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의 벽지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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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베이커가 221b의 홈즈(베네딕트 컴버배치)의 거실 벽지는 기하학 문양의 일정한 패턴 무늬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사건을 추리하는 데 있어 공식을 대입해 일정한 패턴을 찾는 홈즈의 수사 기법에 착안한 미장센이라 할만하다. 아닌 게 아니라, 홈즈는 마치 수학 문제를 풀듯(“왓슨, 이렇게 하나하나씩 가능성을 제거해가는 방식을 소거법이라고 하네”), 과학 현상을 증명하듯(“이상해, 현미경으로 살펴도 설탕 입자가 보이지 않아”) 사건의 중심부에 진입한다.

그런 홈즈의 성향을 드러낼 목적으로 극 중 자주 출현하는 자막들 또한 패턴을 이루어 주변 가구나 기구들의 고유한 문양을 해치지 않게 제시된다. 홈즈와 왓슨이 아이폰이나 블랙베리나 맥북과 같은 첨단의 전자기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또한 이와 무관치 않다. 개인적으로 더 눈이 갔던 것은 홈즈의 일정한 패턴 무늬 거실 벽지 구석 쪽에 걸려 있는 해골 그림이었다. (이 그림은 영국 출신의 화가 데미언 허스트가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박아 넣은 ‘신의 사랑을 위해’라는 작품을 연상시키는데 그만큼 홈즈가 미술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해골이 의미하는 것은 당연히 죽음이다. 홈즈의 사건은 대부분 살인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시즌2의 1부 ‘벨그레이비어 스캔들’은 살인보다 아이린 애들러의 생사와 관련한 비밀을 풀어간다는 점에서 다소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그러니까, 홈즈는 살인 사건 주변에 흩어진 증거라는 파편을 모아 패턴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는 탐정이다. 그런 홈즈의 거실을 장식하고 있는 패턴 무늬 벽지와 해골 그림. <셜록>의 연출진은 이와 같은 재미있는 미장센을 통해 셜록 홈즈의 성격과 수사 성향을 암시한다.

홈즈는 홈즈일 뿐 오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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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셜록 홈즈>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극명히 엇갈리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기자시사회를 통해 최초 공개했을 때부터 예상된 바였다. <셜록 홈즈>가 추리소설의 대표적인 탐정 캐릭터를 액션 영웅으로 탈바꿈시킨 영화로 알려지면서 기자들 사이에서 이미 호불호 논쟁이 뜨거웠던 것이다. ‘홈즈는 성룡이 아니다 vs 홈즈는 원래 복싱에 능하다’, ‘왓슨이 언제 그렇게 홈즈와 맞먹었나 vs 홈즈와 왓슨은 주종관계가 아니다’ 라는 식의 구도로 진행된 논란은 결과적으로 영화의 흥행에 일정 부분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아바타>와 <전우치>의 압도적인 2강 체제 속에서도 <셜록 홈즈>는 3주 연속 3위를 굳건히 하며 꾸준한 흥행 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홈즈의 변신(?)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을 못 느끼는 쪽이다. (오히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스내치>에서 보였던 가이 리치 감독 특유의 개성이 상당 부분 제거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가이 리치는 영화 시작과 함께 주먹질에 능한 홈즈를 클로즈업하며 변화를 선전포고하고 홈즈와 왓슨의 관계를 거의 동성애자 커플에 가깝게 묘사해 논란을 부추긴다. 셜록 홈즈의 첫 번째 소설 <주홍색 연구>(1887)가 등장한 지 100년도 훌쩍 지난 마당에 현대적인 기준에 맞춰 캐릭터에 변화를 꾀한 것이 불가피했다는 투다. 사실 이 같은 태도는 가이 리치가 처음은 아니다. 이는 셜록 홈즈의 세계에서 그리 낯선 광경이 아닌 것이다.

