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화이트 블루>(Red White &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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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화이트 블루>는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의 ‘세 가지 색’ 연작을 연상시키는 제목이지만 오히려 피로 난도질한 버전에 가깝다. 영화는 레드로 대변되는 에리카와 블루의 네이트, 그리고 화이트의 프랭키 간의 얽히고설킨 복수극을 다룬다. 옛 남자의 배신의 충격에 못 이겨 모든 사람을 다 같이 평등하게 사랑하겠다며 방탕한 시간을 보내는 에리카,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겠다며 술집에서 만난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 후 에이즈 감염자가 되고 마는 프랭키, 대부분의 남자가 노리갯감으로 생각하는 여자와 교감을 나누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는 프랭키까지, 영화는 이들의 사연을 병렬식으로 전개한 후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하나로 묶으며 관객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마지막 ‘한방’을 선사한다. 기본적으로 <레드 화이트 블루>는 공포물에 속하지만 시각적인 공포를 앞세운 영화와는 궤를 달리한다. 이 영화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면 그것은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행동이 타인에게는 위협으로 가해져 복수의 순환 고리를 형성한다는 것. 사실 <레드 화이트 블루>의 제목은 각각 박애, 평등, 자유를 상징한다. 그러니까 감독은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받들어야 할 가치가 무참하게 짓밟히는 과정을 은유하고 있는 거다. 과연! 프랭키의 손에 들린 행복한 한때의 사진이 불속에서 타들어가는 에필로그는 이 영화가 노리는 바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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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릴>(Mandr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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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트보다 쿨한, 제임스 본드보다 뜨거운, 이소룡보다 빠른’ 칠레 최고의 킬러로 불리는 만드릴이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한 여정을 그린 <만드릴>의 홍보문구다. 약간 과장된 면이 없지 않지만 이 영화는 확실히 동서양 액션영화의 ‘엑기스’만을 모은 액션의 종합선물세트라 할만하다. 이미 에르네스토 디아즈 에스피노자 감독의 두 편의 전작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만드릴 역의 마르코 자로는 정말로 샤프트보다 쿨하게 적을 응징하고, 본드보다 뜨겁게 사랑을 나누며 이소룡보다 빠른 액션을 구가한다. 그런 점에서 독창성은 없지만 이를 B급영화의 문법으로 구성하는 감독의 연출에는 독특한 기운이 감지된다. 이는 대부분 극중 만드릴의 의외의 행동에서 폭발력을 갖는다. 확실히 만드릴에게는 킬러의 면모 외에도 1970년대를 풍미했던 포르노스타 덕 디글러(<부기 나이트>의 실제모델!)의 퇴폐미도 함께 느껴진다. 여자를 유혹한답시고 별안간 춤을 추지 않나, 속전속결로 침대로 직행하는 그의 행동에는 B급 감수성이 철철 넘쳐흐르는 것이다. <만드릴>은 감독의 전작 <미라지맨>에 비해 스케일도 커지고 볼거리도 많아졌지만 이를 스케일의 문제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사실 이 영화는 규모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뻔뻔하게 남의 것을 취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지, 이를 감안하면 <만드릴>은 규모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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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오디세이>(Το Κακό στην Εποχή των Ηρώω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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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는 정치․사회적 배경을 등에 업고 태어난 존재인 까닭에 영화가 만들어지는 지역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그리스 출신의 요르고스 노시아스 감독이 연출한 <좀비 오디세이> 역시 그렇다. 신화의 나라인 만큼 그들은 좀비영화도 신화처럼 만든다. 극중 그리스가 좀비들의 세계로 변한 것은 전염병이나 바이러스 창궐 때문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 군대가 나타나 사람들을 모두 좀비로 만들어 버렸다. 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여기서 영화는 2,800년 전의 그리스와 현대의 그리스를 교차해 이야기를 진행한다. 과거 용맹한 전사들이 좀비들을 무찔렀듯이 감독은 역사의 순환론을 끌어들인다. 현대에도 도탄에 빠진 그리스를 구할 영웅이 나타날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 문제는 영웅이 사라진 시대 과연 누가 이 많은 좀비들을 소탕할지가 관건인 셈이다. 