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페킨파의 영화를 가르켜 남성의 힘에 의한 지배력이라는 뜻의 ‘마초 macho’로 포장하는 이유는 그의 필터를 통해 보여지는 인간들의 생존전략이 철저히 약육강식에 따른 힘의 논리로 해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군상들의 모습이 동물의 그것과 하등 틀리지 않다는, 샘 페킨파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대변한다. 특히 1972년 작품 <게터웨이 The Gataway>는 이성이 배제된 철저히 본능만으로 살아가는 인간세상의 동물적인 행위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페킨파의 영화가 대개 그렇지만, <게터웨이>에서 맹수의 이빨에 다름 아닌 권력의 상징은 ‘남성’과 ‘총’이다. 그리고 그것이 노리는 먹이 감은 ‘돈’이다. 결국 이성에 기초한 대화란 그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먹이(돈)를 나꿔채기 위해 서로 의심을 하며 눈치를 살피고, 뺏고 뺏기는 과정 속에 종국에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이렇듯 단순한 힘의 논리는 페킨파의 동물원에서 여자라는 연약한 포유류의 기능을 노리개 감으로 전락시킨다. 그러한 세계에서 암컷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남들보다 강한 남성을 선택하여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몸을 바칠 뿐이다.
샘 페킨파의 <게터웨이>는 하드 보일드 장르의 마지막 대표 작가인 짐 톰슨(Jim Thompson)의 동명소설「The Gataway」를 원작으로 삼아 시나리오 작가이자 <48시간 48 Hrs> 등의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도 유명한 월터 힐(Walter Hill)이 각색을 하였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22년 후에 로저 도날드슨(Roger Donaldson)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 된 <겟어웨이>에서도 월터 힐은 각색을 맡고 있다. 그래서 리메이크 된 <겟어웨이>는 페킨파의 색깔을 재현하기보다는 전작에서 설명이 미흡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보충하는, 내러티브의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작 <게터웨이>가 맥코이의 수감생활에서 시작한 것에 착안하여, 그가 감옥에 들어오게 된 전(前) 과정을 첨가함으로써 <겟어웨이>는 이야기의 중심축이 되는 맥코이와 루디(알 레티에리 분)의 갈등관계를 더욱 극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는 나름대로 샘 페킨파의 <게터웨이>와 차별을 짓는 로저 도날드슨의 전략으로 <겟어웨이>를 순수한 오락영화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 같은 사실은 시각적인 측면에서도 돋보이는데, 그 단적인 예로 캐롤로 등장하는 킴 베이싱어와 제니퍼 틸리의 육감적인 몸매를 한껏 활용한 섹스신을 군데군데 삽입하고 있으며, 결말부분의 호텔 총격전 장면에서는 전작이상으로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겟어웨이>는 단순히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영화가 되었다.
그에 반해 샘 페킨파의 <게터웨이>는 ‘폭력의 피카소’라는 닉네임이 어울리듯 능숙한 영화장인이 만들어낸 인상적인 장면들로 가득 차있다. 너무나 잔인해 검열에서 마지막 총격전 장면만도 무려 3분 분량이 난도질당한 일화는 차치하더라도, 귀를 찌르는 기계 음만으로 폭발 할 듯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첫 장면은 그 중 일품이다. 특히 반복되는 기계 음은 빠져나갈 구멍하나 없는 거미줄과 같은 철창으로 작용, 맥코이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음향으로 전달하는 수준급의 편집능력을 보여준다. <겟어웨이>는 맥코이(알렉 볼드윈 분)가 감옥에 수감되기 이전의 상황을 늘인 것 정도만 빼면 <게터웨이>의 이야기를 동어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성을 바라보는 두 감독의 시선이 상당히 판이하다는 점을 감지 할 수 있다.
샘 페킨파 감독이야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떨어뜨릴 수 있는 가장 낮은 위치에서 여성을 조롱하고 있는 반면, 로저 도날드슨 감독은 남성과 여성을 같은 선상에 놓고 극을 진행하고 있다. 이 같은 극명한 차이는, 두 영화가 모두 다루고 있는, 맥코이가 면회를 온 캐롤에게 자신을 빼달라며 요구하는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스티브 맥퀸과 알리 맥그로가 맥코이와 캐롤로 분한 <게터웨이>는 이렇게 표현한다.
“무슨 일이든 해서 나를 감옥에서 꺼내줘!”.
고압적인 명령체의 위 대화는 남성이 여성 위에 군림하고 있는, 좋게는 고전적인 그러나 실상은 상하관계인 부부사이 임을 보여주고 있다.
“잭 베년에게로 가서 내 이야기를 해. 그는 지금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데. 그도 나를 알고 있으니 해결해 줄 거야”
그에 반해 알렉 볼드윈과 킴 베이싱어의 <겟어웨이>는 돈독한 신뢰관계로 묶인 동등한 부부간의 대화임을 흐릿하나마 암시하고있다. 증거는 또 있다. 아내의 부정이 밝혀진 후, <게터웨이>의 맥코이는 캐롤을 사정없이 패 버리지만(?) <겟어웨이>의 캐롤은 자신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도리어 맥코이의 따귀를 날리지 않는가. 하지만 이 점을 들어 <겟어웨이>를 여성의 지위에 대한 진보적인 메시지를 담은, 의식적인 작품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이는 단지 시간의 축적에 따라 변화한 시대상의 한 단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았던가 <겟어웨이>는 단순한 오락영화라고.
그런데 <게터웨이>를 만든 이후, 샘 페킨파 감독은 이런 말을 하였다. 이 영화는 순전히 돈을 벌 요량으로 만들었다고. 그래서인지 페킨파의 영화치고는 드물게 밝은(?) 결말을 취하고 있으며 오락적인 요소도 강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샘 페킨파가 누군가. 아무리 상업적인 의도에서 출발하였다고는 하지만 느린 화면에 잡아낸 서정적인 폭력미(美), 보는 이의 눈을 압도하는 능수 능란한 편집, 하급의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만의 시선은 영화 속에 그대로 담겨 소위 작가정신의 군내를 풍기고 있다.
이점을 로저 도날드슨도 간파한 탓일까, 그는 페킨파의 예술성을 의도적으로 모조리 제거함으로써 원전의 가치를 난도질하지 않는 대신 <게터웨이>의 오락성을 극단적으로 몰아붙여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 <겟어웨이>를 상당히 재미있는 킬링타임 용 오락영화로 만들어냈다.
사족 하나. 스티브 맥퀸과 알리 맥그로우가 <게터웨이>를 통해 부부가 된 것처럼 알렉 볼드윈과 킴 베이싱어 역시 <겟어웨이>의 캐스팅이 실제 부부관계로 이어지는 묘한 인연을 과시하였다.
사족 둘. <겟어웨이>의 마지막 총격전 장소가 된 호텔은 <게터웨이>의 바로 그 호텔이라고 한다. 세월의 축적이 호텔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 지켜보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한 방편일 듯.
(2001. 10. 27. <무비클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