홈즈 소설은 안작(贋作)으로도 불리고, 모작(模作)이라고도 표기되는 소위 패러디가 가장 발달한 시리즈다. 저자인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한 4편의 장편과 53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면 홈즈를 사랑하는 작가와 전 세계 산적한 팬들이 완성한 ‘그들 각자의 셜록 홈즈 소설’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최초의 셜록 홈즈 안작소설로 평가받는 <페그람의 수수께끼>는 코난 도일이 살아생전이던 1892년에 발표됐다. 그 이후 지금까지 매년 수십 종의 신간 안작소설이 나오고 있는 실정인데 셜록 홈즈의 안작소설 역사 역시 100년이 넘은 셈이다. 이 같은 배경의 결정적인 계기는 코난 도일이 1893년에 발표한 <최후의 사건>이다. 이 단편은 셜록 홈즈가 ‘범죄의 왕’으로 불리는 모리아티 교수를 스위스 마이링겐의 라야헨바흐 폭포로 유인해 함께 떨어져죽은 에피소드로 유명하다.

그 당시 코난 도일은 홈즈에게로 향하는 팬들의 관심이 자신을 월등히 넘어서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진다. 원래 ‘챌린저 교수 시리즈’로 명명된 모험소설에 더 관심이 많았던 코난 도일은 준비과정의 일환으로 홈즈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집필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자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결국 홈즈의 죽음이라는 초강수를 두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홈즈를 되살려내라는 독자의 항의가 빗발쳤고 코난 도일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후에 코난 도일은 다시 홈즈 소설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급기야 팬들은 안작소설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시작했다.

이처럼 안작소설의 역사가 깊고 너르다보니 개중에는 유명 작가의 작품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코난 도일 자신부터가 홈즈와 왓슨이 등장하는 두 편의 안작소설을 썼고 마크 트웨인과 오 헨리, 존 딕슨 카 등과 같은 당대의 작가들은 물론 코난 도일의 아들인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도 패러디를 통해 홈즈 소설에 대한 욕구를 채웠다. 또한 <Y의 비극>으로 유명한 앨러리 퀸은 서른 두 편의 안작소설을 모아 <셜록 홈즈 앤솔로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초기의 홈즈 안작소설이 코난 도일이 창조한 이야기와 극중 분위기를 최대한 거스르지 않는 것에 반해 최근의 작품들은 기존 이미지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변주를 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포소설에 가까운 작품이 있는가 하면(<셜록 홈즈의 유언장> 봅 가르시아) 홈즈가 93세라는 노령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며(<셜록 홈즈 마지막 날들> 미치 컬린) 심지어 홈즈와 왓슨이 게이 커플로 등장하는 팬픽도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 역시 최근의 경향을 따르는 일종의 안작영화로써 기능한다고 보면 된다. 다만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홈즈의 안작소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까닭에 액션에 능한 그를 두고 유난히 영화에 대한 논란이 크게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가 국내에 들어온 건 이미 백년도 훨씬 전이지만 홈즈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지는 채 10년이 넘지 않는다. 지금은 안작소설까지 소개되는 단계지만 채 10종이 되지 않는 까닭에 홈즈는 여전히 추리하는 탐정의 이미지로 견고한 것이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독자는 셜록 홈즈 소설의 완전한 판본을 접하지 못했다. 주로 아동용으로 소비됐고 그나마도 일본어 판본을 번역한, 다시 말해 원작을 중역한 작품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런 홈즈 소설 시장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것은 2002년 1월 출판사 황금가지를 통해 소개된 ‘셜록 홈즈 전집’이었다. <주홍색 연구>를 시작으로 <셜록 홈즈의 사건집>까지 9권이 소개되는 동안 홈즈 소설은 일시적인 붐을 넘어 미스터리 소설이 국내 출판 시장에 단단하게 발을 붙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출간 1년도 되지 않아 80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할 정도였는데 이는 전혀 예상 밖의 결과였다.