그런데 주인공들의 면면을 보자면 참 답이 없어 보인다. 좀비천지 와중에 한가롭게 여자나 꼬셔보려는 남자, 이제는 늙어 힘 빠진 할아버지, 그나마 든든한 리더처럼 보이던 이들은 불의의 일격에 좀비가 되고 만다. 그러니까 <좀비 오디세이>는 현대의 영웅상을 다시금 정립하려는 영화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던 전형적인 영웅상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다. 지금 그리스는 잘 알고 있듯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전 세계를 호령했던 고대 그리스의 기개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지금 그리스가 처한 국가적 위기를 염두에 둔다면 <좀비 오디세이>는 꽤 흥미로운 텍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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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거리>(ĐAVOLJA VARO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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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거리>는 세르비아 버전의 <숏 컷>(1993) 혹은 <매그놀리아>(1999)라 할만하다.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를 배경으로 거의 10명에 가까운 인물들 각자의 삶이 교차해 펼쳐진다. 다만 이들을 연결하는 유일한 매개는 세르비아의 유명 테니스 스타의 경기 중계방송이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하던 일을 멈추고 관심을 갖는 것을 보니 테니스 경기 중계가 이들 삶의 유일한 위안거리처럼 보인다. 극중 인물들은 하나같이 가난과 실직과 좌절과 상대방에 대한 분노로 점철돼 있을 만큼 미래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아기 하나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실직자 아빠, 돈이 없어 테니스 강습을 받지 못하는 아이, 병상에 있는 아버지에게 영화 제작비를 받아내려는 철부지 아들, 여자 친구의 결별 선언을 극단적으로 받아들이는 청년, 매춘으로 부를 축적한 창녀 등 이들은 서로에게 독(毒)이고 화(禍)를 불러일으키는 존재일 뿐이다. 가족 해체와 사회 붕괴, 누가 원인이랄 것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악순환을 반복하는 일상에는 쥐구멍만한 탈출구도 없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블라디미르 파스칼레비치 감독은 베오그라드에 살고 있는 이들의 하루를 가지고 무너져가는 현대 세르비아의 삶을 조망한다. <숏 컷>이나 <매그놀리아>에는 그래도 각성의 순간을 통한 희미한 구원이라도 있었지만 <사악한 거리>에는 그마저도 없다. 감독이 보기에 베오그라드는 희망도, 위안도, 구원도 없는 그저 ‘악마의 도시’(Devil’s Town)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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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멀>(Pri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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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멀>은 그리 독창적인 영화는 아니다. 산골 오지로 여행을 떠난 일군의 남녀 젊은이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악한 기운에 휩싸여 ‘원시적인’(primal) 공포를 경험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종류의 영화는 차고 넘친다. 멀게는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1974)부터 가깝게는 <데드캠프>(2003)와 <디센트>(2007)까지, 이 장르가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이유는 다른 거 없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공포를 다루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프라이멀>은 12,000년 전 벌어진 핏빛 에피소드로 문을 연다.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 비슷한 형태로 다시금 재현되는 상황은 공포의 발현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문명과는 동떨어진 폐쇄적인 환경과 그곳에서 만나는 미지의 존재, 그리고 우왕좌왕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 등 <프라이멀>은 장르가 쌓아올린 관습을 그대로 따라간다. 물론 이런 소재의 영화는 지극히 서양적인 발상에서 출발한다. 특히나 호주처럼 개발 안 된 지역이 많은 나라일수록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자연은 그들의 무의식적인 공포를 드러내는 좋은 소재다. 다만 조쉬 리드 감독은 여기에 어떤 정치적, 사회적 함의도 포함시키지 않고 보편적인 공포를 전달하는데 집중한다. <프라이멀>은 어떤 새로운 경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장르적 쾌감만큼은 확실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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