라 할 만한 좋은 놈 도원은 말 위에서 시원스레 장총을 휘두르고 귀시장에서는 화려한 밧줄 타기 액션까지 선보인다. 나쁜 놈 창이는 비열하기 짝이 없다. 눈 깜짝할 사이 상대를 제압하는 칼 기술은 현란하지만 최소한의 목숨 줄만 남겨놓은 채 고통은 고통대로 가하는 행위는 가히 나쁜 놈답다. 재미있는 건, 이상한 놈 태구. 홀로 오토바이를 몰며 쌍권총을 쏘아대지만 액션이라기보다는 몸 개그에 가까울 정도로 큰 웃음을 준다.
하지만 보물지도와 연관된 모든 인물들이 만주 벌판 한데 모여 대규모의 추격전을 벌이는 결말부에서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성격이 모호해진다. 욕망을 발현하는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종착점은 같기 때문이다. 김지운 감독은 “만주 벌판을 마음껏 달리는 활극을 찍어보고 싶었던 개인적인 판타지가 분명 존재한다. 서부극에 대한 개인적인 향수와 만주에 대한 민족적 판타지가 동시에 작용했다”고 말한다. 이는 <놈놈놈>이 오락적인 요소가 두드러지지만 잊힌 장르를 발굴하는 동시에 서부극을 통해 한국인의 무의식을 들여다보겠다는 저변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만주 웨스턴의 현대적 변용
어떤 장르보다 미국적인 장르로 평가받는 서부극은 21세기 장르영화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아시아만 보더라도 위시트 사사나티앙의 <검은 호랑이의 눈물>(2000), 미이케 다카시의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2007) 등이 ‘오리엔탈 웨스턴’의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다. <놈놈놈> 역시 그런 추세의 한가운데 서 있는 작품으로, 서부극이 변주하기 쉽고 장르 혼합이 용이하며, 특히 현실 반영을 통해 진화를 거듭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이다. 한편으로 서부극은 신화적인 세계를 창조해 공동체의 탄생과 유지, 소멸을 장르 안에서 완벽하게 구현한다.
김지운의 <놈놈놈> 역시 이런 신화화된 서부극의 틀을 빌려온다. 만주를 소우주로 상정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군상들의 욕망에 초점을 맞추면서 한국인의 신화를 다루려 한다. “미국의 서부가 그랬듯, 일제 강점기 만주는 우리 선조들에게 기회의 공간이자 꿈의 공간이고 개척의 공간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그리는 것도 <놈놈놈>을 만들게 된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미국의 서부극이 신대륙 발굴을 통해 개척정신을 미화함으로써 미국적인 사고방식과 이데올로기를 대변했다면 칸에서 공개된 만주 웨스턴 <놈놈놈>이 대변하는 것은 보물로 상징되는 황금만능주의다. 세 주인공을 비롯해 다양한 군상이 나오지만 이들의 욕망은 단 하나의 꼭짓점, 보물에 모아진다. 특히 “나라는 없어도 돈은 있어야지”(박도원) “과거 조선 일은 다 잊고 만주에서 새 출발 하려고 했더니”(윤태구) 등과 같은 대사는 당시 일본 지배하의 특수한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운명 따윈 초개처럼 집어던진 인물들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을 위해서만 살아가려 했던 인간의 내면이 들여다보이는 것이다.
<쇠사슬을 끊어라>가 만들어진 시대였다면, 이런 극단적 개인주의의 욕망은 집단주의로서 국가주의를 부정한 혁신적 묘사로 비춰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과 교묘히 맞물려 진행되는 <쇠사슬을 끊어라>와 달리 <놈놈놈>에는 당시 상황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다. 물론 극중 등장하는 일본군의 존재나 대사를 통해 어렵지 않게 시대를 유추할 수 있지만 그것이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아니다. 현실을 반영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장르의 이율배반적 속성을 이해한다면 <놈놈놈>이 보여주려는 것이 우리 시대 인간의 모습임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욕망의 끝은 어떨까? 미국 정통 서부극이라면 이를 신화화했겠지만 도덕적이고 이상화된 가치관을 전복하면서 실제적인 느낌을 강조한 <놈놈놈>은 반대의 길을 택한다. “서부극 특유의 추격전을 통해 인생이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을 단서 삼는다면 도원, 창이, 태구 이들의 끝이 해피엔딩보다 비극에 가까운 형태가 될 것임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딱 한 놈만 살아남는 형태인지, 모두 죽는 건지, 모두 사는 것인지는 7월 개봉 즈음이 돼봐야 알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떠돌이 무법자가 들끓는 타락하고 황량한 스파게티 웨스턴의 결말을 전용한 것인 동시에 <쇠사슬을 끊어라>로 대표되는 만주 웨스턴의 현대적 맥락(국가, 연대보다 개인, 영웅보다 떠돌이) 위에 놓이리라는 건 예측할 수 있겠다.

FILM2.0 390호
(2008.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