셜록 홈즈 소설을 기획한 당시 황금가지 편집부의 팀장이었던 최준영 씨(현 번역가)는 “기본적인 독자층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베스트셀러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다만 그는 “당시에 형성되던 마니아 문화의 증가가 셜록 홈즈 시리즈의 인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한다. 그래서 “특별히 한국인들이 셜록 홈즈에 열광한다기보다는 한국에도 셜록키언(sherlockian 홈즈 소설의 열혈 팬들)이 증가했다고 보는 게 맞는 표현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는 많은 이들이 홈즈 소설을 청소년용으로 생각하는 상황에서 셜록 홈즈 전집이 원본에 최대한 충실했기 때문에 나온 효과로 보인다. 최준영 씨는 셜록 홈즈 전집을 기획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던 사안에 대해 “무엇보다 원작의 분위기와 내용을 전달하는데 충실하자는 게 제1의 원칙이었다.”며 “완역을 중요시했고 캐릭터나 문체 등의 일관성을 위해 한 사람의 번역자와 작업했으며 가능한 많은 외국의 판본들을 구하여 참조했다.”고 밝혔다. 셜록 홈즈 탄생 한참 뒤에야 이뤄진 제대로 된 번역이었지만 폭발적인 반응은 한편으론 홈즈 소설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열망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이기도 하다.

국내는 물론이고 셜록 홈즈에 대한 인기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셜록 홈즈처럼 백년이 넘게 사랑 받아온 캐릭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셜록 홈즈는 추리소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탐정 캐릭터의 원형을 제시한 인물이다. 안 그래도 최준영 씨는 “인류가 창조한 허구의 인물들 중에서 셜록 홈즈처럼 강력한 이미지를 지닌 주인공은 많지 않다.”고 말한다. 또한 셜록 홈즈가 오랜 세월 사랑 받는 이유 중 하나의 증거로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는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구체적으로 안작소설을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홈즈 안작소설은 과거 홈즈 팬들의 사랑이 창조적으로 집약된 결과물이면서 또한 미래의 인기를 담보하는 보증서이기도 하다. 이 같은 배경을 이해한다면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가 전혀 허무맹랑한 홈즈 관련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례로, 가이 리치는 홈즈의 액션도 사실은 추리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노골적으로 암시한다. 홈즈가 극중 권투경기를 치르면서 주먹을 날리기 전 상대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어디를 가격할지 머릿속으로 미리 계산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홈즈의 활약상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캐릭터의 본질적인 성격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홈즈는 홈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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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10.1.11)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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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의 셜록 홈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캐릭터를 두고 말들이 많다. 추리소설의 대표적인 캐릭터이자 추리형 탐정인 그를 액션영웅으로 탈바꿈시켰다는 것이 논란의 요지다. 어느 평자는 ‘이런 농담 같은 영화가 다 있냐’며, 어느 소설가는 ‘홈즈는 성룡이 아니다’라며 셜록 홈즈의 변신(?)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주먹질에 능한 홈즈의 모습을 부각시키는데 주저함이 없다. 왓슨(주드 로)과 짝을 이뤄 젊은 여자를 비밀 종교의식의 제물로 바치는 연쇄살인마 블랙 우드(마크 스트롱)를 말 그대로 때려눕히는 것. 블랙 우드는 곧바로 사형이 집행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무덤에서 되살아나며(?) 홈즈와 왓슨은 괴이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여기에 홈즈가 평생에 걸쳐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 아이린(레이첼 맥아담스)이 가담하면서 일은 점점 더 꼬여만 간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스내치> 등으로 유명한 가이 리치 감독은 코난 도일이 쓴 소설 속 그대로의 셜록 홈즈를 재현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시대가 한참 변한 만큼, 또한 영화가 블록버스터를 지향하는 만큼 셜록 홈즈 역시 현대적인 캐릭터에 걸맞은 위용을 뽐낸다. 액션영웅의 면모는 밝힌바 그대로고 홈즈와 왓슨의 관계 역시 우리가 알던 주인공과 조력자 간의 전통적인 관계를 넘어서 게이 커플이 아닐까 의심을 살만큼 동등한 관계로 급진전을 이뤘다. (왓슨이 홈즈에게 주먹을 날리기까지 한다!)

이는 셜록 홈즈 세계에서 그리 낯선 광경은 아니다. 셜록 홈즈는 소위 패러디라 불리는 안작(贋作)소설이 가장 발달한 시리즈다. 홈즈를 사랑하는 작가들이, 팬들이 그들 각자의 셜록 홈즈 소설을 완성한 것. 역사가 아주 깊어서 최초의 셜록 홈즈 안작소설은 이미 코난 도일이 살아생전이던 1892년에 발표된 <페그람의 수수께끼>이다. 그 후 코난 도일이 1893년에 발표한 <최후의 사건>에서 홈즈가 목숨을 잃자 (이때 함께 라이헨바흐 폭포에 뛰어들었던 모리아티 교수는 영화 <셜록 홈즈> 2편의 악당으로 예정된 상태다!) 그 충격에게 헤어나기 위해 팬들이 직접 안작소설을 ‘마구잡이’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 인기가 지금까지 이어져 셜록 홈즈 소설의 하위 장르가 된 것이다.

<Y의 비극>의 앨러리 퀸은 서른 두 편의 안작소설을 모아 <셜록 홈즈 앤솔로지>를 편집했고 최근 들어 국내 출판계에도 미치 컬린의 <셜록 홈즈의 마지막 날들>, 칼렙 카의 <셜록 홈즈 이탈리아인 비서관> 등 홈즈 안작소설이 활발하게 번역, 출간되는 실정이다. 이들 작품의 특징은 셜록 홈즈 캐릭터의 기본 설정은 갖추되 기존 이미지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변주를 꾀한다는 것이다. 공포소설에 가까운 작품이 있는가 하면(<셜록 홈즈의 유언장>) 홈즈가 93세라는 노령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며(<셜록 홈즈 마지막 날들>) 심지어 홈즈와 왓슨이 게이 커플로 등장하는 팬픽도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 역시 전혀 말이 안 되는 영화가 아니다. <셜록 홈즈>는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 안작인 셈이다. 오히려 가이 리치가 이야기의 변주는 꾀하였을지언정 홈즈 캐릭터의 기본 설정에는 굉장히 충실한 편이다. 4편의 장편과 53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대부분 영화 속에 포함되어 있을뿐더러 (개인적으로 베이커가 특공대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주먹질에 능한 모습만 하더라도 실제로 홈즈는 수준급의 복싱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코난 도일의 작품 속에 묘사되고 있다. 더군다나 가이 리치는 홈즈의 액션도 사실은 추리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노골적으로 암시한다. 홈즈가 극중 권투경기를 치르면서 주먹을 날리기 전 상대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어디를 가격할지 머릿속으로 미리 계산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 다만 셜록 홈즈라고 하면 추리 능력이 더 부각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달리 액션 영웅적 면모가 더 강조되는 까닭에 일부 홈즈 팬들의 불만을 불러온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느끼는 <셜록 홈즈>의 불만은 굳이 가이 리치여야 했나는 점이다. 이왕 홈즈 소설의 변주를 꾀할 생각이었으면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나 <스내치> 버전으로 갔어도 좋을 듯 했다. 물론 극중 홈즈의 복싱 장면처럼 의도적인 시간 비틀기를 통한 가이 리치만의 장기를 드러내는 부분이 있지만 일부에 그칠 뿐이다. 특유의 베베 꼬인 스토리에 발맞춘 MTV적인 현란한 편집이 더욱 강조됐다면 더 완벽한 가이 리치만의 셜록 홈즈 안작영화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홈즈는 홈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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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0)

<전우치>부터 <아바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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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영화 트로이카(<트랜스포머><해운대><국가대표>)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벌써 눈 내리고 옆구리 시린 이 계절을 책임질 겨울영화 BIG3이 납시었다. <전우치>는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걸고, <아바타>는 3D영화의 미래를 걸고, <셜록 홈즈>는 명탐정의 명예를 걸고서.


BIG1 <전우치> 한국형 슈퍼히어로무비

<범죄의 재구성>부터 <타짜>까지, 만드는 영화마다 사기친다하여 충무로의 사기꾼으로 통하는 최동훈 감독이 사기행각을 접고 한국형 히어로무비에 도전한다. 그 이름하야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의 직계 후손처럼 보이는 <전우치>(12/23 개봉) <전우치전>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이 영화는 조선시대 도술가 전우치(강동원)가 2009년 서울에 뿅~ 나타나 역시나 조선에서 현대 서울로 뿅~ 나타난 요괴를 물리치는 단순간단명료심플한 이야기다. 다만 전우치는 홍길동과 한국 고전영웅소설을 양분한 주인공이지만서도 잘난 척이 심한 좀 재수가 없는 스타일이다. 허나 천하의 F4도 명함 일 장 못 내밀 미모의 소유자 강동원이 연기한다는데 누가 모라 그래. 그래서 사람들은 전우치를 일러 안티 슈퍼히어로라고 부른다.


BIG2 <아바타> <타이타닉> 이후 11년 만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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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Back’ <타이타닉>으로 전 세계 극장가를 눈물바다에 퐁당 빠뜨렸던 제임스 카메론이 11년 만에 찾아온다. 왜 늦었냐고? 영화의 신기술을 배우느라고. 그게 모냐고? 3D입체영화. 왜 배웠냐고? 아기다리고기다리던 관객에게 새로운 영상을 보여주려고. <아바타>(12/17)는 그 결과물이다. 가까운 미래, 에너지가 고갈된 지구는 판도라 행성으로 대체 자원을 찾으러 간다. 하지만 그냥 접근하기가 어려워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 외형에 인간의 의식을 주입하니, 그것이 바로 ’아바타‘다. 거 있잖아, 오락할 때 대신 내세우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제임스 카메론은 관객에게 단체로 입체안경을 끼우게 해 실제로 전자오락기 안에 있는 느낌을 주려한단다. 결국 그의 야심은 소싯적 우리가 롯데월드 다이나믹 시어터에서 느꼈던 이리 쿵 저리 쿵 움직이는 의자의 전율을 훌쩍 뛰어넘는 영상을 선보이는 것이다. 


BIG3 <셜록 홈즈> 주먹 쓰는 셜록 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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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에 이어 세상에서 두 번째로 많이 영화화된 명탐정 ‘셜록 홈즈’를, 베베 꼬인 스토리 만들기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가이 리치 감독이 영화화한다. 하여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버전의 탐정영화라 할 만한 <셜록 홈즈>(12/24)에는 기존 이미지와 안녕을 고한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홈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등장한다. 인상부터가 꼬장꼬장한 대머리 아저씨에서 개기름 좔좔 흐르는 꽃중년풍으로 개비된 것은 물론 차가운 머리에서 나온 추리 능력보다 욱하는 심정에서 터져 나온 주먹질이 Neo홈즈의 캐릭터를 대변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쁜 놈으로 출연하는 블랙우드라는 놈이 세상과 맞장 뜨겠다고 나선 정신 나간 놈이니 천하의 홈즈라도 주먹이 앞설 수밖에. 다만 전 세계 산적한 셜록키언들이 부침개 뒤집듯 확 바뀐 셜록 홈즈 캐릭터에 앙심을 품고 가이 리치에게 먼저 주먹을 날릴지 모르니 주의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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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OOK
(2009년 12월호)

(6) 셜록 홈즈는 영국의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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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트 모던의 경우처럼 영국에는, 특히 런던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라이벌 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장소가 사방 천지에 널렸다, 까지는 아니고 좀 있다. 어, 그러니까 그게 어디냐 하면, 찾아보면 몇 군데 된다. 흠흠. 그중에서도 이곳만큼 점잖은 척 하면서도 교묘하게 프랑스를 깔아뭉개는 사례는 그 이후에도 목격한 적이 없었으니. 원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지라 셜록 홈즈 관련 장소를 빗자루 쓸 듯 구석구석 뒤지다가 우연찮게 발견한 곳인데 바로 머더 원(Murder One)이란 서점이다.

1988년에 문을 연 이곳은 오직 추리소설만 다룬다. 거짓말 살짝 보태 신작에서부터 헌책까지 현존하는 영문판 추리소설이란 추리소설은 없는 거 빼고 다 있을 정도로 추리소설 마니아들에겐 천국과 같은 서점이다. 물론 영어를 모르는 나 같은 순수혈통(아~ 마구 자랑스러워라 -_-)의 코리언들에겐 천국이 지옥처럼 다가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 <셜록 홈즈의 유언장>(Le Testament de Sherlock Holmes) 제목 아주 죽이는데 내용은 뭔지 도무지 모르겠구먼. 왜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가 아니라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괜히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 삼매경에 빠져 앞뒤 분간을 하지 못하던 난 잠시 뒤 정신을 차리곤 <셜록 홈즈의 유언장>이 아서 코난 도일이 집필한 소설이 아니라는 사실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서가 한 편을 메운 홈즈 소설을 보니 <주홍색 연구> <바스커빌 가문의 개>와 같은 익숙한 제목은 약간이고 생전 처음 보는 제목들로만 가득한 것이 아닌가. 우째 이런 일이.

셜록 홈즈에 미친 놈, 즉 셜록키언들은 이런 소설을 일러 패러디, 즉 안작(贋作)이라고 부른다(고 런던에서 미술공부를 하는 지인이 설명해줬다. 그 친구 알고 보면 꽤 똑똑한 구석이 있다). 역사가 아주 깊어서 최초의 셜록 홈즈 안작소설은 1892년에 발표된 <페그람의 수수께끼>로, ‘진짜’ 셜록 홈즈가 왓슨과 짝짜꿍을 이뤄 맹활약하던 당시다. 그 후 코난 도일이 1893년에 발표한 <최후의 사건>에서 홈즈가 목숨을 잃자 그 충격에서 헤어나기 위해 팬들이 직접 안작소설들을 ‘마구잡이’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 인기가 지금까지 이어져 셜록 홈즈 소설의 하위 장르가 된 것이다. 얼마나 인기가 좋았던지 <Y의 비극>의 앨러리 퀸은 서른 두 편의 안작소설을 모아 <셜록 홈즈 앤솔로지>를 편집했을 정도다.

홈즈에 대한 영국민의 사랑이 얼마나 각별했던지 머더 원에서 유일하게 취급하지 않는 작품이 있다. 바로 프랑스의 모리스 르블랑이 쓴 아르센 뤼팽 시리즈다. ‘괴도 신사 뤼팽’, ‘아르센 뤼팽 대 헐록 숌즈’ 등에서 셜록 홈즈를 천하의 바보 취급하며 그의 명예에 극심한 누를 끼친 작품은 영국인의 자존심을 걸고 판매하지 않겠다는 것이 머더 원의 방침인 것이다.

하지만B.U.T벗뜨! 프랑스인이라도 홈즈에 존경을 바치면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것이 머더 원의 입장이기도 한데 <셜록 홈즈의 유언장>을 보니 프랑스 소설가 봅 가르시아가 쓴 안작소설이 아니던가. 나중에 서울로 돌아와 우연한 기회에 <셜록 홈즈의 유언장> 한국어판을 발견하곤 얼른 구입했더랬는데 역시! 코난 도일이 쓴 소설에는 비할 바가 아니더라. 그에 비하면 미치 컬렌과 칼렙 카, 두 명의 미국인이 각각 집필한 <마지막 날들>과 <이탈리아인 비서관>은 얼마나 훌륭하던지. 그렇다면 이건 교묘한 방식으로 프랑스를 짓밟고 그 위에 올라서려는 영국의 의도? 그러건 아니건 영국인의 문화 자긍심은 시어머니도 며느리도 아무도 못 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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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사보
(2009.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